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한글 기계화 논평.

1. 나랏글의 장점
- 왼쪽이 자음, 오른쪽이 모음인 구조여서 양 손가락--양 손 아님--의 교대가 얼추 되는 게 아주 좋음 (천지인은 상하 구분)
- 모호성이 없고 구조가 직관적임. 동일 키의 3연타가 없는 것도 좋음
- 2003년부터 7년이 넘게 사용해 왔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아주 익숙함

2. 나랏글의 단점
- 12키가 모두 한글을 입력하는 데 쓰이기 때문에 문장 부호 하나만 입력하려 해도 모드를 바꿔야 함. 아주 불편한 점
- 자음과 모음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가획 키를 누르는 게 마치 Shift를 누르는 것처럼 번거롭게 느껴짐

3. 천지인의 장점
- 일부 나랏글로 복잡하게 가획을 해야 하는 자음이 적은 타수로 입력될 때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낌. 마치 세벌식에서 Shift를 눌러야 하는 받침 ㄷ· ㅌ 같은 걸 두벌식으로는 곧바로 입력하듯이.
- 10키만 사용하는 관계로, 한글 모드에서 *, # 키를 통해 문장 부호와 일부 기호를 곧바로 입력할 수 있어서 아주 편리함

4. 천지인의 단점
- 역시 천지인으로도 일부 된소리는 타수가 길며, 3연타가 필요하기까지 함.
- ㅝ 같은 복잡한 모음을 천지인 세 자만으로는 조합하기가 힘듦을 느낌
- 모호성이 존재해서 음절 연속 입력이 안 되는 게 굉장히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움

제각기 일장일단이 있지만, 본인은 나랏글과 천지인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위와 같은 장단점을 종합했을 때 나랏글을 더 선호한다.
다만, 기호 입력은 천지인이 부럽다.
그런데 나랏글에다가 천지인의 기호 입력이라는 장점만 따 오는 방법은 의외로 매우 간단하다.

가획과 쌍자음 키는 어차피 한글을 조합하는 중일 때만 의미를 가지며, 한글을 조합하고 있지 않을 때는 아무 기능도 하지 않는다. 이들 키는 다른 한글 기본 자모부터 먼저 누른 뒤에 누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글 조합 상태가 아닐 때 *나 #를 누르면 천지인처럼 . , 라든가 ~ ! ? 따위를 다중타로 입력하게 하면 된다. 쉽죠?

물론, 이 방식을 쓰면 한글을 조합 중일 때 곧바로 마침표를 찍지는 못한다.
그때는 마치 천지인에서 '국가'와 '구카'를 구분하듯이, 한글 조합을 강제 종료한 뒤에 * #을 눌러야 한다. 그래도 음절 구분한답시고 한 타를 누르는 건, 입력 모드를 아예 기호로 잠시 바꿨다 돌아오는 것보다야 오버헤드가 월등히 작으며 훨씬 덜 불편하다. 그리고 천지인처럼 아예 한글 음절 구분이 강제로 필요한 것보다도 훨씬 낫다.

이렇게 나랏글 입력 방식에다가 천지인의 기호 입력 기능만 부분적으로 덧붙여도 전화기 문자질 생활이 훨씬 더 편리해질 것 같다는 상상을 해 본다.
다만, 나랏글밖에 모르다가 천지인이라는 신문물을 접함으로써 본인이 휴대전화 한글 입력 방식에 대해서 뭔가 대조를 하고 비교 분석을 하는 안목이 약간이나마 생긴 건 사실이다. 긍정적인 효과임.

한동안 '중국의 한글 공정'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웠다. 본인은 명색이 세벌식 지지자이고 한글 입력기 개발자이다 보니, 본인에게도 현 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문의가 주변에서 적지 않게 들어왔었다.

그런데 본인은 그에 대해서 이렇다 할 입장이 없다. -_-;; 사실 내가 보기엔, 한글 공정이라는 말 자체가 옛날 광우병 사태만큼이나 과장되고 부풀려진 게 많았다. 중국이 뭔데 무슨 수로 무슨 권한으로 한국 당사자부터가 통제를 못 하고 있는 남의 나라 휴대전화 입력 방식을 좌지우지한단 말인가?

