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얘기, 프로그래밍 얘기, 철도 얘기로 가득하던 내 블로그가 어째 여행 블로그처럼 바뀌어 간다. 그렇다고 무슨 외국처럼 거창한 델 가는 것도 아닌데..;;
(1) 그린벨트 안도 아니고, (2) 청계천처럼 하천 근처가 아니고, 경주나 서울 올림픽 공원 일대처럼 (3) 유물 유적이 있는 것도 아닌 대도시 도심 한복판에 갑자기 녹지 공원이 있으면, 본인은 어떻게 해서 여기는 개발되지 않고 공원이 들어설 수 있었는지 궁금증을 느낀다.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변의 건물들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가 빠져나갔는데, 그 부지가 또 개발되지 않고 공원으로 보존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전에는 서대전네거리 역 교차로의 한 귀퉁이에 서대전 시민 공원이 있다. 거기는 놀랍게도 부지의 절반 이상이 사유지라고 한다. 물론 1970년대 더 옛날에는 아예 군부대가 있었는데 이전하면서 사유지가 된 것임. 지주 되시는 분이 그래도 건물 한두 채쯤은 너끈히 지어서 임대료만으로 먹고 살 재산권을 많이 희생한 덕분에 공원이 유지되어 온 것일 텐데.. (게다가 위치도 최강 역세권이다!) 2010년대 중반이 돼서야 국가에서 공원 부지를 정식으로 매입하려는 중이라고 들었다.
거기 말고 서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공원은 여의도 공원이 아닐까 싶다. 얘는 처음엔 황무지였다가 일제 강점기 때 여의도 공항 활주로로 쓰였고, 나중에 김포와 서울 공항이 생긴 뒤엔 여의도 광장을 거쳐 공원으로 탈바꿈했음을 모르는 분이 별로 없을 것이다.
도심은 아니지만 월드컵 경기장 인근의 하늘 공원은 원래 난지도였다가 지금처럼 환골탈태한 것이다.
서울 보라매 공원은 옛날에 공군 사관학교가 있던 곳이었다. 1985년이니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에 이전한 셈이며 그나마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역명 덕분에 '보라매'라는 이름이 그럭저럭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같은 7호선이 지나는 광진구의 서울 어린이 대공원은 원래 처음엔 골프장이 있었는데 서울시에서 매입하여 박통 시절에 유원지를 만든 것이다.
인서울 영역에 골프장이 있었다는 게 실감이 안 간다. 더구나 골프가 지금보다 훨씬 더 사치스러운 스포츠였을 시절에 말이다.
한강 인근의 선유도 공원은 원래 수돗물 정수장이 있던 곳이 공원으로 바뀐 것이다. 수풀과 시멘트 구조물이 적절히 섞여 있다 보니 본인은 이 공원이 현실에서 툼 레이더 맵 실사판과 가장 닮은 장소라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 왔다. 얘 역시 서울 지하철 9호선에 동일 이름의 지하철역이 생긴 것 덕을 봤다.
자, 그리고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2010년대에는 전철역 덕분에 이름이 알려진 공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서울숲(분당선)이다. 원래 서울숲에서 가장 가까운 역은 2호선 '뚝섬'이었으나(7호선 '뚝섬유원지'가 아님) 더 가까운 곳에 역이 추가로 생겼다.
먼 옛날엔 서울숲 부지에 골프장과 경마장이 있었다고 한다. '동대문 운동장'만큼이나 아련한 추억이 아닐 수 없다. 골프장은 모르겠다만 경마장은 역시 30년 전쯤에 이미 과천으로 이전했다.
중랑천과 한강이 합류하고 강변북로와 동부 간선 도로가 만나며 성수대교 북단이 근처에 있는 이 금싸라기 땅에 처음에는 물론 아파트를 지으려는 계획도 나왔고 심지어 야구 돔구장을 지으려는 계획도 논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간에 IMF도 거치고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여기는 공원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응봉산에 올라서 서울숲을 내려다보고 나니 여기 가고 싶은 생각이 더 들었다. 그래서 등산까지 갈 수는 없을 정도로 바쁠 때는 산책으로 운동을 대신하려고 서울숲을 한번 찾아가 봤다.
