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행기 외형과 동력의 간략한 변천 내력

(1) 옛날에 처음으로 등장한 동력 비행기는 날개가 두 겹으로 달린 복엽기 형태가 주류였다. 빈약한 엔진으로 양력을 최대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날개 형태는 단엽기로 곧 바뀌었으며, 오늘날은 복엽기는 일부 작은 경비행기에서나 볼 수 있다.

(2) 비행기는 랜딩기어의 접지 형태가 자동차로 치면 삼륜차(...!)에 가깝다. 뒤쪽에 삼각형의 두 꼭지점이 있는 형태가 일반적이지만(△), 옛날에는 전방에 삼각형의 두 꼭지점이 있는.. 일종의 역삼각형(▽) 형태의 비행기 디자인이 주류였다. 이런 비행기는 앞바퀴가 아니라 꼭지점이 하나만 있는 쪽인 뒷바퀴를 조향했으며, 아마 이륙 시에 양력을 더 크게 하기 위해, 땅에서 주기· 주행 중일 때는 기수가 위로 치켜세워진 형태이기도 했다. 오늘날 이런 비행기는 역시 일부 경비행기에서나 볼 수 있다.

(3) 비행기는 거의 1950년대 이전까지는 프로펠러기가 주류이다가 그 뒤부터 슬슬 프로펠러 대신 팬이나 다른 추진 기관이 달린 물건이 나온다. 그런데 프로펠러라고 해도 다 같은 엔진 기반이 아니었다.
동체의 전방에 프로펠러가 하나만 달려 있는 놈은 프로펠러를 자동차와 별 차이 없는 피스톤 왕복 또는 성형 엔진으로 돌렸다. 그렇기 때문에 엔진 소리도 자동차와 별 차이 없는 "털털털 부우웅~" 이런 식이었다.

그러나 양 날개에 총 2개나 4개씩 프로펠러가 달린 것은 '터보프롭' 엔진으로, 프로펠러를 돌려서 뒤로 배기가스를 분출하는 터빈 기반의 제트 엔진이다. 이제 "위이잉~ " 좀 공기 가르는 비행기다운 세련된(?) 소리가 들리지, 자동차 같은 엔진 소리는 나지 않는다. 오늘날 왕복 엔진 기반 단발 프로펠러기는 역시 소형 경비행기에서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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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비행기 축에 드는 An-2 (12인승)와 DHC-6 트윈오터(19인승). 날개 형태(복엽/단엽), 랜딩기어 구성, 프로펠러 구조(성형 왕복/터보 프롭)가 모두 다른 재미있는 대조군이다. DHC-6의 경우, 미국 그랜드 캐년 관광용으로 쓰이는 기종이기도 하다.

그리고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인데, 옛날에는 프로펠러가 뒤에 달린 비행기가 만들어진 적도 있다고 한다. 마치 선박처럼 말이다.
프로펠러가 뒤에 있어도 비행기가 나아가고 뜨는 것 자체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게 다른 방면에서 의미와 장점이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비행기가 떠서 기수가 들릴 때 프로펠러가 땅과 부딪칠 위험이 크다.;; 그리고 굳이 꼭 그렇게 만들어질 필요가 없다 보니 사장되었다. 삼발기, 전방 엔진 버스 같은 레어템이 됐다.

2. 악천후

폭우나 폭설처럼 '물'을 동반한 통상적인 악천후뿐만 아니라, 물 없는 지나친 폭염도 교통수단들에게는 전반적으로 악재이다.
고온은 물질들의 열팽창과 밀도 감소를 야기하는데.. 이 때문에 자동차는 공기압이 부족한 대형차에서 타이어의 파열 사고를 야기할 수 있다. 이러면 자기 혼자만 운행 불가능해지는 게 아니라 타이어 파편이 다른 차에 튈 수 있고, 또 조향력의 상실로 인한 연쇄 사고의 위험이 커진다.

