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차이, 오류들

1. 종교 개혁

통상적으로 가톨릭이 아닌 기독교회는 종교 개혁을 계기로 생겨난 개신교라고 불리는 편이다. 그러나 기독교계엔 침례교처럼 개신교의 노선과 100% 일치하지는 않는 교파도 있다. 이런 진영에서는 1500년대의 종교 개혁에 대해 대체로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 긍정적인 유물: 이신칭의와 만인 제사장 교리 재정립. 구교 가톨릭의 부정부패를 용감하게 폭로하고 교황의 권위를 약화시킴. 바른 계보에서 나온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 개혁자들이 직접 만든 찬송가 등
  • 한계: 유대인, 유아 세례, 정교분리 같은 주제에서는 종교개혁자들도 구교의 배경과 방법론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

물론 침례교라고만 써 놓으면 세부적인 교리 스펙트럼이 왕창 넓다. 그러나 얘들은 대체로 이스라엘의 문자적인 회복을 믿고, 유아 세례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개신교와 노선이 차이가 있다.
스스로 자기 믿음을 고백할 정도로 자란 사람에게만 침례를 준다는 점은 자유 의지를 강조하는 알미니안주의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침례교가 구원의 상실까지 말하는 알미니안주의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건 아니다.

2. 행위에 대한 오해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이라는 게 기독교에서 말하는 은혜의 복음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걸 갖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저질 궤변을 펴는 사람이 좀 있던지라, 구차하지만 이 기회에 좀 개념 정리를 해 보겠다.

(1) "저요~! 예수님 믿고 싶습니다, 구원이라는 공짜 선물을 받고 싶습니다."라고 스스로 손 내미는 것도 행위이고 선물에 대한 값을 지불하려는 짓이다
(2) 믿기만 하면 된다면서? 그러면 회개하는 것도 행위니까 할 필요 없네?

이 정도면 "이 가게는 없는 게 없다고요? 그럼 '없는 것'이라는 게 없다는 얘기네요~" 거의 이런 부류의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논리학이나 철학에서 이런 궤변을 가리키는 용어가 분명 있지 싶다.;;

인간이 짓는 많고 많은 죄들 중에 용서받지 못하고 지옥 가는 유일한 죄가 바로 "예수 안 믿는 죄"인 건 사실이다. 그런데 예수 안 믿는 게 어째서 죄인가? 그게 죄로 성립하기 위한 전제 선행 조건이 바로 도둑질, 거짓말 등의 다른 수많은 악행들이 추악한 죄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값을 치러야 한 그 죄 말이다.

선행으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은.. 인간의 알량한 선행만으로 신의 기준을 채우지는 못한다, 즉 불완전하고 불충분하다는 뜻이다. 그 자체가 일체의 의미가 없다거나 인간에게 무의미· 무익하고 심지어 해롭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술· 담배 끊고, 사기꾼 범죄자 인생을 스스로 그만뒀으니까 나를 구원해 달라는 말은 어불성설이지만, 구원받고 나서도 그렇게 계속 죄 가운데 살아도 된다는 것 역시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회개는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며, 구원의 조건으로서의 행위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조건이다. 예수 믿는 그 믿음을 행사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죄가 나쁘다는 걸 인지하지 않고서 어째 내가 구원받아야 하는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내 구원자로 믿을 수 있겠는가?

세상에서 누가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를 대신 내 주기만 해도 그 사람이 고맙고, 그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앞으로는 운전을 더 조심해서 몸 사리면서 하게 된다.
내가 큰 사고를 쳐서 교도소에 가게 생겼는데 누군가가 신분 위장해서 나 대신 교도소를 가 주거나 벌금을 대신 내 주면..?? 심지어 사형장에 대신 가 준다면..?? 대신 벌받아 준 사람을 생각하면 밖에서 또 죄 짓고 싶어지겠는가?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2)와 같은 궤변을 논파하시길 바란다.

