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음악 관련 에피소드

1. 로베르트 슈만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이라고 19세기를 살았던 독일의 음악가가 있다.
이공계 석박사급 전문가 중에도 취미로 하는 음악이 연주건 작곡이건 (준)프로급인 괴수가 일부 있긴 하다만.. 슈만은 그렇지 않고 순수 문과.. 즉, 문학과 예술을 넘나드는 감성파 쪽 천재였다.

그는 20대 초반 나이 때 피아노에 완전 미쳐 있었는데.. 욕심을 내서 연습을 너무 무리해서 하다가 손가락을 다치는 바람에 원래 지망했던 피아니스트의 길을 갈 수 없게 됐다. 결국 작곡, 지휘, 교육에다 문학 기질을 살린 음악 평론 분야로 전업했다.

나 초등학교 시절에 봤던 피아노 교본 앞부분에 슈만의 초상화와 함께 일대기 소개가 있었다. 다른 부분은 다 잊어버렸지만 “지나친 연습으로 손가락을 다쳐..”라는 문구는 지금까지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지나치다’라는 국어 용언의 형용사 용법을 이때 거의 처음으로 접했기 때문이다. (excessive.. 동사는 그냥 pass by일 테고)

이게 단순히 손과 손가락이 쥐가 나거나 삐거나 피 좀 흘린 정도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부러지거나 영구적으로 마비되기라도 한 듯한 모양이다. 맨손으로 피아노를 죽어라고 치기만 했다고 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피아노가 자체가 손을 으스러뜨릴 수 있는 무슨 공작 기계이기라도 하지 않은 이상 말이다.

아, 생각해 보니 피아노 뚜껑을 덮다가 손가락이 끼이고 깔려서 다칠 수는 있겠다. ㅡ,.ㅡ;; 하지만 슈만이 그런 사고를 당한 건 물론 아니었다. 원하는 손가락 움직임을 강제로 구현하려고 손가락에 특이한 기구를 끼우고 평범하지 않은 상태로 연습하다가 탈이 난 것이었다. 1832년의 일이다.

장애가 생긴 부위는 오른손 약지였다. 참고로 안 중근 의사는 맹세를 할 때 왼손 약지의 첫 마디를 끊었다.
넷째 손가락이 손가락들 중에 그나마 가장 덜 중요한 부위라고는 하지만, 악기를 연주할 때는 안 쓰이는 손가락 부위가 없을 것이고, 아무 손가락이라도 그렇게 결손이 있으면 군대도 현역으로 안/못 간다.

그래도 얼마나 피아노에 미쳤으면 연습을 저런 식으로까지.. 하는 생각이 들고 그 열정 하나는 존경스럽다.
하농 교본만 봐도.. 끝에 보면 “피아니스트로서 손의 감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이 60곡 전곡을 치라는 주문은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닐 것입니다” 이런 문구와 함께 끝났었다. 물론 프로 전공자 한정이겠지만 말이다.;;

이 슈만은 피아노뿐만 아니라 연애에도 불같이 미쳤었다. 인생 한번 참 정열적이다.
자기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스승의 어린 딸.. 정확히는 자기보다 9살 어린 10대 아가씨(클라라)에게 완전 꽂혀 버렸으며, 그쪽의 마음도 얻었다! 그래서 없으면 서로 못 사는 사이가 됐다.

그 스승이라는 양반은 당연히 노발대발했다. 아무리 자기 제자라지만, 가난하고 미래 불투명하고 손도 다친 9살 연상의 작곡가 아저씨한테 내 딸 절대 못 준다고 맞섰고 치열하게 민사 소송까지 갔다. 허나, 결국 스승이 졌다.

