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10월 26일은 안 중근 의사가 중국의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쏘아 쓰러뜨린 날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딱 70년 뒤, 1979년 10월 26일은 박 정희 대통령이 부하인 중앙정보부장 김 재규의 권총에 맞고 절명한 날이다. 10.26 사태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우리나라의 이후 역사를 크게 바꿔 놓은 사건이었다.
박통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1961년부터 시작된 18년간의 군사 독재가 이제 좀 끝이 나는가 싶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애초에 우리가 우리 힘으로 일제로부터 해방된 게 아니었던 것만큼이나 이것도 시민의 힘으로 직접 독재 정권을 끌어내린 게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박 정희가 남긴 뒷자리는 그의 심복이던 전 두환이 냉큼, 날름, 덥석 차지하게 됐다. 어차피 사람만 바뀌었지 또 다른 군사 독재인 건 마찬가지다. 오늘은 그 얘기를 좀 더 늘어놓아 보겠다.
1979년 10월 26일 저녁, 박통은 삽교천 준공식을 마치고서 서울로 돌아와서 피로도 풀 겸 궁정동 안가에서 회식을 했다. 최측근 참모들과 더불어 20대 중반의 어여쁜 여대생, 그리고 비슷한 연배의 잘나가던 여자 가수까지 데려 와서 말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이 회식은 누가 박통에 대해 험담하는 것처럼 그 정도로 사치스럽고 음란방탕한 자리는 아니었다. (저걸 갖고 험담하는 사람들은.. 반대로 여자와 관해서 일체의 난잡한 면모가 없었고, 극도로 근검절약 검소했으며 회식 자리에 기생이 아니라 각자 자기 부인을 데려 오게 한 전직 대통령을 좋아하느냐 하면, 그것도 어차피 아니다.)
박통은 알다시피 수 년 전에 영부인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뒤부터 멘탈이 많이 피폐해졌다. 곁에서 쓴소리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이 없어지면서 자제력을 잃고 예전보다 점점 더 과격 고집불통 폭주끼도 보이기 시작한 건 사실이어 보인다. 박통은 육 영수 여사를 두고 "지금 내 옆에 제일 상대하기 까다로운 골수 야당 총수가 있소" 이런 농을 치기도 한 바 있다.
이 와중에 암살 가해자인 김 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경호실장이던 차 지철과 박통에 대해서 쌓인 앙금이 많은 상태였다. 그러다 무슨 자극을 받았는지 이 패거리들을 오늘 회식 자리에서 해치워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안 그래도 권총까지 챙겨 가서 죽일 기회만 노리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회식 자리에서 차 지철과 박통은 합심해서 김 재규를 코너로 몰아 넣었다. "야당이며 반대파들이 이렇게 정권에 대항하면서 날뛰고 있는데 중정은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좀 더 강하게 짓밟아 버리지 못해?" 이렇게 갈구고 있으니 김 재규가 속이 얼마나 뒤집어졌을까?
결국 김 재규는 차 지철과 박통을 권총으로 쏘고 말았다. 그에게서 지시를 미리 받은 그의 부하들은(박 선호, 박 흥주 등) 총소리를 듣고서 주변의 경호원들을 사살해서 궁정동 안가를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김 재규는 사살 계획 자체는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해서 결국은 성공했다. 그러나 일을 저지른 뒤에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멘붕· 당황· 우왕좌왕 하고 패닉에 빠져 버렸다.
그는 차 지철이 하극상을 벌여서 원조각하를 살해했으며, 자기는 이를 저지하다가 정당방위 차원에서 그를 사살했을 뿐이라고 얼~~마든지 의심 안 사고 조작과 은폐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위장과 조작의 달인인 중앙정보부의 최고 수장이었으니 말이다. 왜 저렇게 하지 않았는지는 정말 제1의 미스터리이다.
그리고 더 따지고 보면, 박통은 암살 안 당했으면 대통령을 도대체 언제까지 해 먹었을지도 궁금해진다. 이건 제2의 미스터리이다. 할 거 다 하고, 1990년대에 수도 이전과 올림픽 유치까지 다 해 놓은 뒤, 7· 80대 나이쯤 됐을 때 물러나겠다고 증언한 기록도 있다고 하는데 출처는 지금 기억이 안 난다. 뭐 어쨌든..
