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승리와 패배의 조건

전쟁에서 졌다는 게 꼭.. 적국이 우리 영토에 쳐들어와서 관광 플레이를 시전하는 바람에 우리나라가 2차 세계 대전 때의 독일이나 일본처럼 "무조건 항복.. 우리가 졌스므니다~" 이러면서 싹싹 비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쟁에서 승패가 결정됐다고 해서 패전국이 반드시 체제가 싹 바뀌고 영토나 배상금을 왕창 뜯기지는 않는다.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승리가 있고, 져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패배가 아닌 패배가 있다.

제일 좁게 기계적으로는.. 공격자든 방어자든 전술적인 목표를 달성하면 승리이고, 그렇지 못하면 패배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어자가 공격자보다 이기기가 훨씬 더 쉽다. 방어자는 존버해서 현상 유지만 해도 승리이기 때문이다.

6 25는 휴전이 아니라 이 상태로 전쟁이 끝나 버린 거라고 본다면, 한낱 무승부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이긴 전쟁이다. 물론 단독이 아니라, UN군과 함께 싸워서 이긴 것이고..
임진왜란도 당연히 방어에 성공한 조선의 승리(조선/명 연합군)이다. 단지, 조선도 피해가 너무 막심했기 때문에 이건 전리품 잔치를 벌이는 그런 승리가 아니었을 뿐이다.

러일 전쟁은.. 일본이 설마 그 대국 러시아를 완전히 굴복시킨 건 전혀 아니었다. 자기도 전쟁 때문에 재정이 파탄 나기 직전이었는데 전쟁 배상금 따위도 전혀 요구하지 못하는 '상처뿐인 영광'을 얻었을 뿐이었다. 허나,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사할린 지역을 빼앗는 '전술적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명백한 일본의 승리로 평가되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은 거의 미국의 대리전처럼 여겨지긴 한다만, 남베트남이 지고 베트콩이 이긴 전쟁이다. 허나, 그렇다고 미국이 화력의 열세 때문에 전투에서 병력을 다 잃고 패배해서, 무슨 베트콩한테 백기 들고 투항하고 항복 문서에 싸인하는 식으로 패배한 건 전혀 아니다. 여러 이유 때문에 전투를 계속할 명분을 잃어서 그냥 싹 철수만 했을 뿐이다.

이런 걸 보면.. 전투에서의 승패가 전쟁에서의 승패와 꼭 일치하지도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중일 전쟁만 해도 중국이 전투에서는 일본한테 수없이 졌지만, 결국 전쟁은 이겨서 전승국 대접을 받았다. 영토와 인구빨이 있어서 계속 후퇴할 공간이 많고 일시적인 전투 패배를 수습할 만한 충분한 맷집이 있는 나라가 이런 상황에서 더 유리한 것 같다.

전쟁에서의 승패뿐만 아니라 '전멸'의 의미도 영화와 드라마에서 통용되는 의미(마지막 한 사람까지 몽땅..)와 실제 군사적으로 통용되는 의미가 다르다. 현실에서는 병력을 훨씬 덜 잃어도 정상적인 부대와 전투력 유지가 더 안 되면 전멸로 판정하며, 철수하거나 추가 지원을 받는다.

전투의 목표도 적군을 꼭 죽이고 몽땅 다 파괴하고 부수는 게 아니다. 그저 적군을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고 제압 내지 무력화시키는 것이 목표이다. 죽이는 건 그렇게 하는 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다.
전시의 군대는 정말 냉혹한 결과 실적 지상주의로 돌아간다. 평소에 아군을 왕창 악랄하게 지지고 볶고 갈구더라도, 어쨌든 전투에서는 이기게 하는 지휘관이 당연히 칭송받아야 마땅하다. 방망이 깎던 노인 타입이 군대에서는 대접받는다.

2. 전범

한편으로 '전범'이란 '전쟁 범죄' 또는 '전쟁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준말이다.

(1) 수뇌부의 입장에서는 명분 없는 불법 침략 전쟁을 일으키면 그 자체가 전범이 된다. 고위 정치인 내지 별 달린 장군 정도만이 이 유형의 전범이 될 수 있다.
단, 현실에서는 그렇게 전쟁을 벌이고도 "졌을 때만" 전범으로 몰려 처벌받는다. 쿠데타만 해도 성공하면 혁명이니 구국영웅이니 하면서 추앙받지만, 실패하면 주동자가 영락없이 역적 정치범 내란수괴로 몰리지 않던가? 전쟁도 이와 비슷하다.

물론, 여기서 진다는 건 더 수지맞지 않아서 점령지를 슬쩍 철수하는 정도가 아니라, 반격을 당해서 자기 나라가 다 망하게 생겨서 싹싹 비는 정도로 지는 것을 말한다.

(2) 다음으로, 전투를 실제로 수행하는 실무자의 입장에서 전범이 되는 방법은 전쟁 명분과는 전혀 무관하다.
무장한 적군이야 전장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어떤 방식으로 낚고 속이고 죽이든, 윤리 논란 따위 당연히 만무하다. 단지, 그 적군이 다치거나 포로가 됐거나 아예 항복을 해서 전투력을 상실했다면 그 다음부터는 인도주의적으로 대해야 한다.

그리하지 않고 이런 적군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것, 포로를 반인륜적으로 학대하는 것,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을 고의로 약탈· 학살하는 것은 제네바 협약 위반이며 전쟁 범죄로 간주된다.
정상적인 군대라면 이런 건 자국 군대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적발하고 처벌해서 근절해야 한다. 그러면 그건 국제적인 전쟁 범죄 문제로 불거지지 않고, 해당 범죄자만의 예외적인 일탈로 간주되고 넘어간다.

사실, 군인들도 감정이 있으니 방금 전까지 전우들을 죽인 이놈들한테 당장 보복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현실적으로 다 컨트롤 하기 어려운 면모도 있다. 그러나 지휘관인 장교 차원에서 이런 짓을 조직적으로 묵인하거나 조장한 게 밝혀지면 영락없이 전범으로 몰리게 된다.
이건 승전/패전과는 전혀 무관하게 공평하게 처리해야 하는 사항이지만, 이 역시 현실적으로는 패전국에 대해서만 더 집요하게 거론되고 터는 편이다.

그런데 1번 같은 전쟁을 일으킬 정도의 불의한 나라라면 그 과정에서 휘하의 지휘관들이 어차피 2번과 같은 범죄도 매우 높은 확률로 저지르며, 윗대가리들이 이를 막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1번에 해당하는 전범은 대부분의 경우 어차피 2번에 대한 책임까지 지워지면서 더욱 지탄받게 된다.

3. 포로

(1)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군인이 나라 지키려고 전투 과정에서 지휘관의 명령을 따라 무장한 적군을 죽이는 것은 자국 법으로나 국제법으로나 성경적으로나 죄가 전혀 아니다. 군인은 적국에 포로로 잡혀 간다 해도 "너 왜 우리 병사 죽였어?" 이런 추궁을 받을 일은... 없다. 그건 적군도 똑같이 하고 있는 짓이니까.

글쎄, 혼자 너무 심하게 악랄한 명성을 떨쳤던 유명 저격수나 삼손 같은 인간흉기, 초특급 에이스 파일럿이 포로로 잡혔다면 곁의 병사들에게서 개인적으로 감정적인 해코지를 당할 수 있지만.. 그것도 명목상으로는 불법이다.
그 대신 군인은 자기가 적군에게 죽는 것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다. 이런 특성이 있으니 군인은 전시에 민간인과 다른 취급을 받는 거다. 자기 목숨은 자기의 전투 능력으로 알아서 챙겨야 하며, 자기가 전사하게 되면 자국으로부터 호국영령으로 어지간한 의인 의사자를 아득히 능가하는 예우를 받는다.

