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셋 한글 입력기 9.5, 그리고 타자연습 3.81이 나왔다. 9.3 이후 반 년을 넘어 거의 200일 만이다.
지금으로부터 두 달쯤 전의 개발 근황글에서 예고한 바와 같이, 이번 9.5는 '파이널' 버전이다. 수 년치 분량의 TODO 리스트를 갖고 작정하고 새 아이디어, 새 기능을 구현하고 리모델링 리팩터링을 하던 것은 여기까지이다.

그 과업이 다 이뤄졌다! 내 인생에 이런 날이 오다니 감개무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저 담담하다. 9.5 이후부터는 장기 계획 없이 소규모 유지보수만 소규모로 진행될 것이다.

작년 여름에는 나라 사정 때문에 슬럼프에 빠졌던 게 많았던 반면, 올해 여름은 그런 외부 요인이 개발 컨디션에 심하게 영향을 끼친 건 없었다. 그래도 폭염이 너무 심하긴 했다..;;
또 이 정도면 정말 '완결 파이널'이라고 내 양심과 역사와 국가와 민족 앞에서 정말 단언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테스트만 하다가 긴 시간을 그냥 보내 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올여름은 넘기지 않고 끝을 보게 됐다.

1. 동시치기

이번 9.5 버전에서 제일 핵심적인 새 기능은 초보적인 수준의 동시치기이다.
지금까지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세벌식 자판의 고급 응용 기능 명목으로 제공해 온 것은 오토마타를 통한 모아치기나 무한 낱자 수정 정도였다. 이건 일면 편리하지만 현재 글자를 최대한 붙이고 유지시켜 주는 것에만 최적화돼 있다. 다음 글자로 분리되어야 하는 상황의 대비가 미흡한 반쪽짜리이다.

그래서 새 버전에서는 한글 입력 중에 일정 간격을 두고 마지막 두 타가 이전 타보다 충분히 빠르게 입력됐다면, 이건 다음 글자에 대한 동시입력으로 간주하고 그 두 타를 뒤로 같이 보내는 로직을 구현했다.

마지막 두 타를 한꺼번에 다음 글자로 보내는 동작 자체는 이전 버전에서부터 구현돼 있었다. 그걸 후대 버전에서 드디어 본격적으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
이 기능을 사용하면 세벌식 자판에서도 명목상 도깨비불 현상 같은 동작이 발생할 수 있다. 물론 그래도 종성이 초성으로 바뀐다거나 하지는 않고 그냥 위치만 이동한다.

동시치기는 시간 주기부터 시작해서 세밀한 동작 옵션이 존재할 여지가 많은 기능이고 이것만 전담하는 빠른설정이 존재해도 이상할 게 없다. 본인도 그걸 의도하기도 했다. 동시치기는 특정 입력 방식이 아니라 안 마태건 공 병우건 세벌식 입력 방식에 적용 가능한 일종의 범용적인 패러다임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9.5 버전은 그 정도까지 구현하지는 못하고, 그냥 '동시치기 테스트.ist'라는 예제 파일만 넣어서 공 병우 세벌식 글자판을 기준으로 이런 기능도 구현 가능하다는 맛보기를 시연하는 선에서 그쳤다.

해당 파일을 열어 보면 설명문에 오토마타 로직이 세밀하게 설명돼 있는데, 핵심은 이렇다.
고급 입력 스키마의 옵션을 바꾸서 동시치기 타이밍 변수를 제공하게 한다(고급 스키마 옵션 - 한글 동시치기 타이밍을 오토마타 Q 변수에 전달).

그 뒤, 실제로 두 타를 옮기는 것은 두 타가 가리키는 (1) 한글의 성분이 서로 다르고(초성+중성, 중성+종성 등..), (2) 두 타를 떼어내더라도 앞 글자가 최소한 초성과 중성을 갖추고 있을 때에만 떼어낸다.
이 두 조건을 체크하기 위해서 오토마타에 s, r, u, v 같은 복잡한 변수와 수식들이 있는 것이다. 별로 어려울 것 없다.

이 입력 방식에서는 '아'를 친 뒤에 'ㅣ+ㄱ'을 빠르게 입력하자 글자가 처음에는 무한 낱자 수정 때문에 '이'가 됐다가 다시 '아'로 바뀌면서 '아기'가 입력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그냥 단순히 순차적으로 빠르게 칠 때 예기치 않은 부작용도 발생하지 않게 타협점을 찾으려 했다.

이 정도는 돼야 두벌식이나 세벌식이나 컴퓨터에서는 성능과 편의성 차이가 별로 없다는 말을 완전히 반박할 수 있지 않을까? 세벌식은 타자기에서 이미 기본적인 온전한 입력이 되고 컴퓨터로 가면 오타 수정이 더 편하게 되고 타이밍 오차 보정까지 되는 입력 방식을 구현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언어 데이터 없이 그냥 원초적인 수준에서 말이다.

지난번 개발 근황에서 먼저 소개되었던 한글 조합 유지 기능은 한글과 비한글끼리의 순서를 보정하는 기능이고, 이번에 완결된 기능은 한글과 한글끼리의 순서 내지 음절 경계를 보정하는 기능이다. 이런 기능이 타자에 실질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를 입증하는 실험 데이터가 좀 있으면 좋겠다.

참고로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4.x 버전 시절에 '고급 스키마'의 전신격인 동시입력 스키마라는 게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 이미 도입된 적이 있었다. 옛날 자료를 찾아보니 2개 이상의 한글 글쇠가 동시에 눌렸을 때 '중간 상태'로 진입하고, 모든 글쇠가 떼어지면 '종결 상태'로 넘어갔다. 종결 상태에서는 '고+ㅏ'나 '고+ㄴ'처럼 평소에 조합 가능한 입력이라도 더 결합을 거부하고 다음 글자로 가게 해서 음절을 구분했었다.

동시치기의 원론적인 동작에 정말 충실하게 로직을 구현하긴 했지만, 이 상태로 실제로 쳐 보면 생각보다 불편하다.
특히 기존의 이어치기 방식으로 타자를 빠르게 하면 오동작도 많이 겪게 된다. 동시치기 내지 동시치기에 준하는 빠른 타자가 행해지는 동안에는 음절 경계의 타이밍의 차이로 물리적인 음절 경계를 구분하는 게 더 낫다.

옛날 '동시입력 스키마' 시절에도 'ㅇ.ㅏ' 오타를 보정하고, keyup 타이밍 때 비한글 문자를 뱉는 옵션은 구현돼 있었다. 비록 한글 조합 중에 그 비한글 문자가 같이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2. 입력 도구들의 개선

9.3은 참신한 입력 도구들이 대거 추가된 버전이었다. 그리고 지난번에 다음 버전 개발 근황을 전한 뒤에도 입력 도구에 대한 개선 작업이 더 진행되었다. 구체적인 변화 내역은 다음과 같다.

'조합 안에 조합 생성' 입력 도구가 제공하는 변환 기능 중, '새김을 한자로'도 한번에 여러 한자의 훈을 한꺼번에 입력해서 여러 개의 한자로 순차적으로 변환할 수 있게 했다. 더구나 새김을 끝까지 다 입력하지 않아도 된다.
가령, "땅불바람물마음"이라고 한꺼번에 친 뒤에 한자를 하나씩 골라서 "地火風水心"을 곧장 입력할 수 있다. 이전 9.3에서는 이런 게 가능하지 않았으며, '땅'까지만 치고 나서 변환을 직접 한 뒤에 다음 글자를 입력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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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입력 도구도 여러가지가 개선됐다.
(1) 먼저, 목록에서 오른쪽에 작게 표시되는 보조 문자열(조합 목록에서 글쇠 문자, 후보 목록에서 설명문)이 한 줄에 가지런히 맞춰서 출력되게 해서 미관을 개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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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합이나 후보가 출력될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는 해당 목록이 작게만 공간을 차지하는 게 아니라 아예 화면에서 사라지게 했다. 좌측 상단에 있던 자그마한 기본 버튼들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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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별 문제가 없는데 MS Word에서는 이 입력 도구가 cursor 주변에 표시되지 않고 화면의 좌측 상단에 잘못 표시되는 문제가 있었다. 쟤만 유독 까탈스럽게 동작하는 게 있어서 문제를 꽤 번거로운 방법으로 우회해야 했지만.. 어쨌든 버그를 고치긴 했다.

(4) 이 도구를 띄워 놓은 상태에서 운영체제의 테마나 색깔 배색을 변경하고 나면 보조 문자열의 글꼴이 깨져서 굴림체로 바뀌어 버리던 문제를 해결했다. 그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의 처리 절차에 논리적으로 구멍이 있기 때문이었는데, 이를 총체적으로 싹 손 봤다. 공통으로 사용하는 글꼴 같은 리소스를 반드시 초기화부터 한 뒤에 입력 도구들이 이벤트를 받게 했으며, 이 순서가 꼬이는 일이 없게 했다. 심지어 날개셋 편집기와 외부 모듈을 동시에 구동했을 때에도 말이다.

(5) 이 외에도.. 프로그램을 이 정도로 변태같이 사용하는 경우는 현실적으로 극히 드물겠지만,
날개셋 편집기에서 또 외부 모듈을 구동하고, 두 구현체가 제각각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도구를 구동했을 때.. 그리고 TSF가 아니라 이제는 사실상 사용되지 않는 9x~XP까지의 구형 IME 프로토콜로 동작할 때, 여러 오동작이 발생하던 문제들을 해결했다.
과거의 9.3을 개발하던 당시에 시간에 쫓기느라 이런 극한이나 레거시 환경에서까지 꼼꼼히 테스트를 하지 못해서 문제가 남아 있었다. 단지 그게 크게 부각되는 주요 문제가 아니었을 뿐이다.

3. 그 밖의 UI 개선

(1) 날개셋 제어판에서 '분야'를 선택하는 트리 컨트롤을 키보드로(주로 상하 화살표) 조종하면.. 그 분야에 해당하는 제어판 페이지가 곧장 뜨는 게 아니라, 중간에 0.2초 정도 지연을 넣었다.
키 입력이 일정 시간 이상 안 들어올 때에만 화면을 갱신하는 것이다. 화살표 키를 빠르게 연타하거나 꾹 누르고 있을 때, 일일이 제어판 페이지를 준비하느라 프로그램의 반응성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사실, Windows의 제어판은 오래 전부터 이미 이렇게 동작하고 있다.
디렉터리를 표시하는 트리는 마우스 클릭에는 즉각 반응하지만 키보드의 화살표 키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잠시 뜸을 들이고 있다가 사용자가 키보드에서 손을 완전히 뗀 뒤에 그 디렉터리의 내용을 옆의 리스트 컨트롤에다가 표시해 준다. 매번 한 디렉터리의 파일 목록을 얻는 건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트리 컨트롤이 이렇게 키보드에 대해서 지연 인식을 하는 건.. 정형화된 동작이고 여러 곳에서 쓰일 만한 기능인데, 어째 운영체제 공용 컨트롤 차원에서 제공되는 건 없는지 궁금하다(스타일, 플래그 형태로). 그런 게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에 본인은 해당 동작을 수동으로 직접 구현했다.

(2) 그리고 또 사소한 것..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대화상자 UI 중에는 파란색 밑줄이 쳐진 하이퍼링크가 있다. 가령, About 대화상자에 있는 홈페이지 주소라든가 '후원 안내' 말이다.
이전 버전까지는 마우스로 클릭한 것만 인식됐지만, 이제는 거기에 포커스를 옮기고 space를 누른 것도 인식되게 동작을 개선했다. 마우스 없이도 링크 클릭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원래 이렇게 되는 게 맞다.

4. 타자연습

끝으로, 타자연습은 딱히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거나 동작이 바뀐 것은 없다. 하지만 API 호환이 깨졌기 때문에 입력기 9.5 엔진에 맞춰 다시 빌드되었으며, high DPI에서 실행되었을 때 발생하던 각종 glitch들을 잡았다. 이것 분량이 버전을 0.01 정도는 올릴 수준이 된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버전을 올리게 되었다.

  • 프로그램의 시작 화면에 나타나 있는 탭(시작, 글쇠 익힘, ... 통계)들이 지금보다 더 큼직하고 시원스럽게 배치되게 했으며, high DPI에서 한글의 아랫부분이 보기 흉하게 짤리던 문제를 해결했다.
  • DPI가 200%인가 225%를 넘어간 상태에서 샌드위치 내지 상하 대조 방식으로 긴글 연습을 하면 줄 전체에 꽉 차는 긴 문장이 제대로 찍히지 않고 뒷부분이 씹혔다. 새 버전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했다. 물론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비트맵 글꼴은 150% 배율까지만 크기가 보장되기 때문에 확대 배율을 너무 높게 잡으면 프로그램을 제대로 사용하기 곤란해지긴 한다..;;
  • '글쇠 익힘'과 '낱말 연습'에서 쓰이는 손가락 위치 선택 리스트 박스가 high DPI에서도 너무 작게 찍히던 문제를 해결했다.
  • '긴글 연습' 화면의 아래에 나타나 있는 도구모음줄(앞/뒤쪽..)도 high DPI에서 버튼들이 너무 비좁고 조밀하게 찍히던 것을 개선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그림에 묘사된 before/after에서 보다시피, 타자연습뿐만 아니라 편집기도 high DPI 환경에서 도구모음줄 아이콘들이 전반적으로 더 큼직하게 찍히게 했다. 편집기의 경우, 계산기 대화상자의 계산 결과 리스트가 high DPI의 글자 크기보다 너무 좁은 줄 간격으로 찍히던 문제도 있어서 이를 해결했다.

