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중력) 가속도

인간의 신체는 지구의 중력 가속도인 9.8m/s^2가 발 쪽으로 향하는 것에 아주 적응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게 어긋나도 생각보다 탈이 많이 난다.
이 지구의 중력 가속도를 흔히 1G라고 부른다. SI 단위가 아니지만 공기 중에서의 음속인 마하 1이나, 지구-태양의 평균 거리인 1AU(천문 단위), 연주 시에 따른 거리 1파섹처럼 뭔가 지구 중심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통용되곤 한다.

이 가속도는 상당히 큰 값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만 높은 데서 떨어져도 물건이 깨지고 사람이 다치기 쉬우며, 사람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추락에 대해 겁과 공포심이라는 게 각인된다. 바이킹이나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 번지 점프를 할 때 엄청난 아찔함과 스릴을 느끼는 건 이 때문이다.

중력 가속도와 대기압은 둘 다 사람을 움직이기 힘들게 압박하는 존재이긴 하지만.. 작용하는 방식과 성질이 서로 크게 다르다. 태양계의 다른 천체들을 지구와 비교해 보면 이렇다.

  • 달은 대기압이 없고 중력 가속도는 지구의 1/6 수준이다.
  • 금성은 중력 가속도는 지구보다 약간만 작은 수준이지만(91%), 대기압이 지구보다 훨씬 더 높다(지표면 기준, 95배 -_-). 빈 깡통쯤은 바로 콱 찌그러진다.
  • 화성은 대기압은 지구의 거의 1%, 중력 가속도는 지구의 거의 40% 수준이다.
  • 태양계 전체를 통틀어서 지구보다 중력 가속도가 50% 이상 확실하게 더 큰 행성은 목성밖에 없다(약 2.5G).

중력 가속도는 한쪽으로만 일방적으로 작용하는 힘인 반면, 대기압은 사방팔방 모든 방향으로부터 고르게 작용한다.
추력이나 부력이 아니라 양력을 이용해서 비행기가 이륙하고 뜨려면.. 주변에 일정 수준 이상의 압력을 갖춘 대기가 있어야 한다.

  • 달은 저렇게 공기 저항 없고 중력도 작으니, 그 작은 달 탐사선 로켓이 간단하게 뿅 가속하는 것만으로도 모선으로 합류해서 귀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달의 상공에서 날개 달린 비행기를 띄우는 건 불가능하며, 공중에 떠서 이동하는 방법은 오로지 로켓밖에 없다.

  • 화성은 그나마 2020년대가 돼서야 소형 드론의 양력 비행이 가까스로 성공했다. 하지만 회전익이 아닌 고정익 비행기가 뜨려면 지구보다 훨씬 더 긴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훨씬 더 빠르게 달려야 할 것이다.

  • 금성은 아마 자전거 주행 속도로 활주하는 것만으로도 비행기가 뜰 수 있을 것이다. 살인적인 대기압이 야기하는 강한 공기 저항을 뚫고 그런 속도를 내는 게 가능만 하다면 말이다. 또한, 이런 저속으로도 지표면에서 발을 떼고 사뿐히 이륙하는 건 금방이지만, 그 상태로 지구에서처럼 엄청 높이 올라가고 빨리 이동하는 건 여전히 애로사항이 가득할 것이다.

뭐, 금성에서는 수백 도에 달하는 고열 때문에 인간의 과학 기술로 만든 기계들은 애초에 동작을 못 하고 죄다 고장 날 것이다. 저런 사치스러운 뇌피셜 상상을 하는 것이 애초에 무의미하다.

그나저나.. 같은 압력이라 해도 공기 1G와 물 1G는 동등한 환경 여건이 아니다.
가령, 수면에서만 찰랑찰랑 물놀이를 하면 수압은 공기 중과 차이가 없겠지만, 그렇다고 물 속에서 육지와 동등한 방법으로 동등한 속도로 이동 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니 금성 표면의 95기압을 무작정 지구의 수심 950m로 치환해서 생각하는 건 어폐가 있을 것이다.
까놓고 말해 금성의 표면에서 총을 쏘면 총알이 어떻게 나갈까..??? 지구 내지 우주, 달과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하다.

