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에 대한 고찰

오늘날처럼 세상이 급변하고,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게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 역시 뭔가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던 적은 역사상 없었지 싶다. 그런데 성경에 따르면 그런 트렌드 자체도 그렇게 새삼스러운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모든 아테네 사람들과 거기 있던 나그네들은 새로운 어떤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외에는 자기들의 시간을 달리 쓰지 아니하였더라. (행 17:21)

성경 66권 각 책들이 모두 개성이 넘치는 책이긴 하지만, 본인은 사도행전이 문체와 표현이 굉장히 독특하다는 생각을 해 왔다. 성경은 사도행전에서, IT 시대가 도래하기 전부터 이미 얼리어답터라는 집단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맨날 뭔가 새로운 트렌드, 조금이라도 더 창의적인 개똥철학에 탐닉하는 사람들이었다.

새로운 것과 관련된 언어 현상을 먼저 좀 살펴보기로 하자.
new에 대응하는 한국어는 원래 ‘새롭다’라는 형용사인데, 신기하게도 ‘새’만 써도 관형사로서 ‘새롭다’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유명한 컴퓨터 개그가 있다.

“교수님, 새에 대해서 논문이라도 쓰시나 보죠?” (레 11:13-19 같은?)
“아니. 파일을 ‘새 이름으로’ 저장해야 한다는데, 이젠 더 생각나는 새 이름이 도저히 없어서 고민일세.”


영어권의 “Press any key...” / “any라는 키가 도대체 어디 있지?” 개그와 쌍벽을 이루는 한국식 컴퓨터 개그가 아닐 수 없다. 썰렁했다면 죄송. ㄲㄲㄲㄲㄲㄲㄲㄲㄲ

사실, GUI 환경에서는 각종 메시지 박스는 반드시 ‘확인’(OK) 버튼을 클릭해야 하고, 이 버튼은 Space나 엔터로만 인식이 되니까 Press any key 같은 메시지를 볼 일은 없어졌다. 명령창(command prompt; console) 환경에서나 볼 수 있다.
요즘 소프트웨어들은 새 이름 같은 악명 높은 오해(?)를 원천적으로 없애기 위해, ‘새’ 대신 ‘다른 이름으로 저장’이라는 표현을 써 주고 있다는 것도 알아 두자. ^^;;

하나 더, 본인은 한국어에서 ‘기존’이라는 표현이 오· 남용되고 있는 게 개인적으로 굉장히 거슬린다. ‘예전’, ‘종전’이라는 표현이 싹 다 저걸로 통합되는 경향이 있다. 기존이란, 현존(현재 존재)· 실존(실제로 존재)만큼이나 ‘이미 존재’라는 뜻일 뿐이다. “기존하는 아이템”처럼 활용도 가능하다. 그런데 “기존에 있는 것은 지우세요”는 도대체 뭐란 말이냐. 역전앞, 프린터기보다 더 말이 안 되는 표현이다.

‘기존’이라는 말을 제일 널리 퍼뜨리고, 또 잘못 퍼뜨리기도 한 곳이 IT계가 아닐까 하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맨날 업그레이드, 업데이트를 밥 먹듯이 하는 분야이다 보니 늘 예전 것과 비교를 하고 뭔가 새롭다는 걸 강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굳이 IT계가 아니어도 자동차계도 차 이름 앞에다 new를 붙이는 게 유행이었다. 뉴 엑셀, 뉴 소나타, 뉴 프린스, 뉴 그랜저... 그러고 보니 포니는 ‘뉴 포니’가 아니고 ‘포니 2’였는데, 나중엔 네이밍 방식이 바뀌었다.

하지만 new가 붙고 화려하게 세상에 드러난 그 이름들이 세월이 흐르고는 어떻게 되었을까? 분야별로 살펴보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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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에 출시된 MS-DOS 5.0의 미국 현지 CF의 한 장면이다. “It's new!!” 출처는 유튜브.
1985년에 스티브 발머가 온갖 오버액션으로 윈도우 1.0 광고 개그를 펼치던 동영상만큼이나 웃기다.

