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서 고속철
작년 말엔 잘 알다시피 서울의 동남부를 지나는 수서 발 수도권 고속철이 개통했다. 얘는 지금까지 개통해 온 호남, 전라, 공항선, 동해선, 경전선 KTX와는 달리 서울 구간에서 완전히 새로운 선로를 사용하며, 운영 회사도 코레일이 아닌 다른 기업이다. 결정적으로 차량 역시 KTX가 아닌 SRT라는 다른 이니셜을 쓴다.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 온 코레일 관할의 고속철도와는 조금 다른 고속철이 또 하나 생긴 셈이다.
서울 강남과 성남시 일대는 구한말 때부터 철도가 놓였던 서울 강북의 구시가지와는 달리 전통적으로 철도 불모지라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여기도 드디어 장거리 간선 철도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열차는 수서부터 평택까지 40km가 넘는 구간을 온통 고가가 아닌 지하로 다니다가 지제 역 이남에서부터 기존 고속선과 합류하여 천안아산 방면으로 간다. 경부고속선은 천안 이북에서는 수도권 고속선과 갈라지고, 이남에서는 호남 고속선과 갈라지는 형태가 됐다.
수서 고속철은 기존 경부선을 전혀 경유하지 않는다. 얘 덕분에 경부선 금천구청 이북의 기존선에 여유가 좀 생겼으며, 호남· 전라· 장항선이 철수했던 서울 역은 KTX 개통 이후 거의 10여 년 만에 다시 경부 이외의 타 노선 열차들을 부분적으로 취급하게 될 거라고 한다.
수도권 고속철 선로는 고심도 급행 광역전철(일명 GTX)과도 공유 예정이라고 하지만 GTX는 아직까지 진척이 없다. 이매-판교 사이에, 그리고 구성 역 근처에 또 신설한다는 말이 있는 역은 GTX 역을 말한다.
뭐 그렇다고 해도 코레일과 SR (SRT 운영사)의 관계는 대한 항공과 진에어의 관계 비슷한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보인다. 대한 항공 vs 아시아나 같은 거창한 걸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공항 철도는 명목상 다른 회사이긴 하지만 여전히 코레일과 더 가까이 있는 어정쩡한 관계인 걸로 안다.
2. 서울 메트로와 도철의 합병
고속철에는 경쟁사가 등장했지만, 서울 지하철은 경쟁 구도와는 정반대로 서울 메트로와 서울 도시철도 공사의 합병이 올 5월쯤에 결정되었다. 대통령 선거 다시 하는 시기와 비슷하게 됐구나. 이로써 1~8호선의 관할 기관이 하나로 합쳐지게 됐다. (9호선은 여전히 혼자 독고다이 체제)
하긴, 한 도시의 지하철 노선에 사기업도 아니고 동일 업종의 공기업이 둘씩이나 있는 건 좀 흔한 모습은 아니긴 했다. 회사가 완전히 하나가 돼 버리면 중복 투자가 줄어들고 경영 효율이 올라갈 것이다. 서울 말고 타 도시들은 '교통 공사'라는 이름으로 지하철 운영사와 시내버스 운영사까지 하나로 통합된 사례도 있으니 말이다. 다만, 운영사의 통합으로 인해 파업에 상대적으로 취약해지지는 않겠나 하는 약간의 우려도 있다.
공교롭게도 두 회사의 지리적인 통합 본진은 서메 쪽이 아닌 도철 쪽으로 결정됐는데, 이 역시 신의 한수가 가미된 통찰이다. 어차피 도철 본사의 근처에는 도철이 아닌 서메 소속의 '군자 차량기지'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외곽이 아닌 시내 중심부에 지하철 회사 본사가 있고 차량기지까지 있으니 최적의 입지 조건이 아닐 수 없다.
3. 부산-울산 광역전철 1차 구간(부전-일광)
파업 때문에 한 50일 정도 딜레이를 먹는 악재를 겪었지만, 그래도 2016년을 넘기지는 않고 간신히 개통했다. 부산의 북쪽 외곽인 기장군에 있는 일광 해수욕장을 전철 타고 찾아갈 수 있게 됐다.
4량 편성에 노선색은 군청색, 서울을 지나지 않는 광역전철이라는 점에서는 경강선과도 심상이 비슷해 보인다. 아니, '코레일 블루'라고 불리는 저 군청색은 전국 어디서든 코레일 관할의 광역전철을 나타내는 디폴트 대표색이 된 건지도 모른다.