한편, 다시 타자연습으로 돌아오면.. 고대비 검정 모드에서 긴글 연습을 하면 disable된 도구모음줄 버튼들이 자기 고유한 형체가 없이 이렇게 사각형으로 뭉개져서 찍히곤 했다. 이를 정상적인 형태로 개선했다(위 vs 아래). 도구모음줄이 상시 표시되어 있는 날개셋 편집기에서는 진작부터 이런 처리를 하고 있었는데 타자연습에서는 지금까지 그 생각을 못 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정도..
이번 새 버전은 이제 정말로 더 고칠 것 없이 오랫동안 잘 쓰였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8/08/30 08:36 2018/08/3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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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영 2018/11/04 11:56 # M/D Reply Permalink

    혹시나 하고 찾아왔는데 나이스 서프라이즈입니다.
    늘 다듬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번 버전도 잘 쓰겠습니다!

    아참 9.6버전 말씀입니다~

    1. 사무엘 2018/11/04 19:48 # M/D Permalink

      안녕하세요!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 늘 관심을 갖고 새 버전을 사용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_^
      9.6은 필기 인식이 추가되고 글꼴 본뜨기 체계가 바뀌었기 때문에 이 기능에 관심이 없으면 새 버전이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새 기능이 특별히 공감되고 마음에 드시면 좋겠습니다.
      내일 블로그에 더 자세한 새 버전 소개글이 올라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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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취향 중에는 뭐랄까, '폐허 덕후'라는 성향이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 폐건물에 유난히 집착하는 거 말이다. 왜 이런 성향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이나 해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철덕이 이런 성향으로 가면, 지금은 없어진 폐선로 흔적이라든가 영업이 중단된 폐역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하긴, 본인이 어렸을 때에도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완전히 철거되지 않은 흉가 폐가(?) 같은 게 있었다. 거기서 숨바꼭질을 하기도 하고, 나뒹구는 쓰레기 중에 반짝거리는 보석(?) 같은 걸 줍기도 했다.
또한 그때는 건물뿐만 아니라 다 부서진 폐승용차의 잔해가 널부러진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아마 사고 차량인 듯... 심지어 불에 홀랑 타고 녹슨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것도 있었다. 유독 자주색 기아 브리사 1 차량이 많았다.

그런데 저렇게 단순히 짱박혀 놀기 좋아하는 어린애들이라든가, 그저 으슥한 탈선 장소를 찾는 비행청소년들 말고..
성인이 뭔가 역덕후 지리 덕후, 또는 앞서 언급했던 철덕과 결부지어 폐허 탐방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요즘 인터넷 덕분에 특정 분야의 정보라는 게 워낙 많이 굴러다니고 널리 공유되곤 한다. 폐허에 대한 정보도 마찬가지다. 어떤 장소가 처음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마이너한 곳이다가 이런 식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게 된다. 광주 곤지암이 이런 대표적인 예에 속하지 싶다.

본인은 2000년대 중반쯤에 중부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고속버스 창밖으로 나들목(IC) 이름을 통해 곤지암이라는 지명을 접한 게 최초였다. 거기는 성남에서 3번 국도를 따라 도달하기도 좋은 곳인데, 지명이 좀 특이하다는 생각을 그 당시에 했었다.

알고 보니 이 지명에는 임진왜란 때 활약했던 신 립 장군과 관련된 역사적인 사연이 있었다.
옛날에 고구려의 온달 장군은 전사하고 나서 관이 땅에 달라붙어서 떼어지질 않았다고 하는데(평강 공주가 해금시킴), 신 립 장군이 묻혔던 '곤지바위' 근처에서는 말이 발굽이 무슨 자석 붙듯이 붙어 버려서 움직이질 못했다고 한다..;; 설화들이 다 이런 식이다. 더 자세한 사연에 대해서 궁금한 독자께서는 인터넷 검색을 해서 찾아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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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게 바로 지명의 유래가 된 '곤지바위, 곤지암'이다.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 곤지암로 72 소재.)

여기는 성남이나 서울과는 산으로 가로막힌 오지였지만 훗날 경강선 철도가 생기고(곤지암역!!) 52번 고속도로까지 생기면서 이름이 전국적으로 더욱 알려지게 됐다.
원래 행정구역 명칭이 실촌읍이었는데 2011년부터는 읍 이름이 통째로 곤지암읍으로 바뀌었다. 남한산성 일대가 중부면이다가 면 이름 자체가 '남한산성면'으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곤지암이 더욱 유명해진 것은 단순히 지역 명물인 소머리 국밥 때문이 아니라.. '남양 정신병원'이라는 폐건물이 바로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문자 그대로 언덕 위의 하얀 집이었다.
1992년에 개업했으나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4년 동안밖에 영업을 못 하고 1996년에 문을 닫았는데.. 기존 의사와 직원들은 딴 병원으로 이직했으며, 건물주 가족은 죽거나 미국으로 이민 가 버렸다. 하지만 건물은 제대로 철거를 못 한 채로 방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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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 폐건물은 단순한 폐허 덕후의 성지 수준을 넘어, 귀신의 집(haunted house) 끝판왕이요, 희대의 납량특집 공포체험 명소로 둔갑해 버렸다. (남양이 아니라 납량..ㄲㄲㄲ) 교통 불편한 굉장한 오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 나간 모양이다.
이 병원의 과거 내력에 대해서도 옛날에 어느 환자가 미쳐서 자살했고 밤마다 귀신이 튀어나오고, 건물주는 저주를 받아서 어찌 됐고 하는 등, 있지도 않은 괴담들이 더해지고 뻥튀기 되었다.

그런데 매년 여름에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애들은 사유지를 무단 침입해서 혼자 곱게 구경만 하고 가는 게 아니라, 내부를 부수고 낙서를 하고 고성방가와 술판 등 온갖 깽판을 벌였다. 주민들에게 끼치는 민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견디다 못해 건물주까지 뒤늦게 나서서 병원 정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철조망 두르고 출입금지 경고문을 달고 CCTV를 설치했는데도.. 애들이 막무가내로 안에 들어갔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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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했으면 이걸 소재로 지난 봄에는 '곤지암'이라는 이름의 영화까지 나왔다. 세상에 저 이름이 공포 영화 제목으로 등장할 줄이야..
감독이 굉장한 좌파여서 그런지 영화 속 병원의 영업 기간을 박통의 재임 기간과 동일하게 각색을 하고, 병원 이름도 '남양'에서 '남영'으로 바꿨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의도한 작명인가 싶은데, 저건 그래도 1976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박보다는 전대갈 시절의 존재감이 더 짙다. (박통 시절 있었던 대표적인 분실은 내가 알기로 서빙고 분실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실제 정신병원 건물은 영화까지 나온 뒤에야 처분이 완료되었으며, 바로 지난 5월 말에야 뒤늦게, 허겁지겁 완전히 철거되었다고 한다. 철거되기까지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귀신의 저주 때문은 전혀 아니고, 단순히 오지에 있는 낡은 건물이 부동산으로서의 가치가 시원찮았기 때문일 뿐이었다.

병원이 있던 자리엔 평범한 주택이 지어질 거라고 한다. 공포 테마 공원 같은 거라도 만들어지길 바라는 사람도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전무하다. 인근 주민들이 외지인들에게 이를 갈 정도로 완전 트라우마가 생겨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저기는 공포 체험을 할 만한 것들이 흔적도 없이 몽땅 사라졌으니, 외지인 없는 평온한 마을로 되돌아갈 듯하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사실은 저 영화 촬영조차도 실제 곤지암 남양 정신병원의 내부에서 하지는 못했다. 부산에 있는 다른 폐건물을 이용했음..)

폐허 얘기를 하다가 곤지암 정신병원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본인은 이 시점에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사람들이 공포 체험이라는 명목으로 폐건물을 찾아가는 것까지는 이해가 된다. 폐허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서 왜 저렇게 깽판을 치는 걸까? 단순히 자기 집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건 아닌 것 같다.

주변이 전혀 관리되지 않고 무질서한 곳이니까 여기서는 자기도 얼마든지 안심하고 무질서하게 굴어도 된다는 그런 심리가 작용한 게 아닐까?
빈민굴 슬럼가의 담벼락에 낙서나 쓰레기가 조금 생긴 걸 방치하면 얼마 안 가 다른 사람들까지 쓰레기를 왕창 버리고 낙서 천지가 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 하겠다.

자동차만 해도 관리 안 해서 먼지 쌓이고 녹슬고 타이어 터진 채로 오랫동안 방치되면 주변 사람들이 정신줄을 놔 버린다. 어느 시점부터는 차가 자연스럽게 망가지는 것 이상으로, "주인 없는 차네?"라는 걸 인지한 주변 사람에 의해 유리창이 깨지고 표면에 동전으로 기스가 나고 내부에 쓰레기가 쌓이고 스프레이 낙서가 찍찍 칠해지는 등... 차가 도저히 사람이 탈 수 없는 폐차가 돼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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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 에쿠스. 아무리 고가의 고급차라도.. 주인이 차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사고 차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흉물로 전락하는 건 생각보다 금방이다.)

하긴, 어차피 쓰레기가 100개가 있는 곳에 자기가 하나쯤 더 추가해서 101개를 만들어 봤자 티가 안 날 거라고는 누구나 안일하게 생각할 수 있다. 눈덩이가 일정 규모 이상 커진 뒤부터는 그야말로 급격히 커지듯이, 무질서도가 그런 모양새로 커진다.
또한, 사회에서 제아무리 똑똑하고 멀쩡한 사람이라 해도, 한데 모아서 군복만 입혀 놓으면 완전 야비군 좀비로 퇴화(?)하는 것 역시 동일하지는 않아도 비슷한 이치일 수 있겠다.

그러니 군대에서 단순히 위생 청결 이상으로 외형적인 정리정돈과 각 잡기를 강조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정신적으로 저런 빈틈과 안일함을 보이지 않고 최소한의 군기와 기강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도둑만 해도 자기가 침입한 게 바로 티가 날 정도로 정리정돈이 잘 된 집은 털지 않는다고 하니 말이다. 이 역시 집 말고 자동차에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흠집 많고 청소· 관리 상태가 시원찮은 차는 차도둑뿐만 아니라 인근의 운전자들도 만만하게 보기 쉽다.

그럼 끝으로, 곤지암 말고 다른 유명한 폐건물을 몇 군데 짚어 보고 글을 맺도록 하겠다.
(1) 서울 망우산 기슭에 있는 용마랜드는 영업을 중단한 놀이공원이다만.. 2010년대에 크레용팝 뮤직비디오 이후로 유명세를 타고 성지가 됐다. 놀이기구를 가동하지는 않지만, 안에서 산책하고 CF건 뮤비건 찍으라고 지금도 관리인이 방문객을 돈 받고 일정 시간을 입장시켜 주는 모양이다. 극장 스크린에서 내려간 영화가 다음으로 DVD로 2차 수입을 얻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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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70년대에 서울에서 지어졌던 각종 시범 아파트들은 이제 완전 흉물스러운 D급 폐가로 전락한 관계로, 차근차근 철거되었다. 노후한 외형은 둘째치고 안전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최후의 물건인 회현 시민 아파트만은 리모델링을 거친 뒤 역사 공간으로서 보존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듯하다.

여기는 '서울 도심 속의 폐가' 컨셉 유명세를 타고 나니 외부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사진 찍으러 찾아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는 비록 폐가처럼 생겼을지언정 엄연히 사람이 사는 곳인데, 입주민의 입장에서는 외부인들이 자꾸 찾아오는 게 그리 기분 좋은 현상이 아닐 것이다. 사진은 귀찮아서 생략함..;;

(3) 이천시 마장면에 있던 오천 역 건물은 수려선의 폐선 이후 최후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던 역사 건물이었다. 비록 소유주와 건물 용도는 진작에 바뀌었고 그마저도 폐가 상태로 전락했지만 말이다. 지난 2015년 10월에 본인이 한번 방문하고 나서 딱 한 달 뒤에, 이 건물은 인근 지구의 재개발과 맞물려서 싹 철거돼 버렸다. 여긴 곤지암 정신병원과는 달리, 뭐 철덕 말고는 찾아올 일이 없는 마이너한 곳이기도 했다.

(4) 일본에 있는 하시마 섬, 일명 군함도도 그 동네에 사는 폐허 덕후에게는 성지나 다름없는 명소일 것이다. 저 작은 섬에 석탄이 많이 나기라도 했는지 한때는 광부들이 몇천 명이나 바글바글 몰려 살던 곳인데.. 지금은 싹 다 빠져나가고 없다. 일본에서는 배틀로얄 2 같은 영화 촬영지로나 쓰였으며, 국내에서는 일제 시대 강제 징용 노동자를 주제로 "군함도"라는 영화가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저기는 안전 문제 때문에 아무나 아무 때나 들어가지는 못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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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나열한 사례들과 비교했을 때, 곤지암 남양 정신병원은 재활용이고 뭐고 없이 방문자와 주민· 건물주들 사이에 마찰만 잔뜩 빚다가 철거되어 사라지게 됐다.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이라는 곳은 과거와 현재에 저런 특이한 내력이 담겨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8/27 08:35 2018/08/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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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차이

  • 내가 이 일을 듣고는 내 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놀란 채 앉았더니 (스 9:3)
  • 내가 그들을 꾸짖고 그들을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털을 뽑으며 그들이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게 하며 이르되 ... (느 13:25)

백성들의 잘못 때문에 빡쳤을 때 에스라는 자기를 저렇게 했고, 느헤미야는 남을 저렇게 했구나.. (참고로 뜯다/뽑다 모두 영어로는 구분 없이 pluck off임)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2. 한글 개역성경의 감성 번역 (개역개정판도 포함)

(1) 습 3:17 (하나님께서)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영어로는 rejoice over you with joy / great gladness 정도다. 그냥 "너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정도의 뉘앙스인데, 하나님이 차마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노무노무 기뻐하실 거라니! 번역자가 over이라는 단어를 전치사가 아니라 접두사로 본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

(2) 시 8:1 주의 이름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매우 유명한 구절이다만, 내가 아는 전세계 그 어떤 성경 역본도 저기서 beautiful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없다. 개역 말고는. 그냥 excellent(KJV. 뛰어나다) vs majestic(웅장한, 장엄한) 정도로 나뉜다.
번역자가 '크고 아름다워요'라는 심상을 의도한 건가 의문이 들지만, 그때는 아직 저런 표현이 없었는데..