서울숲 안은 나무들이 우거진 곳, 넓은 공터, 연못이 모두 갖춰져 있고 경치가 괜찮았다.
참고로 서울숲 일대의 부지는 중앙에 있는 성수대교 북단 교차로의 좌우 상하 2*2 격자로 나뉘는 형태이다.
(A B)
(C D)
서울숲의 입구가 있으며, 가장 넓고 지하철역과 가장 가깝기도 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서울숲 공원 역할을 하는 구역은 B이다. 그리고 대각선 건너편에 있는 C는 생태 공원이다. 꽃사슴을 구경할 수 있다.
D에는 곤충 식물원과 수도 박물관이 있지만, 한편으로 대부분의 부지가 상하수도 관련 시설이어서 보안 봉인이 돼 있기도 하다. 차도를 건너면 성수대교 붕괴 사고 희생자 위령탑으로도 갈 수 있다고 하는데 난 이쪽은 제대로 못 가 봤다.
끝으로 A는 서울숲이 아니며 삼표 산업이라는 기업의 공장이다. 당인리 발전소와 더불어 강변북로를 달리면서 볼 수 있는 공장 시설 두 곳 중 하나이다. 아마 이 공장은 언젠가 외곽으로 이전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B~D는 자동차 도로 밑으로 길이 이어져 서로 통한다. 그렇기 때문에 건너가기 위해서 차도를 횡단한다거나 하지는 않아도 된다.
생태 공원(C 구역) 쪽으로 가 봤다. 사슴을 방목하는 영역은 다 울타리와 철망이 둘러져 있어서 사람이 드나들 수 없게 돼 있었다. 산책 가능한 영역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의 원래 계획은 D 구역도 한 바퀴 돌고 다시 B 쪽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생태 공원에는 강변북로를 횡단하여 한강 공원으로 가는 다리가 놓여 있었다. 둘이 서로 이렇게 연결된 것이다. 그것도 자전거도 다닐 수 있게 계단이 아니라 경사로 형태로 말이다.
이에 본인은 계획을 변경하여 그리로 나갔다. 매주 1회 이상 이 다리 아래를 자동차로 지나 왔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이 다리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여기는 한강이다. 저 멀리 동호대교와 옥수 역이 보인다. 본인은 옥수가 아니라 중랑천 + 응봉산 방면으로 갔다.
응봉산과 그 아래를 철길을 달리는 ITX-청춘 열차이다. 그 뒤 귀가하는 길은 응봉산을 오른 뒤에 돌아가는 길과 같다. 저기서 서울숲으로 바로 가는 길이 이렇다는 걸 처음 알았다. 서울에서 의외로 가까운 곳에 이런 숲 컨셉의 공원과 강변이 있으니 이 정도면 답사할 가치가 있고 블로그에 이렇게 사진까지 올릴 가치가 있다.
여담을 보태자면, 강남에는 양재 시민의 숲이라고 숲을 표방하는 공원이 있다. 이 역시 2011년에 개통한 신분당선의 역명에도 들어갔으니 2012년에 개통한 분당선 선릉 이북 구간과 시기적으로 비슷한 구석이 있다. 본인 역시 예전에 거길 방문해서 각종 위령비 사진을 찍었고 근처의 윤 봉길 의사 기념관도 들렀었다.
다만 이 공원의 경우 그냥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개최를 기념하여 조성되었으며, 더 과거에 부지에 무슨 사연이 있었다거나 하지는 않아 보인다.
끝으로, 분당선 서울숲 역은 광역전철 분당선이 압구정로데오 이후로 한강 이북으로 진입한 뒤 만나는 첫 역이다. 강은 서울 지하철 5호선처럼 하저터널로 건너고 말이다. 서울숲 바로 다음은 종점인 왕십리이다. 뚝섬 역과는 500미터 남짓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분당선 서울숲-왕십리와 야탑-모란 사이에는 절연 구간이 있다. 직-교류 절연이 아니라 같은 교류-교류 절연이다. 그래서 남영-서울역만치 유명하고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일부 전동차의 일부 칸에서는 여기를 지날 때 객실 형광등이 아주 잠깐 꺼졌다가 다시 켜지는 걸 볼 수 있다. 서울숲 하니까 역시 철도와 관련하여 이런 게 떠올랐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