군인이 교전 중에 전사하는 건 민간 생명 보험으로도 보장이 안 된다. 천재지변이나 사변처럼 영역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서킷에서 카레이싱 때 발생한 사고가 통상적인 자동차-운전자 보험으로 보상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쉽게 말해, 배에 돈 내고 탄 승객이랑 거기서 근무하는 선원이 조난 사고 때 역할과 취급이 서로 같을 리가 없다.

(2) 군인이, 특히 지휘관이 자기 할 바를 다하지 않고 제멋대로 전투를 거부· 포기하고 적에게 투항한다면? 군수물자를 스스로 없애 버리거나 아예 적에게 건네준다면..? 그건 사형으로도 모자랄 중죄 대역 반역이다. 그 어떤 민주 인권 국가라도 이런 극단적인 죄는 사형으로 다스린다. 옛날처럼 사지를 찢지는 않는 게 감지덕지일 것이다.

하지만 보급도 지원도 없고 정말 개죽음이 뻔한 상태에서 불가피하게 항복· 후퇴하거나 포로로 잡힌 건 당연히 면책이며 그래야만 한다. 단순히 인권· 도의적인 차원이 아니다. 그렇게 해 줘야 패잔병들로부터 전투 경험과 노하우가 전수될 수 있고, 그들이 자포자기해서 아예 완전히 탈영해 버리는 걸 막을 수 있다. 전투에는 졌지만,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히지 않고 도망쳐서 살아서 돌아오는 것도 어지간한 운과 실력이 따라 줘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 데서까지 무조건 항복이나 후퇴를 금지하고 닥치고 정신력 근성 깡 드립에 영예롭게 죽으라고 부하를 사지로 몰아넣는 건 지휘관의 올바른 판단이 아니다.
이게 사랑의 체벌과 아동학대, 안락사 살인과 연명 치료 중단처럼 종이 한 장 차이로 판정이 참 미묘하게 달라질 수 있는 것 같다.

(3) '포로'를 영어로는 prisoner of war이라고 한다. 포로는 비록 정치· 군사적인 이유로 인해 자유를 박탈 당한 prisoner이지만, 군인의 직무 특수성으로 인해 여느 범죄자와는 성격이 다른 사람이다.
이와 비슷하게, 신념을 갖고 법과 공권력에 저항하다가 수감된 일명 '양심수'를 영어로 prisoner of conscience라고 한다. 이런 사람도 여느 범죄자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우리나라의 교정 시설에서는 평범한 사기· 상해· 절도 등의 대다수 잡범은 하양, 캐 흉악범 사고뭉치 요주의 인물은 노랑, 약쟁이는 파랑, 사형수는 빨강.. 이렇게 죄수복 명찰의 배경색을 달리하여 죄수들을 분류한다.
그런 것처럼 양심수라든가, 아무런 고의 없이 전적으로 과실로 금고형 정도 받은 죄수는 초록으로 분류해도 될 법해 보이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어서 초록색은 안 쓰는가 보다.

예수쟁이라면 prisoner of war, prisoner of conscience의 연장선상에서 성경에 나오는 prisoner of Jesus Christ (엡 3:1, 몬)와 prisoner of the Lord (엡 4:1)를 상기하면서 바울의 저 당시 심정을 생각해 보자. 전쟁이나 다른 신념 때문이 아니라 '그분'으로 인해 박해받고 수감당했다는 뜻이다. '양심수'와 같은 방식으로 조어한다면 '예수囚' 정도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23/12/22 08:36 2023/12/2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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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전쟁사 관련 글을 쓰면서 거기에 분류되지 않고 남은 여러 잡다한 아이템들이다. ㄲㄲㄲㄲㄲ

1. 군대가 돌아가는 방식

(1) 정식 군인이 아니지만 군인에 준하는 민간인으로는 사관생도, 군무원 정도가 있다. 이들은 무슨 일을 저지르거나 일이 터졌을 때 군법이 적용될 수 있다.
한편, 정식 장교가 아니지만 장교에 준하는 군인으로는 준위..가 있다.

(2) 대학교는 초중고와 달리, 전학이라는 개념이 없고 편입도 입시를 치러야 들어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편입'이라는 건 멀쩡한 대학교가 없어지는 초 막장 상황 정도는 돼야 벌어진다. 이건 전국적으로 매스컴까지 탈 만한 이벤트이다.
군대의 특별임관은 공산군 탈북자가 자기 계급을 그대로 인정받는다거나, 6· 25 시즌 2 같은 상황에서 아주 특출난 병· 부사관이 현장에서 특례를 인정받아 곧바로 장교로 임관하는 정도의 상황을 말한다. 이 역시 흔한 경우가 아니다.

(3) '소위'는 장교 중에서 제일 쪼렙...이다 보니, 순직한 군인에게 '추서'될 만한 계급은 절대 아니다. 준위나 원사가 순직한다고 해서 소위 계급을 받지는 않는다.
그 반면, 우리나라 군대 역사상 유일하게 죽어서 소위 계급이 추서된 존재는.. 사람이 아니라 군견 '헌트'였다. 제4 땅굴을 탐사하던 중에 지뢰를 밟고 순직했기 때문이다.

(4)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사람, 외국을 상대로 무력을 행사하는 집단이라고 정의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영토 분쟁이 진행 중이고 진짜로 군인이 투입되어야 마땅할 것 같은 곳에 군인이 아니라 경찰, 아니면 사실상 군인이지만 눈 가리고 아웅 수준으로라도 '경찰'이 투입되곤 한다.

  • JSA 내지 GP: 여기는 DMZ 내부이다. 북한과 너무 가깝기 때문에 서로 좀 싸우지 말라고 국제법상 '비무장 지대'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남과 북 모두, 일반 소총수나 수색대까지는 아니어도 민정경찰이라는 일종의 경찰을 보내서 순찰시키고 있다. 쟤들은 일본 자위대가 군대인 것만큼 군인이다. ㄲㄲㄲㄲㄲㄲ
  • 독도: 이건 무슨 일제 시대 독립 운동도 아니고.. 영토 분쟁 지역이라고 국제 사회에 호소할 가치조차 없다. 당연히 자국 영토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평범한 해안경비대 내지 해경 수준에서 끝이다. 굳이 해군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물론 이런 처신은 일본이 무슨 북괴처럼 수시로 무식하게 도발하는 야만적인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

2. 보스와 리더

흔히.. boss 같은 사람이 아니라 leader 같은 사람이 돼야 한다고..
이런 요지의 글을 나도 한 10년도 더 전부터 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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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선수범하라~~ 수직이 아닌 수평적 관계.. 뭔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현실에서 큰 조직이 돌아가려면 결국은 보고만 받고 지시만 내리는 boss 같은 사람도 여전히 필요하고, 반대로 실무자들을 통솔하는 leader 같은 사람도 필요하다.

상급자도 시간과 체력의 한계가 있는 사람인데.. 최고위 상급자가 모든 걸 일일이 시범 보이고 다 지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슨 북괴 김 정은 현지지도도 아니고..
군대로 치면 boss 대신 commander이겠지.. 중대장 급 이상 지휘관과, 분대장/소대장 지휘자의 차이인 것이다.