둘은 1840년에 결혼해서 그래도 금슬 좋게 자녀도 여섯 명이나 낳고 잘 살았다. 부인은 남편이 못 이룬 피아니스트의 길을 계속 갔고 말이다. 이 정도면 뭐 승리한 인생 아니겠나.; (스승과도 나중에 화해했다고 함)
뭐, 빌 게이츠도 9살 연하의 자사 여직원과 결혼했다지만, 슈만은 빌 같은 처지가 아니었지...ㄲㄲ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철덕 작곡가로 유명했던 안톤 드보르작(1841-1904)도 슬하에 딸을 뒀으며, 자신의 어느 제자(요제프 수크)로부터 “스승님의 딸을 제게 주십시오!”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유럽 그 시절의 음악계엔 저런 관행이 드물지 않았던가 보다.

그 제자는 자신의 스승 겸 미래의 장인의 취향을 잘 알았기 때문에, 자기가 여기 올 때 무슨무슨 번호의 열차를 탔고 열차의 움직임이 이랬다고 의기양양하게 보고를 했는데.. 드보르작은 표정이 썩으면서 그 시간대에 그 열차가 다닐 수 없다고 거짓말을 알아챘던가, 아니면 네가 차량 번호와 운행 스케줄 번호를 헷갈렸다고 쿠사리-_-를 먹였다고 한다. 그래도 결혼을 허락은 해 줬다.;;

2. 괴음악 "검은/우울한 일요일"

본인은 먼 옛날 중딩 시절에, 표지부터가 악마의 얼굴 모양으로 뭉게뭉게 치솟고 있는 화재 현장 연기 사진인..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도시전설 괴담 모음집 책을 본 적이 있었다.
"링컨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의 공통점"부터 시작해, 요런 얘기가 그 책에 있었다.

"검은 일요일"이라고.. 프랑스의 루란스 차르스라는 사람이 1932년에 작곡한 음악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암울하고 구슬픈 곡이었는지, 이걸 듣고서 유럽과 미국에서 100여 명이 넘는 사람이 극도의 멘탈붕괴를 체험하고 연달아 자살했다고 한다. 유서에다간 문제의 곡을 당당히 언급하면서 말이다.

"이 곡을 들으니 삶의 의욕이 송두리째 사라지네요. 찢어지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어서 저는 이 생을 마감하렵니다. ㅠㅠㅠ 이게 다 검은 일요일 때문입니다. 제 장례식 때 이 곡을 연주해 주세요~" (헐, 조문객들까지 자살하게 만들려고?? =_=;;)
세계의 날고 기는 음악가와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들이 이 곡에 무슨 마가 끼였는지를 학문적으로 분석하려 시도했지만 별 성과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곡과 작곡자의 정체에 대해서 오늘날 검증 가능한 건 물론 하나도 없다. 결정적으로 그 곡은 세계 각국의 방송국에서 연주 금지 처분을 받고, 1945년경에 전세계에서 악보가 회수되고 폐기· 소실됨으로써 이제 더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ㅡ,.ㅡ;;

그나마 저 이야기에 근접한 진실, 팩트는 이렇다.
1933년에 헝가리의 '셰레시 레죄'라는 사람이 우울한 단조풍으로 가사 없는 피아노 연주곡을 하나 작곡했다. 그 뒤 1935년에 다른 사람이 멜로디에 걸맞은 우울한 다른 가사와 제목을 붙여서 Gloomy Sunday라는 노래가 완성됐다.