철도의 경우 레일이 과열된다. 팽창으로 인해 휘는 것은 요즘은 기술 개발로 인해 극복되어서 장대 레일까지 잘 돌아가고 있으니 괜찮다. 하지만 문제는 강도도 약해진다는 것. 기관총 같은 게 너무 과열된 상태로 격발이 계속되면 아예 총열이 휘어 버리고, 현지에서 정비 불가능한 정도의 심각한 손상을 입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철도의 경우 스프링클러로 물을 주기적으로 뿌려서 레일을 식히기도 하고, 불가피하면 고속철이라도 주행 속도를 평소보다 낮춘다.

육상 교통수단과는 달리, 비행기는 이착륙 때를 제외하면 타이어와 지면의 접촉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더위로 인해 공기의 밀도가 감소하면 이는 양력의 부족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비행기는 평소보다 더 긴 활주로에서 더 빠르게 달려야 이륙이 가능해지는데, 공항(작은 지방 공항)과 비행기(무겁고 큰 중형 이상급 여객기..)가 드물게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결항된다.
비행기는 날개 위의 눈조차도 무게 이전에 양력 발생을 방해하기 때문에 반드시 싹 다 치우고 출발하는 교통수단이다. 그러니 무더위와 관련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사정이 있다.

선박은 폭풍우라면 모를까, 그래도 폭염의 영향을 받지는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육지가 폭염에 시달리는 중이어도 바다에는 언제나 시원한 바람이 가득하다.
물이나 바다가 싹 말라 버려서 배가 주저앉는 건 지구 멸망 급의 극단적인 천재지변일 테니..

3. 비상 탈출

자동차에는 안전벨트가 있고, 선박에는 구명조끼와 구명보트가 있다. 그나마 철도 차량만이 아무런 안전 장치가 없는 게 인상적이다.
비행기에는 안전벨트는 물론이고 구명조끼와 산소 마스크까지 있다. 구명조끼는 비행기가 바다나 강에 내렸을 때를 대비한 것이고, 산소 마스크는 비행기가 사람이 정상적으로 호흡하기 힘든 고고도에서 위험에 빠졌을 때를 대비한 것이다. 한 사람당 순항 고도에서 자연 호흡이 가능한 고도로 하강하는 데 걸리는 최대 시간만치만 산소가 준비돼 있다. (내가 알기로 대략 15분) 상승도 아니고 하강인데 이건 최대 시간 이내에는 반드시 달성 가능할 것이다.

갑자기 산소 마스크가 덜컥 내려왔다는 건 비행기가 비상 상황에 빠졌음을 뜻한다. 이때 독신 홀몸이라면 그나마 나 자신만 챙기면 되지만, 곁에 금쪽같은 처자식이 있더라도.. 일단은 "가장인 나 자신부터 마스크를 쓴 뒤에" 아직 방법을 모르는 어린애들에게 마스크를 씌워 주는 게 정석이다. 다른 애들을 챙겨 줘야 할 어른 본인이 먼저 기절해 버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뭐랄까, 굳이 창조 진화 논쟁이 아니어도 성경의 법칙도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질문의 답은 언제나 단호하게 "닭이 먼저"인데, 그런 심상이 느껴진다.

비상 착륙을 하든 불시착을 하든 심지어 추락을 했든.. 어쨌든 공중에서 땅이나 물에 내려앉았다면 이제 비행기를 신속하게 빠져나가야 할 차례다.
선박이야 건물 수준의 대형화가 가능하니 논외로 하더라도, 오늘날은 버스와 열차에 이어 비행기까지도 모두 2층 차량· 기체가 개발돼 있다. 보잉 747은 조종석과 특실..만 2층이었지만 A380은 일반실까지 모두 2층이 존재한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에는 2층 여객기가 수요도 있고 기술적으로 문제도 없지만 한동안 출시되지 못한 적이 있었다.
몇 차례 추락 사고를 겪은 뒤부터는 비상시에 비상구를 개방하고 미끄럼틀을 깔아서 모든 승객을 90초 이내에 탈출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국제 안전 규정이 추가됐는데, 2층 객실로는 이 조건을 구조적으로 도저히 충족시킬 수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여객기는 1층을 유지하면서 승객을 더 많이 태우기 위해서 광동체가 먼저 개발되었다. 버스나 열차와는 달리 복도가 두 줄 있는 것 말이다. 보잉 747이 대표적인 예이다. 얘는 조종석과 특실(!!)만이 2층이다.
그래도 지금은 결국 2층짜리 비행기도 봉인이 풀리고 나오긴 했는데, 그 90초 탈출 한계를 어떻게 극복했나 모르겠다. 결국 배는 말할 것도 없고 자동차, 열차, 비행기에 모두 2층 차량/기체가 존재하게 됐다.

