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의 역사 -- 下

(上으로부터 이어짐)

4. 총기의 최종 발전 형태는 탄피+후장식

과거의 활, 그리고 총 중에서도 일명 BB탄을 쏘는 장난감 에어소프트 건이라든지 공기총 같은 물건은 아무래도 총알을 밀어내는 힘의 근원이 총기로부터 나온다. 그러니 화살이나 총알 같은 건 발사체 전체가 날아가 버리고 없다. 또한 발사 과정에서 딱히 열이나 폭발 같은 게 없으며 소리도 조용한 편이다.

그러나 화약의 힘으로 총알을 발사하는 화기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발사체를 날리는 힘은 총이 아니라 화약에 있으며, 총은 (1) 그 화약을 격발하는 트리거를 제공하고 (2) 총알이 최대한 곧게 날아가게 방향을 잡는 역할만 할 뿐이다. 아, 자동소총이나 기관총이라면 (3) 지속적으로 급탄하는 기능도 추가로 중요하겠지만.

탄환+화약+뇌홍이 탄피에 감싸져서 총알 하나에 딱 일체화가 됨으로써 장전이 더욱 간편하고 내부 구조가 더욱 정교한 총을 만들 수가 있게 되었다. 이는 (1) 후장식 장전과 (2) 총열에 아까 설명했던 강선을 가능케 했다.
후장식이란, 총구 안쪽으로 총알과 화약을 역으로 집어넣지 않음을 의미한다. 총알의 자료구조가 스택에서 큐로 바뀐 셈이다.

이것은 가히 엄청난 장점인데, 장전을 위해서 총의 방향을 매번 뒤집었다가 다시 조준을 안 해도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사수의 입장에서는 자세를 바꾸지 않고도 누운 채로, 앉은 채로 지속적인 장전과 사격이 가능하고, 총열을 더 길게 만들 수도 있다.
두두두두 콩 볶듯이 발사되는 기관총을 만들기 위해서는, 총알이 들어가는 방향과 발사되는 방향이 당연히 따로여야 한다. 그러니 전장식으로는 어림도 없고 후장식이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하지만 후장식은 만들기가 더 어렵다. 총구 외에 급탄을 위한 구멍이 추가로 존재해야 하는데, 이게 격발 때에는 정말 완벽하게 막히고 밀폐돼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 그러면 총 쏘다가 새어 나온 화약 역풍을 사수가 맞아서 죽거나 다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쓰고 난 탄피는 즉각 잘 사출돼야 한다. 화약은 폭발해서 연기처럼 사라졌으며, 탄환은 날아가고 없으니 남는 것은 껍데기인 탄피뿐이다.

탄피는 고온 고압의 화약 폭발을 견뎌야 하는 관계로 아무 금속으로나 아무렇게 쉽게 만들 수 있지는 않다. 가성비를 감안했을 때 보통 황동으로 만들며, 요즘 총알들이 다 누런 황금빛인 건 이 때문이다. 다만 실제로 날아가는 탄환은 적당한 무게를 통한 파괴력을 얻기 위해 납으로 만든다. 탄피는 격발 과정에서 딱히 심각하게 변형이나 손상되지는 않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수거 후 재활용이 가능하다.

탄피는 총알 내부의 복잡한 부품들을 일체화해 주고, 또 엉뚱한 타이밍에 오발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내용물을 잘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니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구성요소이긴 하지만..
그래도 총 쏘는 병사의 입장에서는 탄피는 격발 후에 남는 골치아픈 쓰레기일 뿐이다. 제대로 수거하지 않으면 평시 훈련 중에도 영 좋지 않거니와, 전쟁 중에도 흘린 탄피는 적군에게 자기 위치와 동선을 노출하는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각종 추리 소설에서도 사건 현장에 탄피가 발견된 것은 빼도 박도 못할 총기 격발 흔적이므로 탐정에게 중요한 단서로 작용한다.

