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개, 축복
영어의 동사 중에는 repent나 bless처럼.. 사람과 하나님이 모두 주체가 될 수 있는데 동일하게 번역했다가는 난감해지는 단어가 있다.
기계적으로 한 단어로만 번역하면 하나님이 잘못을 저질러서 후회· 회개(!!)를 하고, 남에게 복을 빌게 될 수 있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돌이킨다, 슬퍼하신다 / 복을 '주신다')
prophesy도 이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사람의 입장에서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겠지만 하나님이 자기 말을 또 대언(?)하는 것일 리는 만무하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역시 예언이 되어야만 타당하겠다. 이 역시 생각할 점이다.
2. 전치사
(1) 예전에 한번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흠정역은 OF를 중의적으로 직역해서 갈 2:16 faith of Jesus Christ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옮긴 성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 11:9 knowledge of the LORD는 '{주}를 아는 지식'이라고 번역했다.
말보회 한킹은 그 반대다. 갈 2:16은 예수님 믿는 믿음이라고 풀이를 했지만 후자는 그냥 '{주}의 지식'이라고 옮겼다. 영어에서 of는 정말 독보적으로 중의적인 전치사임이 틀림없다.
(2) FOR에 대해서는 예전에 한번 얘기한 적이 있었지 싶다. '-를 위한'(목적)과 '-로 인한'(이유)의 의미가 모두 있다. for sinner, for sin이 모두 가능한데 우리말로는 번역 표현이 갈린다.
한킹은 for the remission of sins를 "죄사함을 위한"이 아니라 "죄사함으로 인한"이라고 따박따박 번역했다. 하지만 흠정역은 요일 2:2를 "죄로 인한 화목제(화해 헌물)"라고 옮겼다.
(3) IN은 기본적으로는 '-안'이라는 뜻이지만 rejoice in, believe in처럼 그냥 '-를'이라고 타동사처럼 보는 게 더 자연스러울 때가 있다. 하다못해 미국 지폐에 쓰여 있는 In god we trust도 말이다. ㄲㄲㄲㄲㄲ 생각보다 까다롭다.
요일 4:3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이라는 표현으로 번역한 최초의 역본은 안티오크 권위역이고, 그 뒤 흠정역도 이를 따르고 있다. 한킹은 그냥 '육체로..'이다.
3. 조동사
영어의 can, may, will, must 같은 조동사는 우리가 중학교 수준에서 배우는 아주 쉽고 기초적인 단어이다.
그런데 이 조동사들은 뭐랄까, 손에 잡으려 해도 잘 잡히지 않는 굉장히 므흣한 단어이기도 하다.
의미가 마치 to 부정사처럼 예정-의지-가정 속에서 막 유동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과거형은 단순히 시제만 과거인 게 아니라 뜻이 또 변하기도 한다. 과거형이 좀 더 완곡하고 공손한 표현이 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shall은.. 1인칭이 포함돼서 "이렇게 할까?"라는 제안으로 의미가 굳어져 버렸고, 과거형 should만이 과거가 아닌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킹 제임스 성경 영어에서 몇몇 조동사들이 쓰인 걸 보면 다음과 같은 패턴이 있다.
- shall: 할 것이다(미래), 할지어다, 제안, 게다가 명령까지 붙어 있다. (thou shalt not kill) be 동사가 is, are 등으로 굴절되지 않고 뜬금없이 be 원형으로 등장한다면.. 그 문장은 십중팔구 should가 생략된 형태여서 그렇다.;
- will/would: 역시 shall처럼 미래의 뜻이 있는데... shall과 달리 명령 뉘앙스가 아니라 want와 거의 같은 급으로 '원하다'라는 뜻이 덧붙어 있다. 딤전 2:4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will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용례 때문에 '유언'도 testament뿐만 아니라 요즘은 will이라고 표현한다.
- want: 그럼.. 현대 영어에서 '원하다'라고 즐겨 쓰이는 이 녀석은 킹 제임스 영어에서는 lack/need와 비슷한 뜻의 자동사로 쓰인다. 시 23:1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가 I shall not want이다. 현대 영어로 I will not be in need 정도의 뜻이 저렇게 표현된 것이다.
군대의 야전교범이란 게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면 된다"라는 지침뿐만 아니라 "그때는 이렇게 하라"라는 명령도 된다. 그렇다면 이런 교보재의 문장은 옛날 같았으면 다 shall이라고 쓰면 됐을 것이다. ㄲㄲㄲㄲㄲ
4. wine
이것도 전에도 얘기한 적이 있지 싶은데, 흠정역은 우리말 성경 중에 wine을 최대한 알코올 없는 '포도즙'이라고 옮긴 역본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감히 술을 만드는 이적을 행하셨을 리는 없으니, 요한복음 가나의 혼인 잔치에 나오는 음료도 '포도즙'이다. 이건 의외로 권위역이 아닌 흠정역의 독자적인 관행이다.
