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송 차량 이야기 외

지하철을 타면서 이따금씩 '회송 행(?) 열차'라고 하여 불이 꺼진 채 승객을 태우지 않고 휙 지나가는 열차를 보는 경우가 있다. 영어로는 forwarding이라고 쓰는 이 단어는 반송, 환송과 거의 같은 뜻이며, '차량 기지로 되돌아가는' 정도의 의미가 된다. 회송 사유로는 그 날 운행 스케줄을 모두 마쳐서, 혹은 고장이 나서, 아니면 굳이 고장이 안 났더라도 정기적인 점검을 받기 위해 등 몇 가지가 존재한다.

'회송'은 프로그래밍 언어로 치면 일종의 reserved word와 같은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 명칭(identifier)으로 쓰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신형 전동차를 들여 와서 정규 노선대로 테스트를 할 때는 전동차가 아예 '시운전'이라는 표시를 하고 다니기도 했던 것 같다. 물론 승강장의 전광판에는 여전히 '회송 행'. 이런 광경을 승객이 볼 일은 대단히 드물기는 하다.

지금이야 분당선 열차들이 죽전 아니면 보정 행으로 나뉘어 다니지만, 죽전 역이 개통하고도 한동안은 열차가 오리 아니면 보정 행으로 나뉘어 다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죽전 역 이용객들은, 보정에서 출발한 멀쩡한 빈 전동차가 '회송'이라는 명목으로 죽전 역을 생까고(?) 오리 역 쪽으로 가는 걸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이 때문에 민원이 빗발치자 2009년부터 오리 행 열차들은 모두 죽전으로 행선지가 연장되었다.

아주 짤막한 광역전철 구간만 쓱 다니고는 운행을 마치는 이상한 열차가 있다. 오이도-안산이라든가 대화-삼송도 있고, 심지어 용산-구로. 특히 용산-구로는 급행 선로를 다니면서 전혀 급행이 아니기 때문에, '구로 급행'이 아닌 '구라 급행'이라고도 불린다. ㅋㅋㅋ

얘네들은 정비를 목적으로 그 시간대에 이 기지에서 저 기지로 이동하는 것만이 목적인 차량이다. 이것 자체도 정규 운행 스케줄이다. 그냥 회송으로 때려박아도 이상할 게 없지만, 그 짧은 구간만이라도 승객을 수송하는 게 나을 테니까 배려 차원에서 그렇게 운행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열차가 걸리더라도 운행 구간이 짧다고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는 마시길.
청량리까지 가야 하는데 하필 동묘앞까지만 가는 열차가 왔을 때의 허탈감에 대해서도 본인 역시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

회송 내지 out of service 차량이라는 개념은 열차뿐만이 아니라 시내버스, 그리고 심지어 택시에도 존재한다.
택시는 승차 거부가 사회적으로 많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긴 하나, 승차 거부가 가능한 몇 가지 정당한 사유가 규정되어 있다. 병자 및 만취자의 단독 탑승, 신변이 심하게 불결한 자처럼 여느 운송 약관에서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사항도 있거니와, 택시에만 고유하게 적용되는 사항도 존재한다. “경기도 택시는 이런 여건하에서는 서울 행 승객을 거부할 수 있다” 같은 것.

그리고 또 뭐가 있냐 하면, 차고로 돌아가는 시간대에 차고와 다른 방향으로 가는 목적지를 요구하는 승객의 승차 거부가 가능하다.

자유롭게 운행 가능한 개인 택시 말고, 회사 소속 택시는 영업을 마치고 운행 교대 및 차량 정비를 위해 차고로 돌아가는 시간대가 정해져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새벽 몇 시부터 몇 시 사이이다. 이때 택시는 애초에 '빈 차'가 아니라 '회송' 비슷한 상태로 status를 표시해야 한다. 승객을 모두 생까고 차고로 돌아갈 수도 있고, 차고와 방향이 비슷한 승객은 잠깐 태우고 갈 수도 있다. 이것은 기사 재량이다. 마치 오이도-안산, 용산-구로 열차와 비슷한 맥락인 것이다.

승차 거부를 근절하려면, 승객부터가, 창문으로 행선지를 먼저 말하고 '허락'을 받고 택시를 타는 노예 근성을 버리고, 일단 탑승부터 하고 행선지를 말해야 된다고 그러더라.
물론 단거리 승객은 애초에 장시간 대기 중인 택시를 피하고, 돌아다니는 빈 택시를 세워서 타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심야에는 할증되는 것도 있고 할인되는 것도 있다. 전기라든가 각종 하드웨어적인 인프라 시설을 이용하는 건 대체로 심야에 할인되지만, 교통수단처럼 인간의 서비스가 필요한 건 응당 할증이다. 택시도 그렇고 고속버스도 그렇고.

덧붙이자면, 밤에 여자 혼자 택시를 탈 때는 카드 결제가 되는 택시를 타서 탑승 순간에 애초에 카드를 찍는 게 제일 안전하다고 한다. 자신의 탑승 기록이 카드 회사에 기록으로 고스란히 남으니까 말이다.
커플이 택시를 탔는데 기사 왈, “차에 좀 문제가 생겨서요. 남자분은 차 좀 밀어 주시겠어요?” 했다. 남자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는 전속력으로 떠나 버리고, 그 후 여친 되는 사람은 변사체로 발견...;; 버스 괴담만큼이나 이런 택시 괴담도 전해진다. -_-;;;

이상, 회송 얘기 끗. 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1/02/22 08:37 2011/02/22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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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기윤 2011/02/22 13:20 # M/D Reply Permalink

    처음에 천안역에서 들어오는 열차에 "회송" 이라고 써있어서, "회송역이 어디야..." 라고 삽질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ㄱ-.. 물론 다음 순간에는 "용산 급행" 으로 글자가 바뀌었음 (..)

  2. 주의사신 2011/02/22 15:32 # M/D Reply Permalink

    1. "뭐야, 저 열차 불은 다 꺼 놓고는... 무섭게 생겼어" 했던 기억이 납니다.

    2. 호스팅 서비스가 문을 닫아서 블로그 또 이전했습니다. 주소는 이름 누르시면 나옵니다. 그 덕택에 글 몇 개는 다시 적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역시 백업은 중요합니다...ㅜㅜ

  3. 사무엘 2011/02/23 09:51 # M/D Reply Permalink

    김기윤: '회송'은 좀 역명처럼 들리는 단어이긴 하죠. ㅎㅎ

    주의사신: 멈춰서 선 에스컬레이터 위로 걸어 올라가다 보면, 다른 일반 계단을 오를 때와는 달리 계단이 와르르 밑으로 미끄러져내릴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요?
    늘 움직이던 게 안 움직이니까 불안하지요. 전동차도 맨날 영업을 하던 놈만 보다가 안 그런 걸 보면, 그런 맥락의 어색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네이버 블로그로 이사 가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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