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서 관광을 마친 뒤엔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동부의 최북단을 구경하기 위해 고성으로 향했다. 강릉 이북으로는 100km 가까이나 더 이동할 수 있을 정도이니 서부의 북방 한계와는 차이가 너무 크다. (참고로 정동진이 서울의 도봉산-장암뻘과 비슷한 위도이고, 양양 국제 공항이 있는 곳이 38선과 거의 같은 위도이다. 하지만 동부는 그 위로도 속초에 고성까지 계속 북상 가능하다.)

양양까지는 동해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갔다. 길 곧고 차가 거의 없는 덕분에 시속 140~150까지도 밟을 수 있었다. 하조대 IC 이북부터는 고속도로도 없으니 거기부터는 얄짤없이 국도 7호선으로 콜. 항구와 해수욕장을 나란히 끼고 달릴 때는 당장 차를 세우고 물에 들어가고 싶었다.

참고로, 내가 방문했을 때 기준으로 여기 국도 7호선은 옛 도로를 새 도로로 교체· 개량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영동 고속도로는 올림픽 준비 때문이고 여기는 그냥 너무 후져서 갈아엎는 듯하다. 어디는 내비의 도로 선형과 실제 도로 선형이 전혀 일치하지 않아서 화진포로 들어갈 때도 한참을 헤맸다. 게다가 여기는 너무 북쪽이기 때문에 인터넷 지도들도 항공 사진이나 거리뷰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아서 길을 더욱 익히기 힘들다는 걸 감안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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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1시간 반이 넘게 달려서 드디어 화진포에 도착했다. 바다, 그것도 해수욕장 근처에 저렇게 호수가 있다니? 거기에다 숲과 나무가 드리워져 있으니 경치가 강릉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옛 정치인들이 교통도 왕창 불편한데 굳이 여기에까지 와서 별장을 괜히 만든 게 아니었겠다 싶었다. (뭐, 나중에 5공 시절엔 전땅크 아저씨가 청남대라는 대통령 별장을 청주시 외곽에 또 만들기도 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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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김 일성 별장'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화진포의 성'부터 찾아갔다. 숲 속 언덕에 지어진 저 위치부터가 평범하지 않아 보인다.
화진포의 성은 그 자체는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에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지어졌다. 그러나 해방 후에 여기 일대가 잠시 북한 치하로 들어가고, 김 일성 일가가 여기에 와서 놀았던 기록과 사진이 전해지기 때문에 김 일성 별장이라는 이름도 덤으로 붙었다. 북한 정권이 저걸 직접 건설한 건 아니다. 지금 건물은 원래 건물의 모양과 구조를 본따서 다시 지어진 거라고 한다.

안에는 옛날 응접실의 복원 모형이 있고, 옥상에는 전망대가 있다. 아, (1) 이 화진포의 성과 (2) 나중에 소개할 이 승만 별장, 그리고 여기에서 별도로 소개하지는 않은 (3) 화진포 생태 박물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화진포 유원지 통합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이것도 한 곳에서 하나만 사면 당일 동안 세 곳에서 모두 통용 가능하기 때문에 강릉의 통일 공원 티켓과 역할이 비슷하다. 다들 걸어서 가기에는 몇백 m 정도 거리의 압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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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전망대에서 해수욕장과 호수를 내려다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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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화진포의 성 근처의 평지에는 '이 기붕 부통령의 별장'도 있다. 이건 규모도 작으며 티켓 없이 누구나 간단히 들어갔다가 보고 나올 수 있다. 주변엔 잔디밭과 나무, 벤치가 잘 조성돼 있다. 얘 역시 의외로 건물 자체는 일제 강점기 때 서양 선교사들이 지은 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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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만 대통령 별장은 해수욕장과는 약간 떨어진 곳에 있다. 하지만 이정표가 잘 갖춰져 있으니 현장에서 각 별장들을 찾아가는 건 별 어려움이 없다. 이 별장은 6· 25 전쟁이 끝나고 남한이 고성군 일대를 확실하게 수복한 뒤인 1950년대에 새로 만들어졌다.
맑은 동해 바다에다 호수에 이런 유적지까지 곁들어져 있다니 화진포는 참 특별한 해수욕장인 것 같다.