그 정도면 괜찮지만.. 그래도 옆에 '독주'가 나란히 나오고 부정적인 문맥이 명백해 보이는 곳에서까지 무리하게 포도즙이라고 워딩 할 필요가 있나 싶은 구절도 있다.
"모조리 포도즙"도 "예언 대신에 몽땅 다 대언"와 비슷한 흠정역 번역 정책인 것 같다.
물론 창세기 9장에서 노아가 술 취해서 자빠진 장면, 잠언에서 술을 극딜하는 장면에서는 흠정역도 당연히 '포도주'이다. wine이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용례가 술인 만큼, wine은 그 뒤로도 가능한 한 '포도주' 쪽으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5. virgin
끝으로.. 계 14:4의 '처녀'는 흠정역 마제스티판에서 고쳐졌나 모르겠다. "여자와 더불어 자기를 더럽히지 않은 처녀"라니.. =_=;;;
하필 공교롭게도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저 딱 한 구절.. 성경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virgin은 여자가 아니라 그냥 동정남을 가리킨다. 곧이곧대로 한 단어만으로 옮겨서는 안 되는 지뢰 같은 단어가 성경에 의외로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흠정역은.. 창 19:5의 man은 그냥 사람이 아니라 반드시 '남자'라고 옮겨야 된다는 지론을 초창기 거의 20년 전부터 고집하고 자랑해 왔다. 왜? 이건 소돔 놈들이 남색을 저지르는 문맥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건 흠정역만의 독특한 특징이며, 그건 번역 방침을 존중한다.
그런데, 그런 성별을 철저하게 챙겼으면서 계 14:4 virgin을 숫총각 동정이라고 안 하고 처녀...;;;
소돔만큼이나 남자라는 단서가 버젓이 붙어 있는데.. 이건 일관성이 심각하게 결여되는 아쉬운 조치로 보인다.
처녀 virgin를 그냥 젊은 여자(기혼 여부는...??)라고 의역 변개하면 예수님의 탄생의 특성이 희석돼 버린다.
그런데 어느 동네의 워딩처럼 동정녀...라고 하면.. 엄마가 평생 남편과의 자식을 안 낳았다는 뉘앙스가 들어가 버리니 문제인데..
계시록에서는 애초에 여자가 아닌 virgin이라는 게 함정이다.;;
6. kill
'죽이다'를 뜻하는 kill은 중학교 수준의 아주 쉬운 기초 단어로, 사람이건 동물이건 모두 목적으로 받을 수 있다. 한국어는 '죽이다' 말고 '살해하다'는 사람에게만 쓰고, '잡다'는 짐승에게만 쓴다.
십계명 제6계명 Thou shalt not kill은 우리말로 '살인하지 말지니라'라고 적절하게 번역되어 있다. 이건 일체의 살생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영어권에서 이건 '살생'이 아니라 '살인'이니까 murder가 더 나은 워딩이 아니냐는 제안이 있을 정도이다. 실제로 KJV 이후의 현대 역본들 중 일부는 murder로 말을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십계명의 주변 계명들을 보시라. 부모 공경, 간음, 도둑질... 오로지 신 아니면 인간만을 다루는 저 문맥에서 등장한 kill은 당연히 살인이지, 갑자기 동물 보호 따위가 튀어나올 여지는 전~~혀 없다. 혼동될 일이 없기 때문에 그냥 음절수 더 적고 간결한 단어를 쓰는 게 더 낫다.
ere - before / foe - enemy / list - desire / let - allow ... 이런 식으로..
KJV의 영어 단어를 살펴보면.. 옛날 고어 단어가 더 짤막하고 운율과 암송에 더 유리한 경우가 적지 않다.
참, kill 말고 slay - slew(과거) - slain(과거분사)도 kill과 거의 같은 뜻이지만 더 문어적인 느낌의 '죽이다'이다. 특별한 차이 없이 그냥 섞여 쓰인 게 아닌가 추측된다. see / behold와 비슷한 관계인 걸까..??
카인이 아벨을 죽였다는 창 4:8에서도 이 단어가 쓰였고.. 짐승을 잡아서 고기를 먹겠다는 얘기에서는 아예 목적어 없는 자동사로 slay가 창 43:16에 나온다.
사도행전에서는 베드로가 본 짐승 환상이라는 같은 장면에서 두 단어가 일부러 동시에 쓰이기도 했다. (행 10:13, 행 11:7) 표준역은 둘을 서로 달리 번역했다. (잡아먹으라, 도살하여 먹으라)
Posted by 사무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