김 재규는 일을 저지른 뒤 상황을 자기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조작하기 위해서는 자기 휘하의 남산 중정으로 갔어야 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보안을 위해서는 군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며, 중정 대신 육본으로 가는 일생일대의 패착을 뒀다. (정확히는 현장에 같이 초청했던 정 승화 육군 참모총장의 제안을 별 생각 없이 따른 것)
그는 누가 각하를 죽였는지 대놓고 거짓말은 차마 못 한 채, 어영부영 나라가 위기에 빠졌다고 계엄드립만 늘어놓다가 군 수뇌부 앞에서 탈탈 털렸다.
원조각하의 죽음이 확인되고 더구나 이게 북한이 아닌 내부 소행임이 확실시되자, 군 내부에서는 평소에도 월권과 하극상을 일삼던 차 지철의 도발을 먼저 의심했다. 그리고 혹시 군 내부에 다른 차 지철 파 쿠데타 세력이 있는지 의심했다. 그러나 입막음을 당부받았던 김 계원 비서실장이 양심의 가책을 견디다 못해 김 재규의 단독 범행(= 중정 말고 군 내부에 다른 배후 세력은 없는)을 정 승화 장군에게 몰래 실토하는 바람에, 김 재규는 그대로 인생 운지하고 말았다.
김 재규의 패착은 북한에서 6·25 전쟁을 조장했던 박 헌영의 패착과 거의 동급 수준이었다.
사건을 제대로 은폐하지 못한 채 저런 허술한 행동에 뜬금없는 기승전 계엄 얘기만 한 걸로 미뤄 보면, 그는 대통령을 살해한 와중에도 일말의 국가 안보 걱정은 최우선으로 한 듯하다. 다만, 무슨 민주화를 위해서 각하를 쐈다는 말은.. 글쎄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사건 당일엔 차 지철에 대한 증오심이 더 컸지, 그런 거창한 이념까지 생각할 겨를은 없었을 것 같다.
갑자기 철권 독재 대통령이 없어지고 경호실장과 정보부장까지 없어지니 나라에는 엄청난 통치 공백이 생겼다.
이 와중에 최 규하는 우리나라 역사상 제일 존재감 없는-_- 대통령으로 기록됐지만, 한편으로 정당 활동이 없이 학자와 관료 테크만 거쳐서 국무총리-대통령 권한대행-대통령에 오른 유일한 사람이다. 덩치 크고 엄청난 학식과 인품의 소유자이고.. 그는 스펙은 참 훌륭했지만 국가 지도자로서는 지지 기반이 너무 없고 우왕좌왕했다.
뭐, 결과적으로는 김 재규의 요청대로 전국에 계엄이 선포됐다. 그리고 10.26 사태의 수사권을 쥔 군부가 사실상 권력의 실세가 됐다. 미우나 고우나 군부 말고 다른 대안이 없으니...
정 승화가 계엄 사령관이 됐고, 그 밑에 육사 동기들 중에 제일 잘나가던 전땅크가 10.26 수사본부장이 됐는데... 그는 이 엄청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절히 활용하여 뒤통수를 쳤다.
"어? 정 승화 저 사람도 그때 현장 근처에 있었다면서 왜 김 재규를 적극적으로 저지하거나 신고하지 않았을까? 혹시 이 사람도 쿠데타 가담 세력 아냐? 김 재규에 대한 체포 명령을 내린 당사자라지만 좀 냄새가 나는데?"
이렇게 어거지를 씌운 게 12.12 군사반란의 본질이다. 군대 인사 발령이 끝나고 10·26 사건에 대한 수사도 끝나 가던 12월 12일이 사고 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였다. 이후 스토리는 다들 아시는 대로...;;
쿠데타를 일으키는 주범이 다른 멀쩡한 사람을 도리어 쿠데타범으로 몰아 가다니.. 역사적으로 정치판 싸움은 이런 식의 암투로 진행된 듯하다. 선배고 후배고, 내 부대 네 부대 구분 따위도 없었다.
