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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0/17 항공 역사 관련 이야기 by 사무엘

1. 100여 년 전,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무착륙 횡단

요즘 An-2니 세스나 172니 하는 경비행기들은 항속거리가 대체로 1000km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찰스 린드버그는 무려 1927년에 겨우 20대 중반의 나이로 직접 마개조한 붕붕이 경비행기를 조종해서 대서양을 무착륙 직통 횡단하는 데 성공했다. 참고로 뉴욕에서 파리까지는 직선 최단거리만으로도 무려 5800km를 넘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는 시속 300km 정도 될까..? 딱 KTX 열차의 주행 속도로 나아가는 비행기를 꼬박 33시간 동안 혼자서 한숨도 안 자고 조종했다. 한 순간도 조종간을 놓지 않고, 밥도 안 먹고 용변도 그냥 제자리에서 해결하면서 근성으로 날아갔다.. (☞ 관련 자료)

그는 1920년대 기술로 만들어진 가냘픈 경비행기로 초장거리 무착륙 비행을 하기 위해, 닥치고 기체의 무게를 줄이고 연료를 무조건 많이 꽉꽉 채워넣고, 기계 시스템을 최대한 '신뢰성' 있게 꾸미는 데 목숨을 걸었다.
그래서 일체의 편의장비를 제거했다. 엔진은 단발로 편성하고, 교대 운전도 포기하고 자기 혼자 타고, 고도계 속도계 오토파일럿, 무전기, 전등, 비상 탈출용 낙하산 전부 없앴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경마 기수 수준으로 살 빼고 체중을 줄였다.

아문센이 1910년대 기술로 남극점까지 갔다가 살아서 돌아오기 위해 체면 따위 마다하고 개썰매와 개고기까지 적극 활용했으며, 1940년대에 둘리틀 특공대가 항공모함에서 함재기가 아닌 뚱뚱한 육군 폭격기를 이륙시키기 위해 이것저것 다 떼어내고 눈물겨운 최적화를 한 것과 같은 급의 노력을 한 것이다.

그 결과 린드버그는 파리에 잘 도착했다. 환영 인파들에게 간단히 답례를 한 뒤, 그는 그대로 탈진했다. 다 때려치우고 곧장 근처 호텔에 가서 방 잡고 잠부터 잤다. 비행 시간만 33시간 반이고, 자기 자신은 거의 50시간이 넘게 잠을 안 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으로 귀환할 때는 비행기째로 미군 항공모함에다 싣고 그냥 배 타고 돌아왔다고 한다;;)

1920년대엔 한국인 중에도 안 창남, 신 용욱 등의 비행기 조종사가 최초로 등장하긴 했다. 하지만 동양에서 이제 막 파일럿이 배출될 정도이면 서양에서는 더 앞서가서 저런 엄청난 똘끼를 발산한 사람이 나온 셈이다.
무모하고 위험한 짓을 한 대신, 그는 지금 같은 복잡한 비행 계획 신고, 관제 교신에 착륙료, 영공 통과료 지불 따위 없이 아무도 없고 아무의 통제도 받지 않던 하늘을 최초로 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무한한 자유를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 양반은 파리에 도착해서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착륙 지점을 찾는 심정이 어땠을까? 아폴로 우주선이 처음 보는 달 표면 지형을 내려다보면서 착륙 지점을 찾는 것과 비슷했지 싶다~!

2. 20세기 전반과 후반의 비행기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아직..

(1) 로켓 엔진이 없었고 미사일이라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태평양 전쟁에서 전함을 격침시키기 위해 가냘픈 함재기들이 폭탄을 싣고 직접 날아가서 급강하 폭격을 하거나.. 해수면 근처까지 하강해서 어뢰를 떨궈야 했다.
지금으로서는 정말 상상하기 힘든 원시적이고 위험천만한 기동이지만, 그 시절엔 통상적인 해전이 항공모함 함재기 교전으로 바뀐 것만 해도 공상과학 느낌이 들 정도로 첨단 기술이었을 것이다.

