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풍양속에 어긋나는 다소 민망한 주제 이야기를 이것저것 나열하고자 한다. 작년과 재작년에도 이 주제와 관련된 글을 1년에 하나씩은 쓴 적이 있었는데.. 관심 있으신 분은 '투신'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 보면 나온다.

1.
2012년과 2013년에는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하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깔려 죽는 사고가 한 건씩 있었다. 물론 피해자만 죽은 건 아니고 가해자도 나란히 사망. 자동차 위에라도 떨어졌으면 보통은 살던데 겨우 사람은 자신이 충격을 받고 깔렸다고 해서 투신 자살 가해자를 살릴 정도로 실드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동일한 패턴의 사고가 그로부터 3년쯤 뒤인 2016년에 또 반복됐다.
5월 31일 저녁, 광주 북구 오치동에서는 퇴근한 남편, 부인, 6살짜리 아들 이렇게 일가족이 아파트 단지 입구로 들어가는 중이었는데, 처지를 비관하여 동일 아파트의 20층에서 뛰어내린 한 20대 청년이 세 명 중 가장인 남편을 덮쳤다.
뉴스 보도에 따르면 뛰어내린 그 사람은 현장에서 즉사했고, 깔린 40대 남성은 치명상을 입고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약 3시간 만에 숨졌다고 한다.

누군가가 투신 자살한 것은 '사건'이지만, 투신 자살자에게 다른 사람이 깔려 죽은 건 '사고'이다.
안타까운 음주· 졸음운전 교통사고가 해마다 반복되는 것처럼, 이런 사고도 교통사고만치 잦지는 않지만 어째 이렇게 반복되나 모르겠다.

가해자는 공시를 준비 중인 공무원 지망생이었다고 한다. 허나, 잘 알다시피 살인적인 경쟁률을 자랑하는 그 시험에서 호락호락 좋은 결과가 나올 리는 없었을 것이고, 이 때문에 열등감, 무력감, 비관의식 등에 사로잡혀 극단적인 선택을 했으리라 여겨진다. 자살 말고 다른 극단적인 선택을 한 어떤 사람은 아예 정부 청사에 침입해 들어가서 어설프게 성적을 조작하려 하기도 했다. 어느 경우든 다 멘탈이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그런데 저 사람의 경우, 자기가 죽으면서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워너비에 속하는 다른 '공무원'을 같이 죽게 했으니 이 아이러니를 말로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가장은 전남 소재의 어느 도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었기 때문이다(집은 광주). 부인 되시는 분은 그냥 남편도 아니고 최고로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던 남편을 하루아침에 잃은 충격과 대미지가 차마 감당 가능한 수준이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둘째 아이를 임신까지 한 상태였는데! 그 자살자 때문에 저 가정도 완전히 파탄 나고 말았다.

2.
이제 좀 옛날 이야기를 하겠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아직 어수선한 미군정 시절이던 1947년 5월 1일, 에블린 맥헤일(Evelyn McHale)이라는 20대 초반의 아가씨가 여느 아파트도 아니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전망대에 올라가서 무려 86층, 거의 300m에 달하는 높이에서 뛰어내렸다. 1940년대 당시엔 그 건물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이 사람은 무슨 모델이나 연예인, 유명인사도 아니고, 정말 평범하게 월급쟁이 직장인 생활을 하다가 평범하게 남친 사귀고 약혼까지 하고.. 정황상 자살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던 사람이었다. 머릿속으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단지, 약간 성깔 부리는 완벽주의자 성향은 좀 있었던 것 같으며, 유서를 보면 그런 기질이 더욱 느껴진다. (☞ 이 사건에 대한 더 자세한 정황 설명)