3. 개역성경도 킹 제임스 성경 방식으로 번역된 곳

(1) 창 37:3 채색옷/색동옷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주일학교 때부터 색동옷 입은 꿈쟁이 요셉을 보면서 자란 건, 개역성경이 비록 큰 줄기는 다르지만 저기서만은 어째 킹 제임스 성경 방식으로 번역됐기 때문이다. 요즘 번역은 장신구가 잔뜩 달린 옷, 소매 긴 옷 등이 트렌드이다. 번역의 정오를 이 자리에서 논하지 않을 것이다.

(2) 엡 4:12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여(perfecting)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킹 제임스 성경만이 perfecting이고 타 역본들은 equip, prepare 그냥 '준비시키다'라고 번역되었다.
이건 구약도 아니고 신약인데, 개역성경이 딴 건 놔두고 여기서는 어떻게 KJV의 표현을 썼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4. 사흘 밤낮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고 부활하신 시기에 대해서 이렇게 흔히 알려져 있는 편이다.

"(예수님에 대해서) 사흘 만에 부활한 게 아니라 매장된 지 사흗날임에 유의. 금요일에 죽어 매장된 게 첫날, 안식일인 토요일이 이튿날, 부활한 일요일이 사흗날째다. 날수로 따지면 토요일이 하룻날, 일요일이 이튿날로 48시간도 안돼서 부활한 거다. 신자들도 많이 헛갈리는 점이다."


굉장히 그럴싸해 보이는 설명이긴 하나, 문제는 성경에는 저 기간에 대해 3박 3일..
three days & THREE NIGHTS
이라고 분명하게 나와 있지 않은가? 낮도 셋, 밤도 셋을 괜히 강조하는 게 아니다. 마 12:40에서 요나의 표적 말이다.

물론 인간의 언어와 문화에 따라 날짜나 나이 계산을 할 때 당일을 포함시켜서 1부터 시작하느냐, 그렇지 않고 0부터 시작하느냐 같은 유도리와 모호성이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영어 day는 '낮'도 되고 '날'도 되는 중의성까지 존재한다.

하지만 저 문맥에서는 내가 보기에 그런 유도리가 틈탈 여지가 없다. 금요일이 첫째 날, 일요일이 셋째 날 식으로 계산하면 밤이 "3박"이 되지 못한다. 그냥 2박 3일이 될 뿐이지.
마치 창세기 1장에서 1, 2절까지 몽땅 첫째 날에 포함시켜서 첫째 날이 "하늘과 땅과 빛을 만든 날"이라고 붙이는 격의 오류가 야기된다.

성경에서 third day와 three days가 서로 연결되어 쓰인 용례들을 쭉 찾아보면 답이 나온다. 그것들은 완전히 72시간을 꽉 채우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48시간은 확실하게 경과한 기간이다.

게다가 일요일 아침도 예수님이 딱 부활하신 시각이 아니라 빈 무덤을 사람들이 발견한 시각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정확하게 얼마나 더 전에 일어나서 무덤을 탈출해 나가셨을지는 알 길이 없다. 이런 정황을 감안하면, 예수님이 죽으신 날은 넉넉하게는 수요일, 또는 아무리 늦어도 목요일 정도는 돼야 한다.

본인은 이런 이유로 인해 '성 금요일'이라는 개념을 믿지 않는다.
나무위키의 설명과 성경의 진술이 서로 충돌할 때는 당연히 후자를 우선적으로 따라야 한다.

5. 세례가 아니라 침례이며, 침례는 구원 증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

(1) 침례는 '주'의 만찬과 더불어 신약 기독교회에서 성경에서 행하라고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는 2대 의식이다.

(2) 또한 침례는 선행과 마찬가지로 구원의 조건이 전혀, 절대 아니다. 사람을 교회에 소속시킨다거나 종교적으로 뭔가 성화· 버프 시켜 주는 효과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신앙 고백 내지 구원 간증 같은 인증일 뿐이다.
먼저 구원부터 받은 뒤에 침례를 받는 게 나중이다. 이거 순서가 꼬이면 정말 사람 피곤해지고 골치 아파진다.

물론 침례인 요한이나 초대 교회 시절에 유대인들을 대상으로는 성격과 의미가 약간 다른 회개의 침례 같은 게 존재하긴 했었다(행 2:38 같은). 하지만 그건 지금 우리에게 적용되는 사항이 아니다.

침례교는 다른 교파들에 비해 (1) 성경의 용례를 따라 꼭 물에 전신이 잠겼다가 나오는 침례를 강조하며, (2) "애들은 가라"이다. 스스로 자기 믿음을 고백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지 못한 아기, 유아들에게는 그걸 절대 주지 않는다. 행 8:37이 KJV 이외의 성경에서 삭제된 것은 교리적으로 굉장히 큰 오류를 야기했다고 본다.

애들한테 유아 세례? 영세? 전~혀 필요하지 않다! 스스로 선악을 분간하지 못하는 애들은 설령 그 상태로 병이나 사고로 죽는다 해도 특례가 적용되어 어차피 무조건 구원 받는다. 이거라도 있으니 예수님 시절에 헤롯 왕에게 학살당한 2살 이하 애들에 대한 최소한의 위안도 된다. 유아 세례가 이 복된 교리하고 얼마나 안 어울리는지 이해가 되시겠는가?

기독교계의 여러 종파 교파들 중에 침례교가 참 역설적이게도 침례에 다른 종교적인 의미나 주술적인(?) 능력을 일체 부정하고 침례를 제일 별것 아닌(?) 것으로 취급한다! 그냥 주님께서 명령하신 독특한 신앙 고백 방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주의 만찬에서 쓰인 빵과 잔이 그냥 상징 외에 다른 아무런 주술적인 의미가 없듯이 말이다.

이거야말로 정말 성경적이며 지극히 단순하고 건전하기 이를 데 없는 교리인데, 역사적으로 이 사소한 교리 하나 지키느라고 얼마나 많은 순교자가 발생했나 모른다. 가해자가 누구인지는 내가 이 자리에서 굳이 밝히지 않겠다.

6. 히브리서의 저자

난 개인적으로 성경에서 욥기의 저자는 모세라고 생각하고,
히브리서의 저자는 바울
이라고 생각한다.

욥기의 근거는 구약을 통틀어 창세기와 욥기에만 존재하는 sons of God, being old and full of days이다.
히브리서의 근거는 바울 서신서에만 존재하는 Timothy, brotherly love, Grace be with you이다. 거기에다 킹 제임스 성경에만 존재하는 제목과 끝인사도 추가적인 증거 역할을 한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사도 바울의 서신, 이탈리아에서 써서 디모데 편으로 보냄)

욥기에 대해서는 중후반부에서 등장하는 엘리후가 자신을 1인칭으로 가리킨 부분이 있다는 이유로 인해, 엘리후가 책 전체의 저자가 아닐까 하는 설이 있다. 욥 32:16이 대표적인 근거라고 한다.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가 긴 대화를 채록했을 것이라는 점은 설득력 있지만, 저 구절은 3인칭 시점의 텍스트에서 엘리후의 말이 직접 인용된 것일 뿐이다. 욥기가 전반적으로 엘리후의 1인칭 주인공/관찰자 시점에서 기록된 건 아니며, 32장의 중간에 갑자기 엘리후의 말 인용이 끝나고 엘리후의 동작에 대한 서술로 시점이 바뀔 만한 문맥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 구절은 그냥 "제가 좀 기다려 봤는데 형님들이 아무 말씀이 없으시더군요. 그래서 저도 이렇게 마음먹었습니다. 제 의견 좀 털어놔야겠다고요."일 뿐이다. 그러니 문장에서 화자의 시점만으로 욥기의 저자를 추측하는 건 근거가 부족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하긴, 성경에서 간접 인용과 직접 인용이 한 문장 안에서 갑자기 왔다갔다 하는 유명한 구절이 있는데, 바로 행 1:4이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이 구절의 역본별 번역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란다.)

다음으로 히브리서의 경우 비록 처음에는 완전 이질적인 문체로 시작해서 정체불명이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성도들의 행실 얘기가 나오면서 바울 서신 냄새가 짙어진다.
그리고 사실은 앞부분도 마찬가지다. 구약 성경의 전반적인 원리와 맥을 잡으면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논증하는 저 심오하고 난해한 내용을 기록할 만한 실력자가 그 당시에 바울 말고 또 있었을까? 내가 읽어 본 느낌은 그렇다.

백범일지를 읽어 보면, 당시의 보안 때문에 처음에는 생뚱맞은 가명 불상의 인물이 등장하는 것처럼 나오지만, 나중에 행적을 보면 그게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대표적으로 폭탄의 공급책이던 김 홍일 장군 말이다. 성경에도 그런 식의 표현 기법이 쓰인 게 아닐까?

열왕기상하의 저자는 본문에는 전혀 나와 있지 않지만 아마 예레미야일 것이다.
예레미야서의 끝부분과 열왕기하의 끝부분이 서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여호야긴 왕의 체포)
마치 역대기하의 끝부분과 다음 에스라기의 시작 부분이 일치하듯이 말이다. (고레스 왕의 칙령)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하고 "표현의 유사성"에 최대한 의미를 둔다면, 이런 식으로 결론이 일관되게 도출된다. 창 1:2와 렘 4:23에서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가 거의 똑같이 반복되는 게 우연이 아니듯이 말이다.
계시록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은 그 정황상 모세와 엘리야의 현신이다. 에녹이 아니며 다른 이상한 사람도 아니다.

글쎄, 히브리서의 저자를 의심하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모세오경은 모세가 쓴 게 아니고, 이사야서는 40장 이후부터 제2의 다른 이사야가 썼다는 식의 썰은 도대체 왜 나오는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예수님이나 침례인 요한이나 신약 복음서의 기자는 이사야서 40장 이후의 내용 역시 아무 이질감 없이 이사야의 책, 이사야의 말이라고 버젓이 인용하는데도 말이다.

본인이(다른 모든 bible believer들도 포함) 창세기의 1~11장 내용이 다 문자적으로 사실이라고 믿고, 아담이 실존 인물이며 노아의 홍수가 실제 사건이라고 믿는 이유도 동일한 맥락에서 설명 가능하다.

굳이 지금 방주가 아라랏 산 어딘가에서 발견됐다든가 에덴 동산의 흔적이 발견됐네 하는 낭설이 없어도 된다. 예수님이 아담의 아들 아벨(마 23:35)과 노아(마 24:37-39)를 버젓이 실존 인물이라고 인증하면서 교차 검증을 하셨기 때문이다. 난 내가 예수님보다 더 똑똑하다는 모험이나 도박을 감행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Posted by 사무엘

2018/08/24 08:37 2018/08/2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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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행정구역상 한 도시는 여러 개의 동으로 나뉘는데, 규모가 큰 도시는 시와 동 사이에 '구'가 있기도 하다.
어지간한 광역시들은 그냥 동서남북구에다 중구 등, 많아야 예닐곱 개 정도 존재하지만.. 수도 서울에는 구가 10여 개도 아니고 20개를 초월하여 무려 25개나 있다.

서울 지리 좀 안다고 생각하는 분이라면 백지 상태에서 25개 구 목록을 기억에만 의지해서 다 써 보시기 바란다. 절대로 곧장 기억나지 않는 구가 한두 개는 있을 것이며, 일이 생각만치 쉽지 않을 것이다.

구가 처음부터 이렇게 무진장 많았던 건 아니다. 가령, 서초· 강남· 송파구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인서울 자체가 아니고 광주군 소속이었다. 그러다가 1963년에 지금의 서울 경계가 얼추 정해졌을 때 몽땅 성동구가 먹었으며(강남· 강북을 두루!), 1970년대에 강남 개발이 시작되면서 지금의 구가 추가로 등장한 것이다.
성동 구치소가 지금의 성동구와는 아무 관계 없는 서울 동쪽 외곽 송파구에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름 분구 시기와 출처 구청 연계 지하철역
강남 1975 (성동) 7강남구청* (500)
강동 1979 (강남) 8강동구청* (250)
강북 1995 (도봉) 4수유 (200)
강서 1977 (영등포) - (1km 이상)
관악 1973 (영등포) 2서울대입구 (300)
광진 1995 (성동) 2구의 (300)
구로 1980 (영등포) 2대림? (700)
금천 1995 (구로) 1금천구청* (150)
노원 1988 (도봉) 7노원 (350)
도봉 1973 (성북) 1방학 (250)
동대문 * 2용두 (150)
동작 1980 (관악) 9노량진 (200)
마포 * 6마포구청* (350)
서대문 * - (1km 이상)
서초 1988 (강남) 3양재 (150)
성동 * 2왕십리 (200)
성북 * 4성신여대입구 (350)
송파 1988 (강동) 8잠실 (250)
양천 1988 (강서) 2양천구청* (500)
영등포 * 2영등포구청* (100)
용산 * 6녹사평 (400)
은평 1979 (서대문) 3녹번? (700)
종로 * 5광화문 (300)
* 2을지로4가 (300)
중랑 1988 (동대문) 망우? (700)

1970년대 초에 압구정 쪽에 조성된 도산 안 창호 공원은 지금으로 치면 서울 최후의 미개발 지대라 여겨지던 마곡이나 문정 지구의 벌판에 공원을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김포 공항은 지어지던 당시에는 부지가 인서울이 아니었지만 저 때 이후로 처음엔 무려 영등포구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1970년대부터 강서구 소속으로 바뀌었다.