그래서 화약 기반 총기에도 '무탄피총'을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연구가 과거에 진행되기도 했다. 격발 후에 총알의 모든 부위가 사라지고 없다면 총의 입장에서도 딱히 탄피 사출 기능을 만들 필요가 없으며, 총알이 더 가벼워지거나 반대로 같은 무게로 파괴력이 더 강해질 수 있으니 좋을 것이다.
그러나 무탄피 탄약은 총알 전체를 위험한 화약으로 감싸는 와중에 총기 과열 상태에서도 오발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너무 어렵다. 현재로서는 여전히 가성비가 크게 떨어지며, 가까운 미래에 실용화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5. 탄창, 기관총

후장식+탄피의 도입으로 말미암아 총기는 연사· 난사가 가능한 단계로 발전할 기술적인 기반이 갖춰졌다. 단, 이제 급탄을 어떻게 할지가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었다.
격발을 하고 나서 무슨 레버를 당기고 노리쇠(볼트)를 젖혀서 이전 탄의 탄피를 빼내고 다음 탄의 장전을 자동으로 하는 것이 바로 볼트액션 내지 레버액션, 펌프액션 방식이다. 대략 1차 세계 대전 때 쓰인 개인 화기는 이런 수준이며, FPS에서 샷건도 그러하다. 가령, Doom의 샷건은 펌프 액션이고, Doom 2에서 도입된 슈퍼샷건은 브레이크 액션이다. 전자는 펌프 손잡이 같은 걸 찰칵 당겨서 장전하고, 후자는 아예 총열을 구부려 꺾어서 장전하니까 말이다.

그 뒤, 별도의 배출과 장전 동작이 없이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나가고 탄피가 빠지며, 다음 탄이 자동으로 장전까지 되는 총이 나왔는데 이것이 '반자동 소총'이다. 이제는 사수는 총 쏠 일이 있으면 정말 방아쇠만 까딱까딱 당기면 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자동화 수준이 상당하다.

완전 '자동 소총'은 까딱까딱조차도 필요 없이, 방아쇠를 당긴 채로 그대로 있으면 알아서 2발 이상의 총알이 두두두두 날아가는 총이다. 과거 그 불편하던 화승총을 쏘던 군인이 이런 총을 보면 아마 까무러치지 않을까 싶다.
이 자동 소총의 단계에 도달하기까지 가야 한 길이 참 멀고도 험난했다. 요즘 군인에게 지급되는 소총은 '반자동/자동' 모드를 바꿀 수 있다. 자동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탄약 절약이나 오발 방지를 위해서는 반자동도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발전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분당 수십~수백 발을 발사하는 기관총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총과 총알 모두 마치 자동차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정밀 기계/재료공학의 산물이 된 덕분이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 조총을 쐈던 일본군은 그로부터 300여 년 뒤엔 기관총을 가져와서 동학 농민군을 처참하게 학살할 수 있었다. 이제 재래식 냉병기는 총을 든 군대를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이길 수 없어진 것이다. (물론 중기관총은 사람이 혼자 들고서 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지만)

이제 연사 가능한 총에다가 지속적으로 총알을 공급하기 위해, 탄창이라는 물건이 추가로 발명되었다. 실전에서는 다 쓴 탄창을 빨리 떼어내고 새 탄창으로 교체하는 게 전투원의 생존 능력과도 직결된다. 탄창은 단순한 박스 모양인 것도 있고, 총알의 모양(앞쪽과 뒷쪽의 직경이 다름)대로 휘어진 모양인 것도 있다. 기관총은 영화에서 보니 딱히 탄창 없이 탄띠로만 연결된 총알들을 콩 볶듯이 쏴 제끼는 것 같다. 급탄 자체에도 동력이 필요할 텐데 다 스프링의 탄성만으로 충분한 건지 모르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IG 550 돌격소총용 반투명 탄창. 출처는 위키백과)

