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새해가 그새 1주일이 넘게 지났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어째 새해 첫날부터 큰 지진이 나서 국가 재난 수준의 피해를 입었고, 다음날엔 비행기끼리 충돌 사고가 났다. 거 참 잔혹한 2024년 스타트인 듯...
본인은 공교롭게도 작년 11월 8일, 12월 9일에 이어 1월 10일.. 아주 비슷한 간격으로 호박 얘기 근황 얘기를 늘어놓게 됐다. 일부러 날짜를 맞춘 건 아닌데 말이다.
사실, 요 며칠 전엔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오랜만에 새 버전(10.65)이 완성돼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거 소개하는 글은 미리 써 놓은 딴 글과 순서가 좀 꼬이는 바람에 블로그에 곧바로 등록되지 못했다. 프로그램 얘기는 지금 이 근황글의 바로 다음에 올라올 예정이다. ㄲㄲㄲㄲ
1. 캠핑
뭐니뭐니해도 겨울은 캠핑의 계절이다. 그리고 지난 2023년은 모처럼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이뤄져서 더 좋았다.
밤엔 아무 징조가 없었고 새벽 2~3시까지도 눈· 비가 내릴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함박눈이 펑펑 내려 있었다. 쌓인 눈 때문에 텐트 천장이 아래로 짓눌렸을 정도였다. 세상에~!! ^^
2024년 새해는 특별히 동네 뒷산 언덕 위에서 맞이했다.
캠핑을 하다 보면 난 텐트 안에서 멀쩡히 자고 일어나서 아침을 맞이했는데
노트북은 똑같이 침낭과 담요로 감쌌음에도 불구하고 배터리가 기절해서 새벽에 켜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5도를 못 버티는구나. ㅠㅠ 실내로 이송해서 콘센트 꽂아서 CPR 하면 살아나긴 한다.
그리고 제일 최근엔 날개셋 새 버전 완성과 밤 최저 기온 -10도를 기념해서 또 캠핑을 했다.
충분히 무장을 하니 발가락조차 시리지 않고 정말 따뜻하고 좋았다. 아 좋다좋다좋다좋다!!!
대자연이 밤에 내 입을 돌아가게 만들려면 더 많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본인은 텐트 안에서 왜 불을 피우고 자다가 화재나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가 나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
성경 왕상 1:1이 떠오른다. 다윗 왕이 많이 늙고 나니 이불 덮어도 온기가 생기지 않더라..
난 정반대인데. 담요 침낭 패딩 뒤집어쓰고 나면 -15도에서도 1분 안에 열기가 가득 차서 그 상태로 잠도 자는데.
물론 나도 평생 영원히 그러지는 못할 것이다. 나이가 6 70 넘어서 열기가 예전 같지 않게 되고 심지어 없어지는 때가 온다면.. 본인 역시 저 말씀을 생각하면서 현타를 느낄 것 같다. ^^
2. 실내에서 키우는 호박
11월부터는 호박을 밖에서 키우기가 곤란해진 관계로, 아직 상태가 좋은 덩굴 두세 포기를 공간이 허용하는 한계까지 집 창가로 옮겨서 계속 키워 봤다.
따뜻한 곳에서 며칠 놔둬 보니 얘들도 고마운지 한동안은 무럭무럭 잘 자라면서 줄기를 더 길게 뻗고, 꽃도 몇 송이 피웠다. 그걸 보는 나도 기뻤다.
옛날에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라는 슬로건이 있었고,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속담이 있었다.
이걸 내 식대로 재해석하면 "겨울에 호박은 실내로, 사람은 산으로"가 될 것 같다. (산 또는 강, 텐트, 야외 등등.. ^^)
특히 압권은 지난 12월 20일쯤이었다. 한 줄기에서 꽃이 2송이나 나란히 폈다. ^^
이렇게 아침에 핀 호박꽃은 그대로 두면 보통은 당일 오후에 지고 시들어 버린다. 하지만 꺾어서 따로 밀봉해서 냉장고에 보관하면 꽃 형체가 2~3일 정도는 더 유지된다. 내 경험상, 주변 기온이 낮으면 꽃이 시드는 속도도 느려지더라.
이렇게 11~12월에 집에서 호박을 구경하니 좋긴 했지만.. 실내는 물과 기온을 제외한 다른 환경 여건들이 야외보다 열악했던 것 같다. 특히 빛과 통풍 말이다.
애들이 한동안 꽃을 여럿 피우고 새순도 뻗어나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몸집이 커지지 않고 꽃도 피지 않고 성장이 한계에 도달했다.
어떤 애는 잎에 흰가루병이 온통 도지고, 어떤 아이는 시꺼먼 진딧물이 퍼지면서 죽었다. 약을 치고 시꺼먼 점을 보이는 족족 제거해도 잎이 다 시들고 빠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ㅠㅠㅠ 잎이 다 시들어 빠져 버린 덩굴은 사망 판정을 받고 아쉽지만 제거됐다.
