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신앙관, 세계관

1. 희망과 절망

마귀가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 너는 충분히 선하고 의롭기 때문에 굳이 예수 믿을 필요 없고 구원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근자감을 불어넣거나 (희망)
  • 반대로 너는 너무 악한 인간쓰레기이기 때문에 그 어떤 방법으로도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까스라이팅을 한다. (절망)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바는 이와 다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비참한 죄인이란 것까지만 절망이고, 그 뒤에 예수님 보혈 의지해서 그 어떤 죄인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복음이 희망이다!

예수님이 선한 도덕 선생이라느니 훌륭한 사상가, 언행의 모범 본보기 등등등.. 이런 건 구원받은 사람에게나 필요한 면모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예수님이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구원자부터 돼야 한다. 무조건 반드시~

2. 정당한 불가지론과 나쁜 불가지론

(1) 예수 믿는 신앙생활의 관점에서 이런 건 정말 알 수 없는 불가지론이고 불확실한 게 맞다.

  • 예수님은 언제 다시 재림할까? 휴거는 언제쯤 일어날까?
  • 난 과연 살아서 주님 다시 볼까? 난 언제 죽게 될까?
  •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까?
  • 지금 갑자기 무슨 병에 걸렸거나 사고를 당했거나, 앞날 창창한 사랑하는 가족 친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거.. 여기에 도대체 무슨 주님 뜻이 있을까?

애초에 증명돼 있지 않는 걸 지지하는 것이니 그걸 '믿음'이라고 하는 거다.
기독교가 뻘짓 동원해서 미래 앞날 일을 예측하려 하는 수작을 왜 그렇게도 금지하고 부정적으로 보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시라. (점, 운세.. 단순히 수학 과학 방법론으로 예측하고 대비하는 거 말고)

(2) 그러나 이런 건 불가지론의 영역이 전혀 절대 결단코 아니다.

  • 신이란 게 존재하기는 하는가?
  • 나 구원받은 거 맞나? 지금 죽어도 당장 하늘나라 가는 거 확실하나?
  • 이 정도면 대환란 겪지 않고 바로 휴거될 수 있을까?
  • 지금 우리에게 자필원본과 동급으로 온전히 보존된 성경 말씀이 존재하는가? 신의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가?
이걸 확신하고 굳게 믿는 건 무슨 교만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안 믿는 게 잘못된 불신이다!

(2)에서 말하는 성경, 구원이 확실하게 보장돼 있기 때문에 (1)에 대해서도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거다. (2)의 확실함이 (1)의 불확실함에 대한 원동력이다!! 그래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고 노래를 부를 수가 있다.
구원 하나 제대로 못 받아서 "글쎄, 죽어 봐야 알겠지"인 주제에 (1)을 버티라고? 내가 보기엔 그건 그냥 종교적인 기만이고 야바위질이다. 열정페이처럼 신앙페이 착취이다.

내가 비록 지식 면에서 신학교 졸업생 급으로 히브리어 헬라어를 통달했거나 성경 지리, 고고학 등을 다 줄줄 꿰는 게 아니고, 영성 면에서 맨날 길거리에서 복음 전하고 말 끝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찬송시를 쓰는 것도 아닌 일개 쪼랩 예수쟁이긴 하다.
그러나.. 그래도 성경 전반에 담긴 법리, 집필 관점이라든가 신앙생활 원리 쪽은 오랫동안 고민하고 연구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쪽 변증은 나름 강하다고 자신한다.

3. YOLO

YOLO라고.. You Only Live Once.. 한 번뿐인 인생인데 후회 없이 니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즐기며 짧고 굵게 자유롭게 살아~!! 이런 말이 있다.
이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긍정적인 메시지가 될 수도 있고, 무슨 히피 같은 허랑방탕을 조장하는 불건전한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

글쎄, 성경은 히 9:27을 보아하니 live once보다는 die once를 더 강조하는 것 같다. YODO인 건가. ㄲㄲㄲㄲㄲ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환생이나 윤회(∞), 소멸(0)하지는 않는다는 맥락에서 die once인 거다(1). 자유롭게 사는 건 좋지만 죄 문제는 꼭 해결해야 한다.