그녀는 운명의 그 날엔 별안간 집을 나와서 "남친에게서 결혼 프러포즈를 받았지만 난 좋은 아내가 될 자신이 없다. 난 어떤 남자에게도 좋은 아내가 못 될 것 같다. 그이는 내가 없으면 더 잘 살 것이다. 나는 가족· 타인을 불문하고 아무에게도 내 모습, 내 존재를 더는 노출하고 싶지 않다. 내가 죽더라도 제발 장례식 같은 거 치르지 말고 시신을 화장해서 완전히 없애 달라" 라는 요지의 꽤 염세적인 논조의 유서를 썼다. 그러고 나서 그 높은 곳에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건물 아래는 사람과 차들로 가득한 뉴욕 시내 한복판이었다. 그녀는 사람이 아닌 어느 리무진 승용차 위에 떨어졌다. 워낙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자동차는 굉음을 내며 박살이 났지만, 차가 그렇게 충격을 받아 주고도 그녀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즉사함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단,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서 완전히 지우고 없애고 싶었던 그녀의 바람은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 오히려 나 같은 사람조차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 정도인 유명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떨어진 직후의 모습 때문이다. 시신은 마치 "잠자는 숲속의 미녀"처럼 300m 미터 높이에서 투신 자살한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양호하고 평온했다.

마침 현장 근처를 지나던 어느 사진학도가 굉음을 듣고 투신 지점으로 달려왔는데.. 이거 보통 모습이 아님을 직감하고 현장 보존 상태에서 사진을 남겼다. 이건 인위로 연출한 장면이 아니며.. 섬뜩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살"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에블린 맥헤일의 투신 모습 보기

비록 겉으로는 저렇게 평온해 보여도 신체 내부는 다발성 골절, 장기부전, 폐출혈 등으로 다 망가졌을 것이다.
아무리 자동차가 충격을 흡수해 주고 공기 저항까지 있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수십 kg에 달하는 '인간'이 낙하산도 없이 워낙 높은 곳에서 떨어졌으니..

하물며 그냥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졌다면 300미터보다 훨씬 더 낮은 곳에서 투신해도 시신은 절대로 온전히 남아나지 못한다. 피 튀고 뼈 꺾이고 심하면 머리가 깨져서 뇌수가 새어나오기도 한다. 즉사할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졌다면 그 어떤 자세로 떨어지더라도 결국은 머리에까지 어떤 형태로든 충격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아무렇게나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은 절대로 저런 우아한 자세로 죽지 못하며, 시신 수습하고 청소하는 사람들한테 큰 민폐만 끼친다는 걸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에블린은 무슨 실연을 비관해서 자살한 게 절대 아니니 오해 없기 바란다. 오히려 멀쩡히 약혼/청혼까지 다 성사된 상태에서 자살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자기가 반대로 남친에게 큰 충격과 상처를 남긴 꼴이 됐다. 그녀는 몇 개월 안으로 임박한 결혼이 자기 인생을 완전히 얽어매고 속박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죽기 직전까지는 아무것도 튀는 게 없는 삶을 살았는데 도대체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사건 이후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전망대에는 자살 방지를 위해 쇠로 얽히고 섥힌 난간이 설치되었다.

3-1.
공교롭게도 에블린 맥헤일 이전에도 죽은 모습이 칭송의 대상이 된 여인이 또 더 있었다.
1880년대 말, 프랑스 센(Seine) 강에서 어떤 소녀가 익사한 채로 발견되었다. 그런데 옛날이어서 그녀가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신원이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함. 외관상의 상처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실족사가 아니면 자살로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죽은 것치고는 얼굴이 아름답고 표정도 굉장히 평온하고 순수하고 행복해 보였던지라 이 시신을 검시한 어떤 사람은 즉시 데스마스크를 만들어 시신의 형상을 남겼다. 예술가들도 감탄했을 정도라고 한다. 저 소녀는 자기가 죽고 나서 몸이 저렇게 칭송받고 데스마스크가 만들어질 걸 과연 예상했을까 싶다.

L'Inconnue de la Seine

3-2.
한편, 에블린 맥헤일은 같은 미국에서 의문의 참혹한 죽음을 당한 엘리자베스 쇼트(Elizabeth Short), 일명 '블랙 달리아'라는 아가씨와 거의 동갑내기이다. 둘 다 1923~1924년생이고, 엘리자베스의 시신이 발견된 때는 1947년 1월 15일로 같은 1947년이다.

