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예전에 쓴 적이 있는 <일제 강점기의 드라마틱한 크리스천 커플>이라는 글을 이 블로그뿐만 아니라 몇몇 크리스천 커뮤니티에다가도 올렸다.
이런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는 두 위인 커플의 일대기와 연애 생활에 대해서 그냥 재미로 읽으라고 글을 올렸고, 정치색 같은 건 전혀 표방하지 않았다.
그러나, 글을 올린 곳에서 모두.. 이 승만에 대해서 내가 묘사한 표현이 심기가 불편하다는 댓글이 꼭 하나씩은 올라왔다.
그 댓글을 읽어보면 이 승만에 대한 진정어린 혐오와 증오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혐오와 증오심의 근거는 본인이 보기에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들...
4· 19에 대한 기억이 워낙 짙어서 독재자까지는 그렇다 치는데, 그 밑으로 해방 직후와 심지어 일제 강점기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인에 대한 원색적인 비방과 험담은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모르겠다.
“전후 상황과 문맥 다 무시하고 오로지 이 승만 개새끼 만들기”이다.
이 승만이 대통령 해 먹으면서 그렇게까지 죽을 죄를 지었나? 정말 김 일성이나 이 완용 욕도 저렇게 할까 싶을 정도이다.
평생을 기독교 정신으로 술· 담배 안 하고 검소하게 살았고 교리적으로 배도하지 않았으며, 딸 같은 서양 여자와 결혼한 게 특이점일 뿐이지 그래도 섹스 스캔들 전혀 없으며, 고위 관리들 회식 때 기생 끌어들이지 말고 대신 각자 자기 아내를 데리고 오게 하고..
그 정도로 행실상의 선한 간증이 있는 사람이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게 있다면, 일단 좌우 정황부터 좀 살펴야 하지 않는가? 왜 저 사람에게만 유달리 평가의 잣대가 그리도 가혹한가?
부정 선거, 부산 정치 파동, 보도 연맹 등을 줄줄 외우는 사람들이 평화선, 반공 포로 석방, 원자력 협정 같은 건 얼마나 알까?
지식이 편파적인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개독안티들도 얼마나 지식이 뛰어나고 논리정연한가? 그 문맥 안에서만 말이다. 걔네들 글대로 논리에 이끌려 가기만 하면 정말로 야훼는 완전 미친 변태 같은 무능한 신이고, 바이블 같은 ㅂㅅ 같은 책이 어떻게 수천 년간 존재해 왔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게 된다. 단지 그들이 전제로 깔고 있는 설정들이 전혀 사실이 아니어서 문제일 뿐이지.
이 승만에 대한 주된 오해와 나의 반박을 열거한다.
1. 독립 운동가 시절부터 싸가지 없고 고집불통 안하무인이어서 파벌이나 만들었다
이 말만 들으면 언뜻 그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대신 실력으로 용서된다” 수준이다.
집안에서만 싸가지가 없었던 게 아니라, 미국 정치인들에게도 싸가지 없고(?) 콧대가 높았기 때문이다. 이 승만은 너무 똑똑하고 세계를 보는 눈이 다르고 다른 독립 운동가들과는 레벨이 넘사벽으로 달랐다. 이 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이 특이한 것만큼이나 특이한 사람이었다.
2. 무력 독립 운동 노선을 반대했다
신념과 관점의 차이일 뿐이며 정황상 그는 반대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애초에 우리나라가 무력으로는 일본을 이길 수 없음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해명은 본인의 이전 글 <안 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참고하라.
3. 남북 분단의 원흉이다
정말 말이 안 된다. 대다수 사람들이 UN이 뭔지 공산주의가 뭔지도 잘 모르던 시절에, 스탈린과 기회주의자 김 일성의 흉계를 간파하고 미국을 설득해서 남쪽에만이라도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세운 외교력을 두고두고 칭송해도 시원찮을 판에, 어떻게 헐뜯어도 저렇게 치졸하고 민망하게 헐뜯을 수 있을까?