1. NE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윈도우 운영체제는 90%가 넘는 점유율로 PC 환경을 완전히 평정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5~20년 가까이 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윈도우 1.0부터 3.x까지의 16비트 시절에 쓰이던 자체 실행 파일의 이름은.. New Executable이었다! 32 내지 64비트 시대가 된 오늘날에 이 실행 파일 포맷이 새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금은 Portable Executable이라는 다른 포맷이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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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NDC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사진은 1984년에 도입되어 20년 남짓 국내에서 운행된 무궁화호 디젤 동차(기관차 견인형이 아니고)인데, 업계 종사자 내지 철도 동호인들이 부른 명칭은 NDC. 신형 디젤 동차(New Diesel Car)였다. 1984년에 철도청이 저런 CF를 찍던 당시에는 아주 새로운 차량이었으나,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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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폐차가 진행되어 지금 NDC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못미 NDC.
출처: 류 기윤(현직 코레일 기관사 겸 철도 동호인) 님의 블로그

3. NIV, NASV, NRSV, NKJV 등등..;;
드디어 KJV 크리스천들에게 아주 친숙한 이름들이 나왔다.
new라는 이름이 유난히도 자주 눈에 띄는 분야는 다름 아닌 성경 역본이다.
물론 본인 같은 사람은 그런 것들을 변개된 old lie일 뿐이라고 폄하하지만 말이다.
참고로 과거 통근열차(CDC)를 무궁화호로 개조하여 2008년부터 NDC의 후속 차량으로 뛰고 있는 열차는 RDC라고 불리고 있는데, KJV 신자들이 싫어하는 RV, RSV의 R과 같은 의미의 이니셜이다. Revised와 New는 여러 분야에서 통용되는 단어임이 틀림없다. ^^;;

이런 역사로부터 얻을 수 있는 큰 교훈이 있다.
지금 당장은 새롭다고, 참신하다고 new라고 상업적으로 막 떠벌려진 것들도.. 세월이 흐르면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게 태반이며, 결국 인간은 동일한 패턴의 쳇바퀴를 돌고 있을 뿐이라는 것. 성경의 그 유명한 말씀에 공감하게 된다.

이미 있던 것 즉 그것이 후에 있겠고 이미 행한 것을 후에 다시 행하리니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전혀 없도다. (전 1:9)

자칭 이종 예술가로 활동 중인 김 형태 씨의 칼럼을 읽어보면 글쓴이가 저런 면에서 상당한 통찰력이 있는 분임을 알 수 있다. 기타 다른 주제의 글에서 느껴지는 인본주의· 자유주의적인 견해가 성경의 사고방식에서 왔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옛날과 오늘날이라든가 옛 것과 새 것의 관계에 대해서는 영적으로 아주 잘 간파했다.

... 과거에 비해서 현재가 여러가지 의미로 더 좋아진 것은 분명하지만, 결국 문화, 예술, 철학은 오늘도 옛것을 계속 리메이크하면서 팔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누군가 저에게 반문했죠? 정말 이 시대보다 옛날이 더 좋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문화와 역사에 대해 조금만 지식이 있으면 당연한 소리입니다. 아무 분야나 하나 잡아서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물어보세요. 20년, 30년 전, 40년 전, 50년 전에 비해서 지금이 더 좋은 시절이냐고. 음악, 패션, 건축, 디자인, 가구, 자동차, 경제구조, 세계 평화, 문학, 미술, 레크리에이션, 철학, 스포츠 등등 알고 보면 좋은 시절은 다 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따끔하지만 유익한 고언, 충고, 조언이 많으니 칼럼을 진지하게 읽어보기 바란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길들 가운데 서서 보며 옛 행로들 곧 선한 길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그 길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들을 위한 안식을 얻으리라. ... (렘 6:16)

굳이 이 구절과 비슷한 사상이 담긴 사자성어를 찾자면 온고지신인데...
이 말은 당연한 말이지만 세상의 변화를 무조건 배척하고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수구꼴통이 돼라는 소리가 아니다. 그런 극단으로 치우치면, 문명의 이기를 다 거부하고 생체 이식 칩과 신용카드가 666이라는 논리로 빠지게 된다.

