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지난 11월, 산들이 온통 단풍으로 붉게 물들고 있을 때,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청와대 관광을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예전에 청와대는 정문 입구 정도가 아니라 근처 도로의 양 끝에 검문소가 있고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었다. 길거리 블록 전체가 봉쇄돼 있었기 때문에 허가받지 않은 차량이나 보행자는 일정 거리 이내로 접근할 수 없었다.
기자들이나 프레스센터 격인 저 남동쪽 외곽의 춘추관에 접근 가능했고, 아주 특별한 일로 청와대에 초청받은 민간인이라면 남서쪽 외곽의 영빈관이 마지노 선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근무하는 본관에 출입..??? 어림도 없는 일이고 더구나 대통령 가족의 사생활과 관련이 있는 관저는 더욱 접근할 길이 없었다.
민간인이 자유롭게 드나들거나 민간 지도에 표시될 일이 영원히 없을 것 같던 이 시설이 하루아침에 무슨 조선 시대 고궁 같은 관광지로 바뀌다니.. 참으로 경이롭기 그지없다.
1. 개방 내력
청와대는 초창기에는 경무대라고 불렸다가 1960년, 윤 보선 때 지금과 같은 청와대라는 명칭이 부여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는 건물들은 상당수가 1990년대에 지어진 거라고 한다.
청와대는 국가 원수가 상주하는 곳이니 그렇잖아도 철통같은 보안과 경비가 상시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1968년, 1· 21 사태 때 북괴의 무장공비가 청와대 바로 앞까지 침투해 들어왔고, 생포되었던 김 신조가 "내레 박 정희 목 따러 왔수다"라고 읊기까지 하자 온 나라가 준 전시 상태로 발칵 뒤집혀 버렸다.
이땐 전군 장병들의 전역이 경계 모드가 풀릴 때까지 무기한 연기됐었고.. 좀 단축되려던 군복무 기간은 6· 25가 휴전으로 끝난 직후와 동일한 3년으로 도로 환원돼 버리고, 전국민 주민등록번호에 예비군, 5분 대기조.. 별별 불편한 조치들이 이때 생기게 됐다. (심지어 북파공작원까지 몰래 양성을 시작한 건.. 얼마 못 가 흑역사가 됐지만 말이다..;; )
이렇듯, 1· 21은 20여 년 전의 6· 25와 동급으로 우리나라의 안보에 굉장한 충격과 트라우마를 안긴 셈이다.
그런데, 그땐 이런 조치들이 마냥 엄살이 아니었다. 같은 해 말에는 또 울진· 삼척에 100수십 명에 달하는 북괴 무장공비가 여러 차례에 걸쳐 대규모로 침투했었기 때문이다.
북괴는 무장공비를 보내서 뭔가 당근을 제시하면서 주변 주민들을 설득하고 동화시킬 생각을 안 하고, 무식한 폭력을 동원해서 협박하고 죽이고 부술 생각만 했다. 쟤들은 자꾸 무장공비를 보내서 남한을 흔들어 주면 체제가 혼란스러워지고 대남적화가 이뤄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남한도 투철한 반공 멸공 정신으로 무장해서 힘에는 힘으로, 악과 깡과 근성으로 대응했다.
그러니 북괴의 전략은 전혀 통하지 않고 역효과만 났다. 놈들이 저러면 저럴수록 남한 사람들도 민· 관· 군이 더욱 손잡고 힘을 합쳐서 "때려잡자 공산당"이 되고 북괴에 대한 적개심만 극심해질 뿐이었다.
이 1· 21 사태를 계기로 청와대를 둘러싸는 모든 산들은 군사시설 보호 구역이 되고 거의 DMZ 급으로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고 꽁꽁 묶였다.
다만, 한 치의 예외 없이 몽땅 출입금지는 아니고, 북악스카이웨이 도로가 닦이고, 평창동 마을이 조성되기도 했다. 청와대 이북으로도 최소한의 주민이 좀 있어야 간첩이 침투한 걸 발견하고 신고를 할 테니 말이다.
북악스카이웨이는 개통 당시에는 톨게이트가 있는 유료 도로였다. 1970년대에 자가용을 굴리면서 이 길을 다니는 게 가능한 사람은 극소수였으며, 일반 서민들은 여기를 택시 타고 관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럭셔리한 신혼여행 코스였다. ㄲㄲㄲㄲ
그렇게 청와대 주변은 오랫동안 꽁꽁 묶여 있었는데..
1993년, 김 영삼 대통령의 집권과 함께 청와대의 남서쪽 외곽.. 궁정동 안가가 철거되고 무궁화 동산이라는 공원이 조성되어서 대중에게 개방됐다.
그리고 청와대가 내려다보인다는 이유로 접근 금지이던 인왕산이 1주일 중 하루만 제외하고 개방됐다. 단, 청와대가 내려다보이는 포토존에는 감시 요원이 상주했다.
