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승리와 패배의 조건

전쟁에서 졌다는 게 꼭.. 적국이 우리 영토에 쳐들어와서 관광 플레이를 시전하는 바람에 우리나라가 2차 세계 대전 때의 독일이나 일본처럼 "무조건 항복.. 우리가 졌스므니다~" 이러면서 싹싹 비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쟁에서 승패가 결정됐다고 해서 패전국이 반드시 체제가 싹 바뀌고 영토나 배상금을 왕창 뜯기지는 않는다.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승리가 있고, 져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패배가 아닌 패배가 있다.

제일 좁게 기계적으로는.. 공격자든 방어자든 전술적인 목표를 달성하면 승리이고, 그렇지 못하면 패배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어자가 공격자보다 이기기가 훨씬 더 쉽다. 방어자는 존버해서 현상 유지만 해도 승리이기 때문이다.

6 25는 휴전이 아니라 이 상태로 전쟁이 끝나 버린 거라고 본다면, 한낱 무승부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이긴 전쟁이다. 물론 단독이 아니라, UN군과 함께 싸워서 이긴 것이고..
임진왜란도 당연히 방어에 성공한 조선의 승리(조선/명 연합군)이다. 단지, 조선도 피해가 너무 막심했기 때문에 이건 전리품 잔치를 벌이는 그런 승리가 아니었을 뿐이다.

러일 전쟁은.. 일본이 설마 그 대국 러시아를 완전히 굴복시킨 건 전혀 아니었다. 자기도 전쟁 때문에 재정이 파탄 나기 직전이었는데 전쟁 배상금 따위도 전혀 요구하지 못하는 '상처뿐인 영광'을 얻었을 뿐이었다. 허나,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사할린 지역을 빼앗는 '전술적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명백한 일본의 승리로 평가되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은 거의 미국의 대리전처럼 여겨지긴 한다만, 남베트남이 지고 베트콩이 이긴 전쟁이다. 허나, 그렇다고 미국이 화력의 열세 때문에 전투에서 병력을 다 잃고 패배해서, 무슨 베트콩한테 백기 들고 투항하고 항복 문서에 싸인하는 식으로 패배한 건 전혀 아니다. 여러 이유 때문에 전투를 계속할 명분을 잃어서 그냥 싹 철수만 했을 뿐이다.

이런 걸 보면.. 전투에서의 승패가 전쟁에서의 승패와 꼭 일치하지도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중일 전쟁만 해도 중국이 전투에서는 일본한테 수없이 졌지만, 결국 전쟁은 이겨서 전승국 대접을 받았다. 영토와 인구빨이 있어서 계속 후퇴할 공간이 많고 일시적인 전투 패배를 수습할 만한 충분한 맷집이 있는 나라가 이런 상황에서 더 유리한 것 같다.

전쟁에서의 승패뿐만 아니라 '전멸'의 의미도 영화와 드라마에서 통용되는 의미(마지막 한 사람까지 몽땅..)와 실제 군사적으로 통용되는 의미가 다르다. 현실에서는 병력을 훨씬 덜 잃어도 정상적인 부대와 전투력 유지가 더 안 되면 전멸로 판정하며, 철수하거나 추가 지원을 받는다.

전투의 목표도 적군을 꼭 죽이고 몽땅 다 파괴하고 부수는 게 아니다. 그저 적군을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고 제압 내지 무력화시키는 것이 목표이다. 죽이는 건 그렇게 하는 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다.
전시의 군대는 정말 냉혹한 결과 실적 지상주의로 돌아간다. 평소에 아군을 왕창 악랄하게 지지고 볶고 갈구더라도, 어쨌든 전투에서는 이기게 하는 지휘관이 당연히 칭송받아야 마땅하다. 방망이 깎던 노인 타입이 군대에서는 대접받는다.

2. 전범

한편으로 '전범'이란 '전쟁 범죄' 또는 '전쟁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준말이다.

(1) 수뇌부의 입장에서는 명분 없는 불법 침략 전쟁을 일으키면 그 자체가 전범이 된다. 고위 정치인 내지 별 달린 장군 정도만이 이 유형의 전범이 될 수 있다.
단, 현실에서는 그렇게 전쟁을 벌이고도 "졌을 때만" 전범으로 몰려 처벌받는다. 쿠데타만 해도 성공하면 혁명이니 구국영웅이니 하면서 추앙받지만, 실패하면 주동자가 영락없이 역적 정치범 내란수괴로 몰리지 않던가? 전쟁도 이와 비슷하다.

물론, 여기서 진다는 건 더 수지맞지 않아서 점령지를 슬쩍 철수하는 정도가 아니라, 반격을 당해서 자기 나라가 다 망하게 생겨서 싹싹 비는 정도로 지는 것을 말한다.

(2) 다음으로, 전투를 실제로 수행하는 실무자의 입장에서 전범이 되는 방법은 전쟁 명분과는 전혀 무관하다.
무장한 적군이야 전장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어떤 방식으로 낚고 속이고 죽이든, 윤리 논란 따위 당연히 만무하다. 단지, 그 적군이 다치거나 포로가 됐거나 아예 항복을 해서 전투력을 상실했다면 그 다음부터는 인도주의적으로 대해야 한다.

그리하지 않고 이런 적군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것, 포로를 반인륜적으로 학대하는 것,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을 고의로 약탈· 학살하는 것은 제네바 협약 위반이며 전쟁 범죄로 간주된다.
정상적인 군대라면 이런 건 자국 군대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적발하고 처벌해서 근절해야 한다. 그러면 그건 국제적인 전쟁 범죄 문제로 불거지지 않고, 해당 범죄자만의 예외적인 일탈로 간주되고 넘어간다.

사실, 군인들도 감정이 있으니 방금 전까지 전우들을 죽인 이놈들한테 당장 보복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현실적으로 다 컨트롤 하기 어려운 면모도 있다. 그러나 지휘관인 장교 차원에서 이런 짓을 조직적으로 묵인하거나 조장한 게 밝혀지면 영락없이 전범으로 몰리게 된다.
이건 승전/패전과는 전혀 무관하게 공평하게 처리해야 하는 사항이지만, 이 역시 현실적으로는 패전국에 대해서만 더 집요하게 거론되고 터는 편이다.

그런데 1번 같은 전쟁을 일으킬 정도의 불의한 나라라면 그 과정에서 휘하의 지휘관들이 어차피 2번과 같은 범죄도 매우 높은 확률로 저지르며, 윗대가리들이 이를 막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1번에 해당하는 전범은 대부분의 경우 어차피 2번에 대한 책임까지 지워지면서 더욱 지탄받게 된다.

3. 포로

(1)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군인이 나라 지키려고 전투 과정에서 지휘관의 명령을 따라 무장한 적군을 죽이는 것은 자국 법으로나 국제법으로나 성경적으로나 죄가 전혀 아니다. 군인은 적국에 포로로 잡혀 간다 해도 "너 왜 우리 병사 죽였어?" 이런 추궁을 받을 일은... 없다. 그건 적군도 똑같이 하고 있는 짓이니까.

글쎄, 혼자 너무 심하게 악랄한 명성을 떨쳤던 유명 저격수나 삼손 같은 인간흉기, 초특급 에이스 파일럿이 포로로 잡혔다면 곁의 병사들에게서 개인적으로 감정적인 해코지를 당할 수 있지만.. 그것도 명목상으로는 불법이다.
그 대신 군인은 자기가 적군에게 죽는 것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다. 이런 특성이 있으니 군인은 전시에 민간인과 다른 취급을 받는 거다. 자기 목숨은 자기의 전투 능력으로 알아서 챙겨야 하며, 자기가 전사하게 되면 자국으로부터 호국영령으로 어지간한 의인 의사자를 아득히 능가하는 예우를 받는다.

군인이 교전 중에 전사하는 건 민간 생명 보험으로도 보장이 안 된다. 천재지변이나 사변처럼 영역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서킷에서 카레이싱 때 발생한 사고가 통상적인 자동차-운전자 보험으로 보상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쉽게 말해, 배에 돈 내고 탄 승객이랑 거기서 근무하는 선원이 조난 사고 때 역할과 취급이 서로 같을 리가 없다.

(2) 군인이, 특히 지휘관이 자기 할 바를 다하지 않고 제멋대로 전투를 거부· 포기하고 적에게 투항한다면? 군수물자를 스스로 없애 버리거나 아예 적에게 건네준다면..? 그건 사형으로도 모자랄 중죄 대역 반역이다. 그 어떤 민주 인권 국가라도 이런 극단적인 죄는 사형으로 다스린다. 옛날처럼 사지를 찢지는 않는 게 감지덕지일 것이다.

하지만 보급도 지원도 없고 정말 개죽음이 뻔한 상태에서 불가피하게 항복· 후퇴하거나 포로로 잡힌 건 당연히 면책이며 그래야만 한다. 단순히 인권· 도의적인 차원이 아니다. 그렇게 해 줘야 패잔병들로부터 전투 경험과 노하우가 전수될 수 있고, 그들이 자포자기해서 아예 완전히 탈영해 버리는 걸 막을 수 있다. 전투에는 졌지만,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히지 않고 도망쳐서 살아서 돌아오는 것도 어지간한 운과 실력이 따라 줘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 데서까지 무조건 항복이나 후퇴를 금지하고 닥치고 정신력 근성 깡 드립에 영예롭게 죽으라고 부하를 사지로 몰아넣는 건 지휘관의 올바른 판단이 아니다.
이게 사랑의 체벌과 아동학대, 안락사 살인과 연명 치료 중단처럼 종이 한 장 차이로 판정이 참 미묘하게 달라질 수 있는 것 같다.

(3) '포로'를 영어로는 prisoner of war이라고 한다. 포로는 비록 정치· 군사적인 이유로 인해 자유를 박탈 당한 prisoner이지만, 군인의 직무 특수성으로 인해 여느 범죄자와는 성격이 다른 사람이다.
이와 비슷하게, 신념을 갖고 법과 공권력에 저항하다가 수감된 일명 '양심수'를 영어로 prisoner of conscience라고 한다. 이런 사람도 여느 범죄자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우리나라의 교정 시설에서는 평범한 사기· 상해· 절도 등의 대다수 잡범은 하양, 캐 흉악범 사고뭉치 요주의 인물은 노랑, 약쟁이는 파랑, 사형수는 빨강.. 이렇게 죄수복 명찰의 배경색을 달리하여 죄수들을 분류한다.
그런 것처럼 양심수라든가, 아무런 고의 없이 전적으로 과실로 금고형 정도 받은 죄수는 초록으로 분류해도 될 법해 보이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어서 초록색은 안 쓰는가 보다.

예수쟁이라면 prisoner of war, prisoner of conscience의 연장선상에서 성경에 나오는 prisoner of Jesus Christ (엡 3:1, 몬)와 prisoner of the Lord (엡 4:1)를 상기하면서 바울의 저 당시 심정을 생각해 보자. 전쟁이나 다른 신념 때문이 아니라 '그분'으로 인해 박해받고 수감당했다는 뜻이다. '양심수'와 같은 방식으로 조어한다면 '예수囚' 정도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23/12/22 08:36 2023/12/22 08:36
, , , ,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244

이전의 전쟁사 관련 글을 쓰면서 거기에 분류되지 않고 남은 여러 잡다한 아이템들이다. ㄲㄲㄲㄲㄲ

1. 군대가 돌아가는 방식

(1) 정식 군인이 아니지만 군인에 준하는 민간인으로는 사관생도, 군무원 정도가 있다. 이들은 무슨 일을 저지르거나 일이 터졌을 때 군법이 적용될 수 있다.
한편, 정식 장교가 아니지만 장교에 준하는 군인으로는 준위..가 있다.

(2) 대학교는 초중고와 달리, 전학이라는 개념이 없고 편입도 입시를 치러야 들어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편입'이라는 건 멀쩡한 대학교가 없어지는 초 막장 상황 정도는 돼야 벌어진다. 이건 전국적으로 매스컴까지 탈 만한 이벤트이다.
군대의 특별임관은 공산군 탈북자가 자기 계급을 그대로 인정받는다거나, 6· 25 시즌 2 같은 상황에서 아주 특출난 병· 부사관이 현장에서 특례를 인정받아 곧바로 장교로 임관하는 정도의 상황을 말한다. 이 역시 흔한 경우가 아니다.