엄청난 옛날에 활 쏘고 창검 갖고 싸우던 시절에야 최고위 장수나 무려 왕이 직접 앞장서고.. 심지어 장수들끼리 일대일 맞장만 뜨는 걸로 전투의 승패를 결정 짓기까지 했었다. 군인과 무인의 차이가 지금보다 크지 않았던 것이다. 현대의 전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각종 병기· 무기의 위력이 너무 강해지면서 제아무리 체력 체격 깡패인 사람도 총 한 방 맞으면 무조건 죽게 됐다.
그러니 이제는 아무리 용맹한 병사라도 총알 포탄이 날아오면 닥치고 수그리고 엄폐부터 하게 된다. 이건 그 어떤 격투 무술이나 스포츠에도 없는 기동일 것이다.

거기에다 통신 기술도 발달했으니 최고 사령관 참모진은 이제 벙커만 짱박히게 되었다. 예전의 장수가 하던 "나를 따르라"는 소위· 중위 같은 초급 장교의 몫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인간 흉기에만 특화된 직책은 특전사 같은 부사관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이다.
boss인지 commander인지가 되기 위해서 그래도 leader의 경험과 자질이 필요하다는 건 변함없기 때문이다.

3. 고전 영화 "빨간 마후라"

미국에서는 1986년에 "top gun"이라고, 대놓고 소련이라고 지목은 안 했지만 어쨌든 가상의 적국을 설정해서 전투기 공중전을 정말 실감나게 잘 묘사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옛날인 1964년에, 1964년작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명작 공군 영화가 만들어진 적이 있다. 바로 "빨간 마후라"이다.

빨간 마후라에서는 우리나라 영화 역사상 최초로.. 공중전 장면이 아주 생생하게 촬영됐다.
그때는 따로 소품이니 세트니 CG니 넣을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 군용기를 띄우고서 날개에다가 그 비싼 카메라를 ON 시킨 채로 달아서 촬영하고..
교전 장면도 공포탄이 아니라 진짜 실탄을 위험 무릅쓰고 갈기면서 찍었다. 군용 실탄이 대량생산 덕분에 차라리 더 저렴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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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5 전쟁이라 하면 육군이 후퇴했다가 고지 점령하는 땅따먹기.. 아니면 인천 상륙작전 쪽의 인상만 너무 강한데.
빨간 마후라는 1952년에 '공군'이 세운 탁월한 무공인 평양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을 다뤘다.

전쟁 중엔 적의 보급로를 끊기 위해 교량을 폭파하는 게 중요한 임무로 등장하곤 했다.
2차 세계 대전 영화 중에서도 "콰이 강의 다리"처럼 증기 기관차가 달려오는데 철교를 폭파해서 일본군을 엿먹이는 데 성공한 일화를 다룬 작품이 있다.
얼마 전 우크라이나 전쟁 때도 크림대교가 소리소문 없이 폭파된 적이 있었다.

그것처럼.. 6· 25 사변 중에 육군은 이때 이미 휴전선 고지전만 엎치락뒷치락 중이었던 반면,
공군은.. 강릉 기지에서 전투기를 띄워서 평양 적진까지 쑥 날아가서 육지 교량 목표물을 폭격했던 것이다. (저 땐 아직 수원 세류 공군 기지가 아직 없었음. 그래서 더 먼 강릉에서..)

그것도 미군/UN군이 실패했던 임무를 우리 공군이 위험 무릅쓰고 저공 폭격해서 성공하고도 무사히 살아서 돌아왔었다! 단, 영화에서는 신파를 넣으려고 주인공이 피격 당하고 전사하는 걸로 스토리가 바뀌었다.
그리고 그 당시 여건상 어쩔 수 없었던 거..
6 25 당시 국군이 띄웠던 구닥다리 왕복 엔진 P-51 무스탕을 구할 수 없었던지라, 영화에서는 촬영 당시에 현역이던 제트 전투기 F-86이 대신 등장했다.

아~ 그래서 개인적으로 얘는 6 25를 다루고 있다면서 시대가 그 후의 나중을 다루는 것 같고 좀 헷갈렸었다.
"빨간 마후라" 노래는 원래 이 영화의 OST였지만.. 영화와 음악이 워낙 고퀄이었기 때문에 공군에서 얘를 군가로 정식 채택해 버렸다.

영화는 원본 마스터 필름까지 외국으로 수출해 버려서 없어졌다가 나중에 굉장히 어렵게 다시 구하고 복원해서 디지털화한 것이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서 이렇게 유튜브로 편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 보기 )

참, 그러고 보니 초딩용 공군 전용 동요도 있었다.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 우리 공군 아저씨 ... 우리의 '희망의 꽃' 대한의 공군" 이렇던가..
'희망의'에서는 박자가 셋잇단음표라는 게 포인트임. 타군에 대해서 이런 노래는 딱히 없는 것 같다.

4. 천조국의 전사 통지 방식

그리고 끝으로.. 미국, 아니 미군은 물리적인 군사력 화력뿐만 아니라, 참전 용사들을 예우하는 수준도 가히 천조국 급인 걸로 유명하다. thank you for your service가 몸에 배여 있다.
미국 국내선 정도이면 기장이 "현재 우리 비행기에는 명예 훈장의 수훈자께서 같이 탑승해 계십니다"라고 자랑을 할 정도이고, 전사자 유해를 같이 운구하고 있다면 도착 공항에 착륙한 뒤에 "참전 용사께서 먼저 하기하도록 승객 여러분께서 기다려 주십시오" 이렇게 안내를 한다.

이렇듯, 예우 대상자의 생사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전사했다면 그야말로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유해를 수습하며, 유족에게 전사 소식을 전하는 방식도 정말 남다르다. 다음 영상을 보자. (☞ 보기 )
이런 소식은 정복 차림의 간부급 군인, 특히 고인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을 발품팔이 시켜서 반드시 대면으로 전한다. 자기 아들이나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뉴스 따위로 먼저 접하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름 최대한 예를 갖춰서 소식을 전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파병 군인을 둔 가정이라면 갑자기 정복 차림의 군인 두세 명이 자기 집을 찾아오는 게 사실상 저승사자의 왕림이나 마찬가지이다.

전사 소식을 들은 유족이 표정이 싹 변하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문을 쾅 닫아 버리거나.. 심지어 물을 끼얹거나 멱살 잡고 쌍욕에 폭행까지 한댄다.
그래도 이 사람들은 일체의 맞대응을 하지 않고 묵묵히 몇 시간 며칠이고 집 문앞에서 기다리고 유족들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 준다.

오히려 유족이 졸도라도 할 경우를 대비해서 집 근처의 가까운 의료시설의 연락처까지 미리 파악해 놓고 찾아간다.
유족이 제정신인 상태에서 전사 사실을 받아들이고 후속 절차에 동의까지 해야 이 사람들의 임무가 끝나기 때문이다.
어디 콜센터 직원이나 카페 알바하고는 차원이 다른 감정노동을 하는 셈이다.

2009년작 영화인 Taking Chance가 이 주제와 관련된 유명한 작품이다.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Chance라는 게 인명이어서 실제 의미는 "챈스 일병의 귀환"인데, "기회 잡기"라는 언어유희를 구사한 것이다.
이건 '영현 봉송'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식만 전하는 전사 통지하고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하지만 전사 통지관 분위기에다가 명예훈장 수훈자의 예우 같은 심상이 더해져서 더 드라마틱한 영화 소재가 만들어진 것 같다. 제일 하이라이트 장면은 전사자 유해를 호송하는 차량의 앞뒤로 다른 민간 차량들이 알아서 헤드라이트를 켜면서 경의를 표하고 에스코트를 하는 모습이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23/07/26 08:35 2023/07/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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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먼 옛날.. 특히 성경 시대

(1) 처음엔 병거라는 게 운용되다가 나중에 군인이 직접 말에 타는 걸로 바뀌었다.
모세 일행을 추격하러 나섰던 이집트 군대, 엘리야의 승천 장면.. 그러다가 요한계시록의 말 탄 자들
안장과 등자가 발명되고 말이 품종 개량되어 덩치와 체력이 커진 덕분이다.