중력 때문에 인간이 지구를 벗어나는 게 엄청나게 어렵고 까다로운 게 사실이다. 지구에서 우주로 나가는 게 우주에서 달이나 다른 행성으로 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그러나 이게 인간에게 해로운 것보다는 이익인 면모가 더 많다. 일상생활에서 잡초나 먼지 같은 게 전혀 없으면 안 되고(흙을 붙들기, 비를 만드는 작용 등..), 마찰과 공기 저항이라는 것도 인간의 생활에 이로운 경우가 더 많은 것처럼 말이다.

중력이 없으면 가루나 액체, 기체, 가루, 부스러기 같은 물질을 실수로 흘렸을 때 도저히 수습하기 힘든 난국이 벌어진다.
그리고 신체도 다리가 힘을 쓸 일이 없어서 가늘어지고 얼굴은 피가 쏠려서 굳고.. 이거 뭐 지구가 갑자기 자전을 멈추면 원심력 때문에 적도로 가 있던 바닷물이 육지로 몰려와서 난리가 나는 것을 연상케 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뼈와 근육이 약해지고 영양소가 빠지는 건 덤.. 건강에 절대로 좋지 않다.

  • 우주 정거장은 동력 비행을 하는 게 아니라, 추락하는 엘리베이터와 완전히 동급으로 지구를 향해 한없이 추락하는 상태이다. 대기와의 마찰로 인해 고도를 조금씩 잃는 것만 가끔씩 엔진 동력으로 보정할 뿐.. 그러니 여기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무중력을 경험한다.

  • 너무 당연한 얘기이지만 진공과 무중력은 다른 개념이다. 우주 정거장이나 달 탐사선 내부는 사람이 살 정도의 공기가 있지만 중력 가속도가 저 지경이다. 반대로 지구에서도 진공을 만들면 그 안에서 쇠구슬과 깃털이 같은 속도로 툭 떨어질 수 있다.

  • 추락하는 엘리베이터에서 제일 안전하게 목숨 부지하는 방법은.. 착지 타이밍에 맞춰서 점프-_- 하는 게 아니라, 머리를 감싼 채 누워서 온몸으로 충격을 고르게 받는 것이라고 한다.

  • 전투기 조종사야 5~7G에 달하는 엄청난 가속도를 버티는 훈련을 받으니, 바이킹이나 롤러코스터 따위는 그냥 애들 장난도 아닐 것이다. 피가 머리에 너무 쏠리거나 반대로 너무 빠져나가서 기절하기 십상인 환경을 버텨야 한다. 새턴 V 로켓이 한창 가속될 때는 4G 정도 나온다고 한다.

  • 하긴, 순환계가 약한 사람이나 노약자는 추운 날 누워 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기만 해도 머리로 피가 잘 안 가서 어지러움을 호소하고 심지어 기절할 수도 있다. 그 반면, 전류가 흐르는 데 주변의 가속도의 영향 따위를 받지는 않을 테니.. 가속도도 인체가 기계보다 취약한 면모임인 게 실감이 난다.

  • 물구나무를 서는 것은 인체의 입장에서는 중력 가속도가 -1G인 걸로 간주된다. 수 초 남짓 잠깐이 아니라 그렇게 몇 시간째 있는 것은 인체 건강에 아주 좋지 않으며, 그렇게 방치되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머리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보다 머리로 피가 쏠리는 게 더 해롭다.

4. 고온 (+저온)

그럼 마지막으로, 진공 얘기가 나올 때 같이 다뤘던 온도에 대해서 얘기를 좀 더 한 뒤 글을 맺도록 하겠다.
신체 내부는 온도에 매우 민감하며, 온도의 변화에 생각보다 취약하다. 왜냐하면 물질대사를 일으키고 생명 활동에 기여하는 각종 단백질 효소들은 잘 활동하는 온도 영역이 엄청 좁기 때문이다. 끽해야 35~40도대?

얘들은 분자 구조가 엄청나게 복잡해서 그런지 금속 기반인 기계보다 열에 너무 약하다. 40도 이상에서는 그냥 비가역적으로 변성돼 버리며.. 그렇게 되면 당사자는 열사병에 걸려 죽거나 장애인이 된다. 생각보다 굉장히 낮은 온도에도 오래 노출되면 이렇게 된다. 꼭 손이 닿자마자 "앗 뜨거!" 하면서 화상을 입는 온도여야 할 필요가 없다.

