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설 연휴 기간에 본인은 가족 전체가 동남아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관광이다.
부모님이 퇴직하셨고 본인을 포함한 자녀들은 아직 미혼이니, 지금 같은 시기가 온 가족이 같이 여행을 떠나기에 적절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외국 가는 비행기를 탄 지도 무려 6년이 돼 가고..
더 늦기 전에 여행기를 이제야 간단히 정리해서 올린다.
가족이 한꺼번에 움직인 덕분에, 지금까지 공항 철도나 리무진 버스로만 가던 인천 공항에 난생 처음으로 자가용을 끌고 가 봤다. 운전은 언제나 본인이 도맡아 했고.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공항의 장기 주차장엔 벌써부터 차들로 포화 직전이었는데, 가까스로 빈 자리를 하나 발견해서 차를 세웠다.
그렇게 기대를 품고 공항에 도착했으나, 베트남 항공 소속의 여객기가 정비 상태를 이유로 거의 10시간이 넘게 지연됐다. 관광 일정에 차질이 생기긴 했지만 어차피 이건 크리티컬한 업무를 목적으로 나가는 게 아니고 인천 공항은 안 그래도 내부 시설이 굉장히 좋은 공항이니, 출국 도장을 찍은 상태로 탑승동에서 이렇게 오래 지내고 있는 것도 나름 색다른 경험이었다.
항공사 측에서는 처음엔 기다리는 동안 밥이나 먹으라고 식권 정도를 내 줬으나, 지연이 길어지자 결국은 사람들을 버스에 태우고 도로 여객 터미널 입국장으로 보내서 출국 심사를 취소시키고 인근의 호텔에다 승객들을 보내 줬다. 저녁 식사까지 무료로 제공해 주고..;; 비행기 하나가 지연되는 바람에 승객들도 불편했지만 항공사 역시 손해를 굉장히 많이 봤지 싶다.
덕분에 현지 호텔을 구경하기 전에 운서동 공항 신도시 일대의 호텔부터 먼저 구경하게 됐다. 주변에 아파트 말고 전원 주택들은 전망이 참 좋아 보였다. 뭐, 본인이야 노트북 PC가 있으니 기다리는 동안 프로그램도 짜고 글도 쓰면서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어쨌든, 이런 우여곡절 끝에 밤 비행기를 타고 먼저 베트남 북부의 하노이 공항에 도착했다. '하노이의 탑'의 원조 국가에 왔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여기는 역사적으로 나름 프랑스를 이기고 미국까지 이긴 나라라고 자존심이 쩐다고 한다. 그리고 호치민을 정말 미치도록 숭상한다고.
베트남에서는 해안으로 건너가서 배를 타고 우리나라 제주도나 남해를 뺨치는 다도해와 동굴을 구경하고 맛있는 해물 요리를 먹었다.
하긴, 우리나라도 2, 30년 전에는 1500cc급도 안 되는 소형차인 포니가 택시로 제일 많이 굴러다니곤 했다.
그리고 이보다도 베트남엔 오토바이가 훨씬 더 많이 굴러다닌다.
그리고 호치민 광장을 구경했다. 호치민 자체는 나름 인품을 갖춘 좋은 지도자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기는 어쩔 수 없는 사회/공산주의 국가이더라. 구소련이 망한 지가 언젠데 낫과 망치 깃발 실물을 볼 수가 있었다.
그 뒤 약 1시간 반 동안 1000km남짓을 비행하여 캄보디아의 씨엠 립 공항에 도착했다.
이 공항으로 말할 것 같으면 비행기에서 내린 뒤, 브리지나 셔틀버스가 없이 승객들이 활주로를 직접 걸어서 여객 터미널로 들어가야 하는 공항이다. 철도역으로 치면 선로를 그대로 횡단해야 하는 시골 간이역 정도?
날씨는 베트남보다 더욱 더워져서 견디기 힘들었다. "여기가 위도가 몇 도이고 자전축이 몇 도 기울어져 있지? 서울과 비교했을 때 햇볕을 받는 각도의 cos 값이 얼마나 차이가 나지?" 같은 별 잡생각이 다 들 지경이었다.
