오늘은 원래는 있었는데 국토 분단으로 인해 기능이 상실되고, 게다가 6· 25 때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터만 남은 비운의 철도역을 심층 탐방해 보겠다. 오오오~ 흥미진진 두근두근~!
얘들은 황량한 부지만 달랑 있고 건물 실체가 없는 관계로, 주소도 도로명 주소 같은 게 없이 여전히 지번 기반이다. 이름도 '역'이 아니라 그냥 '역지'이다. 황룡사가 아니라 황룡사지인 것처럼 말이다.

1. 경의선 장단 역

장단 역은 원래는 1906년 4월에 경의선이 개통했던 당시부터 영업을 시작한 창립 멤버이다. 그때는 같은 창립 멤버인 문산 역의 바로 다음이 장단이었다. 지금 문산 이북에 있는 운천, 임진강, 도라산 같은 역은 먼 훗날 이뤄진 남북 경의선 철도 연결 작업의 산물이다. (더구나 운천은 그저 임시승강장일 뿐이고.)

장단 역이 유명해진 건 잘 알다시피 인근 선로에 반세기 동안 버려져 있던 녹슨 증기 기관차 때문이다.
1950년 12월 31일, 고 한 준기 기관사는 평양 방면으로 화물 열차를 운전하고 있었는데, 그 때는 중공군의 인해 전술로 인해 국군과 UN군은 후퇴 중이었다(서울을 북한군에게 도로 빼앗긴 1· 4 후퇴의 불과 닷새 전이었다). 그래서 이 열차는 더는 북상할 수가 없게 되었으며, 장단 역에는 전차대 같은 게 없어서 진행 중인 열차의 방향을 남쪽으로 돌릴 수도 없었다.

결국 이 열차는 북한군에게 노획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차라리 동작 불능 상태로 파괴 대상이 되었다. 이에 명령을 받은 미군 병사들은 소총을 난사하여 기관차를 벌집으로 만들고 또 탈선까지 시켰다. 한씨는 다른 하행 열차를 갈아타고 후퇴했다. 김 재현 기관사 때처럼 열차가 무슨 북한군의 공격을 받아서 벌집이 된 건 아니다.

그렇게 긴급 상황에서 버려진 증기 기관차 화통은 2005년에 임진각으로 옮겨졌고, 녹을 벗겨내는 대공사를 거쳐서 2009년부터 임진각에 전시되고 있다. 하지만 그 난리 중에 장단 역 자체는 완전히 파괴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위치 자체도 38선, 지금의 군사 분계선과도 너무 가까운지라 복원이나 관광지 조성 같은 건 요원하다. 민통선도 아닌 완전 비무장지대에 있으니 말이다.

장단역지의 공식 주소는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동장리 198”이다. 지도 사이트에서 주소를 입력하면 위치가 정확하게 나온다. 도라산리도 아니고 동장리이기 때문에 도라산 역에서 1km가 넘게 북쪽으로 멀찌기 떨어져 있고, 군사 분계선이 몇백 m 코앞이다.
이 일대의 항공 사진을 보면 4차선 도로의 옆으로 경의선 단선 철길이 지나고, 주변은 온통 숲이다.
예전에 기관차가 임진각으로 옮겨지기 전에 시뻘겋게 녹슨 채 내팽개쳐져 있던 시절의 사진을 보면.. 여기 어딘가의 경의선 선로 옆에 나란히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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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분단 전의 리즈 시절엔 장단 역은 제법 컸다고 그러는데 지금 저 지형을 봐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또한 '죽음의 다리'라고 불리는 교량이 장단 역 남단 300m쯤에 지금도 있다고 하는데 항공 사진으로는 짐작을 못 하겠다.

