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 칼리스타(1992)와 기아 엘란(1996).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그 옛날에 저런 자동차도 팔았나 싶은데, 위의 두 자동차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 본인은 직접 본 경험이 전무하다. (초딩 시절에 대우 임페리얼조차 길거리에서 본 적이 있건만, 저것들은 정말 듣보잡. 그나마 칼리스타는 자동차 잡지를 통해서 접하긴 했었다.)
  • 나름 2인승 스포츠카 컨셉으로 영국제 자동차를 그대로 들여 와서 생산했다.
  • 생소한 컨셉에다 너무 비싼 가격으로 인해 망했음. (수제 생산 크리)

굳이 나 말고도 자동차 매니아들이라면 국내의 자동차 역사에서 두 차량이 갖는 유사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1. 기아 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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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자동차는 1980년대 말에 외제차 수입 규제가 완화되자마자 3000cc급 대형 고급차 컨셉으로 머큐리 세이블이라는 미제 승용차를 수입 판매한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쯤 전인 1970년대 말에 현대 자동차에서 최고급차 컨셉으로 포드 그라나다를 포드 사 CI조차 안 걷어내고 그대로 판매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머큐리 세이블은 무엇보다도 도어에 번호 기반 자물쇠가 장착돼 있는 게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그 뒤로 기아 자동차는 스포츠카를 만들 결심을 하게 되고, 영국 로터스 사의 스포츠카인 엘란을 생산 라인을 인수해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건 외제차를 하나도 안 고치고 100% 똑같이 만들어 판 건 아니며 엔진, 서스펜션, 내장재 등 여러 곳에 변형과 로컬라이제이션이 가해졌다.

현대 자동차에서 1990년대 초에 '엘란트라'라는 준중형 승용차를 내놓았는데, 그때는 얘를 수출할 때 이 '엘란'과의 이름 충돌을 의식해서 '엘'은 빼고 '란트라'라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이름으로 수출해야 했다.
하지만 나중에 기아 자동차가 '엘란'에 대한 모든 권리를 인수하고 그 기아 자동차를 현대 그룹이 꿀꺽 해 버리니, 그때부터는 이름 충돌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어졌다. 이제 '엘란트라'는 후속 모델 아반떼의 수출명으로도 당당히 쓰이고 있으니 참 세상 많이 변했다.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의 중간 체급이라고 전륜구동 준대형 '아슬란'을 만든 건 망한 듯하지만, 그래도 엘란트라처럼 엑셀과 쏘나타 사이의 준중형 체급은 굉장한 선견지명으로 판명됐으며 오늘날까지도 잘나가는 중이다. 자동차 엔진 기술을 개발하는 것 자체뿐만 아니라 이렇게 평균적인 소비자들의 수요 심리를 잘 읽는 것도 자동차 회사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능력일 것이다.

엘란은 범퍼 위로 라디에이터 그릴이 없는 게 인상적이다. 이게 그 시절에 스포티한 디자인 유행이었던 것 같다. 대우 에스페로와 현대 아반떼 초기형 말고는 이런 디자인을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엘란은 20년 전 물가로 3천만 원이 넘는 비싼 가격이었으며, 전국적으로 1055대 남짓만 생산된 뒤 단종됐다. 이것도 나중엔 차를 좀 팔려고 제작사에서 원가 미만인 2천만 원대 후반 가격으로 손해를 감수하고 팔기도 해서 얻은 실적이었다. 참고로 대우 임페리얼이 최종 생산량이 863대였다.

2. 쌍용 칼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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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란이 미래지향적이라면 칼리스타는 딱 봐도 복고풍의 컨셉이다. 원 제작사는 영국의 팬서(panther. 만화 주인공 핑크 팬더도 곰이 아니라 표범임) 웨스트윈드 사로, 이를 쌍용 자동차에서 인수하여 SUV 말고 쌍용 최초의 승용차 명목으로 국내에서 생산했다. 영국 본토에서는 동일 모델의 차명이 '리마'(Lima)였다고 하는데, 칼리스타는 도대체 무슨 어원이고 누가 지은 이름인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옛날 자동차의 주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휀다(바퀴 덮개)가 저렇게 돌출돼 있는 것이다. 외국의 차덕들도 서양이 아닌 웬 동북아시아 대한민국에서 이런 차가 생산되다는 것에 관심을 가질 정도였다고 하지만, 딱 봐도 이런 자동차는.. 매니아들 말고는 일반 서민들에게 많이 팔리게 생기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대기업 총수 같은 부자들이 그랜저 대신 이런 차를 굴리지는 않을 테고.

스포츠카를 표방하고 있어서 엔진의 성능은 나쁘지 않았으나, 자동화 대량 생산을 못 한 탓에 차 가격은 1990년대 초 물가로 역시 무려 3천만 원을 넘어섰다.
결국 앞의 엘란만치도 못 팔았다. 연 판매량은 10~20대에 불과했으며, 1994년까지 누적 판매 100대를 채 못 채우고 단종됐다(78대). 그것들도 다 국내에서 굴러다닌 게 아니라 수출 처분되기도 했다.

칼리스타 이후로도 이런 복고풍 로드스터 승용차는 국내에 현재까지 다시 등장한 적이 없다. 엘란보다도 먼저 만들어진 차인데 굉장히 파격적인 시도였던 것 같다. 엘란이 등장한 때는 칼리스타가 이미 단종된 뒤였다.

* 이 외에 대우 르망 이름셔(Irmscher, 1991)도 생각난다. 이건 완전히 새로운 차종은 아니고 그 당시에 생산되던 대우 르망을 '이름셔'라는 외국 회사에서 스포츠형으로 튜닝해서 고급화하고 성능을 올려 놓은 것이다.
르망은 분명 엑셀· 프라이드 같은 소형차 체급인데 이름셔 에디션(?)은 엔진 배기량부터가 중형차급 2000cc로 버프되어서 엄청난 성능을 자랑했으며, 그 외에 다른 내외장제도 더 고급스러운 것으로 바뀌었다.

보통 국내에서는 세금 규제를 피하려고 이미 있는 외국 원판 차량도 배기량을 줄여서 내놓곤 한다. 옛날에 그라나다도 그랬고 대우 에스페로도 준중형 차급에 비해 너무 작은 1500cc 엔진을 얹은 게 화근이어서 빌빌댔다. 이름셔는 그와는 정반대 케이스였다.
하지만 이름셔 역시 인지도 부족과 너무 비싼 가격 때문에 별로 인기를 못 얻었다. 1000몇백만 원에 달했는데, 그 돈 쓸 거면 아예 대놓고 중형차를 사는 게 나았기 때문일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23 19:32 2016/07/2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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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yn 2016/07/27 00:05 # M/D Reply Permalink

    칼리스타라 하니 https://namu.wiki/w/%EC%B9%BC%EB%A6%AC%EC%8A%A4%ED%83%80 얘밖에 생각 안나네요 ㅎㄷㄷ

    1. 사무엘 2016/07/27 00:37 # M/D Permalink

      저는 반대로 국산차 칼리스타는 초딩 시절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게임 캐릭터 칼리스타가 생소하네요..! ㅎㅎ
      '엑셀'도 옛날에는 자동차 이름이 더 우세하고 스프레드시트로는 로터스 1-2-3이 주류였는데, 지금은 이름의 의미 우선순위가 완전히 바뀌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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