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연혁은 since 1919일까, 1948일까?
이건 안 중근은 의사인가 장군(중장!)인가, 한글은 총 몇 자인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은 백두산인가 한라산인가.. 뭐 그런 급으로 관점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질문이다.

건국절 드립을 치면서 1948을 미는 분들은 잘 알다시피 이 승만 대통령의 건국 공로를 띄워 주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정작 이 승만 정권은 그 당시의 각종 관보에서 since 1919를 적극 밀면서 건국 29주년, 30몇 주년 그런 표기를 썼었다. 이건 뭐 문헌상으로 확인 가능한 팩트이며, 건국절 드립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증거로 제시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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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1919를 강조한 걸까?
그렇게 함으로써 남한, 대한민국만이 임시정부의 이념을 온전히 계승했고 한반도의 유일하게(one and only) 합법적인 UN 승인 정권임을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승만 자신도 한때 임시정부의 대통령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 와중에 북한 따위는? 라이벌은 고사하고 아예 존재감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냥 없는 놈 취급하고 무시했다. 마치, 일본에서 아무리 X랄을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독도에다 군대가 아닌 경찰을 배치하고 있는 것처럼.
그러니 북한은 1919를 뺏긴 대신, 타이타닉 호가 침몰하고 수령님이 탄생하신 해에다가 억지로 정통성을 연결하여 주체 원년이라고 갖다붙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들의 역사에서 유 관순이니 삼일 운동, 임시정부 따위는 아오안이 됐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1948년의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은 막 그렇게까지 대단하게 유세를 떨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승만 정부는 오히려 날짜조차도 티를 안 내려고, 의도적으로 8월 15일 광복절과 동일하게 날짜를 맞췄다! 더 일찍 선포를 하고 하루라도 더 빨리 미군정을 졸업할 수도 있었지만 광복절로 미룬 것이다. 1948년 스타트를 너무 강조하는 건, 남한의 격을 비슷한 시기에 새로 정부를 수립한 북괴의 격과 동등하게 격하할 수도 있다고 봤던 듯하다.

그럼 1919에 비해 1948이 아무 의미가 없느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1919년 건국은 지금 실질적인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냉정하게 비춰 보자면, 명목상 상징에 가까운 선언일 뿐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되기 전인 1945년 이전에, 상하이 망명 신세이던 임시정부가 한반도에 실질적인 통치력을 행사하고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영토나 국민은 그렇다 치더라도 주권이 여전히 없음은 명백하지 않은가.

마치 안 중근이 위대한 일을 했으며 만약 어느 주권 국가의 정규군에서 장교로 복무했다면 장군감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현실에서 그가 실제로 정식 군 장성은 아니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남극이나 달· 화성에다 영토 선언을 해 놨지만 당장 그 땅에서 할 수 있는 건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것에다가도 비유할 수 있다.

비록 해방 자체는 우리 힘이 아니라 국제 정세에 의해 얻은 것이라 치지만, 북괴의 적화통일 야욕을 막고 공산주의와는 단호한 분리를 감행하고, 자유 민주주의 이념으로 당당히 UN 승인 독립 국가 간판을 내건 1948년 레알 스타트도 이제 와서는 존재감이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심판의 선고와 실제 집행의 차이랄까? 특히 요즘은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고 비하하는 온갖 악독하고 해로운 역사관들이 사람 심성을 망쳐 놓는 시기이니 말이다.

비록 그 스타트의 주역들은 겸손해서, 혹은 전략적인 이유가 있어서 그걸 막 내세우지 않고 숨기고 광복절과 오버랩까지 시켰지만, 지금은 그 '건국'의 순간도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뉴라이트네 수꼴이네 일베충이네 하는 별 희한한 비방이 두려워서 진실을 말하는 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요컨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싶으면 1919를 부각시키면 되고, '정체성'을 강조하고 싶으면 1948을 밀면 될 것이다. 이 정도면 애초에 서로 싸울 필요 없이 선호하는 연대를 '취존'(?)해 주면 될 것으로 여겨진다. 덧붙이자면, 그 옛날 3·1 운동 당시에도, 구호의 명칭이 '조선 독립 만세'가 아니라 대한 제국에서 모티브를 딴 '대한 독립 만세'였다는 점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검색을 해 보니 본인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이 이미 꽤 오래 전에 신문에 칼럼을 기고해 둔 게 있다. 그거 링크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맺겠다. 저기서는 정체성 대신 정당성이라는 용어를 썼다.

Posted by 사무엘

2016/01/24 08:31 2016/01/24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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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수 2016/02/02 15:03 # M/D Reply Permalink

    아래 동영상을 참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전체 1시간 20분이지만 건국절 관련 팩트만 확인하는 데에는 앞부분 5분 정도만 보셔도 될 것입니다.

    [진짜 대한민국을 말하다] 3강. 잘생겼다 대한민국 - 기적의 역사를 다시 보다
    https://www.youtube.com/watch?v=KbKCnIrKl18

    1. 사무엘 2016/02/03 00:18 # M/D Permalink

      아하. 좋은 자료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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