제5 공화국 드라마의 명대사인 "야 이 반란군놈의 새X야! ... 내 지금 전차를 몰고 가서 네놈들 머리통을 다 날려 버리겠어!"(장 태완 장군)도 정 승화 참모총장이 반란군에게 억류 당해 있을 때 나온 대사이다.
전대갈· 전땅크, 29만원 아저씨는 독재(?)를 했다지만 전임인 이통, 박통에 비해서야 존재감이 덜하며 우파로부터도 그 전임들만치 긍정적인 평판은 못 받는 전직 대통령이다. 군대를 장악한 뒤에 정권도 장악하고(5· 17 쿠데타) 최 규하 대통령까지 완전히 사임시키기까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는 2016년 1월 현재 일단 생존 중인 최고 오래 된 전직 대통령이다. 몸 관리 잘한 군인들이 대체로 그런 것처럼(1920년대생인 백 선엽 장군도 아직 살아 있다!) 그는 역시 얄밉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전한 저택에서 잘 먹고 잘 살면서 천수를 누리다 갈 것으로 예상된다. "나한테 당해 보지도 않고 말이야" 드립을 칠 정도의 여유와 멘탈갑 센스-_-도 갖추신 지 오래다.. 저 기백과 배짱을 보라. 그러니 하야· 암살과는 차원이 다른 가성비를 얻었다.
전땅크에 대해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아저씨는 권좌에 앉기 위해서 쿠데타를 일으켰지, 일단 대통령이 된 뒤에는 7년 단임만 하고 진짜로 물러났다는 점이다. 집권 도중에 장기 통치하려고 헌법을 뜯어고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1987년의 6월 항쟁도 개헌을 통해 '5년 단임 직선제'라는.. “후임 대통령의 선출 방식”을 민주화하기 위한 시위였지, 전땅크의 장기 집권 자체를 규탄하는 시위가 아니었다.
독재자 타이틀이 있는 전임들의 행적과 비교하면 이렇다.
- 이 승만: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 자체는 적법하게 됐지만, 2대· 3대에 4대까지 연임하는 과정에서 사사오입 개헌에다 야당 정치인 탄압 등 지저분한 짓거리가 끼어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12년 동안 1~3대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이 시기를 헌정 시스템 기수로는 제1 공화국이라고 부른다. 이 사람은 하야 후 명목상 노환으로 자연사하긴 했지만 타지에서 최후를 맞이했으며, 귀국이 좌절되면서 더 건강이 나빠지기도 했다. (쿠데타 ×, 장기 집권 목적 개헌 ○)
- 박 정희: 정말 통 크게 해 먹었다. 집권 때도 그 당시에는 혁명이라고 불린 5· 16 쿠데타를 일으켰고, 집권 중엔 유신 헌법 버프를 자가발동하여 총 무려 18년 가까이 집권했다. 5~9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제3과 제4 공화국을 새로 썼다. 대한민국의 헌정 역사상 전무후무할 것이다. 말년엔 잘 알다시피 부하에게 피격 당했다. (쿠데타 ○, 장기 집권 목적 개헌 ○)
- 그리고 전땅크: 이 승만과는 반대로 집권 과정에서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집권 중에는 다른 뻘짓 없이 임기를 채우고 물러났다. 아주 해피하게 살다가 갈 것으로 예상. (쿠데타 ○, 장기 집권 목적 개헌 ×)
(어느 나라건 독립 운동가 출신 초대 대통령은 독재자로 흑화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어떻게 해서 이룬 독립이고 어떻게 해서 세운 나라인데, 불안해서 선뜻 후임에게 놔 주고 싶지 않은 심정을 본인도 나이가 드니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처음부터 2선만 딱 하고 물러난 미국의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참 이례적인 대인배라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저렇게 XO, OO, OX를 거친 뒤에야 현재의 대통령들은 일관되게 XX가 유지되고 있다.
뭐, 전땅크는 명목상 11, 12대 대통령이지만, 중간에 연임을 해서 두 대가 커버된 건 아니다. 집권 초기에 헌정 시스템이 바뀌었기 때문에 대수가 올라간 것이다. 5공이라고 불리는 이 사람의 실질적인 통치 기간은 12대가 전부인 게 맞다.