물론 우리 인체는 땀을 흘리고 헥헥거리면서 열을 조절하려고 노력을 엄청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온도에 진입하자마자 바로 칼같이 탈이 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오래 버티는 것엔 한계가 있다.

(1) 70도짜리 물에 손을 넣으면 당연히 바로 화상을 입지만, 70도짜리 사우나에 들어가면 그래도 몇 분간은 버틸 수 있다. 그것처럼 아예 진공인 우주는 온도가 훨씬 더 높아도 그 여파가 공기 중보다도 훨씬 더 천천히 전해진다. 비열의 차이가 잽이 안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열전도율은 비열과 일단 독립적인 별개의 개념이다. 비열이 낮은 물질이 열전도율도 높은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비열이 거의 같은 금속끼리도 열전도율이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2) 우리는 더우면 옷을 벗지만, 그래도 극단적인 고온에서는 오히려 옷을 입는 게 조금이라도 더 오래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옷이 외부의 열 대미지를 좀 줄이고 지연시켜 주는 게, 신체의 열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 더 큰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물에서 수영을 할 때는 몸에 걸친 옷은 정말 아무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벗어야 된다. 오죽했으면 해군은 배에서 근무할 때 신발도 끈 달린 운동화가 아니라 비상시에 곧장 쉽게 벗을 수 있는 슬리퍼 같은 신발을 신는다고 하던데..
그럼 물이 뜨거워져 버리면 이건 뭐 정말 답이 없을 것 같다.

(3) 살아 있는 사람의 몸은 무슨 말라 비틀어진 건초나 통나무 같은 가연성 물질이 아니다. 생체에는 내부에 수분이 굉장히 많다.
그렇기 때문에 기름을 같이 끼얹지 않으면 호락호락 불이 붙지 않는다. 산 채로 화형을 당해도 그냥 삶아져서 죽거나, 그 전에 연기에 질식해서 죽는다. 반대편 극단을 생각해 보면, 사람이 굳이 체액이 몽땅 꽁꽁 얼어붙지 않아도 훨씬 전에 저체온증으로 동사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사람 시체를 완전히 화장해서 완전히 숯덩이에 뼛가루로 바꿔 버리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최소한 몇 분 만에 간편하게 끝나는 일은 아니다.
이러니 옛날에 히틀러도 자살 후에 자기를 아무도 알아볼 수 없게 시체를 훼손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전쟁통에 제대로 그리 되지 못해서 시체의 신원이 파악되었으며, 그의 죽음이 공식 확인될 수 있었다.

(4) 쌍팔년도 옛날 미스터리/공포물에서는 어떤 사람이 집에서 의자에 앉아 있다가 혼자 홀연히.. 불이 붙어서 죽어 버렸다는 실제 사례가 소개되곤 했다. 그것도 자기만 혼자 열받아서 불에 탔지, 주변에는 불이 옮겨 붙어서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과학적으로 가능하지 않으며 일단은 검증이 안 되는 도시전설이다. 다른 사고나 살인 사건이 미스터리로 각색된 걸로 여겨진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살아 있는 인체는 가연성 물질이 아니다.

(5) 옛날에는 한여름에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어 놓고 지내다가 갑자기 더운 곳으로 나가면 신체가 적응을 못 해서 웬 '냉방병'에 걸린다는 낭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이 역시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도시전설이다. 압력 변화로 인한 잠수병은 있지만, 이 정도 온도 변화가 무슨 면역력 저하 같은 병을 따로 일으키는 건 아니다.
만약 이런 병이 있다면 반대로 겨울에도 난방병이란 게 있어야 할 것이다. 그때도 실외와 실내를 넘나들면 -10도에서 영상 10도대로 온도 변화는 한여름 이상으로 들쭉날쭉할 텐데 말이다.