(3) '소위'는 장교 중에서 제일 쪼렙...이다 보니, 순직한 군인에게 '추서'될 만한 계급은 절대 아니다. 준위나 원사가 순직한다고 해서 소위 계급을 받지는 않는다.
그 반면, 우리나라 군대 역사상 유일하게 죽어서 소위 계급이 추서된 존재는.. 사람이 아니라 군견 '헌트'였다. 제4 땅굴을 탐사하던 중에 지뢰를 밟고 순직했기 때문이다.

(4)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사람, 외국을 상대로 무력을 행사하는 집단이라고 정의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영토 분쟁이 진행 중이고 진짜로 군인이 투입되어야 마땅할 것 같은 곳에 군인이 아니라 경찰, 아니면 사실상 군인이지만 눈 가리고 아웅 수준으로라도 '경찰'이 투입되곤 한다.

  • JSA 내지 GP: 여기는 DMZ 내부이다. 북한과 너무 가깝기 때문에 서로 좀 싸우지 말라고 국제법상 '비무장 지대'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남과 북 모두, 일반 소총수나 수색대까지는 아니어도 민정경찰이라는 일종의 경찰을 보내서 순찰시키고 있다. 쟤들은 일본 자위대가 군대인 것만큼 군인이다. ㄲㄲㄲㄲㄲㄲ
  • 독도: 이건 무슨 일제 시대 독립 운동도 아니고.. 영토 분쟁 지역이라고 국제 사회에 호소할 가치조차 없다. 당연히 자국 영토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평범한 해안경비대 내지 해경 수준에서 끝이다. 굳이 해군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물론 이런 처신은 일본이 무슨 북괴처럼 수시로 무식하게 도발하는 야만적인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

2. 보스와 리더

흔히.. boss 같은 사람이 아니라 leader 같은 사람이 돼야 한다고..
이런 요지의 글을 나도 한 10년도 더 전부터 봐 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솔선수범하라~~ 수직이 아닌 수평적 관계.. 뭔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현실에서 큰 조직이 돌아가려면 결국은 보고만 받고 지시만 내리는 boss 같은 사람도 여전히 필요하고, 반대로 실무자들을 통솔하는 leader 같은 사람도 필요하다.

상급자도 시간과 체력의 한계가 있는 사람인데.. 최고위 상급자가 모든 걸 일일이 시범 보이고 다 지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슨 북괴 김 정은 현지지도도 아니고..
군대로 치면 boss 대신 commander이겠지.. 중대장 급 이상 지휘관과, 분대장/소대장 지휘자의 차이인 것이다.

엄청난 옛날에 활 쏘고 창검 갖고 싸우던 시절에야 최고위 장수나 무려 왕이 직접 앞장서고.. 심지어 장수들끼리 일대일 맞장만 뜨는 걸로 전투의 승패를 결정 짓기까지 했었다. 군인과 무인의 차이가 지금보다 크지 않았던 것이다. 현대의 전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각종 병기· 무기의 위력이 너무 강해지면서 제아무리 체력 체격 깡패인 사람도 총 한 방 맞으면 무조건 죽게 됐다.
그러니 이제는 아무리 용맹한 병사라도 총알 포탄이 날아오면 닥치고 수그리고 엄폐부터 하게 된다. 이건 그 어떤 격투 무술이나 스포츠에도 없는 기동일 것이다.

거기에다 통신 기술도 발달했으니 최고 사령관 참모진은 이제 벙커만 짱박히게 되었다. 예전의 장수가 하던 "나를 따르라"는 소위· 중위 같은 초급 장교의 몫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인간 흉기에만 특화된 직책은 특전사 같은 부사관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이다.
boss인지 commander인지가 되기 위해서 그래도 leader의 경험과 자질이 필요하다는 건 변함없기 때문이다.

3. 고전 영화 "빨간 마후라"

미국에서는 1986년에 "top gun"이라고, 대놓고 소련이라고 지목은 안 했지만 어쨌든 가상의 적국을 설정해서 전투기 공중전을 정말 실감나게 잘 묘사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옛날인 1964년에, 1964년작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명작 공군 영화가 만들어진 적이 있다. 바로 "빨간 마후라"이다.

빨간 마후라에서는 우리나라 영화 역사상 최초로.. 공중전 장면이 아주 생생하게 촬영됐다.
그때는 따로 소품이니 세트니 CG니 넣을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 군용기를 띄우고서 날개에다가 그 비싼 카메라를 ON 시킨 채로 달아서 촬영하고..
교전 장면도 공포탄이 아니라 진짜 실탄을 위험 무릅쓰고 갈기면서 찍었다. 군용 실탄이 대량생산 덕분에 차라리 더 저렴하기 때문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6 25 전쟁이라 하면 육군이 후퇴했다가 고지 점령하는 땅따먹기.. 아니면 인천 상륙작전 쪽의 인상만 너무 강한데.
빨간 마후라는 1952년에 '공군'이 세운 탁월한 무공인 평양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을 다뤘다.

전쟁 중엔 적의 보급로를 끊기 위해 교량을 폭파하는 게 중요한 임무로 등장하곤 했다.
2차 세계 대전 영화 중에서도 "콰이 강의 다리"처럼 증기 기관차가 달려오는데 철교를 폭파해서 일본군을 엿먹이는 데 성공한 일화를 다룬 작품이 있다.
얼마 전 우크라이나 전쟁 때도 크림대교가 소리소문 없이 폭파된 적이 있었다.

그것처럼.. 6· 25 사변 중에 육군은 이때 이미 휴전선 고지전만 엎치락뒷치락 중이었던 반면,
공군은.. 강릉 기지에서 전투기를 띄워서 평양 적진까지 쑥 날아가서 육지 교량 목표물을 폭격했던 것이다. (저 땐 아직 수원 세류 공군 기지가 아직 없었음. 그래서 더 먼 강릉에서..)

그것도 미군/UN군이 실패했던 임무를 우리 공군이 위험 무릅쓰고 저공 폭격해서 성공하고도 무사히 살아서 돌아왔었다! 단, 영화에서는 신파를 넣으려고 주인공이 피격 당하고 전사하는 걸로 스토리가 바뀌었다.
그리고 그 당시 여건상 어쩔 수 없었던 거..
6 25 당시 국군이 띄웠던 구닥다리 왕복 엔진 P-51 무스탕을 구할 수 없었던지라, 영화에서는 촬영 당시에 현역이던 제트 전투기 F-86이 대신 등장했다.

아~ 그래서 개인적으로 얘는 6 25를 다루고 있다면서 시대가 그 후의 나중을 다루는 것 같고 좀 헷갈렸었다.
"빨간 마후라" 노래는 원래 이 영화의 OST였지만.. 영화와 음악이 워낙 고퀄이었기 때문에 공군에서 얘를 군가로 정식 채택해 버렸다.

영화는 원본 마스터 필름까지 외국으로 수출해 버려서 없어졌다가 나중에 굉장히 어렵게 다시 구하고 복원해서 디지털화한 것이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서 이렇게 유튜브로 편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 보기 )

참, 그러고 보니 초딩용 공군 전용 동요도 있었다.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 우리 공군 아저씨 ... 우리의 '희망의 꽃' 대한의 공군" 이렇던가..
'희망의'에서는 박자가 셋잇단음표라는 게 포인트임. 타군에 대해서 이런 노래는 딱히 없는 것 같다.

4. 천조국의 전사 통지 방식

그리고 끝으로.. 미국, 아니 미군은 물리적인 군사력 화력뿐만 아니라, 참전 용사들을 예우하는 수준도 가히 천조국 급인 걸로 유명하다. thank you for your service가 몸에 배여 있다.
미국 국내선 정도이면 기장이 "현재 우리 비행기에는 명예 훈장의 수훈자께서 같이 탑승해 계십니다"라고 자랑을 할 정도이고, 전사자 유해를 같이 운구하고 있다면 도착 공항에 착륙한 뒤에 "참전 용사께서 먼저 하기하도록 승객 여러분께서 기다려 주십시오" 이렇게 안내를 한다.

이렇듯, 예우 대상자의 생사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전사했다면 그야말로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유해를 수습하며, 유족에게 전사 소식을 전하는 방식도 정말 남다르다. 다음 영상을 보자. (☞ 보기 )
이런 소식은 정복 차림의 간부급 군인, 특히 고인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을 발품팔이 시켜서 반드시 대면으로 전한다. 자기 아들이나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뉴스 따위로 먼저 접하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름 최대한 예를 갖춰서 소식을 전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파병 군인을 둔 가정이라면 갑자기 정복 차림의 군인 두세 명이 자기 집을 찾아오는 게 사실상 저승사자의 왕림이나 마찬가지이다.

전사 소식을 들은 유족이 표정이 싹 변하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문을 쾅 닫아 버리거나.. 심지어 물을 끼얹거나 멱살 잡고 쌍욕에 폭행까지 한댄다.
그래도 이 사람들은 일체의 맞대응을 하지 않고 묵묵히 몇 시간 며칠이고 집 문앞에서 기다리고 유족들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 준다.

오히려 유족이 졸도라도 할 경우를 대비해서 집 근처의 가까운 의료시설의 연락처까지 미리 파악해 놓고 찾아간다.
유족이 제정신인 상태에서 전사 사실을 받아들이고 후속 절차에 동의까지 해야 이 사람들의 임무가 끝나기 때문이다.
어디 콜센터 직원이나 카페 알바하고는 차원이 다른 감정노동을 하는 셈이다.

2009년작 영화인 Taking Chance가 이 주제와 관련된 유명한 작품이다.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Chance라는 게 인명이어서 실제 의미는 "챈스 일병의 귀환"인데, "기회 잡기"라는 언어유희를 구사한 것이다.
이건 '영현 봉송'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식만 전하는 전사 통지하고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하지만 전사 통지관 분위기에다가 명예훈장 수훈자의 예우 같은 심상이 더해져서 더 드라마틱한 영화 소재가 만들어진 것 같다. 제일 하이라이트 장면은 전사자 유해를 호송하는 차량의 앞뒤로 다른 민간 차량들이 알아서 헤드라이트를 켜면서 경의를 표하고 에스코트를 하는 모습이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23/07/26 08:35 2023/07/26 08:35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187

0. 먼 옛날.. 특히 성경 시대

(1) 처음엔 병거라는 게 운용되다가 나중에 군인이 직접 말에 타는 걸로 바뀌었다.
모세 일행을 추격하러 나섰던 이집트 군대, 엘리야의 승천 장면.. 그러다가 요한계시록의 말 탄 자들
안장과 등자가 발명되고 말이 품종 개량되어 덩치와 체력이 커진 덕분이다.

(2) 옛날의 공성전의 후신이 오늘날로 치면 참호전 정도 되겠다.

(3) 그러고 보니 성경에는 수많은 전투 장면이 나오지만, 딱히 해전이 기록돼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나마 요나서와 사도행전이 바다 냄새 풍기는 스토리가 많기는 하지만.. 그건 그냥 평범한 항해와 난파 얘기이니까..

1. 육군, 총기

(1) 주 무장이 냉병기에서 화약 총포로 바뀌면서, 군인과 무인은 영역이 달라지고 차이가 더욱 커졌다. 무인과 가깝고 개인의 피지컬이 크게 부각되는 병과는 특수부대나 저격수, 공작원 같은 쪽으로 세분화되고, 장교보다는 부사관의 성격이 강해졌다. 큼직한 방패나 금속 갑옷이 없어지고, 방어구는 방탄모나 방탄조끼 정도만 남았다.

(2) 1700년대까지만 해도 군인들이 빨강 파랑 등 화려한 군복을 입고 직접 전장에서 싸웠지만(나폴레옹, 미국 독립전쟁 등).. 지금은 그렇지 않고 그냥 활동하기 편하고 위장 잘 되는 칙칙한 색상으로 전투복이 싹 바뀌었다. 이젠 계급장이 눈에 너무 잘 띄는 것조차도 실전에서는 위험한 지경이니까.. 무연화약이 발명되고 개인 각개전투가 가능해진 덕분이다.
화려한 군복은 사관생도 예복으로나 남아 있다. 제식이나 총검술 같은 그냥 옛날 군대 legacy이다.