지금과 같은 구 체계가 모두 완성된 때는 1995년이다. 최후에 생긴 구는 강북, 광진, 금천이다.
그 반면, 대한민국 건국 직후부터 있었던 '초대 멤버, 창립 멤버'에 해당하는 구는 종로, 마포, 영등포, 동-서대문 등의 딱 9개이다.
영등포는 일제 강점기 때 경성으로 편입됐기 때문에 조선 시대 한양과의 접점이 없이도 자연스럽게 인서울이 될 수 있었다. 게다가 철도가 그쪽으로 지나기도 했으니..

보통 여권을 신청하고 발급받으려면 구청이나 시청을 찾아가면 되는데, 옛날에는 이게 서울 시내의 모든 구청에서 가능하지가 않았다.
아무 구청에서나 여권 발급이 가능해진 건 내 기억으로 2010년대에 와서부터이고, 뉴스를 검색해 보니 정확하게는 2008년 4월부터이다. 그 전에는 18개 구에서만 가능했다고 하며, 나머지 7개 구는 열외돼 있었다.

지하철역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단순히 동 이름(2차원)이나 도로명(1차원), 터미널, 대학교, 산 등의 이름뿐만 아니라 구청에서 유래된 것도 있다.
구청 이름이 대놓고 주역명으로 등재된 것으로는 강남, 강동, 금천 등 6개가 존재한다. 특히 금천구청 역은 과거에 시흥이던 것이 개명된 경우이다. 나머지 역들도 어지간해서는 부역명으로라도 구청이 근처에 있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다.

다만, 주역명에 등재된 구청이 부역명 등 그렇지 않은 구청보다 역에서 더 멀리 떨어진 경우도 있다. 강남구청과 서초구청의 관계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 주역명이냐 부역명이냐가 역에서 구청까지 실제 거리와 정확한 상관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뭐, 구청과 아주 가까이 있는 역이라도 구청보다 더 중요한 랜드마크가 있다면 그걸 주역명으로 써야 할 테니 말이다.

영등포구청이 제일 압도적으로 지하철에서 나오기만 하면 코빼기에서 보이는 위치에 있어서 주역명이 아깝지 않다.
은평, 구로, 중랑은 조금 멀다면 먼 위치이다. 서대문과 강서 이렇게 둘만이 구청이 지하철역과 연계된다고 보기 어려운 다소 외진 위치에 있다.

*. 보너스: 서울 전차도 알고 보니 운영 주체가 이원화된 적이 있었음

본인은 요 얼마 전에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꽤 흥미로운 옛날 자료를 발견했다. (☞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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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임 인식 작가가 촬영한 뚝섬 전동차 정거장. 해마다 여름이면 동대문과 뚝섬을 오가는 전동차는 사람들로 꽉 찼다.)

옛날엔 뚝섬이 반쯤 섬 취급을 받았으며, 골프장과 경마장이 있던 서울 교외 유원지(지금의 서울숲)였다. 서울 서쪽 외곽의 난지도(지금의 하늘 공원 일대)가 신혼여행 코스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 시절엔 한강의 서울 시내 구간도 콘크리트 제방이 없이, 백사장이 펼쳐진 반쯤 해수욕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건 그런데 엥? 동대문과 뚝섬을 오가는 전동차라니? 디젤 동차도 아니고?

1955년이면 6· 25 사변이 휴전으로 끝난 지 3년이 채 안 되었던 정말 엄청난 옛날이다. 지하철이고 광역전철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서울에 궤도 교통수단이라고는 서울 노면전차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서울 전차에 승강장이 저렇게 생겼고 뚝섬으로 가는 전차 노선이 있었다는 소리는 난 지금까지 들은 적이 없었다. 전차는 서울의 구시가지인 서쪽의 마포, 아니면 차라리 강 건너서 영등포 쪽으로 갔지 웬 뚝섬으로 갔단 말인가?

연도나 장소의 기록이 잘못된 게 아닌가 의심스러워서 검색을 해 봤다.
알고 보니 그 시절엔 "서울(경성) 전차" 말고 "경성 궤도"라고 도심과 교외를 잇는 지상 전차 노선이 하나 더 있었다. 서울의 동대문 바깥으로, 왕십리, 지금의 뚝섬과 뚝섬 유원지, 광장동 일대를 다녔다고 한다. 오오~

얘는 사대문 안 위주의 도심을 다니던 서울 전차보다 늦게 추가적으로 생긴 물건이며, 운영 회사도 경성 전기 주식회사 vs 경성 궤도 주식회사로 서로 달랐다. 마치 서울 지하철이 과거에 서울 메트로 vs 서울 도철로 운영사가 나뉘었던 것처럼 말이다. (뭐, 해방 후에는 동일하게 서울시 직통 관할로 바뀌었다고 한다)

얘는 동대문에서 시작해서 말 그대로 뚝섬 유원지까지 갔는데, 중간에 분기하여 화양동· 광장동으로 가는 지선도 있었다.
또한 서울의 초창기부터 있었던 성동구 지역을 경유하는 노선답게 '성동'이라는 이름의 정거장도 있었다. 과거의 사철 경춘선의 시발역도 성동 역인데 무척 흥미로운 점이다. 다만, 제기동 인근에 있는 경춘선 성동과는 달리, 경성 궤도 성동 역은 지선 분기점인 한양대 근처에 있었다.

두 성동 역은 모두 1960년대 중반~70년대 초에 모두 폐선· 폐역되어서 오늘날은 흔적도 안 남았다.
참고로 서울 전차들은 모두 1067mm 협궤였다. 저 사진에 나온 경인 궤도 노선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처음부터 1435mm 표준궤로 개통했던 경인선과는 대조적이다.

모처럼 새로운 철도 역사 지식을 하나 건졌다.
오늘날은 한강 공원 내부에다가 실외 수영장을 따로 설치해서 물놀이 비슷한 기분이나 내는 게 고작인데.. 한강 본류에서 곧장 속옷 바람으로 물놀이를 하고, 잠실이고 여의도고 몽땅 미개발 뻘밭이던 옛날 시절이 지금으로서는 굉장히 이질감이 느껴진다. 믿어지지 않고 실감이 안 간다. 아래 사진은 무슨 인천 앞바다 해수욕장의 모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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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신설동 이후부터 시작하는 천호대로는 종로에 준하는 6~10차로 규모의 매우 큰 간선 도로임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즉 노면전차는 모두 이미 없어지고 지하철이 대신 생긴 뒤에야 건설되고 개통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은 전차 같은 게 다닌 적이 전무하다. 전국에서 최초로 중앙 버스 전용 차로가 개통한 역사적인 길인 것치고는 의외의 내력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8/21 08:38 2018/08/2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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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어떤 기계가 발명되면, 보통은 커다란 공용 기계의 형태로 먼저 만들어졌다가 그게 소형화 양산형이 나오면서 개인용으로도 뒤따라 보급되곤 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대량 수송 대중 교통수단인 증기 기관차부터 먼저 등장한 뒤에, 더 작은 자동차는 나중에 발명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개인 자가용 시대는 생산 프로세스를 더 체계화해서 차의 단가를 더욱 낮춘 뒤에야 열릴 수 있었다.

무기 중에 화약을 사용하는 열병기만 해도 대포는 진작부터 등장했다. 그 대신, 더 작은 개인 화기나 권총 같은 건 훨씬 더 나중에 발명되었다.

컴퓨터는?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거대한 컴퓨터에 접속하는 단말기 형태로 운용되던 것이 지금은 집집마다 호주머니에 고성능 컴퓨터 겸 인터넷 단말기를 넣어 다니는 형태로 바뀌었다. 옛날 방식으로 컴퓨터의 가격을 생각하던 기술자나 경영자는 '개인용 컴퓨터'라는 개념 자체를 생각하기가 쉽지 않았다. "컴퓨터에 메모리는 640KB 정도면 충분하지"가 옛날에는 단견이 결코 아니었다.

그럼 다시 교통수단 얘기로 돌아오기로 한다.
'개인용, 자가용 교통수단'이라는 말이 가장 친숙한 분야는 아무래도 육상 자동차이다. 5인승 승용차라는 장르가 있으며, 체급도 경차부터 VIP· 갑부용 슈퍼카까지 아주 다양하다.

승용차 중에서 개인 택시는 대중교통인지 기사의 자가용인지 분류가 약간 모호해 보인다만, 번호판이 '바사아자'라면 여전히 영업용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 밖에 개인용 트럭이나 트레일러를 모는 프리랜서 트럭 기사라면 자가용 차량이 직접적인 생계 수단이기도 하겠다. 비행기 조종 면허에다 비유하자면, 자가용을 넘어 사업용 등급이 되겠다.

돈 있고 주차 공간만 있다면 개인이 트럭뿐만 아니라 버스도 얼마든지 자가용으로 구입 가능하다. 하지만 개인이 버스를 굴리면서 여기저기 연락을 받고 단체 승객을 운송하거나 셔틀 역할을 하는 사례는 없는 것 같다. 버스를 전세 내는 건 아무래도 개인이 아닌 회사 단위로 거래하니 말이다.

단, 대형 버스를 자가용으로 구매해서 다른 운송(생업)용으로 쓰는 게 아니라, 버스 안에다 살림살이를 차리고 완전히 가정집을 꾸며 놓은 용자가 몇 년 전에 매스컴을 탔었다! 다른 외국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 얘기다.
SUV나 픽업트럭 정도만 장만한 뒤에 별도의 캠핑카를 구비해서 차로 견인하는 게 아니라, 버스 내부를 통째로 개조했다니.. 근성이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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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버스 안에서 가장인 남편뿐만 아니라 부인과 아이가 같이 산댄다. 저렇게 부부가 지방의 국도를 타면서 산 좋고 물 맑은 자연을 찾아 다니면 참 낭만적이긴 하겠다. 다만, 대형 버스를 자주 오래 굴리면 기름값을 포함해 유지비가 굉장히 많이 나오는 걸 감안해야 할 것이다.
일단, 정기적으로 캠핑장 같은 델 들러서 물 보급을 받아야 한다. 차내에 화장실이 있으면 정화조도 주기적으로 청소해야 할 것이고..

시동을 끈 채 오랫동안 차내에서 지낸다면 전기 공급도 걱정해야 한다. 여름에 에어컨이라도 켜려면 굳이 이동을 하지 않더라도 차 시동을 걸어서 공회전을 해야 할 텐데..
더구나 환경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자동차 엔진에서 '덤'으로 만들어 주는 전기는 전문적인 발전소 전기보다 훨씬 더 비효율적이며 생산 단가가 높다. 기름값을 생각했을 때 말이다. 이런 것들이 자동차의 거주성과 관련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또한, 이분들은 그래도 법적으로 붙박이 거주지가 전혀 없을 수는 없을 텐데 주민 등록은 어디로 해 놓는지, 그리고 부인은 그렇다 쳐도 남편분은 평일에 생업은 어디에서 어떻게 종사하는지 모르겠다. 뭐, 건물주 내지 갑부 집안 출신이어서 딱히 일 안 해도 된다는 말도 있긴 하더라.. 그러니 애초에 버스를 구입해서 이렇게 개조할 여유도 있었고 말이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차에서 사는 건 본인도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로망이다. 버스가 아니면 트럭에서라도 말이다.

자동차가 아닌 철도에서 '자가용 차량'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철도에서 가장 private한 영역인 사철이라고 해 봤자, (1) 정해진 시각표에 따라 대중교통을 운영하는 사기업 아니면 (2) 거대한 공장이나 발전소의 내부 및 근처에 부설된 부정기 화물 수송용 철도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도 아니면 아니면 유 병언 씨처럼 퇴역한 철도 차량을 사비로 구입해서 식당 같은 건물로 개조해서 써먹는다거나 하는 정도..

개인이 엔진 달린 자그마한 레일바이크 같은 걸 구비해서 경부선 어디부터 어디까지 가고, 어느 역에서 장항선으로 갈아타겠다는 식으로 시간대별 통행 계획을 철도 관제 센터에다 신고하고, 관제료와 선로 사용료를 지불하여 통행 허가가 나면 움직이는.. 그런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철도는 그 어느 교통수단보다도 잘 통제되고 계획된 관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으니.. 가까운 미래에는 정규 열차가 지나고 남는 틈새 트래픽을 최대한 활용해서 철도를 기반으로 자가용까지는 아니어도 택시 급의 교통수단 정도는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이건 어떤 형태로든 100% 무인 자동 운전이지, 일반인이 레일 위에서 교통사고를 낼 기회나 여지 따위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비행기는 사정이 어떨까?
미국 같은 나라에서 사는 게 아니라면, 대다수 서민들에게는 한번 타는 것조차도 보통일이 아닌 비싼 교통수단이다. 그러니 공항은 군 공항이 아닌 민간 공항이라면, 수십 개의 항공사들이 입주하는 대중교통 위주로 운영된다.

하지만 소수의 억만장자들, 혹은 석유 덕분에 돈 썩어나는 아랍권 왕족들, 정· 재계 VIP들은 전용기를 갖고 있다. 헬리콥터 수준이 아니라 아예 제트기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따로 움직여 주는 게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도 민폐 덜 끼치고, 경호하기도 쉽고 좋다.

자가용 비행기를 몰고 날아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네임드급 공항에는 '일반 항공용' 급유· 정비 시설과 전용 출· 입국 터미널이 개설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16년에 김포 공항에 자가용 비행기용 '비즈니스 항공 센터'가 개설된 바 있다.