(6) 뭐, 고온뿐만 아니라 저온도 해롭다. 저온은 무슨 피부가 익는 등 단백질의 변성과는 관계가 없지만 역시나 물질대사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인체의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운동 대신 추위에 벌벌 떨어서 에너지 소비를 촉진하겠다는 다이어트는.. 부작용이 너무 클 것이다.;;
자고로 입을 것이 먹을 것과 동급으로 괜히 중요하게 다뤄진 게 아니다. 성경의 구약 율법도 이불· 담요는 채무 담보로라도 빼앗지 말고 밤에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돌려주라고 말한다. 이건 사람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12/04 08:35 2022/12/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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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주 공간 (진공)

사람이 우주복 없이 우주 공간에 내던져지면 지구 표면과 다른 환경 여건으로 인해 온갖 신체 이상이 발생한다. 극단적인 고온이나 저온, 진공, 무중력, 태양풍과 각종 해로운 방사선(지구에서는 자체 자기장이나 오존층이 차폐해 주는)... 어느 것도 인체에 좋을 게 없다. 어서 우주복을 입든 우주선 안으로 돌아오든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얼마 못 가 죽는다.

그런데, 우주에서 사망에 가장 크게 빨리 기여하는 요인은.. 그냥 산소가 없어서 숨을 못 쉬는 질식이다. 10~20초 남짓 만에 의식을 잃은 뒤 수 분 뒤에 뇌사가 시작되고 사망한다.
그리고 우주에 노출되자마자 즉사한다거나 노출 부위가 중상을 입는 건 아니다. 몸이 펑 터진다거나, 에볼라 바이러스마냥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으며 장기가 녹아내린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요즘은 교통· 통신의 발달 덕분에 온갖 과학 상식과 잡학들도 많이 알려져서 "선풍기 틀어 놓고 자면 죽는다" 급의 도시전설이나 낭설이 상당수 없어지긴 했다. 하지만 옛날에는 인간이 맨몸으로 진공 우주로 나가면 몸통이 터지고 눈알이 튀어나온다는 myth가 퍼져 있었다.

오죽했으면 그게 SF 영화에서도 반영되어 있었다. 대표적으로 토탈 리콜(1990) 말이다. 본인도 초딩 시절에 뻘건 화성 땅에서 주인공이 숨 막히고 안구가 튀어나오고 터지기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위기를 벗어나는 이상한 영화를 TV로 본 적이 있는데.. 그게 저 영화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실상은.. 과거의 우주 개발 과정에서 미국이나 소련의 우주 비행사가 사고로 수 초에서 수 분간 우주에 신체의 일부가 노출되는 사고가 실제로 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지는 않고 무사히 살아서 돌아왔다.

이것도 다 토탈 리콜 같은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있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정보의 전파가 늦었던가 보다. 유언비어 도시전설 같은 건 인터넷 이전에도 많이 있었고, 반대로 인터넷이 정확한 팩트와 진실을 퍼뜨리기도 해 주는 듯하다. 통신 기술의 발달 덕분에 "서울 다녀온 놈과 서울 안 다녀온 놈이 싸우면 안 다녀온 놈이 이긴다" 같은 일은 상당수 없어졌다. 아무튼..

사실 압력보다 더 골때리는 건 온도다. 진공에서는 말 그대로 산소를 포함한 공기가 없고 물기도 전혀 없기 때문에 기존 물질의 온도 변화와 상변화(액체-기체 따위) 형태가 완전히 꼬여 버린다.
우주의 평균 온도가 -270도의 극저온이라지만, 또 태양열을 받고 있으면 수백 도까지 온도가 치솟는다. 그러다가 태양광을 살짝만 가리면 식는 것도 금방이다.

우리 지구에서도 날씨가 아주 맑고 건조하면 일교차가 커진다. 낮 기온이 40~50도를 찍어도 그늘에 들어가거나 바람이 좀 불면 금세 싹 시원해지는데.. 공기가 없는 우주에서는 이런 변화가 훨씬 더 극단적으로 널뛰기처럼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된다.
달 표면만 해도 최저 섭씨 -170도에서 110도대를 찍는다. 태양과 엄청 가까이 있는 수성도 낮에는 최대 400도가 넘게 달궈지지만, 그래도 밤 시간대에 해당하는 "뒷면"은 여전히 무려 -180도 부근까지 식는다.