(2) 옛날의 공성전의 후신이 오늘날로 치면 참호전 정도 되겠다.

(3) 그러고 보니 성경에는 수많은 전투 장면이 나오지만, 딱히 해전이 기록돼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나마 요나서와 사도행전이 바다 냄새 풍기는 스토리가 많기는 하지만.. 그건 그냥 평범한 항해와 난파 얘기이니까..

1. 육군, 총기

(1) 주 무장이 냉병기에서 화약 총포로 바뀌면서, 군인과 무인은 영역이 달라지고 차이가 더욱 커졌다. 무인과 가깝고 개인의 피지컬이 크게 부각되는 병과는 특수부대나 저격수, 공작원 같은 쪽으로 세분화되고, 장교보다는 부사관의 성격이 강해졌다. 큼직한 방패나 금속 갑옷이 없어지고, 방어구는 방탄모나 방탄조끼 정도만 남았다.

(2) 1700년대까지만 해도 군인들이 빨강 파랑 등 화려한 군복을 입고 직접 전장에서 싸웠지만(나폴레옹, 미국 독립전쟁 등).. 지금은 그렇지 않고 그냥 활동하기 편하고 위장 잘 되는 칙칙한 색상으로 전투복이 싹 바뀌었다. 이젠 계급장이 눈에 너무 잘 띄는 것조차도 실전에서는 위험한 지경이니까.. 무연화약이 발명되고 개인 각개전투가 가능해진 덕분이다.
화려한 군복은 사관생도 예복으로나 남아 있다. 제식이나 총검술 같은 그냥 옛날 군대 legacy이다.

(3) 총이 발명되기는 했지만,
옛날에는 화약 가격이 그렇게도 비싸서 천하의 영국군 레드코트조차도 실탄 쏘는 훈련을 평소에 좀체 못 할 정도였다고 한다.
훗날 1차 세계 대전 때는 유대인 과학자 ‘하임 바이츠만’이.. 화약 만들 때 필요한 아세톤을 쉽고 저렴하게 합성하는 기술을 개발해서 나라를 구하고 영국의 승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4) 공용화기인 기관총 말고, 개인화기가 방아쇠를 누르고만 있으면 두두두두 갈겨지는 ‘자동’ 모드까지 지원하기 시작한 지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물론 이런 총은 전문적인 기관총이 아니기 때문에 방열 능력에 한계가 있는지라, 정말 1시간 동안 계속 갈기고 있을 수는 없다.

19세기 사람들은 기관총만 갖고도 너무 놀라서 이제 사람들이 무기의 위력이 너무 무서워서 전쟁을 선뜻 못 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실제로는 기관총만으로는 충분치 않았고, 나중에 핵무기까지 발명된 뒤에야 진짜 현타가 찾아오게 됐다.

권총은 작아서 불순한 용도로 은닉하기 쉽기 때문에, 군용 소총은 사정거리 길고 위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규제가 심하다. 민간인이 수렵이나 호신 용도로 그나마 가장 쉽게 구경하고 보유할 수 있는 총은 위의 두 속성과는 거리가 먼 산탄총이다.
권총은 경찰에게 적합하다. 군대에서는 빈약한 보조 무장에 지나지 않지만, 경찰에게는 그게 삼단봉이나 테이저 건 다음으로 최후에 등장하는 최강의 무력이다.

2. 해군

(1) 목재 범선 시절에는 배수량 겨우 몇백 톤짜리 작은 배에 수십 명의 선원이 타고 대양을 건너고 이걸로 심지어 전투도 벌였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그 시절 화력으로는 배를 통째로 다 파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적선에다 다리 놓고 쳐들어가서 배에서 백병전 벌여서 승무원들만 제압하고, 배는 노획하거나 심지어 빼앗겼던 배를 도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공성전이나 시가전이 건축물 대신 배에서 벌어지는 거나 마찬가지.. 요즘 같으면 적군이 아니라 그냥 테러리스트나 해적과 싸우는 것하고 비슷한 양상이다. -_- 배를 통째로 격침시켜서는 안 되고 인질도 보호해야 하는 그런 상황 말이다. 하긴, 옛날에는 해군과 해적의 구분도 지금만치 분명하지 않았고, 국가 공인 해적인 사략선 같은 조직도 있었다.

(2) 옛날 범선 시절엔 대포들이 배 옆구리에 일렬로 쭈욱 늘어서 있었으며, 그 구조상 위로 발포는 불가능했다.
이런 배를 전열함이라고 불렀는데, 배의 재질이 철로 바뀌고 동력원이 돛 대신 엔진으로 바뀌면서 현대적인 의미의 전함이 등장했다. 20세기가 돼서야 함포가 밖으로 돌출돼 나오고 구경이 더 커지고, 나름 고각으로 대공 발포도 가능해졌다.

(3)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해전에서는 포의 사정거리가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했다. 바다야말로 아무 지형 장애물이 없으니, 우리는 안 맞고 적은 맞을 수 있는 사정거리에서 포 쏴서 맞히면 장땡이었기 때문이다. 포의 사정거리를 올리려면 배가 커져야 했다.
물론, 적선이 아예 보이지도 않고 지구의 둥근 곡률을 실감할 정도로 수십~수백 km 이상 아득히 먼 곳에서 쏘는 수준은 아니었다.

(4) 러일 전쟁 시절엔 전투기 폭격기라는 게 사실상 없다 보니, 러시아 발트 함대가 인도양 건너 무려 7개월을 항해하면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왔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삽질인 것 같은데..??
러일 전쟁은 육군의 203 고지전과 해군의 쓰시마 해전이 같이 존재하는 것도 그렇고.. 양상이 굉장히 특이했다. 40여 년 뒤에 소련군이 일본 관동군을 박살내는 방식은 그때와는 또 완전히 달라졌다.

오늘날은 핵무기가 너무 위력이 강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더는 이걸 갖고 경쟁을 하지 말자고 나라들이 조약을 맺게 난리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너도 나도 대형 전함을 개발하는 게 요즘으로 치면 핵 개발을 하는 것과 비슷한 군사 위협이었다. 그래서 강대국들은 우리 다같이 일정 배수량을 넘게 전함을 만들지는 말자는 조약을 서로 체결할 정도였다. 참 격세지감이다.

(5) 그러나 요즘 군함은 2차 대전 시절의 전함보다 오히려 다시 작아졌다. 엄청나게 거대한 배는 항공모함뿐이다. 그건 배가 직접 싸우는 게 아니라 함재기가 싸우는 거고..
항공모함을 표방하는 프로토스 캐리어와, 태평양 전쟁 시절 대형 전함을 표방하는 테란 배틀크루저의 관계가 더 잘 와 닿을 것이다. 후자는 심지어 포 이름조차도 ‘야마토’이다!!!
대형 전함은 대형 대륙 횡단 여객선과 동급으로 유행이 끝나서 퇴역했다. 하지만 해병대의 입장에서는 재래식 전함이 있어서 나쁠 게 없다. 상륙 작전 때 뒤에서 사정거리 수십 km에 달하는 함포를 펑펑 쏘면서 아군을 지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엄호 사격이 아닌 엄호 포격..!!

