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에 끝난 고속철 2단계 공사의 의의는 첫째 동대구-부산 신선의 개통, 그리고 기존 고속선 구간 사이의 중간역(김천구미와 오송)이다.
특히 이번 신규 개통은 20km에 가까운 부산 시내를 죄다 지하 터널로 통과한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서울 쪽은 KTX도 광명 역까지 거의 20km를 기존 경부선으로 천천히 달리는 반면, 부산에서는 곧바로 신세계가 펼쳐지게 됐다는 뜻이다.
과거 경부선 대구-부산 기존선상에는 KTX 정차역으로 밀양과 구포 역이 있었던 반면, 고속신선에는 경주와 울산 역이 개통했다. 2차 개통 후에도 '일부' KTX는 현행처럼 밀양과 구포를 지나는 열차가 유지된다.
※ 선로 용량 문제
이번 2차 개통을 계기로 KTX가 예전보다 더욱 증편되었는데, 문제는 KTX가 전국의 (거의) 모든 열차들과 합류하는 금천구청 역(구 시흥 역) 이북 구간은 선로 용량이 이미 극도의 포화 상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등장했다. 아예 금천구청 이북 구간을 다니지 않는 광명 시종착 KTX와 영등포 정차 및 수원 시종착 KTX.
광명은 처음에 시종착역으로 의도되었던 역이었다고 치지만 수원 시종착은 뜻밖이다. 과거 전동차가 시종착하던 시절에는 평면교차 때문에 악명 높았던 그 역에 KTX가 다니고 시종착까지 하게 될 줄이야. 영등포 역이 셔틀 전동차의 시종착역이 되었듯이 수원 역도 제한적이나마 시종착역의 지위를 얻었다.
사실, KTX가 영등포 역에 정차하는 것은 선로 용량의 확보에도 꽤 도움이 된다고 한다. 모든 열차들이 순차적으로 한 역에 정차하면 괜찮은데, 통과 열차가 존재하여 대피와 추월이 필요할 경우, 그 시간대의 앞뒤로 다른 열차들은 꼼짝없이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추월 예정인 후속 열차가 지연을 먹고 있다면, 대기하던 열차들까지 연좌제로 줄줄이 지연되어야만 하게 된다.
시흥 이북뿐만이 아니라 대전과 대구 일대에서도 아직은 KTX와 일반열차들이 기존선을 공유하기 때문에 잠재적인 병목 현상을 피할 수 없다.
특히 대구-동대구 사이는(하행 기준) 내가 열차를 타 본 경험상, KTX와 일반열차 가릴 것 없이 주말엔 열차가 신호 대기 때문에 정지 서행을 안 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새마을호야 KTX를 기다려 주느라 멈춰선다고 치는데, 우선순위가 최상위인 KTX는 도대체 왜 멈추냐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라도 대전과 대구의 고속철 시내 통과 구간이 빨리 완공돼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단순히 열차의 주행 속도만 더 빨라지는 게 아니라, KTX와 일반열차들 사이의 신호 대기와 정체· 서행이 없어짐으로써 정시성도 더욱 올라갈 것이다.
이로써 경부선 KTX는 이제 전구간 신선으로 달리는 열차, 혹은 대전-서울은 기존선으로 달리는 열차, 혹은 대구-부산을 기존선으로 달리는 열차 이렇게 세 계보가 존재하게 됐다. 영등포 역은 이제 일부 KTX를 취급하게 됐지만 여전히 고속신선 주행 KTX를 취급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 필요가 있다.
참고로 이번 2차 개통에서 호남선 노선이 바뀐 건 없다. 오히려 일부 열차가 오송 역에도 정차하다 보니 평균적으로 더 느려지기만 했을 것이다.
※ 경주 역과 울산 역
경부 고속철 2차 개통의 가장 직접적인 혜택을 입은 곳은 단연 경주와 울산이라 할 수 있다.
새마을호로 무려 4시간 40분이 걸리는 서울-경주가 단 2시간(optimal한 경우, 이론상 1시간 56분)대로 좁혀졌으니, 비록 운임이 매우 비싸고 역이 시내에서 꽤 멀다 해도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기존 경주 역에서 대구까지 가서 KTX로 환승을 하는 경우, 경주-대구 기존선 열차의 주행 속도가 워낙 느려서 시간 메리트를 상당수 까먹는다.)