자가용 비행기를 타면 다른 승객들과 섞일 일 없고, 스케줄에 구애받지 않고 하루에 여러 나라들을 징검다리 건너듯 마음대로 방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돈이 썩어빠지면서 한편으로 그렇게까지 바쁘게 세계를 누벼야 될 정도로 영향력 있는 능력자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그리고 비행기를 직접 굴려 보면, 이전까지 항공사에서 알아서 처리해 주고, 항공권 티켓 값에 포함되어 여러 승객들이 나눠서 내던 제반 비용들이 전부 자기에게 혼자 일시불로 날아오게 된다. 영공 통과료, 공항 착륙료(시설 이용 비용), 주기료 등등.. 자동차의 고속도로 통행료나 간단한 주차비 정도를 생각했다가는 큰코다친다.

지금이 무슨 100여 년 전의 린드버그처럼 그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하늘을 마음대로 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너 말고도 비행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너무 많으며, 미확인 위험 비행 물체를 떨굴 수 있는 시설도 너무 많이 갖춰져 있다. 온갖 곳에다 신고하고 허가를 받고 요금을 내야 한다.

헬기도 아니고 제트기는 공항이 아닌 아무 곳에나 마음대로 착륙할 수는 없을 테고 결국 VIP가 최종 목적지에 가서 볼일을 보고 돌아올 때까지는 비행기를 그 도착 공항에다 세워 놔야 된다. 그리고 그 비행기는 지상에 있는 동안은 계속해서 돈 먹는 하마가 된다..;; 아주 대략적으로만 짐작해도 매일 몇십만 원 단위로 깨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비행기를 굴린다는 게 그만치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 테이큰에서 딸이 납치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브라이언은 딸의 새아버지 스튜어트의 자금빨 덕분에 전용기를 타고 곧장 프랑스로 날아가는데.. 이것도 현실에서는 보통일이 아니다.. 딸 하나 구하기 위해 투입된 자금이 이루 말할 수 없고 죽은 사람도 몇십 명에 달한다.. ^^

마지막으로 선박은 사정이 어떨까?
보트나 카누 급의 너무 작은 배 말고, 그리고 유람선이나 화물선 이상의 너무 큰 배도 제끼고.. 현실에서는 개인 소유의 어선 정도가 생업 터전인 동시에 어느 정도 거주성도 갖춘 좋은 예이다. 어선 등록을 위해서는 법적으로 갖춰야 할 시설이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참고로, 본인 같은 직장인이야 회사 워크숍 가서 낚시 체험 같은 거 할 때 어선 타 본 게 전부이다.

툼 레이더 Underworld를 보면 태국 연해 레벨에서 주인공 라라가 자가용 요트(이름이 정확하나?)를 타고 와서 게임을 진행하다가 다시 그걸 타고 돌아간다. 저 정도의 배만 있어도 안에서 자고 지내기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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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너스: 교통수단이 건물로 완전히 개조된 경우

지금까지는 교통수단이 이동과 수송이라는 자기 본래 역할을 수행하면서(동태보존?) 소유자의 주거 공간 역할도 덤으로 하는 예를 살펴봤다. 그런데 좀 큼직한 교통수단 중에는 내구연한이 다하여 퇴역한 뒤에 아예 붙박이 건물 형태로 개조된(정태보존?) 경우도 있다. 그런 물건은 개인용 주택보다는 식당· 카페 같은 상업 시설로 활용되는 편이다.

열차: 강원도 고성 통일 전망대에 낡은 기관차와 객차 편성이 식당· 카페로 개조되어 있다. 그리고 정선선 아우라지 역 광장에는 객차 한 량이 어치 모양 껍데기와 함께 카페로 개조되어 있으며, 구절리 역에는 레일바이크뿐만 아니라 과거에 쓰이던 침대차들이 그대로 여관으로 개조된 것도 볼 수 있다.

여객기: 2018년 현재 국내에서 이 분야의 본좌는 대구 수성못 근처에 있는 비행기 카페이다. 국내 항공사에서는 운용한 적이 없고 세계적으로도 매우 보기 드문 록히드 마틴 L-1011 Tristar 삼발기를 어째 구해 왔는지 몹시 신기할 따름이다.
회색 도색인 건 옛날 사진이고, 2017년 이후부터는 노란 러버덕 도색이 씌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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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려 1993년에 퇴역한 보잉 747의 완전 초창기 기체가 놀랍게도 한국으로 매각되어서 한때는 남양주 호평동 소재의 경춘국도 근처에 놓여 있었다. 기체는 냉면집 식당으로 쓰였으나, 그로부터 얼마 못 가 가게는 망하고 기체는 녹슨 채 흉물스럽게 방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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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기체는 뒷부분이 짤려서 고철로 해체되었다. 하지만 나머지 파트는 남양주 와부읍으로 옮겨져서 웬 교회 건물에 쓰이기도 하다가 2017년부터는 대한 항공 비스무리한 도색이 새로 칠해지고 작은 항공 박물관으로 꾸며졌다고 한다.
요컨대 그 747 기체는 처음에는 위의 사진에서 왼쪽 모양이다가 훗날 오른쪽 모양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은 오른쪽 모양도 아닌 상태이다.

한편, 선박은 선상 레스토랑 같은 예가 훨씬 더 많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형 버스나 트럭, 트레일러를 개조한 건물도 있을 것 같은데 국내에서 본인이 당장 떠오르는 예는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8/08/18 08:36 2018/08/1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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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이야기

1. 석유를 나타내는 말

세상에 기름은 돼지 기름이나 버터 같은 동물성이 있고, 씨앗을 짜서 만든 식물성이 있으며, 한편으로 신기하게도 석유 같은 광물성이 있다. 석유는 사람이 먹을 수는 없지만 연소 내지 폭발할 때의 화력이 매우 좋아서 동력과 난방용 연료로 쓰이며, 플라스틱 같은 화합물을 만들 때도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한국어에서는 석유라는 단어의 어원이 말 그대로 '돌+기름'인데, 이는 영어 petroleum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앞부분 petro- 는... 진짜 말 그대로 성경의 '베드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베드로'가 무슨 뜻인지는 교회깨나 다닌 사람에게는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으리라. 정말 한국식으로 치면 돌이, 돌쇠에 딱 대응하는 이름이다. 乭이라고 한국식 한자까지 있다.

성경에는 '게바'(cephas)라고 해서 베드로의 히브리/시리아 식 번역 명칭도 요한복음과 고린도전서에서 몇 차례 나오는데, 둘 다 딱 stone이라는 뜻이다. 교회의 밑바탕을 가리키는 반석(페트라~~)보다는 개념적으로 작은 단어이며, 교회가 베드로의 위에 세워진 거라고 둘러대는 건 좀 말장난 오바이다. 아무튼..

petro 다음으로 oleum은 평범한 기름 oil이라는 뜻이고.. 그러니 petroleum은 그냥 '돌+기름'의 한자어 대신 라틴어 버전인 것이다. "일석" 이 희승과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미국식 영어에서는 이 단어를 잘 안 쓰고 어지간하면 다 '가솔린'에서 유래된 gas라고 싸잡아서 말한다. 좀 더 격식을 차린 영국식 영어에서나 석유 내지 주유소를 가리킬 때 "petro-"가 붙은 말을 쓰는 편이라고 본인은 들었다.

석유 원유를 분별 증류하여 나온 다양한 기름들 중, 오리지널 원유와 제일 밑의 중유만이 시커멓다.
휘발유와 LPG, 등유는 별도의 색소가 들어가지 않은 한 완전 무색 투명하며, 경유는 약간 노리끼리하다. 엔진 오일 정도 되면 좀 갈색에 가까워진다.

2. 국내 자원 사정

우리나라는 무슨 쿠웨이트나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땅에서 석유가 펑펑 나고 전국민이 세금을 안 내도 될 정도인 그런 곳은 아니다. 다만, 원유를 수입해서 종류별로 잘 정제한 석유를 다시 수출해서 외화를 벌기는 한다. 이것도 나름 첨단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해에서 천연가스와 석유를 소량 채굴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시 영토· 영해를 통틀어서 기름이 단 한 방울도 전혀 안 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산유국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민망한 양이며, 몇 군데 개척한 유전 역시 곧 고갈이 예상된다. 화력과 원자력 대비 풍력· 태양력의 전력 생산량과 비슷한 비율이다.
그러니 큰 그림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석유가 나지 않으며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 지구가 적도 부분이 수십 km 남짓 더 길다고 해서 지구가 대체로 '구'인 사실은 변하지 않듯 말이다.

우리나라에 아주 많이 매장돼 있는 건 석유 대신 석탄이다. 그것도 남한 땅에 많이 있는 건 증기 기관이나 화력 발전, 제철 같은 동력· 산업용으로 적당한 역청탄· 갈탄류가 아니라 연탄으로 만들어 가늘고 길게 오래 태우기에 적합한 무연탄 위주이다. 하지만 무연탄은 난방 인프라가 가스로 바뀐 뒤에는 크게 쓸모가 없으니 난감한 일이다.

그래서 국내에서 석탄 채굴은 진작에 한물 간 사양 사업으로 간주되어 국가 차원에서 구조조정 됐다. 강원도 경제를 살리려고 강원랜드가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끝으로.. 무연 휘발유 할 때의 '무연'은 연기(煙)가 아니라 납(鉛) 성분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석탄에서 무연탄은 진짜로 연기가 없다는 뜻이다. 석탄과 석유의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우리나라에 무연 휘발유가 처음 도입된 건 1987년 7월 1일부터이다.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가 도입된 시기(7월 6일)와 아주 비슷하다.
이때부터 새로 생산되는 차들은 무연 휘발유만 사용하게 조치가 취해졌으며, 5년 반 동안의 과도기를 거친 뒤 1993년 1월부터는 기존 유연 휘발유의 판매와 유통이 전면 금지되었다.

다시 말해 국내의 주유소에 "보통 휘발유/무연 휘발유"가 공존하던 시절은 딱 저 때.. 노 태우 시절과 거의 정확하게 오버랩 된다고 생각하면 정확하다. 응답하라 1988에는 그 고증이 반영돼 있었나 모르겠다. 이때 휘발유 값은 리터당 5~600원 이랬지 싶다.

옛날에는 수은이 건전지와 온도계에 쓰였지만(수은주) 지금은 안전 문제 때문에 안 쓰이고.. 석면이라든가 프레온 가스도 이제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그와 마찬가지로 유연 휘발유도 노킹 방지를 위한 '납' 성분 첨가제가 문제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3. 석유 비축 기지

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근처에 있는 지금의 하늘 공원이 옛날에는 '난지도'라는 하중도였으며, 오랫동안 쓰레기 매립장 역할을 해 왔다. 그 언덕 자체가 사실은 쓰레기 산이라는 게 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거기 근처에는 '매봉산'이라고 인공이 아닌 자연 언덕도 하나 있는데, 거기 기슭에는 난지도 쓰레기장이 조성된 시기와 비슷한 1970년대 중후반에 석유 비축 시설이 만들어졌다. 저 때는 오일 쇼크 때문에 국가적으로 상당한 경제 타격을 입은 상태였으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석유 비축량을 더 늘려야겠다고 충분히 생각할 만도 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쓰레기장에다 석유 기지까지.. 저기엔 서울 최외곽으로서 민간인 출입금지 님비 시설만 골라서 들어서게 됐다. 그러다가 지금은 더 버틸 수가 없어져서 난지도는 저 멀리 김포의 수도권 매립지로 대체되고, 석유 저장고 역시 다른 곳으로 이사 갔다. 서울 근교에 있던 군부대와 공장이 더 외곽으로 이사 가는 것과 동일한 현상이다.

그리고 매봉산에 있던 석유 비축 기지는 작년부터 잘 알다시피 문화 시설로 탈바꿈 중이다. 그렇게 하는 게 주변의 월드컵 경기장 내지 각종 공원들과도 잘 어울린다.

그럼 지금은 서울· 수도권 근교에 석유 기지가 전혀 없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서울의 동쪽 끝에 있는 아차산에서도 또 동쪽 기슭.. 행정구역상으로는 구리시에 한국 석유 공사에서 관리하는 기지가 있다. 보안 시설 기간 시설이니 지도에는 당연히 표시돼 있지 않으며, 산 속에서도 잘 숨겨져 있기 때문에 정규 등산로만 다녀서는 이런 게 있는 줄 눈치 채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조직 구조가 어찌 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한국 석유 공사는 옛날 유공(대한 석유 공사, 현재는 SK 에너지)과는 뿌리가 다른 공기업이다.
하긴, 학회 이름만 해도 분야가 비슷한데 "대한 ..학회"랑 "한국 ..학회"가 서로 따로 노는 경우가 있다만..

옛날엔 냉동 기술이 없었던 관계로, 여름에 얼음은 굉장히 비싼 사치품이었다. 석빙고니 동빙고· 서빙고 같은 창고를 만들어서 겨울철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얼음을 국가 차원에서 비축해서 관리해야 했다. 그리고 왕이나 외국 사신 같은 국빈 VIP가 납셨을 때에나 얼음보숭이를 만들어서 대접했을 정도였다.

그랬는데 이제 얼음은 가정집 냉동실에서도 만들고 구경할 수 있는 존재가 됐고, 얼음이 아니라 그 냉장고를 돌리는 전력 생산의 원동력(중 하나)인 석유를 국가에서 관리하게 된 셈이다.

4. 송유관

우리나라는 경제가 발전하고 자동차가 엄청 많이 보급되면서 석유의 소비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그래서 그 많은 석유를 유조차만으로 수송하는 것에 한계에 부딪히자.. 사람으로 치면 지하철을 건설하는 것과 비슷한 조치가 석유를 대상으로도 취해졌다. 바로 지하 송유관 건설이다.