여담이지만, 군함뿐만 아니라 도로도 비슷하게 스케일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오늘날은 대도시라도 시내 도로를 예전처럼 너무 큰 10차로, 12차로 급으로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량 통행을 억제하고 보행자와 대중교통을 우대하는 쪽으로 도시를 설계한다.
시내 도로는 뭔가 전함 같고, 보행자가 아예 없는 자동차 전용 도로나 고속도로는 항공모함에 대응하는 것 같다. 차라리 후자는 전자보다 더 커질 여지가 있다.

(7) 그나저나 잠수함은.. 여느 수상함과는 성격이 좀 다르고, 육군 저격수 같은 특수 병과의 해군 버전 같은 느낌이 든다. 저격수의 바다 버전이랄까? 하긴, 저격수는 전투복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길리슈트를 입고 잠복한다.;;

3. 공군

(1) 2차 대전까지만 해도 전투기가 고작 왕복엔진 프로펠러기였다는 것, 원자폭탄을 미사일로 날린 게 아니라 유인 폭격기가 직접 투하했다는 것..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제트 엔진이라는 게 아직 제대로 상용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태평양 한복판에서 항공모함 함재기끼리 싸운 전투만 해도 가히 그 시절로서는 SF급의 첨단 전투였겠지만,
적선 근처까지 직접 저공 비행해서 폭탄이나 어뢰를 떨궜던 급강하폭격기와 뇌격기는.. 뭔가 심하게 위험하고 삽질스러워 보인다. 저렇게밖에 할 수 없었나..??
이것도 다 미사일이란 게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로켓 엔진은 제트 엔진의 파생형이다.

(3) 적성국가에서 누가 적기나 적선을 몰고 귀순해 와서 그걸 갖다바치면..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보상이 주어지며 그 사람은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이런 캐이득 귀순을 적극 유도하고 장려하기 위해서이다.
그나마 배는 느리고 승무원이 많기라도 하기 때문에 돌발행동이 극히 어려운 반면, 전투기 같은 건 한두 명밖에 안 타는데 기동성은 넘사벽이다. 그러니 조종사가 나쁜 마음 품으면 그 비싼 국가 자산을 갖고 돌발행동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세계 각국에서는 수송기도 아니고 전투기 조종 정도면 간부인 건 너무 당연한 일이고, 부사관도 아니라 장교에게 맡긴다. 수백 kill을 자랑하는 인간흉기 최정예 저격수나 특전사 대원은 부사관이지만, 전투기 조종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허나, 구 일본군은 이런 어마어마한 전투기를 운용한 군인의 계급이 꼴랑 ‘병’이었던 유일한 군대이지 싶다. 다시 말하지만 전투기를 정비하는 군인이 아니라, 조종하고 그걸로 목표물을 공격하던 군인 말이다. 인류 역사상 유일하다.

(4) 해병대가 육군과 해군 사이에서 좀 짬뽕 같다면(병의 복무 기간은 육군과 동일하지만, 그래도 간부는 장교는 육사가 아닌 해사 출신).. 항공모함 함재기는 공군과 해군 사이에서 좀 짬뽕 같다. ㄲㄲㄲ
육군과 해군이 운용하던 항공대가 독립해 나가서 공군이 됐는데.. 미국은 아직 상징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이제 공군에서 우주군이라는 걸 따로 독립시키려는가 보다.

4. 여담: 총알과 포탄과 미사일

오늘날 바다에서 군함들이 서로 보이는 곳에서 총포를 주고받는 건.. 그냥 옛날 백병전이나 전열보병과 다름없는 짓으로 취급된다.
아니면 저건 우리나라 제2 연평해전 때 그랬던 것처럼.. 확전을 억제하려고 우리 쪽에서 비정상적으로 불리하게 봐 주고 먼저 얻어터져 줬을 때에나 벌어지는 일이다.

그것처럼 전투기에서 기총사격..?? 이건 뭐 육군으로 치면 대검이나 권총 딱총 정도의 초라한 무장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런 무장도 가끔은 필요할 때가 있고, 또 미사일 만능주의만 외치기에는 미사일은 너무 비싼 무기이기도 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총포 같은 재래식 무장이 육해공을 막론하고 완전히 퇴출된 건 아니다.

  • 한번 동력을 얻어서 날아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엔진이 달려서 추진을 하면 그건 로켓이나 어뢰 같은 물건이 된다.
  • 날아가서 박히기만 하는 게 아니라 폭발해서 파편도 날리면 그건 단순 총알 탄환을 넘어서 수류탄이나 포탄, 폭탄이 된다.
  • 거기에다가 그냥 날아가는 게 아니라 목표물을 향해서 방향 전환까지 하면 그건 유도탄이나 미사일이라고 불린다.

Posted by 사무엘

2023/07/20 08:36 2023/07/2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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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적 제재와 무장

공동주택에서의 3대 민폐는 담배, 애완동물, 층· 벽간 소음이지 싶다. 그야말로 후각· 촉각· 청각이 골고루 다 분포해 있구나! 또한, 상황이 좀 더 열악한 곳에서는 주차 시비까지 추가해서 4대가 될 수도 있겠다. 이것 때문에 살인 사건도 이미 몇 건 난 적이 있다.

주거용 건물은 계단 통로가 담배 냄새가 안 나는 곳을 별로 못 봤고, 요즘은 예전보다 개도 주변에서 부쩍 눈에 띈다. 먹고 살기 빠듯하고 힘들다면서 애완동물 키울 여력은 있는가 보다. 도시는 시골과 달리 동물에 친화적인 곳이 아니긴 하다.

다음으로 소음 문제의 경우, 찾아가서 항의하는 건 씨알도 안 통하니 당하는 쪽에서도 벽이나 천장을 같이 쿵쿵 치는 걸로 응사하는 편인데.. 인터넷을 뒤져 보니 단돈 몇 천원 짜리 고무 망치가 그렇게도 즉효약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다. (☞ 대표적인 사례: 슈랄라 월드)

잘 쳐 주면 건물 자체는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쿵쿵~ 웅웅~ 깊은 진동을 전해서 가해자를 놀라게 하고 숙면을 방해할 수 있다고 한다. 본인은 딱히 소음 피해를 겪은 적이 없고 저런 물건을 써 보지도 않아서 잘 모르겠다.

뭐랄까, 지금 같은 법치 의식이나 국가 정체성, 인권 의식이 형성되기 전에,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이 엄격하게 생기기 전엔... 서양에서는 민간인의 무장과 사적 제재라고 해야 하나, 그런 관념이 지금보다 훨씬 더 관대했다.

그러니 '사략선'이라는.. 한중일 문화에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국가 공인 해적이 있었다. 전시에 민간인이 적국 선박을 터는 것을 합법으로 허용하는 면허 말이다.
그리고 '결투'도 있었다. 결투에서 상대방을 죽이는 것은 마치 전쟁터에서 적군을 죽이는 것만큼이나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었다..;;

누구든 월급 주는 주인님을 위해 깃발 바꿔 달고 싸우는 '용병'은 요즘으로 치면 PMC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국군 상비군이 있는 일반적인 나라에서는 흔하지 않다. 아 하긴, 프랑스에는 아직 외인부대가 있던가?