경주의 경우 기존 동해남부선 경주 역은 그대로 있으면서 고속철 역은 신경주 역이다.
그 반면, 울산은 기존 동해남부선 울산 역은 태화강 역이라고 이름이 바뀌고, 고속철 역이 울산 역이 됐다.
왜 이렇게 서로 다른 조치가 취해졌냐 하면 잘 알다시피 두 역의 미래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동해남부선의 복선 전철화와 이설 공사가 모두 끝나면 기존 경주 역은 "없어진다." 그 일대 선로가 죄다 시 외곽으로 이설되기 때문이다. 없어질 역에다 '서라벌'이라고 이름을 바꾸는 식으로 투자를 또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때서야 신경주 역이 KTX뿐만이 아니라 동해남부선상의 일반열차까지 취급하는 통합 경주 역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그 타이밍은 호남 고속철의 개통이라든가, 대전· 대구 시내 구간 고속신선의 개통과 비슷한 시기일 것이다.
울산은 좀 사정이 다르다.
고속철은 경부 고속도로와 비슷한 선형으로, 울주군 언양읍 일대를 지나면서 울산 서쪽 변두리만을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기존 울산 역(태화강 역)은 바다와 가까운 동쪽 끝에 있고 사실은 울산 공항도 동해남부선 호계 역 근처이니까 동쪽이다. 둘은 서로 워낙 멀기 때문에 서로 따로 놀게 될 수밖에 없는 위치인 것이다. 실제로 KTX 개통 후에도 울산 공항은 예상한 것만치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 KTX의 개통으로 인해 근 20년 가까이 운행되어 온 서울-경주(포항, 울산, 부전 행) 새마을호는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동대구-부전 새마을호로 강등임. 이미 서울-부전 밤차 무궁화호도 행선지가 부산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제 옛 경주 역은 중앙선 테크를 타는 소수의 청량리, 강릉 행 열차를 제외하면 대구, 포항, 부전 행의 근거리 열차밖에 취급하지 않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레일은 새마을호와 KTX가 서로 경쟁하는 구도를 결코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까이에서 편하게 타고 싸고 좌석 캡 편하지만 느린 새마을호 vs 멀리서 타고 비싸고 좌석도 불편하지만 일단 타면 졸라 빠른 KTX
거의 1시간에 1대꼴로 신경주 역에서 서울, 울산, 부산 행 KTX가 정차해 주고 있는데 하루 네댓 번 있던 서울 행 새마을호를 살려 둘 하등의 이유가 없다.
경주· 울산과의 재미있는 대조군으로는 대구가 있다. 대구는 대구 역보다 반세기도 더 늦게 생긴 동대구 역이 대구 역보다 훨씬 더 커지고 KTX 정차역까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대구 역을 대구 역으로 개명한다거나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비록 대구 역이 철도 위상에서의 중요도는 동대구 역에게 밀렸지만 대구 역이 있는 위치가 대구 시내에서 훨씬 더 중심부이기 때문이다.
※ 김천구미 역과 오송 역
올 11월부터 김천구미 역이 개통함으로써, 6년째 중간 정차역이 없고 최장거리 구간을 유지하던 대구-대전 사이에 역이 하나 생겼다. 이건 그나마 이해를 하겠는데, 지금도 간격이 충분히 촘촘하다고 생각한 대전-천안아산 사이에도 역이 하나 더 생긴 건 좀..;; 두 역은 평균 거의 50분에 한 대꼴로 KTX가 정차하며, 기존 천안아산이나 광명만치 열차가 자주 서지는 않는다.
천안아산 역이 장항선 아산 역과의 환승역인 것처럼 오송 역은 충북선과의 환승역이다. 단, 천안아산처럼 두 노선의 이름이 서로 다른 건 아님. 천안아산 역이 경부선 천안 역과 가깝다면 오송 역은 경부선 조치원 역과 가깝다.
그런데, 천안아산 역은 기존 경부선보다 서쪽에 있는 반면, 오송 역은 경부선보다 동쪽에 있다. 이거 신기하지 않은가?