그래도 -100도건, +100도건 온도의 여파는 굉장히 천천히 전해진다. 대류· 전도가 없이 오로지 복사만으로 열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도 그 온도에 노출되자마자 곧장 동상이나 화상을 입지는 않는다.
이런 게 다 대기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지구에서의 경험만으로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달과 수성은 자전 주기가 지구보다 수십 배 더 느리다는 것 역시 감안할 점이다. 지구와 같은 낮과 밤 시간 만에 온도가 저렇게 바뀌는 게 아니다.
그래도 고온은 고온이니 인공위성이나 우주 발사체들은 통구이처럼 동체를 뱅글뱅글 돌려서 모든 면이 태양을 바라보는 쪽과 태양을 등진 쪽을 고르게 노출시켜서 온도 대미지를 상쇄한다.

또한, 온도 자체 말고도.. 물을 포함한 액체들은 주변 기압이 낮을수록 정신줄을 놓기(...) 쉬워지고 더 쉽게 기화하며, 다른 물질을 많이 녹이는 능력이 약해진다. 쉽게 말해, 끓는점이 낮아진다.
심해에서 갑자기 올라올 때 혈액 속에 질소 거품이 뽀글뽀글 일고 잠수병이 발생하듯.. 우주 공간에서는 피에 들어있던 산소가 빠져나가 버리고, 체액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고 한다. 비유적인 의미에서 피끓는 청춘이 아니라 진짜 문자 그대로 피가 끓어 버리고 거품이 일고 제대로 흐르질 않으니, 이것도 건강에 절대 좋은 현상은 아닐 것이다.

이 지구라는 행성은 자기 표면에 '대기'라는 이름으로 적지 않은 양의 기체들을 자기 중력으로 붙들고 있다. 이 지구상에서는 이런 대기가 없는 공간을 자연적으로 만들기가 극도로 어렵다.
지표면의 대기압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물을 10m가 넘게 높게 퍼올리거나, 물보다 훨씬 더 무거운 수은을 76cm 이상 끌어올리거나.. 그래야 진공을 만들 수 있을까말까다.

지표면에서의 진공이라면 깃털과 동전이 동일한 속도로 툭 떨어질 것이고 흙먼지조차 무슨 철가루가 떨어지듯이 일체의 공기 저항 없이 후두둑 떨어질 것이다. 이런 걸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볼 일이 과연 얼마나 있겠느냐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중세까지는 대기압이라는 개념을 몰라서 "자연은 본능적으로 진공 상태를 싫어한다" 같은 해석 내지 낭설까지 통용될 정도였다.
또한, 생명체가 이런 대기가 없다시피한 곳에 들어가면 어찌 되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무려 20세기가 되도록 인류에게 딱히 알려진 바가 없었다.

20세기 중반에 전범국들이 벌였던 극악무도한 생체실험 중에는 또라이 같은 무기 위력 실험이나 약물 실험, 장기자랑 실험뿐만 아니라, 진공에서 사람이 맨몸으로 얼마나 버티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옛날에 흑태양 731인가 그 마루타 영화-_-에서는.. 펌프로 공기를 빼는 진공 실험을 당한 피실험자가 신체가 부풀고 내장이 항문으로 튀어나온;;; 채로 죽었다. 뭐 이건 "우주에서는 몸이 터진다"를 염두에 둔 영화적인 과장이지 싶다.

훗날 미국과 소련이 우주 개발을 할 때도 사람이 훈련을 잘 받으면 저기압을 후유증이나 장애 없이 얼마까지 감당 가능하겠는지 데이터를 얻는 게 아주 중요했다.
이때는 함부로 대하고 죽여도 아무 상관 없는 적국 양민이나 포로-_-가 아니라 우주인으로 선발된 자국의 최정예 파일럿이 마루타 역할을 하니..=_= 실험이 최대한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진행됐다.

끝으로, "진공에 노출되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숨을 꾹 참으면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이 있다.
이야.. 이건 "엘리베이터가 추락해서 땅에 닿는 타이밍에 맞춰서 점프를 하면 좀 덜 다칠 수 있을까?"와 거의 같은 격의 그럴싸한 질문인걸..?? =_=;; 하지만 답을 말하면 이는 가능하지 않다.