또한 민간인이 스스로 무장하고 자기 마을을 지키는 '자경단'은.. 용어를 저렇게 쓰면 어감이 굉장히 부정적이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조선과 구한말의 '의병'하고 별 차이 없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건 아주 성경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에스더기도 유대인 학살 명령이 공식적으로 철회되는 게 아니라, "너희들도 자경단 꾸려서 침략자에 맞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지켜라. 아무도 안 말린다"가 추가되는 걸로 끝나니 말이다.
좀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1992년의 미국 LA 폭동 때도 평소에 총을 구입해 놓고 대비를 했던 한인들은 자경단을 꾸린 덕분에 자기 가게를 안 털리고 지켜내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 남성들의 이런 저력(...)은 5· 18 광주 북한군 개입설을 부정하는 근거로도 활용된다.
서슬 퍼런 반공 군사 정권 하에서 교련에다 군생활도 무려 3년씩이나 의무적으로 했던 사람들이 진지 구축이나 총질쯤은 껌이며, 탱크 조종 보직이었던 사람도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없을 리가 없다. 그 정도 군사 행동은 굳이 북괴 공작원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수많은 청년들의 자유를 제약하고 희생하며 돌아가고 있는 우리나라 징병제의 위력을 만만하게 여기지 마시라.

무기고 위치 정도는 그렇게 비밀도 아니며, 평소에 잡범 범죄자에 의해 종종 털리기도 했었다. 그럭저럭 민주화가 된 1990년대의 LA에서도 저랬는데 하물며 전투력이 그때보다 더했을 1980년대의 광주를 동일한 잣대로 생각해 보면 본인으로서는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소말리아 같은 막장인 나라 말고, 엄연한 잘사는 선진국 중에서 민간인이 버젓이 총을 소지하는 나라는 미국 말고 더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화력이 너무 강한 군인 소총이나, 은닉하기 쉬운 권총은 여전히 규제가 걸려 있지만, 샷건 정도는 시골로 갈수록 뭔가 생활 필수품인 것 같다.

2. 경찰 비슷한 것들

경찰은 군대와 마찬가지로 국가와 사회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며, 정부에서 세금을 써서 유지시킨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공권력의 존재감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기관이 바로 경찰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군· 경의 역할을 민간이 대체하는 것을 매우 경계하며 금기시한다. 그래서 사적 제재를 전면 금지하고 정당방위도 매우 보수적이고 제한적으로만 인정한다. 나쁜놈이 있으면 어지간해서는 정말 제일 소극적인 제압만 한 뒤 바로 경찰에 넘기기만 해야 한다. 놈이 흉기를 들고 설치고 있으면 흉기를 재주껏 빼앗아서 버리기만 해야지, 그걸로 내가 반격 역관광을 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니 자경단이나 민병대· 의병 같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사설 탐정도 국내에서는 전면금지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민간인의 경찰 위장· 사칭은 죄질이 매우 나쁜 범죄이다. 일반인은 평시에 전투복뿐만 아니라 경찰복을 입는 것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수갑 같은 경찰 전용 장비 역시 소지하거나 휴대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경찰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을 보조 내지 대행하는 민간인 조직이 아주 없는 게 아니다.
자율방범대(치안)라든가 모범운전자(교통 정리)가 그 예이다. 이런 사람들은 경찰과 어떤 관계를 맺고 보수를 어느 정도 받는지, 직무와 관련하여 어느 정도까지 권한이 있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이 사람들이 진짜 경찰처럼 누구를 체포한다거나 교통법규 위반 범칙금 딱지를 발급하지는 못한다.

은행이나 병원 같은 곳에 있는 청원경찰은 정식 경찰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 사설 경비원도 아닌 중간 위치 같다. 철도 경찰이나 해경은 일반적으로 아는 그런 경찰과는 다른 경찰일 테고..
그나저나 옛날에 미국에서 큰 모자 쓰고 말 타고 돌아다니던 '보안관'은 경찰하고는 어떤 관계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3. 사립 사관학교

본인은 먼 옛날에 사탄의 인형 시리즈를 1편부터 3편까지 영화관..은 아니고 TV와 비디오로 봤다. 1편은 진짜 공포 장르였지만 2편과 3편은 호러 코미디에 가깝다. 주인공 앤디가 처키의 정체를 완전히 알게 되면서 동심이 완전히 파괴된 상태가 됐고, 또 나이를 먹고 성장도 했기 때문에 1편과 같은 의미의 약자의 위치에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특히 3편의 경우, 애가 군사 학교에 입교하게 된다. 이름하여 Kent Military School. 그런데 나이가 들고 나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 군사 학교라는 건 도대체 정체가 뭔가? 국· 공립인가, 아니면 설마 사립인가? 한국에는 이런 교육기관은 없는 것 같은데..

병을 양성하는 곳인가, 간부를 양성하는 곳인가? 그냥 신병 훈련소라고 보기에는 내부 시설이 꽤 좋고.. 하지만 학생들의 연령대가 굉장히 다양하고 무슨 웨스트포인트 급의 정식 사관학교도 아닌 것 같다. 앤디처럼 불우하게 자란 애가 그런 정예 장교 양성 시설에 호락호락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죽은 아버지가 무슨 명예 훈장의 수훈자이기라도 하지 않다면 말이다.
그리고 계급의 번역이 제대로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생도들 군기를 잡는 훈육대장이야 해야 하나.. 그런 사람이 무려 대령인 건 하는 일에 비해 계급이 너무 높은 것 같다.

검색을 해 보니 미국에는 이런 군사 학교가 몇 군데 있다고 한다. 나라에서 인가한 정식 사관학교와의 차이는 (1) 일단, '사립'이다. 자연히 학비는 전면 무료가 아니며, 여기를 졸업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미군 간부로 임관한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여기는 (2) 애초에 대학교에 준하는 고등 교육기관이 아니라 중· 고등학교에 대응하는 중등 교육기관이다. 여기를 졸업한 애들은 소수의 군대 체질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냥 일반 대학교로 진학한다.

즉, 여기는 무슨 정식 사관학교도 아니고 해병대 캠프나 스파르타 식 명문대 학원도 아니지만.. 사관학교의 커리큘럼을 따 와서 일상생활에서 애들을 합숙시키고 군복(정복, 예복, 전투복 등..) 입히고 군대식으로 절도 있게 키우는 학교이다. 한국의 장성들이 자기 자녀는 저기로 유학 보내서 키우기도 한댄다. 중딩 고딩들한테 설마 진짜 사관학교처럼 공수 훈련까지 시키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총 잡고 페인트탄 워 게임 정도는 한다.

사탄의 인형 3의 배경인 '켄트(Kent) 군사 학교'는 '켐퍼(Kemper) 군사 학교'라고 미국에 실제로 있었던 사립 사관학교이다. 1800년대부터 있었던 학교이다 보니 캠퍼스가 굉장히 고풍스러우며, 사탄의 인형 말고 몇몇 다른 영화들의 촬영지로도 쓰였다고 한다.

이 학교는 쟁쟁한 졸업생 동문을 배출하기도 했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점점 경영난을 겪었으며(신입생의 감소로 인해), 2002년에는 폐교하고 말았다. 국영 사관학교라면 이렇게 망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옛 캠퍼스 부지와 건물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4. 군대의 진급

우리나라의 현행 군대 계급 체계에서 다음과 같이 임관 내지 진급하는 건 흔치 않은 경우이다.