저 사람은 본격적인 할리우드 배우 지망생이었다. 시신이 발견되기 약 1주일 전부터 연락이 두절된 실종 상태였는데 이때 어디서 누구에게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 길이 없다고. 하지만 이 사람이 옷이 다 벗겨지고 전신 피멍에 허리가 두 동강 나고 혈액과 장기 적출로도 모자라 입이 양쪽으로 귀까지 찢어진 정말 끔찍하고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되어야만 할 정도로..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정황은 전혀 없었다. 금전 쪽으로든 치정 쪽으로든. 사람 입이 찢겼다는 얘기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 승복 이후로 처음 듣는다.. ㄷㄷㄷㄷㄷ

범행 용의자는 영국의 잭 더 리퍼처럼 신체 해부와 외과 수술에도 식견이 있는 어느 싸이코패스일 거라고밖에 볼 수 없는데 이건 결국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21세기도 아니고 1940년대에 워낙 엽기적인 사건이다 보니, 오히려 자기가 블랙 달리아를 죽인 범인이라고 뜬금없는 거짓 자수를 한 관심병 미친놈들만 몇십 명이나 나와서 수사에 혼선을 끼쳤다고 한다. 고문이나 강압 수사도 없었는데 웬 허위 자백이냐..;;

4.
투신 자살과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사례는 일본의 '오카다 유키코'(1967-1986)이다.
검색을 통해 사진과 프로필을 보면..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다 잘하는 엄친아 연예인 지망생 그 자체. 데뷔 후엔 실제로 인기가 아주 좋아서 1980년대 중반을 풍미한 일본 아이돌계의 떠오르는 샛별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보아하니 이 아가씨도 너무 완벽주의자였던 것 같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스케줄 강행군을 소화하면서 연예인 활동을 했는데.. 치정 스캔들 때문인지, 악성 루머 때문인지, 소속사와의 불화 때문인지,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인생에 회의를 느꼈는지, 아무튼 하나로 딱 떨어지는 원인이나 정황 없이 그녀는 1986년 4월 8일, 별안간 소속사 건물의 창문 밖으로 뛰어내림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아, 당일엔 투신 자살에 앞서 가스를 피워서 자살을 시도하다가 저지당하기도 했다.

오카다 유키코는 배를 땅으로 향하는 자세로 콘크리트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고인에게는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죽은 모습이 미국의 에블린 맥헤일의 경우와는 달리, 저질 옐로우 저널리즘의 먹잇감으로 전락해 버렸다. 일본의 찌라시들은 겨우 고삐리 연예인이 죽은 모습을 바닥에 튄 핏자국까지 그대로 모자이크 처리 하나 없이 사진으로 찍고 내보냈기 때문이다. (겉으로 욕하면서도 결국은 다 사서 보거든 ㄲㄲㄲㄲㄲ)

이런 선정적인 보도 때문인지, 이 아이돌의 자살로 인해 당시 일본 내부에서는 그야말로 수십~수백 명에 달하는 팬들이 같이 자살했다고 하니 더욱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 한번 유명해지고 나면 자기 혼자 곱게 세상에서 뿅 없어지는 것조차도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 그러니 정말 입과 몸을 사리면서 행동해야 할 것 같다. 자살 이것도 정말 어지간한 멘탈로 가능한 게 아닐 텐데..! ㅠㅠ

* 아 진짜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별도의 번호까지 또 할당해서 소개하기는 좀 뭣하다만.. 2011년에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40대 여성이 25층에서 투신 자살했는데 하필..;; 맨홀 뚜껑을 정확하게 강타하고 그 구멍 아래로 떨어져 숨지기도 했다. 다른 인명이나 차량 피해가 없는 것은 다행스러운 점이다만, 이건 뭐 멀쩡히 길거리를 가던 행인이 땅이 쑥 꺼지고 맨홀로 빠진 것만큼이나 황당한 소식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27 08:34 2016/11/2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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