일부 볼트액션형 옛날 총은 총기 내부에 총알이 대여섯 발 정도 한꺼번에 들어가는 '내부 탄창'이 있기도 하다. 이건 권총으로 치면 6개의 총알을 한 실린더 안에 한꺼번에 넣어서 돌려 가며 쓰는 리볼버와도 비슷한 형태인 것 같다. 내부 탄창과 외부 탄창은 증기 기관차로 치면 탄수차가 따로 있는 놈과 없는 놈의 차이와도 같은데, 그쪽도 별도의 탄수차가 있는 형태가 더 유명하듯이 총기도 탄창 하면 외부 탄창이 더 자연스러운 형태이다.

하긴, 총알의 장전이 어렵던 시절에는 미국 서부의 보안관은 미리 장전되어 있는 권총을 두세 개 차고 다니기도 했다. 반대로 '개틀링'이라고 불리는 중대형 기관총은 약실이 아니라 총열을 여러 개 묶어서 돌아가면서 사용했다. 연사로 인해 한 총열에 집중되는 과열 부담을 덜기 위해서다.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총알을 격발하다 보면 폭발로 인한 열을 감당할 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발열 제어는 장전과 격발 문제를 해결한 고성능 총기가 그 다음으로 추가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등극했다. 총기를 식히는 방법은 자동차 엔진을 식히듯이 수랭식 아니면 공랭식으로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여기까지가 개인용 총기 내지 소화기(小火器)의 발달사이다. 그러고 보니 군인용 돌격소총은 Doom 2에 나오는 피스톨, 샷건, 체인건 중에 어느 부류에도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는 것 같다. 피스톨보다는 위력이 훨씬 더 세고, 그렇다고 산탄이 발사되는 건 아니고, 자동 연사도 되긴 하지만 게임에서처럼 여러 총열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니...

6. 기타 여담

(1) 화약 안 쓰는 장난감 총만 다뤄 봤거나 총질이란 걸 FPS 게임에서만 해 본 사람이라면, 나중에 군대 같은 데서 탄피 튀어나오는 진짜 총을 처음으로 쐈을 때 무지막지한 소음은 물론이거니와 반동 때문에 놀라게 된다.
반동은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물리 법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현상이긴 하나, 격발 직후에 사람과 총기를 움찔하게 만들기 때문에 조준 자세를 흐트리고 총알의 명중률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총알이 총 밖으로 완전히 나오기 전에 그 찰나의 짧은 시간 동안에 총열이 흔들려서 총알의 진행 방향이 어긋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반동을 사수의 어깨의 힘으로 받아내라고 보다시피 총기에 개머리판은 화승총 시절부터 진작에 만들어져 있었다. 반동을 받더라도 총알 진행 방향의 정확히 뒤로만 가고, 총구가 흔들리지 않게 말이다. 설령 어깨에다 받치지 않는 자그마한 권총이라도 일단 한 손만으로 쏘는 건 굉장한 무리다. 정확한 사격과 사수의 안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FM이 권장하는 바른 자세로 총기를 양손 파지(손에 움켜쥠)해야 한다.

둠 코믹스를 보면 주인공 아저씨가 허구헌날 '존나 큰 총' 타령만 해 댄다. 그러나 너무 크고 화력이 강한 총은 현실에서는 격발 때 반동도 감당할 수 없어서 혼자서 다룰 수 없을 것이다.

(2) 옛날에 둠 게임(1, 2 모두)은 주인공은 샷건이고 로켓이고 그 어떤 화기를 발사해도 반동이 전혀 없는 반면, 몬스터가 죽을 때는 뒤로 밀려나는 게 꽤 찰지고 과장되게 구현되어 있었다. 이럴 때는 바닥이 아주 반들반들한 얼음판(마찰이..)이기라도 한 것 같다. 심지어 회전 모멘트까지 반영했는지, 나보다 위에 있는 몬스터를 하체를 피격해서 죽이면 몬스터가 뒤가 아닌 앞으로 살짝 밀려오며 죽기도 한다.