  • 준위로: 부사관에서 상사를 능가하는 만렙 계급은 일단 원사이다. 그런데 거기서 더 나아간 준위는 단순히 원사의 상위 레벨이 아닌 좀 특이한 계급이다. 부사관의 만렙으로서 자기 분야의 최고 전문가 스페셜리스트이면서, 한편으로 그 바닥에서 장교 같은 명령권도 있는 '준사관'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어떤 준사관 계열은 아예 군필만 한 민간인이 곧장 들어오기도 한다.
  • 임관이 아니라 특진해서 소위로: 병장이 진급해서 자연스럽게 부사관인 하사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병이나 부사관이 자기 계열에서 진급만 한다고 해서 장교 계급을 받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역사상 죽어서 소위 계급이 상징적으로 추서된 건 지뢰 밟고 죽은 군견이 유일하다.
  • 대장에서 원수로: 원수는 포스타 중에서도 그야말로 나라를 구한 불멸의 성웅이나 받을 법한.. 상징적인 종신 계급이다. 통상적인 진급이나 전사자 특진만으로는 될 수 없다.

우리나라에 과학 분야 노벨 상 수상자가 없는 것만큼이나 원수 계급을 받은 군인도 현재까지 없다. 그나마 제일 근접해 있는 백 선엽 대장마저도 못 받은 계급을 감당할 만한 용자는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전쟁터에서 혼자서 적군을 수십 명 때려잡고 아군을 수십 명 구했다면 그건 병이나 부사관이 무공 훈장과 포상금을 잔뜩 받을 일이다. 계급 자체는 그런 병/부사관 수준에서 1~2단계 정도 특진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에 반해 포스타가 원수가 되려면..?? 가히 전군과 국가에 영향을 끼칠 만한 넘사벽급의 '통솔' 업적이 있어야 한다.

  • 사령관의 천재적인 지휘 하에 전군이 힘을 합쳐서 돼지 목을 따는 데 성공하고 북진 멸공 통일을 이룬다거나,
  •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했는데 한국군이 무슨 지구를 구하는 데 국제적인 기여를 했거나,
  • 국군의 규모가 지금보다 몇 배 이상 더 커져서 포스타마저 수십 명으로 늘지 않는 한..

한반도에서 오성장군이 배출될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1/31 08:34 2019/01/3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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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량 + 대포

전차와 자주포를 구분할 줄 아는지 여부는(외형, 용도 모두) 아마 일반인과 밀덕을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인 잣대가 아닐까 싶다. 군사 디테일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느 것이든 그저 똑같은 탱크로 보이겠지만, 둘은 그 본질이 완전히 다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차는 적진을 향해 말 그대로 돌진해서 싸우는 역할을 하는 차량이다. 눈에 보이는 상대적으로 가까운 적을 향해서 포를 직사로 쏜다.
그 반면 자주포는 대형 곡사 화포에다가 움직이는 기능을 부가적으로 추가한 형태이다. 탱크만치 험지와 급경사, 물 속까지 돌아다니지는 못하지만 수~수십 km 밖에 있는 표적에다가 위력도 훨씬 더 강한 포를 쏜다.
스타크래프트 탱크에다 비유하면 전차는 말 그대로 탱크 모드이고, 자주포는 시즈 모드에 대응하는 셈이다. 게임에서는 한 차량이 두 모드를 겸하는 재주꾼이지만 현실에서는 둘은 별개로나 운용 가능하다.

군용차 중에는 전차보다 더 무장이 작은 장갑차도 있다. 이런 차량은 전차보다도 더욱 이동과 방어에 특화돼 있으며, 무장은 있더라도 포가 아닌 중기관총 같은 더 가벼운(?) 형태로 국한되곤 한다.
심지어 바퀴도 궤도가 아닌 일반 고무 타이어가 달려 있기도 하다. 굴삭기가 궤도형도 있고 고무 바퀴형도 있듯이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컨대 군용차의 속성에는 이동 능력과 전투 화력이 일종의 tradeoff 형태로 존재한다. 그래서 장기에서도 이런 점을 반영하여 차(車)와 포(包)가 가장 값어치가 높은 말인 것이지 싶다. 적절한 작명이다. "차 떼고 포 떼고"라는 관용구는 핵심요소를 빼서 엄청난 핸디캡을 부과하겠다는 얘기이며, 윷놀이로 치면 윷과 모를 빼고 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말(馬)이나 코끼리(象)를 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2. 드래군

스타크래프트의 프로토스 공격 유닛 중에는 '드래군/드라군'이라는 놈이 있다. 영어로는 dragoon인데 '용'을 뜻하는 dragon과 철자가 아주 비슷하다(O가 하나 더 붙었을 뿐).
드래군은 우리 문화권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근세 서양에 존재했던 기마병을 뜻한다. 시기가 중세 이후이기 때문에 무슨 두꺼운 갑옷 차림에 냉병기 무장은 아니고, 그 대신 머스킷으로 무장해 있었다.

그런데 영한사전을 찾아보면 드래군의 원래 우리말 번역이 '용기병'이라고 그러길래.. 저 '용'은 도대체 무슨 한자이고 무슨 뜻으로 말이 저렇게 번역되었는지가 몹시 궁금해졌다.
설마 했는데 그 용은 龍이었다. 드래군들이 지닌 장구류(깃발, 헬멧)에 용 모양의 휘장이 붙어 있었다고 말이다. 불과 천둥을 내뿜는 머스킷 총구가 서양 문화권에서 용의 입을 연상시켰는가 보다.
영어로도 '드래곤'과 굉장히 비슷한 단어인데 한국어 '용'도 그걸 노린 건지, 마치 dung과 '똥'과 비슷한 급의 우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토스의 드래군은 다리가 넷 달렸고 덩치도 아주 크다. 비슷한 테란 메카닉 유닛인 골리앗보다도 더 크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프로토스 용사들의 수족만 기계로 교체한 거라면 외형이 이족보행 로보캅처럼 됐을 텐데, 저렇게 '기마병'을 표방하느라 다리 개수도 늘어난 듯하다. 원래 프로토스 족이 근본적으로 인간보다 덩치가 더 큰 걸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군대 조직 생각을 하다가 문득 스타크래프트 추억이 다시 떠올랐다.

3. 육군 보병을 지원하는 화력

전쟁에서 가장 본질적인 주역은 예나 지금이나 땅개 보병 소총수이다. 사람은 결국 물이나 하늘에서 사는 게 아니라 땅에서 사니까.. 그리고 온갖 최첨단 무기들이 등장하고 그로 인해 특수하고 전문적인 병과들도 많이 생겼지만, 얘들도 존재 목적은 결국 보병이 벌이는 전투를 보조하고 지원하는 것으로 귀착되기 때문이다. 전장에서 난관에 부딪힌 보병 부대가 통신으로 "우리는 현재 적에게 포위됐다. / 이런이런 장애물 때문에 진격을 못 하고 있다. 여기여기 좌표를 폭격해 주길 바란다! 지원 바란다!" 식으로 후방 기지에다 연락을 한다.

군대에 어떤 기계가 도입되면 기계 덕분에 인력만으로 할 수 없는 넘사벽 급의 일을 거뜬히 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기계는 아무 환경에서나 제 능력을 발휘 가능한 게 아니며, 유지 보수하고 관리하는 인력을 추가로 필요로 한다. 기계는 사람보다 생물학적으로 척박한 곳에서는 더 잘 견디겠지만, 너무 복잡하고 정교한 물건이라면 충격이나 진동에는 의외로 취약하고 신뢰성이 마냥 무한하지 않다. 만능 강화복이나 로봇 병기 같은 게 2010년대에도 실용화되지 못하고 여전히 공상과학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총체적인 가성비를 따졌을 때, 알보병은 현대전에서도 가성비가 그렇게까지 꿀리지 않는다. 군사 분야에서 알보병이라는 병과가 송두리째 100% 기계로 대체되지는 않았으며, 기계는 자기 전문 영역에서만 언제까지나 인간을 보조하는 형태로 운용되고 있다.