(3) 총이 발명되기는 했지만,
옛날에는 화약 가격이 그렇게도 비싸서 천하의 영국군 레드코트조차도 실탄 쏘는 훈련을 평소에 좀체 못 할 정도였다고 한다.
훗날 1차 세계 대전 때는 유대인 과학자 ‘하임 바이츠만’이.. 화약 만들 때 필요한 아세톤을 쉽고 저렴하게 합성하는 기술을 개발해서 나라를 구하고 영국의 승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4) 공용화기인 기관총 말고, 개인화기가 방아쇠를 누르고만 있으면 두두두두 갈겨지는 ‘자동’ 모드까지 지원하기 시작한 지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물론 이런 총은 전문적인 기관총이 아니기 때문에 방열 능력에 한계가 있는지라, 정말 1시간 동안 계속 갈기고 있을 수는 없다.

19세기 사람들은 기관총만 갖고도 너무 놀라서 이제 사람들이 무기의 위력이 너무 무서워서 전쟁을 선뜻 못 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실제로는 기관총만으로는 충분치 않았고, 나중에 핵무기까지 발명된 뒤에야 진짜 현타가 찾아오게 됐다.

권총은 작아서 불순한 용도로 은닉하기 쉽기 때문에, 군용 소총은 사정거리 길고 위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규제가 심하다. 민간인이 수렵이나 호신 용도로 그나마 가장 쉽게 구경하고 보유할 수 있는 총은 위의 두 속성과는 거리가 먼 산탄총이다.
권총은 경찰에게 적합하다. 군대에서는 빈약한 보조 무장에 지나지 않지만, 경찰에게는 그게 삼단봉이나 테이저 건 다음으로 최후에 등장하는 최강의 무력이다.

2. 해군

(1) 목재 범선 시절에는 배수량 겨우 몇백 톤짜리 작은 배에 수십 명의 선원이 타고 대양을 건너고 이걸로 심지어 전투도 벌였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그 시절 화력으로는 배를 통째로 다 파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적선에다 다리 놓고 쳐들어가서 배에서 백병전 벌여서 승무원들만 제압하고, 배는 노획하거나 심지어 빼앗겼던 배를 도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공성전이나 시가전이 건축물 대신 배에서 벌어지는 거나 마찬가지.. 요즘 같으면 적군이 아니라 그냥 테러리스트나 해적과 싸우는 것하고 비슷한 양상이다. -_- 배를 통째로 격침시켜서는 안 되고 인질도 보호해야 하는 그런 상황 말이다. 하긴, 옛날에는 해군과 해적의 구분도 지금만치 분명하지 않았고, 국가 공인 해적인 사략선 같은 조직도 있었다.

(2) 옛날 범선 시절엔 대포들이 배 옆구리에 일렬로 쭈욱 늘어서 있었으며, 그 구조상 위로 발포는 불가능했다.
이런 배를 전열함이라고 불렀는데, 배의 재질이 철로 바뀌고 동력원이 돛 대신 엔진으로 바뀌면서 현대적인 의미의 전함이 등장했다. 20세기가 돼서야 함포가 밖으로 돌출돼 나오고 구경이 더 커지고, 나름 고각으로 대공 발포도 가능해졌다.

(3)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해전에서는 포의 사정거리가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했다. 바다야말로 아무 지형 장애물이 없으니, 우리는 안 맞고 적은 맞을 수 있는 사정거리에서 포 쏴서 맞히면 장땡이었기 때문이다. 포의 사정거리를 올리려면 배가 커져야 했다.
물론, 적선이 아예 보이지도 않고 지구의 둥근 곡률을 실감할 정도로 수십~수백 km 이상 아득히 먼 곳에서 쏘는 수준은 아니었다.

(4) 러일 전쟁 시절엔 전투기 폭격기라는 게 사실상 없다 보니, 러시아 발트 함대가 인도양 건너 무려 7개월을 항해하면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왔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삽질인 것 같은데..??
러일 전쟁은 육군의 203 고지전과 해군의 쓰시마 해전이 같이 존재하는 것도 그렇고.. 양상이 굉장히 특이했다. 40여 년 뒤에 소련군이 일본 관동군을 박살내는 방식은 그때와는 또 완전히 달라졌다.

오늘날은 핵무기가 너무 위력이 강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더는 이걸 갖고 경쟁을 하지 말자고 나라들이 조약을 맺게 난리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너도 나도 대형 전함을 개발하는 게 요즘으로 치면 핵 개발을 하는 것과 비슷한 군사 위협이었다. 그래서 강대국들은 우리 다같이 일정 배수량을 넘게 전함을 만들지는 말자는 조약을 서로 체결할 정도였다. 참 격세지감이다.

(5) 그러나 요즘 군함은 2차 대전 시절의 전함보다 오히려 다시 작아졌다. 엄청나게 거대한 배는 항공모함뿐이다. 그건 배가 직접 싸우는 게 아니라 함재기가 싸우는 거고..
항공모함을 표방하는 프로토스 캐리어와, 태평양 전쟁 시절 대형 전함을 표방하는 테란 배틀크루저의 관계가 더 잘 와 닿을 것이다. 후자는 심지어 포 이름조차도 ‘야마토’이다!!!
대형 전함은 대형 대륙 횡단 여객선과 동급으로 유행이 끝나서 퇴역했다. 하지만 해병대의 입장에서는 재래식 전함이 있어서 나쁠 게 없다. 상륙 작전 때 뒤에서 사정거리 수십 km에 달하는 함포를 펑펑 쏘면서 아군을 지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엄호 사격이 아닌 엄호 포격..!!

여담이지만, 군함뿐만 아니라 도로도 비슷하게 스케일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오늘날은 대도시라도 시내 도로를 예전처럼 너무 큰 10차로, 12차로 급으로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량 통행을 억제하고 보행자와 대중교통을 우대하는 쪽으로 도시를 설계한다.
시내 도로는 뭔가 전함 같고, 보행자가 아예 없는 자동차 전용 도로나 고속도로는 항공모함에 대응하는 것 같다. 차라리 후자는 전자보다 더 커질 여지가 있다.

(7) 그나저나 잠수함은.. 여느 수상함과는 성격이 좀 다르고, 육군 저격수 같은 특수 병과의 해군 버전 같은 느낌이 든다. 저격수의 바다 버전이랄까? 하긴, 저격수는 전투복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길리슈트를 입고 잠복한다.;;

3. 공군

(1) 2차 대전까지만 해도 전투기가 고작 왕복엔진 프로펠러기였다는 것, 원자폭탄을 미사일로 날린 게 아니라 유인 폭격기가 직접 투하했다는 것..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제트 엔진이라는 게 아직 제대로 상용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태평양 한복판에서 항공모함 함재기끼리 싸운 전투만 해도 가히 그 시절로서는 SF급의 첨단 전투였겠지만,
적선 근처까지 직접 저공 비행해서 폭탄이나 어뢰를 떨궜던 급강하폭격기와 뇌격기는.. 뭔가 심하게 위험하고 삽질스러워 보인다. 저렇게밖에 할 수 없었나..??
이것도 다 미사일이란 게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로켓 엔진은 제트 엔진의 파생형이다.

(3) 적성국가에서 누가 적기나 적선을 몰고 귀순해 와서 그걸 갖다바치면..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보상이 주어지며 그 사람은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이런 캐이득 귀순을 적극 유도하고 장려하기 위해서이다.
그나마 배는 느리고 승무원이 많기라도 하기 때문에 돌발행동이 극히 어려운 반면, 전투기 같은 건 한두 명밖에 안 타는데 기동성은 넘사벽이다. 그러니 조종사가 나쁜 마음 품으면 그 비싼 국가 자산을 갖고 돌발행동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세계 각국에서는 수송기도 아니고 전투기 조종 정도면 간부인 건 너무 당연한 일이고, 부사관도 아니라 장교에게 맡긴다. 수백 kill을 자랑하는 인간흉기 최정예 저격수나 특전사 대원은 부사관이지만, 전투기 조종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허나, 구 일본군은 이런 어마어마한 전투기를 운용한 군인의 계급이 꼴랑 ‘병’이었던 유일한 군대이지 싶다. 다시 말하지만 전투기를 정비하는 군인이 아니라, 조종하고 그걸로 목표물을 공격하던 군인 말이다. 인류 역사상 유일하다.

(4) 해병대가 육군과 해군 사이에서 좀 짬뽕 같다면(병의 복무 기간은 육군과 동일하지만, 그래도 간부는 장교는 육사가 아닌 해사 출신).. 항공모함 함재기는 공군과 해군 사이에서 좀 짬뽕 같다. ㄲㄲㄲ
육군과 해군이 운용하던 항공대가 독립해 나가서 공군이 됐는데.. 미국은 아직 상징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이제 공군에서 우주군이라는 걸 따로 독립시키려는가 보다.

4. 여담: 총알과 포탄과 미사일

오늘날 바다에서 군함들이 서로 보이는 곳에서 총포를 주고받는 건.. 그냥 옛날 백병전이나 전열보병과 다름없는 짓으로 취급된다.
아니면 저건 우리나라 제2 연평해전 때 그랬던 것처럼.. 확전을 억제하려고 우리 쪽에서 비정상적으로 불리하게 봐 주고 먼저 얻어터져 줬을 때에나 벌어지는 일이다.

그것처럼 전투기에서 기총사격..?? 이건 뭐 육군으로 치면 대검이나 권총 딱총 정도의 초라한 무장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런 무장도 가끔은 필요할 때가 있고, 또 미사일 만능주의만 외치기에는 미사일은 너무 비싼 무기이기도 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총포 같은 재래식 무장이 육해공을 막론하고 완전히 퇴출된 건 아니다.

  • 한번 동력을 얻어서 날아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엔진이 달려서 추진을 하면 그건 로켓이나 어뢰 같은 물건이 된다.
  • 날아가서 박히기만 하는 게 아니라 폭발해서 파편도 날리면 그건 단순 총알 탄환을 넘어서 수류탄이나 포탄, 폭탄이 된다.
  • 거기에다가 그냥 날아가는 게 아니라 목표물을 향해서 방향 전환까지 하면 그건 유도탄이나 미사일이라고 불린다.

Posted by 사무엘

2023/07/20 08:36 2023/07/20 08:36
, , , , , ,
Response
No Trackback , 3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185

1. 각종 비례 관계

  • 참모 장교와 지휘 장교의 관계는 마치 연구 교수와 강의 교수의 관계하고 꽤 비슷해 보인다.
  • 전투기 조종사에게 비행 시간(경력)은 학계에서 무슨 게재된 논문의 수와 피인용 횟수와 비슷하고.. 전방석이냐 아니냐는 1저자냐 아니냐와 비슷한 관계인 것 같다.
  • "핵물리학 - 원자력공학"의 관계는 "천체물리학 - 로켓공학"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 해군은 배가 곧 생활관 겸 전장이다 보니.. 견시는 위병소의 초병과 각종 GOP 경계를 합친 근무를 하는 것 같다.

  • 세상에 직업적으로 총을 쏘는 사람은 군· 경뿐만 아니라 엽사, 사격 선수, 스나이퍼, 공작원 등 여럿 있다.
    그러나 자동화기를 이용해서 여러 발을 드르르륵~ 갈기거나 기관총· 대포 같은 것까지 쏘는 곳은 역시 군대밖에 없다. 한 발씩 조준 사격이 아니라 엄호 사격이라는 걸 하는 사람도 군인밖에 없다.
  • 쿠베르탱 메달은 미국 명예 훈장의 스포츠 버전인 것 같다.

2. 진로

장교가 되는 방법은?
(1) 육해공 사관학교 / (2) 육군 한정으로 3사 / (3) ROTC / (4) 학사장교 / (5) 간부사관 또는 군의관 군법무관 군종장교 따위의 특수 병과

나라의 최정예 엘리트 장교를 육성하는 사관학교는 오랫동안 남자 전용이다가 국내 기준으로 1990년대 말부터 여생도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간호 사관학교는 반대로 여자 전용이다가 2010년대가 돼서야 남생도를 소수나바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이공계 대학생의 병역 해결 진로는?
(1) 국내 이공계 박사 특례 / (2) 국내 이공계 석사 후 전문연구 / (3) 산업기능요원 / (4) 공군 / (5) 학부 때 휴학하고 육군으로 제일 빨리 다녀오기.. 그 뒤 바로 취업 또는 유학
이쪽은 학사장교나 군 장학생 같은 코스가 생소한 편이다.

3. 가늘고 길게 바뀌는 전투 양상

(1) 전쟁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단시간에 결판을 못 내면 결국 전선이 고착되고 지긋지긋한 엎치락뒷치락 소모전으로 양상이 바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6 25 사변의 1951년 이후 전황, 1차 세계 대전 참호전 따위.