장거리 송유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1980년대부터 하다가 1990년에 대한 송유관 공사가 설립됐다. 지하철로 치면 마치 서울 메트로나 서울 도시철도 공사가 창립된 것처럼 말이다. 이때까지 국내에는 서산-천안처럼 항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단거리 송유관 몇 군데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992년 말에야 인천과 김포 공항, 인천과 고양을 잇는 '경인 송유관'이 개통했으며 1997년 8월에 서울에서 울산-여수를 잇는 '전국구 송유관' 인프라가 완공됐다고 한다.
이걸 다 만들었다고 해서 송유관 공사가 할 일이 다 끝난 건 물론 아니다. 만들어진 송유관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기름 도둑을 잡아 내는 똑똑한 기술을 개발하고, 또 외국의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하기도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8/08/15 08:37 2018/08/1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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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늘의 왕국 kingdom of heaven
미래에 이 지구상에 물리적으로 문자적으로 실현될 정교일치 통치 체제. 하드웨어.

계시록 20장이 말하는 일명 천년왕국이 이것이다. 창세기 1장의 6일이 문자적인 6일인 것과 동일하게 계시록 20장의 천 년은 다 문자적인 1000년이다.

예수님의 초림 때 유대인들이 그분을 영접했으면 교회 시대 없이 세상 경륜이 곧바로 이렇게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음으로써 도래 시기는 교회 시대+대환란+예수님 지상 재림 이후로 미뤄졌다.
구원받고 몸이 변화된 사람들은 이 왕국에서 지배 계층이 되고, 그렇지 않고 대환란 때 단순히 생존만 한 사람들은 여기서 수명만 늘어난 피지배 계층이 된다.

안 그래도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면 뭐가 이리 죄악이 만연하고 착한 사람들이 못 살고 이렇게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은 당연히 이 세상을 언제까지나 그렇게 방치하지 않는다. 성경의 주제는 왕국이며, 예수님은 공의가 철철 넘치는 세상을 이 땅에 실제로 만들어 주실 것이다.

그때 피지배 계층은 최상의 환경에서 믿음에다가 마 5-7 산상설교를 지키는 급의 엄청난 행위를 쌓아서 구원받아야 한다. 예수님이 시퍼렇게 물리적으로 철권통치를 하고 있으니 그 존재 자체가 지금 같은 신앙의 대상이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드웨어적인 왕국 하에서는 구원의 조건도 믿음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것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적인 방법이 가미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2. 하나님의 왕국 kingdom of God
구원받은 성도의 신분 내지 영적 상태 관점. 소프트웨어.

이것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영적으로 명목상 소속되는 왕국이다. translate의 용례 중 하나인 골 1:13도 이것을 말하며, '소프트웨어, 영적' 이런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왕국은 마음 상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롬 14:17, 고전 4:20, 고전 15:50).

단, 이 때문에 1과 3 같은 다른 왕국까지도 문자적으로 실존하는 장소가 아니라고 오해를 받기도 한다. (눅 17:21 등)
그리고 예수님의 초림 당시에는 1과 2의 구분이 뚜렷이 계시되지 않았던 관계로, 성경에는 둘이 섞여 쓰인 듯한 용례도 있다. (마 19:23-24)  어차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중 하나라도 없는 컴퓨터는 성립할 수가 없을 테고, 두 왕국 다 통치자는 동일하니까 그 시절의 계시 수준으로는 한데 뭉뚱그려 생각하는 게 가능하다. 이때는 하나님의 왕국이 그 특성상 보편적인 '교회'와 비슷한 용례로 쓰이기도 한다.

다만, '하늘의 왕국'이라는 용어는 오로지 마태복음에서만 등장한다. 그리고 덩치는 커지지만 본질이 변질된다는 식으로(겨자가 나무가 되어 새들이 앉는 것, 부푼 누룩 등.. 긍정적인 얘기 아님.) 부정적인 비유로 등장하는 대상 역시 하나님의 왕국이 아니라 하늘의 왕국이다.

3. 하늘 왕국 heavenly kingdom
성도의 내세 관점. 하이브리드웨어??

저기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이다. 옛날 용어로는 '천당'이라고도 불렀다. 딤후 4:18에서 딱 한 번 나온다. ('천국'이라고 하면 이거랑 1 kingdom of heaven이 혼동될 여지가 좀 있음.)

이곳은 셋째 하늘(고후 12:2)이요, 지옥의 반의어이다. 왜 셋째냐 하면 지구 대기권의 창공(1 sky)과 그냥 어두컴컴한 우주(2 space/universe)의 다음 계층이기 때문이다. heaven은 한편으로는 세 종류의 하늘들을 모두 포함하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제3계층을 주로 지칭하는 용어인 것이다.

한국어는 sky와 heaven에 대한 구분이 기본적으로 없으며, 사실 영어에서도 너무 구닥다리이고 종교색이 짙은(?) heaven을 기피하는 추세이다. "Imagine there's no heaven.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이런 가사처럼 말이다. 신자들은 그런 건 하늘에 대한 소망을 부정하려는 수작이라고 생각하고 적절히 대처하면 된다.

이곳은 내세의 장소이지만 무작정 '비가시적/영적'이기만 한 게 아니며, 일단 물리적으로도 실존한다고 여겨진다. 지옥이 지구 내부의 실존 장소인 것과 같은 맥락에서다. 지옥이 지구 안의 극단적으로 깊은 곳에 있다면, 저 heaven은 과학에서 말하는 소위 '관측 가능한 우주'의 영역 밖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까마득히 먼 곳에 있는 heaven과, 지구 바로 아래에 있는 hell은 마치 해와 달이 서로 다른 것만큼이나 다르다고 생각하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해와 달은 지구에서 언뜻 보기에는 비슷하게 생긴 두 광체이지만 물리적인 특성--크기, 지구에서의 거리, 주성분과 내부 구조..--은 서로 완전히 극과 극으로 다르니 말이다.

종합하자면, 하나님의 왕국에 먼저 소속된 사람이 훗날 하늘 왕국으로도 가는 셈이다. 그러니 이 둘은 지옥-불못만큼이나 서로 연계가 된다. 단지, 하늘의 왕국을 경험하는 건 그 사람이 먼저 죽느냐, 아니면 죽음을 경험하지 않느냐에 따라 순서가 달라진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 관심을 두고 이를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는 매우 정치적인 책이다. 이것에 비해서 겨우 인류의 구원(?)은 사전 준비 작업에 가까우며 너무 원초적이고 지엽적인 주제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하나님의 왕국의 실질적인 의미를 혼동한 나머지 세상 정부 자체를 싹 거부하고 집총까지 거부하고 있다. 반대로 성경에 쓰여 있는 문자적인 왕국을 문자적으로 믿지 않는 반대편 극단도 있다.

하나님의 경륜에서 교회의 등장은 예전에 구분할 필요가 없던 여러 개념들을 세분화시키면서 성경 해석을 꽤 다채롭게 만들었다. 옛날에는 컴퓨터라는 일체형 기계 하나만 생각하면 되던 것이 나중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구분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 과정에서 유대인과 교회를 제대로 구분 못 한 이상한 이단들도 많이 생겨 있다.

사실, 이 두 그룹은 설령 지옥에 가지 않고 똑같이 구원받았다 하더라도 해피엔딩을 맞이하여 영원을 보내는 장소조차도 서로 다르다(새 하늘과 새 땅 vs 새 예루살렘).
왜 new라는 수식어가 붙었는가 하면, 저건 현재 있는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땅과 각종 물질들이 미래에 싹 다 불로 심판받고 멸망한 뒤에 다시 창조되어 등장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베드로후서 3장을 참고할 것. '물의 넘침으로 멸망' 문맥이 겨우 노아의 홍수라고 생각해서는 저런 개념을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다. 새 하늘은 기존 셋째 하늘과 통합되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heaven에 계층 구분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다음으로 계시록 21장~22장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은 거듭해서 신랑 신부에다 비유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구원받은 교회 성도들을 위해 아주 특별히 만들어진 삐까번쩍한 도시이다. 단순한 자연 환경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능가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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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y, z축이 모두 12000 스타디온이라고 구체적인 크기까지 나와 있는데, 이는 오늘날의 단위로 환산하면 2200~2300km 정도 된다. 이 정도면 명왕성과 비스무리한 크기이다. (지구의 지름은 약 12700km) 단, 새 예루살렘은 여느 천체와는 달리 구가 아니라 정육면체 또는 사각뿔 형태이며, 사람들은 겉의 표면에서 사는 게 아니라 속을 꽉꽉 채우며 살게 된다. 중력에 대한 개념이 우리가 아는 통상적인 자연계와는 다르다.

이 크기의 공간에 역대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구원받은 크리스천들이 들어가서 사는 게 가능할까? 마치 방주의 크기와 비슷한 떡밥이다(동물들이 몽땅 들어가는 게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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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8/08/12 08:35 2018/08/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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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는 이야기와 생각들

소사-원시, 서해선이 이미 지난 6월 중순에 개통했구나! 철덕답지 않게 완전 깜빡 잊고 있었다. 광역전철 동해선은 부산권에 있지만 서해선은 수도권에 있다. 노선색은 서울의 우이 경전철과 비슷한 녹색이다.
이것 말고 올여름 휴가 이후 본인의 머릿속을 거쳐 갔던 경험과 아이디어들을 다음과 같이 두서없이 나열해 본다. 어쩌다 보니 경제 쪽 얘기도 나왔다.

1. 경제 양상

  •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셀프 주유소라는 건 극히 드물고 생소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급증해서 대세가 돼 가고 있다.
  • 종로 한복판 건물들에 "임대 문의" 상태인 공실이 이렇게 많은 걸 보고 놀랐다. 나중에는 이 공실들을 국가에서 매입해서 이런 식으로 부동산 국유화라도 실현할 것 같다.
  • 패스트푸드점들은 요 1년쯤 전부터 이제 키오스크 기계로 주문을 안 할 수 없게 됐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직원에게 직접 주문하는 것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불편하다.
  • 편의점 계산대의 직원이 예전엔 전부 나보다 어린 알바생이었는데 지금은 다들 중장년 어르신으로 바뀌었다.

지하철 개찰구와 매표소에 직원이 몇 년 전에 진작에 사라졌던 것처럼.. 이들 변화 중에 일부는 기계화· 무인화 추세로 인해 비정치적으로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도 있다.
그러나 비현실· 비정상적으로 상승한 인건비 때문에 그런 변화가 더 가속화되고 부추겨진 것도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임대료나 카드 수수료 탓만 할 게 아니다.

2. 무더위

올해의 폭염은 드디어 1994년 폭염까지 압도하면서 관측 사상 역대 최고 기온 기록을 수립했다. 낮 최고 기온의 10자리가 3이 위태롭고(40도), 밤 최저 기온의 10자리에 2가 위태로운(30도) 지경이 됐다. 너무 더워서 오히려 해수욕장 인파가 줄어들 정도이고, 심지어 모기조차 자취를 감춘 것 같다. (땀과 이산화탄소가 있는 곳은 언제 어디서든 기가 막히게 달려오니, 이거 뭐 옛날 사람들이 자연 발생설을 괜히 믿었던 게 아닌 듯..)

아침에 일어나서 코와 피부 상태를 살펴보면 습도가 막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건조 고온일 때는 일교차가 커서 밤에라도 시원해지는 편인데 올해는 지구 표면이 태양의 반대편으로 돌아섰을 때에도 어쩜 이렇게 계속해서 더운지 모르겠다.

이 와중에 원전 다 망가뜨리고, 그 대신 북괴 땅을 통과하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북괴산 석탄으로 화력 발전을, 산림 마음껏 파괴하는 태양광 발전을 돌려서 어디 한번 에어컨 잘 가동해 봤으면 싶다. 누가 들으면 4대강에만 특혜· 비리가 가득하지, 태양광 발전판 납품은 지저분한 관행이 전혀 없을 줄 알겠다.

3. 냉난방

요즘 자동차들은 똑똑해서 평지에서 "가속 → 타력 주행과 함께 감속 → 재가속"을 반복하는 것보다, 액셀러레이터를 아주 약하게나마 계속 밟으면서 적은 힘으로 등속을 꾸준히 유지하는 게 연료가 덜 든다고 한다.

그런데 동일한 원리가 냉난방 설비인 보일러와 에어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보일러도 그냥 온수 모드로 켜 놓고 잊어버리는 게 낫고.. 에어컨도 적당히 높은 온도에서 상시 켜 놓는 게 어설프게 껐다 켜기를 반복하는 것보다 전기가 덜 든다. 완전히 높아져 버린 온도를 새로 낮추는 게 자동차로 치면 멈춘 상태에서 가속만큼이나 아주 힘든 일이긴 한가 보다.

4. 아는 것이 힘

보이스피싱이야 요즘 수법이 하도 많이 알려졌다 보니, 이제 문명의 이기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 외에는 어지간해서는 속는 사람이 없다. 다짜고짜 돈을 어디로 보내라거나 보안 카드 번호를 다 입력하라는 무식한 주문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나마 근래에까지 사용되어 온 그럴싸한 수법은 법원· 검찰 직원 사칭이다. 당신이 지금 사기 범죄에 연루됐으니 혐의를 벗으려면, 오해를 풀려면, 니 계좌에서 돈이 몽땅 인출돼 털리는 피해를 막으려면.. 돈을 다른 안전한 계좌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데, 여차여차 하면서 결국 대출 얘기가 슬쩍 나오는가 보다.

