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편

성경의 시편은..

  • 하나님 쪽은 내가 죄 때문에 너무 더러워서 차마 나아가기가 민망하고
  • 인간 쪽은 당장 악인 원수들로부터의 해코지가 두렵고..

이렇게 양측으로부터 샌드위치 신세가 된 사람의 처절한 고뇌가 많이 담겨 있다.

물론 시온이 어떻고 땅 상속이 어떻고 하는 건 구약 관점의 보상 얘기이다.
원수에 대한 저주나 보복이 종종 언급되는 건 하나님 관점 내지 재림 관점에서이다. 신약 크리스천의 행실 교리로 참고할 사항은 아니다.

허나, 신약 크리스천도 정규분포 안에 드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적 전쟁을 치른다면.. 저렇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낀 시편 기자의 심정을 거의 똑같이 경험하게 되는 게 정상이다. 시편 얘기가 지금이라고 해서 별개가 절대 아니다.

죄에 대해서 "그래서 뭐 어쨌다고? 어차피 남들도 다 똑같이 하는데?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잖아? 니 혼자 도도하게 굴어 봤자 밥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이렇게 치부하는 게 아니라~~~
"이런 죄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구나~! 이런 죄를 지은 대가가 누군가의 피흘림과 죽음이구나! 이런 더러운 마음 상태로 어찌 주 앞에 나아갈 수 있으리요?"

이렇게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같이 싫어하는 거.
"세상에서 부귀영화 누리면서 1천 일보다, 주와 함께 초막에서 단 하루가 더 낫다~~ 금은보화보다 더 낫다"
이러는 그 심정, 그 영성을 시편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이건 정말 평범한 상태로 기록할 수 있는 시가 아니다.

복음서 이후 신약 성경의 상당수를 바울이 기록했다면, 시편 대부분은 다윗이 기록했다.
왜 하나님이 다윗을 사용하셨는지(한때 간음 살인이라는 흉악한 죄를 지었는데도), 반대로 사울이 인간적인 평가 대비 하나님이 왜 학을 떼 버리셨는지?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다.
이래서 성경은 겨우 인간의 생각대로 막연하게 “그냥 우리끼리 차카게 살자” 스타일로 써 갈긴 책일 수가 없는 것이다.

2. 찬송가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들 중에는 작사자가 주변 가족, 친지, 연인을 질병이나 사고로 잃고 나서 극심한 슬픔과 고난 가운데 가사를 지은 것이 여럿 있다.

(1)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 내 영혼 평안해 (호레이쇼 스패포드)
작사자의 4살짜리 아들이 병으로 죽고, 나머지 네 딸들을 여객선 충돌 사고로 모조리 익사.. (19세기 말. 인제 증기기관 여객선이란 게 처음으로 등장했던 시절임)

(2)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조세프 스크리븐)
작사자의 약혼녀가 결혼식 바로 전날에 강물에 빠져 익사함. 그 뒤 모친이 중병에 걸려서 위독하다는 소식까지..

(3) Near to the Heart of God (Cleland B. McAfee)
작사자의 어린 조카딸 2명이 디프테리아에 걸려서 죽음 (19세기 말, 이런 후진국형 전염병이 아직 현역이던 시절)

(4) 그 날 다가오네 - 얼마나 영광스러운 날일까 (제임스 힐)
작사자의 장모가 갑자기 근육마비에 걸리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남

이것 말고도 다른 예들이 또 있겠지.
본인은 교회에서 집회 전 준비찬송을 인도할 때 가사 내용이 서로 비슷한 거, 조나 박자가 비슷한 것, 단조로만 이뤄진 것, 혹은 뒤에 이어질 설교 및 강의 주제와 관련 있는 것, 후렴에 ‘주여’가 나오는 거, 같은 작사-작곡자 쌍인 것 이런 것들을 묶어서 편성해 봤다.

그랬는데 한번은 "작사자가 가족· 친지를 잃고서 지은 곡들"만 골라 보니 저렇게 아주 그럴싸한 조합이 나왔다. 심지어 카테고리도 기도와 간구, 위로와 평안, 천국과 재림 이렇게 다양하다.
물론, 그 특성상 즐겁고 경쾌한 곡은 별로 없고 장송곡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저런 찬송가를 굳이 장례식장에서만 불러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3. 여담

- 성경에 주석 성경이 있다면 찬송가에는 해설 찬송가가 있다. 원래 영어가사라든가 이 곡이 만들어진 계기와 배경과 사연, 작사자와 작곡자에 대한 신상 정보 같은 것들을 알면 그 곡에 대한 애착이 더 생길 수 있다.
물론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 검색으로 저런 것들을 대번에 다 찾아볼 수도 있지만 말이다.

- 요즘 사람들은 아예 19~20세기 클래식 찬송가가 아니면 마커스니 어쩌구 하는 2010년대 이후 CCM이다.
그 사이에 낑겨 있는 1980~90년대 초창기 CCM/복음성가는 차차 잊혀지고 못 들어 본 세대가 늘어나는 것 같다. =_=;;

- 성경에 따르면 철저하게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먼저 구하라", "하나님 사랑" 그 다음에 "이웃 사랑"이다. 비싼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 자선을 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 발에다가 향유를 끼얹어 버린 것은 허비 낭비가 절대로 아니었다. 정반대.. 주님이 귀하게 받으시는 경배로 인정됐다~!!

- 사도행전에 기록된 베스도와 아그립바(행 26:24,28)의 반응은.. 오늘날에도 복음을 거부하는 불신자들의 전형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정말 동일한 패턴이다.

- 성경에 기록된 기도들 예시만 갖고도 설교나 강해를 하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다니엘서 9장이나 사도행전 4장은 고난이 깃든 가운데 정말 기도를 예쁘게 잘한 것이다. 왕상 8 솔로몬의 기도도 이런 범주에 들까?
그에 비해 삼손이 죽기 전에 남긴 마지막 기도는.. 그냥 안습하고 처절한 기도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9/13 08:35 2024/09/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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