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적 제재와 무장
공동주택에서의 3대 민폐는 담배, 애완동물, 층· 벽간 소음이지 싶다. 그야말로 후각· 촉각· 청각이 골고루 다 분포해 있구나! 또한, 상황이 좀 더 열악한 곳에서는 주차 시비까지 추가해서 4대가 될 수도 있겠다. 이것 때문에 살인 사건도 이미 몇 건 난 적이 있다.
주거용 건물은 계단 통로가 담배 냄새가 안 나는 곳을 별로 못 봤고, 요즘은 예전보다 개도 주변에서 부쩍 눈에 띈다. 먹고 살기 빠듯하고 힘들다면서 애완동물 키울 여력은 있는가 보다. 도시는 시골과 달리 동물에 친화적인 곳이 아니긴 하다.
다음으로 소음 문제의 경우, 찾아가서 항의하는 건 씨알도 안 통하니 당하는 쪽에서도 벽이나 천장을 같이 쿵쿵 치는 걸로 응사하는 편인데.. 인터넷을 뒤져 보니 단돈 몇 천원 짜리 고무 망치가 그렇게도 즉효약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다. (☞ 대표적인 사례: 슈랄라 월드)
잘 쳐 주면 건물 자체는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쿵쿵~ 웅웅~ 깊은 진동을 전해서 가해자를 놀라게 하고 숙면을 방해할 수 있다고 한다. 본인은 딱히 소음 피해를 겪은 적이 없고 저런 물건을 써 보지도 않아서 잘 모르겠다.
뭐랄까, 지금 같은 법치 의식이나 국가 정체성, 인권 의식이 형성되기 전에,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이 엄격하게 생기기 전엔... 서양에서는 민간인의 무장과 사적 제재라고 해야 하나, 그런 관념이 지금보다 훨씬 더 관대했다.
그러니 '사략선'이라는.. 한중일 문화에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국가 공인 해적이 있었다. 전시에 민간인이 적국 선박을 터는 것을 합법으로 허용하는 면허 말이다.
그리고 '결투'도 있었다. 결투에서 상대방을 죽이는 것은 마치 전쟁터에서 적군을 죽이는 것만큼이나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었다..;;
누구든 월급 주는 주인님을 위해 깃발 바꿔 달고 싸우는 '용병'은 요즘으로 치면 PMC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국군 상비군이 있는 일반적인 나라에서는 흔하지 않다. 아 하긴, 프랑스에는 아직 외인부대가 있던가?
또한 민간인이 스스로 무장하고 자기 마을을 지키는 '자경단'은.. 용어를 저렇게 쓰면 어감이 굉장히 부정적이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조선과 구한말의 '의병'하고 별 차이 없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건 아주 성경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에스더기도 유대인 학살 명령이 공식적으로 철회되는 게 아니라, "너희들도 자경단 꾸려서 침략자에 맞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지켜라. 아무도 안 말린다"가 추가되는 걸로 끝나니 말이다.
좀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1992년의 미국 LA 폭동 때도 평소에 총을 구입해 놓고 대비를 했던 한인들은 자경단을 꾸린 덕분에 자기 가게를 안 털리고 지켜내기도 했다.
한국 남성들의 이런 저력(...)은 5· 18 광주 북한군 개입설을 부정하는 근거로도 활용된다.
서슬 퍼런 반공 군사 정권 하에서 교련에다 군생활도 무려 3년씩이나 의무적으로 했던 사람들이 진지 구축이나 총질쯤은 껌이며, 탱크 조종 보직이었던 사람도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없을 리가 없다. 그 정도 군사 행동은 굳이 북괴 공작원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수많은 청년들의 자유를 제약하고 희생하며 돌아가고 있는 우리나라 징병제의 위력을 만만하게 여기지 마시라.
