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고의 자리와 최악의 자리
28인승 우등 고속버스를 기준으로 3번 자리는 혼자 고속버스를 이용할 때 그야말로 최고의 명당 자리이다.
맨 앞자리이니 앞 승객의 좌석 기울임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앞에 공간 많고, 전방의 경치가 훤히 보이고, 운전석 계기판까지 보이고, 빨리 내릴 수 있고... 요모조모 따져 봐도 가히 명당이 아닐 수 없다. 시내버스에도 경로석이 괜히 앞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최악의 폭탄 자리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맨 뒷자리의 중앙이다. 번호로 치면 26~27 정도 되려나?
좌석의 폭부터가 앞의 자리들보다 약간 좁은 데다가 빨리 내릴 수 없고, 엔진이 바로 아래에 있기 때문에 엔진 소리와 진동도 가장 크게 전해지는 위치이다. 안전 벨트를 하지 않은 채로 차가 급정거라도 하면 앞의 뻥 뚫린 복도로 튕겨나갈 것 같아 불안하다. 워낙 안 좋은 자리이다 보니, 일각에서는 고속버스의 저 자리는 마치 KTX 역방향 좌석처럼 할인을 해 줘야 한다는 주장마저 제기되기도 했다.
2. 비행기와 비교하면?
이런 맥락에서 고속버스의 명당 자리는 비행기로 치면 비상구 옆 자리와 비슷하다. 비행기는 세상에서 가장 빡센(resource-critical) 교통수단이다 보니, 이코노미 좌석은 그 어떤 교통수단의 일반석보다도 자리가 좁으며 한 치 공간이 아쉽다. 그런데 비상구 근처 좌석은 앞에 공간이 넉넉하다. 그래서 비행기를 좀 타 본 사람이면 탑승권을 발권할 때 이 좌석을 달라고 직원에게 얘기한다.
다만, 이 좌석엔 아무나 탈 수 없다. 비상구 옆은 사고가 났을 때 비행기를 탈출하기가 굉장히 좋은 위치인 만큼, 여기에 앉은 승객은 비상시에 혼자 도망가지 말고 승무원들과 함께 다른 승객들의 구조와 탈출을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 이건 전세계 항공업계에 법으로 규정된 의무 사항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좌석은 그 의무를 이해하고 거기에 동의하는 신체 건장한 성인에게만 발권된다. 그 좌석에는 각종 안전 수칙을 적어 놓은 팜플렛에도 "이 의무 사항을 이해하고 수행할 능력이 안 되거나 단순히 동의하지 않는 분이라면 즉시 승무원에게 요청해서 좌석을 다른 곳으로 교환하십시오"라고 적혀 있다. 오로지 비행기이니까 그런 제도가 있는 것이다.
3. 구동축
요즘이야 버스들은 열이면 열 다 RR(엔진과 구동축이 모두 뒷바퀴 쪽)이지만, 아주 옛날 구닥다리 버스 중에는 마치 트럭처럼 FR 차종도 있었다.
운전대 아래에 엔진이 있다 보니 그런 버스는 타 보면 운전대 쪽이 약간 높았다. 그 대신 맨 뒷좌석이 불룩 위로 돌출된 게 없었다.
버스를 RR로 만듦으로써 딱히 얻게 되는 장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핸들이 가벼워지고 앞부분의 승차감이 좋아지는 걸 노리는 건지?
한편으로 승용차는 과거엔 FR 위주였고 그 유명한 현대 자동차의 포니 역시 FR이었던 반면, 기술이 좀더 발달하면서 FF로 다 바뀌었다. 작고 가벼운 승용차 정도면 무거운 엔진에다 구동축까지 바로 두는 게 여러 모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차가 커질수록 FR이 유리해지긴 하지만, FR 차들이 지난 1월 폭설 때 구동축 무게의 부족으로 인해 눈길에서 죄다 떡실신한 적도 있었다. 명품 외제차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끝으로, 트럭이야 그렇잖아도 뒷부분에 무거운 짐을 가득 싣는 걸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니까 엔진이 뒤에 달릴 일은 절대 없을 것이고 언제까지나 FR 체계가 유지될 것이다.
4. 휴게소 환승
고속버스들도 이제 오로지 지정 좌석의 point-to-point 수송 방식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휴게소 환승을 실시하고 있다. 시도는 나쁘지 않은데, 문제는 고속버스는 그렇게 후속 버스 접속 운행을 하기에는 정시성이 보장 안 된다는 것. 철도야 세상에서 제일 정확하고 잘 통제된 교통수단이며, 비행기도 딱히 결정적인 사고나 나쁜 날씨 크리만 안 터지면 그럭저럭 정시성이 보장되는 편이다. 그러나 도로 교통은 답이 없다. 고속버스는 승차권에 평균 소요 시간만 적혀 있을 뿐, 도착 예정 시각이란 게 찍혀 있지 않다!
그러니 휴게소 환승의 시범 시행도 잘 안 막히는 마이너한 노선에 그것도 주말이 아닌 주중부터 해 온 것이다. 게다가 고속버스는 철도와는 달리 여러 버스 회사들마다 시스템 통합 또한 아직 요원한 실정.
그래서 아직 한번에 선행-후행 버스 표를 통합으로는 못 사고, 휴게소에서 또 후속 버스 차표를 사야 한다고 함. 즉, 시스템적으로 완전히 다른 버스를 두 번 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단지 각 지역에 있던 버스 터미널이 고속도로 내부의 휴게소로 옮겨졌다는 변화가 존재할 뿐이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항공이 발달하기에는 땅이 너무 좁고, 그렇다고 철도 인프라가 훌륭한 것도 아니고 거기에다 고속도로만 죽어라고 엄청 지어내다 보니, 시외나 고속 같은 장거리 도로 대중 교통수단이 매우 발달해 있는 나라이다. 항공사나 공항들은 국내는 너무 좁고 일찌감치 적극적으로 국제선 위주로 배수진을 치고 영업을 하다 보니 인천 공항 같은 실적 좋은 훌륭한 공항도 태어날 수 있었다.
5. 주행 속도
달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운전석 계기판을 보면, 요즘 기사 아저씨는 정말로 규정 속도를 지켜서 운전한다. 이따금씩 정말로 느린 차를 추월할 때나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면 시속 100.. 많게 잡아도 110은 절대로 안 넘긴다. 주변에서 승용차들이 우리 버스를 다 쌩쌩 추월해 가더라도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운전사는 규정대로만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엔진 회전수와 속도가 다 기록으로 남고 있는 마당에 사고라도 나서 과속이 들통나면 운전사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옛날에 대학 시절에 고속버스를 이용한 일이 있었다. 대전-대구 사이에 경부 고속도로와 경부선이 나란히 달리는 곳을 버스가 달리고 있었는데, 마침 옆의 철길로 새마을호가 지나갔다. 그리고 열차는 딱 시속 100으로 달리고 있던 우리 버스를 아슬아슬하게 추월해 갔다. 조향이 필요하지 않은 궤도 교통수단은 같은 여건이라면 단순 도로 교통수단보다 땅도 덜 차지하고 속도도 더 낼 수 있는 법이다.
그나저나 타코미터를 보고 있으면 디젤 차량은 휘발유 차량보다 엔진 회전수가 정말 낮다는 걸 알 수 있다. 단위 회전수당 토크라고 해야 하나? 힘이 더 큰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