보병을 지원하는 화력은 크게 포격과 폭격으로 나뉜다. 포격은 앞서 소개했듯이 자주포로 어마어마하게 먼 표적에다 포를 쏘는 것이며, 폭격은 공군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폭격기들이 직접 날아와서 적진에다 폭탄을 떨구고 가는 것이다. 비주얼은 폭격이 더 멋있을지 모르지만, 포격이 더 안전하고 저렴하며 포탄을 더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면서 더 오래 지속적으로 공격을 할 수 있다.

한편, 위의 것과는 성격이 좀 다르지만 저격도 매우 훌륭한 지원 임무이다. 적군 한 명을 죽이기 위해 소모하는 총알 효율로는 이거 뭐 게임이 안 되니까..
다만, 얘는 화력 덕후나 지휘 통솔 공동작업 같은 일반적인 군사 이념을 추구하지는 않으며, 혼자 하는 잠입 액션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나름 전문직 병과임에도 불구하고 포병 장교나 전투기 조종사와는 달리 장교가 아닌 부사관 계열로 간주된다. 해군으로 치면 여느 군함이 아니라 잠수함 근무에다 비유할 수 있겠다고 본인이 언급한 적이 있지 싶다.

적군의 대포 사격은 우리 역시 대포 사격으로 대응하고 제압하는 편이며, 적군의 저격수를 제압하는 것도 일반적으로는 아군의 저격수이다. 급이 같아야 서로 싸움이 되는가 보다.

4. 군용기

수송기: 군용기 중에서 말 그대로 이동과 수송에 가장 특화돼 있으며 민항기와 가장 비슷한 역할을 하는 물건이다. 모든 전쟁에는 전투 인원보다 보급· 지원 인원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군용기에서도 수송기는 비록 직접 교전을 하지는 않아도 역할이 가히 절대적이다. 공중급유기도 수송의 일종으로 봐야 하려나?

정찰· 조기경보기: 수송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래의 비행기들처럼 본격적으로 공격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공중이라는 특성상 땅과 바다의 어떤 기계도 할 수 없는 첩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명백한 이유로 인해 군용기 중에서 무인화가 가장 먼저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폭격기: 무장을 잔뜩 실어서 아래의 땅을 쑥밭으로 만드는 일에 최적화돼 있다. 군용기 중에서 실질적인 kill 수를 제일 많이 달성하고 20세기 전쟁사를 가장 거창하게 장식한 물건이 바로 폭격기이다.
항공 폭탄은 그냥 중력의 힘으로 낙하만 하는 것이니 포탄· 미사일이나 어뢰와는 달리 추진을 위한 기폭제나 엔진이 필요하지 않고 순수하게 본연의 임무인 파괴를 위한 폭약만 잔뜩 집어넣어서 만들면 된다는 큰 장점이 있다. 다만, 요즘은 정밀 유도 미사일의 발달 덕분에 옛날처럼 무식한 융단폭격 전술이 그렇게까지 막 쓰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전투기: 얘는 수송기나 폭격기, 혹은 동급의 전투기 같은 다른 군용기를 떨구는 일에 최적화됐다. 공중에서 매우 빠르게 날아가는 비행기를 공격하는 것은 지상의 목표물을 공격하는 것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전투기는 기동성이 그 어떤 군용기보다도 뛰어나며 무장도 최첨단으로 달려 있다. 여러 비행기 조종사 중에서도 전투기 조종사는 되기가 가장 힘든 전문직이다.
전투기는 과격한 기동 때문에 탑승자 대비 연료 소모도 많은지라, 커다란 전투기의 내부도 겨우 2명이 타는 좌석을 빼면 다 연료를 싣는 공간이다. 여객기는 공간 확보 때문에 연료가 날개 안에 실려 있는 편이지만, 전투기는 날개 주변에다가는 무장을 싣는다.

5. 총포

일반 총(개인 소화기급은 사정거리 수십~수백 m, 대형 중화기급은 수 km): 총구에서만 불이 뿜어져 나오고, 그 뒤에 총알 하나에서 탄두 하나가 목표물의 특정 지점에 곱게 박힌다. 작은 권총 정도는 비교적 자유로운 자세로 쏠 수 있지만 장거리 사격은 화력이나 정확도 면에서 영 무리이다. 적어도 강선이 새겨진 소총급은 돼야 군인이 개인 화기로 쓸 만하며, 이런 총은 개머리판을 어깨에 댄 채로 쏴야 한다.
혼자 들고 다닐 수 있는 소총도 잠깐 동안이나마 자동 연사 기능이 있다(방아쇠를 한번 당기고 있는 동안 계속 총알이 나가는..). 하지만 총열 순환과 냉각 기능이 있고 위력이 더 강한 중기관총 같은 급이 되면 운용을 위해 여러 인원이 필요하며, 경화기를 넘어 중화기의 범주에 들기 시작한다.

산탄총: 총구에서만 불이 뿜어지는데 총알 하나에서 단일 탄두가 아니라 여러 쇠구슬들이 퍼지면서 목표물에 박힌다. 이것도 스플래시 대미지인지?
이런 총기는 사정거리가 짧기 때문에 전투용으로는 부적합하며, 인명 구조를 위해 자물쇠를 부수고 문을 딸 때 혹은 그냥 사냥 용도로 쓰인다. 마치 칼 중에서도 부엌칼처럼 어째 비군사적인 목적으로 유용한 구석이 많다. 물론 그래도 부엌칼이나 샷건 역시 사람을 얼마든지 끔살시킬 수 있는 위험한 흉기인 건 자명한 사실이다.

대포(사정거리 수십 km): 사람이 혼자서 들고 다닐 수 없는 물건이다. 옛날에는 성벽 요새나 군함에 달려 있었으며, 야전에서는 커다란 수레바퀴를 굴려서 운반하곤 했다.
그 시절에는 대구경 화포답게 무슨 볼링공 같은 거대한 탄환이 날아가서 목표물을 박살내곤 했으나, 요즘 대포에서는 그냥 단단한 탄두가 아니라 고폭탄이 날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총구뿐만 아니라 명중 지점에서도 불꽃과 폭발이 일어나며, 넓은 영역에 파편이 날리면서 '스플래시 대미지'가 발생한다.

로켓과 미사일(사정거리 수백~수천 km): 대포보다도 더 강하고 정확한 화력을 원한다면 결국 탄환에다가 직접 로켓 엔진을 달아서 추진시키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이 20세기 중후반이 돼서야 등장한 미사일이라는 물건이다. 얘는 발사 직후(총)나 명중 직후(포)뿐만 아니라 날아가는 동안에도 꽁무니에서 불과 연기가 피어오른다. FPS로 치면 얼추 로켓 런처처럼 되는 셈이다.
미사일은 고작 수십 km가 아니라 수백~수천 km를 날아서 대륙을 건널 수 있는 지경이 되었으며, 목표물을 향해 스스로 자세를 잡는 유도 기능도 갖추고 있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에다가 고작 재래식 폭탄이 아니라 핵폭탄을 장착하면 가히 인류 역사상 최강의 병기가 탄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북한이 하는 짓을 보면 알 수 있듯, 핵무기의 개발에는 장거리 발사체의 개발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과거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 때처럼 일개 폭격기가 적국의 영공 깊숙한 곳까지 친히 기어 들어와서 핵폭탄을 떨구는 짓은 오늘날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뭐, 로켓 기반 화기 중에도 바주카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놈도 있긴 하지만, 대략적인 추세가 이러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6/09/28 08:31 2016/09/2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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