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욥기는 모세오경과 더불어 가장 오래되고 먼저 기록된 책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이게 평범한 책이 아니다. 너무 엄청나고 극단적인 스토리와 판타스틱한 서술들, 그리고 인류의 만년 의문 떡밥인 '의인의 까닭 없는 고난'을 다룬다는 점으로 인해 욥기는 문학성 하나는 가히 최고라고 인정받고 있다. 물론 불신자들은 문학적 가치와 의미만 인정할 뿐, 저게 설마 레알 실존인물 실화일 거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성경은 세상의 통념과 달리, 다른 책에서 욥을 거듭해서 실존 인물이라고 언급하고 인용하니(약 5:11 같은..), 이게 딜레마이다. 노아, 아벨만큼이나 말이다.
가령, 그 천하의 예수님이 창세기 4장 인물인 아벨이 실존 인물이라고 인정하셨다(마 23:35). 예수님보다 더 잘나고 똑똑한 비평가라면 창세기 1~11장은 그냥 설화이고 상징 비유 묵시문학이라고 치부해도 될 것이다. 욥기 역시 마찬가지일 테고 말이다.

그 문제의 책 욥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스 땅에 욥이라는 이름의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완전하고 곧바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하는 자더라. 그에게 아들 7명과 딸 3명이 태어나니라. 또한 그의 재산은 양이 7000마리요, 낙타가 3000마리요, 소가 500겨리요, 암나귀가 500마리이며 집안사람들도 심히 많았으므로 이 사람은 동쪽의 모든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더라." (욥 1:1-3; 가독성을 위해 성경 본문에서 수량 표기를 아라비아 숫자로 바꿈)

욥은 노아· 다니엘과 더불어 구약의 3대 의인이라고 일컬어진다(겔 14:14). 특히 노아와 욥은 하나님께서 친히 내리신 perfect(창 6:9, 욥 1:1)라는 수식어까지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무슨 예수님과 동급의 완전무결이라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단지 구약 + 인간의 관점에서 그럭저럭 흠잡을 데 없고 타인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한 만점 합격점이라는 뜻이다. 마치 all(모든)처럼 말이다. 도대체 어느 문맥과 범위에서 전체 또는 완벽인지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욥은 아시다시피 한번 쫄딱 망했다가 그래도 다음과 같은 해피 엔딩을 맞이한다.
"... {주}께서 그의 포로 된 것을 돌이키시고 또 {주}께서 욥에게 그가 전에 소유했던 것의 두 배를 주시므로 ... 그는 양 14000마리와 낙타 6000마리와 소 1000겨리와 암나귀 1000마리를 소유하였더라. 또 그가 아들 7명과 딸 3명을 두었더라." (욥 42:10,12,13)

욥은 고난 이후에 자기 재산에 속하는 가축들은 몽땅 다 정확히 두 배로 보상받았다. 그런데 자녀는 예나 지금이나 열 명 그대로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설명은.. 자녀는 재산과 별개이며 두 배 보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인권이나 보험(!!) 관점에서 보자면 대인과 대물은 엄연히 다르며, 자식은 단순히 부모의 소유물 개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거라면 애초에 가축 수와 자녀 수를 나란히 늘어놓은 욥기의 진술 방식 자체가 좀 문제가 있으며, 독자에게 오해와 혼동의 여지를 남기는 거라고 간주해야 할 것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성경적인 결론은.. 구원받은 자녀는 다른 가축이나 재물과 달리, 내세에서도 영원히 남아 있고 만나볼 수 있기 때문에.. 사고로 죽었어도 영원의 관점에서는 손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잠시 이 세상에서 이별하고 못 보는 기간 / 내세에서 n년간 보는 기간"의 비율은 n이 무한대로 갈 때 극한값이 0으로 가는 것이 자명하니..;;
그러므로 20명을 몽땅 새로 줄 필요 없이 새 자녀 10명만 추가로 주면 10+10 = 20이 된다.

이것이 인간과 짐승(가축)의 본질적인 차이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낳았고 낳았고'만 잔뜩 나오는 마태복음 1장의 리스트의 진술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목록에서 일부 인물이 누락된 이유도 덤으로 말이다.
또한, "지금은 그가 죽었으니 어찌하여 내가 금식하리요? 내가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삼하 12:23)라고.. 어린아이의 구원을 당당히 믿은 다윗의 말도 이해할 수 있다.

세상에는 인간의 과학과 지성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많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여전히 많다. 죽음도 그 문제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내세관은 꽤 건전하다. 죽은 사람 갖고 사기를 치는 수많은 미신, 괴담 등에 휩쓸릴 일이 없게 하며, 그 반대편 극단인 "죽으면 다 소멸하고 끝" 염세 회의 허무주의 쪽으로 빠지지도 않게 해 주기 때문에 더욱 좋다.

이런 신앙이 있으니 손 양원 목사는 "미국 유학 보내려던 아들을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으로 보내 주셔서 감사"라는 초인적인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육신의 몸을 입고 영원히 살 수는 없지만..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생명 인격체를 만드는 일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만 할 수 있다는 게 굉장한 아이러니인 것 같다. 구원받는 것도 그렇게 현세에서 살아 있는 동안만 가능하듯이 말이다.

한편, 이런 "현세 10+내세 10 = 20"설 말고.. 그 10명은 그냥 욥의 기존 자녀들이 죽었다가 다시 부활한 것일 거라고 추측하는 분도 있다. 뭐, 그것도 욥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해피엔딩이며, 성경의 심상 면에서 일리가 있다.
성경에는 구약 성도들의 집단 부활이라든가(마 27:52-53) 모세의 부활(유 9)처럼 아주 implicit하고 간략하게 기록된 엄청난 부활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욥 당사자도 단순 내세 이상으로 육체의 부활을 믿은 와중에(욥 19:26), 욥기에 부활의 실제 사례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또한 완전히 새로운 자녀를 만드는 건 욥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그것도 10명이나 다시 낳으려면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와중에 욥의 기존 아내는.. 욥을 완전히 떠나 버렸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고난 후에 재배회를 했는지.. 그렇지 않고 욥이 재혼을 하기라도 했는지 성경에 언급이 전혀 없다. (본인은 개인적으로는 욥의 아내는 막 악처까지는 아니어도 그래도 신앙이 남편만치 좋지는 못했던 그냥 예쁘장한 부잣집 사모님 스타일이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ㄲㄲㄲ 사탄이 욥의 아내를 괜히 살려 둔 게 아님..)

이런 시나리오에 비해, 죽었던 기존 자녀만 다시 초자연적으로 살아나는 시나리오는 기적 그 자체 말고는 주변의 미주알고주알 디테일을 생각할 필요 없이 단순 깔끔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부활설은 근처에서 노골적으로 비교하며 등장하는 '2배 보상'이라는 심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자녀는 무슨 물건 같은 존재는 아니겠지만 부모의 입장에서는 명백히 주님으로부터 온 유산이요 보상이다(시 127:3-5). 하나님께서 욥에게 가축을 2배로 보상해 주셨거늘, 하물며 자녀도 2배로 보충해 주지 않으셨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않을까?

욥기의 도입부에서는 자녀 수부터 먼저 나온 뒤에 다음에 가축 수인데, 결말부에서는 2배로 늘어난 가축 수부터 나온 뒤에 그 다음이 자녀 수이다. 이것도 생각해 볼 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2/19 08:36 2019/02/1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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