과거 타자기 시절에야 글쇠배열의 통일이 절실했다. 세벌식이냐 네벌식이냐에 따라 당장 기계를 하드웨어적으로 만드는 방식이 바뀌고 타자기 모양에 따라 글꼴이 바뀌고 후폭풍이 너무 컸다.
그러나 휴대전화 세상은 모든 게 프로그래밍하기 나름이고 유동적이다. 터치스크린은 근본적으로 3*4라는 배열 자체도 customize 가능하며 특정 scheme에 조금도 얽매일 필요가 없다. 또한 태생적으로 사람의 손으로 빨리 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수한 입력 방식과 조금 열등한 입력 방식의 성능 차이가 PC/타자기만치 크게 나지도 않으며 세벌식이 그렇게 큰 의미를 갖는 곳도 아니다. (아니라면 반론 요망)

과거에 세벌식, 네벌식, 다섯벌식 타자기가 공존하는 건 국가적으로 큰 혼란이었고 누구나 글자판 통일을 염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휴대전화에서 나랏글과 천지인이 공존하는 건 사람들이 크게 불편을 느끼지 않으며, 사람에 따라서는 오히려 국가가 나서서 강제 통합하려는 걸 반대하기도 한다.

마치 철도에서 경전철은 어차피 기존 표준궤 철도와 직통 운행이 불가능한 것처럼, 휴대전화의 한글 입력 방식은 타자기와 컴퓨터 같은 기종간 글자판 통일이라는 대명제와는 다소 어긋나는 면이 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은 12키 혹은 그보다 조금만 키 수를 늘린 15~18키(스마트폰은 화면 버튼 레이아웃 디자인이 자유로우므로) 환경용으로 음절 경계 모호성도 없고 도깨비불 현상도 없는 세벌식 입력 방식은 그 실용성을 떠나서라도 어떤 형태로든 상징적인 차원에서 하나 존재는 해야 한다. 그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야 할 것이고 좀더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염원으로는 아까 언급했듯이 천지인의 기호 입력 기능이 덧붙여진 나랏글 방식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앞으로 사람은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기계에다 문자를 입력하게 될 것이나... 과연 200년 전에 발명된 타자기의 형태를 그대로 답습한 PC 키보드보다 더 빠른 입력 장치는 과연 나올 수 있을까? 여타 작은 입력 방식이 컴퓨터에서 닷넷 바이너리나 자바 바이트코드라면, PC 키보드는 네이티브 기계어 코드와 같은 존재로 언제까지나 남을 것 같다. 다만 손가락을 휘게 만들지 않게 좀더 인체공학적 개선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
<날개셋> 한글 입력기 5.8과 <날개셋> 한글 입력기 3.22
간신히 공개합니다. 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10/11/22 07:49 2010/11/22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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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각형 2010/11/22 10:09 # M/D Reply Permalink

    동북공정 같이 역사를 바꾸고 그걸 세계에 퍼트리려는 노력도 아니고 자판 방식 바꾼다고 해봐야 자기들이 만드는 핸드폰이나 자국 내에서 판매되는 핸드폰에만 할 수 있는데 통일한들 어쩌겠습니까? 그들 국민중 일부도 한글을 사용하니 자기들도 표준안 제정 권리는 있는거지요. 한국과는 무관해야 하지만요. 이것 덕분에 한국내 표준 제정이 힘을 받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실 스마트폰 정도 되면 현존하는 방식을 다 선택할 수 있게 한다거나 사용자가 튜닝할 수 있게 할 수도 있을 터인데 어플 말고 OS상에서요. 실제로 어떤 폰들은 천지인과 나랏글을 선택할 수 있다고도 들었습니다.

    스마트폰에서의 세벌식은 이것 저것 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플 설치로 입력기를 바꾸는게 가능하다더군요. 다만 이 경우 세벌식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시키기가 힘들겠죠. ㄱ이면 ㄱ이지 받침에는 다른걸 써라니 무슨 소리냐는 식으로 말이죠.