둠의 소스 코드를 보면 몬스터들에 무게(mass)라는 속성이 있다. 어차피 기술적으로 아직 반쪽짜리 3D 수준이던 둠에서 무게 정보를 막 진지하게 활용한 건 아니고, 뒤로 밀려나는 정도를 판단할 때나 사용했다. 그래서 아주 가벼운 소형 몬스터인 좀비맨을 BFG로 그것도 놈 쪽으로 돌진하면서 쏴 죽이면.. 그 좀비맨은 그야말로 광속으로 뒤로 밀리면서 핏덩어리로 변했다.

현실에서는, 몬스터에게 총알을 박아서 그렇게 뒤로 밀리게 할 정도면 나도 총을 쏠 때 그 정도로 뒤로 밀리는 반동을 받는 게 마땅하다. 발사체 자체가 엔진이 달려서 자력으로 날아가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내가 그런 반동이 없었다면 몬스터도 그 자리에서 고꾸라져 죽을 뿐이지, 한낱 총알이 그 무거운 몬스터를 그렇게까지 크게 밀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나저나 스타크래프트의 마린이 사용하는 가우스 소총은 설정상 개머리판이 없다. CMC전투복만큼이나 그렇게 현실적인 설정은 아닌 듯.

(3) 사람이 말소리를 내는 걸 실탄 사격에다가 비유하면, 성대를 울리지 않는 속삭임(whisper)은 공포탄 발사에다 비유할 수 있다.
성대를 떨어서 음성을 내지 않고 속삭이기만 해도 주변이 조용하다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말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공포탄도 비록 탄환이 들어있지는 않지만, 화약 폭발로 인해 발생한 고온 고압의 배기가스만으로도 총구로부터 몇 m쯤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충분히 중상을 입힐 수 있다.

완벽한 살상이 아니라 경고· 위협이나 경상만을 목표로 하는 탄환으로 공포탄만 있는 건 아니다. 탄환으로 암염 덩어리가 들어있는 소금탄, 그리고 고무 덩어리가 들어있는 고무탄도 비살상 탄환의 범주에 든다. 물론 이것들도 납 재질의 실탄보다만 덜 위험할 뿐이지, 급소에 가까이서 잘못 맞으면 치명상이 될 수 있으니 절대적으로 조심해야 한다.
전자는 <킬 빌 2>, 후자는 <폰 부스>라는 영화에서 각각 주인공이 맞은 바 있다.

(4) 리볼버에 하필이면 약실이 원형으로 6개가 들어있는 이유는 수학적으로 볼 때 2차원에서의 kissing number와 관계가 있어 보인다.
육상 경기에서 준비 땅 신호탄을 발사하는 권총도 꼭 리볼버 모양이었던 것 같다.

(5)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천혜의 요새에다 세워진 성 하나를 함락시키는 건 어지간한 화력의 보조 없이는 방어자의 몇 배를 상회하는 병력을 동원하고도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오죽했으면 고대· 중세엔 성벽의 정확한 높이가 상당히 중요한 군사기밀이기도 했다. 사다리를 만들 때 매우 요긴히 활용되는 정보이니까. 다만, 사다리를 성벽을 타고 오르는 건 너무 위험하고 공격자의 피해가 막심하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고 다른 방법(땅굴, 성문 파괴 등)을 도저히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일 때만 불가피하게 쓰였다.

하지만 요즘은? 성 하나쯤이야 미사일을 쏴도 되고, 결정적으로 공성전의 종결자는 공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래로 폭격만 하면 끝...이다. 물론 공군 등 저런 현대적인 무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 화포의 성능이 크게 발전한 것 하나만으로도 전통적인 공성전이라는 건 의미를 상실했다. 세상이 그만치 변했다.