미사일이 없으니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 폭탄도 미군의 폭격기가 현장까지 친히 찾아가서 떨구고 갔다. 버튼 하나 누르면 자동으로 핵 미사일이 발사되는 것 따위는 그때 없었다.

그리고 지상이나 수면의 목표물이니까 위력이 강한 폭탄이지, 높이가 자신과 대등한 비행기끼리는 여전히 기총사격에 의존해야 했다. 그래도 옛날에는 이것만으로도 공중전을 벌여서 적기를 잡았다. 일본의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만 해도 항공 이동 중에 미군의 습격을 받았으며, 기관총에 벌집이 돼서 전사했다.

(2) 사실은 아직 제트 엔진도 없었다. 독일에서 말기에 간신히 개발에 성공해서 잠깐 투입했던 물건을 제외하면 이때 활약했던 모든 비행기들은 아직 피스톤 왕복 엔진 기반의 붕붕이였으며 프로펠러기였다.

그리고 초음속 비행이라는 것도 전무했다. 그런 것들은 다 종전 후에 등장하고 가능해졌다. 그로부터 몇 년 되지도 않아 6· 25 사변 때 곧바로 P-80 같은 미군 최초의 신형 고성능 제트 전투기가 나타났으니.. 그 시절 사람들이 ‘쌕쌕이’라고 부르며 신기해할 만도 했다.

비행기에서 제트 엔진의 등장은 열차가 증기 기관차에서 디젤이나 전기 기관차로 바뀐 것만큼이나 큰 혁신이었다. 등장 시기도 서로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열차가 좀 더 먼저) 20세기 중반 정도로 비슷한 편이다.

오늘날은 비행기고 배고 미사일이면 다 끝나는 것 같다. 그리고 전투기들이 너무 강해지는 바람에 오히려 2차 대전 시절 같은 툭탁툭탁 공중전이 벌어질 여지가 없어진 감이 있다.

3. 이스라엘의 일란 & 아사프 라몬 국제공항

바로 1년 반쯤 전, 2019년 1월에는 이스라엘의 남부에서 '일란 & 아사프 라몬 국제공항'이라는 커다란 공항이 개항했다. 넓은 땅을 찾다 보니 간척지나 인공섬이 아닌 더운 사막에 최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공항이 지어졌다.

이 공항은 명칭에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의 이름이 부여된 게 인상적이다. 저건 친형제나 부부의 이름이 아니라 부자(아버지 아들)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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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란 라몬은 전투기 조종사 출신으로 이스라엘이 배출한 최초의 우주비행사였으나.. 2003년, 컬럼비아 호 우주왕복선 공중분해 사고 때 순직했다. 이때는 이스라엘 전국민이 슬퍼하면서 추모하고 난리가 났다.
다음으로 아들인 아사프 라몬은 부친을 따라 공군 조종사의 길을 갔는데.. F-16 훈련 비행을 하던 중 추락 사고를 당해 2009년, 겨우 20대 초반의 나이에 순직했다.

부자가 나란히 나라를 대표해서 항공우주와 관련된 일을 하다가 순직했으니 이들의 이름은 공항의 이름으로 매우 적절하게 쓰였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라몬(Ramon)'이라는 명칭은 비록 어원은 전혀 다르겠지만 필리핀의 옛 대통령도 떠오르게 한다. 라몬 막사이사이.
매우 공교롭게도 이 사람도 비행기 추락 사고로 순직했고, 공항 이름에 쓰여도 될 정도로 훌륭한 인물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드골 국제공항, 케네디 국제공항..)

세상에 재임 중에 비행기 추락 사고로 죽은 국가 원수가 세계적으로 얼마나 되겠다 궁금했는데.. 찾아 보니 생각보다 많다. (☞ 링크) 위키백과가 별 걸 다 정리해 놨다.;;

Posted by 사무엘

2020/10/17 19:35 2020/10/1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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