화진포에서 5km 정도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우리나라 최북단 주유소가 아닌가 생각되는 '통일전망대 주유소'가 나오고, 길 건너편엔 통일 전망대 출입 신고소가 나온다. 여기에 들러서 대표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통일 전망대 입장료를 내면 민통선 출입증이 나온다.

출입증을 받은 뒤엔 지금까지 지나왔던 좁고 꼬불꼬불한 길로 도로 나오는 게 아니라, 4차선+중앙분리대가 갖춰진 국도 7호선 새 도로로 빠져나가서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민통선 진입을 위해서 누구 통제를 받는다거나, 일정 시각 간격으로 다같이 출발한다거나 하는 건 없음. 개인 행동 가능하다.

민통선으로 들어가니, 내륙 방면으로는 서쪽 경기도 파주의 도라산 역처럼 이곳 역시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제진 역과 금강산 관광 관련(지금은 파토 난) 출입경 사무소 등이 있었다. 하지만 통일 전망대로 가려면 오른쪽 해변 방면으로 가야 했다.
파주는 서울과 가깝고 워낙 관광객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개인이 자차를 직접 끌고 민통선에 들어가는 건 없다. 그 대신 버스 타고 다니는 패키지 관광이 발달해 있다. 하지만 여기는 오지여서 그런지 관광이 개인 방문 중심으로 운영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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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전망대의 주차장 앞마당에 도달하니 날 맞이한 것은 다름아닌 3010호 디젤 기관차를 개조해서 만든 카페였다. 철원 민통선 안의 월정리 역 근처에는 4001호 디젤 기관차가 있더니 이건 또 웬 떡이냐? 나 이런 거 완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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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마당에서 내려 언덕을 또 오르면 드디어 통일 전망대 건물에 도착한다.
여기는 듣자하니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망대 중에 가장 먼저 생겨서 이름도 굉장히 흔한 보통명사스러운 '통일' 전망대라고 한다. 또한 전국의 전망대들 중 일단은 가장 북쪽에 있다. '일단은'이라는 단서를 붙인 이유는 잠시 후에 다시 설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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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이것이 통일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북쪽의 풍경이다. 바다에, 모래사장에, 산에, 동해선 철도까지..! 경치 한번 완전 죽인다.
관광지로 손색이 없는 해수욕장이 보안상의 이유 때문에 아무에게도 개방될 수 없는 장소로 봉인되었다는 게 안타깝다. 서부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날씨가 더 맑았으면 저 멀리 금강산까지 보였을 거라고 한다.

근처에는 관광객들로 하여금 부처님과 성모님(?)에게 빌면서 남북 통일을 염원해 보라는 배려인지 하얀 종교 형상들이 있었고, 또 6· 25 전쟁 체험 전시관도 있었는데, 사진 첨부는 생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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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 화면 인증.
통일 전망대는 비록 민통선 안에 있지만 내비 지도에 표시돼 있으며, 게다가 전망대 내부에서도 "북쪽으로 사진 촬영 금지" 같은 제약과 통제가 전혀 없었다. 주변에 민감한 군사 시설이 없는지 분위기가 훨씬 덜 삼엄했다. 그 이유를 본인은 나중에야 알게 됐다.

통일 전망대는 지리적으로 굉장히 북쪽에 있으며 북한 영토를 볼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군사분계선과는 여전히 수 km 이상 멀리 떨어져 있다. 이 전망대는 "북한과 가장 가까이 접해 있는 전망대"는 아니다. 덜 위험하고 군에서 딱히 북한군의 동태를 파악하는 용도로 사용하지도 않기 때문에 분위기가 널널했던 것이다. 여기 주변엔 단순 철조망 이상으로 GOP나 해안 경계 초소 같은 건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우리나라가 동쪽 해안은 극단적으로 많이 북진해서 땅을 수복한 덕분에 공간이 이렇게 많이 생겼다.

