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노선하고, 그 노선을 상징하는 전동차는 서로 일대일관계가 딱히 성립하라는 법이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 관계를 찾는 게 어렵지 않다. 서울 지하철을 예로 들어 보자.
1호선 하면 떠오르는 터줏대감 차량은 누가 뭐래도 히타치 사의 저항 전동차이다. 바로 이것! (장소: 철도 박물관)
초창기에 도입된 저항 방식 전동차라고 하여 철덕들 사이에서는 ‘초저항’이라고 불린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지하철의 역사를 간직한 차량이 아닐 수 없다.
운전석의 중앙에 저렇게 문이 달린 게 당시 일본의 유행이었다고 한다. 물론 일본은 지하철이 죄다 협궤인 관계로, 저런 커다란 전동차는 만들어서 수출만 했을 뿐 본토에서 굴리지는 않았다.
1974년부터 운행을 시작한 그 오리지널 전동차는 이미 2000년대를 전후해서 모두 퇴역했다. 하지만 차량과 편성수의 증결로 인해 동일한 스펙으로 나중에 도입된 전동차는 2000년대 중· 후반까지 간간이 명맥을 유지했다.
철도청(현 코레일) 소속 차량은 파란색, 서울 지하철 공사(현 서울 메트로) 소속 차량은 빨간색 도색이었다는 건 상식.
2호선은 유일한 순환선인 데다, 승강장에 가장 늦게까지 구닥다리 플랩식 전광판이 남아있었고 차량도 2호선에서밖에 볼 수 없는 레이템이었다. 게다가 외곽이나 강변이 아니면서 지상 고가 구간이 간간이 있다는 점도 2호선을 더욱 특색 있게 한다.
2호선에서만 볼 수 있던 터줏대감 차량은 역시 MELCO 쵸퍼 전동차이다. 사실은 2005년부터 도입된 신형 전동차도 한동안 유니크 아이템이긴 했다.
3호선 하면 떠오르는 건 단연 배불뚝이 GEC 쵸퍼 전동차. 객실 내의 천장에 모니터가 달려 있던 유일한 차량이었다. 지금처럼 서울 메트로 자체 방송이 나간 게 아니라 새마을호처럼 코모넷이라는 외주 업체가 방송 컨텐츠를 따로 공급했다.
원래 이 전동차는, 3호선과 같이 동시 건설 중이던 4호선에도 투입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4호선은 과천선과 직결되고 GEC 쵸퍼 전동차는 교직 겸용이 아니었던 관계로 얘는 2호선에 일부 대체 투입되었다.
그래서 본인의 기억 속엔, 서울 지하철들 중 유일하게 4호선만 차량의 개성이 가장 희미하다. 다른 호선들은 개통 초기에 어떻게 생긴 전동차가 다녔는지 본인이 분명히 아는 반면, 4호선은 잘 모르겠다.
현재는 100% VVVF인 건 확실하고, 그냥 1호선에서 볼 수 있는 코레일/서울 메트로 VVVF 차량의 subset이 다니는 듯. 단, 1호선엔 없는 애드립도 있는데, 서울 메트로가 굴리는 차량 중 대우 중공업 제조 차량은 7호선 1차 도입분 차량과 동일한 시끄러운 GEC 알스톰 구동음이 난다는 게 특색이다. 1호선에는 그런 차량이 없다.
다음으로 세월이 흘러 2기 지하철 시대가 열린다.
5~8호선 전동차는 차량 프레임은 표준화 내지 단일화가 되어서 다 똑같다. 그래서 1~4호선과는 달리 5~8호선은 이례적으로 외형이 천편일률적이다. 애드립을 찾자면 전면부의 색깔띠의 모습이 5호선만 6~8호선과는 차이가 있으며, 통유리가 7, 8호선의 2차 도입분 차량부터 도입되었다는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또, 6호선 전동차만 객실 내부에 쇠기둥이 있기도 하고.
(6~8호선은 전면부의 두 겹짜리 색깔띠가 아래로 삐치지만, 5호선만 한 줄이고 앞에 '서울도시철도'라는 문구까지..)
물론, 외형은 비슷해도 under the hood는 여전히 제각각인지라 전동차 구동음은 노선별로 화려하기 그지없다. 본인은 ‘VVVF의 향연’이라는 표현을 쓰고자 한다.
5~8호선만이 2011년 현재까지 전동차의 순혈주의(?)가 가장 잘 지켜지고 있다. 하지만 이 질서도 7호선 연장으로 인한 3차 도입분 전동차가 들어오면 다소 흔들리게 될지 모르겠다.
끝으로 9호선 전동차는 전국의 다른 전철 노선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외형을 하고 있다. 동글이를 좋아하는 요즘 추세에 걸맞지 않게 외형이 좀 각진 느낌을 준다. 그리고 헤드라이트는 아예 위로 올라갔다.
철도 차량은 조향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자동차와 같은 주황색 깜빡이(방향 표시등)는 전혀 의미가 없으며,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진과 후진을 완전히 동일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자동차로 치면 헤드라이트 겸 후진 경고등(white)이, 브레이크 경고등(red)과 나란히 놓이게 된다.
그런데 9호선 전동차는 이 둘이 나란히 놓인 게 아니라 완전히 따로 놓였다는 게 인상적이다.
다만 9호선 전동차는 외형은 독특해도 under the hood는 공항 철도나 여타 지방 지하철과 동일하여, 구동음은 음높이만 다를 뿐 다들 비슷해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전동차들 중, 도철의 5~8호선 전동차가 제일 무난하게 생긴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