씨방 달린 암꽃도 11월과 12월 중순까지 덩굴 3개로부터 총 10개 가까이는 봤지만.. 단 하나도 암꽃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대로 시들어 떨어졌다.
에휴~ 겨울에 호박의 생존을 넘어 열매까지 구경하는 건 무리이군. 뭐가 부족했던 건지..
11월에 바로 얼어죽었을 아이들 수명을 40~50일 정도 늘려 준 것에 의미를 둬야 할 것 같다.
그래서 현재는 덩굴 딱 한 곳에서 새순이 하나 돋고 있는 걸 지켜보고 있다. 얘라도 부디 잘 자라길..
기존 호박이 있던 빈 자리에다가는 다른 호박씨를 심었다. 씨야 늙은 호박을 하나 도축할 때마다 수백 개씩 얻으니 넘쳐난다.
내 경험상, 씨를 흙에다 파묻고 나서 1주일로는 부족하고 거의 10일에서 2주는 지나야 싹이 올라오는 것 같다.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경이롭지 않은가? ^^ 호박 싹에 붙어 있는 씨앗 껍데기는 마치 탯줄 같다. 싹이 돋고 나서 1단계에서 4단계까지 되는 데 10일 정도 걸렸다.
2m가 넘게 길게 뻗은 호박 덩굴도 처음에는 다 저런 상태에서 시작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3. 호박 열매들
지난달 근황에서 누렇게 변해 간다고 자랑했던 그 500g짜리 미니 호박 말이다. 9월에 수분시켜서 10월 초에 딴 것을 방치하자 11월 하순쯤부터 색깔이 눈에 띄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2월 중순쯤엔 완전히 주황 내지 황토색으로 바뀌었다. ^^
심지어 지난 11월에 밖에서 사 왔던 시퍼런 호박도 두 달을 넘게 놔두자 꼭지 주변이 이렇게 변했다. 더 오래 놔두면 이 아이 역시 누렇게 늙은 호박으로 바뀔 것 같다.
얘들은 조만간 쪼개서 먹을 예정이다.
얘들은 본인이 지난 12월 사이에 사 먹은 호박들이다. 도축돼서 죽으로 바뀌었고 본인의 배 속에 들어갔다.
내 경험상 늙은 호박은 품질이 생각보다 복불복이다. 겉은 지저분해 보여도 내부는 아주 선명한 주황색이고, 축축하지만 싹이 터 버린 씨가 거의 없고 과육이 유난히 달고 맛있는 아이가 있다.
그 반대인 아이도 있고.. 그걸 구매하기 전에 미리 알 수 없다.
이건 작년 12월 초쯤이었나, 길 가던 중에 우연히 발견한 풍경이다.
채소 트럭을 세워 놓고 장사하던 어떤 아저씨가 주변에다가 늙은 호박들을 쌓아서 저렇게 탑을 만들어 놓으셨다. 우와~~~ +_+ 아름답지 않은가?
호박 한 덩이 사고 싶었는데.. 그 당시 본인이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아쉬웠다. (저기가 집 근처도 아니고, 볼일 보러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니던..)
늙은 호박은 도시의 엔드 유저가 직접 구매하는 경우가 드물다 보니.. 동네 채소 가게/소매점 수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건 딱 10~12월 사이뿐인 것 같다. 애호박이나 단호박은 1년 내내 구경 가능한 반면, 늙은 호박은 그렇지 않다.
이상이다.
본인은 컴퓨터도 좋고 철도도 좋고 한글 연구도 좋지만.. 2020년대부터는 특별히 자연의 정취에 푹 빠졌다. 특히 멧돼지와 호박에 제대로 꽂혔다. 현실에서 멧돼지는 라이브로 보는 게 곤란하니 호박이라도 대신..;;
호박은 크고 납작하고 쭈글쭈글하면서 누렇게 늙기까지 한다는 점에서 다른 채소· 과일과는 차원이 다른 매력이 있다. 세상의 어느 채소가 호박과 같겠나? 그것도 몰래 숨어서 스텔스 모드로 자라다가 뒤늦게 보물 캐듯이 열매가 발견되는 도박 같은 면모도 있다.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다. ㅠㅠㅠㅠ
어디 열매뿐이겠는가? 털 돋은 꼬불꼬불 덩굴, 허연 힘줄이 난 잎, 노랗게 핀 꽃까지.. 생긴 게 그냥 다 예뻐 죽겠다.
시골에서 땅 사고 밭 일궈서 호박을 원없이 키워 보고 싶다~~ ^^ 호박은 한해살이이긴 한데, 24시간 365일 내내 빛과 물과 온도와 공기와 비료를 최적으로 공급해 주면 한없이 살까, 아니면 그래도 꽃 한번 잔뜩 폈다가 스스로 시들어 죽을까? 그것도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
뭐 그렇다고 내가 본업을 다 내팽개친 건 아니고.. 2024년엔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11.0까지 갔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타자연습도 업데이트 계획이 있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