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낳은 위대한 나비 박사인 석 주명 박사 얘기를 인터넷으로 우연히 접했다. 1908년 말 평양 출생이니 공 병우 박사와 나이 및 고향이 같지는 않지만 아주 비슷하다.
이분은 일본의 학자들이 잘못 분류해 놓은 한국의 나비 분류를 다 바로잡았고, 나비 연구에 관한 한은 세계구급으로 인정받은 걸로 유명하다. 나비에 대해서 창세기 2:19와 비슷한 일을 했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75만여 마리나 되는 나비를 채집하여 분류하고 연구한 건, 전국을 돌아다니며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 정호를 뺨치는 근성이 아닌가 싶다. 방학 때 어린 학생들에게 나비 채집 숙제를 내는 관행도 이분이 만든 거라고 한다.
실제로 그는 공 병우 박사 같은 근성이 있어서 시간을 굉장히 아끼고 어디 자투리 시간, 이동 시간을 아까워했다. 하루종일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거기서 모든 일과를 해결했다. 그러나 무슨 희귀종 나비가 어디에 있다고 하면 산간벽지를 막론하고 찾아가서 채집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가정 생활조차 원만하지 못할 지경이어서, 결혼한 지 몇 년 못 가 이혼하고 만다.
이 역시 공 박사와 비슷한 점이다. 공 박사도 천재 외골수 타입인지라 그렇게 가정적이지는 못한 사람이었다. 온통 타자기 생각밖에 안 하고 지내던 시절엔 좀 과장 보태면 가정 파탄 상태였다. 그나마 의사인 덕분에 돈은 굉장히 많이 벌었으니 가정이 유지되었지만.. 유지만 되면 뭘 하나? 세벌식은 내가 알기로 공 박사 유족도 별 관심 없어하고 안 쓰는 글자판이다. -_-;;
공 병우 박사도 6· 25 때 북한군에게 붙잡혀서 고초를 겪기도 했다만, 이 전쟁은 석 주명 박사의 인생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말았다.
서울 시내가 폭격을 받는 바람에, 20년간 수집해 놨던 나비 표본을 날렸다! 나 같아서도 그럼 정말 죽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1950년 10월, 길거리를 다니던 중에 북한군으로 오인받아 총격을 받고 50이 채 안 된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죽으면서도 “이놈들아, 나는 나비밖에 모르는 사람이야!”라고 절규했다고 전해진다. 정말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석 박사와 비슷한 인물로는 우 장춘 박사도 생각나고, 또 한글학자 정 태진 선생이 떠오른다. 영어 잘 한 덕분에 미군정 때 얼마든지 교수, 장관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었는데 끝끝내 조선어 학회로 돌아와서 큰사전 편찬에만 매진한 분이다. 그는 1952년, 전쟁 중에 식량 구하러 트럭에 얻어 타고 가던 도중에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고 보니 석 박사도 개인적으로는 언어학 기질이 있어서 제주도 방언을 연구하고 에스페란토 교재를 집필하기도 했다고 한다.
나도 “나는 철도밖에 모르는 사람이야!”라고 후회 없이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