2. 경원선 철원 역 외

철원은 남북 분단 이전에는 지금의 춘천에 맞먹는 큰 도시였으며, 철원 역도 무려 1912년에 개통한 경원선의 창립 멤버역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교통 요지였다. 게다가 금강산선의 분기역이기까지 했으니 역의 덩치도 당시의 경성 역만큼이나 컸다고 한다.
철원 역 일대는 분단 직후에는 북한 치하에 있다가 6· 25가 발발하면서 건물과 시설이 모조리 초토화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은 대한민국이 수복한 후, 다행히 터와 최소한의 흔적은 건졌다. 위치도 DMZ는 아닌 단순 민통선 내부인지라 개인이 그럭저럭 찾아가서 답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안보 패키지 관광을 이용해서 이 지역을 방문하면, 철원 역은 아무래도 건물 실체가 짝퉁 형태로라도 남아 있는 월정리 역보다는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관광버스가 정차하지도 않고 가이드가 그냥 차창 밖으로 “여기가 철원 역 부지입니다”라고 설명하는 걸로 넘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를 직접 땅밟기를 하고 살펴보고 싶으면 평일에 개인이 자가용을 끌고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 물론 사전에 군부대에 연락해서 허가를 받고서 말이다. 다른 방문자의 경험담을 보자면, 원래부터 그 지대의 출입증을 갖고 있는 지역 주민으로부터 초대를 받고 같이 들어가는 게 아닌 경우(외지인의 단독 방문), 감시하는 군인이 동승· 동행을 한다고 그런다.

"사람이 가득하던 도시가 어찌 외로이 앉았는가! ..." (애 1:1)
성경의 이 애가(lamentation) 구절이 철원역지를 보면 저절로 읊어질 것 같다.
경원선은 경의선과는 달리 남북이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니 지도를 펴 놓고 옛 철길 궤적을 한번 추적해 보도록 하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그림 한 장으로 모든 게 설명된다.
좌측 최하단의 '묘장로' 인근에 있는 붉은 점은 바로 지금의 경원선 종점인 백마고지 역이다.
그리고 근처의 오른쪽 위에 있는 점은 옛 철원 역으로, 지금은 민통선 안에 빈 터만 남아 있다.
더 위로 들판과 산지의 경계에 있는 붉은 점은 월정리 역이다.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남한 쪽의 논밭 들판들은 거의 다 민통선 내부라고 생각하면 정확하다.
단, 월정리 역은 원래는 민통선 지대를 넘어 더 북쪽의 DMZ 내부에까지 걸쳐 있었으나 좀 덜 위험한 곳으로 살짝 옮겨져서 복원된 것이다.
그리고 철원 역도 지금은 국도 3호선에 딱 붙은 지점에 복원되었지만 원래 있던 곳은 그보다는 좀 더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북한으로 넘어가서 홀로 덩그러니 남아 있는 붉은 점이 바로 가곡 역으로 추정되는 지점이다. 북한의 월정리 역에 해당하는 버려진 역이다! 선로는 없고 역사 흔적만 있다.
다음으로 '평강군'에 걸쳐 있는 점은 평강 역으로, 오늘날 경원선의 북한 구간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북한에서는 자기 구간을 강원선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쪽에 있는 푸른 점은 철원에서 금강산선의 궤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각각 한다리, 대위교, 그리고 전선 휴게소 인근에 있는 교각이다. 위의 자료가 정확하다면, 철원 역에서 분기한 금강산선은 남쪽으로 좀 내려간 뒤에 동쪽을 향해 간다는 걸 알 수 있다.

끝으로, 군사 분계선 인근의 분홍색 점은 제2 땅굴 입구가 있는 지점인데 참고로 첨가해 넣었다.

위의 점들이 다 철길로 연결되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할까?
본인은 경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황룡사지보다도 철원역지, 장단역지 같은 이름을 들었을 때 더욱 가슴이 뭉클하고 뭔가 울컥함을 느낀다. 분단된 철도의 아픔은 곧 나의 아픔이기에.

미국의 로스엔젤레스는 잘 알다시피 '천사의 도시'라는 뜻이고,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다. 그런데 평화와는 별 관계가 없는 짓을 하는 북한 같은 또라이 반국가단체가 '평강, 평양' 등 '평'자가 들어간 지명을 갖고 있다는 건 참 역설적인 것 같다. 북한은 자기들의 악한 체제의 유지를 위해 주민들에게 절대로 자유를 주지 않으며 눈과 귀를 강제로 틀어막고 지내고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다.

한편, 경의· 경원 라인과는 달리, 동해중부선 쪽은 일제가 한창 공사를 하다가 패망해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그쪽에는 영업을 하다가 우여곡절을 겪고 파괴되고 없어진 역 같은 건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4/11/16 08:41 2014/11/16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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