(6) 1860년대의 남북 전쟁은 아직 후장식 탄피 기반 소총이 등장하기 전의 전쟁이었지만 그때부터 벌써 사격의 달인인 저격수가 운용되었던 모양이다. 총기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전열보병 전술이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몸을 숨기는 저격수 사격으로 확 바뀐 것이다.
때는 1864년 5월 9일이었다. 북군의 제6군단장이었던 존 세지윅 장군은 몰래 숨어 있는 남군 저격수들을 무서워하여 부하들이 행군을 못 하고 벌벌 떨자 사기 진작을 위해 몸을 훤히 드러내고 팔을 흔들면서 이렇게 갈궜으나..

"야 이놈들아, 겨우 총알 한두 발 날아오는 것 때문에 겁 먹고 숨었냐? 그러면 전장에서 적군들이 진짜로 눈앞에서 총을 갈겨댈 때는 어쩔 참이냐? 뭐, 저격수라고? 그래 봤자 이 정도 장거리에서는 사람은커녕 집채만 한 코끼리가 있어도 못 맞.. (탕) .. 으윽!"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ㄲㄲㄲㄲㄲㄲ
그는 장거리 저격을 당해서 총알을 왼쪽 눈 아래에 맞고 그대로 즉사하고 말았다. 그의 용감한 솔선수범 행동은 안타깝게도 병사들의 사기 진작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남군 소속의 저 무명 저격수는 졸지에 적군의 쓰리스타를 사살하는 초대박 전과를 올렸는데, 얼마나 큰 포상을 받았을까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13 19:26 2016/07/1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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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의 역사 -- 上

1. 개인 화기로서 등장한 최초의 총은 화승총

전쟁이라는 건 그걸 겪는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고 비극이다. 하지만 옛날에 이미 일어났다가 끝나 버린 전쟁에 대해서 우리가 뭘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이제는 후손들도 깨달은 게 있는지, 최소한 인류를 멸망시킬 능력이 있는 주류 국가들이 대놓고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식민지를 만들지는 않는다. 시대가 바뀌었고, 핵무기까지 등장할 정도로 무기의 화력이 역설적으로 너무 강해진 탓이다. 앞으로 미래가 또 어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3차 세계 대전은 2차가 끝난 지 70년이 넘은 2016년 현재까지는 여전히 떡밥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인간이 활, 칼, 창 같은 냉병기로 싸우던 시절부터 돌격소총, 전투기, 핵무기, ICBM이 존재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전쟁과 싸움의 근원은 한결같이 '인간 내면의 정욕'(lust)이라고 말한다(약 4:1). 이거 하나 때문에 사람 죽이는 기술이 어떤 식으로 기상천외하게 발달해 왔는지를 과학 기술 역사와 연계해서 살펴보는 것은 밀덕이나 역덕에게 나름 의미가 있어 보인다. 냉병기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서도 몇 년 전에 다룬 적이 있다.

흔히 혼동하기 쉬운데, 활은 새총과는 달리 줄의 탄성이 아니라 활대의 탄성을 이용해서 화살을 날린다.
이건 마치 케이블카와 스키장 리프트의 차이와도 비슷해 보인다. 전자는 차량 위에 달린 바퀴가 케이블 위를 굴러가는 형태이기 때문에 개념적으로 모노레일과 비슷하다. 하지만 후자는 차체는 가만히 고정돼 있고 케이블 자체가 움직임으로써 차체 내지 좌석을 이동시키니까 말이다.
총보다 화력이 약하고 다루기도 까다로운 활로 아들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맞힌 빌헬름 텔은 정말 대단한 인물이긴 하다. 실존하지 않은 가상의 캐릭터이더라도 말이다.

그러다가 총이 발명되면서 인간은 지구상의 그 어떤 맹수도 죽일 수 있는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올랐으며, 같은 인간끼리 싸우는 전쟁의 양상도 크게 바뀌었다.
기존 갑옷이나 방패 같은 방식의 방어구는 화살이나 냉병기가 아니라 훨씬 더 큰 운동량을 가진 총알을 막는 건 어림도 없었다. 아니면 인간이 거동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보다 더 두껍고 무거워져야 했다. 그러니 그런 건 퇴출되었고, 차라리 방탄조끼나 헬멧으로 형태가 바뀌었다.

