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개발과 관련하여 일반적인 항공· 우주덕, 역덕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유명한 사고는 아폴로 1호나 13호, 그리고 챌린저와 컬럼비아 우주왕복선처럼 유인 우주선에서 발생한 인사사고 위주이다. 그게 임팩트가 크다.

하지만 컴퓨터공학 관련 수업에서 종종 언급되는 우주 사고는 저런 것들보다는 덜 알려진 무인 우주선의 오동작· 자폭 사고 두 건이다. 바로 (1) 1999년에 미국이 발사한 화성 기후 탐사 인공위성의 추락 사고와, (2) 1996년 유럽 우주국에서 발사한 정지 궤도 진입용 아리안 5호 로켓의 자폭 사고이다. 이것들은 다른 기계 구조적인 실수· 결함이 아니라, 전적으로 발사체 포함 로켓을 제어하는 소프트웨어의 버그로 인해 발생했기 때문이다.

전자는 서로 다른 팀의 엔지니어들이 같은 물리량에 대한 단위계를 제각각 다르게 가정하고 코딩을 하는 바람에, 계산 결과의 scale이 산으로 가 버려서 위성이 추락한 정말 안습한 사례이다. 흔히 길이(미터 vs 인치)의 착오라고 알려져 있는데, 더 자세한 문헌을 찾아 보니 사실은 단위 시간당 힘(킬로그램힘 vs 파운드)의 착오이다. 뭐 어느 것이든 표준 단위계와 비표준 단위계의 착오인 건 마찬가지이고 우리나라로 치면 제곱미터와 평, 킬로그램과 근 같은 게 헷갈린 것과 동일하다.

이 때문에 무려 9개월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기껏 화성까지 잘 가서 궤도에 진입하려던 위성은 예상보다 고도가 급격히 낮아졌으며, 화성의 뒷면으로 들어가는 예상 시각보다 더 일찍 통신이 끊어졌다가 다시는 통신이 회복되지 못했다. 화성의 대기권에까지 들어가 버린 위성은 대기와의 마찰열로 인해 파괴되고 추락했다.

지구로부터 수천만 km나 떨어져 있는 다른 행성에서 벌어진 사고이다 보니, 사고 장면도 전해지는 게 없다.
사고의 원인이 어처구니없는 실수 때문이었음이 밝혀지자 미국 내부에서도 “우리도 미터법의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라는 여론이 당연히 일었다. 그러나 오랜 관행을 바꾸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한편, 후자의 사고도 사연이 만만찮게 안습하다.
로켓을 제어하는 프로그램의 내부에는 64비트 float 부동소수점을 16비트 int로 형변환을 하는 루틴이 있었다. 알다시피 이건 양 자료형의 표현 범위의 차이가 엄청나다. 단순히 소수점이 잘리는 것 이상으로 수의 표현 가능한 범위 자체가 잘릴 위험이 높다.

다만, 이전의 아리안 4호에서 이게 별 문제가 된 적이 없었던 관계로 이 부분을 맡은 엔지니어는 앞으로도 오버/언더플로우가 발생할 일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성능 향상을 위해 범위 검사를 하는 옵션을 제외하고 프로그램을 빌드해서 우주선에다 탑재했다.

그런데 아리안 4호와 5호는 로켓의 규격이 서로 달랐으며, 일어나지 않으리라 예상했던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완전히 엉뚱하게 형변환된 정수 숫자가 예외 처리도 없이 계산식에 들어가면서 프로그램의 내부 상태는 엉망이 되었으며, 사태 극복을 할 수 없던 컴퓨터 프로그램은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설정되어 있던 자폭 모드로 진입했다. 그래서 아리안 5호 로켓은 발사된 지 겨우 37초 만에 기수를 아래로 숙이면서 추락했다.

중앙 통제실은 싸늘한 초상집 분위기로 변함. 망연자실한 직원들..;; (☞ 동영상 링크)
무인 우주선인 관계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둘 모두 수억 달러급의 손실을 초래했다. 나로 호의 발사 실패하고도 급이 다른 게, 아리안 5호만 해도 나로 호보다 5배 이상 더 무거운(= 크기도 더 큰) 로켓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고스란히 폭죽으로 전락해 버렸으니.

학부 시절에 소프트웨어공학 수업 시간 때 들은 얘기를 먼 훗날 대학원에서 프로그래밍 언어 수업에서 다른 교수로부터 또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전자 시간에는 체계적인 소프트웨어의 테스트/검증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하면서, 후자 시간에는 프로그래밍 언어 차원에서 타입 검증과 예외 처리의 필요성을 얘기하면서 저것들이 타산지석 사례로 소개되었다.

그나저나 아리안 5호에 들어가는 프로그램도 Ada로 작성되었다고 한다.
Ada에는 배열 첨자 범위라든가 형변환 overflow 예외를 감지하는 기능이 있고, 그걸 끄는 옵션도 별도로 존재한다.
C/C++처럼 무작정 프로그래머에게 모든 걸 맡기기보다는 적당히 언어 시스템이 개입해서 안전을 추구하는 것도 많다 보니 Ada가 프로그래밍 언어계에서는 꽤 noble한 대접을 받는가 보다. 하지만 배열 첨자를 마치 함수 호출처럼 ()로 하고, 명칭에 대소문자 구분이 없는 것은 좀 Basic스럽고 요즘 언어가 아닌 구시대 언어 같은 느낌이 든다.

참고로 Ada는 명칭 자체가 여자 이름인 반면, 코볼은 주 설계자가 수학자 출신의 여성 해군 장성이다(그레이스 호퍼).

Posted by 사무엘

2015/02/19 08:36 2015/02/1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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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허국현 2015/02/19 17:34 # M/D Reply Permalink

    overflow, underflow에 대한 예 몇 개 적어 봅니다.

    1. overflow - 강남스타일 마이너스 사건. 전세계 사람들이 다들 열심히 봐 준 덕택에 21억 5천 조금 못되는 시청수를 드디어 넘었고, 강남스타일 때문에 조회수를 전부 다 64비트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2. underflow - 문명의 "옥수수와 다이아를 바꾸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멘트로 유명한 "패왕" 간디가 underflow의 문제였습니다. 문명 초기 버전에서 공격도 수치는 0~255 사이였는데, 간디는 초반 공격도가 1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민주주의 정부를 도입하면 공격도가 2 떨어지는데, 이게 255가 되면서, 이제 순진한 사람에서 패왕으로 돌변하게 됩니다.

    이것들은 사실 수십억 날리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는 버그이기 때문에 그냥 재미삼아 볼만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1. 사무엘 2015/02/20 14:35 # M/D Permalink

      오옷~ 그랬군요. 강남스타일은 후덜덜;;; 자세한 보충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네, 그래도 그건 최소한 물리 세계나 인명, 돈과는 관계가 없는 사이버 세계의 사건이죠.

    2. Lyn 2015/02/22 22:17 # M/D Permalink

      1에서 2를 빼서 255가 되는 현상은 언더플로우가 아닌 오버플로우 입니다.

  2. 김재주 2015/02/22 17:45 # M/D Reply Permalink

    정확히는 강남스타일은 넘기기 전에 바꿨지요. 다만 넘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스레졸드를 넘어섰을 때 상당히 충격적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자바스크립트로 32비트 부호있는 정수 오버플로우가 났을 때의 조회수가 보이게 하는 이스터 에그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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