무기고 위치 정도는 그렇게 비밀도 아니며, 평소에 잡범 범죄자에 의해 종종 털리기도 했었다. 그럭저럭 민주화가 된 1990년대의 LA에서도 저랬는데 하물며 전투력이 그때보다 더했을 1980년대의 광주를 동일한 잣대로 생각해 보면 본인으로서는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소말리아 같은 막장인 나라 말고, 엄연한 잘사는 선진국 중에서 민간인이 버젓이 총을 소지하는 나라는 미국 말고 더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화력이 너무 강한 군인 소총이나, 은닉하기 쉬운 권총은 여전히 규제가 걸려 있지만, 샷건 정도는 시골로 갈수록 뭔가 생활 필수품인 것 같다.
2. 경찰 비슷한 것들
경찰은 군대와 마찬가지로 국가와 사회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며, 정부에서 세금을 써서 유지시킨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공권력의 존재감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기관이 바로 경찰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군· 경의 역할을 민간이 대체하는 것을 매우 경계하며 금기시한다. 그래서 사적 제재를 전면 금지하고 정당방위도 매우 보수적이고 제한적으로만 인정한다. 나쁜놈이 있으면 어지간해서는 정말 제일 소극적인 제압만 한 뒤 바로 경찰에 넘기기만 해야 한다. 놈이 흉기를 들고 설치고 있으면 흉기를 재주껏 빼앗아서 버리기만 해야지, 그걸로 내가 반격 역관광을 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니 자경단이나 민병대· 의병 같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사설 탐정도 국내에서는 전면금지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민간인의 경찰 위장· 사칭은 죄질이 매우 나쁜 범죄이다. 일반인은 평시에 전투복뿐만 아니라 경찰복을 입는 것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수갑 같은 경찰 전용 장비 역시 소지하거나 휴대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경찰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을 보조 내지 대행하는 민간인 조직이 아주 없는 게 아니다.
자율방범대(치안)라든가 모범운전자(교통 정리)가 그 예이다. 이런 사람들은 경찰과 어떤 관계를 맺고 보수를 어느 정도 받는지, 직무와 관련하여 어느 정도까지 권한이 있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이 사람들이 진짜 경찰처럼 누구를 체포한다거나 교통법규 위반 범칙금 딱지를 발급하지는 못한다.
은행이나 병원 같은 곳에 있는 청원경찰은 정식 경찰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 사설 경비원도 아닌 중간 위치 같다. 철도 경찰이나 해경은 일반적으로 아는 그런 경찰과는 다른 경찰일 테고..
그나저나 옛날에 미국에서 큰 모자 쓰고 말 타고 돌아다니던 '보안관'은 경찰하고는 어떤 관계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3. 사립 사관학교
본인은 먼 옛날에 사탄의 인형 시리즈를 1편부터 3편까지 영화관..은 아니고 TV와 비디오로 봤다. 1편은 진짜 공포 장르였지만 2편과 3편은 호러 코미디에 가깝다. 주인공 앤디가 처키의 정체를 완전히 알게 되면서 동심이 완전히 파괴된 상태가 됐고, 또 나이를 먹고 성장도 했기 때문에 1편과 같은 의미의 약자의 위치에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특히 3편의 경우, 애가 군사 학교에 입교하게 된다. 이름하여 Kent Military School. 그런데 나이가 들고 나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 군사 학교라는 건 도대체 정체가 뭔가? 국· 공립인가, 아니면 설마 사립인가? 한국에는 이런 교육기관은 없는 것 같은데..
병을 양성하는 곳인가, 간부를 양성하는 곳인가? 그냥 신병 훈련소라고 보기에는 내부 시설이 꽤 좋고.. 하지만 학생들의 연령대가 굉장히 다양하고 무슨 웨스트포인트 급의 정식 사관학교도 아닌 것 같다. 앤디처럼 불우하게 자란 애가 그런 정예 장교 양성 시설에 호락호락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죽은 아버지가 무슨 명예 훈장의 수훈자이기라도 하지 않다면 말이다.
그리고 계급의 번역이 제대로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생도들 군기를 잡는 훈육대장이야 해야 하나.. 그런 사람이 무려 대령인 건 하는 일에 비해 계급이 너무 높은 것 같다.