우주에서 질식하는 건 물이나 다른 유독가스가 폐에 들어가서 질식하는 게 아니다. 그냥 흡입할 유체 자체가 전혀 없는 상태이고.. 체내에 이미 있던 기체까지 밖으로 빠져나가 버린다.
평범한 이물질 유체에 둘러싸였을 때는 최대한 숨 참고 버티는 게 답이겠지만, 진공에서는 이게 통하지 않는다. 숨을 참으면 체내에 갇혀 있는 기체가 압력 때문에 폐를 부풀려서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우주의 진공이 사람 몸 전체를 빵 터뜨리지는 않지만, 이런 식으로 자잘한 팽창을 야기하고 장기나 혈관을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에서는 숨을 꾹 참으며 버티는 게 불가능하다. 물에 빠져서 발버둥치는 것보다도 더 신속하게 산소가 부족해지고 의식을 잃고 질식사하게 된다. 참 흥미로운 사실이다.;;

2. 고압

지금까지 길게 얘기했던 바와 같이, 지구에서 우주로 나가는 건 1기압에서 0기압, 즉 고압에서 저압으로 가는 것과 같다. 그런데 지구 안에서는 깊은 물 속 아래로 들어가는 게 1기압에서 더 높은 압력으로 가는 것에 대응한다.
미터의 단위가 수압을 의식해서 제정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물의 밀도를 감안했을 때 수심 10m마다 얼추 1기압꼴로 수압이 증가한다고 한다. 그래서 수심 10m가 대기압 1 + 수압 1을 합한 2기압으로 느껴진다.

맨몸으로 우주의 진공에 노출됐다고 해서 몸이 풍선처럼 펑 터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처신을 잘못하면 일부 신체 부위가 부풀고 고막, 폐나 모세혈관이 터지는 정도의 부작용이 생길 수는 있다.
그것처럼 수심 10m 정도 잠수하다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해서 사람이나 물고기가 터지지 않는다. 그러나 뻥 터지지만 않을 뿐, 체내는 잠수병 앓으면서 곪을 수 있으니 천천히 주의해서 올라와야 한다.

우주에서는 주변이 온통 진공이기도 하고 중량을 극도로 최소화해야 하는 문제도 있기 때문에.. 사람 몸을 망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공기를 최대한 적게 넣어 준다. 그래서 지구처럼 1기압에 20% 산소 대신, 0.3기압에 100% 산소 같은 공기 편성도 사용한다. 물론 이건 일반인이 아니라 저압을 버티는 훈련을 받은 전문 우주 비행사만이 감당할 수 있는 극한의 공기 비율이다.

스쿠버다이버의 산소통에는 질소가 80%를 차지하는 일반 공기를 그대로 넣는 편이다. 스쿠버다이버는 우주인이 아니니, 이게 제일 저렴하고 무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흡을 통해 체내에 들어온 질소가 수중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평소에는 아무 작용도 하지 않고 그냥 자기 무게로 대기압에만 기여하고 있다가 얌전히 빠져나가는데.. 물 속처럼 수압이 높을 때는 이놈이 혈액 속에 녹아 버린다.

그 상태로 있다가 주변의 압력이 갑자기 줄어들면 질소는 혈액 속에 녹아 있을 수가 없어져서 뽀글뽀글 빠져나오는데.. 이게 혈관에서 질소 기포를 형성하고 혈관을 막는다. 탄산음료를 갑자기 땄을 때 거품이 확 올라오는 현상이 사람 혈관 안에서 벌어지는 셈이다~!
그래서 인체는 피가 제대로 안 돌아서 온갖 통증과 이상을 유발하며, 심지어 심근경색· 뇌경색이 야기되어 죽을 수도 있다.

이거 뭔가 자동차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 브레이크액에 비정상적인 기포가 발생해서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는 베이퍼 락(vapor lock) 현상이 있다. 브레이크액의 기포도 혈액의 기포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현상이다.
  • 질소가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대체로 비활성이지만, 자동차 연소실 같은 고온· 고압 환경에서는 산화해서 질소산화물 같은 공해 물질 배기가스를 생성한다. (평소에는 안 그러는데 고압 환경에서 혈액 속에 녹듯이..)