그러다 2007년, 북악산에서 청와대 쪽으로 더 가까이 한양도성을 따라가는 성곽 탐방로가, 신분증 까고 목걸이를 받는 형태로 개방됐다. 이때는 전국의 국립공원들이 입장료 징수가 폐지되고 전면 무료화되기도 했다.
다음으로 2009년엔 북악산의 김 신조 루트가 개방되었고, 저 멀리 우이령길이 국립공원 탐방 예약 형태로 개방됐다.
201x년대, 문 재인 대통령 시절엔 어느 샌가 인왕산에 감시 요원이 없어졌다. 그리고 북악산 남쪽의 한양도성 탐방로도 목걸이를 받지 않고 출입 가능해졌다.
나중에는 그 남쪽 탐방로 구간과 북쪽의 북악스카이웨이 사이 탐방로가 추가로 개방됐다.
그 뒤 2022년, 윤 석열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청와대가 통째로 개방돼 버렸다. 30여 년 전, 무궁화 동산 정도나 찔끔 개방됐던 김 영삼 시절에 비하면 얼마나 큰 변화인가?
아 참고로 2003년, 노 무현 대통령 때는 대통령 전용 '별장'이던 청남대가 민간 관광지로 완전히 개방되긴 했었다. 청와대 말고 청남대 말이다. ㅋㅋㅋ
이제는 대통령 집무실은 용산으로, 사저는 한남 쪽으로 이전했다. 그에 걸맞게 이제는 촬영 감시 요원이 인왕산이 아니라 남산 정상에 상주하게 됐다.
남쪽의 용산 둔지산 언덕에서는 미군 부대가 완전히 철수하고 나가듯(모두 평택으로..), 북악산은 수방사 군대를 동원해서 지킬 필요가 없는 평범한 야산으로 차차 바뀔 것이다.
2. 내부 구조
저기는 청와대 공식 웹사이트에서 간단히 예약만 하면 방문 가능하다. 방문 예정 날짜와 시간대, 일행 연락처와 인원수를 입력하면 되는데, 보아하니 방문 날짜 이상으로 시간대는 막 꼼꼼하게 체크하지는 않는다.
권장되는 청와대 내부 체류 시간은 1시간 반이며, 본인의 경험상으로도 이 정도면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그 시간을 초과해서 청와대 내부에 짱박혀 있는다고 해서, 많은 관광객들 중에 당신을 골라내서 내쫓거나 페널티를 줄 시스템 같은 건 존재하지 않더라.
예약 시스템은 특정 시간대와 날짜에 관광객이 너무 많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한 정말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다.
그리고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자가용을 끌고 갈 생각은 안 하는 게 좋다.;;
청와대 정문까지 가장 가까이 가는 대중교통은 2022년 현재 서울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순환 버스인 01로, 남산 정상과 광화문, 청와대를 쭉 잇는다. 그거 말고는 효자동까지 가는 7212 같은 다른 버스를 타도 된다.
01은 이제는 색깔조차 2004년 버스 개편 당시에 제정됐던 노랑을 포기하고 초록이 된 듯하다. 사실, 노란 버스는 학교나 유치원 버스 같은 인상이 강하긴 하지.. =_=;; 지금은 서울 버스들 중에 노랑과 빨강은 사실상 망한 것 같다. ㄲㄲㄲㄲ 아무튼..
내가 파악한 게 맞다면, 청와대는 서쪽의 영빈문, 중앙의 정문, 그리고 동쪽의 춘추문 셋 중 한 곳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다. 특별히 01을 타고 정문 근처에서 내린 게 아니라면, 보통은 버스 정류장에서 가장 가까운 서쪽부터 들어가게 된다. 얘는 영빈문을 지나면 보이는 영빈관이다.
청와대 안은 무슨 역시 무슨 대학교 캠퍼스나 산기슭 근린공원 같은 느낌이다.
건물 내부가 개방된 건 (1) 영빈관과 본관 둘뿐이다. 거기에다 관저는 건물 안까지 들어갈 수는 없지만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볼 수는 있는 정도이다.
나머지는 (2) 그냥 청와대 내부의 각종 건물들과 풀밭, 정원을 구경하고, (3) 청와대를 두르고 있는 언덕을 산책하면서 일부 옛날 문화재 유적을 구경하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다.
영빈관 내부. 뭔가 뉴스에서 많이 본 듯한 모습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좁은 의미에서 청와대라고 부를 수 있는 본관 되시겠다.
본관만이 나름 가장 많이 개방되어 있고, 내부에서 2층까지 올라가 볼 수 있었다.
그 말로만 듣던 역대 대통령들 사진과 영부인 사진도 이렇게 있었다.
옛날 서울 역 건물이 지금은 '문화역 서울 284'로 바뀐 것처럼 청와대 건물도 그런 식으로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도 옛날 서울 역은 대한민국 시기가 아니라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졌으니 위상이 청와대와는 좀 다르다고 하겠다.
아까도 얘기했듯, 청와대 안에서 실내 구경은 여기까지가 끝이다. 다음부터는 실외 구경만이 이어졌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