여기 말고 진짜 군사 시설로도 활용되는 '위험한' 전망대는 '금강산 전망대'라고 따로 있다. 일명 717 OP. 얘는 통일 전망대보다 더 내륙(서쪽)에 있고 위도도 훨씬 더 북쪽이어서 남방 한계선 철책이 훤히 보이고 말 그대로 금강산도 더 가까이 보인다. 그 앞의 북한 땅에 있는 '감호'라는 호수도 '통일'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지만 '금강산'에서는 보인다. 아래 사진을 보면서 차이점을 참고하시라. (저건 내가 찍은 거 아니고 출처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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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전망대는 개인이 '신고'만 한 뒤 불쑥 방문할 수 없으며, 단체가 군부대로부터 사전 '허락'을 받은 뒤에만 방문 가능하다고 한다. 사실, 본인이 나중에 방문한 을지 전망대도 한때는 이런 '단체+허가' 형태였으나, 비교적 최근에 제약이 완화된 것이다. 금강 전망대도 민간 개인 단위로 개방해 달라는 요구가 없지는 않으나, 금방 성사될 것 같지는 않다.

뭐, 본인은 이렇게 통일 전망대의 관람을 마쳤다. 근처에 DMZ 박물관도 있었지만 월요일에 찾아갔던 관계로 휴관이어서 방문하지 못했다.
일과 시간 동안 계획했던 관광 코스들은 답사가 모두 끝났다. 시각은 오후 3시 반 무렵이었다. 이제 다시 남쪽으로 돌아오면서 동해 북단에 있는 해수욕장들을 둘러봤다.

최북단의 해수욕장은 명파 해수욕장이다. 크기는 생각보다 아담하다. 그런데 피서철이 끝나고 해수욕장이 폐장한 뒤엔 여기는 철책이 둘러지고 민간인의 출입이 완전히 금지돼 있었다. 역시나... 그 아래의 해수욕장들도 그러했다.
그러니 철책이 없고 1년 내내 적어도 낮에는 출입 가능한 최북단 해수욕장은 화진포였다. 그래서 본인 역시 아까 관광을 했던 화진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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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바다는 보기만 해도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비록 해수욕장이 폐장해 있었지만 날씨가 습하고 후덥지근했으며, 본인은 이미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기온과 수온은 물놀이를 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상태였다. 해변을 걷고 다리 정도는 바닷물에 담그는 관광객도 몇 명 있었다.
본인 역시 여기까지 왔는데 동해 바닷물을 적셔야겠다는 생각으로 물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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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봐도 모래사장의 경사가 서해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몸을 때리는 파도가 굉장히 강했다.
안전요원도 없는 상태에서 뒤로(바다 쪽으로) 밀려가는 파도에 잘못 휩쓸리면 큰일 나겠다 싶어서 여기서는 바닷가에서 몇 발짝밖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해변에서 거의 2~300미터 가까이 진행했던 지난번 서해 해수욕장과는 완전 비교된다.
그런데 거센 파도 때문에 해변엔 물이 온통 흙탕물이어서 동해 바다가 서해 바다보다 딱히 깨끗한지는 제대로 실감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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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북에게도 바다 구경을 시켜 주지 않으면 그건 맥북에 대한 실례이고.

이렇게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날이 점점 어두워졌다.
해수욕장 근처에는 식사를 할 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에 더 남쪽의 거진항 근처의 마을로 갔다. 거기 식당에서 회 요리를 먹고 씻고 전자기기들을 충전했다.
완전히 밤이 된 뒤에는 해변 도로의 공터에다 차를 세운 뒤, 파도 소리를 듣고 바닷바람을 쐬면서 노숙과 차박을 했다. 돗자리를 깔고 담요를 덮고 손전등을 켜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3편에서 계속됨)

Posted by 사무엘

2016/09/18 08:31 2016/09/1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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