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동북 아시아 CJK 중 유일하게 12월 25일 성탄절이 빨간날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딱 1주일 뒤에 있는 1월 1일 신정도 빨간날이다.
지난 2015년은 성탄절과 신정이 금요일이고 그 뒤에 토요일과 일요일이 이어져서 황금 연휴가 두 주 연속으로 있었다. 그 사이 기간을 연차 휴가로 연결하면 직장인도 사실상 겨울방학 기분을 낼 수 있었을 듯하다. 장기간 외국 여행도 가능하다.
그래서 그런지 금요일 오후 당일은 도로도 왕창 막히고 지하철도 혼잡했다. 그러나 연휴 동안은 도로와 지하철이 텅 비어서 한산했다.
그때는 밤 10시에 텔레비전에서 이색적인 프로가 방영되었다.
12월 25일엔 종교 케이블 방송도 아니고 공영 방송인 KBS1에서 주 기철 목사 다큐를 방영했으며, 그 다음날 26일 같은 시각엔 OCN에서 그 이름도 유명한 월트 디즈니 <겨울왕국>을 방영했다.
본인은 전국· 전세계가 Let it go로 열광하던 그 시절에도 <겨울왕국>을 보지 않았다. 너무 바빠서..;; 그 대신 얼마 후 개봉했던 <신이 보낸 사람>은 봤다.
그로부터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 TV 방영이 될 정도가 돼서야 <겨울왕국>을 보게 됐다.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저 노래들이 어느 문맥에서 등장하는지가 궁금하기도 해서 주의 깊게 시청했다.
- 연관 검색: 제목이 '테이큰'처럼 '-en'형 불규칙 동사의 과거분사형 한 단어로 구성되어 있어서 인상이 왠지 좋게 느껴졌다. Frozen. 참고로 난 '테이큰' 광팬이다.;;
- 연관 검색: 극지방 근처 북유럽 하늘 → 오로라 → 안나와 엘사 → 아 맞다 옛날에 "오로라 공주" 이런 거 나오는 만화영화가 있었는데.
검색을 해 보니 80년대 말에 <SF 서유기 스타징가>, 국내에서는 <오로라 공주와 손오공>이라고 소개된 일본 애니가 있었다는 걸 확인했다.
일본은 그렇고 비슷한 시기에 미국산 애니로는 <우주 보안관 장고>가 있었다. 보안관이라니 역시 발상이 미국스럽다..;; 내가 '텍사스'라는 단어를 태어나서 최초로 접한 매체가 저거였다. '캘리포니아'는 건포도 제조지로 처음 접했고.
- 연관 검색: '안나'라는 이름은 포카혼타스에서는 인디언들 언어로 작별 인사 '굿바이'라는 뜻인 게 와 닿는다. 기억하시는지? 만났을 때 인사인 '윙가포'의 반의어이다.
- 잠깐 깨알같이 등장하는 룬 문자로 쓰인 책이 인상적이었다.
- 월트 디즈니는 내가 알기로, 없는 눈을 CG로 만들어 내는 기술이 세계 최정상급이라고 들었다.
하긴, 대전 액션 게임들이 눈 덮인 바닥을 실시간으로 렌더링하는 것도 보면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사람이 그 위로 밟거나 자빠지면 자국이 물론 패인다.
- 엘사는 뭔가 초월적인 자기 능력을 컨트롤을 못 한다는 점에서 가위손 같기도 하며, 섬뜩한 쪽을 더 부각시키면 M에 나오는 주인공 박마리 같기도 하다.
애들의 기억을 지우네 뭐네 하는 게 M스럽게 느껴지며, 가위손의 경우 거기에도 나름 얼음으로 조각품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은 액체 상태의 물 위를 걷긴 했는데, 엘사는 아예 물을 실시간으로 꽁꽁 얼려 버려서 얼음 위를 달려간다. 물이 비열이 얼마나 높은 물질인지를 생각한다면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는데, 어느 게 더 기술 레벨이 높은 건지는 내가 판단을 못 하겠다.
- 안나는 정말 '금사빠'다. "나 미친 소리 좀 해도 돼? 나랑 결혼해 줄래?" /
"나 더 미친 소리 좀 해도 돼? 응! 그럴게! ^^" 우와 정말..;; ㄷㄷㄷㄷ
그 반면 한스는... 라이온 킹 Be prepared 같은 악역 노래 하나 없이 관객까지 뒤통수 칠 정도로 180도 돌변하는 게 디즈니의 관행상 이례적이다.
- 눈사람 올라프는 정말 플라나리아 급의 초재생능력의 소유자이다. 사지가 잘리고 데굴데굴 굴러도 살아 있는데, 그래도 녹으면 죽는 듯하다. 플라나리아도 사지가 1/n로 짤려도 다 살아나지만, 살고 있는 물이 조금만 더러워지면 녹아 버린다. 세포 구조가 아주 단순한 덕분에 외부적인 생존성은 강하지만, 복잡한 물질대사를 할 수 없어서 내부적인 생존성은 쥐약이기 때문임.
- 주인공이 타고 있던 말이 도망가고 겨울에 눈 쌓인 숲 속에서 늑대 떼에게 쫓기는 것, 그리고 악당들이 주인공이 사는 산 속의 성에 쳐들어가는 건.. <미녀와 야수>를 쏙 빼닮았다.
- 영하 수십 도 이하의 혹한에서 쇠붙이 수갑이 깨져 버릴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석(Sn)은 실제로 그렇게 부스러진다. 이것 때문에 남극 탐험을 갔던 영국의 스콧 일행, 그리고 러시아로 원정 갔던 나폴레옹까지 낭패 보고 고생했었다.
- 기온이 올라서 현실에서 주변의 눈이 녹는 장면은 저 영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지저분하다. 곳곳이 축축하고 도로는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고...;;
그리고 군대에서 제설의 트라우마를 경험한 분이라면 애초에 겨울왕국 같은 영화가 결코 낭만적으로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 영어에서 heart는 사람의 장기인 '심장'도 되고 추상적인 '마음'도 되는 중의적인 단어인지라 성경 번역에서도 다루기가 까다롭다. 그래서 결말부에서 이런 대사도 나오는 게 인상적이었다.
한스: 어, 언니가 니 heart를 얼려 버렸잖아? (그런데 너 어떻게 생물학적인 목숨이 붙어 있지?)
안나: 지금 여기서 heart가 얼어붙어 있는 놈은 너뿐이지! (너 완전 인간 말종이야)
- 겨울왕국과 비슷한 분위기의 다른 매체로는 영화 <투모로우>, 이말년 씨리즈 제100화 <얼음탑의 마법사들>, 계몽사 어린이 세계 명작 미국편 <샴라크의 크리스마스>를 참고하면 될 듯하다. 게다가 이말년 씨리즈는 겨울왕국보다 훨씬 먼저 만들어진 작품이다!
- "몇몇 좋은 부분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애들 영화입니다.", "전형적인 디즈니 영화입니다."라고 SNS에서 영화에 대해 본인에게 힌트를 준 분이 있었는데, 본인 역시 이에 적극 공감한다. 결말이 좀 허탈하고 오글거리게 느껴질 수도 있다.
고전 게임 <보글보글> 오락실판의 해피 엔딩에 이런 말이 나오지 않던가. 딱 그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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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