이 승만을 분단의 원흉이라고 헐뜯는 건 우리나라가 북한 김 일성 손아귀에 들어가지 못해서 안달 난 것과 같다. 정말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고 선과 악 관념이 날조된 것이다(사 5:20).
4. 친미 (나쁜 의미의)
전혀 사실이 아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이 승만만치.. 그 보잘것없는 허약한 국력으로도 외교 능수능란하게 잘 해 내고, 미국 정치인들을 쩔쩔매게 만들고 미국으로부터 최대의 국익을 얻어낸 정치인은 없었다. 일본하고만 짝짜꿍이 잘 맞던 미국을 한국의 친구로 바꾼 게 이 승만이다. 그 옛날에 중국이나 소련이 아닌 미국을 바라본 것이다. 이게 욕 얻어먹을 짓이란 말인가?
아니, 그보다도 그는 독립 운동가 시절부터 미국에서 40여 년을 지내면서도 미국 시민권을 일부러 거부하고 무국적자로 버텼다. 이게 친미인가? “대한민국은 곧 독립할 거고 나는 대통령이 될 것이기 때문에 미국 시민권 같은 건 없어도 됩니다”가 그의 지론. 나라가 쌩쌩 잘 돌아가고 있을 때 이런 말을 하면 대통령병 권력욕이지만, 나라가 없던 시절에 이런 말을 한 건 지극한 애국심이다.
5. 친일 (나쁜 의미의)
이건 본인도 처음엔 궁금했다. 일제로부터 지명수배를 받은 독립 운동가 출신이며 평생 일본을 그렇게도 싫어하고 지냈다는 사람이, 왜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친일파 출신 관료들에게 기회를 줬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나이가 들고 세상 물정을 좀 알고 나니까, 안타깝지만 그 당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걸 적극 공감하기 시작했다. 나치에게 겨우 3, 4년 남짓 점령당했다는 프랑스도 아니고 무려 한 세대에 가깝게 일제의 손아귀에 있던 나라가 그럼 일본 경찰· 군인 출신 인재를 활용 안 하고 어떻게 당장 치안과 국방을 유지하겠는가? 더구나 국군 수뇌부에조차도 ‘빨갱이’들이 있어서 적과 내통하는지, 사상이 어떤지 알 수가 없었고 이북에서는 수시로 폭동을 일으키고 건국을 음해하고 방해하던 마당에 말이다.
우리나라의 건국 초기에 친일파 청산을 가장 방해하고 그들이 설 빌미를 제공한 장본인은 다름아닌 북한이라는 게 본인의 지론이다. 박 정희도, 안 두희(김 구 암살범)도 다 6 25 덕분에 면죄부가 주어지고 복직할 수 있었는데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리요?
6. 6· 25 때 혼자 도망치고는 다리 폭파나 했다
그런 적 없다. 이 승만은 “국민을 버리고 서울을 떠날 수 없다”고 쌩고집을 부렸고, 그걸 영부인과 측근들이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피난길에 오른 것이다.
그리고 서울 시내에 국군이 이기고 있다는 거짓 방송이 왜 며칠째 울려 퍼졌는지, 결정적으로 한강 다리를 누가 폭파하라고 시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휴전선 인근의 늘 있던 교전이어서 전쟁을 대수롭지않게 여겼던 것일 수도 있고, 다리 폭파의 경우 손발이 안 맞은 작전 실수였을 수도 있으며, 정말로 군부를 장악했던 불순세력이 자기네가 싼 똥을 남한 정부에다 전가시킨 것일 수도 있다.
단 하나, 이 승만이 “용용 난 먼저 피난 가지롱. 너희는 엿 먹어라” 하면서 다리 폭파한 건 절대 아니다!
쉽게 말해서 이 승만의 업적과 잘못 내지 한계는 컴퓨터 식으로 말하자면 윈도우 95 정도에다 비유할 수 있다. 윈도우 95는 도스와 16비트 윈도우에 머물러 있던 평범한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무려 32비트 선점형 멀티태스킹 OS를 선사함으로써 생활을 완전히 바꿔 놨다(민주주의 주권 국가)! 하지만 도스에서 잘 살고 있던 사람들의 반발이 만만찮았으며, 윈95 역시 내부에는 상당수 16비트 코드를 답습할 수밖에 없었다. 호환성을 맞추다 보니 태생적으로 안정적일 수가 없었다. 불안정하다고 까이고, 또 확장완성형 때문에 한글 파괴라고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아주 그럴싸한 비유이다.
