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에는 동네마다 컴퓨터 학원이 있었고, 꼬꼬마가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겠다고 하면 으레 GWBASIC부터 시작하곤 했다. 베이직은 16비트 MS-DOS뿐만 아니라 각종 가정용 8비트 컴퓨터에도 특유의 인터프리터 환경이 내장되어 있기도 해서 접하기가 한결 쉬웠다.
그때와는 달리 오늘날의 컴퓨터 교육은 이미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들을 활용만 하는 실무에만 치우친 편이다.
지금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처음부터 공부하고 싶다면 무엇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그 사람이 무슨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컴퓨터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목적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이 글은 나의 지극히 좁은 편견만을 반영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프로그래머마다 생각이나 견해가 다를 수 있다.
1. 비전문가/비전공자로서 그냥 최소한의 시간 투자로 개인적인 컴퓨터 활용도만 높이고 싶다면(고급 계산기 + 기초 알고리즘 실습 + 파일 자동 조작 + 매크로/자동화 도구 등)
개인적으로 파이썬을 추천한다. 복잡한 자료형을 다루기가 쉬워서 여타 언어들에 비해 짧은 코드만으로 복잡한 일을 한번에 끝낼 수 있다. 방대한 크기의 파일을 읽어서 내가 원하는 처리를 한 뒤 출력을 뱉어내는 수십 줄 남짓한 프로그램만 짤 줄 알아도 인생이 굉장히 편해질 수 있다.
좀 수학 덕후 기질이 있다면, 함수형 프로그래밍 언어를 건드려 봐도 될 듯.
2. 1보다는 좀 더 나아가서 가성비가 뛰어난 개발 환경에서 최소한의 GUI까지라도 만들어 보고 싶으면
Windows 플랫폼 한정으로 C#급 언어가 가장 좋겠다.
3. 웹브라우저에서 어지간한 애니메이션이나 프레젠테이션을 다 띄우고, 글이나 그림을 계산 결과로서 출력하고 싶으면
HTML + 자바스크립트.
요즘은 HTML이 단순히 화면에 뿌려지는 글과 그림, 하이퍼텍스트 문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다.
문서에다 서식을 주는 건 이제 CSS라는 방대한 별도의 규격으로 독립해 나가고, HTML은 문서 반 코드 반이다. 실시간으로 내용이 업데이트되고 화면 끝까지 스크롤됐을 때 추가로 컨텐츠를 로딩하고.. 사용자의 조작에 반응하여 그림을 뿌려 주는 등, 예전에는 ActiveX나 하다못해 플래시라도 써야 했을 컨텐츠들이 지금은 저것만으로 다 된다.
웹브라우저가 거의 플랫폼 독립적인 프로그램 구동 플랫폼처럼 바뀌었으니, 이를 활용할 줄 알면 역시 컴퓨터 활용 능력이 크게 향상될 수 있다. 웹 프로그램은 다른 언어나 런타임, IDE 같은 걸 설치할 필요조차 없이, 그냥 메모장에서 코딩 후 웹브라우저에서 곧바로 돌려보면 된다.
4. 맥 OS용 응용 프로그램이나 아이폰 앱을 개발하고 싶다면
Objective C + xcode + COCOA API 등등으로 고고씽이다. 일단 맥북을 장만해야 할 것이고 Windows와는 너무 이질적인 개발 환경 때문에 처음에 고생 많이 할 것이다.
5.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용 앱을 개발하고 싶다면
자바 + 이클립스 IDE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Java는 요즘 스마트폰 앱 개발용 언어로 입지가 확 되살아난 듯하다. 이게 완전한 웹용 언어도 아니고(자바스크립트는 자바와 전혀 다른 언어임), 자바 애플릿이 플래시/ActiveX를 완전히 대체하는 RIA (rich internet application) 프레임워크로 자리잡은 것도 아니고, 로컬에서는 느리고 성능이 안 좋다 보니 전통적인 기계어 프로그램들에 밀려서.. 예전까지는 위상이 좀 어정쩡했기 때문이다. 로컬에서는 일부 크로스플랫폼 소프트웨어의 GUI(프런트 엔드)를 돌릴 때나 좀 쓰이곤 했다.
6. 끝으로, PC + Windows 환경에서 네이티브 코드 + standalone으로 실행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싶다면
아래아한글이나 <날개셋> 한글 입력기나 어지간한 온라인 게임과 같은 급의 기계어 실행 파일을 만들고 싶다면..
역시나 재래식 Visual C++이나 최소한 델파이 같은 툴로 가야 한다.
개발 환경, 언어 문법과 기본 라이브러리, Windows API, 그 뒤 개발 분야에 따라 추가적인 라이브러리 공부까지 산 넘어 산이다.
오늘날 프로그램 개발 환경이 결국 로컬 + 웹 + 앱이라는 세 양상으로 구분된다고 예전에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것과도 관계가 있다.
프로그래밍, 더 나아가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런 아이템들을 참고하면 되겠다.
그런데 정작 이런 글을 쓴 본인은 6만 빼고 나머지 분야는 여전히 너무 모른다는 게 함정..ㅎㅎ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