이런 부류의 낚시에도 절대 속을 필요 없다. 정부 기관이 일반인에게 저런 식으로 접근해서 그 따위 요구를 할 일이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법과 관련 규정을 조금만 알면 속을 일이 없는데 사람들이 몰라서 당하기 쉬운 것에 대한 홍보가 더 필요해 보인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견인차는 법적으로 긴급자동차가 전혀 아니라는 것, (걔들도 교통법규를 다 지켜야 함, 우리가 일부러 비켜 줄 필요 전무함)
택시에 목적지부터 들은 뒤에 구두에 의한 조건부 승차 거부는 불법, 그리고 현금영수증 발급 거부도(현금이 더 싸고 카드는 더 비싼 것까지 포함) 탈세와 연루된 완전 불법이라는 것 말이다.

그리고 피서철에 경치 좋은 계곡의 전망 좋은 곳에 평상이 꼭 설치되어 있고 거기서 놀려면 근처 식당에서 바가지 요금을 주고 반드시 식사를 해야 하는 것 말이다.
개발 제한 구역 내에서 어느 누구의 땅도 아닌 곳을 사유지화해서 그렇게 영업을 하는 것부터가 불법이다. 고발당해서 과태료인지 벌금인지 그거 뜯기는 것보다, 법을 모르는 행락객들에게서 벌어들이는 돈이 더 많기 때문에 업주들이 그렇게 배째라를 시전하는 거다.

5. 체지방과 뱃살

살 빼려면 적게 먹고, 먹는 양보다 활동· 운동을 더 많이 해야 하는 건 틀림없다. 다만..

인간은 자동차 용어로 치면 연비가 상상 이상으로, 기막히게 좋고 효율적인 피조물이다. =_=;; 차라리 항온동물의 특성상 숨 쉬고 가만히 있으면서 체온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열량 소모가 많을지언정, 운동 때문에 추가로 소모되는 열량은 굉장히 적다. 죽어라고 몇 시간씩 운동해서 소모한 열량 정도는 밥 한 그릇 뭐 하나 먹으면 바로 보충되고 원상복귀될 정도..
하긴 그렇게 효율적이니, 인류가 옛날에 왕창 못살던 시절에 흉년 들고 쫄쫄 굶어도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냥 무식하게 굶기만 하면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체지방이 빠지는 게 아니라 수분과 근육부터 먼저 빠진다고 하니 낭패. 당연히 건강에 안 좋다.

그럼 열량 소모를 늘리겠다고 추위에 오랫동안 벌벌 떨며 살면? 뭐,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열량 소모가 크게 증가하긴 한다. 하지만 면역력 저하 등으로 인해 이 역시 건강에는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친다. 부작용이 크다.

심지어 운동조차도 어설프게 해서는 안 되고 땀이 날 정도로 그리고 한 30분 이상 해야 그때부터 체지방이 슬슬 빠진다고 그러던데..
체지방이야말로 신체에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닌 존재인가 보다. 난감하다. =_=;;
건강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체지방만 곱게 빼는 길은 참 멀고도 험하다.

6. 연구는 엔진 가동, 강의는 히터

요즘 대학교 등록금이 너무 비싸서 방학 동안 알바를 죽어라고 뛰어도 학비를 마련할 수 없네, 이래서 헬조선이네 뭐네 그런 불평 불만이 많다.
그에 대한 반박으로는 대학 교수는 학원 강사와는 차원이 다른 고급 인력이고 대학교 시설도 마찬가지인데, 등록금이란 게 왜 반드시 두 달 알바만으로 충당 가능한 액수여야 하느냐, 가치가 서로 동등하다고 볼 수 있냐 같은 원론적인 말이 있다. 이 블로그에서 양측에 대한 옳고 그름을 논하지는 않겠다.

사실 대학교는 고등 교육 기관이며, 단순 지식 전달보다는 연구가 더 우선이어야 한다. 학부를 영어로 괜히 under이라는 말을 붙여서 표현하는 게 아니다. 학부는 중등 교육까지 마치고 나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하기 위한 기본 전공 내지 이론을 익히는 과정이다. 그리고 진짜 연구는 대학원부터가 시작이다.
그게 아니고 그냥 취업을 위한 공부, 고시 합격을 위한 공부가 전부라면 대학은 존재 의미가 없다. 학원과 별 다를 바 없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학 교수에게는 연구가 main이고 강의는 덤인 게 맞다. 그런데 이 개념을 누군가가 SNS에서 정말 기가 막히게 맛깔난 비유를 동원해서 표현했더라.
"(대학교에서) 강의는 엔진에 연결된 압축기를 돌려야 하는 에어컨이 아니라, 엔진의 폐열을 이용하는 히터다."

우와...!! 하트 뿅뿅~~
공돌이 냄새가 풀풀 작렬하는 완전 직관적이고 참신하고 멋진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약 빨아야 이런 예를 생각해 낼 수 있을까?
나도 내가 쓰는 글에서 이런 유형의 비유를 많이 생각해 내서 써먹고 싶다. 사람의 입을 선박의 조향타에다 비유한 성경 이래로 혼자 읽기 아까운 비유를 발견하여 여기에다가도 공유하게 됐다.

이런 대학은 개나 소나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 아니며, 학비 부담 때문에 전국민이 갈 수 없다고 해서 그 자체가 크게 잘못되거나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2차 대전 당시에 그 전쟁광 나치 독일과 일제조차도 대학생은 대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징집을 연기해 주거나, 징집하더라도 병이 아니라 장교로 임관시켰을 정도였다.

우리나라는 대학 등록금이 문제인 것보다는 쓸데없는 학력 인플레가 더 문제이다. 공부 적성 아닌 애들은 빨리 다른 적성 찾아서 자기 분야 기막히게 잘하면 돈 벌고 성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다가 공부 좀 하고 싶어진 만학도들이 추가 교육을 받는 평생 교육 인프라가 발달돼야 할 것이다. 뭐 말은 쉽지만 이것도 실현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7. 소유, 구매, 임대

끝으로, 경제 쪽 얘기를 어설프게 좀 늘어놓고 하고 글을 맺겠다.
"물고기를 그냥 덥석 주지 말고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줘라"라는 요지의 격언이 있다. 그런데 물고기를 잡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않고 더 발전해서 일을 더 키우면 자기가 아예 물고기 떼를 양식하게 된다.

본인은 완전 경알못이다 보니 정확한 개념이나 용어는 모르겠지만.. 경제가 돌아가는 건 내가 어렸을 때 생각하는 것만치 단순무식 고지식하지 않다. 월급만 모아서는 노후 대비까지 충분히 할 수 없으니, 부자가 되려면 돈으로 돈을 벌 생각을 해야 한다. 큰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투기 같은 합법적인 도박도 하고, 빚까지 동원해서 없는 돈을 있는 것으로 많이 '간주'시켜야 한다.

그리고 재화를 갖는 방법이란 게 소유에서 구매로, 구매에서 임대나 공유로 더 가벼워지고 있다. 부동산이나 자동차 같은 비싼 물건뿐만 아니라 기술이나 소프트웨어 같은 무형 자산도 라이센싱 정책이 월 임대 형태로 다 바뀌고 있지 않던가?

기업으로 치면 자체 기술 개발을 하기보다는 그냥 사 오는 것이다. 그게 당장 더 싸게 먹히니까. 상황에 따라서는 어느 선택도 기업에 득이 되거나 해가 될 수 있다. 현대 자동차나 삼성 반도체나 다 기술 개발에 성공했으니 망정이지, 그 비용 대비 결과가 시원찮았으면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다. 물론 과거의 대우 자동차는 기술 개발을 너무 소홀히 한 게 자충수가 됐지만..

농산물의 경우 수입 개방을 하면 안 되네, 식량이 무기화되네 이러면서 예로부터 말이 많았다. 물론 식량을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고 해서 수출국이 자기 멋대로 식량을 호락호락 무기화하지는 못한다. 걔네들이 몽땅 북괴 같은 미친 나라도 아닌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국의 농업 인프라가 몽땅 망해 버리는 것도 마냥 바람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오늘날이 선진국급 국가들 사이에 재래식 무기 전쟁이 거의 없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군대를 필요 없다고 해체하지는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수틀리면 언제든 자유 무역이 중단되고 보호 무역이 대세가 될 수 있으며, 전쟁도 다시 벌어질 수 있다. 그에 대한 대비는 필요한 것 같다.

모든 걸 경제 논리로만 따지자면 무기를 개발하고 군대를 운영하는 그 천문학적인 비용을 그냥 적장에게 건네 주면서.. "이 돈 줄 테니 우리 침략하지 말고 그냥 돌아가 줘. 그럼 너도 편하고 나도 좋지 않냐 ㅠㅠ" 읍소하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짓 해 봤자 람로완 앞에서의 오 명규 사장 꼴밖에 나지 않으니 거시적으로는 매우 비효율적이지만 각 나라별로 군비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북괴를 상대로 "이 돈 줄 테니 우리 침략하지 마" 평화 운운하는 놈들은 정말 쳐죽여도 시원찮을 사악한 빨갱이인 것이다..

8. 직업에서 안정성과 자유도는 사실상 반비례

똑같이 연 소득이 4000이라 해도, 프리랜서의 4000과 사기업 4000, 그리고 공무원 4000은.. 정말 급이 다르긴 하다. 특히 프리랜서는 4대 보험과 노후 대비는 말할 것도 없고, 근무 과정에서 소모되는 비용도 전부 자기 주머니에서 나가니, 소득에다 최하 1.5~2는 곱해야 동급의 공무원 연봉과 비교되지 않을까 싶다.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경기 영향 안 받는 직업을 가지려고 괜히 아둥바둥 매달리는 게 아니다.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절대 안 망하고 월급 꼬박꼬박 나오고 퇴직 연금까지 나오는 조직에 들어가려고 괜히 목숨 거는 게 아니다.

그런데 안정적이거나 소득 높은 직업은 대부분 합당한 이유가 있다. 자기가 창의적으로 뭘 만드는 일이 아니라 휘하의 사람이나 물자를 관리하는 일, 스트레스 받고 책임감 큰 일, 아니면 제복 입고 근무 중 순직이 가능한 일이다. 일례로, 교사가 그렇게도 메리트가 많고 신랑감 신부감으로 적격이라지만.. 난 그런 일은 절대 안 맞으며 못 하겠다.

조직 생활 스트레스 없고 마음대로 일감 찾아서 일하면 되는 프리랜서랑, 반대로 들어가는 것부터 왕창 힘들고 스트레스이지만 일단 들어가면 안에서 최강 철밥통인 조직은.. 서로 일장일단이 있는 듯하다.

세상에 값도 싸고 성능도 왕창 좋은 물건은 일반적으로 존재하지 않듯이 직업 세계도 다수가 도저히 납득하지 못할 정도로 비합리적이지는 않다. 편하게 앉아서 돈 많이 버는 직업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눈에 보이지 않게 정신 건강이라도 야금야금 등가 교환하는 게 있는 법이다. 그러니 너무 간보려 하지 말고 자기 여건에 맞고 자기가 가장 잘하고 1인자가 될 수 있는 직종을 선택해서 종사하면 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8/09 08:34 2018/08/0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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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여행기: PART 4 (2018/7/24)

통일관 안에는 북한의 실상, 북한의 대남 도발사 같은 자료들이 전시돼 있었다. 뭐 그렇다고 마냥 북괴의 만행 비난에 반공 멸공만 강조하는 분위기는 아니고, 말 그대로 통일 통일 거리는 프로파간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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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포로에게는 탄광 맞벌이 일을 시킵니다. 아무리 충실하게 일을 해도 국군 포로의 집은 확실하게 3대까지 반동 낙인을 찍습니다. (그래서 아오지 탄광 같은 특별히 더 힘든 곳으로 배치를..)"
저건 옛날에 국군 포로 귀환자로 잘 알려진 조 창호 중위가 정확하게 당했던 대우이기도 하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싸우다가 자기 의지에 반하여 생지옥으로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평소에 얼마나 생각하고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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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2016년 10월경, 한창 레카가 말도 안 되는 죄목으로 탄핵 당하고 매장 당하던 시절의 북괴 로동 신문이다. 역시 윗동네에서도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느라 정신 없었다.
국정농단이 어떻고 하는 건 쟤들이 알 바 아니고, 북괴가 원하는 대로 안 해 주는 남조선의 애국 대통령이니까 싫다고 몰아내라고 선동하는 것일 뿐이었지.
쟤들은 '외치다'도 '웨치다'라고 표기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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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수봉 공원 내부에 있는 현충탑의 주변 모습이다. 원래 자유 공원에 충혼탑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그걸 1972년에 수봉 공원 현충탑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여기 주변으로는 나무 그늘과 산책로, 정자, 간단한 운동 시설도 있어서 쉬러 나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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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재일 학도 의용군 참전비이다. 아까 자유 공원에 있던 참전비는 자국 "인천" 학도병의 것이니 헷갈리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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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은 인천 지구 전적비이다. 별도로 소개하지는 않지만, 옆에는 UN 참전 기념탑도 있다.
이건 특정 집단의 참전 기념비가 아니라 말 그대로 전투와 승전 자체를 기념하는 것이 목적이다.

나라가 전반적인 분위기가 정상이라면, 필요 이상으로 옛날에만 집착하고 군대 얘기 전쟁 얘기만 꺼내는 건 군국주의 전체주의 수꼴 냄새가 풀풀 나는 발상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라 분위기가 정상이 아니다. 본인은 온갖 악의적인 역사 왜곡과 나라 정체성 부정, 악의 무리에게 굴종하는 불의한 거짓 평화가 횡행하는 꼴을 견딜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저항과 반발 심리로 우리나라가 악의 무리로부터 자신을 지켜 온 역사를 더욱 심도 있게 공부하고 주변에 알릴 것이다.