다만, 총이 하루아침에 모든 냉병기를 싹 밀어낸 건 아니다. 총도 똑같이 길다란 총구가 있고 방아쇠가 달렸다고 해서 다 같은 총이 아니다.
총은 총알을 강한 화력으로 편하고 지속적으로, 또 단위 시간당 많이 발사하기 위해서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내부 구조가 바뀌고 발전해 왔다. 쉽게 말해 서울-부산 열차의 운행 시간이 단축되고 컴퓨터의 연산 속도가 빨라진 것만큼이나 총의 격발 성능도 향상되어 왔다. 시대에 따라 그 양상이 명백한 편이므로 총이 등장하는 옛날 역사물을 만든다면(만화, 영화, 게임 등) 정확한 고증을 반영해야 오늘날의 똑똑한 역덕· 밀덕 시청자나 사용자들에게 털리지 않는다.

옛날에는 화약을 제조하는 기술부터가 최고급 최첨단 기술이었다. 재료의 가격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그걸로 차라리 대포도 아니고 더 작은 개인 화기를 만드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초창기의 총은 지금처럼 방아쇠만 당기면 바로 펑~ 발사되는 형태가 아니었다. 탄환과 화약을 잘 뭉쳐서 총구 안으로 쑤셔 넣고, 그 화약도 심지에다 따로 불을 붙여서 격발하는 등, 그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름하여 match lock, 화승총 또는 조총이다. 숙달된 사수라 해도 1분에 겨우 한 발을 쏠까 말까 수준에 불과했다. 방아쇠는 화승을 화약 접시와 연결하는 역할을 했지, 그런다고 바로 격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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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우리 선조부터가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임진왜란 때 이런 불편한 조총으로도 왜군에게 쳐발려서 나라가 멸망할 뻔했다. 하긴, 스페인의 신대륙 개척자(혹은 침략자)인 코르테스와 피사로도 임진왜란보다 불과 몇십 년 더 전에 그런 비슷한 수준의 총(거기에다 중화기인 대포까지 덤)으로 중남미의 비문명인들을 잘만 제압하고 멸망시켰었다.

그 시절에 총은 불(火)과 천둥, 짙은 연기를 내뿜으면서 '탕' 하니까 사람이 죽는 캐사기 무기가 아닐 수 없었다. 적군을 죽이는 게 아니라 겁을 주는 용도로도 이만한 물건이 없었으며, '겁 주는 용도'로는 오늘날까지 공포탄이 그 역할을 톡톡히 분담하고 있다.

2. 전열보병

옛날 화승총에 쓰인 흑색 화약은 한번 발사되고 나면 주변이 온통 연기로 자욱해져서 연기가 걷힐 때까지는 목표물을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무기가 아닌 전술 차원에서의 얘기를 좀 덧붙이자면, 그 시절에 총과 총끼리 교전이 붙었을 때는 오늘날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단순무식한 전술인 '전열보병'이라는 게 가능했다. 양 진영이 아무 엄폐물도 없는 개활지에서 한 100미터 간격으로 횡대로 쭈욱 늘어서서는 "영국 신사들이여, 그대들이 먼저 쏘시오" /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사양하겠소. 귀측에서 선빵을 날리는 게 어떻겠소?" 이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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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트리어트>의 한 장면.)

무슨 전쟁놀이도 아니고, 철없는 고삐리들이 건물 옥상에서 현피 뜨는 것도 아니고.. 병사들 목숨을 갖고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싶은데.. 저건 단순히 낭만적인 기사도 차원에서 나온 관행이 아니다. 그 시절엔 그 전술의 천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조차 전열보병의 불가피함과 효율을 인정하고 있었다.