(2) 바이러스성 질병은 단시간에 숙주를 바로 죽여 버리는 게 아니라면, 결국 가늘고 길게 널리 퍼뜨리는 쪽으로 변이한다.
코로나19 우한 폐렴, 신종 플루 (옛날에 방역 때문에 말년휴가를 짤렸던 김 정훈 병장 인터뷰.. ㄲㄲㄲㄲㄲ), 메르스...

(3) 북괴도 과거 짧고 굵게 깽판치고 개기다가 몰락한 수많은 다른 악의 무리들과 달리.. 최대한 가늘고 길게, 자기 체제를 위협할 정도의 깽판은 안 치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교사: 과거 일제, 나치 독일, ISIL, 루마니아 차우세스쿠, 이라크 후세인 등~~

족발은 피자· 치킨 같은 다른 야식과는 달리.. 젓가락만으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살코기 부위와, 손을 동원해서 뼈를 발라내며 먹어야 하는 부위가 같이 들어있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먹는 양상이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는데..
이거 무슨 전열보병 전투 같다. 처음엔 총질 하면서 적에게 접근하다가 뼈를 잡고 먹는 건 백병전 모드가 되는 것과 같다.;;;

4. 구금 시설

사회에서는 다 똑같이 돈으로 때우는 벌 같아도 법리적으로는 벌금, 과태료, 범칙금, 추징금은 성격이 모두 다르다.
그런 것처럼 똑같이 사람을 가둬 놓는 시설 같아도 법리적으로는 진짜로 벌을 주는 것이 목적인 감금과, 형 집행을 기다리는 동안 감금은 성격이 다르다.

사회에서는 전자는 교도소, 후자는 구치소로 역할이 나뉜다. 무기징역이 확정된 죄수는 교도소로 가겠지만, 사형수는 구치소로 간다.
그런데 교도소 독방도 뭔가 교도소 안의 교도소라는 징벌적인 녀석이 있는가 하면, 그냥 약한 죄수의 격리 또는 VIP 대접이라는 비징벌적 녀석으로 성격이 나뉜다.

군대 영창도 마찬가지다.
영창은 가벼운 죄를 지어서 며칠 다녀오는 것 자체가 목적인 징벌적인 용도가 있는가 하면, 군사재판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수용되는 구치소 같은 용도도 있다. 후자는 무죄나 집행유예를 받는다면 다행이지만 일단은 영창 며칠로 끝나지 못하는 훨씬 더 큰 죄를 지은 군인에게 해당된다. 차라리 전자 영창 수감자가 처지가 더 나을 것이다.

지금이야 영창이란 게 폐지됐는데.. 전자의 징벌성 영창 수감이 없어지고 군기교육대로 대체된 것이다. 국방부 시계가 멈췄는데, 그 동안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빡세게 굴러야 하니.. 영창이 없어졌다고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다.
미결수를 수용하는 후자 용도의 영창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한다.

5. 징집 관련 법 적용

우리나라 군대는 아무리 징집할 사람이 없어서 난리라 해도, 질이 지나치게 나쁜 범죄자 전과자까지 끌고 가서 총을 쥐어 주지는 않는다. 징역 6개월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으면 현역이 아닌 보충역으로 처분하고, 1년 6개월 이상이면 전시근로역 처분.. 그리고 무려 6년 이상이면 이건 뭐 일체의 병역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 노답 면제가 된다.

그런데, 여기에 예외가 있다. 바로 병역 신체검사 판정을 속인 병역법 위반죄..
86조에 따르면 병역기피 목적으로 자해 꼼수는 1년 이상 5년 이하 징역에 처해지는데, 이건 징역 6개월 이상의 실형일 뿐만 아니라, 벌은 벌대로 받은 뒤에 신검을 다시 받고 군대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끌려간다~!

이거 마치 탈영죄의 공소시효가 끝난 뒤에는 명령 불복종죄로 처벌하는 것과 비슷한 법리인 것 같다.
차라리 잔머리 안 굴리고 당당히 88조를 씹고(소집 명령) 병역 거부를 선언하고 교도소에 제 발로 가도 요즘은 최소 형량인 징역 1년 6개월만 때리고 전시근로역 처분으로 끝난다. 이게 덤터기 없이 더 깔끔할 수도 있다.

좀 다른 분야이지만 기독교 얘기를 꺼내자면.. "하나님이 불신자의 기도에 응답을 해 주시는가?"라는 의문이 있다.
하나님이야 신자라 해도 죄에 오랫동안 빠졌거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헬렐레하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하물며 불신자의 기도라면 거들떠볼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딱 하나 예외가 있으니 바로 "예수 믿고 싶습니다, 구원받고 싶습니다, 이제 신자가 되고 싶습니다"라는 영접 기도이다. 하나님이 이런 불신자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지 않는다면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가 없을 것이다.
병역비리 없이 모든 사람을 군대에 끌어들이기 위해, 탈영을 막기 위해, 또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 법에 추가적으로 또는 예외적으로 허용되어야 하는 논리가 이런 식으로 있긴 한가 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8/10 19:36 2022/08/10 19:36
Response
No Trackback , 3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053

1. 자동차와 도로

과거에 우리나라의 몇몇 자동차와 고속도로에는 유사시에 군사용으로 전환할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흔적이 좀 있었다.
먼저 고속도로의 경우, 일부 긴 직선 구간에 ‘비상 활주로 공용 구간’이란 게 있었다. 경부 고속도로 기준으로 대표적인 예는 수원-신갈, 천안 북부, 그리고 김천 부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는 중앙분리대부터가 튼튼한 고정식 붙박이가 아니라 좀 부실하고 portable한 형태였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도로를 틀어막고 중앙분리대를 치운 뒤, 여기로 전투기의 이착륙 훈련을 실제로 했었다~! 비상 활주로 구간의 한쪽 끝엔 주기장 역할을 하는 넓은 공터도 붙어 있었다.

세상에, 경부 고속도로의 수도권 구간에 전투기가 뜨고 내렸었다니..!!
고속도로에 차들이 365일 24시간 넘쳐나고 도로 주변이 몽땅 개발되어 가는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관행일 것이다.

그러나 197, 80년대.. 고속도로와 올림픽대로가 무단횡단자가 있을 정도로 한산하던 시절엔.. 기왕 이런 도로를 만드는데 유사시에 활주로로 활용 가능하게 만드는 게 아주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애초에 박통이 잔뜩 참고했던 아우토반부터가 나치 독일 시절에 활주로 겸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었다.

그러다가 이런 활주로는 고속도로를 틀어막는 게 도저히 불가능해지고, 고속도로를 차지하지 않는 대체 활주로들이 따로 만들어지면서 차차 없어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음으로 자동차는.. 쌍용 코란도 같은 찦차/SUV에 ‘등화 관제등’ 장치가 있었다.
찦차는 일반 승용차보다 차체가 높고 사륜구동도 지원하니 험지를 잘 달리고 군용으로 적합하다. 우리나라는 이런 차량을 전시에 필요하면 군용차로 우선 징발해 가는 대신, 세금 같은 다른 금전적인 부분에서 혜택을 주는 식으로 차량 구매자와 딜을 했다. (예: 영업용이 아닌 자가용이지만 동일 배기량의 타 승용차보다 자동차세 저렴)

아.. 아니, 사실은 이건 딜이 아니고 일방적인 강제 의무 통보였다. “세금 혜택 안 줘도 되니 내 차는 전시에 징발하지 마세요” 라는 선택이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등화 관제란 전시에 우리 위치가 적에게 노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건물이나 차량의 불빛을 몽땅 끄고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는 걸 말한다. 하지만 자동차는 야간에 안전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아주 자그맣고 특히 위로 새어나가지는 않는 불빛은 필요한데, 그게 등화 관제등이다.

우리나라는 전시 징발을 염두에 두고 SUV 차량에 등화 관제등의 장착이 오랫동안 의무였다.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던 희한한 조건이었는데, 이건 1999년쯤에 폐지됐다.

2. 잠수함

우리나라 해군은 1990년대가 돼서야 잠수함이란 걸 처음으로 도입하고 운용하게 됐다(장보고 급 잠수함).. 자국 인공위성 발사와 시기가 비슷하다~!
즉, 우리나라는 민주화 이전 군사정권 시절에는 잠수함을 보유한 적이 없었다. 뜬금없는 예이지만, 1980년대 이전에는 국내에 국산 참치 통조림이라는 게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반세기 전, 태평양 전쟁 때는 일본이나 독일, 미국 등이 잠수함을 잘도 굴려서 유명한 해전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6 25 전쟁 때 우리나라에서 잠수함이 어뢰를 쏴서 적선을 격침시켰다거나 한 건 없다. 이것도 뭔가 역사· 전쟁사와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오오~ 현타를 느끼게 한다.

(오히려 북괴는 육군만 신경 쓰느라 바다에서는 탈탈 털렸었다. 섬들은 북한 지역의 것들까지 국군과 UN군이 몽땅 점령하고 있다가 나중에 철수했을 정도였다. 그러니 서해5도가 북한 본토에서 굉장히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휴전 당시에 남한이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럼 북괴는 언제부터 잠수함을 도입한 걸까..?? 쟤들은 잠수함으로 어뢰를 몰래 쏴서 천안함을 격침시킨 적이 있었고.. 더 옛날엔 무장공비를 침투시킬 때 잠수함을 동원했었다. 1996년 강릉처럼. 쟤들의 도입 이력도 문득 궁금해진다.
이제는 잠수함이 고작 공작원 침투용이 아니라 아예 미사일 쏘고 튀는 용도로 쓰이지만 말이다. 자기도 원자력으로 움직이고, 미사일에도 핵탄두가 달려 있고..

우리나라 최초의 잠수함은 의외로 우리나라 철도와도 접점이 있다.
그 장보고 급 잠수함에 들어간 엔진은 독일 MTU제 16기통짜리 디젤 엔진인데.. 이게 거의 그대로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액압 동차(DHC)에 쓰였기 때문이다. (MTU 16V 396TC)
DHC도 1987년 7월에 대우 중공업 생산분이 첫 도입되어서 1990년대 초에 리즈 시절을 찍었음을 생각하면.. 시기가 얼추 비슷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즉, 새마을호 디젤 동차에는 잠수함용 엔진이 쓰인 셈이다.
출력 대비 아주 조용하고 가벼워서 좋긴 했는데.. 묵직한 디젤 기관차에 비해서 너무 가벼워서 바퀴가 레일에서 헛도는 현상에 취약했다고 한다.
평지에서 빠르게 달릴 때는 좋은데 오르막은 잘 못 오르니.. 새마을호 디젤 동차는 경부· 호남 외에 중앙선에는 투입되지 못했다. 나중에 선형 개량이 된 장항선과 전라선 정도에나 추가로 들어갔다.

독일 MAN사가 자동차/엔진 제조사로 유명한데, MTU라는 기업도 있구나.
유보트를 만들었던 본가에서 장인 정신으로 만든 잠수함 엔진인지..??
근데 디젤 엔진은 수면에 떠 있을 때에나 쓰이지, 잠수 중일 때는 공기가 없기 때문에 어차피 전기 모터로 움직여야 된다.
잠수함이야말로 배터리가 차지하는 공간과 무게 오버헤드가 굉장히 크지 싶다.
달에서 월면차가 내연기관-_-이 아니라 당연히 빼박 전기차여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 여담

잠수함이나 잠수정, 호버크래프트, 공중급유기 같은 건 아무래도 군대에서만 볼 수 있는 물건이다. 민간 여객기야.. 엄청 장거리 노선이라면 차라리 휴게소에 들르듯이 중간 기착을 하고 말지, 비행 중의 실시간 급유 같은 초 오바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다.

헬리콥터도 군용 아니면 기껏해야 소방· 인명 구조 용도이다. 이런 게 민간에서 뭔가 정규 노선을 뛰는 대중교통으로 쓰이지는 않는다. 저런 특수한 교통수단들은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용도로만 적합하지, 많은 승객과 화물을 저렴하고 빠르고 편하게 수송하는 쪽은 안타깝지만 완전 쥐약;;;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군용기나 군함을 만들던 기술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 일본의 경우, 1960년대에 이미 100% 자체 기술로 신칸센 고속철을 개발했는데, 거의 같은 시기에 YS-11이라는 국산 여객기도 자체 개발했다. 열차와 비행기를 모두.. ㅎㄷㄷㄷ;;
쟤들은 그 전부터 제로센 같은 군용기까지 만들던 나라이니 저런 것도 가능했지 싶다. 초창기 신칸센 0계는 아예 왕년에 자기들이 만들었던 제로센의 앞모습을 쏙 빼닮은 형태로 만들기도 했었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8/08 08:36 2022/08/08 08:36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052

미국 관련 여러 이야기들

1. 천조국 군대의 기상

미군은 무슨 중국이나 북괴처럼 대규모 거위걸음 열병식이나 매스게임, 특수부대 차력쇼를 벌이면서 자국의 군사력을 과시하지 않는다. 독립기념일이나 대통령 취임식 때 옛날 군대 코스프레 퍼레이드 정도나 하지..
이건 서울대나 육사가 "취업률 xx%" 이러면서 학교 홍보하고 지하철역 안에다가 광고를 붙이지는 않는 것과 정확하게 같은 이치이다.

