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이야기

집에서 컵라면을 먹기 위해 물을 끓일 때 평소에는 늘 전기 커피포트를 이용하다가 얼마 전엔 부득이하게 냄비+가스레인지라는 재래식 방법을 쓰게 되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뭐냐면, 화력을 최고로 설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물이 끓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는 것이었다. 하긴, 물은 잘 알다시피 비열이 꽤 큰 물질이며 끓이기 위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도시 가스 정도만 해도 불꽃의 온도가 상당히 높다. 그을음과 배기가스도 (거의) 없어서 가정용으로 적합한 연료이며, 주부의 가사 노동을 크게 덜어 주고(깨끗하니까) 시간 아껴 주고(화력이 강해서) 산림 보존(설명이 필요 없음)에도 기여한 고마운 물질이기도 하다. 장작불 때서 목욕할 물을 데우거나 밥 지어 보시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를 이용하는 커피포트는 꽤 많은 물도 더욱 신속하게 펄펄 끓여 준다. 이때 얼마나 빡세게 열을 가할지가 상상이 된다. 그래도 주변은 완전히 플라스틱이고, 매우 안전해서 만지다 손을 델 염려도 거의 없다. (표면이 달궈진 냄비는 그렇지 않다.) 게다가 물이 다 끓으면 알아서 꺼진다.

이렇게 편리할 수가 없다. 다재다능한 전기 에너지를 가장 무식하게 활용하는 게 고작 저항을 이용한 전열기라 하지만, 전열기 역시 유용하다. 밖에 나갈 때야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필요하겠지만, 집에서 혼자 고기 구워 먹을 때 안성맞춤인 전기냄비도 있다. 게다가 전자레인지는 주변 온도를 높여서 가열하는 게 아니라 음식 내부의 물 분자를 진동시켜서 열을 가하는 최첨단 장비이다.

전자기력은 물질이라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힘인 만유인력과 더불어, 이 자연의 거시 세계에서 비교적 쉽게 관찰도 가능한 신비로운 힘의 원천이다. 우리보다 수천 년 전에 산 사람들도 마찰 전기라든가 자석 같은 걸 보고 굉장히 신기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 에너지의 성질을 그럭저럭 파악하고 제대로 활용하게 된 것은 불과 200년 남짓?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패러데이, 맥스웰 같은 걸출한 과학자가 나와서 교류 전기와 발전기를 만들어 내고 전자기파를 발견하고, 거기에다 니콜라 테슬라 같은 전자 공학 덕후가 결정타를 날린 덕분에 인간은 전기 에너지를 대량 생산해 내고 이걸로 열과 빛과 동력(전동기)을 무한대에 가깝게 만들어 냈으며, 정보를 말 그대로 빛의 속도로 주고받고, 그걸로 인간의 지적 활동까지 분담하면서(컴퓨터) 오늘날의 찬란한 전기 문명 시대를 만들어 냈다.

본인은 시계에 대해서도 꽤 최근에야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요즘 아날로그시계를 보면 십중팔구 얼굴에 Quartz(석영)라는 단어가 꼭 적혀 있다. 이것은 이 시계가 기계식이 아니라 말 그대로 쿼츠 시계임을 뜻한다. 과거에는 시계는 태엽과 용수철, 지레와 톱니바퀴가 맞물려 동작하는 초정밀 기계였는데, 쿼츠 시계는 무려 20세기 중후반이 돼서야 컴퓨터나 형광등보다도 더 늦게 발명됐다.

쿼츠 시계는 동작 방식이 기계식 시계와는 완전히 다르다. 전기 신호를 받고 규칙적으로 진동하는 석영의 진동을 반도체가 인식하여 동작하는데, 문제는 쿼츠 시계는 싸고, 더 간단하고, 만들기 쉽고, 게다가 기계식 시계보다 압도적으로 훨씬 더 오차가 적어 정확하고... 세상에 이렇게 단점이 없이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대안이 나오기란 정말 흔치 않은데 쿼츠 시계는 기계식 시계를 완전히 떡실신시키고 시계의 표준이 되었다. 이 역시 전기 덕분이다. 전자식 시계는 단순히 기계의 동력을 전기로 바꾸기만 한 게 아니라는 걸 처음 알았다.

철도와 전기가 찰떡궁합이라는 것은 이제 더 설명하지 않겠다. ^^;;

이렇게 우리 생활을 이롭게 한 전기이나, 잘못 사용하면 매우 위험해진다는 것 역시 주지의 사실이다. 전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만큼 전기로 인한 화재(누전· 합선)가 잦아졌으며 감전 사고도 빼 놓을 수 없다. 정전기는 물기만 있으면 싹 없어지지만, 젖은 손으로 전기 플러그를 만지면 감전의 위험이 있다. 이 둘의 차이가 뭔지 아는 분이라면 용자. =_=;;

정전기의 전압은 순간적으로 수천, 수만 V가 되기도 하지만, 실제로 인체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전압(V)이 아니라 전류(A)이다. 정전기는 전류는 거의 없다시피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치명적이지는 않으나, 사람에 따라서는 정전기에도 굉장히 민감한 경우가 있다. 이 점을 이용, 전기가 사람을 고문하고 사형 집행하는 수단으로도 쓰였다.

사람의 신경도 일종의 전기 신호를 따라 반응하는데 외부에서 그런 무자비한 전류가 들어오면 모세혈관이 터지고 사람 신경이 다 망가질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이상으로 강하게 감전되면 사람은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감전을 일으키는 물체로부터 신체를 스스로 움직여 떨어질 수조차도 없어진다고 한다.