먼저 쏜 쪽에서 일제히 격발을 하고 나면, 비록 맞은 쪽의 1열은 상당수 사망과 부상을 면치 못하지만, 먼저 쏜 쪽은 연기가 걷히고 긴 재장전 작업이 끝날 때까지 완전히 무력화 상태가 됐다. 그럼 맞은 쪽은 그 사이에 상대방을 향해 더 가까이 더 접근해서 반격을 하면 됐다. 실제로, 역사적으로는 먼저 쏜 쪽이 전투에서 지고, 반대로 1빵을 맞은 진영이 이긴 사례도 있다.
이런 식으로 총격을 교환하면서 전진하다가 병사가 너무 많이 죽고 전열이 먼저 흐트러지는 쪽이 졌다. 그 잔여 병력들은 항복하지 않는 한 그냥 적군 기병이나 냉병기 육탄전 병사들이 알아서 정리하면 됐다.

물론, 죽을 게 뻔한 상황에서 전열보병의 제1열로 서는 건 보통 멘탈로 가능한 게 아니었다. 과거 사다리를 타고 성을 오르는 공성전에서, 맨 먼저 사다리를 타는 1타는 그야말로 총알받이요, 그냥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듯이 말이다. (당장 우리 임진왜란 공성전에서도 볼 수 있듯, 돌팔매질, 뜨거운 물 등등..) 그런데 이런 선구자 아방가르드가 없으면 전투가 제대로 진행될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런 1열 1타는 당근과 채찍을 동원해서 강제로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다. 1타를 뛰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오는 병사는 종전 후에 나라에서 엄청난 벼슬과 보상을 약속하고, 전사하더라도 최고의 예우에다 유족들이 연금 타서 평생 먹고 살 걱정 안 하게 해 줬다.
반대로 1열로 서 있다가 무서워서 혼자 도망가는 놈은 사기 유지 차원에서 가혹한 태형과 채찍질로 거의 반 죽여 놓는 식으로 다스렸다. 적군에게 죽을 확률은 95%쯤 되지만 그래도 호국영령으로서 아주 영예롭게 산화하는 것인 반면, 아군 지휘관에게 죽는 건 100%이고 겁쟁이 졸장부로 아주 치욕스럽게 뒈지는 구도를 만든 것이다. =_=;;

그 시절에는 군복, 아니 전투복이 오늘날로 치면 사관학교 생도 예복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아주 형형색색 화려했다. 뿌연 연기 속에서 피아식별을 하는 게 더 중요했으며, "군대에 가면 저렇게 멋있고 간지나는 옷도 입는구나" 하는 긍정적인 홍보 효과도 덤으로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갑옷이 사라진 뒤에 초창기의 총기가 가져온 레어한 관행이다.

총기가 격발만 된다면야 활보다 화력이 강하지만 초창기에는 보다시피 그 격발이 너무 더디고 재장전도 힘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의 필요성이 지금보다 훨씬 더 절실했으며, 지금 같은 개인 단위 위장과 각개전투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3. 성냥에서 부싯돌로, 부싯돌에서 뇌홍으로

옛날 총은 격발 방식뿐만 아니라 총열의 내부 구조도 오늘날과 차이가 있었다. 총열 내부에 강선이 파이지 않아서 기껏 발사된 총알도 뱅글뱅글 돌지 않고 궤도가 안정적이지 못했다. 허나, 강선은 정교하게 파인 홈 형태인데 이건 옛날 기술로 제대로 만들기가 매우 어려웠다. 또한 그 강선의 이점을 살려 제대로 날아가 주는 총알을 만들 기술도 부족했다.