지금이야 중공과 러시아가 많이 성장해서 미국 패권을 위협 중이긴 하다. 그러나 미국은 단순 국력 물량이 아니라 기독교 세계관과 자유 민주주의 인권 이념을 바탕으로 세계를 석권하고 세계 질서를 확립한 나라이다. 저 사회주의 독재 국가--겉으로 법은 자유 민주주의 표방이지만, 여전히 옛날물이 많이 묻어 있는 경우도 포함--들이 미국의 이런 진정한 저력을 흉내 내지는 못할 것이다.

2. 한국과 일본과 미국의 과거

1980년대: 우리나라로서는 5공 시절이요, 일본은 쇼와 말기요, 미국은 레이건 대통령 시절이었다. 이때는 세계적으로 경제가 안정되고 오일 쇼크도 끝나고, 엄청난 호황기였다고 회자된다.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 정보화 시대, 과학 기술에 대한 장밋빛 희망, 우주나 사이보그를 소재로 한 온갖 기발한 SF물들.. 우리나라의 경우 마이카 시대, 일본은 특유의 버블 경제.. 이런 걸 생각해 보자~!

1960년대: 한국은 이때 ‘경부’라는 간선 고속도로 하나를 겨우 간신히 만들었다.
일본은 이때 시속 200km짜리 고속철도 신칸센을 세계 최초로 자체 기술로 개발했다.
미국은 거의 같은 시기에 로켓을 쏴서 인간을 달로 보냈다.;;

(1940년대: 바로 다음에 올라올 글에서 이 시대를 좀 다룰 것이다. ㄲㄲㄲㄲ)

그런데 더 옛날,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전간기이던 1920년대도 이와 비슷하게 세계적으로 좋은 추억이 남겨진 시기였다.
우선 한반도는 3· 1 운동 이후에 문화 통치가 시작됐다. 이때는 그 전의 무단 통치나 그 이후의 민족 말살 통치에 비해서는 훨씬 더 살 만했던 때였다. 항일 독립 운동만 아니면 여러 다양한 사회 활동이 허용되고 온갖 신문물도 들어왔다.

본거지인 일본도 정치판의 분위기가 아직 군국주의로 폭주하기 전이었고 그나마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분위기가 살아 있었다.
하물며 천조국은..?? 라디오 방송과 할리우드 영화, 뉴욕에 초고층 마천루, 포드 T 자동차 마이카.. 전부 얼추 이 시기에 등장했다. 또 국제 연맹도 세계 곳곳에서 마이너한 국가들의 분쟁은 잘 중재하면서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좋은 시절은 대공황과 함께 완전히 끝났으며, 이를 계기로 1930년대부터는 세계는 다시 분위기가 슬슬 험악해진다. 국제 연맹은 2차 세계 대전이 터지는 걸 막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정확하게 이 험난한 기간 동안 통치했었다.

3.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징집 관련 일화

미국 남북전쟁은 밀덕의 관점에서 보면 최초로 철도를 통한 보급, 후장식 총기와 저격수, 초보적인 단계의 기관총과 철갑선, 잠수함이 등장한 첨단 과학 기술 전쟁이었다. (풍경 사진과 종군기자는 남북전쟁보다 미묘하게 전인 유럽의 크림 전쟁 때 최초로 등장했고..)

일개 내전 주제에 탱크와 비행기만 없는 1차 세계 대전 급으로 시대를 앞섰던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그런데.. 이 남북전쟁은 징집과 관련된 일화가 전해지는 게 좀 있다. 둘 다 남군과 북군 중 어느 진영의 이야기인지는 확실치 않은데, 어차피 그게 중요한 사항은 아니었다.

(1) 전사
나라가 전시 상황이 되니 모병이 아닌 징병제가 시행됐다. 그런데 이때 부유층들은 300달러라는 돈을 내고 다른 사람을 대신 입대시키는 것으로 징병 의무를 회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는 대리 입대자도 어차피 징집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럼 어찌 되는 거지? 아무튼..

A라는 어떤 사람이 B라는 다른 사람을 대리 입대시켰는데, 그렇게 참전한 B는 전장에서 그만 전사하고 말았다. 문제는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A에게 징집 영장이 또 날아왔다는 것..
이때 그는 "나는 B라는 사람의 명의로 이미 전사하고 죽은 목숨이다. 이거 뭐 한군두도 아니고, 나는 또 징집되거나 또 국방세 내고 대리인을 내세워야 할 국방의 의무가 없다"라고 항변했다. 이 논리가 인정되어 그는 두 번 다시 징집되지 않았으며, 그게 판례로 정착했다고 한다.

이건 무슨 일사부재리의 원칙처럼 들리는데.. 예수님이 인간을 위해 대신 죽으신 것, '대속'이라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기독교 쪽에서 복음 전할 때 종종 인용되는 예화라고 한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다만, 출처가 불분명하고 그렇게 막 도덕적으로 본이 될 만한 일화까지는 아닌 것이 아쉽다. 부자들은 돈으로 군대를 다 빠진다고 그 당시에도 원성이 자자했었기 때문이다. 전사자를 예우하는 연금도 당연히 A의 유족이 아니라 B의 유족에게 지급돼야 할 것이다.

(2) 포로
옛날에는 전쟁도 현재보다 명분과 체통과 원칙을 따지면서 훨씬 더 신사적이고 고지식하게(?) 하는 면모가 있었다.
미국 남군과 북군이야 비록 지금은 총 들고 싸우지만 상대방이 같은 나라 같은 언어 같은 기독교 문화권인 사람이고, 전쟁이 끝나면 다시 화해해야 할 이웃이었다.

그래서 적군을 포로로 잡았는데 당장 포로를 번거롭게 관리할 여건이 안 되면..
포로를 죽이는 게 아니라 그냥 무장만 해제하고는 풀어 주는 경우가 있었다. 단, 이런 각서를 쓰고 동의를 받게 하고 말이다.

"우리가 사정이 여의찮아서 너를 석방해 주지만 너는 여전히 법적으로 우리 측의 포로이다. 그러니 훗날 포로 교환이 이뤄질 때까지 너는 군사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장교가 적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이런 절차를 거쳐서 풀려났다.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전선으로 곧장 복귀하고 전투를 지휘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그는 그 각서를 제시하면서 자기는 정식으로 포로 교환을 하기 전엔 군복무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군에서는 그 정황을 인정하고 그를 진짜로 내버려 뒀다고 한다.

이거 뭐, 감독 없이 시험을 쳐도 아무도 컨닝을 안 하고, 땅에다 금만 그어 놓고는 감옥이라고 해도 죄수가 거기 얌전히 앉아 있을 것 같은 샤방샤방 분위기이다.
저 때는 적이라도 약속을 지키기는 한다는 신뢰가 있으니 이런 '서류 상으로만 포로'가 가능했음이 틀림없다.

이런 분위기와 정반대였던 전쟁은 아무래도 80년 남짓 뒤의 태평양 전쟁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일본이고 미국이고 모두 상대방을 인간이 아니라 악마 괴물로 취급했다. 극도의 스트레스에다 악이 받친 나머지, 한쪽에서는 적군 포로를 말 그대로 잡아먹었으며(식인).. 다른쪽에서는 적군 시체에서 두개골을 뽑아서 아이템으로 갖고 다니는 Savage 실사판 '인외마경'이 벌어졌던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5/20 19:34 2022/05/20 19:34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022

군대의 관행들

군대라는 곳은 규율, 질서, ‘절도 있음’을 강조하는 집단이다. 그래서 외형적으로 무엇이든 구부리지 않고 ‘각 잡는 걸’ 아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일부 관행은 비록 폼 나고 멋있어 보일지는 모르지만, 전투력과는 별 관계 없으면서 쓸데없이 삽질스러운 똥군기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1. 직각 식사와 거위걸음

위의 둘은 그야말로 군대· 군인의 상징이다만.. 실제로 해 보면 엄청나게 힘들고 부자연스럽고 불편한다. 현직 군인이라도 일상적으로 시행하는 건 무리이다.
한국군의 경우 쌍팔년도 급의 먼 옛날에는 심지어 병들에게도 싸제물 빼기의 일환으로 훈련소에서 직각 식사를 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부사관들조차 그냥 패스이고, 저건 최정예 사관학교 생도만의 한 달 남짓한 통과의례로 존재감이 많이 축소된 듯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음으로 거위걸음은 걷거나 달릴 때 무릎을 굽히지 않으면서 걷는 동작을 말한다. 그러면서도 매 걸음마다 다리를 반쯤 발차기 하듯이 고각으로 드는 게 포인트다. 팔은 반대로 자연스럽게 흔들지 말고 차렷 자세이거나 소총을 파지하거나, 아니면 거수경례 자세를 유지한다. 시선은 정면이 아니면 측면에서 이 행군을 관전하는 최고존엄-_-이나 지휘관을 향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걸 수백· 수천 명의 병사들이 동시에 똑같이 수행하면 굉장히 웅장하고 위압감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직각 식사로도 모자라서 거위걸음 행군은.. 자유 진영 민주주의 국가보다는 과거에 전체주의 군국주의가 강한 나라 내지.. 오늘날의 북괴· 중국 같은 공산권 국가의 관행이라는 느낌이 든다. 마치 카드섹션 매스게임처럼 말이다.
라이온 킹 Be prepared 노래에서 하이에나 떼거지들의 행군 장면도 생각해 보시길..

총검술이야 냉병기 쓰던 옛날 군대 전술에서 유래되었지만, 저런 직각 식사나 거위걸음은 의외로 머스킷+전열보병 급의 옛날 군대하고도, 격투기 무술하고도 아무 관계가 없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중국 무술이나 일본 닌자 어쌔신 같은 것도 사실 19세기 말에야 정립됐듯이, 저 둘도 그에 준하는 비슷한 시기에 서양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흑백 카메라 내지 후장식 총기의 등장 시기와 비슷하다.

2. 거수경례

군인은 각 잡는 차원에서 평상시에 고개조차 함부로 숙이지 않는다. 그래서 평범한 인사 대신 거수경례가 관행이 돼 있다. 뭐, 나치식 경례도 나쁘지는 않지만 이제는 영구봉인 돼 버렸고..
여느 격투기 스포츠라면 대련 전에 상대방에게 인사 정도는 아무 제약 없이 고개를 선뜻 숙이며 한다는 걸 생각해 보자. 그런 데서 거수경례를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군대라고 해도 해군은 좁은 배의 복도에서 그 정도 팔 뻗을 공간도 없을 수 있기 때문에 경례를 더 약식으로 한다고는 한다.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경례 자세는 뭐 똥군기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성경에는 야전에서 얕은 개울물을 마실 때 경계하는 자세로 손으로 떠서 마신 사람 vs 그렇지 않고 팍 엎드려서 입을 수면에다 대고 벌컥벌컥 마신 사람을 갖고 군인 자질을 평가한 대목이 있다(삿 7:5-6). 그 유명한 기드온의 300 용사가 이 기준으로 선발되었다는 것도 진지하게 생각할 점이다.

한편, 단재 신 채호 선생은 세수할 때도 고개를 안 숙여서 옷을 다 적셨다고 한다. 그건 개인적인 다른 신념 때문에 그리한 것이지, 군사적인 각진 멋을 추구했기 때문은.. 아니다. -_-;;

3. 불침번

인간이 만든 거의 모든 건물이나 시설에는 24시간 상주하는 경비원이 있다. 이는 군대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사람은 잠을 자야 하니 24시간 경비를 서려면 2명 이상이 교대 근무를 해야 한다.
또한 건물이 아니더라도 여러 사람이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오지로(폭우, 들짐승 등..) 야영이라도 갔다면 아무래도 교대로 불침번을 서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군대에는 위병소나 GOP 같은 곳의 외부 경계 근무와 별도로, 병사들이 지내는 생활관(내무반) 내부에서도 일정 주기로 불침번을 운용하고 있다. 이건 직각 식사나 거위걸음처럼 멋이나 간지는 전혀 없으면서 군생활의 스트레스와 난이도를 크게 올리는 주범이다.