서울-수도권 광역전철이 1974년 개통인데 다음으로 부산은 이거 뭐 40년을 훌쩍 넘겨서야 광역전철이 생기는구나. 그래도 지하철이나 광역전철 말고 경전철은 반대로 부산에서 국내 최초로 시작해서(4호선, 김해) 의정부와 용인, 대구 등을 거쳐 서울로 역수입되는 중이다.
4. 새마을호의 추억
과거에 비둘기호는 정선선에 최후의 열차가 다니다가 2000년 11월, 01년도 수능 바로 전날에 마지막 운행을 하고 퇴역했다.
객차형 통일호는 과거에 KTX의 개통과 함께 여러 노선에서 동시에 사라졌고(경춘선, 중앙선 등)..
동차형 통일호인 통근열차는 현재 전국에서 딱 한 군데 경원선에만 다니고 있다. 이것도 수 년 뒤에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연천까지 연장되면 사라질 것이다.
무궁화호야 제일 보편적이고 흔한 등급이며 ‘누리로’가 근본적으로 무궁화호를 대체하는 컨셉도 아니기 때문에 당분간 망할 일이 없다. 하지만 새마을호는 KTX 같은 상위 열차와 대체 전동차들의 등장으로 인해 지위가 굉장히 위태로워져 있다.
경부선 같은 주요 간선은 ITX-새마을로 완전히 대체됐으며, 재래식 새마을호는 객차형만 남아서 유일하게 장항선에서 명맥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거리가 적당히 길고 그나마 전철화가 안 된 덕분에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거다.
한 계급의 열차가 최후까지 운행되던 곳이 정선선, 경원선, 장항선의 순으로 변화한다니 흥미롭다.
지난해 11월 말에는 이란에서 열차 충돌 사고가 발생했다. 45명 가까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쳤다.
이건 고장으로 멈춰 서 있는 열차를 후속열차가 발견을 못 하고 들이받은 전형적인 신호 시스템 미비 후진국형 철도 사고이다. 화재까지 발생했다.
그런데 객차를 보아하니 우리나라에서 내구연한 경과로 인해 퇴역하고 2014년에 저기로 수출된 새마을호 객차(아마도 동차형)랜다. 친근한 저 창문 모양만 딱 봐도.. OTL
그러나 하늘과 땅은 사라져도 새마을호 객실에서 울려퍼졌던 Looking for you의 기억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shall not pass away).
5. 정태보존된 재래식 열차들
내가 철도 박물관을 마지막으로 찾아간 때가 2013년경이었는데 그때 이후로 철박에는 새로운 유물 차량이 더 추가되었는가 보다.
먼저, 지금의 경복호 이전에 대통령 전용 열차로 사용되었다고 하는 일명 ‘특별동차’이다. 경복호가 새마을호 DHC의 파생형이라면, 이 특별동차는 전신인 DEC의 파생형이다.
아예 이 승만 시절의 옛날 객차형 열차도 아니고 이런 동차형 열차도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1969년에 도입했다고 하니까 시기적으로는 DEC보다 훨씬 더 일찍 도입된 것이고 차라리 옛날 관광호와 비슷한 연배이다. 철박에서 이거 전시 기념 행사는 2015년 5월 4일에 치러졌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으로, 무궁화호 디젤 동차라고 불리는 NDC도 현업에서 완전히 은퇴한 뒤 2015년 저 비슷한 시기에 철도 박물관에 하나 들어갔다. 얘 역시 아주 희귀한 차종으로, 한때는 철도청장 내지 코레일 사장 전용 열차로 쓰이는 편성도 있었다고 한다.
DEC는 새마을호로 도입됐다가 무궁화호로 강등됐고, CDC는 통일호(통근열차)에서 보기 드물게 무궁화호로 승격된 반면, NDC는 도입부터 폐차 때까지 시종일관 무궁화호로만 쓰였다는 차이가 있다.
철도 박물관에 컨텐츠가 추가되었다니 기쁘다.
그나저나 새마을호 디젤 동차는 철박에 없고 웬 경부선 청도 역 한켠에 동력차와 객차가 하나 보존되어 있다. 거기가 철도가 강세인 동네이기도 하고.