박통에서 전땅크로 넘어간 과정을 살펴본 본인의 생각은 이러하다.
10.26 사태는 남한 내부에 정말 심각한 수준의 권력 공백과 혼란을 그것도 너무나 갑작스럽게 야기했다. 이 승만이 하야하던 시절보다도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하다. Windows API에다 비유하자면 ExitProcess와 TerminateProcess의 차이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틈을 노려 북한이 도발을 하지 않은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또한 정치 불안으로 인해 상황이 얼마든지 더 나빠지고 혼세마왕 강림 급의 헬게이트가 열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나마 피해가 저 정도밖에 발생하지 않은 쿠데타(?)로 그럭저럭 내부 수습과 권력 이양이 된 것도 무척 다행이다.
이 시절에 벌어졌던, 일부 반공을 빙자한 인권 유린은 당연히 욕 쳐먹어야 하고 두고두고 까여야 함이 마땅하다. 그 중 최악의 흑역사는 영화를 능가하는 병맛을 자랑하는 수지 킴 간첩 조작 사건이 아닐까 한다. 어휴..;; 성경에서 다윗이 아무리 성군이었다 해도 우리야의 유족에게는 석고대죄해야 할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전땅크 정권도 특정 개인에게 씻을 수 없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게 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땅크를 비롯해 5공 주역들이 일차적으로 근본적으로, 민생을 생각하고 여전히 경제를 일으키는 독재를 했다는 건 감사할 점이다. 5공 시절의 물가 안정과 경제 호황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다.
우리나라가 뭐 언제부터 그렇게 성숙한 민주주의를 시행해 왔다고.. 군부 말고 무슨 탄탄한 대안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들 군인 출신 정치인들이 뭐 잘했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반대로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민주주의를 치명적으로 유린했다는 식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난 개인적으로 신앙의 자유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정치 체계는 높으신 분들이 뭐 어떤 방식으로 다스리든 별 상관 안 한다. 일단 독재자의 개막장 자기우상화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뜻이므로.).
이런 이유로 인해 본인은 "옛날에는 지금처럼 대통령을 5년마다 한 번씩 뽑는 게 아니었다. 군사 독재가 횡행했다. 반공을 빌미로 억울한 사람들이 빨갱이로 몰려서 고초를 겪었다." 이런 말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옛날에는 위생이 안 좋아서 집집마다 머릿니를 잡고 쥐를 잡아서 꼬리를 할당량 채워서 학교에다 제출해야 했다. 자동차는 물론이고 텔레비전도 사치품 중의 사치품이었다. 결핵이나 천연두, 콜레라 같은 후진국형 질병이 횡행했다. 서민이 해외 여행을 하기도 훨씬 더 어려웠다. 사회· 조직 문화가 지금보다 훨씬 더 험악하고 폭력적이었다." 이런 말하고 하등 전혀 다를 바 없다.
과학 기술 없고 돈 없고 못 살던 시절에 무슨 일인들 없었겠는가? CCTV도 유전자 감식도 없고, 공산주의자의 흉악한 이간질에 서로 믿을 수가 없고, 한두 사람의 잘못이나 악행 때문에 집단 전체가 망하게 생겼는데 언제까지나 신사적이고 인간적으로만 사람을 대할 수가 있었겠나? 그땐 어쩔 수 없이 그랬고 일부 부작용도 있었지, 그 시절의 정치 행태가 그~렇게까지 이를 물고 비관할 정도가 아니었다는 게 본인의 지론이다. 원래부터 현실이 시궁창이었지, 뭔가 잘되려는 걸 누가 망쳐 놓은 게 아니라는 거다. "김 구만 대통령 됐으면, 장 준하만 대통령 됐으면 민주주의가 뭐 어떻고, 친일 척결만 잘했으면.." 이런 식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라는 건 정치 제도이고, 정치 제도는 생각보다 아주 상대적인 개념이다. 까놓고 말해 세종대왕 급의 아주 유능한 1인 독재자가 있으면 굳이 n년 주기로 대통령을 힘들게 새로 뽑아야 할 필요가 있겠나.. =_=;; 하다못해 지금도 이 사회 시스템으로는 답이 없으니, 확 다 갈아엎고 강력한 독재자가 좀 나와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물며 그 못살던 시절에는 어떠했겠는가.