지금은 저 곡을 유튜브에서 곧장 검색해서 들을 수 있다. (☞ 링크 46초 이후부터 곡이 시작됨) 주선율이 도도도~ b미미미 솔솔솔 도도도~ 로 시작하며, 다시 말하지만 장송곡 같은 우울하고 구슬픈 느낌이긴 하다. "봄봄봄봄(도 미 솔 도) 봄이 왔어요"(이 정선, 봄)와는 정반대 심상이다.
하지만 이 정도 곡을 멀쩡한 일반인이 듣는 것만으로 멘탈이 붕괴해서 머리를 쥐어뜯고 무슨 마 8:32의 돼지처럼 뛰쳐나가 자살을 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프랑스 사람이 작곡한 검은 일요일(??)은 헝가리 사람이 작곡한 우울한 일요일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저 실존하는 곡조차도 대외적으로는 "Hungarian Suicide Song"이라는 섬뜩한 별명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저 곡이 발표되었던 당시에 헝가리 내부에서, 저 곡 듣고서 자살한 게 아닌가 의심되는 사람이 10여 명 정도 있기는 했다고 한다. 그래서 헝가리에서 이 곡이 금지곡으로 찍히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곡이 멀쩡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증명되고 검증된 바가 물론 없다. 안 그래도 극심한 가난과 질병, 인생 실패 등을 비관해서 자살할까 말까 고민 중이던 몇몇 소수의 사람이 왕창 우울한 곡을 듣고는 이판사판 옥상에서 뛰어내리거나 권총 헤드샷을 날렸을 수는 있겠다. 루머도 아무 근거 없이 생기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별 상관 없는 얘기이다만.. 1932(33)~45년 사이이면 공교롭게도 전쟁광으로 흑화하던 일본, 나치 독일, 루스벨트 대통령의 집권과 거의 일치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사람을 100수십 명씩이나 연쇄자살로 내몬 악마의 음악이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이지만, 단 한 명이라도 사람을 골수 중증 철덕으로 개조시킨 마법 마성의 음악은 지구상에 분명 존재하며, 그 증인 당사자가 시퍼렇게 살아 있다. 음악이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에는 음악 자체뿐만 아니라 음악이 연주되던 당시의 분위기와 맥락, 청취자의 심리도 기여하는 게 매우 크다.

Posted by 사무엘

2019/02/07 19:29 2019/02/07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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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세카이 2019/02/08 01:24 # M/D Reply Permalink

    Gloomy Sunday 이 곡은 mc스나이퍼의 곡으로도 유명하지 않나요?

    예전에 취미로 가요나 클래식 등의 피아노 연주곡들을 많이 암보했었고
    특히 이루마와 유키구라모토의 곡들을 많이 좋아 했었는데
    대학생 때는 여유가 있어서 많이 했었지만
    직장인이 되니 주말에 가끔 아니면 별 시간이 없네요

    음악이라는 것이 단순한 취미나 사치를 위한 게 아니라
    무한 경쟁으로 고달픈 현대인들의 마음 속에 따뜻한 위로와 감동을 주고
    또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듯 하네요

    여담으로 전세계 어디에서나 똑같은 교육이 되는 것이
    음악, 수학, 의학이라고 하죠ㅎㅎ

    1. 사무엘 2019/02/08 09:55 # M/D Permalink

      네, 저는 이후의 리메이크곡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런 리메이크가 여럿 나왔다는 사실은 검색을 통해 접했습니다. ㅎㅎ
      음악은 뭔가 당장 시각화 수치화를 할 수는 없지만 은근히 미묘하게 인생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 어 이건 종교의 특징 내지 순기능과도 비슷해 보이는데..
      기독교에서 음악을 찬양의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2. 사포 2019/02/08 10:17 # M/D Reply Permalink

    음악이라는게 참 복잡미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음악을 듣던 때의 상황이나 추억들이 기억에 같이 남아서는 먼 훗날에 그걸 다시 들으면 그런 기억의 느낌들도 같이 다가오거든요.
    그러면서 아 내가 예전엔 이런 마음가짐이었지 이렇게 살고있었지 하면서 지금의 저를 되돌아보는 계기도 되고 말이죠 ㅎㅎ
    보통 음악을 단순히 청각에 기반한 예술로 생각하기 쉽지만 상당히 공감각적이고 복합적인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1. 사무엘 2019/02/08 16:34 # M/D Permalink

      역시 전문가다운 통찰이네요~ (사포 님의 자작곡들을 블로그에서 들어 봤습니다. 대단~ ^^)
      음악은 분명 언어가 아니지만 노래 가사 없이 그 자체만으로 언어처럼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 음악을 만들어 내는 재능도 정말 대단하고 부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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