여기는 입국 관리 공무원에게 공식적인 비자 발급 비용 외에도 대놓고 1$씩 뇌물을 줘야만 심사대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_=;;
날씨도 더운데 앙코르 와트는 정말 핵심만 초스피드로 보고 돌아왔다. 요게 제일 먼저 만들어진 사원이고, 그야말로 캄보디아의 국기에도 그려져 있을 정도로 상징적인 유적이다. 캄보디아를 먹여 살리는 제1순위 관광 자원인데.. 이것도 처음 발견되었을 때와는 달리 굉장히 많이 파괴된 거라고 하니 참 안습하다.
서양 사람들은 처음엔 이걸 미개한(?) 동남아시아 사람이 만들었을 거라고 믿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로마인의 후손이 만들었다고 우기기엔 표현되어 있는 종교관이 전혀 서양스럽지가 않은걸? -_-
나무 뿌리와 뒤엉킨 이 유적지는 아까 것보다는 더 나중에 만들어졌다. 앙코르 제국도 여러 시즌이 있기 때문에..;;
앙코르 와트 유적지는 굉장히 넓기 때문에 중간 중간엔 툭툭이를 타고 이동했다.
이런 유적지들이 처음에 만들어졌을 때는 얼마나 더 화려하고 웅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관광 도시인 씨엠 립은 6번 국도던가 외국인 관광객들이 주로 다니는 큰길만 벗어나면 곧장 그냥 황무지 깡촌이었다. 카누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서민들이 사는 수상 주택 단지를 구경하기도 했다. 이런 단지가 조성된 것에도 다 사연이 있다고 함.
물은 별로 깊지는 않지만 정말 처참하게 더럽기 때문에 저 물이 몸이나 옷에 묻는 일은 만들지 않는 게 좋다. 저런 데서 사람이 어떻게 1년 365일을 살 수 있나, 생계는 어떻게 꾸리며 위생 문제와 먹고 입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캄보디아라 하면 잊을 수 없는 건 일명 '폴 포트'라는 미치광이가 벌였던 킬링필드 학살극이다. 희생자의 유골을 안치해 놓은 어느 납골당을 방문하고 거기 적혀 있는 옛날 사진과 안내문을 보기도 했다.
어떤 나라가 힘이 없어서 남의 나라의 식민지가 되고 나중에 독립조차도 자기 힘으로 스스로 쟁취한 게 아니라면, 결국은 한 외세가 물러난 뒤에도 다른 외세들의 이념 각축장이 되고 파란만장 기구한 역사가 이어지는 건 남의 일만이 아닌 것 같다. 특히나 그런 와중에 공산주의는 단순히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농민· 노동자(?)뿐만이 아니라 먹물깨나 먹은 지식인도 잘 현혹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결국 실현 불가능한 사상을 강제로 실현하려다 보니 인민들을 온통 바보 노예로 만들어야 하고 딴 생각 잡 생각을 못 하게 극도의 폭력과 공포로 통치를 해야 하고 종교도 말살하고 서로 감시와 밀고를 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도자의 우상화와 절대독재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김 일성이고 호치민이고간에 자기 우상화를 하지 말라고 유언을 했어도 유언이 당연한 듯이 씹히는 이유는.. 그렇게 우상화를 해야만 공산주의 체제가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가 매우 악한 사상인 이유는 "능력껏 벌어서 필요한 만큼/혹은 1/n만치 분배한다"라는 성선설을 제시해 놓고는 정작 그걸 실현하고 운영하는 방법은 철저하게 성악설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필요악이라고 선을 긋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성선설 따위는 없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고찰을 한 사람이라면 반공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으며 반공 때문에 불가피하게 벌어졌던 필요악이나 부조리를 보는 눈이 한결 관대해진다.
이런 것들을 보고 느꼈다.
귀국하고 나니 공항의 주차난은 더욱 심해져서 이중주차에, 도로변 주차까지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다른 가족들이 수하물을 찾는 동안 본인은 먼저 밖으로 나가서 차를 여객 터미널로 가져왔다. 여객 터미널에서 장기 주차장까지는 수백 m 이상 떨어져 있으니까. 차는 깜빡 잊고 블랙박스를 켜 놓은 채로 추위 속에서 닷새 가까이 방치됐지만, 다행히 시동이 잘 걸렸다.
동일한 고속도로 구간에서 불과 1주일쯤 전에 짙은 안개 때문에 106중 추돌 사고가 발생했었지만, 지금은 안개고 뭐고 없이 도로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왔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