수 년 전엔 구내염약 알보칠에서 You only Pain once라는 약 빤 CF를 내보낸 적이 있었다. YOPO ㄷㄷㄷㄷ
요들쏭 부르듯이 요뽀요뽀 이러면서 진짜 강렬하고 병맛 넘쳤다.
알보칠 바를 때 겁나게 아프다는 거는 부인하지 않는다. ㅋㅋㅋㅋ "그래도 아픈 건 잠깐일 뿐이야~~~ 고통을 짧고 굵게 끝내고 구내염이 빨랑 낫는 게 중요하지?"

그런 논리로 롬 8:18이나 베드로전서 내용을 담으면 You only Suffer once 요쏘~~~도 가능할 것 같다. ㄲㄲㄲㄲㄲ
그리고 머신러닝 업계에서는 이미지에서 각종 사람이나 사물을 인식해서 추출하는 인공신경망 중에 YOLO...;;;라는 이름이 붙은 물건이 출시되기도 했다. 여기서는 You only Look once이다.

4. 세계관

예수 믿고 교회 댕기기는 하는데 신앙 수준이 너무 단편적인 사람이나 교회 말이다.
그들은 예수 믿는 기독교 국가들이 잘 살고 부강하고 세계를 석권했다는 식으로 얘기를 한다.

이런 사람들이 꼭~~ 어디 자연재해 참사가 터진 곳은 우상숭배 해서 심판 받고 벌받은 거라고 경솔하게 발언해서 어그로를 끌곤 한다.
그리고 일본은 어떻고? 기독교 배경 전혀 없지만 그냥 자기들이 노력하고 근대화 잘해서 잘 살고 노벨 상 수상자도 저렇게 많이 배출했을 뿐이다.

이렇게 수준 낮고 허점투성이에 털릴 게 많은 발언은 좀 그만 해라.
예수쟁이라면 기독교 배경· 성경적 세계관이 있는 나라들이 뭐가 진짜로 더 선진적이고 더 좋은지를 제대로 고찰해야 한다.

  • 사농공상 ㅆ선비 꼰대질 짓거리가 없이(최소한 동양 유교 문화권보다는 덜한..) 노동 근로가 존중받는 거,
  • 위선 체면 떨고는 뒤에서 추잡한 짓 하는 게 아니라, 돈이나 성에 대해서 차라리 면전에서 처음부터 더 솔직한 거,
  • 거짓말, 위증, 기본적인 비윤리 부정행위를 훨씬 더 금기시하고 엄하게 처벌하는 거
  • 사심 없이 인심이 후하고 기부, 기증, 입양이 많은 거
  • 잘못을 인정하면 개 호구 바보 되는 게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걸 믿고 인정하는 거 (이거..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의 기본 근간 전제조건이다)
  • 반대로 쓸데없이 가오 내세우면서 "죽어서 속죄"를 남발하지 않고, 차라리 살아 돌아와서 사죄하고 평생 책임지는 걸 더 높게 치는 거,
개인 구원과 관계없이, 나라의 단순 군사력 경제력과 무관하게 이런 의식 수준의 차이를 더 진지하게 고찰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러면 교통사고가 하나 나더라도 그때 가해자 피해자의 처신이 달라지고 사회의 치안 비용, 복지 비용에서 차이가 날 거다. 이건 단순히 문화적 상대성 차원이 아니다.

난 일본이 물질과 과학기술 면에서는 서양을 따라했지만 바로 저런 면모에서 진짜 서양보다 크게 뒤쳐졌기 때문에 국민들이 죽어나가고 개고생했으며, 태평양 전쟁 때 저렇게까지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서양 유럽이 언제부터 학문과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동양을 앞질렀는지를 묻는다면 예수쟁이들은 종교개혁을 떠올리지만, 일반 세상에서는 그냥 계몽주의나 르네상스 같은 걸 떠올린다. 이것도 생각할 점이다.

