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학 전공자 내지 IT 분야 종사자에게는 상식으로 통용되는 당연한 개념이다만..
오늘날 범용(generic-purpose)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뉜다.
1. 로컬
흔히들 PC로 대표되는 컴퓨터에서 stand-alone으로 동작하는 전통적인 프로그램이다. Windows야 그렇다 치더라도 오피스, 비주얼 스튜디오 같은 업무용 프로그램은 아직 로컬 프로그램의 아성을 무너뜨릴 영역이 없다.
가장 역사가 길고,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동작하며, 특정 컴퓨터 아키텍처(기계어)와 운영체제의 실행 파일 포맷에 종속적이다. 그래서 이쪽 개발 환경은 전통적으로 C/C++ 같은 저수준 최적화 언어가 강세이다.
물론 클라이언트가 아닌 서버 프로그램은 성격이 약간 다르긴 하나, 서버 프로그램 자체는 역시 서버라는 로컬 컴퓨터 자신의 자원만을 이용하여 동작한다. 여객 운송과 화물 수송의 차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그리고 사실은, 다음에 설명할 2.웹 프로그램을 돌려 주는 기반도, 클라이언트든 서버든 1.로컬 프로그램들이 다 마련해 주고 있다. 그러니 로컬 프로그램은 앞으로도 없어질 수는 없다. 단지 전체 소프트웨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 뿐이다.
옛날에는 불특정 개인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상업용 제품은 패키지 형태로 발매되곤 했지만, 오늘날은 인터넷의 발달과 극심한 불법 복제로 인해 이런 전통적인 형태의 배포의 비중이 굉장히 줄어들었다. 오늘날 국산 패키지 소프트웨어는 아래아한글과 V3 말고 있나? -_-;; 또한 보안 위협으로 인해 이런 프로그램 역시 한번 설치하고 끝이 아니라 끊임없는 보안 패치와 업데이트의 필요성이 커져 있기도 하다.
2. 웹
개인용 컴퓨터의 성능이 굉장히 향상되고 그에 따라 웹 표준이 발달하면서 웹브라우저, 정확히 말해 WWW는 단순히 그림과 하이퍼링크가 동원된 문서라기보다는 거의 프로그래밍 플랫폼처럼 오래 전부터 바뀌었다.
웹 프로그래밍의 최대 매력은 로컬을 월등히 능가하는 범용성과 기계 독립성, 생산성이다. 브라우저에서 사이트 접속만 하면 바로 실행..;; 마치 게임처럼, 클라이언트와 서버, 코딩과 디자인 등을 두루 아우르는 종합 예술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령, 옛날에는 GWBASIC이나 LOGO로 어린 학생들에게 그래픽 프로그래밍 교육을 시켰다면, 지금은 그냥 HTML5만 써도 될 것이다.
물론, 로컬 개발에 비해서는 혼자 독립적인 작품을 만든다는 느낌이 좀 덜 들며-_-, 기술이 아직까지 안정화해있지 않은 면모가 있고, 로컬 컴퓨터 자체를 세밀하게 제어할 수 없으며 성능이 떨어진다는 한계도 있다. 가령, 오피스 제품군이 웹 애플리케이션으로 완전히 대체될 날은 과연 글쎄?
그러나 앞으로 웹 프로그래밍의 비중은 절대 무시 못 할 것이고 수요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3. 앱
스마트폰에서 동작하는 '로컬'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성격이 역시 1과는 사뭇 다르다.
스마트폰 자체는 PC보다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로컬에서 모든 처리를 마친다기보다는 서버에다 input을 보내서 받은 output을 보여주는 형태의 앱이 많다. 또한 스마트폰은 화면이 작고 PC 같은 빠른 문자 입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PC와는 다른 독자적인 GUI가 필요하다. 터치스크린은 마우스와 완전히 동일한 포인팅 UI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hovering이란 게 없다) 다만, PC에는 없는 기울임, 흔들림, 방향, 현재 위치 같은 특수한 입력을 받아들일 수 있다.