이렇게 공원을 쭉 돌아다녀 봤다. 지도상으로는 산 속에 어린이용 놀이공원과 양궁장, 그리고 인공 폭포 광장도 있는 모양이던데, 본인은 거기에는 들르지 못했다. 밖이 너무 더워서 공원을 꼼꼼히 돌아다닐 여건이 못 됐기 때문이다.
또한, 인천에 거주하는 실향민들의 염원을 전하는 망배단(望拜壇)이라는 비석도 있었는데, 이건 사진 소개를 생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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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본인이 인천에서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오랫동안 말로만 들어 왔던 '국제 성서 박물관'이었다. 인천 주안 감리교회에서 자기 예배당 바로 옆에 부설한 별관인데, 실제로 박물관은 그 건물의 5층에만 놓여 있다. 하지만 한 층만으로도 생각보다 넓고 볼 게 많았다. 자기 신앙의 뿌리와 정체성에 일말의 관심이 있는 교인이라면 꼭 가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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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술이 종교 개혁과 성경의 보급에 끼친 영향,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 우리나라 교회사 등 여러 주제를 다루면서 소장 자료도 굉장히 고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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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셩교젼서. 말은 들어 봤다. 옛날에는 한자음을 표기할 때 y가 가미된 모음이 지금보다 더 많이 쓰였던가 보다.
존 로스는 킹 제임스 성경을 대본으로 삼아 한국어 성경 번역본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왜 지금 우리나라는 변개된 성경이 주류가 됐나 모르겠다. 하긴, 개역성경에도 KJV 표현이 일부 전해지는 게 있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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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성경의 역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장로교가 주류가 된 현재와는 달리, 우리나라 초창기에는 감리교가 더 우세했다. 또한 이 승만, 김 구, 유 관순, 최 용신, 이 준, 남궁 억 등 한국의 주요 크리스천 독립 운동가들은 대부분 감리교 출신이다. 이것은 국내의 감리교회에서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점이기도 하다.

장로교는 하나님의 전지전능 섭리를 굉장히 강조해서 칼빈주의 예정론을 지지하는데, 너무 오버해서 하나님께서 죄악까지 다 설계하고 예정하고 지옥 갈 사람도 미리 다 찍어 놓으셨다고 얘기하니 그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반면, 감리교는 존 웨슬리 이래로 알미니안주의에 입각하여 신자의 행실을 더 강조하는데.. 악행이 계속되면 아예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고까지 우기니 이는 지나친 비약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뭐 그건 그렇고, 참고로 주 기철은 감리교가 아닌 장로교 목사였다는 점을 덧붙이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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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서양으로 넘어간다.
옛날에는 성경전서 책이 어지간한 사전이나 도록 연감 이상으로 정말 거대하고 부피가 컸다. 그레이트 성경만 거대했던 게 아니다.

이건 충분히 수긍이 가능한 일이다. 옛날에는 기계만 해도 요즘의 물건보다 기능과 성능이 뒤쳐지면서도 더 크고 무거웠다. 하물며 지금으로부터 몇백 년 전에 깨알같은 글자를 정교하게 찍는 인쇄술이 발달하지는 못했을 것이며, 지금 같은 얇디얇으면서 튼튼한 종이를 만들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옛날에는 성경의 여백 곳곳에 온갖 삽화들이 많이 들어갔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그야말로 장인 정신이 깃든 예술 작품처럼 꾸민 셈이다. 오늘날 같은 경제 논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관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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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bible과 she bible 이런 얘기는 처음 듣는다. 킹 제임스 성경이 출간 당시에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해 케임브리지 판과 옥스퍼드 판으로 갈려서 sin/sins 같은 극소수 미묘한 차이가 발생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는데, 혹시 그걸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케임브리지 판이 맞음)

킹 제임스 성경 유일무오설을 공격하는 유치한 수법 중 하나는 이렇게 시기와 장소에 따른 KJV edition들의 파편화를 거론하면서 "그럼 도대체 어느 edition이 유일무오한 건가요? ㅋㅋㅋ"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한 답 내지 반박은 다 마련돼 있다.

KJV는 출간되는 과정에서 저런 파편화는 말할 것도 없고, 인간의 실수 때문에 vintage와 vinegar를 헷갈린 일명 '식초 성경', 그리고 not을 빼먹어 버려서 아예 "너는 간음할지니라"가 된 '사악한 성경'이 만들어져 나온 적도 있었다. 저 때는 컴퓨터가 없었으며, 인쇄는 여전히 노동 집약적인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번역자의 실수가 아니라 인쇄소 식자공의 실수가 들어갈 여지도 아주 많았다. 하지만 그건 하나님의 말씀 보존 약속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나저나 저 룻 3:15의 경우, 심지어 NASV와 NIV처럼 non-KJV 역본들간에도 끝부분의 주어가(도시로 들어간 사람)이 룻이냐 보아스냐 차이가 있긴 하다.

이 외에 사진을 일일이 소개하지는 않지만..

북한 성경: "조선기독교도련맹중앙위원회 1983"라는 소속과 연대가 붙어 있었다. 문체는 현대어이고 공동번역 스타일이었다. 종교 쪽으로 에큐메니컬한 사람들이 대체로 정치 쪽으로도 에큐메니컬한 편이니.. 그래도 야훼가 아니라 여호와 표기이긴 했다.

에티오피아어 성경: 유니코드 문자표에서나 봤던 희한한 문자가 책의 텍스트를 구성하고 있는 걸 난생 처음 봤다. 마치 이과생들이 그리스 문자를 수식에서 기호 용도로만 실컷 봐 왔다가 그걸로 그리스어 자연어 텍스트를 써 놓은 걸 보고 놀라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에티오피아 문자는 영역이 U+12?? ~ U+13??이어서 U+11??대인 한글 자모의 바로 다음이다. 그래서 본인도 이 문자를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는 듯하다.

필사 성경: 박물관에는 국내의 여러 신자들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그냥 읽는 것도 아니고, 손수 타이핑도 아니고.. 종이에다 펜으로 다 베껴 쓴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정말 어지간한 근성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것으로.. 본인은 2018년 개인 하계 휴가를 마무리 했다.
다시 말하지만 날씨 타이밍 하나는 완벽했다. 이런 날씨에 피서 휴가를 안 가면 도대체 언제 가겠는가?
다만, 2박 3일을 차와 텐트에만 의지하며 숙소를 따로 안 잡았는데, 그러기에는 밤에 너무 덥긴 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잔 여파가 휴가를 마친 뒤에도 며칠간 계속되었으며, 직장에 출근해서까지 한동안 고생했다.

미리 말하는데, 내년 하계휴가로는 군인 없는 양구· 인제라 불리는 경북의 대표적인 오지들 "봉화-영양-울진"을 답사하고자 한다. 철도고 군사 이슈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계곡과 바다만 즐기고 올까 한다.
그 뒤 내후년은 남해 일대를 생각하고 있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18/08/06 19:35 2018/08/0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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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여행기: PART 3 (2018/7/24)

박물관 관람을 계속했다.
말 제대로 안 통하고 아무 생활 기반도 없던 억만 리 타지에 가서 3D 업종에 종사하며 억척같이 일하고 돈 모으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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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수수면 양반이지, 멕시코로 이민 간 사람들은 알로에인지 에네켄인지 손을 다치기 쉬운 더 이상하게 생긴 작물을 키우는 농장에서 일해야 했다. 그리고 멕시코 라인은 미국 라인과 달리 이민자가 막 많지도 않았으며, 후세들은 그냥 현지와 동화되면서 한국 정체성을 상실해 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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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창호야.. 예전에 도산 공원에 갔을 때도 봤지만 그야말로 "애국이란 게 뭐 거창한 게 절대 아니다. 당신은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 하고 있습니까?"주의자였다.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신실해야 큰일을 맡을 수 있게 된다",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 이게 굉장히 성경적인 심상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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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KBS 해외동포상이란 게 있긴 했다.
서 남표 교수는 카이스트 총장 재임 시절의 행적에 논란이 있긴 하지만, 개인적인 커리어 자체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미 1995년에 저런 데에도 뽑힌 적이 있고..
2002년에는 김 진우 교수가 뽑혔는데 이분은 언어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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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 대학교의 교명은 '인천+하와이'의 줄임말이다. 설립 배경에 국내의 타 대학들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사연이 있다.

이민사 박물관을 관람한 뒤, 월미도에서의 마지막 코스로는 테마파크에서 놀이 기구를 타고 싶었다.
하지만 본인이 방문하던 당시에는 별다른 예고나 안내 없이 정비를 이유로 테마파크가 휴관 상태였다. 그래서 놀이기구를 타 보지는 못했다. 그 대신 근처에 있던 등대를 찾아가서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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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인천 상륙 작전 당일에 길을 인도하는 역할을 한 등대는 팔미도라고 월미도보다 훨씬 더 작은 다른 무인도의 등대이다.
본인은 월미도 등대로 착각하고 있었다. 마치 예전에 미국 여행 갔을 때 서부 UC 버클리와 동부 버클리 음대를 헷갈렸던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월미도 관광을 마친 뒤, 본인은 동쪽으로 쭉쭉 관광을 시작했다.
영종도, 월미도는 모두 행정구역상 인천 중구이다. (신도와 장봉도는 인천 옹진군) 그 반면, 앞으로 경유하게 되는 곳들은 '미추홀구'이다.
미추홀? 완전 처음 듣는 이름이어서 도대체 뭔가 싶었는데.. '남구'가 무려 2018년 7월부로 이름이 저렇게 바뀐 거라고 한다. 바뀐 지 한 달도 안 된 따끈한 새 이름이다.

처음에는 구가 다 동서남북 평범한 이름으로 붙기 시작했는데 인천도 도시의 외형이 바뀌면서 그 이름이 도시의 실질적인 방위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게 됐다.
가령, 서울 남산은 오늘날 서울의 완전 중심부에 있을 뿐 남쪽 끝에 있는 산이 전혀 아니며, 동인천 역도 부평구에 소재하지도 않고 인천의 동부에 있는 역이 절대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남구라는 구 이름이 다른 역사적 근거가 있는 명칭을 사용하여 개명됐다고 한다.

이제 본인은 인하 공전을 찾아가서 대한민국 수준 원점, 교육용 보잉 727기를, 그리고 옆에 인하 대학교에서 우남호 여객기를 찾아가서 인증샷을 찍었다.
인하대는 캠퍼스 안의 차도가 온통 일방통행 위주로 만들어진 게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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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원점은 설명을 해 놓은 안내판을 모두 촬영했다. 나도 지금까지 배경을 잘 몰랐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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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727은 요즘은 거의 볼 수 없는 레어템인 삼발기이며, 엔진이 주날개 아래에 달려 있지 않다.
이 기체는 1991년에 동체 착륙 사고를 겪고 나서는 비행 불가 판정을 받고 인하 공전에 교보재로 기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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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DC-3 여객기는 대한 항공의 전신인 '대한 국민 항공사(KNA)'에서 '우남호'라는 이름으로 1954년에 도입한 기체를 훗날 대한 항공이 인수한 것이다. 얘는 그로부터 15년 뒤인 1969년에 만기 퇴역하고 1974년에 인하 대학교로 기증되었다.
KNA는 DC-3 여객기 달랑 세 대를 운용했는데... (창랑호, 만송호, 우남호) 창랑은 납북 테러를 당했고 만송은 사고로 날려먹었기 때문에 유일하게 우남호만이 살아남아서 만기 퇴역했다. 이 때문에 KNA는 경영난과 빚에 허덕이게 되었고, 창업주가 자살하는 참극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하와이 교포 1세들이 비행기를 타고 1955년에 모국을 방문한 것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민항기의 태평양 횡단이었다고 한다. 교통수단이 배에서 비행기로 바뀐 것이다.
아까 전에 관람했던 이민사 박물관과 잘 연계되는 내용이다.

인하대 구경을 마친 뒤에는 여기서 동쪽으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또 다른 공원인 수봉 공원을 찾아갔다. 수봉산이라고 월미산과 비슷한 높이의 아담한 언덕에 자리잡아 있다.
얘는 언제 무슨 계기로 만들어진 공원인지 모르겠지만, 현충탑과 각종 전적비들이 자유 공원 만만찮게 여럿 있었으며 통일· 안보 전시관도 있었다. 산 중턱까지 차를 몰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평일인 덕분에 한산하고 주차 걱정도 없어서 좋았다.

부산으로 치면 뭔가 보수산 공원과 비슷한 곳 같았다.
그래도 보수산은 4· 19니 민주 운동이니 하는 것을 기념하는 시설도 있는 반면, 수봉산에는 온통 주적 북한과 맞서 싸운 것에 대한 기념물만 있었다. 뭐, 보수산에도 대한해협 전승비가 있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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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봉 공원은 길의 토폴로지가 T자와 비슷했다. 세로줄 I 모양 경로는 자동차로 접근 가능하다. 그래서 가로줄과 만나는 끝까지 올라가면 그 교점에 한국 자유 총연맹이라는 우파 단체에서 운영하는 '인천광역시 통일관'이 있다. 여기가 자가용으로 다닐 수 있는 한계 지점이었다.

거기서 ─자 모양의 좌우로는 도보로만 진행할 수 있는데(차도는 공원 관리 차량 전용), 한쪽 끝으로 가면 광장과 함께 현충탑이 나오고, 다른 쪽 끝으로 가면 차도를 다리로 건넌 뒤에 인천 지구 전적비가 나왔다. 그 양 끝도 막힌 게 아니라 공원을 드나들 수 있는 출입구가 있었다. 단지 거기는 자가용으로는 진입할 수 없을 뿐.

Posted by 사무엘

2018/08/04 08:32 2018/08/0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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