군인들은 군대 일과표 상으로는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8시간 수면이 보장돼 있지만.. 며칠이 멀다 하고 돌아오는 불침번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수시로 중간에 잠을 깨야 해서 거의 절반 남짓밖에 못 자기 때문이다.
이건 뭐 완전한 근무도 아니면서 휴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회식 같은 것도 아닌 이상한 관행이다. 안 그래도 군인 병은 마치 시내버스의 안전벨트 열외만큼이나 근로기준법에서 열외되어(최저임금..) 착취 당하고 있는데 불침번은 열정페이 착취의 최고 정점이 아닐까 한다.

심지어 과거에는 군 병원에서 병사 환자들을 대상으로도 형식적인 불침번을 세웠다고 한다. 이건 불침번이 가능한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가르는 기준부터가 명확하지 않고 그냥 부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여겨진다. 별 이유 없이 쫄병은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풀어진 채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는 탁상행정에서 유래된 부조리이다. 질병이야말로 푹 자고 푹 쉬어야 빨리 낫는다는 게 기본 상식 아닌가?

내가 알기로 해군과 공군은 불침번 같은 거 없다. 마치 직각 식사라든가 심지어 수류탄(!!)처럼.. 훈련소 시절에만 잠깐 체험하고 그걸로 끝이다. 국군도 더 근대화 현대화되면 무식한 의지드립 강요 똥군기에서 벗어나서 내부 관행들이 더 합리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생활관 내부를 24시간 제대로 지키고 싶으면 밤에 정식으로 당직병을 두고, 이튿날 아침에 온전한 근무 취침을 보장해 줘야 할 것이다.

불침번 교대자를 보면 컴퓨터의 연결 리스트 자료구조를 보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1/04/06 08:34 2021/04/06 08:34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873

1. 옛날 냉병기 시절

옛날에 총(개인 화기)이라는 게 아직 없어서 전쟁터에서 갑옷 입고 투구 쓰고 냉병기로 적군을 직접 때리고 베고 찔러 죽이던 시절에는 군인과 무인의 차이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 지금은 총검술 같은 부류가 제식처럼 거의 보여주기 스킬 아니면 특전사· 공작원의 영역에 머물고 있지만 그때는 그게 지금 군인의 사격술이나 수류탄과 동급으로 군인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스킬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손가락 하나 방아쇠에 걸어서 까딱하는 것만으로 적군을 죽일 수 있는 마법 같은 도구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열을 갖춰 적진을 향해 용맹스럽게 닥치고 돌격하는 게 매우 중요했다. 화살..?? 정도는 그래도 갑옷과 방패로 그럭저럭 막을 수 있고, 기관총 참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때는 기예의 달인이 벌이는 일당백의 비중이 컸으며 그게 군대의 사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의 관점에서야 무모한 개죽음처럼 보이지만, 신라 시대에 괜히 '관창' 같은 화랑을 혼자 희생시킨 게 아니었다.
심지어는 개떼같이 다 나와서 싸울 필요 없이, 각 진영의 대표 장수가 나와서 일대일로 결투를 벌인 결과만으로 전투의 승부를 가르는 일도 있었다.

성경에는 다윗과 골리앗 대결이 아주 유명한 예이다.
옛날에 "태조 왕 건" 드라마에서도 신라 박 술희와 후백제 애술의 결투씬이 시대적 배경과 이유가 있어서 들어간 셈이다.
그러니 영화 "봉오동 전투"도 총격전에다가 일대일 검술 대결을 어설프게 흉내 내서 집어넣었던데.. 저건 배경이 무려 20세기 근현대이니 현실성이 없다.

중일 전쟁 때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 중에 "100인 참수 경쟁"이란 게 있었다. 그게 일본군이 무슨 중세 판타지 급의 백병전을 벌여서 무장한 적군을 칼 한 자루만으로 순삭한 것이라면 아주 용맹스러운 무공이겠지만.. 실제로는 힘없는 민간인과 포로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한 것이니 그냥 범죄이고 상 또라이 싸이코 같은 짓일 뿐이었다. 심지어 신문 기사를 썼던 기자조차도 "엥..? 적군을 죽인 게 아니었어요?" 얘기를 나중에 듣고는 기겁했었다고 한다. (목적어 생략.. -_-)

자, 저런 낭만(?)이 있던 옛날과 달리..
지금이야 총기 화기의 성능이 워낙 좋기 때문에 그 어떤 체격 좋고 두꺼운 갑옷을 입은 병사라도 총에 맞으면 그대로 쓰러지고 죽는다. 소총탄을 막을 정도로 무겁고 두꺼운 장갑은 기계류에나 장착할 수 있지, 그걸 사람이 걸쳤다면 제대로 활동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오늘날 전쟁터에서 사격이 시작되면 제아무리 용맹한 군인이라도 일단은 닥치고 엎드리고 엄폐하고 숨어야 한다. 이것이 냉병기 시절과의 큰 차이점이다.
또한, 지금은 병사들과 같이 "돌격 앞으로~!"라고 외치고 뛰어드는 건 소대장 수준의 초급 장교의 몫이지, 더 높으신 분들이 야전에서 병사들을 직접 지휘하지는 않는다. 최고위 장수 장군 내지 아예 왕이 솔선수범해서 말 타고 앞장서서 돌격하던 옛날과는 많이 다르다.

오늘날 무인과 군인은 화가와 사진가만큼이나 영역이 달라져 있다.
사진 찍사는 무슨 붓이나 연필이나 물감을 능숙하게 다룰 필요는 없으며, 반대로 카메라의 기본 개념과 사용법을 잘 숙지해야 한다(소총 분해와 조립, 조준 따위).
하지만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는 색깔과 공간 배분· 구도에 대한 감이 여전히 필요하니, 사진가도 미술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무인과 군인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라라 크로프트와 빛의 수호자" 게임의 컷씬에서 라라가 몇천 년 전의 옛날 장수인 '톨텍'에게 소총 사용법을 가르치는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저 장면에서 톨텍은 총열이 무슨 칼날이고, 개머리판 부분이 손잡이인 것처럼 생각했나 보다. ㅎㅎ

2. 근현대의 주요 전쟁사

19세기

  • 크림 전쟁: 나이팅게일, 최초의 종군기자와 전장 사진
  • 남북전쟁: 국제전이 아니라 일개 나라 안 내전에 불과했지만.. 천조국은 내전 하나도 유럽을 능가하는 당대 최첨단을 달리는 수준으로 치렀다.
    • 후미장전식 총기가 등장하면서 머스킷 전열보병 전술이 몰락하고 개인 각개전투 전술이 등장. 저격수도 등장.
    • 엄폐가 중요해지면서 예복과 전투복의 구분이 생김. 전투복은 100년 전 독립전쟁 시절보다 훨씬 더 저채도의 칙칙한 색상으로 바뀜
    • 병사들의 모자 크기(?)와 헤어스타일도 옆머리까지 꼬불꼬불 말던 시절보다는 짧아짐. 그래도 장교들은 여전히 수염이 덥수룩..;;
    • 초보적인 수준의 철갑선과 잠수함이 출현했고 찔끔찔끔 교전도 했음.
    • 철도를 이용한 대규모 병참 보급과 전면전이 실현됨.
      비행기와 탱크만 없는 1차 세계대전에 가까운 정도였다. 아직 내연기관이 발명되지 않았던 시절이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국 독립전쟁 vs 남북전쟁의 차이..)

남북전쟁이 끝난 게 1865년, 제너럴 셔먼 호 사건은 1866년, 그리고 신미양요는 한~참 뒤인 1871년이었다.
조선과 미국이 거리가 워낙 멀기도 하고, 미국도 전쟁 피해를 복구하느라 정신 없었기 때문에 신미양요가 저렇게 늦게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미국에 대한 조선의 인식은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고종: 미리견(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떠한 나라인가? (1871년 4월 어전회의에서..)

영의정 김 병학 (지금으로 치면 거의 국무총리와 비슷!!): 미리견이라는 나라는 화성돈(워싱턴)이라는 촌장이 영길리(영국)라는 나라와 교섭하면서 성곽과 연못을 개척해서 세운 작은 부족국가라고 지도에 나와 있네요.
얘들은 바다를 왕래할 때 약탈하는 습성이 있는 날강도 해적떼입니다. 일체의 교역 따위 할 필요 없구요, 만약 교역을 하게 되면 우리나라(조선) 국체를 보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고종: 흠.. 그렇다면 우리가 저 코쟁이 오랑캐들과 교역하면 요사스러운 잡학들이 유입되어 공자의 예법이 무너질 것이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겠구나.


대륙 횡단 열차를 굴리고, 세계에서 거의 최초로 후장식 총기를 도입하여 유럽보다도 앞선 방식으로 전투(남북전쟁)를 벌였던 엄청난 나라가.. 한낱 공자의 예법도 모르는 요사스러운 해적 오랑캐 내지 왜구 정도로 전락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웃 일본은 네덜란드를 거쳐서 외국어 통번역가부터 잔뜩 양성해서 서양 문물을 미친 듯이 받아들이면서 근대화 중이었는데.. 조선은 저 지경이었으니 안 망한 게 더 이상하지..
참고로, 야사에 따르면 고종이 신하들과 나눈 다른 대화로는 저 때로부터 30년쯤 뒤에 철도가 개통했을 때 "기차가 더 빠를까, 전차가 더 빠를까?"도 있다. 휴우~

20세기

  • 1차 대전: 참호전, 독가스, 탱크, 초보적인 수준의 전투기
  • 2차 대전(연합군): 역대 최대 규모의 해전.. 대형 전함, 뇌격기, 잠수함과 항공모함과 함재기, 수직 강하 폭격, 그리고 끝물에 개발되거나 등장하기 시작한 핵무기와 미사일, 제트기.
  • 6· 25 한국 전쟁(UN군):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가 자그마한 듣보잡 작은 나라 하나를 도와주기 위해 결집함. 시기적으로 매우 특수한 배경 덕분에 가능했지, 이런 사례는 전무후무함. 이념 각축장 대리전 성격이 강했음.
  • 베트남전: 밀림을 날아다니는 헬리콥터, M16 소총. 언론이 조장한 반전 여론이 매우 강해졌음. 프래깅(상관 살해)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고 문제시됨
  • 걸프전(다국적군): 전투기와 미사일로 속전속결. 수송기도 맹활약했음. 전투 장면이 TV로 생중계됨.

중동 전쟁 쪽은 내가 딱히 기억하거나 아는 게 없다.;;

본인 생각에 역사는 국사와 세계사를 통합해서 가르치고 시험 문제도 그런 식으로 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 교사의 양성 과정과 교육과정을 감안하면 그건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역사의 모든 것을 동일 선상에서 객관적으로 봤다간 국뽕이고 동심이고 다 박살나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18~19세기부터 벌어지는 동· 서양의 격차는 자괴감 들기에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악질 무단횡단자에게 100:0 판정이 늘어나는 것만큼이나 공교육에서 역사에 대한 인식도 갈수록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말이다.

3. 기관총

그냥 총도 아니고 총알을 분당 수백 발씩 드르륵 갈겨 주는 기관총이라는 건 후장식 총기에 이어서 등장한 정말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처음에는 대포처럼 크고 무거운 공용화기--혼자 간편하게 들고 다닐 수 없고 여러 명이 운용-- 형태로 먼저 등장했다가 나중에 더 작은 개인화기 버전도 등장하게 됐다.

물론 요즘은 일반 보병이 사용하는 일개 소총도 기관총 같은 자동 연사 기능이 있으며(방아쇠를 당기고 있으면 알아서 드르륵~), 심지어 소총탄 대신 권총탄을 갈기는 기관단총 같은 물건도 있다.
하지만 기관총이란 게 이름에 걸맞게 오랫동안 연사가 가능하려면 발열 관리를 위해 냉각 계통이 필요하고, 총구도 여러 개를 돌려 쓸 수 있어야 하는 등 단순 자동소총에는 필요하지 않은 추가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그러니 이것저것 오늘날까지도 기관총은 용도별로 경/중, 개인용과 공용의 체급 구분이 존재한다.
일반 소총이 정밀· 정확도 쪽으로 더 발전하면 저격수가 사용하는 망원경 달린 커다란 저격 소총으로 바뀌고(스타 고스트..??), 연사력 쪽으로 더 발전하면 M60 같은 경기관총으로 바뀌는 것 같다(둠 2 chaingunner).