(1)이야.. 사람을 최소한의 자유 의지조차 없는 로봇으로 만들고, 태초부터 천당 가기로 예정된 사람, 지옥 가기로 예정된 사람을 설정하려는 의도 같은데.. 길게 반박하지 않겠다. 본인은 '전적 타락'과 '무조건적인 속죄'는 스스로 선악을 분간하지 못하는 영· 유아, 정신지체아가 죽었을 때에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3. 진단은 맞지만 처방이 틀림, 혹은 답은 맞지만 계산 과정이 틀림

  • 공의롭고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한다면서 세상에 왜 이렇게 악이 만연하고 선한 사람이 고통당하는가~ 하나님이 죄악도 창조하셨는가?
  • 자연 세상이 마냥 아름답다고만 보기에는 그 속에 잔인한 약육강식, 죽고 죽이기, 병들고 썩고 중독되기.. 이런 것도 많다.
  • 사람이 구원받고도 왜 이렇게 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짓는가? 이 사람은 정말 구원받은 거 맞나?

이런 게 "언뜻 보기에" 굉장히 모순돼 보이고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는 문제인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걸 어거지와 억측을 동원해서 억지로 설명하려다 보니..

  • 구원 상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면 구원을 잃을 만한 죄다.. 뜨악~~)
  • 애초에 구원받은 것도 아니다 (진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논리적으로는 이건 문제 해결이 아니라 그냥 논점 회피임)
  • 인간이 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예정 섭리 주권이다 (하 정말 답답한 능구렁이 어물쩡)

결국 원천봉쇄의 오류나 자기 교리의 본질을 부정하는 쪽으로 빠지는 것 같다. 본인이 보기엔 그렇다.
특히 "이 정도면 구원을 잃을 만한 죄" 중 대표적인 예는 자기 자신을 죽인 자살일 것이다.
세상 비관해서 자기 혼자 곱게 자살한 것만으로 구원을 잃고 지옥 간다면.. 그럼 세상 비관해서 화풀이 하느라 지하철을 불지르고 무고한 시민들 여러 명을 골로 보낸 건 뭐가 되는가? 당장 지옥불 할아버지한테 떨어져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저렇게 예외를 만들고 논리 헛점을 허용하다 보면.. 애초에 그 어떤 죄라도 예수의 보혈로 용서받는다는 기독교 교리 자체가 어거지 모순덩어리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된다. 그러느니 차라리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게 더 낫다.
내가 여러 번 글로 변증했었지만, 이미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이판사판으로 죽으면 다 끝나고 없어질 거라고 잘못 생각하고 자살해서 불행하게 지옥에 갈 뿐이다. 죽는 방식 자체는 그 사람의 구원 여부에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자살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그저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라면.. 그건 답은 맞지만 계산 과정이 틀린 것이다. 당장 답만 맞다고 계산 과정이 틀린 걸 계속 방치하는 건 그 사람의 성장에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구원관을 왜곡하는 것 말고, 다른 분야에서 진단만 맞고 처방이 비성경적인 방향으로 간 사례를 더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불교는 세상의 문제점 자체는 올바르게 진단했다. 하지만 통찰이 전도서 수준에만 머무른 채, 진짜 진리와 빛으로 나아가지 못한 게(=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기에) 한계이다. 그냥 혼자 열심히 수련하고 노력해서 번뇌를 떨치고 득도 해탈 성불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2) 진화론도 마냥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적인 이론이 아니다. 단지, 타락한 자연 세계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적자생존 약육강식 아귀다툼을 신이 직접 만든 게 아니라면 스스로 진화해서 된 거라는 쪽으로 결론을 냈을 뿐이다.
'종'이 분화하는 건 과학적으로 진짜 사실인데..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니 남는 가능성은 그냥 저절로 진화하는 것밖에 없다. 진화론 자체보다는 진화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풀이가 우생학 같은 더 악한 결과를 낳았다.

4. 외부 이슈와 관련된 오류

한편, 요즘 교회 내부에서 이런 얘기가 오가는 경우가 많다.