말씀이 의도하는 바는, 언뜻 보기에 구시대적이고 수구꼴통(?) 같지만 결국 인간 세상이 유지되는 데 필요한, 그 검증되고 안정화된 성경적인 길을 일단 존중하고 따라 걸으라는 뜻이다. 그런 것들이 괜히 아무 이유 없이 존재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 중에 진짜로 새로운 건 극히 드물다. 인생의 법칙은 불변이며, 결국은 하나 좋은 걸 만들었다면 이를 위해 다른 하나를 반드시 희생했다는 식으로 대가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를 잘 분별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상업적인 광고는 그런 이면의 그림자를 소비자에게 절대로 솔직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행간의 의미를 읽는 게 인생의 지혜이며,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능력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여기에 대해서도 분야별로 여러 case study를 제시할 수 있으나, 시간과 분량 관계상 거기까지는 생략하겠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인정하는 진짜 NEW란, 사람이 거듭나서 구원받은 후 바뀐 행적이고, 훗날 이 땅에 세워지는 새로운 왕국이며, 나중에 창조될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종교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로만 new가 아니라 저게 진짜로 객관적으로 new이다.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는 분이라면 역설적으로 성경이 제시하는 옛 길을 반드시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12/15 18:49 2010/12/1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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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푸른·가람 2010/12/15 20:08 # M/D Reply Permalink

    저는 역전앞 같은게 문제 없는 표현이라는 사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게 한국어 전체에 보편적인 언어 습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한자어만으로는 이미지가 바로 와닫지 않으니까 뒤에 우리말을 붙여서 사람들에게 어떤 뜻인지 쉽게 알게 한다고 해야할까요?

    역전앞이랑 비슷한 예가 옥상위, 낙숫물, 고목나무, 처갓집, n월달 같은 것들인데 이런 동의반복이 한국어에 굉장히 흔합니다. 저는 그걸 이게 단순히 같은 뜻이 반복되었다고 해서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나? 이거 자체가 외래어를 많이 받아들이면서 생겨났던 한국어의 하나의 규칙이었던게 아닌가? 그걸 억지로 죽이려 한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사무엘 2010/12/16 13:09 # M/D Permalink

      사실, 그런 말은 의미 중복일 뿐이지 그렇게까지 어법에 어긋난 표현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엄연히 우리말에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만드는 것이고 가능하면 쓰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마치 흑인 영어에서 Nobody didn't saw me 같은 군더더기가 생각납니다.

      저는 '금요일에 보자. 5월에 보자.'라고만 아주 깔끔하게 아무 불편 없이 말을 잘 하고 지냅니다. '금요일날, 5월달'이라고 할 필요가 전혀 없으니까요. 진짜로 역 앞 광장의 또 앞을 가리키지 않는 이상, '역전앞'이라고도 하지 말아야겠죠. 저는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 학교 다녀 보니까, 국문과 교수--그것도 문법 연구하시는--님도 그걸 제가 생각하는 것만치 그렇게 심각한 오류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시더군요. 오히려 님과 비슷한 대인배적 견해... ㄲㄲㄲㄲㄲ

      진~짜 FM대로라면 '박수치다'도 잘못됐죠. '박수' 자체가 손뼉을 친다는 뜻이기 때문에 '박수하다'라고 해야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저도 차마 '박수하다'라고 강요할 자신이 없겠더군요. 그래도 저의 결론은.. 가능한 한 군더더기 빼고, 같은 의미이면 가능한 한 짧고, 마치 컴파일러가 release 모드로 뽑아 준 코드를 실행하듯이 한국어를 쓰자는 것입니다. ^^

  2. 김재주 2010/12/16 00:32 # M/D Reply Permalink

    전 new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delete입니다 ㄲㄲ

    새 것도 언젠가는..