높은 비행기에서 승객을 0.1초라도 더 빨리 지면에 닿게 하려면 탈출용 슬라이드/미끄럼틀은 직선이 아니라 사이클로이드(최단 강하 곡선) 모양으로 만들어야 하겠다는 잡생각이 문득 든다.
어차피 이 슬라이드는 딱딱한 강체가 아니고, 비행기가 물에 내려앉은 경우 그대로 구명보트로도 쓰이니 현실적으로 그렇게 굽은 모양으로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추락해서 부서진 비행기는 어디서 연료가 새고 언제 폭발할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승객들이 절대적으로 신속하게 비행기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항공사 승무원들은 깜깜한 비행기 세트장에서 임의의 엑스트라 승객들을 동원해서 탈출 모의 훈련도 실시하며, 이 상황에서는 "고갱님~ 5천원이십니다" 오글오글 서비스 모드가 아니라 강한 명령조와 반말까지 부득이하게 허용된다. "당신, 이쪽으로 빨리 나가!"처럼. 워낙 1분 1초가 급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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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나가세요"보다 저런 반말이 승객들을 더 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정신 차리게 만들어서 더 신속한 탈출을 돕는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조종석에서 기장과 부기장끼리나, 비상 상황에서 승객과 승무원끼리나 한국어 특유의 괴상한 높임법은 별로 효율적인 의사소통 모델이 아님을 보여주는 듯하다.

비상구 쪽에 앉아 있던 승객은 지금까지 다리 쭉 뻗으며 편하게 앉았던 대신, 이제부터는 법적으로 승무원들과 함께 다른 승객의 탈출을 같이 도와야 하는 의무가 부여된다. 그럴 능력이나 의사가 없는 승객에게는 애초부터 비상구 쪽 좌석이 아예 발권되지 않는다. 이건 타 교통수단에서는 찾기 힘든 관행인데,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항공 상식도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알 만한 분들은 다 아실 것이다.

비상 탈출을 할 때는 짐도 어지간히 거추장스러운 건 다 버려야 한다. 수하물로 부친 캐리어는 두 말할 필요도 없고 어지간해서는 선반 위에 올린 백팩조차도 못 건진다. 지갑, 핸드백, 최소한의 개인 의료기기 정도나? 자기가 짐 꺼내느라 복도 공간을 점유하는 동안 뒤의 승객들이 탈출을 못 하기 때문이다. 그 짐은 무게 당 얼마로 환산해서 나중에 보험사로부터 보상만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힐 같은 신발은 거동에 불편할 뿐만 아니라, 뾰족한 굽으로 탈출 슬라이드를 펑크내는 민족 반역자급 초 울트라 민폐를 끼칠 위험이 있다. 이런 거 탈출하는 모습을 보면 그 승객이 속한 국가와 사회의 평소 시민의식 질서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4. 추락 실험

자동차, 특히 그나마 작고 자가운전의 비중이 높은 양산형 소형차들은 모델을 처음 개발할 때 철저한 안전 테스트를 거친다. 사고가 나더라도 탑승객이 받는 대미지가 도를 넘지 않고 일정 수준 이상의 생존률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이다. 특히 미국 같은 자동차 선진국에 신차를 수출하려면 거기서 시행하는 아주 엄격하고 까다로운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컴퓨터 시뮬레이션만으로 자동차의 구조적인 안전을 100% 완전히 예측하고 검증할 수는 없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자동차에는 충돌 테스트가 쓰인다. 그때 교보재로 동원되는 마네킹인 더미는 보기보다 굉장히 비싸고 귀하신 물건이다.
그런데 자동차의 충돌 실험 말고 혹시 비행기의 추락 실험이 시행된 예가 있을까?

