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초등학교 때 GWBASIC으로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다. 8비트나 자기 테이프 같은 건 경험하지 못했고 16비트 교육용 PC가 최초로 프로그램을 짜 본 컴퓨터 환경이었다. 중학교 때는 전국 PC 경진대회가 정보 올림피아드로 바뀌는 것을 겪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이 상협 씨던가 1990년대 후반에 <칵테일>이라는 멀티미디어 저작도구를 개발해서 벤처를 차리는 것을 봤다. 지금 그분은 언론에 일체 등장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가 너무 일률적이고 꽉 막혀 있다고는 하지만 그때는 그나마 그 분위기에 많이 편승하는 편이었다. "나이 타파, 학벌 타파,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 간다, 하나에 미쳐야 산다" 이러던 시절이었으며, 본인 역시 그런 풍조의 덕을 봤다.
내가 그때 컴퓨터보다 새마을호를 먼저 많이 타고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Looking for you를 들었으면, 난 컴퓨터 대신 철도를 직업과 전공으로 선택하게 됐을 것이다. 그래도 철도는 컴퓨터 프로그래밍만치 학교 교육과정하고는 완전 딴판인 오덕질을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난 지금과는 꽤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 싶다.
뭐, 지금은 그때에 비해 컴퓨터 프로그래밍 특기자에 대한 거품이 많이 빠졌다. 일류 공대들의 컴공/전산학과의 입결은 2000년대 초반보다 훨씬 더 낮아졌다. 사실은 나조차도 전형적인 IT 엔지니어 형태의 길을 갈 사람이 아닌 건 오래 전부터 스스로 느끼고 있다.
기술은 끊임없이 상향평준화하고 있고 어지간한 건 다 오픈소스다 뭐다 하면서 무료로 풀리고 있는데, 앞으로 컴퓨터 코딩만으로 무슨 창의적인 물건을 더 만들 수 있으며, 먹고 살기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난 그런 건 모르겠고 단지 아무도 관심 안 갖는 한글 입출력 기술 쪽 연구만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칵테일보다도 더 전, 까마득한 옛날에 1980년대에도 언론에 이름을 날렸던 10대 고딩 프로그래머가 국내에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눈길이 간다. 이 글에서는 두 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박 현철 씨.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컴퓨터 하드웨어의 조립만으로는 한계를 느끼고 프로그래밍 공부를 직접 시작했다. 그래서 하드웨어를 직접 제어하여 (보아하니) 일종의 전자식 타자기처럼 한글 문장을 찍어 주는 초간단 한글 워드 프로세서를 개발했다. 무려 1982년의 일이다.
저 때가 얼마나 옛날이냐 하면, 한글 입력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지금의 표준 KS X 5002 두벌식 글자판이 거의 저 무렵에 제정되었다. 그리고 국내 열차 승차권의 전산 발매가 시작된 게 1981년이며, 그것도 한번에 왕창 된 게 아니라 경부선 새마을호부터 시작해서 1984년까지 끌었을 정도이다.
당시 이분을 소개한 TV 동영상을 한번 보시라.
별도의 하드웨어 없이 소프트웨어만으로 화면과 프린터로 한글을 찍는 프로그램이라니!
워드 프로세서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어서 프로그램의 이름이 그냥 '한글 워드 프로세서 버전 1.0'이었다.
이걸로 이분은 겨우 17세의 나이로 전국적으로 매스컴을 타고 일약 스타가 됐다. 굴지의 대기업들 전산실에서는 스카웃에 유학 등 각종 러브콜을 보냈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 당시 비슷한 연배의 천재이던 김 웅용 씨를 신기하게 여겼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분은 그런 지나친 관심을 부담스러워했으며, 당장의 부귀영화보다는 그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개발자' 노선만을 고지식하게 추구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30여 년의 세월이 지나서 50대 중년이 된 이분은 작은 회사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일단은 아직까지도 개발자로 종사하고 계신다. 잠시 미국에도 갔다 오고 창업을 하기도 했지만, 운이 없었는지 사업 수완이 부족했는지 실패하고 빚도 지고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관련 신문 기사: 스티브 잡스를 꿈꿨지만 현실은 참담했다
사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와 함께 동업을 사람들도 그저 그의 유명세와 재능을 이용만 해 먹으려는 먹튀형이 많았다고 한다.