도대체 수압이란 게 뭐길래..;; 결국 물 속은 산소만 있다고 해서 잠수부가 xyz 축 아무렇게나 임의의 속도로 마음대로 이동 가능한 3차원 공간이 아니다.
그렇다고 산소만 100% 넣는 건 당연히 공기 성분으로나 압력으로나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질소 대신 헬륨을 넣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이 역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그럼 극단적으로 사람이 수압을 느끼지 않게 아예 강화복이나 금속 갑옷 수준으로 무장시키면..?? 그러면 너무 무겁고 갑갑해서 수중 활동을 못 할 것이고 차라리 별도의 잠수정에다 로봇 팔을 사용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잠수병에 안 걸리면서 안전하게 잠수하는 방법은 단 하나.. 깊은 곳에 오래 들어가 있었을수록 수면으로 올라올 때는 엄청 천천히.. 혈중 알코올.. 아니, 혈중 질소를 조금씩 자연스럽게 빼내면서 올라오는 것밖에 없다.
술을 인위로 강제로 빨리 깨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혈중 질소를 인위로 빠르게 빼내는 것 역시 인간의 현재 과학 기술로는 여전히 불가능한 모양이다.

통계를 찾아보면 상승 속도는 분당 9m, 초당 15cm가 권장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절대적인 건 아니다.
고심도에서 30분 이상 오래 머물렀다면 일정 간격으로 감압 챔버에 들어가서 5분 이상 더 쉬어야 하고.. 100m쯤 깊이에서 수 시간 잠수했다면 반나절이나 하루 가까이 가다 쉬기를 반복해야 한다. 그래야 잠수병 없이 안전하게 수면으로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이런 안전 매뉴얼은 인류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에 근거하여 만들어졌으며, 잠수하는 사람들이 귀가 따갑도록 교육받는다. 이 사람들은 물에 빠져 익사하는 게 아니라 잠수병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주에서도 밖에 나갔다가 지구의 대기권으로 재진입하는 게 어려운 문제이다.
또 수성 같은 내행성으로 가려면 감속 스윙바이가 엄청나게 필요하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에도 불구하고 수 년 이상의 긴 시간이 걸린다. 태양으로 끌려가지 않고 근처의 훨씬 가벼운 수성을 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처럼 사람은 지구의 바닷속을 잠수했다가도 나오려면 겨우 수십 m 남짓의 직선 거리도 곧이곧대로 상승하지 못하고 삽질을 해야 하나 보다.

누가 부주의해서 사람이 잠수병에 걸려 버렸다면 고압 산소 챔버에 집어넣어서 산소를 강제 주입하고 질소를 빼내는 식으로 치료하는 게 기본이다. 100% 산소를 1기압보다 더 높게 주입한다니(2~6기압).. 일산화탄소(연탄 가스) 중독을 치료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원래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100% 산소는 사람에게 '산소 중독'을 일으키며 건강에 해롭다. 산소가 너무 많으면 질소가 고압의 혈액 속에 녹는 것처럼 헤모글로빈과 결합하지 않은 채 혈액에 녹아서 신체로 전달되는데, 이 때문에 정작 산소와 결합해 있는 헤모글로빈은 환원될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러면 이 헤모글로빈이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는 일도 못 하고 체내에 독이 쌓이는 것이다.
산소 중독은 다른 이물질 기체와 같은 질식사를 유발하지는 않겠지만, 인두통, 기침, 호흡 곤란, 폐 손상 등을 야기할 수 있다. 참고로 인체가 숨을 참았을 때 답답함을 느끼는 기준도 산소 부족이 아니라 이산화탄소의 과다이다..!

잠수병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애초부터 잠수부의 산소통에 100% 산소만을 주입하지 않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 대신, 산소보다 더 해로운 기체를 빼내야 할 때만 불가피하게 고압 산소 처방을 한다.
베테랑 잠수부의 경우, 수중 대기 시간을 줄이고 더 빨리 귀환하려고 일반 공기보다 질소를 줄이고 산소는 더 늘려서 세팅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잠수병 대신 산소 중독의 위험이 더 커진다고 하니, 거 참 답이 없는 문제이다. =_=;;.

* 문득 드는 생각: 물 같은 액체에는 기체가 녹을 수도 있고 고체가 녹아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고체는 용매인 액체의 온도가 높을수록 더 잘 녹는 반면, 기체는 반대로 온도가 낮아야 잘 녹는다~! 굉장히 흥미로운 차이점인 것 갈다.

Posted by 사무엘

2022/12/01 08:36 2022/12/0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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