모든 기관총이 그런 건 아니지만 기관총이라 하면 (1) 여러 총열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묘사가 많다.
그리고 급탄을 탄창 단위로 탄창 내부의 스프링에 의지해서 하는 게 아니라 (2) 수십· 수백 발의 총알이 일렬로 연결되어 들어간다. 이건 방아쇠만 당기고 있는다고 그냥 되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관총은 작동을 위한 별도의 동력이 필요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그냥 총이 아니라 넘사벽급의 화력을 내는 기관총은 무력의 종결자에 등극했다. 기관총이 없는 군대가 기관총을 보유한 군대를 상대로 싸워서 이길 가능성은.. 가히 0이 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19세기엔 본격적으로 제국주의가 세계에 손길을 뻗치게 됐다.
오죽했으면 개틀링 기관총을 발명했던 리처드 조던 개틀링은 기관총 덕분에 앞으로 군대는 병사가 덜 필요해도 될 것이고, 더 나아가 너도 나도 기관총을 들고 있으면 다들 무서워서 전쟁을 할 엄두를 못 내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역설적인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참 순진하게 예상했었다.

처음에는 기관총이 "유럽 vs 미개한 식민지" 이런 형태로 쓰였다. 그때야 일방적인 관광 플레이가 가능했다. 하지만 유럽 사람들은 얼마 못 가 동급인 자기들끼리 기관총 vs 기관총 형태로 싸우게 됐다. 1차 세계대전 참호전 말이다.
이때는 전략 전술이 기술 발달을 따라가지 못해서 병사들이 생지옥 속에서 끔찍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 기관총으로 철통 방어하는 참호를 돌파하기 위해서 결국 탱크, 군용기, 독가스 따위가 등장하게 됐다.

무서워서 전쟁을 안 하게 될 정도로 너무 강한 캐사기급 무기라는 개념은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자인 알프레드 노벨도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기관총 분야와 폭탄(!!) 분야에서 각각 저렇게 생각하는 엔지니어가 있었다는 게 흥미롭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인류가 20세기에 세계 대전급의 전쟁을 두 번이나 겪고 핵무기라는 것까지 발명된 뒤에야 현실이 되었다. 그 끔찍한 기관총조차 아득히 능가하여 화약 폭발력이 아니라 원자력 정도는 건드리는 경지가 돼서야 말이다.

4. 물과 뭍(!!)에서 폭발 무기의 종류

뭍이라는 말을 참 오랜만에 꺼내 보네.. 한 8~90년대까지만 해도 어린이용 동화책에서도 볼 수 있던 단어였는데 2000년대 이후로는 진짜 국어사전에서나 볼 수 있는 사어가 된 것 같다.

  • 목표물을 향해 날아간 뒤에 폭발: 각종 포탄(육지· 공중), 수류탄, 미사일 또는 어뢰(수중). 자체 추진이나 유도 기능까지 필요하기 때문에 비싸고 크기 대비 폭발 에너지가 적다.
  • 반대로 목표물이 근처에 와서 뭘 건드려 주면 폭발: 지뢰(육지) 또는 기뢰(수중). 이런 무기는 통제가 안 되어 "아무나 맞혀라"가 돼서는 매우 곤란하다.
  • 아래로 자유 낙하하면서 폭발: 항공포탄(육지) 또는 폭뢰(수중). 부가적인 설비 없이 순수하게 폭약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화력이 좋다.

옛날에는 화포로 배를 완전히 부숴서 격침시키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폭약을 싣고 불 붙인 작은 무인선을 적함에다가 접근시키고 충돌시켜서 펑~! 하는 저그 스커지 같은 전술도 쓰였었다.

내 기억으로 제너럴 셔먼 호를 격침시킨 방식도 그랬는데.. 거기는 바다가 아니라 대동강이고 배의 동선에 제약이 심했기 때문에 그런 전술이 가능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0/06/14 08:33 2020/06/14 08:33
, ,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762

1. UN의 군사 활동 양상

6· 25 사변 당시의 유엔군과 지금의 유엔 평화유지군의 관계는, 구 일본군과 지금의 일본 자위대와 비슷한 관계/위상이지 않을까 싶다. 전자가 후자로 바뀌면서 뭔가가 크게 너프 됐다는 점에서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늘날의 유엔 평화유지군은 옛날처럼 그렇게 적극적으로 누구 편을 들고 싸우지 않는다. 그리고 옛날 유엔군이 지금처럼 파란 전투모 쓰고 흰 탱크 몰면서 위장이라고는 완전히 포기한 외형으로 북괴와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계 대전 때는 연합군, 6· 25 때는 유엔군, 그리고 걸프 전쟁 때는 다국적군이 뭔가 정의의 편에 선 진영이었다. 우리나라는 인류 역사상 거의 전무후무한 수많은 나라들의 도움을 한몸에 받았다.

2. 탄약창

육군 부대들 중에서 탄약창은 돌아가는 스타일이 공군과 가장 비슷한 곳이지 싶다. 근무 인원에 비해 엄청나게 넓으며, 행군하고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곳을 방어한다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생방 훈련을 빡세게 하는 것도 공군과 비슷하다.

그도 그럴 것이 탄약창이 보관하고 취급하는 물건들은 전투력의 원천인 총알을 날아가게 하는 폭발력을 내는 위험한 화학 물질들이다. 자동차나 비행기를 움직이게 하는 석유만큼이나 취급에 절대 주의해야 한다. 공격을 받아서 탄약들이 비좁은 곳에서 연쇄적으로 유폭이라도 한다면 Doom 2의 Barrel o' fun이 현실에서 벌어지게 된다..;;
뭐 그래도 탄약창이 비행기를 띄우는 곳은 아니니 공군 기지처럼 반드시 넓은 평지에 있다거나, 활주로 비스무리한 게 있고 새를 쫓아내는 인원을 운용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한편, 군함의 경우 배 한 척이 육군으로 치면 병사들의 생활관과 전차와 자주포와 곡사포와 탄약창 역할을 몽땅 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다른 곳을 많이 맞아서 부서질 경우, 항해 불가능 상태가 되고 물이 새서 침몰할 수 있다. 하지만 탄약고를 맞아서 탄약들이 폭발한다면.. 평범하게 침몰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무리 큰 배라도 화염 버섯구름과 함께 두 동강 나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박살날 수 있다. 승조원들은 거의 다 죽는다..;;

3. 지휘통제소 지하 벙커

공항이나 항공모함에는 관제탑이 있고 철도에도 모처에 종합 사령실 내지 관제 센터가 있다. 그것처럼.. 군대에도 높으신 분들이 모여서 작전 회의를 하는 비밀 지휘통제실이란 게 있다. 지난 2011년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을 지휘했던 그런 장소 말이다.

공항 관제탑이야 시야 확보 때문에 눈에 잘 띄는 높은 곳에 있지만, 철도나 군대의 비밀 장소는 그런 거 없고 일반인들의 눈에 안 띄는 곳에 꽁꽁 숨겨져 있다. 폭격을 맞아도 안전한 지하 벙커 형태가 대부분일 것이다.

안 그래도 군부대는 전지역이 민간인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보안 시설인데, 이런 지휘통제실은 보안 시설 중에서도 더욱 삼엄한 보안 시설이다. 저기는 병(상황병 보직)과 간부를 막론하고 신원 조회를 통과한 인원만 출입할 수 있다. 평범한 생활관이나 연병장 정도를 사진 찍다가 걸리면 카메라를 빼앗기고 벌금이나 영창 같은 경징계를 받는 수준에 그치겠지만, 저기서 얼쩡거리다가 걸리면 아마 군사 재판에 회부될 것이다.

우리나라에 지하 벙커가 한 곳만 있지는 않다.
먼저 관악산 남태령의 수방사 부대 지하에 B1이라는 벙커가 있어서 대통령이 취임 첫 해에 관례적으로 여기를 방문한다고 한다. 대통령은 취임 첫 해에 경호처 요원들의 경호 시범을 관람한다던데 벙커 방문도 그렇게 하는가 보다.

그리고 의외로 서울대 내부 지하에도 B5라는 벙커가 있는데... 한국어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B1과 B5는 어차피 같은 관악산이기도 하고 별로 멀지도 않으니 둘이 지하 통로로 연결도 돼 있다고 한다. 또한, 용산의 국방부 청사 지하에도 B2라는 벙커가 있다. (그럼 B3, B4는??)

우리나라 정부뿐만 아니라 미군 역시 자체적인 지하 벙커를 만들어 놓은 게 있다.
일단 서울 안의 미국 영토인 용산 주한미군 부대 내부에 'CC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있다. 참고로 CC는.. 스타크래프트 테란의 건물 명칭의 이니셜과 같다.
과거 전땅크가 12· 12 사태를 일으켰던 당시에 노 재현 국방 장관은 홈그라운드인 국방부 B2 벙커는 너무 가까우니 위험하고.. 근처의 저 미군 벙커로 피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악산뿐만 아니라 청계산에도 군부대가 많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지만.. 알고 보니 본인이 예전에 오른 적이 있는 상적동 쪽에 'CP Tango'라는 이름으로 주한미군 지하 벙커가 하나 더 있다. 우와.. 2005년에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이던 '콘돌리자 라이스' 여사가 성남 서울 공항을 통해 방한한 뒤 곧장 저기를 방문하여 매스컴을 탄 적이 있다.

미군 지하 벙커는 대구의 미군 기지에도 있으며, 앞으로 주한 미군 기지들이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로 통합되고 나면 거기에도 응당 생길 것이다.
CP에서 P는 GP처럼 post를 뜻한다. CC보다는 격이 낮은 듯..

북한은 6· 25 때 평양 시내가 폭격 맞아서 아주 박살이 난 경험이 있고, 미 제국주의 원쑤들의 첩보 위성도 많이 의식할 테니, 지하를 들쑤셔서 별 시설들을 다 만들어 놨지 싶다.

4. 국군 유해의 항공 송환

지난 2012년 2MB 시절에는 1950년 가을, 6· 25 전쟁 중에 북한 지역에서 전사한 군인들 유해에 대한 조사가 미국과 북한 합동으로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 국군으로 밝혀진 유해가 12구가 하와이를 거쳤다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레카 시절에는 추가적인 송환 실적이 없다가.. 지난 바로 작년에 7년 전보다 훨씬 더 많은 64구의 유해가 추가로 발굴되어서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해를 운구한 수송기가 우리나라 영공에 진입하자 이번에는 우리나라 전투기들이 작정하고 출동해서 수송기를 호위했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수송기를 향해 거수 경례를 했으며, 에어 포스 원 명대사보다 더 멋진 말을 현실에서 남겼다. (☞ 링크)

"오랜 시간 먼 길 거쳐 오시느라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공군이 안전히 호위하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 때는 유해 수는 훨씬 더 많지만 7년 전과 달리 신원과 유족이 완전히 확인된 유해는 없었던 모양이다.

참고로 전투기들이 멋지게 날아가는 모습을 같은 공중에서 촬영한 사진이나 동영상들은..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카메라맨이 별도의 비행기를 타고 그쪽을 보면서 촬영한 것들이다.
이런 영상물은 저렇게 언론 보도 자료로도 쓰이고 군 내부에서의 정훈 자료로도 쓰인다. 더구나 군용기는 아무 때나 원하는 대로 쉽게 띄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 한번 떴을 때 NG 없이 잘 찍어야 한다.

공군에는 군용기의 공중 촬영만 전담하는 부사관 보직이 따로 존재한다고 한다. 타군의 여느 사진병보다는 훨씬 더 전문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병이 아닌 간부가 맡는다.

5. 개념 연예인

훈훈한 이야기 하나 더 하고 글을 맺겠다.
지난 2016년 말, 배우 이 시영 씨가 MBC의 연말 연예인 시상식에서 버라이어티 신인상을 받았었다. (☞ 링크, 정지 화면 자막 나열)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에 출연한 것 때문인데, 저분은 여느 꼴페와는 정반대로 마치 독립운동가 이 시영이 떠오를 정도로 소감을 정말 건전하고 개념 있게 잘 말했다.