보잉이든 에어버스든, 양산형 여객기가 개발되는 과정에서 "조류 충돌에 대비한" 모의 충돌 테스트는 하지만, 아예 기체를 통째로 추락· 전손시키는 테스트까지 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비행기가 추락 사고가 났을 때 어디에 있던 승객이 가장 많이 생존하더라 어쩌고 하는 것은 다 실제로 일어난 사고들을 통해서만 데이터를 축적해서 통계를 낸 것이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싶으니, 미국에서는 비행기 제조사가 아닌 다른 서로 다른 단체에서 딱 두 번 추락 테스트를 시행한 적이 있었다.

처음은 1984년 12월 1일, NASA와 FAA(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 번역은..;;)의 공동 주관으로 보잉 720기를 캘리포니아 주의 모 사막에다 추락시켰다. (☞ 자세한 설명) 720이라는 모델명이 생소할 텐데, 이건 727의 오타가 아니다. 195, 60년대를 풍미했던 구닥다리 4발 여객기인 707의 다운사이즈 버전으로, 제원상의 최대 좌석 수는 149였다.

시범타로 쓰인 기체는 FAA에서 1960년에 훈련용으로 구매한 것으로, 심하게 낡았고 어차피 폐기할 때도 됐으니 이런 용도로 쓰이며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추락한 기체는 파손되면서 연료가 온통 유출되었으며, 이것이 주변의 뜨거운 엔진열로 인해 발화하여 화재를 일으켰다. 기체는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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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비행기를 추락시켜 부수는 것은 자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니니, 한 번의 이벤트로 최대한의 실험 데이터를 얻을 수 있게 추락 계획을 정말 치밀하게 잘 짜야 했을 것이다. 마치 건물 철거 계획을 수립하듯이 말이다.

더구나 자동차 충돌 실험 때야 궤도나 피아노줄을 이용해서 차를 무인으로 이동시킨다지만, 비행기는 그런 게 없다. 여객기는 하다못해 전투기 같은 조종석 사출 기능조차도 없다. 그러니 처음엔 사람이 들어가서 비행기를 조종하다가 중간에 낙하산으로 뛰어내려서 탈출해야 했다. 물론 동승한 전문 스카이다이버의 도움을 받으며 말이다. 비행기 조종 전문가가 낙하산 전문가는 아니니까.

이런 추락 실험이 비교적 최근에 또 행해졌다. 지난 2012년 4월 27일, 이번에는 미국의 디스커버리 채널이 자사의 "무엇이든 물어 보세요"(Curiosity) 프로 방영을 위해 구닥다리 중고 보잉 727-200을 구매해서 미국· 멕시코 국경 지대에 있는 사막에 추락시켰다. (☞ 자세한 설명)
추락시킨다는 게 공중에서 시동을 꺼 버리고 마냥 활강 내지 자유 낙하시키는 게 아니다. 정상적인 착륙 때처럼 뒷부분부터 사뿐히 착지시키지 않고 그냥 연약한 앞부분부터 바로 땅에 닿게만 해도 하체가 으스러지면서 추락 사고가 나는가 보다.

이때는 1984년 실험과는 달리 비행기가 수평 자세로 비교적 곱게(?) 추락했으며, 기체에 불이 나지도 않았다. 훗날 발생한 2013년의 아시아나 항공 814편 추락 사고와 비슷한 양상이 된 것 같다.
단, 727은 삼발기이며 요즘 비행기들처럼 엔진이 날개 아래에 주렁주렁 달린 형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다른 비행기와는 사고의 양상이 좀 다르게 흘러간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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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과 727 모두 엄청난 구형 기종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여객기의 추락 실험에 동원된 이력이 있다는 게 흥미롭게 느껴진다.
하긴, 서구· 영미권에서 저런 "스펀지" 스타일의 지식 쇼 프로들은 자동차쯤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충돌시키고 박살 내고, 폭탄도 터뜨리고 별 엽기적인 소재를 갖고 실험을 하더라. 그리고 자동차의 충돌 실험 자체를 수평 충돌이 아니라 자유낙하 실험 형태로 진행하기도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7/12/14 08:28 2017/12/14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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