그리고 중앙선 풍기 역에 901호 증기 기관차가 정태보존 중이다. 철박에 있는 기관차는 아마 파시 형이지 싶다. 이런 정보도 어디 한데 모아 놓고 공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6. 철도 차량 주행 시험장
자동차야 개발 과정에서 테스트를(특히 고속 주행) 위해 사용되는 주행 시험장 트랙이 있다. 현대 자동차의 경우 기본적으로 울산에 있고 화성시 남양 연구소에 더 큰 시험장을 보유하고 있어서 항공 사진으로도 확인 가능하다. 심지어 미국의 모하비 사막에도 국내의 시험장보다도 훨씬 더 거대한 시험장이 있다.
철도 차량은 새로 개통하는 노선에서 시운전을 하는 식으로 주행 시험을 치른다. 그러나 굳이 특정 철도 노선에 구애받지 않고 개발하는 차량 자체에 대한 주행 시험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선로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철도 차량을 위한 전용 시험선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전라남도에 원래 화물 철도로 계획했던 대불선을 시험선으로 활용해 왔다. 믿기 어렵겠지만 신분당선 전동차도 개통 전에 여기서 테스트를 받았다. (당장 떠오르는 차량이 신분당선 전동차여서..) 화물 열차가 다니라고 전철화까지 한 철도인데 정작 화물 수송용으로는 안 쓰여서 잉여로 전락했지만, 그 대신 다행히 다른 용도를 찾은 셈이다.
그러나 여기는 처음부터 시험선으로 만들어진 선로가 아니다 보니 시설이 아무래도 미흡하고 고속 주행이 어려웠다. 결정적으로 선로가 순환선 형태도 아니기 때문에 양 말단에서는 방향을 전환해야 했고 몇 바퀴 뺑뺑이를 돌며 테스트를 할 수도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2018년 개통을 목표로 여객 철도도, 화물 철도도 아닌 철도 차량 전용 시험선의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데.. 위지가 어디냐 하면 오송 근처이다. 안 그래도 거기 근처에는 대전-천안 시험선이 건설되던 당시부터 쓰였던 레일 공장과 차량 기지도 있고, 경부선 기존선과 고속선, 충북선까지 다 근처에 있기 때문에 이들 내부를 선으로 연결하면 순환선을 만들기 아주 좋다.
국내의 고속선 선로 중에서 시험선 명목으로 제일 먼저 건설이 시작된 구간의 주변에, 아주 흥미로운 특수 목적 철도가 새로 만들어진다니 기대된다.
7. 안전벨트가 없는 교통수단
고속철 얘기부터 시작해서 박물관과 과거 추억의 열차 얘기까지 골고루 늘어놓게 됐다.
본인은 얼마 전엔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좌석에 앉고 나니 복부에 아무 압박이 없는 느낌이 굉장히 이상하고 어색했다.
얼마 못 가 좌석 주변을 손으로 더듬으며 안전벨트를 찾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정도 폭과 간격인 좌석은 고속버스나 비행기의 좌석과 굉장히 비슷하게 느껴져서 말이다.
난 택시를 타도 벨트부터 착용하는 드문 승객 중 하나다. 아니, 택시에서는 매우 높은 확률로 내가 스스로 운전할 때보다 더 아찔한 기동과 과격한 G를 경험하는 편이니, 방어 기질이 발휘되어 적극적으로 벨트를 하게 된다.
우리나라에 철도가 전국 방방곡곡에 깔려 있어서 평소에 열차를 많이 타고 다녔으면 나에게 이런 강박관념이 생길 일이 없었을 것이다. 철도는 안전벨트를 구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부드럽게 가감속 하며 매우 안전하고 웰빙스러운 교통수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서 고속철을 어서 타 보고 싶다. 율현 터널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무척 궁금하다.
대학 시절에 신화 창조의 비밀 다큐에서 고속철 대전-천안 시험선 건설 에피소드를 본 게 엊그제 같은데 비슷한 길이의 고속선이 이제 고가로도 모자라서 올지하로 뚫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수서 고속철 타고 부산 가서 부산-울산 광역전철을 시승하고 오면 즐거운 철도 답사가 되겠다. 둘은 비슷한 시기인 2016년 12월에 개통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평창 가는 철도도 가까운 미래에 완전 개통하겠지.. 이거 준비하느라 중앙선도 서울 수도권 구간은 3, 40여 년 전에 경부선이 한창 고속화하던 것처럼 이제야 선로를 개량하고 열차 주행 속도가 상승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뿐만 아니라 서쪽의 신안산선과 소시-원사선도 어서 개통해야 하지 않겠는가. 광주에 이어 시흥, 김포 같은 곳에도 어서 철도가 들어가야 한다.
이것들을 증언하는 철도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반드시 속히 개통하리라.”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