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증기 기관차 글에서 계속됨)
내연 기관은 연료를 연소시켜서 폭발한 연소 가스의 힘을 곧바로 동력으로 활용하는 기계이다. 외연 기관보다 더 만들기 어려우며, 외연 기관보다 훨씬 더 화력이 좋은 고품질 연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내연 기관은 외연 기관보다 효율이 더 좋고 더 큰 동력을 낼 수 있으며, 오토바이나 기계톱 같은 기계에도 들어갈 정도로 소형화까지 가능하다. 증기 기관 정도의 출력으로는 열차를 굴리고 배까지는 움직여도, 비행기를 띄우는 건 어림도 없다.
그러고 보니 내연 기관의 선구자들이 다 독일 엔지니어들이구나. 자동차계의 앨런 튜링, 폰 노이만 같은 사람들이다. 난 내연 기관 하니까 컴퓨터로 치면 프로그램 내장 방식이 생각난다. 원동기를 지닌 동력 기관을 무슨 튜링 기계처럼 추상적으로 모델화할 수는 있을까? ^^;;
오늘날의 디지털 컴퓨터에 fetch, decode, execute 같은 기본 동작이 존재하듯, 내연 기관 중에서 피스톤 왕복 운전식 엔진에는 흡입, 압축, 폭발, 배기 같은 동작이 그런 기본 개념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다. 2행정 엔진이 4행정 엔진보다 가볍고 간단하고 출력도 더 세지만, 부품의 수명이 짧고 연료와 함께 엔진 오일이 같이 연소되어 대기 오염도 더 심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오늘날은 극소수 소형 엔진이 아니면 전부 4행정 엔진만 쓰인다.
증기 기관도 피스톤 왕복 운동으로 바퀴를 굴리긴 하나, 내연 기관의 행정 사이클 같은 개념은 물론 존재하지 않는다. 내연 기관 중에는 피스톤 운동보다 효율이 더 좋은 로터리 엔진 같은 것도 개발되었으나, 아직까지 별로 실용화는 못 된 듯.
내연 기관은 그 특성상 연료 공급 방식을 자동화했으며(증기 기관차 시절에는 사람이 삽으로 석탄을 퍼다 아궁이로 직접..;; ), 오늘날의 자동차에서 당연시되고 있는 '시동 상태 유지'와 '변속'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엔진이 최저 회전수 이상으로 돌지 못하거나 갑자기 너무 큰 부하가 직접 걸리면 시동이 꺼져 버린다. 그래서 동력비를 조절하는 장치가 필요한데, 덩치가 작은 차량은 톱니바퀴를 쓰고, 그보다 훨씬 더 큰 동력비가 필요한 철도 차량이나 선박에서는 엔진 효율을 좀 희생하고라도 유압 변속기를 쓰거나 아예 엔진으로는 발전기만 돌린 후, 동력비 조절이 용이한 전기로 차량을 움직이기도 한다.
오늘날 소위 디젤 기관차라고 불리는 철도 차량은 실은 '디젤 전기 기관차'이다.
비행기라든가 제트 엔진을 탑재한 자동차는 역시 동력을 구동축에다 전달하는 게 아니라 압축 공기를 분출하면서 나아가니, 일반적인 자동차와 같은 변속이라는 개념은 필요하지 않다. 제트 엔진은 큰 힘을 낼 수 있는 대신, 4행정 엔진보다 연료 소모가 훨씬 더 많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
철도 차량의 동력의 만렙 완전체요 최후의 목적지는 단연 전기라 할 수 있다.
요즘이야 하도 환경 따지고 화석 연료의 고갈을 두려워하여 전기 자동차 내지 최소한 하이브리드 차량이 재조명을 받고 있지만, 20세기 초중반에도 전기 자동차라는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성능과 충전 시간 등에서 기름 자동차와는 도저히 경쟁이 안 되니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버로우를 타게 됐을 뿐이었다.
하지만, 배터리 충전이 필요한 자동차와는 달리, 철도 차량은 길만 따라 다니기 때문에 길을 따라 전차선을 설치함으로써 전기를 실시간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그러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
내연 기관의 선구자가 독일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전기 철도의 선구자도 독일이었다. 이름하여 지멘스.
전동차는 시동을 걸 필요가 없고 별도의 변속기도 필요하지 않다. 자동차에다 비유하자면 키를 꽂아서 ON 모드로만 옮기면 곧바로 주행이 가능하며 START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서울역-남영, 청량리-회기 같은 곳은 자동차로 치면 시동을 끈 후 디젤 엔진을 휘발유 엔진으로 교체하고서(혹은 그 역순) 시동을 다시 켜는 건데, 전동차는 그걸 아주 자연스럽게 OFF-ON을 해낸다. ^^;;
지하철 전동차는 겨울에 냉방기 소리가 전혀 나지 않을 때 가만히 지켜보면, 소리가 전혀 안 나다가 그 상태 그대로 주행을 시작한다. 조용하다. 엔진 공회전 나부랭이 같은 것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전동차의 동력 부품은 전동기(모터)라고 할 뿐, 엔진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전기 자동차는 내연 기관에서 필요하던 변속기, 엔진 오일 같은 여러 부품들이 필요 없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욱 경량화, 소형화가 가능하다.
물론 전동차도 자동차 엔진의 변속기처럼 전압과 전류 조절을 통해 동력비를 제어하는 부품이 있긴 하다. 처음에는 옴의 법칙 V=IR에 의거, 열을 엄청 많이 뿜던 저항 소자가 쓰이다가 나중에는 쵸퍼 방식이 등장하고, 지금은 반도체 소자를 이용한 VVVF 인버터가 이쪽 바닥을 평정했다. 마치 쿼츠 시계가 태엽 시계를 떡실신시켰듯이 말이다. 전동차 부품이나 시계 부품이나 역시 대세는 반도체인 듯.
VVVF는 다 좋은데 주파수가 바뀌는 과정에서 윙윙~~ 우우웅~ 환상적인 전자음이 난다는 게 특징이다. 물론 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요즘 VVVF 소자는 옛날 것에 비해서는 확실히 많이 조용해진 건 사실이나, 그 환상적인 소리가 철덕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도 사실이다. 다른 전동차들 중에서도 특히 서울 지하철 5호선과 6호선은 인간이 발명한 교통수단에서 어떻게 저런 아름다운 소리가 날 수 있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내가 훗날 이렇게까지 철덕이 될 줄 알았으면 학창 시절에 물리 공부 좀 더 열심히 해 놓는 건데. -_-;; 그러질 못해서 더 자세한 디테일을 서술하지는 못하겠다. 내가 기계나 전자 쪽 공돌이였다면 컴퓨터보다도 이 바닥으로 갔을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지금 본인의 현실은 취미와 직업이 독립된 형태로 가는 추세인데, 뭐 이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 ^^;;;;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