  • 지구 평평;;;
  • 나라 걱정과 정치 얘기, 부정 선거 음모론
  • 우한 폐렴 백신 음모론

이런 건 성경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슈이다 보니.. 교회에서도 "저런 주제는 교회 차원의 공식 입장을 내지 않으며, 각자 어떻게 믿든지 자유이다. 한쪽만 옳다고 너무 강하게 주장하면서 서로 싸우고 기력을 낭비하지 말라~ 교회까지 와서 자극적인 주제에만 너무 심취하지 말라" 정도의 원론적인 입장만 내면서 유야무야 넘기는 편이다.

뭐, 교회는 세상 학문을 논하는 곳이 아니니, 그런 태도도 잘못된 건 아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과학 발견이나 논리 추론, 합리적인 의심까지 다 종교의 이름으로 찍어누르고 괴상한 반지성주의를 조장하는 건...;;; 성경이 말하는 고귀한 믿음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천동설이나 지구 평평은 어설픈 사진이나 과학 이론(?)이 아니라 아니라 성경 구절을 들이대며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부류의 오류는 교회에서도 어느 정도 바로잡아 줘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성경의 다른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방법론까지 싸잡아 사이비로 매도되고 설득력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개인적으로 굉장히 우려하는 점이다. 까놓고 말해 킹 제임스 성경 신자라면 지구 평평에 현혹될 게 아니라, 인류 역사상 달 상공에서 낭독된 성경 역본이 KJV였다는 것이나 알아야 할 것이다.

정치 이슈도 마찬가지이다.
무슨 기독당을 만들고 교회 명의로 단체로 태극기 들고 길거리에 뛰쳐나가거나 심지어 불신자까지 교회에다 초청해서 시국 강연을 하는 건 교회의 존재 목적과 임무 우선순위를 심각하게 망각한 짓일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교회 댕긴다는 사람이 분별력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 교회가 무슨 여호와의 증인 급으로 세상 현실과 지나치게 단절을 감행하는 것, 뭐든지 다 예수님 다시 오셔야 해결되는 사항이니 우리는 닥치고 신경 끄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도 그닥 바람직하지 못해 보인다.

그래서 난 개인적으로 "난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파입니다" 같은 소리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논점 회피라는 생각이 들며, 이런 말을 하는 사람치고 진짜 세상에 얽매이지 않은 균형 잡힌 관점을 가진 경우를 거의 못 봤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기도만 열심히 하면 공부 안 해도 시험 100점 맞을 수 있다거나, 아예 세상 지식 공부는 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무책임 무질서한 개소리로 귀결되기 쉽다.

기독교는 혈과 육에 속한 싸움이 악하다고 해서 그렇다고 아예 집총도 하지 말고 국가의 병역 의무까지 거부하라고는 절대 가르치지 않는다. 이런 분야에서 균형을 어떻게 맞추면 좋을지는.. 답을 내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Posted by 사무엘

2023/06/09 08:35 2023/06/09 08:35
, , ,
Response
No Trackback , 4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170

Trackback URL : http://moogi.new21.org/tc/trackback/2170

Comments List

  1. 신세카이 2023/06/17 21:00 # M/D Reply Permalink

    예전에 제가 미국의 총기 소지는
    논리 문제가 아니라
    그 환경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 양식 문화와 역사 문제라고 말했었잖아요
    논리적으로 따지는 것도 분명히 필요하긴 하고
    또 벤 샤피로 같은 말빨 좋은 사람이 방송 언론에 나와서 자기 주장을 펼치고 그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그 말을 배우고 그런 게 분명히 필요하긴 하지만

    의식은 무의식의 빙산의 일각이고
    이성에 기반한 논리는 감정을 합리화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이게 정치 성향만이 아니라 종교도
    신앙에 있어서도 무언가를 믿는 것도 결국은
    그 사람의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경험과 유전자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인데

    자기 확신이라는 게
    그 확신이 이병철이 반도체 투자할 때의 그 확신이라면
    스티브잡스가 아이폰은 만들 때 확신이라면
    이순신의 확신이라면 다행인데
    원균의 확신이라면....

