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행 중에만 사용 가능한 기능
시동 얘기가 많이 길어졌는데..
한번 시동이 걸린 엔진은 이전 행정 사이클 때 얻은 힘(폭발력)으로 다음 행정까지 진행하면서 연료를 연소시키고 꾸준히 돌아간다. 특히 4행정 엔진은 첫 회전인 흡입-압축 때는 폭발이 없고 새 동력이 생성되기 전이니, 영락없이 이전 사이클에 의한 관성이나 스타터 모터(최초)의 도움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동차에서 엔진의 동력을 필요로 하는 건 바퀴 구동축만이 아니다. 가장 먼저 배터리를 충전하는 발전기는 엔진 동력에다 빨대를 꽂아서 돌아간다.
다만, 자동차에서 기름을 태워서 생산된 전기는 원자력이나 석탄(!!)으로 증기 터빈을 돌려 생산된 발전소 전기보다 훨~~씬 더 비싼 전기라는 걸 잊지 말자.;;; 대형 발전소에 비하면 에너지 효율이 매우 나쁘다.
자동차의 에어컨도 엔진 동력을 직통으로 사용한다. 에어컨의 냉매 압축기는 소형 승용차용이라도 수 마력은 우습게 까먹을 정도로 동력 소모가 많은데.. 자동차용은 일반 실내 에어컨의 실외기처럼 굳이 전기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엔진 동력을 바로 활용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그 밖에 엔진이 지속적으로 돌아가기 위해 내부의 각종 유체들을 공급하는 냉각수 펌프, 연료 펌프도 전기 모터가 아니라 그냥 엔진 동력을 미량이나마 끌어다가 동작한다. 물론 이건 에어컨이나 발전기에 비하면 부담이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심지어는 축의 회전 속도를 측정하는 타코미터나 속도계도 엔진 동력을 극미량 깎아먹으며 동작한다. 전압· 전류량을 표시하는 테스터도 그 자체가 전력을 아주 약간 깎아먹으며 동작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동작하는 게 순도 100% 공짜가 아니다.
이렇듯, 바퀴 구동축 말고 엔진 동력을 직통으로 사용하는 장치들에게 동력을 연결해서 공급해 주는 끈이 '팬 벨트'이며, 이건 자동차에서 아주 중요한 부품이다.
배터리 정도면 방전됐더라도 어떻게든 시동을 걸어서 엔진을 공회전만 시키면 알아서 충전된다.
그러나 에어컨은 겨우 공회전 수준의 동력으로는 어림도 없어서, 실제로 악셀을 밟고 주행을 좀 해야 찬바람이 나오는 편이다. 특히 연비 주행 에코 모드 같은 걸 켜면 에어컨의 냉기도 눈에 띄게 소심해진다. 내 차 기준으로 말이다.
쌍팔년도 급의 먼 옛날 자전거를 탔던 기억이 떠오른다. 옛날 자전거에는 아주 원시적이면서 기묘한 형태의 헤드라이트가 장착된 경우가 있었다.
앞바퀴를 소형 교류 발전기의 회전축에다가 접촉시키고, 거기서 나오는 전기를 전원으로 삼는다. 그래서 자전거의 주행 속도에 비례해서 밝은 빛이 나오며, 차가 정지하면 불이 완전히 꺼진다.;;
발전기가 바퀴와 연결돼 있으면 자전거가 마치 짐을 더 실은 것처럼 가속이 약간이나마 더뎌진다. 발전기를 돌리기 위한 성능 오버헤드가 있기 때문이다.
옛날 자전거가 겨우 헤드라이트 오버헤드가 있었다면.. 자동차 급에서는 에어컨이 그 정도로 오버헤드가 큰가 보다. 더운 여름에 차가 막혀서 못 가고 있으면 에어컨도 찬바람이 나오지 않아서 애로사항이 더 커진다.;;
옛날에는 철도 차량조차도 통일호/비둘기호 급의 구형 객차는 별도의 발전차가 딸린 게 아니라 그냥 구동축에 발전기가 연결된 경우가 있었다. 이런 빈약한 발전량으로는 전등 켜고 천장의 선풍기 정도나 돌리지, 에어컨은 당연히 어림도 없을 것이다.