대통령 직선제라는 건, 뭐 이뤄낸 건 잘한 일이다만, 이게 무슨 북괴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거나 5천 년 가난을 물리친 것만치 그렇게까지 위대하고 훌륭한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면 독재 미화 발언처럼 들릴지 모르는 말이나, 세계 역사에서 '진짜 악의 악질적인 독재자'가 하는 짓거리를 객관적으로 관찰해 보면 저건 절대로 근거 없는 실드가 아니다. 정말 작정하고 몇천~몇만 명 이상 짓밟아 버리면 민중 항쟁, 시위? 그런 건 애초에 일어나지도 못한다. 북한과 캄보디아를 생각해 보아라. 우리나라가 저 상황에서도 예외적으로 복 받은 거 맞다. 함부로 여기나 북한이나 똑같다는 소리 하지 마라.
10여 년 전에 MBC에서 방영했던 제5 공화국 드라마는 지금 다시 봐도 굉장히 고퀄로 잘 만들어지긴 했다. 실제로는 5공보다 여전히 4공 시절 이야기가 더 많긴 하다만..
또한, 논조가 그냥 일방적으로 전땅크와 신군부를 병크 저지른 것, 잘못한 것만 부각시키는 게 목적이라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정말 객관적으로 그 시절의 역사를 다룰 의도라면 최소한 1983년의 아웅산 테러라든가 이 윤상 군 유괴 사건도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유괴범은 듣거라. 아이가 살면 너도 살고 아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라는 대사를 이 덕화 씨가 읊었으면 재미있지 않았겠는가?
그럼 다음 잡설들을 추가로 늘어놓으면서 글을 맺도록 하겠다.
(1) 난 박통의 최종 계급이 투스타인 걸로 지금까지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전역 직전에 명목상 포스타로 쾌속 진급을 한 뒤에 전역했다. 이건 전땅크, 심지어 후임 노 태우도 마찬가지. 다 예비역 대장이다.
이러니 김 영삼이 자기 정권 코드 네임을 '문민정부'라고 지었겠다 싶다. 군인 출신이 아니라 순수 민간 정치인이 정권다운 정권을 역사상 처음으로 잡았다고 말이다.
몇 달 전에 고인이 된 김 영삼 전대통령은 교회 장로여서 그런지 이 승만에 대해서는 좋게 말한 반면, 직접적으로 자기를 탄압했던 박 정희에 대해서는 늘그막까지도 혹평과 악담 스탠스를 바꾸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박통 말기에 이 정권은 얼마 못 가 무너질 것이고, 그것도 아주 비참하게 무너질 거라고 저주를 내리기도 했다.
보통은 둘 다 좋아하거나 둘 다 싫어하고, 하나만 고르라면 차라리 박 정희를 이 승만보다 더 선호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 영삼과 같은 성향은 좀 흔치 않아 보인다.
(2) 이 승만, 장 면, 윤 보선, 최 규하, 노 태우는 다 영어를 작살나게 잘한 정치인이었다. 학구파 기질이 있었다. 거기에다 지금 레이디 가카도 영어를 포함해 외국어에 일가견이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에 반해 전땅크는 공부 타입은 아니고 체력, 리더십, 인맥 연줄, 사회성처럼 사업가나 정치인에게 어쩌면 더 필요한 아날로그스러운 자질이 충만했던 타입이다.
(3) 전땅크는.. 좀 얄미운 구석은 있다만, 그래도 대통령으로서 인사 배치와 리더십은 나쁘지 않았다. 군인이던 시절엔 1.21 사태 때 큰 전공 세우고 나중에 그의 주도하에 제3 땅굴까지 발견했다. 그리고 아까도 잠시 언급했지만, 집권 중에 이 윤상 군 유괴 사건을 잘 해결하고 사형 집행 잘해서 사회 정의를 실현한 것도 잘한 점이다.
잘한 건 잘한 거다만.. 돈 많은 거 알고 있다, 선고받은 뇌물 추징금은 빨랑 뱉어라. -_-;;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