스마트폰은 PC만치 사용자가 컴퓨터 내부를 완전히 손쉽게 제어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그래서 PC용 프로그램보다는 더 엄격한 과금 체계를 갖추고 프로그램을 배포하여 수익을 낼 수 있다.
스마트폰 앱은 역사가 짧기 때문에 PC 같은 지저분한 호환성 잔재 같은 게 덜하고, 일찍부터 자바든 C#이든 객체지향 언어와 가상 기계 바이트코드 기반의 프로그래밍 환경이 잘 구축돼 있다. 깔끔한 최신 프로그래밍 인프라가 기본으로 제공된다는 뜻이다.
오늘날 스마트폰 CPU는 ARM 아키텍처밖에 없지만, 그래도 커널 말고 다른 응용 프로그램들은 네이티브 코드가 아니다. 그런 .NET이나 자바 같은 가상 기계 자체가, 1~3(로컬, 웹, 앱) 사이의 이질감을 낮추고자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아울러, CPU의 성능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LCD 디스플레이 소자가 보편화하고 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스마트폰 같은 물건도 대중화될 수 있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컴퓨터는 곧 메인프레임-단말기 모델이었다.
컴퓨터라는 게 무진장 비싼 물건이고 자원이 귀하다 보니, 모든 처리는 중앙 컴퓨터에다 맡기고 각 사용자는 단말기로 서버에 접속해서 명령 프롬프트에서 서버의 기능을 사용하곤 했다. 그때는 컴퓨터는 대학, 연구소, 정부 기관, 군대의 전유물이었고, 개인용 컴퓨터라는 개념을 감히 떠올리기조차 쉽지 않았었다. (알파넷이 미국이 아닌 소련에서 발명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게 오늘날의 인터넷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_-)
그러다가 20세기 말에는 PC가 대세가 되었다. 개인용 컴퓨터 하나만으로 어지간한 일은 다 할 수 있게 되었다. 비유하자면, 만원버스에 시달리면서 출퇴근하다가 번듯한 자가용이 생긴 셈.
PC의 사고방식으로는 소위 PC 통신은 어쩌다 한 번씩만 다른 컴퓨터에 접속하는 특별한 작업이며, 웹브라우저 역시 오피스 패키지처럼 별도로 구입해서 사용하는 특수한 프로그램일 뿐이다.
그 후 오늘날 대세라고 회자되고 있는 건 일명 클라우드 컴퓨팅이다. 개인용 컴퓨터가 무진장 작아지고 통신 인프라가 발달한 덕분에, 예전처럼 부족한 자원을 공유하려고 컴퓨터들을 연결하는 게 아니라 진짜 유비쿼터스 세상이 돼서 컴퓨터들을 연결한다. PC 통신 시절에만 해도 하이텔 단말기가 있었는데 오늘날의 스마트폰에 비하면 얼마나 격세지감인가!
전세계 컴퓨터가 다 인터넷에 연결되고 클라이언트와 서버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궁극적으로는 (거의) 모든 작업이 웹 프로그램만으로 해결되고 모든 자료가 웹에 저장되는 세상이 온다. 예전에는 PC끼리 자료 전송을 위해서 플로피 디스켓이나 USB 메모리를 썼는데, 이제는 사용자의 로컬 컴퓨터나 스마트폰 그 자체가 플로피 디스켓이나 USB 메모리와 마찬가지가 된다는 뜻.
이걸 역시 자동차에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사람이 직접 자가운전을 하니까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도로가 막히고 여러 문제가 생기다 보니, 전세계 도로가 한데 통제되고 지능형 임대 자가용이나 궤도 교통수단이 생겨서 모든 사람들이 그걸 간단히 이용하는 형태가 된 셈이다.
물론 이게 온전히 실현되려면 시스템적으로나, 보안 쪽으로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