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산업화 시절 무용담들을 살펴보면.. 경부 고속도로와 포니와 제철소 3관왕을 달성한 왕회장부터 시작해서 과감하게 반도체를 시작한 삼성 이 병철 회장, 일본으로부터 용케 스프 제조 노하우를 전수받아서 삼양 라면을 최초로 개발한 전 중윤 회장 등 여러 일화가 전해진다.
우리나라의 건국 초창기, 할배가 집권해 있을 때야 김 두한의 사딸라를 능가하는 손 원일 제독의 근성의 가격 후려치기 협상(군함 도입), 그리고 홍 덕영 골키퍼의 눈물의 투혼 같은 이야기가 캐감동이다. 그건 각각 군사와 스포츠 분야이고, 경제와 기업 이야기는 아무래도 훗날 박통 때부터야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이런 분야에 더 관심이 있다면 유튜브로 '기업비사'라든가 '신화 창조의 비밀' 시리즈를 쭉 찾아보시기 바란다. 이 반기업 정서가 횡행하는 시대에 사상 무장용으로 유익하다. 뭐 굳이 옛날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극한직업' 시리즈도 좋고 말이다. (당연히 영화 말고 다큐멘터리..)
학교에서 애들한테 주식 투자나 부동산까지 가르칠 필요는 없겠지만.. 최소한 알량한 사회주의 공산주의 공유 환상의 허구에 속지 않을 정도의 방어적인 경제관념 교육은 어릴적부터 정말 필요해 보인다.
친환경 친인간(?)에 더불어 공유하고 국유화하자고 선동하는 넘들치고 자기 사재 기부는 1원도 한 놈이 없으며, 자기들은 누구보다도 재테크에 빠삭해서 시장 경제 자본주의의 혜택을 다 입고 있다. 이건 공공연한 비밀이며 과학이다. 남의 돈 세금 갖고는 천하에 무슨 생색인들 못 내겠는가?
반공, 안보 외치는 높으신 분들치고 자기 자식새끼 군대 보낸 놈이 없는 것을 비판해 왔다면(실제로는 그 정도까지 막장인 것도 아님), 저 분야에 대해서도 똑같이 일관된 비판이 나와야 마땅하다.
뭐 그건 그렇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이끈 위대한 거장 중 하나로, 포항제철을 건설하고 초대 회장을 역임한 한국의 철강왕 박 태준(1927-2011)을 빼놓을 수 없다. 질 좋은 강철이 있어야 그걸로 자동차도 만들고 선박도 만들고 레일도 만들 테니 제철소는 반드시 필요했다.
(제철소는.. 뭐 이런 분위기의 장소이다. 여느 제조 공장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당연한 말이지만 저 붉은 쇳물은 화산 용암이나 마그마보다 훨씬 더 뜨겁다.)
그런데 그런 거대한 시설을 맨땅에서 짓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UN 세계은행(IBRD), 국제 제철 차관단 등의 통상적인 국제 금융권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그걸 밑천 삼아 지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거기서는 한국 같은 못사는 듣보잡 나라가 뜬금없이 제철소를 짓는 게 가능할 거라고 전혀 믿지 않았으며,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이때 박 정희 대통령의 심복이었던 박 태준은 기지를 발휘해서 “아 그럼 대일 청구권 자금을 대신 투입하면 어떻겠습니까?”라는 제안을 했고, 대통령은 “오, 기막힌 생각이군. OK!” 했다.
그래서 결과만 따지고 보면 포항제철은 원래 농수산업 지원에나 사용할 돈, 그리고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에게 보상금으로 주라고 일본으로부터 받은 돈을 쓰윽 전용해서 만들어졌다. 훗날 포항제철은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뒤에도 저런 사람들을 딱히 만나 주지도 챙겨 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논란거리가 되었으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포항제철은 왜 그런 태도를 보였을까? 블랙기업 악덕기업이어서? 설립자 박 태준이 친일적폐 싸이코패스 악마여서?
아니었다. 박 태준은 그런 인륜이나 도덕이 없는 사람이 아니며, 오히려 위인전에 실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우 훌륭하고 청렴한 기업인이었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야 된다면서 회사 주식을 한 주도 갖지 않고 물러났을 정도로.
더구나 그는 그 유명한 우향우 정신의 창안자였다. “이 제철소는 우리 선조들의 피값인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만드는 거다. 이 돈은 절대로 부정하게나 헛되이 쓰여서는 안 된다. 실패하면 우리 다같이 우향우 해서 영일만 바다에 뛰어내려서 죽어서 속죄하자” 이랬던 분이다.
포항제철은 그런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졌다. 1973년 6월 9일은 포항제철 제1고로에서 최초의 쇳물이 쏟아져나온 날이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6월 9일을 ‘철의 날’이라고 기리고 있다. 당일부터 바로 기린 건 아니고 생각보다 늦은 2000년부터 시작됐다.
그가 얼마나 엄청난 업적을 남겼는지를 짐작케 하는 일화가 있다.
- 1978년, 중국의 덩 샤오핑이 일본에 가서 우리도 제철소를 만들고 싶다고 자문을 구하자 일본의 신일본 제철 회장(이나야마 요시히로)은 “님 나라에는 박 태준 같은 인물이 없으니 여느 공장 정도는 지어도 제철소까지는 무리일 겁니다” 이렇게 뼈 있는 말을 남겼다.