뭐, 전압마저 엄청 높으면, 그냥 퍽 불꽃과 함께 타 버리지만 말이다. 고압선 위에 참새가 앉아도 왜 감전되지 않는지도 어렸을 때 주된 과학 FAQ였는데, 답변의 요지는 물론 기억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설명은 잘 못 하겠다. =_=;;

니콜라 테슬라가 선보인 마술(?) 중 하나였다는 무선 송전이 앞으로 과연 현실이 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다면 정말 현대 전자 공학의 총아로 칭송 받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5/28 08:17 2010/05/28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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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 기윤 2010/05/28 10:23 # M/D Reply Permalink

    무선 송전이 실현되면 앞으로 노트북/넷북에 배터리가 사라지겠죠.. (..)

  2. 주의사신 2010/05/28 10:42 # M/D Reply Permalink

    1. 정전기에서 발생하는 전압과 ktx에 들어가는 전압의 세기가 거의 같다고 하더군요. 다만 정전기는 지속적으로 주입이 불가능해서 정전기로 ktx를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2. 가을이나 봄에 정전기 많이 날 적에 정전기를 피하려면, 옷 벗기 전에 벽에 손바닥을 대고 벗으면 됩니다. 그러면 안 납니다.

  3. 사무엘 2010/05/28 13:15 # M/D Reply Permalink

    김 기윤: 배터리가 없어지기보다는, 당장 전원 어댑터의 거추장스러운 선이 없어질 수 있어서 좋을 겁니다.

    주의사신: KTX라고 딱히 다른 전압을 쓰는 건 아니구요. 지하철 전동차의 교류 구간이나 KTX나 전기 기관차나 다 똑같이 25000V입니다. 하긴, 반 데 그라프 기전기로 순간적으로 그 정도 전압을 만들어 낼 수 있긴 하죠.
    그러나 실용적인 전기가 엔진 달린 비행기라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정전기는 글라이더 수준밖에 안 될 겁니다. ^^;;

  4. 김 완수 2010/05/28 19:23 # M/D Reply Permalink

    그제께 낡은 컴퓨터를 재활용하겠다고 이리저리 선 연결하다가 멀티탭에 선이 까진 부분을 잘못 만져서 감전됐습니다. 특별히 아프거나 하진 않지만 아직도 오른팔과 오른쪽 다리하고, 심장 오른쪽하고 머리 오른쪽의 감각이 영 안좋네요. 병원에 가야 할까요?

    그리고 무선 송전은 근거리라면 가까운 거리이긴 하지만 온라인 전기 버스에서 쓰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도로나 정류장에 전력선하고 급전 코일 등을 묻어서 자기장 유도 방식으로 전기를 공급합니다.

    뱀다리를 하나 덧붙이자면, 교류라서 아무렇게나 끼워도 잘 동작해서 방향이 없는 것 같지만, http://www.tonystyle.com/148 를 보니 교류에도 방향이 있다고 하네요.

    1. 사무엘 2010/05/29 07:59 # M/D Permalink

      감전의 후유증이 그 정도까지 남는가 보군요. 며칠 지나도 몸 상태가 여전하면 병원에 한번 가 보시는 게 나을 듯.
      무선 송전이야 지금도 전혀 시행이 안 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거리가 길어질수록 전력 손실이 아직은 너무 크기 때문에, 그 정도 제한적으로나 쓰일 것 같네요.
      그나저나, 교류의 특징이야말로 방향성이 없다는 것 아닌가요? 전기 쪽은 파면 팔수록 생소하고 어렵더군요. ㅎㅎ

    2. 김 기윤 2010/05/29 08:23 # M/D Permalink

      저 링크는 깨져있어서 잘 모르겠(.....)는데 확실히
      평소에 220V 사용할 때는 잘 모르겠는데
      회로공부를 할 때는 확실히 방향(?)의 차이가 있습니다.

      ........ 다만 저도 이해는 잘 안갑니다 (.....)

      잘 모를때에 거꾸로 꽂았다가 낭패본 기어익 ㄱ-..
      (이후로는 그라운드(검정색)은 무조건 그라운드끼리 연결..)

  5. 김재주 2010/05/31 14:03 # M/D Reply Permalink

    으아니!! 챠!! 그런데 대체 왜 기계식 시계가 더 비싼고야!!


    .... 뭐 무선 송전하면 당장 떠오르는건 지금 제 옆에 놓여 있는 전동 칫솔이 있네요. 얘들도 가만보면 연결되는 단자가 없는데도 충전이 되죠.

    1. 사무엘 2010/05/31 19:26 # M/D Permalink

      감탄사가 인상적입니다. ㅋㅋㅋ
      컴퓨터 식으로 설명하자면 소프트웨어로 프로그래밍해서 만들 걸 다 하드웨어적으로 구현하느라 비쌌던 거겠죠?
      그러고 보니 옛날엔 필름 카메라도 건전지가 전혀 필요 없이 전적으로 기계/화학적인 조작만으로 동작하던 시절이 있었네요.
      흠 저는 어떤 형태로든 무선 충전/송전이란 걸 주변에서 본 적이 없는데.. 신기하군요.

      시계 관련 일화들:
      1. 시계방에 있는 시계들의 바늘 위치가 다 완전 random 제각각인 이유는?
      이건 뭐 상식이겠죠? ^^;;

      2. TV 광고에 나오는 시계는 한결같이 10시 10분 (35초)을 가리키고 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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