대구-대전 구간에서는 소백 산맥을 넘느라 꼬불꼬불한 기존 경부선이, 곧게 뻗은 고속선과 수 차례 교차하는 걸 볼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평지가 많은 대전-서울 구간에서는 고속선과 기존선과의 교차가 딱 두 번밖에 없다. 그 중 하나로, 경부선 소정리 역 근처에서 고속선이 기존선을 타넘어 서쪽으로 이동한다.
언젠가 KTX를 탈 일이 있으면 이 구간 아래로 지나가는 복선 철도를 눈여겨보기 바란다. 그게 경부선이다. 경부 고속철 시험선 구간으로 가장 먼저 건설된 고가인 풍세교가 이 일대이기도 하다(천안 동남구 풍세면). 옛날에 KBS <신화 창조의 비밀> 다큐멘터리에서 고속철 시험선 건설에 대해 다룬 걸 본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구나!
http://www.kbs.co.kr/1tv/sisa/sinwha/vod/1313469_1035.html (시험선 건설)
http://www.kbs.co.kr/1tv/sisa/sinwha/vod/1225464_1035.html (한국형 고속철 차량)
오송 역 일대는 고속철 공사가 가장 먼저 시작된 만큼, 인근에 궤도 및 차량 주박 기지가 있기도 하다.
한편, 같이 새로 생긴 김천구미 역은 비환승역이며 앞으로도 환승역이 되지 않을 역이다. 앞으로 신설 동해남부선과 승강장까지 공유하는(수도권 전철 금정 역처럼) 환승역이 될 '예정'인, 신경주 역과는 대조적이다.
구미보다는 김천으로부터 훨씬 더 가까이 있다. 그러나 김천 시내에 있는 것도 아니고 외곽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김천과 구미 모두로부터 접근하기 어려운 역이 돼 버렸다. 구미 시내에서 이 역으로 가려면 산을 빙 둘러서 꽤 고생해야 할 듯.
사실은 경부 고속선 자체가 구미를 경유하지 않는다. 김천에서 금오산을 뚫고 들어가 나오면 이내 칠곡군이고 대구 인근이지, 구미 시내에서 KTX는 너무나 먼 존재이다. 현실적으로는 김천보다는 각종 공단이 입주해 있는 구미 쪽에서 고속철 수요가 더 많을 텐데, 이제 대전-대구 구간을 기존선으로 다니는 KTX는 없어졌기 때문에 이게 애로사항으로 작용할 것 같다.
※ 기타 잡설
KTX 건설 전부터 정차역으로 확정된 서울, 대전, 동대구, 부산 같은 터줏대감 역은 승강장이 지상인 반면, 중간에 생긴 천안아산, 오송, 신경주, 울산 같은 역들은 응당 승강장이 고가이다. 시내 구간 신선이 건설되고 나면 터줏대감 역들의 승강장도 좀 바뀌려나?
거의 유일한 예외로 광명 역만 승강장이 지하이다. 광명 역 일대와 경부 고속선은 서해안 고속도로와 굉장히 자주 만나는 편인데, 이때 고속선은 전부 지하에 있다. 특히 서해안 고속도로와 외곽 순환 고속도로가 만나는 조남 JC 바로 아래로 KTX가 열심히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확하다. 신기하지 않은가?
광명 역을 출발한 하행 KTX는 산을 뚫고 만든 터널을 달리며 열심히 고도를 올린 뒤, 반월 저수지 인근에서 지상으로 나와 고가를 달리기 시작한다. 잠시 후면 수도권 전철 안산선 반월-상록수 구간 철길도 내려다볼 수 있다.
이렇듯 광명 역 일대에서는 고속선과 기존선과의 연결 지점이 어차피 지하에 있지만, 대전이나 대구는 연결 교차 지점이 지상에 있기 때문에 거기가 정확히 어떤 형태로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대전 북부는... 배선이 워낙 복잡해서 아무리 열차 안에서 밖을 눈여겨봐도 잘 모르겠다.;;
아.. KTX 하나만 갖고 강의를 줄줄 하고 싶다. 입이 근지러워 죽겠어 ㅋㅋㅋㅋ
요즘 KTX를 타면 6년 전에 비해 고속 주행 중 차량 내부의 진동이 더 커진 것 같다. 그때는 시속 300km로 달리면서도 컵에 담긴 물이 흔들리질 않는다고 선전을 했는데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