격발 방식 말고, 총열에 강선이 없다는 관점에서 옛날 총을 흔히 '머스킷'이라고 부르며, 오늘날의 강선이 파인 개인 화기를 '라이플'(소총)이라고 부른다.
강선도 없는데 총알이 최대한 곧게 나아가게 하려면 닥치고 총신을 곧고 최대한 길게 만들어야 했다. 옛날 화승총이 구조는 아주 단순해 보이는데 어지간한 작대기 지팡이처럼 엄청 길쭉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라이플은 기술이 한참 발달한 뒤인 19세기에야 등장했기 때문에 그 전까지 쓰인 총기는 다 머스킷 형태였다. 월트 디즈니 <포카혼타스>를 봐도 머스킷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프랑스의 소설 <삼총사>도 제목의 원래 의미는 그냥 총이 아니라 '머스킷 사수 트리오'(three musketeers) 정도다.
포카혼타스의 경우 위기· 절정부 장면을 보면, 토머스가 인디언 코쿰을 죽이면서 "both eyes open.."(조준할 때는 두 눈을 뜨고)라는 충고를 뇌까릴 때, 총의 심지가 타오르는 게 보인다. 1600년대의 match lock 방식 총이니까 그렇다.

화승 방식은 당장 비만 와도 심지가 꺼져 버리고 총을 쏠 수가 없으니, 불편해도 너무 불편하다. 그래서 일단 격발 방식이 총 내부에 부싯돌을 내장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담배에다 비유하자면, 불 붙이는 도구가 성냥에서 라이터로 바뀐 것과 같다. 총도 그런 변화를 겪었다. wheel lock, 그리고 뒤이어 flint lock이라는 방식이 등장했는데, match lock보다 사용이 더 편리해지긴 했지만 총의 구조는 예전보다 훨씬 더 복잡해지고 제조 단가가 더 올라갔다. 그래서 가성비 면에서 옛날 방식을 완전히 대체하기까지는 1세기 이상 시간이 더 걸렸다. 휠락은 말 그대로 방아쇠 주변에 동그란 바퀴 같은 장치를 볼 수 있으며, 플린트락은 총신 위쪽에 부싯돌처럼 생긴 돌출 부품이 있다.

그러다가 19세기에는 새로운 기폭제를 기반으로 '퍼커션 캡'이라는 방식이 도입되면서, 총기는 격발 방식이 부싯돌 점화가 아닌 뇌관 기반으로 바뀌었다. 툭 건드리기만 하면 부싯돌보다 불꽃이 훨씬 더 잘 일어나는, '뇌홍'이 든 캡슐을 탄환+화약과는 별개로 따로 장전한다. 총기의 방아쇠는 그 캡슐을 자극하는 역할만 한다. 그럼 그 뇌홍의 불꽃으로 인해 화약이 폭발하고, 그 힘으로 총알이 날아가게 된다.

퍼커션 캡은 거의 400년간 총기에 존재하던 화약 접시를 퇴출시켰으며 장전 속도를 크게 향상시켰다. 미국의 남북 전쟁을 포함해 19세기의 주요 전쟁들에는 부싯돌 방식 총기를 퍼커션 캡 기반으로 개조한 머스킷이 맹활약을 했다. 전열보병 전술도 사라졌으며, 병사들이 입는 군복도 미국 독립 전쟁 시절보다 훨씬 더 칙칙하고 단순해졌다. 그리고 이 탄환, 화약, 기폭제를 하나로 통합하여 간소화시킨 것이 바로 오늘날의 '탄피'가 되었다.

여담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세포이의 항쟁"이 왜 일어났는지도 그 시절에 총의 격발 방식을 알고 있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뭐, 탄환과 화약을 감싸는 주머니에 쇠기름· 돼지기름이 발라져 있었다고? 그럼 난 그걸 입으로 물어뜯고 총을 쏠 때마다 힌두 교/이슬람 교 율법을 어긴 꼴이잖아?" 이런 종교 규범 광역 어그로 때문에 용병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오늘날의 편리한 자동 소총이라면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下에서 계속됨)

Posted by 사무엘

2016/07/11 08:34 2016/07/1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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