5. 참가만으로도 대단하긴 하지만, 일부러 참가에만 안주하지는 말아야 함

“올림픽은 승리가 아니라 참가에 의미가 있다” 이런 말이 있다.
아 물론 무슨 취지로 하는 말인지는 이해가 된다.
뭔가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시하고, 무언가에 일관되고 꾸준한 것을 좋게 보고, 학교에서 개근상을 다른 어지간한 성적 우수 만만찮게 좋게 보던 사고방식 말이다. 이건 절대로 잘못된 생각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저 말에만 안주해서는 안 된다. 특히 저 말이 불성실과 나태를 합리화하는 말로 악용되지 말아야 한다.
기왕 싸움을 시작했으면 이길 생각을 해야 하고, 기왕 경쟁 내지 경기를 시작했으면 우승할 생각을 해야 한다.

물론 지금 울나라가 쌍팔년도 시절처럼 엘리트 체육에 목숨 걸면서 선수 한두 명이 메달 딴 거 갖고 국위를 선양하네 열등감을 극복하네 마네 연연하는 지경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사비도 아니고 세금으로 육성된 국대 선수라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물도 나오기는 해야 한다.
오죽했으면.. 올림픽이 아니라 월드컵이긴 하다만, “월드컵은 뭘 배우는 게 아니라 이미 배운 걸 입증해 보이는 자리입니다.” 이런 말도 있었다. (이 영표 해설자가 2014년 월드컵의 졸전 때 빡쳐서.. -_-)

신앙 생활에서도 같은 적용을 할 수 있다. 당연히.. 예수 믿은 사람은 지옥 형벌에서 구원받고 천당이 보장됐으니 신분이 넘사벽으로 달라졌다. 영적 전투 아레나에 참가 선수로 등록된 것만으로도 올림픽 국대 선발 이상으로 얼마나 감지덕지인가?

하지만 0에서 무려 1을 만들었으면 1을 10, 100으로 불릴 생각도 해야 된다. 구원을 받았으면 그 다음에는 자기의 구원자 예수님으로부터 이쁨 받고 상 받을 생각을 해야지.
“저는 그런 상 같은 것엔 연연하지 않아요. 그냥 예수님만 있으면 돼요”는... 미안하지만 무소유 겸손이 절대로 아니다! 그건 매우 높은 확률로 또 다른 무지와 불신이다. 어쩌면 교만까지 추가돼 있고.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 해라. 세상 셀럽들이 누리는 부귀영화라든가(서울 강남 아파트나 고급 외제차나 명품빽, 최신 스마트폰=_=), 노벨 상, 필즈 상, 무궁화 대훈장, 금은동탑 산업훈장, 태극 무공훈장, 연예계의 무슨 아카데미 상에 비해..
성경에 약속된 여러 왕관(면류관)들은 실감이 안 가거나 믿기지 않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거다. 최악의 경우는 아예 그런 게 있다는 것도 모르거나.

그리고 예수님께 이쁨 받고 나중에 상 받는 방법은 세상의 각종 분야별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하고는 접근 방식이 좀 다르다. 애초에 자기 육신의 능력을 보이는 게 아니니까.. 저 바닥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과정 지향 사고방식과 결과 지향 사고방식이 모순되지 않는다. 이런 보상은 아무리 욕심 내도 당신의 영적 건강에 전혀 해롭지 않다!

세상에서 기계를 만들 때 전력 소모 줄이고 공기 저항 줄이려고 최적화에 목숨 건다. 운동 선수들도 체중이나 복장을 얼마나 미치도록 튜닝을 하는데?
본질적인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하지 않은 쓸데없는 dead weight 낭비 요소들을 털어내는 것이 신앙생활에도 필요하다. 이것이 히 12:1이 말하는 바이다.

다시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당연히 주님 주시는 보상을 "바라고," 어쩌면 적극적으로 추구도 해야 한다. 그래야 부당한 손해나 핍박도 감수하고 세상 추세를 역행하는 삶을 살 원동력이 생기고 '동기부여'가 된다.
신앙생활에서 신자와 하나님이 서로 주고 받는 딜이 뭔지, 신자의 십자가가 뭔지를 잘 모르니까 보상도 바랄 필요 없다느니, 대환란을 자기가 겪으면서 연단되겠다느니 하는 당치도 않은 헛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아니면 하나님을 무슨 신앙페이 열정페이 착취하는 엄한 금욕주의 갑질 업주로만 알거나 말이다(게으르고 악한 종).

Posted by 사무엘

2024/05/31 08:35 2024/05/3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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