천장 선풍기는 정화조 없는 비산식 화장실과 비슷한 옛날 유물이라 하겠다. 아 하긴, 비산식 화장실도 "정차 중 사용 금지"였으니 마치 옛날 자전거 헤드라이트처럼 주행 중에만 유효한 존재였다. ㅋㅋㅋ
2. 자동 변속기
컴퓨터에 C:\로 대표되는 붙박이 보조 기억장치로는 ‘하드디스크’라는 게 있었다. 이건 원통형 디스크에다가 모터가 달린 기계식 하드가 당연히 원조이다. 하지만 2010년대쯤부터는 플래시메모리 기반인 SSD라는 것이 도입되어 비싸지만 더 빠른 하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자동차의 자동 변속기도 상황이 비슷하다. 클러치 페달 없이 동력비 변환을 자동으로 해 주는 그 물건은 토크 컨버터 기반의 유압식이 원조이다.
이게 제일 무난한 방식이긴 하지만, 결국은 동력이 간접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동력 손실이 있다. 꿀렁거림과 시동 꺼짐이 없다는 장점도 바로 이런 대가를 치름으로써 얻었다는 뜻이다.
변속을 자동으로 한다는 결과물은 동일하지만, 내부 동작 원리는 통상적인 유압식이 아닌 물건이 몇 종류 존재한다.
(1) CVT
일명 무단변속기라고 불린다. 기존 변속기가 단수별로 지름이 다른 톱니바퀴를 갖추고 있다면, 얘는 단면의 직경이 연속적으로 달라지는 원뿔을 갖추고 있다. 거기서 적절한 기어비가 나오는 부위를 벨트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변속한다.
그래서 얘는 이론적으로 1 2 3 4단이 아니라 그냥 범위 내에서 임의의 동력비를 구현할 수 있어서 변속 충격이 없고 아주 좋다. 살짝 악셀을 밟아서 엔진 회전수는 2000rm으로 균일한데 변속기의 동력비만 유동적으로 달라지면서 차의 속도가 20에서 70km/h까지 쭉 오른다면 환상적이지 않겠는가? 거기에다 변속기가 차지하는 부피도 작다.
하지만 이렇게 융통성 뛰어난 변속이 기계적으로 다른 아무 부작용 없이 구현 가능한 건 아니기 때문에 CVT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 가령, 최적의 동력비로 얻은 효율을 벨트를 고정하느라 낭비한다. (이거 고정을 제대로 안 하면 벨트가 헛돌기 때문)
나도 모든 기계적인 디테일은 모르지만, CVT는 아주 작은 경차나 소형 승용차급에서만 한정해서 쓰이고 있다. 옛날에 마티즈의 CVT 결함도 국내에서 CVT에 대한 안 좋은 편견을 짙게 깔았었는데 그건 너무 옛날이니 제끼고..
(2) DCT
유압식도 CVT도 아니면서 요즘 각광받고 있는 자동 변속 기술은 ‘이중 클러치’이다.
얘는 운전자의 입장에서는 클러치 페달이 없고 똑같이 PRND 기어봉이 있는 게 영락없는 자동 변속기처럼 생겼지만, 내부적으로는 기어 기반의 수동 변속기에 더 가깝다. 거기에다가 자동화 기능을 추가했으며, 그 자동화 기능을.. 홀수 단용 클러치와 짝수 단용 클러치를 따로 내장하는 식으로 구현했다는 게 핵심이다.
얘는 한 클러치가 변속을 위해 활성화됐더라도 다른 클러치가 엔진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동력 손실이나 변속 충격이 적다. 동력을 간접이 아닌 직접 전달하면서 자동 변속기의 부드러운 변속에다가 수동의 성능을 고스란히 살릴 수 있다.
단점으로는 기계적으로 더 복잡하고 비싸다는 것.. 수십 년 전, 맨 처음에 자동 변속기가 괜히 유압식으로 개발된 게 아니었다. 그때는 유압식 자동 변속기만으로도 차값을 10% 가까이 더 올릴 정도로 비쌌으니 말이다.
DCT는 CVT가 한계에 도달하는 차급부터.. 나름 큰 차에 옵션으로 제공되는 편이다. 얘가 기존 유압식 자동 변속기까지 대체하고 자동 변속기의 주류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