    제가 느끼기에는 대부분 사람들의 확신이
    깊은 통찰에서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을 뛰어넘는 안목에서 나온 게 아니라
    자기의 편견과 좁은 인지 범위에서 현상을 왜곡되어 받아들이는 것으로 잘못된 확신을 갖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경제 관련된 전망도
    진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무언가를 너무 확정적으로 말하지 않죠
    왜냐하면 세상 일이 변수가 너무 많아서 그 많은 변수를을 다 고려하기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에요

    무언가 확신해서 확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바보거나 사기꾼이거나 무언가 비리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원금 보장해 드립니다" 원금이 보장되는 건 은행 예금인데?
    "수익률이 한달에 10프로입니다" 워렌버핏이 1년에 20프로 밖에 안 된는데?



    인간이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수 밖에는 없는 거 같아요
    예전에 저는 나름 진리에 대한 갈망이 있어서 이것저것 공부를 많이 했지만
    그런 지식을 쌓는 건 이제 별 의미가 없다고 봐요
    중요한 것은 머리에 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선한 열매를 맞는 거겠죠

    행위에 대해서
    믿음과 행위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봐요
    믿음이 있으니까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고
    그런 행위를 하니까 믿음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거겠죠
    아브라함이 제단에 이삭을 바치는 행위를 할려고 했으니까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거고
    믿음이 있으니까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는 거고

    구원관에 있어서
    kjv유일주의자들이 너무 극단적인쪽으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요
    그런데 그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면
    KJV유일주의하고 그 구원관하고 다른 거 실제 본질은 비슷해요
    지식적으로 하나로 집대성된 완벽한 성경이 존재할거라는 믿음,
    지식적으로 머리고 이해하고 납득하고 아는 걸로 자신이 구원을 받고 그 구원이 영원히 보장될 거라고 믿음.

    자기 편한대로 생각한다는 느낌?
    믿음의 선배들도 그렇게 쉽게 구원을 받을 사람은 기록에 없는데...

    머 성경 구절을 가지고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고요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고 믿어야 하는 게 맞지만
    아무 생각 없이 믿으면 그건 맹종이 되어버리죠
    그런데 또 다른 관점에서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라는 게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것이기에
    모든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어야 믿겠다는 것도
    이것도 진리의 길이 아니라고 봐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순종이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머리로 이해가 되어서 했던 게 아니었듯이...

    1. 사무엘 2023/06/18 10:30 # M/D Permalink

      세상 학문이나 정치, 경제에 대해서야 님께서 이 댓글을 포함 지금까지 하신 말씀들이 맞고 저도 토 달 것이 거의 없습니다. ^^

      그리고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의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서 이성과 합리를 동원한 의심을 하고 의문을 품어야 하는 것도 맞습니다. 저도 종교의 탈을 쓴 반지성주의는 매우 싫어하고 경계합니다.

      그런데 그걸 과연 무슨 마음으로 하는 걸까요? 진짜 궁금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알고 싶어서? 결과가 제대로 나온다면 어느 쪽으로든 깔끔하게 승복하기로 약속은 했는지?
      아니면 마음 한구석엔 이미 결론을 내 놓고 작정을 하고는 "어디 한번 떠보자, 어디 한번 날 설득해 봐라" 심정으로 의심하는 건지?

      -- 신앙 쪽은 그런 세상 학문 방법론이 100% 통용되는 분야가 아닙니다.
      "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는 결코 이를 수 없느니라." (딤후 3:7)도 정상적인 결론에 도출된 상태는 아닙니다.

      -- 세상 경제는 변수가 너무 많고 뭔가를 도저히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성경이 말하는 인간 구원은 너무 분명하게 성경에 '단순하게' 계시되어 있고 얼렁뚱땅이 절대 아닙니다.