"이 상을 제가 받아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일주일도 안 되게 군대 다녀와서는 상을 받는다는 게 너무 죄송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라를 지키고 계시는 국군 장병들께서 주시는 상이라고 생각하고 고맙게 받겠습니다. (...) 지금까지 많은 군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제가 안전하고 행복한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


개인적으로 완전 감동 받았다. 영화 <언니>가 저런 훌륭한 배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쫄딱 망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8/10 08:35 2019/08/10 08:35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649

1. 사적 제재와 무장

공동주택에서의 3대 민폐는 담배, 애완동물, 층· 벽간 소음이지 싶다. 그야말로 후각· 촉각· 청각이 골고루 다 분포해 있구나! 또한, 상황이 좀 더 열악한 곳에서는 주차 시비까지 추가해서 4대가 될 수도 있겠다. 이것 때문에 살인 사건도 이미 몇 건 난 적이 있다.

주거용 건물은 계단 통로가 담배 냄새가 안 나는 곳을 별로 못 봤고, 요즘은 예전보다 개도 주변에서 부쩍 눈에 띈다. 먹고 살기 빠듯하고 힘들다면서 애완동물 키울 여력은 있는가 보다. 도시는 시골과 달리 동물에 친화적인 곳이 아니긴 하다.

다음으로 소음 문제의 경우, 찾아가서 항의하는 건 씨알도 안 통하니 당하는 쪽에서도 벽이나 천장을 같이 쿵쿵 치는 걸로 응사하는 편인데.. 인터넷을 뒤져 보니 단돈 몇 천원 짜리 고무 망치가 그렇게도 즉효약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다. (☞ 대표적인 사례: 슈랄라 월드)

잘 쳐 주면 건물 자체는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쿵쿵~ 웅웅~ 깊은 진동을 전해서 가해자를 놀라게 하고 숙면을 방해할 수 있다고 한다. 본인은 딱히 소음 피해를 겪은 적이 없고 저런 물건을 써 보지도 않아서 잘 모르겠다.

뭐랄까, 지금 같은 법치 의식이나 국가 정체성, 인권 의식이 형성되기 전에,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이 엄격하게 생기기 전엔... 서양에서는 민간인의 무장과 사적 제재라고 해야 하나, 그런 관념이 지금보다 훨씬 더 관대했다.

그러니 '사략선'이라는.. 한중일 문화에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국가 공인 해적이 있었다. 전시에 민간인이 적국 선박을 터는 것을 합법으로 허용하는 면허 말이다.
그리고 '결투'도 있었다. 결투에서 상대방을 죽이는 것은 마치 전쟁터에서 적군을 죽이는 것만큼이나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었다..;;

누구든 월급 주는 주인님을 위해 깃발 바꿔 달고 싸우는 '용병'은 요즘으로 치면 PMC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국군 상비군이 있는 일반적인 나라에서는 흔하지 않다. 아 하긴, 프랑스에는 아직 외인부대가 있던가?

또한 민간인이 스스로 무장하고 자기 마을을 지키는 '자경단'은.. 용어를 저렇게 쓰면 어감이 굉장히 부정적이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조선과 구한말의 '의병'하고 별 차이 없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건 아주 성경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에스더기도 유대인 학살 명령이 공식적으로 철회되는 게 아니라, "너희들도 자경단 꾸려서 침략자에 맞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지켜라. 아무도 안 말린다"가 추가되는 걸로 끝나니 말이다.
좀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1992년의 미국 LA 폭동 때도 평소에 총을 구입해 놓고 대비를 했던 한인들은 자경단을 꾸린 덕분에 자기 가게를 안 털리고 지켜내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 남성들의 이런 저력(...)은 5· 18 광주 북한군 개입설을 부정하는 근거로도 활용된다.
서슬 퍼런 반공 군사 정권 하에서 교련에다 군생활도 무려 3년씩이나 의무적으로 했던 사람들이 진지 구축이나 총질쯤은 껌이며, 탱크 조종 보직이었던 사람도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없을 리가 없다. 그 정도 군사 행동은 굳이 북괴 공작원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수많은 청년들의 자유를 제약하고 희생하며 돌아가고 있는 우리나라 징병제의 위력을 만만하게 여기지 마시라.

무기고 위치 정도는 그렇게 비밀도 아니며, 평소에 잡범 범죄자에 의해 종종 털리기도 했었다. 그럭저럭 민주화가 된 1990년대의 LA에서도 저랬는데 하물며 전투력이 그때보다 더했을 1980년대의 광주를 동일한 잣대로 생각해 보면 본인으로서는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소말리아 같은 막장인 나라 말고, 엄연한 잘사는 선진국 중에서 민간인이 버젓이 총을 소지하는 나라는 미국 말고 더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화력이 너무 강한 군인 소총이나, 은닉하기 쉬운 권총은 여전히 규제가 걸려 있지만, 샷건 정도는 시골로 갈수록 뭔가 생활 필수품인 것 같다.

2. 경찰 비슷한 것들

경찰은 군대와 마찬가지로 국가와 사회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며, 정부에서 세금을 써서 유지시킨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공권력의 존재감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기관이 바로 경찰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군· 경의 역할을 민간이 대체하는 것을 매우 경계하며 금기시한다. 그래서 사적 제재를 전면 금지하고 정당방위도 매우 보수적이고 제한적으로만 인정한다. 나쁜놈이 있으면 어지간해서는 정말 제일 소극적인 제압만 한 뒤 바로 경찰에 넘기기만 해야 한다. 놈이 흉기를 들고 설치고 있으면 흉기를 재주껏 빼앗아서 버리기만 해야지, 그걸로 내가 반격 역관광을 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니 자경단이나 민병대· 의병 같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사설 탐정도 국내에서는 전면금지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민간인의 경찰 위장· 사칭은 죄질이 매우 나쁜 범죄이다. 일반인은 평시에 전투복뿐만 아니라 경찰복을 입는 것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수갑 같은 경찰 전용 장비 역시 소지하거나 휴대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경찰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을 보조 내지 대행하는 민간인 조직이 아주 없는 게 아니다.
자율방범대(치안)라든가 모범운전자(교통 정리)가 그 예이다. 이런 사람들은 경찰과 어떤 관계를 맺고 보수를 어느 정도 받는지, 직무와 관련하여 어느 정도까지 권한이 있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이 사람들이 진짜 경찰처럼 누구를 체포한다거나 교통법규 위반 범칙금 딱지를 발급하지는 못한다.

은행이나 병원 같은 곳에 있는 청원경찰은 정식 경찰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 사설 경비원도 아닌 중간 위치 같다. 철도 경찰이나 해경은 일반적으로 아는 그런 경찰과는 다른 경찰일 테고..
그나저나 옛날에 미국에서 큰 모자 쓰고 말 타고 돌아다니던 '보안관'은 경찰하고는 어떤 관계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3. 사립 사관학교

본인은 먼 옛날에 사탄의 인형 시리즈를 1편부터 3편까지 영화관..은 아니고 TV와 비디오로 봤다. 1편은 진짜 공포 장르였지만 2편과 3편은 호러 코미디에 가깝다. 주인공 앤디가 처키의 정체를 완전히 알게 되면서 동심이 완전히 파괴된 상태가 됐고, 또 나이를 먹고 성장도 했기 때문에 1편과 같은 의미의 약자의 위치에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특히 3편의 경우, 애가 군사 학교에 입교하게 된다. 이름하여 Kent Military School. 그런데 나이가 들고 나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 군사 학교라는 건 도대체 정체가 뭔가? 국· 공립인가, 아니면 설마 사립인가? 한국에는 이런 교육기관은 없는 것 같은데..

병을 양성하는 곳인가, 간부를 양성하는 곳인가? 그냥 신병 훈련소라고 보기에는 내부 시설이 꽤 좋고.. 하지만 학생들의 연령대가 굉장히 다양하고 무슨 웨스트포인트 급의 정식 사관학교도 아닌 것 같다. 앤디처럼 불우하게 자란 애가 그런 정예 장교 양성 시설에 호락호락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죽은 아버지가 무슨 명예 훈장의 수훈자이기라도 하지 않다면 말이다.
그리고 계급의 번역이 제대로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생도들 군기를 잡는 훈육대장이야 해야 하나.. 그런 사람이 무려 대령인 건 하는 일에 비해 계급이 너무 높은 것 같다.

검색을 해 보니 미국에는 이런 군사 학교가 몇 군데 있다고 한다. 나라에서 인가한 정식 사관학교와의 차이는 (1) 일단, '사립'이다. 자연히 학비는 전면 무료가 아니며, 여기를 졸업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미군 간부로 임관한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여기는 (2) 애초에 대학교에 준하는 고등 교육기관이 아니라 중· 고등학교에 대응하는 중등 교육기관이다. 여기를 졸업한 애들은 소수의 군대 체질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냥 일반 대학교로 진학한다.

즉, 여기는 무슨 정식 사관학교도 아니고 해병대 캠프나 스파르타 식 명문대 학원도 아니지만.. 사관학교의 커리큘럼을 따 와서 일상생활에서 애들을 합숙시키고 군복(정복, 예복, 전투복 등..) 입히고 군대식으로 절도 있게 키우는 학교이다. 한국의 장성들이 자기 자녀는 저기로 유학 보내서 키우기도 한댄다. 중딩 고딩들한테 설마 진짜 사관학교처럼 공수 훈련까지 시키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총 잡고 페인트탄 워 게임 정도는 한다.

사탄의 인형 3의 배경인 '켄트(Kent) 군사 학교'는 '켐퍼(Kemper) 군사 학교'라고 미국에 실제로 있었던 사립 사관학교이다. 1800년대부터 있었던 학교이다 보니 캠퍼스가 굉장히 고풍스러우며, 사탄의 인형 말고 몇몇 다른 영화들의 촬영지로도 쓰였다고 한다.

이 학교는 쟁쟁한 졸업생 동문을 배출하기도 했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점점 경영난을 겪었으며(신입생의 감소로 인해), 2002년에는 폐교하고 말았다. 국영 사관학교라면 이렇게 망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옛 캠퍼스 부지와 건물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4. 군대의 진급

우리나라의 현행 군대 계급 체계에서 다음과 같이 임관 내지 진급하는 건 흔치 않은 경우이다.

  • 준위로: 부사관에서 상사를 능가하는 만렙 계급은 일단 원사이다. 그런데 거기서 더 나아간 준위는 단순히 원사의 상위 레벨이 아닌 좀 특이한 계급이다. 부사관의 만렙으로서 자기 분야의 최고 전문가 스페셜리스트이면서, 한편으로 그 바닥에서 장교 같은 명령권도 있는 '준사관'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어떤 준사관 계열은 아예 군필만 한 민간인이 곧장 들어오기도 한다.
  • 임관이 아니라 특진해서 소위로: 병장이 진급해서 자연스럽게 부사관인 하사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병이나 부사관이 자기 계열에서 진급만 한다고 해서 장교 계급을 받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역사상 죽어서 소위 계급이 상징적으로 추서된 건 지뢰 밟고 죽은 군견이 유일하다.
  • 대장에서 원수로: 원수는 포스타 중에서도 그야말로 나라를 구한 불멸의 성웅이나 받을 법한.. 상징적인 종신 계급이다. 통상적인 진급이나 전사자 특진만으로는 될 수 없다.

우리나라에 과학 분야 노벨 상 수상자가 없는 것만큼이나 원수 계급을 받은 군인도 현재까지 없다. 그나마 제일 근접해 있는 백 선엽 대장마저도 못 받은 계급을 감당할 만한 용자는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전쟁터에서 혼자서 적군을 수십 명 때려잡고 아군을 수십 명 구했다면 그건 병이나 부사관이 무공 훈장과 포상금을 잔뜩 받을 일이다. 계급 자체는 그런 병/부사관 수준에서 1~2단계 정도 특진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에 반해 포스타가 원수가 되려면..?? 가히 전군과 국가에 영향을 끼칠 만한 넘사벽급의 '통솔' 업적이 있어야 한다.

  • 사령관의 천재적인 지휘 하에 전군이 힘을 합쳐서 돼지 목을 따는 데 성공하고 북진 멸공 통일을 이룬다거나,
  •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했는데 한국군이 무슨 지구를 구하는 데 국제적인 기여를 했거나,
  • 국군의 규모가 지금보다 몇 배 이상 더 커져서 포스타마저 수십 명으로 늘지 않는 한..

한반도에서 오성장군이 배출될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1/31 08:34 2019/01/31 08:34
, , ,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581


블로그 이미지

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2672572
Today:
804
Yesterday:
1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