    1. 사무엘 2010/12/16 13:10 # M/D Permalink

      delete를 할 필요가 없는 언어가 널리 쓰이면 그런 고정관념도 차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겁니다. ^^;;;;

  3. 주의사신 2010/12/16 09:06 # M/D Reply Permalink

    1. Java I/O 시스템이 복잡하기로 유명한데요. 거기 보면 nio라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new I/O라는 것인데, new I/O 다음에 또다른 입출력 시스템이 나와서, Thinking in Java의 저자 Bruce Eckel은 old "new I/O"라고 책에 써 놓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2. Windows 7 오면서 없어진 것 중 하나가 "새 폴더"인것 같은데, 혹시 위에 그 개그를 생각해 볼 때 폴더 이름에 항상 새 이름이 등장하나 봅니다. 오리, 병아리, 닭, 꿩 등등등....

    그리고 해 보셨겠지만 xp에서 폴더를 왕창 만들다 보면, 그만 좀 만들어, 그래도 계속 만들 거야, 제발 그만 좀 만들라구, 부탁할게 같은 폴더 이름이 나왔었습니다.

    1. 사무엘 2010/12/16 13:11 # M/D Permalink

      이래서 new라는 형용사는 함부로 붙이면 나중에 더 새로운 게 나왔을 때 쓸 이름이 없어집니다. ^^
      새 폴더는 이스트소프트의 작품이죠. MS는 이미 있던 익살스러운 이스터 에그도 다 없앤 판이니까요.

    2. 삼각형 2010/12/20 22:51 # M/D Permalink

      XP 에서라기 보다는 그냥 알집의 기능이였을 뿐입니다. 개발자가 심심해서 장난을 좀 했나 봅니다. 빵집 에서는 새 폴더(n)이 나오고, 다른 프로그램들도 비슷하더군요.

      윈도우즈 XP에서는 새로 만들기, 폴더 라는 메뉴로 폴더를 만들어야 하죠.

      Win7에서는 탐색기 메뉴에서 '새 폴더'라는 버튼이 바로 있습니다. 물론 이전방식도 가능하고요.

  4. 삼각형 2010/12/16 10:33 # M/D Reply Permalink

    해 아래 새 것이 없다. 정말 공감합니다. 새 것 처럼 보여도 변형에 불가하죠.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도 원래 있던 물질을 변형 시킨 것이고, 과학도 없던 법칙을 만든게 아니라 발견했을 뿐이니까요.

    1. 사무엘 2010/12/16 13:11 # M/D Permalink

      인생에 대한 굉~장한 통찰이 있어야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성구입니다. 어쩌면 저도 제대로 이해 못 하고 그냥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면모가 더 큰 걸지도.

    2. 소범준 2011/08/25 10:25 # M/D Permalink

      그러고보니 사무엘님의 답글에 저도 십분 공감합니다.^^;

  5. 아라크넹 2010/12/16 11:52 # M/D Reply Permalink

    마이크로소프트의 레이몬드 첸(Raymond Chen) 블로그 이름이 The Old New Thing이죠.
    http://blogs.msdn.com/b/oldnewthing/

    1. 사무엘 2010/12/16 13:11 # M/D Permalink

      newbie들도 older한 놈, 덜 old한 놈 계급이 있군요. ㅋ

  6. 소범준 2011/08/25 10:39 # M/D Reply Permalink

    초짜(!?)라서 그런지 썩 와닿지도 않지만... 참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해주는 진리이네요.
    이 핸드폰 말고 5년 전부터 써온 핸드폰이 있었는데... 그; 시절에는 최신형이라고 하더군요.
    근데 계속 써보니깐 역시나 새것이 아니더군요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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