      -- 하나님 사랑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이웃 사랑입니다. 구원부터 받고 나서 선한 열매를 맺는 게 순서입니다.
      이건 킹 유일주의자들만 주장하는 게 아니고 정상적인 기성 기독교계에서도 다 똑같이 가르치는 교리이니 저한테만 반박하고 불만을 제기하실 필요 없습니다.

      -- 기독교는 당연히 증명 없이 믿어야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말씀조차 얼렁뚱땅 무오하게 보존되어 있지 않으면 기독교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 없으면 그냥 행위 구원이지 기독교 따위 존재할 가치도 필요도 없습니다.

      * 이 주제에 대해서 제 입장을 다시 말씀드렸습니다.

  2. 신세카이 2023/06/18 15:39 # M/D Reply Permalink

    야고보서는 행위 , 로마서는 믿음을 강조하는데
    서로 모순되는 거처럼 보이고
    문제는 사람들이 자기 관점에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건데
    제가 보기에는 믿음과 행위를 분리할 수 없는데
    사람들이 그 둘을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거에요

    또 어떤 구절에는 구원이 영원히 보장되는 것처럼 또는 예정인 것처럼 나오고
    또 어떤 구절에는 구원이 상실될 수 있는 거처럼 나오는데
    이게 제가 보기에는 관점의 차이인 거 같아요
    시공간을 초월하는 절대자의 관점에서 말한 것인가
    아니면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의 관점에서 말한 것인가

    자신을 부정하고 진리를 갈망하는 자를 붙잡아주시겠죠
    삼손이 이방 여자에게 속아서 결국 적국에게 잡혀서 두 눈이 뽑히고 무거운 맷돌을 돌리는 처지가 되었지만
    삼손의 그런 삶 또한 자신을 부정하고 절대자에게 다가가는 과정이었고
    그는 분명히 믿음의 선배로 기록되어 있기에
    절대자께서 삼손을 붙잡아주신 거겠죠

  3. 신세카이 2023/06/18 15:55 # M/D Reply Permalink

    제가 무슨 마음으로
    어떤 의도로 그러는지 궁금하시다면

    그냥 제 입장에서는 님이 더 넓은 인지 범위와 다른 관점에서도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겁니다
    이 세상에는 수 많은 종교가 있고 또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기록된 그 진리의 말씀이
    진짜 진리의 길을 제시해주는 게 맞다고 해도
    문제는 그것에 대해 해석도 너무나 많다는 거에요
    그러면 사람이 진리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의심하는 수 밖에 없어요

    예전에 kjv구절들을 개역이나 niv와 비교하여
    어떤 점이 우수하다 그래서 kjv유일주의가 맞다고 주장하시길래
    제가 그랬잖아요 그런 식으로 비교해서 주장할려면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
    (전수조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더 많은 역본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그랬더니 님은 그런 필요없다
    모든 역본의 대립 구도가 kjv vs non kjv라고 했었지만
    제가 다른 역본을 카톨릭에서 쓰는 영어 성경 두에랭스나 카톨릭 라틴어 표준성경의 사례를 제시하여

    대립 구도가 kjv vs non kjv 가 아님을 증명했었잖아요?

    그리고 말씀 보존에 관해서
    님은 하나로 집대성된 완벽한 역본만이 그 말씀 보존의 방법 형태라고 생각했었지만 저는 다른 관점에서 말씀 보존의 형태가 파편화되어 이루어진 것일 수 있다고 했잖아요

    다양한 관점에서 더 넓은 인지범위에서 생각해 보시길 바라는 겁니다

    그런데 머 미국의 총기 소지가 논리 문제가 아니듯이
    성경 해석에 대한 것도 논리 문제가 아니기에
    결국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선택하여 믿는 거겠죠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115 : 116 : 117 : 118 : 119 : 120 : 121 : 122 : 123 : ... 2139 : Next »

블로그 이미지

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2666177
Today:
1415
Yesterday:
1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