오, 나름 이념 쪽의 소신을 밝힌 것도 있다. "국내의 많은 진보 인사들이 잡스를 존경한다는 사실에 난 충격을 받았다. 잡스는 (빌 게이츠와 같은 급의 세계정복만을 이루지 못했을 뿐) 여러 행적으로 볼 때 악덕 독재 경영자의 전형이다. 그런데도 한쪽에서는 한진 중공업 김 진숙(노동 운동가)을 옹호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스티브 잡스를 맹신하다니, 그건 논리적인 모습이 아니라고 본다."
빌 게이츠만이 절대악이고 더구나 그의 대안이 스티브 잡스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저분의 말을 한번 곱씹어 봤으면 싶다.
그리고 최근에 또 이분의 인터뷰 기사가 인터넷에 소개됐는데..
이분은 그 어린 나이와 그 옛날에 한글 워드 프로세서를 개발한 분답게 굉장한 '한글빠'라는 것이 밝혀졌다.
관련 신문 기사: 한글은 세종대왕이라는 천재가 후손들에게 준 선물
한글빠 + 고딩 나이로 한글 입력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금은 철도 관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니..
난 고딩 때 날개셋 한글 입력기 1.0을 만들었으며 지금은 완전 철덕이다. 처지만 빼면 여러 모로 완전 나의 롤모델이 아닐 수 없다.
꼭 뭐 돈방석 위에 앉아야 하나, 자아 성취를 이뤘다면 저 정도도 충분히 성공한 게 아닌가..;; 엄청 고지식한 것까지도 나랑 완전 똑같다.
그 다음으로 비슷하게 주목받은 분으로는, 고딩 때 최초의 "한글 롤플레잉 게임"인 <신검의 전설>(1987)을 개발한 남 인환 씨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같은 나이의 어느 괴수 고등학생이 Another world를 만들었다지만, 그래도 그보다 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애플 2 어셈블리를 독학한 고등학생이 국내 최초의 상용 게임을 만들어 냈다니 참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글 출력, 그래픽, 기획 등등 다 혼자 했다는데, 학교 공부를 어지간히 땡땡이 치지 않고는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없었지 싶다.
그는 똑같이 애플 2 플랫폼에서 <페르시아의 왕자>를 만든 조던 메크너처럼 영상 종합 예술에 관심이 있었는가 보다. 뭐, 게임 개발자로서는 같이 연계해서 나쁠 게 없는 분야이다. 그는 1990년대 초엔 무명이나마 영화 배우로 잠시 활약하다가 다시 게임 업계로 돌아오고, 지금은 온라인 게임 개발사의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한글 워드 프로세서 같은 '애국심 마케팅 + 생산용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게임을 만들어서 그런지, 이분이 1987년 당시에 막 매스컴을 타고 대기업 스카웃을 받았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 와서는 게임 개발을 한 이분이 돈도 더 많이 벌고 더 잘나가고 있는 듯하다. 역시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SI 같은 품팔이가 아닌 방식으로 돈을 벌려면 게임밖에 답이 없나 싶은 생각이 든다.
...;;
본인 역시 고등학교 나이 때 컴퓨터 프로그램을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 덕분에 전국 대회에서 상도 받고 언론도 타 봤다. 그런 특권을 입은 사람으로서 나 역시 가능한 한 잘됐으면 좋겠고, 그때 입상했던 프로그램이 계속해서 명맥이 유지되고, 내 연구의 뒤를 잇는 후배들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린애가 컴퓨터를 뚝딱 해서 뭐 좀 비범한 걸 만들어 내면 언론에서 금방 '한국의 스티브 잡스, 한국의 빌게이츠' 드립을 치며 온갖 호들갑을 떨고 애를 막 비행기를 태운다. 그러나 그 열기가 좀 가라앉거나 그 애가 약간 실패라도 하면 분위기는 싹 바뀐다. 본인은 개인적으로 그런 냄비근성 관행부터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주목을 받는 아이도 겨우 그런 것에 일희일비 연연하지 않는 근성과 멘탈을 갖출 필요가 있다. 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게 프로그램 개발 공부와는 별개로 필요한 인생 공부라는 느낌이 들었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언론이 스티브 잡스보다 데니스 리치를 더 중요하게 언급해 주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오늘도 8.x 다음 버전의 개발이 계속 진행 중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나에게서 한글 입력기 새 버전을 창조해 낼 자유를 앗아 갈 수는 없다. 정말 극소수 예외가 아닌 한은 대한민국은 아직은 '노오력'하는 사람이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닌가 싶다. 부정적인 예외만 작정하고 찾자면 뭐 나보다 훨씬 천재인데도 시대를 못 타고 나서 인정 못 받고 무진장 불우하게 살다가 간 경우도 엄청 많을 테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