그러나... 그러나 우리나라 IT가 윈도우 95 없이 세계 무대에서 나란히 설 수 있었을까? 그 당시에 윈도우 NT 돌릴 수 있는 컴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그 후, 나라의 기틀이 잡히고 외교력보다는 이제 진짜 국내 민생을 살피는 지도력이 더 필요해지면서, 너무 늙어 버린 이 승만의 통찰력은 한계를 보인다. 인의 장막에 휩싸여 여당의 부정부패를 척결하지 못하고, 부하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부정 선거에까지 연루되어 독재자로 낙인 찍힌 불운한 말년을 맞이한다.
그는 그래도 “나는 이럴 생각이 없었는데 내 부하놈들에게 속았다”, “고의적인 실수이다, 오해이다” 궁시렁궁시렁.. 요즘 정치인들처럼 입만 열면 거짓말로, 찌질한 변명과 험담으로 일관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 말 없이 “국민이 원하면 하야한다” 한 마디로 모든 책임을 지고 권좌에서 물러났다. 남들이 욕하건 말건 역사의 평가에 모든 걸 맡기고 마지막 순간까지 고매한 품위와 명예를 지킨 것이다.
솔까말 본인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근현대사나 정치 놀이(?)-_-에 발을 들여놓기 전부터도 이 승만에 대해서는 “독립 운동가 출신의 초대 대통령이다. 잘은 모르지만 그 사람은 아주 똑똑하고 고집 세고.. 훌륭한 분이긴 한데 욕심 부리다 좀 추하게 끝났지.. 그 나이 먹도록 그렇게까지 오래 권력 맛을 보고 싶어서 징징댔던 걸까? 그래도 나중에라도 정신이 들어서 스스로 물러난 덕에 더 험한 꼴은 안 봤다” 정도만 알고 있었고 그 정도만으도 그럭저럭 상당히 정확한 진술이라고 생각한다.
이 승만은 후대의 전· 현직 '장로 대통령'보다 신앙면에서도 앞섰고 인물의 그릇 크기와 프로필도 월등히 앞선 분이다. 심지어 미국의 초대 대통령조차도 사실은 크리스천이 아니고 그냥 이신론자일 뿐이라는 설이 지배적인데, 이 승만은 확실하게 구원 받은 크리스천이다. 최소한 "우리 가족은 종교가 제각기 다 다르지만 싸우지 않고 잘 지냅니다" 이러던 에큐메니컬 전직 대통령보다야 100배는 더 낫다! 그런데 세상적인 불신자도 아니고, 크리스천이 어떻게 이 승만을 그렇게까지 싫어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국 건국 초기에 살았던 법학자인 사이먼 그린리프 박사(Simon Greenleaf; 1783-1853)는 성경은 훼이크이고, 예수의 부활도 다 허구라고 여겼다. 그런데 자신의 법학 지식을 동원하여 문헌 조사를 해 보니 세상에 예수의 부활만치 정확하게 잘 기록된 사건도 없고 이 정도면 법적으로도 아무 하자가 없는 완벽한 증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결국 자신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것처럼 처음엔 멋도 모르고 이 승만 욕만 하다가 공부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어 그를 존경하게 되고, 그 사람의 스케일과 인품에 감명 받은 지식인이 적지 않다. 알고 나니 '까'에서 '빠'로 돌아선 것. 그의 업적은 비가시적이고 하다못해 박 정희의 경제 개발보다도 더욱 수준이 너무 높아서 그게 업적인지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 승만보다 훨씬 더 형편없는 통치자 밑에서 탄식하고 신음하기 전에(우린 이미 이걸 경험 중이다!), 위인과 영웅의 업적부터 바로 알아봤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