- 그리고 박 태준은.. 한국에 제철소는 택도 없다는 부정적인 보고서를 작성해서 세계은행으로부터 자금 대출을 무산시켰던 영국의 존 자페(Jon Jaffe) 박사를 1986년에 런던에서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존 자페는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17년 전의 판단에 대해 후회가 없으며, 지금 보고서를 다시 쓰라고 해도 똑같이 쓸 것이다. 겨우 그런 나라에서 대형 제철소는 얼토당토않은 소리인 게 맞다. 다만, 한국에서는 박 태준이라는 상식을 한참 벗어나는 인물 때문에 나의 예상이 예외적으로 빗나가게 됐을 뿐이다” ㅡ,.ㅡ;;
백 선엽(미국에서 더 예우와 존경을 받는 만렙 원로 장성)이나 차 범근(축구 선수 시절..)처럼 국내보다도 외국에서 더 전설을 넘어 레전드 평판을 받는 거인이 일부 있는데, 박 태준 역시 이에 해당했던 셈이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사람이 정작 훗날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나 위안부 할머니 같은 사람을 상대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일면 이해가 된다.
그는 우향우 운운하면서 피 같은 돈으로 혼신을 다해서 노력해서 제철소를 만들었다. 만약 실패하고 돈만 날려먹었다면 진짜로 이 한몸 바다에 빠져 죽어서라도 속죄할 의향이 있었지만, 이렇게 성공한 이상 그 자체만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한 것이고 선조들 앞에서도 이제 지극히 떳떳하다.
그 이후로 포항제철이 더 성공한 것은 “기업 경영을 잘한 덕분”이지, 더는 무슨 부당한 돈이나 착취 덕분에 부정하게 성장한 게 아니라고 여긴 것이다.
이렇게 된 와중에 포항제철이 또 누구 후손에게 사죄를 한다거나 무슨 보상을 해 준다거나 하면.. 포항제철을 처음 만들 때 들였던 피눈물 나는 노력의 의미에 흠집이 가고 그게 떳떳하지 못한 행적이 되는 것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그는 추후 불거진 보상 드립은 가당치 않은 요구라고 여기고 무시했음이 틀림없다. 사회 환원은 학교도 세웠고 이 정도 사내복지 수준이면 이미 충분히 하지 않았느냐 말이다.
성경에서 약간 비슷한 예가 떠오른다.
모세는 광야 생활을 하면서 반석에서 물을 내는 기적을 두 번 행했는데, 처음엔 반석을 쳤으며, 한참 나중에 두 번째엔 반석에게 말만 해야 했다. 그러나 모세는 끊임없이 불신하고 반역하는 미개한 백성들에게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두 번째에서도 별 생각 없이 예전처럼 반석을 쳤다. (민 20:10-11)
그래도 물이 콸콸 나오긴 했기 때문에 모세는 백성들 앞에서 체면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모세의 이런 행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시 두 번 못 박는 것과 같은 영적으로 굉장한 중범죄로 간주되었다. (반석은 예수님의 예표) 이 자그마한 실수 때문에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처럼.. 한번 죽을힘을 다해서 선조들 내지 일제 시대 피해자에게 justify를 받았다면 두 번 또 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반석의 영적 의미가 중요한 것만큼이나, 포철의 창업주 입장에서는 저런 관계와 의미가 왕창 중요하기 때문이다.
포항제철의 이런 사례를 다른 과거사 청산 문제에다가도 넓게 응용하면,
(1) 항일 독립운동가 출신인 대통령(할배)과 법무부 장관(이 인)이 왜 건국 당시에 반민특위를 해체해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
(2) 그리고 친일파 반민족주의자라고 해도 매국의 대가로 일제로부터 직접 받았던 재산 이상으로, 걔네들이 정당하게 노력해서 재산을 불린 것까지도 다 몰수하는 게 법적으로 타당하나 하는 문제에다가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좌빨들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애국자들을 앞뒤 경황 안 따지고 몽땅 다 친일적폐로 몰고 갈 것이다.
우리나라는 너무나 절망적이고 급박하던 상황에서 결국 일제 부역 군경이라도 동원해서 왜놈보다 더 나쁜 빨갱이들을 잡아야 했으며, 나라를 망조로 몰아넣을 지경이던 사채를 몽땅 정리하기 위해서 유신 헌법을 포함한 다른 극단적이고 비민주적인 조치를 취해야 했다. (애초에 군대라는 조직 자체가 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굉장히 비민주적인 조직..)
그리고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다른 돈줄이 도저히 없으니 피묻은 돈도 좀 끌어다가 산업의 근간인 제철소를 만들게 됐다.
사람이 하는 일이 완벽할 수가 없고 당연히 헛점과 부작용이 있고 그에 따른 피해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임기응변식 조치의 가성비와 효용성에 대해서 다각도로 입체적으로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는 있다. 무작정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부른 투정과 그 시절에 누구도 가능하지 않았던 선비질 잣대 역시 금물이다. 그건 옳지 않다.
프로그래머로서 본인이 드는 비유이지만, 마소만 해도 초창기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 시절에 그렇게 온갖 독점과 지저분한 짓까지 감내하면서 경쟁자들을 제압하고 마르지 않는 탄탄한 밥줄--운영체제, 오피스--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지금의 후임 사티야 나델라 때는 옛날과는 반대로 온갖 오픈소스 진영을 여유롭게 무료 지원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나라에는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 같은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은 명백히 칭송받아야 마땅한 애국자이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