    아주 혁신적이지 않은 바에야 키보드보다 더 빠른 입력 방식은 힘들겠네요. 편한 건 몰라도 말이죠. 다만 지금의 키보드를 튜닝해서 효율을 높이는 작업은 계속되겠죠. 인체공학 키보드 처럼요.

    1. 사무엘 2010/11/22 17:37 # M/D Permalink

      소위 '한글공정'의 허와 실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네요. 중국 내부에서 소수 민족이 쓰는 문자 중 하나로서 한글 입력 방식을 자기네들끼리만 표준화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휴대전화 입력 방식 통일에 대해서, 또 더 나아가 PC 한글 글쇠배열의 통일에 대한 얘기가 다시 불거지게 된 건 고무적인 모습이라 여겨집니다.

      스마트폰에서의 <날개셋> 같은 프로그램이라(한글 입력 방식 customization)... 저는 스마트폰 사용자는 아니지만 그런 것에 대해 나름 구상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프로그램은 어차피 PC에 최적화된 현 <날개셋>과는 상당히 다른 구조의 프로그램이 될 것이기 때문에, 어차피 제가 다룰 수 있는 영역 밖에 있을 것 같습니다. 가령, 비주얼 폼 디자이너에 이벤트, 스크립트까지 들어가야 할 듯. 그래도 제가 늘 강조하지만, 스마트폰에도 어떤 형태로든 세벌식이라는 개념 자체는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키보드: 네이티브 / 여타 작은 기기: 바이트코드... 꽤 적절한 비유 같지 않나요? ㅎㅎ
      <날개셋> 한글 입력기와 타자연습은 오늘 밤쯤 업그레이드될 예정입니다. 입력기는 개발 다 끝났고, 타자연습만 최종 문서화 작업 중입니다.

  2. 지한 2010/11/22 13:55 # M/D Reply Permalink

    게스트북 사라졌나? 모하구 지내! 형은 트위터 안해?

    1. 사무엘 2010/11/22 17:41 # M/D Permalink

      게스트북이 사라졌을 리가.. 우측 상단에 여전히 있단다. ㅋ
      나는 학교와 회사 잘 다니고 있단다.
      요즘 블로그에 글이 너무 많이 쌓여서 사사로운 잡담 올릴 공간이 없긴 한데... 트위터나 할까? ㄲㄲ

  3. 김재주 2010/11/23 03:48 # M/D Reply Permalink

    개인적으로 멀티터치가 지원되는 요즘 스마트폰들은 안마태식 세벌식 비슷한 개념을 도입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1. 사무엘 2010/11/23 12:07 # M/D Permalink

      일리가 있긴 합니다만, 기기 자체가 너무 작기 때문에(=애초에 세벌식 배열을 놓는 것부터가 어려울 정도로 버튼 수에 큰 제약), 멀티터치가 된다고 하더라도 빨리 치는 데 그렇게까지 큰 도움은 안 될 것 같네요.
      참고로 저는 긋는 방식도 별로 안 좋아합니다. 0차원(특정 지점만 누르기)의 범위를 벗어나는 동작은 주변에 흔들리는 곳에서 사람이 제대로 표현하기 힘들어서, 작은 기기의 결정적인 매력이라 할 수 있는 mobility가 떨어집니다.

  4. spartan 2010/11/24 21:18 # M/D Reply Permalink

    잘 읽었습니다 역시 재밌네요
    날개셋 새버전 잘쓸께요~

    1. 사무엘 2010/11/25 19:35 # M/D Permalink

      감사합니다. ^^
      음? 댓글에 답변을 달려고 다시 찾아오니까 다른 댓글을 대부분 지우셨네요.

    2. spartan 2010/11/28 19:36 # M/D Permalink

      좀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 역시나 그건 좀 아무래도 아니였다 싶어서 하하하;;

  5. 겨울하늘 2010/11/29 16:21 # M/D Reply Permalink

    예고하셨던 고견 잘 읽고 갑니다.^^

    1. 사무엘 2010/11/29 21:50 # M/D Permalink

      감사합니다.
      아마 올해 안으로 글자판과 관련된 글이 하나 더 올라올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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