검색을 해 보니 미국에는 이런 군사 학교가 몇 군데 있다고 한다. 나라에서 인가한 정식 사관학교와의 차이는 (1) 일단, '사립'이다. 자연히 학비는 전면 무료가 아니며, 여기를 졸업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미군 간부로 임관한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여기는 (2) 애초에 대학교에 준하는 고등 교육기관이 아니라 중· 고등학교에 대응하는 중등 교육기관이다. 여기를 졸업한 애들은 소수의 군대 체질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냥 일반 대학교로 진학한다.
즉, 여기는 무슨 정식 사관학교도 아니고 해병대 캠프나 스파르타 식 명문대 학원도 아니지만.. 사관학교의 커리큘럼을 따 와서 일상생활에서 애들을 합숙시키고 군복(정복, 예복, 전투복 등..) 입히고 군대식으로 절도 있게 키우는 학교이다. 한국의 장성들이 자기 자녀는 저기로 유학 보내서 키우기도 한댄다. 중딩 고딩들한테 설마 진짜 사관학교처럼 공수 훈련까지 시키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총 잡고 페인트탄 워 게임 정도는 한다.
사탄의 인형 3의 배경인 '켄트(Kent) 군사 학교'는 '켐퍼(Kemper) 군사 학교'라고 미국에 실제로 있었던 사립 사관학교이다. 1800년대부터 있었던 학교이다 보니 캠퍼스가 굉장히 고풍스러우며, 사탄의 인형 말고 몇몇 다른 영화들의 촬영지로도 쓰였다고 한다.
이 학교는 쟁쟁한 졸업생 동문을 배출하기도 했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점점 경영난을 겪었으며(신입생의 감소로 인해), 2002년에는 폐교하고 말았다. 국영 사관학교라면 이렇게 망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옛 캠퍼스 부지와 건물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4. 군대의 진급
우리나라의 현행 군대 계급 체계에서 다음과 같이 임관 내지 진급하는 건 흔치 않은 경우이다.
- 준위로: 부사관에서 상사를 능가하는 만렙 계급은 일단 원사이다. 그런데 거기서 더 나아간 준위는 단순히 원사의 상위 레벨이 아닌 좀 특이한 계급이다. 부사관의 만렙으로서 자기 분야의 최고 전문가 스페셜리스트이면서, 한편으로 그 바닥에서 장교 같은 명령권도 있는 '준사관'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어떤 준사관 계열은 아예 군필만 한 민간인이 곧장 들어오기도 한다.
- 임관이 아니라 특진해서 소위로: 병장이 진급해서 자연스럽게 부사관인 하사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병이나 부사관이 자기 계열에서 진급만 한다고 해서 장교 계급을 받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역사상 죽어서 소위 계급이 상징적으로 추서된 건 지뢰 밟고 죽은 군견이 유일하다.
- 대장에서 원수로: 원수는 포스타 중에서도 그야말로 나라를 구한 불멸의 성웅이나 받을 법한.. 상징적인 종신 계급이다. 통상적인 진급이나 전사자 특진만으로는 될 수 없다.
우리나라에 과학 분야 노벨 상 수상자가 없는 것만큼이나 원수 계급을 받은 군인도 현재까지 없다. 그나마 제일 근접해 있는 백 선엽 대장마저도 못 받은 계급을 감당할 만한 용자는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전쟁터에서 혼자서 적군을 수십 명 때려잡고 아군을 수십 명 구했다면 그건 병이나 부사관이 무공 훈장과 포상금을 잔뜩 받을 일이다. 계급 자체는 그런 병/부사관 수준에서 1~2단계 정도 특진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에 반해 포스타가 원수가 되려면..?? 가히 전군과 국가에 영향을 끼칠 만한 넘사벽급의 '통솔' 업적이 있어야 한다.
- 사령관의 천재적인 지휘 하에 전군이 힘을 합쳐서 돼지 목을 따는 데 성공하고 북진 멸공 통일을 이룬다거나,
-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했는데 한국군이 무슨 지구를 구하는 데 국제적인 기여를 했거나,
- 국군의 규모가 지금보다 몇 배 이상 더 커져서 포스타마저 수십 명으로 늘지 않는 한..
한반도에서 오성장군이 배출될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