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캠핑 자랑

늘 느끼지만 겨울은 사계절 중에서 밖에서 자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본인은 평소에는 대부분 그냥 집 건물 옥상이나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공원 으슥한 아지트를 캠핑 외박 장소로 이용한다. 다음날 출근도 해야 하는 평일엔.. 걷거나 자전거만 타도 도달할 수 있는 곳에서 묵었다가 신속히 복귀한다.

그러나 눈· 비가 많이 내린다거나 기온이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등, 날씨가 아주 좋을 때는 특별히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명당에 차까지 몰고 가기도 한다.

1. 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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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기온이 이번 겨울 이래로 최초로 -10도 부근까지 내려갔던 때를 기념해서 갔던 곳이다.
매서운 칼바람도 씽씽 불고 있었기 때문에 텐트 안에 쏙 들어가서 바람을 차폐한 것만으로도 그 직후엔 아주 따뜻했다. 텐트 안에서도 입김을 후 불면 허연 김이 나오는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물론, 텐트 안에서 몇 시간째 드러누워서 정신줄을 놓기 시작하면 다시 추위가 느껴졌다. 두꺼운 무장 없이는 버틸 수 없었다.

이튿날 아침에 기계들을 살펴보니, 놋붉 컴터는 역시 못 버티고 배터리가 퍼져 버려서 야외에서 작동 불가.
차 스마트키도 얼어서 일시적으로 인식이 안 됐다. 손으로 좀 비벼 주니 다행히 다시 작동.
그래도 폰은 따뜻한 품속에서 온도 관리를 한 덕분에 밤새도록 전혀 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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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엔 그렇게도 강추위와 칼바람이 몰아쳤건만, 아쉽게도 얼음이 이 정도밖에 안 생겼다.
돌로 둘러싸여 유속이 느리던 일부 구간은 밟아도 될 정도로 얼긴 했지만, 여기만으로 돗자리 텐트를 치고 등까지 대기에는 역부족..
그러니 강물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그냥 코앞에다가 텐트를 치는 걸로 대신 만족하고 돌아왔다.

늙은 호박은 집 내지 차 안에만 고이 모셔 놨다. 날씨가 적당히 추우면 내가 얘들도 같이 가져가서 이불 덮고 같이 자곤 하는데.. 이 날씨에 그랬다가는 속이 얼어 버리고 큰일 났을 것이다.

2. 산기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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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이래로 최초로 서울에 함박눈이 펑펑 내렸을 때 갔던 곳이다.
이때는 하나도 춥지 않고 바람도 안 불어서 캠핑 난이도는 뭐.. 애들 장난 수준으로 시시해져 버렸다.
겹겹이 덮고 껴입지 않아도, 침낭 속 에어포켓 기동 따위 하나도 안 해도 춥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그 당시에 여기까지 올라오는 등산로엔 발자국은 단 하나도 찍혀 있지 않았다.

3. 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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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남짓 전까지만 해도 옷 벗고 들어가서 물놀이를 했던 곳에서 이젠 텐트 치고 드러누웠다.
정자나 평범한 풀발, 바위가 아니라 꽁꽁 언 물 위에서 잔다니.. 어찌 감격스럽지 않은가?
겨울 캠핑의 하이라이트는 얼음 텐트라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얼음 캠핑 1회가 일반 캠핑의 10배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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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도인 채로 하룻밤을 지나고 나니 물이 많이 얼긴 했지만.. 아래에 여전히 물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이 두 발로 설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한쪽 발로 약간만 체중을 실어 봐도 뿌지직~~~
그랬는데, 하루 뒤.. 낮 기온이 -10이고 밤에 또 -16도로 떨어졌던 타이밍에 다시 와 보니, 아아~ 고맙게도 이제 물이 바닥까지 완전히 꽁꽁 잘 얼었다. 이제는 텐트 안에 이불 침낭까지 펴고 드러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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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간 호박죽 간식은 얼어서 반쯤 샤베트? 슬러시처럼 바뀌었다.

얼음 위에서 잘 때는 덮는 것뿐만 아니라 바닥에 까는 것도 중요하다. 바닥이 차갑기 때문이 아니라.. 바닥으로 내 체온이 전해지지 않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난 이 상태로 컴퓨터와 핸드폰까지 있는 상태로 한숨 잘 잤다. 몸을 뒤척이니 밑에서 딱 한 번 뿌직~ 소리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별 문제 없었다.
사람은 모름지기 1년에 한두 번은 간접적으로라도 야생에서 얼음판에 등을 부비고 한숨 자야지 원기가 회복되고 피로가 가시고 얼굴 화색이 바뀐다는 걸 이번에도 체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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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텐트를 쳤던 얼음 바닥의 모습이다.ㅋㅋㅋㅋㅋ

※ 여담

아아~ 본인은 텐트 안에 있을 때는 너무 따스하고 포근하고 아늑하고 행복하다.
잠깐의 번거로움을 참고 세벌식을 쓰면 기존 두벌식보다 한글 타자가 훨씬 더 빨라지고 편해지고 경쾌해지듯, 잠깐의 번거로움을 참고 밖에 뛰쳐나가면 갑갑한 콘크리트 구조물과는 차원이 다른 잠자리를 경험할 수 있다. 내게 맞는 잠자리는 생각보다 가까운 자연 속에 있다.

무장을 잘 해 가서 모든 담요와 침낭이 부족하거나 지나치지도 않게 잘 쓰일 때.
아침에 아주 따뜻하게 잘 잤는데 침낭을 걷자마자 싸늘한 바깥 냉기가 느껴질 때가 제일 짜릿하고 보람 있다.
반대로 고생해서 가져간 무장이 무게만 차지한 채 새벽에 쓰이지 않았을 때.. 혹은 무장이 부족해서 새벽에 추워서 떨고 고생한다면 그건 실패한 캠핑이다.

뭐.. 잠을 잘 잔 것과는 별개로, 혼자서 텐트를 걷고 이 많은 장비들을 들고 철수할 때는 솔직히 춥고 힘들긴 하다. 그러니 한번 캠핑을 간 것의 뽕을 최대한 뽑으려면 아무래도 한번 텐트를 쳤을 때 텐트 안에서 오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부위는 몰라도 발가락이 시려운 건.. 내 경험상 답이 없더라. 외부 열원· 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발을 따뜻하게 만드는 방법은.. 일어나서 걷고 활동하는 것밖에 없었다.

앞으로 계속 또 강추위가 찾아왔으면 좋겠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입이 돌아갈 수 있는지 개인적으로 굉장히 궁금하다. ^^
"너 화성인이니 자연인이니, 세상에 이런 일이 부류의 프로에 출연해도 되겠다, 출연해 보라"라는 제의를 종종 받는다. 그에 대한 본인의 답변은 늘 동일하다. "겨우 이거 갖고 출연 아이템이 성립된다면 땡큐~ 환영" 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22/02/01 08:35 2022/02/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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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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