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증기와 물방울
물이라는 건 일상적으로는 액체이지만 섭씨 0도 이하에서부터 고체 얼음으로 바뀌고, 섭씨 100도 이상에서부터 기체 수증기로 바뀌는 물질임이 주지의 사실이다(지표면 1기압 기준). 하지만 현실의 물은 상태가 이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복잡하게 자유자재로 바뀌는 물질이기도 하다.
- 물은 공기와 접촉하다 보면 굳이 100도 이상이 아닌 온도에서도 느리게나마 슬슬 증발해서 수증기가 된다. 일반적으로 물이 공기 중의 다른 기체를 녹여서 품지만, 반대로 자기가 공기 중에 끼여 들어가서 둥실둥실 떠 다니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습기라고 부른다.
- 수증기가 아니라 아예 미세한 물방울이 그대로 중력을 쌈싸먹고 공기 중에 뿌옇게 섞여 있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구름 내지 안개이며, 둘은 생긴 곳의 고도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존재이다. 수증기는 깔끔하게 시야에서 사라져서 눈에 보이지 않는 반면.. 저런 뿌연 물 입자는 주변 시야를 좁히고 가시거리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낸다.
수증기나 물방울이나 완전 별개의 존재는 아니다. 상대 습도가 100%에 근접할 정도로 매우 높아지면 안개도 잘 끼게 된다는 인과관계가 있다.
이런 공기 중의 습기나 수분이 주변의 차가운 물질과 부딪혀서 액화하면 이슬이나 성에가 된다. 액화로 모자라서 얼어붙으면 서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물론 어떤 건 물만의 특징이 아니라 액체라면 대체로 다 갖는 특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상변화 원리를 화학적으로 저수준에서 완전히 규명하는 건 상당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이다.
2. 가습과 제습
세상에는 모터와 발전기, 터빈과 프로펠러라는 상반된 기계가 있는 것처럼, 가습기와 제습기라는 물건도 동시에 존재한다.
물이 공기 중에 섞이는 방법과 조건이 저렇게 다양하다 보니, 가습기도 분무기마냥 아주 미세하게 쪼개진 물 입자를 분사하는 놈이 있는가 하면, 가열 증발이나 자연 증발을 유발하는 놈도 있다.
(1) 물 자체를 쏘는 놈은 가습 성능이 좋지만 물에 섞여 있는 세균· 불순물까지 같이 공개 중에 분사될 위험이 있다.
(2) 증발식은 불순물 걱정은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비싸고 가동 비용이 많이 들거나(물을 끓이려면..) 가습 성능이 떨어진다(세월아 네월아 자연 증발 유도)는 흠이 있다.
다음으로 제습은 가습과 반대로 공기 중의 눅눅한 물기를 온전한 액체 물의 형태로 도로 한데 수집하는 과정인데, 가습보다는 아무래도 더 어려워 보인다.
(1) 증발의 역순으로 아주 차가운 부위를 만들어서 습기를 액화· 응결시키는 제습기가 있는데, 얘는 개념적으로 에어컨의 완벽한 하위 호환이다. 에어컨이 사이다라면 제습기는 그냥 탄산수 정도라 하겠다. (송풍기는 맹물.. -_-)
얘는 다른 방식보다 제습 성능이 뛰어나지만, 에어컨의 공기 압축기가 그대로 들어간 형태이기 때문에 무겁고 전기를 많이 먹는다. 가동 중에 웅웅 소음도 감수해야 한다.
(2) 이런 기계 장치 말고 화학 반응으로 습기를 제거하는 물건도 있다. 넓은 실내보다는 옷장 안의 '물 먹는 하마', 김 봉지 안의 실리카 겔, 심지어 화학 실험 때 쓰이는 진한 황산 같은 부류 말이다. 습기를 한계치까지 머금어서 제습 능력이 고갈된 매체는 버리거나 아니면 따로 건조시켜서 재활용할 수 있다.
제습기 기계와 제습제의 차이는 마치 발전기와 전지/배터리의 차이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에어컨을 돌리면 제습도 자동으로 같이 되는데 굳이 제습기만 왜 필요한지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에어컨은 열기를 밖으로 빼내는 설비를 갖춰야 하는 반면, 제습기는 그런 게 없으니 설비가 에어컨보다는 조금이나마 더 단순하다.
또한, 도시에서는 빨래를 간편하게 밖에다 널어서 말릴 환경(미세먼지..)이나 여건(옥상???)도 갖추기 열악한 만큼, 제습기가 건조기 역할도 분담· 보조할 수 있을 것이다.
습도가 너무 낮으면 호흡기와 피부 건강에 안 좋고(그놈의 트고 갈라짐) 정전기가 잘 생긴다. 날씨는 일교차가 커진다.
습도가 너무 높으면 곰팡이· 세균이 번식하기 쉬워서 위생 여건이 안 좋아진다. 빨래가 잘 안 마르고 불쾌지수가 커진다.
그러고 보니 바이러스는 습도가 낮은 곳이 유리하고, 세균은 습도가 높은 곳이 유리하다는 게 참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똑같이 인체에 병을 일으켜도 둘은 그만치 서로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이러스와 세균이 다른 것처럼.. 세균하고 곰팡이· 버섯을 가리키는 균류는 또 서로 다른 존재이다.
폐렴은 곰팡이, 세균, 바이러스.. 세 병원체들로부터 모두 발생할 수 있으며, 치료법이 제각기 모두 다르다.
또한, 정전기는 건조해야 찌릿찌릿 잘 생기는 반면, 본격적인 전기 감전은 물이 흥건하게 젖은 환경에서 더 잘 발생하니 이것도 참 아이러니한 면모이다.
3. 물에 녹은 유기물과 무기물
우리가 일상적으로 물의 맑고 더러움을 판별하는 기준은 마실 수 있느냐, 씻는 물이나 농업 용수로 쓸 수 있느냐 같은 생리적 관점이다. 그래서 n급수라든가 화학적/생물학적 산소 요구량 같은 잣대를 만들어서 수질을 측정하곤 한다. 이런 건 물에 녹아 있는 유기물, 즉 부패하고 분해되는 물질의 양이 관심사이다.
그런데 음용 가능할 정도로 깨끗한 물이라고 해도, 그 물이 순도 100% H2O 순물질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잘한 무기물 불순물..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각종 ‘미네랄’ 성분이 여전히 극미량 녹아 있다.
이건 인체에 해롭지 않고 평소에는 더욱 문제될 게 없다. 그런데 뜨거운 물을 상시 취급하는 보일러나 온수 매트, 자동차 엔진(냉각수..), 증발식 가습기 같은 기계를 오래 가동하고 나면.. 물만 흐르거나 증발한 뒤에 이런 불순물이 앙금 형태로 조금씩 쌓이고 굳을 수 있다.
이건 당연히 기계 내부의 물의 흐름을 방해하고 탈을 일으키게 된다. 한번 부은 물이 계속 순환만 하는 게 아니라 새 물이 지속적으로 들어온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마치 신체 내부에 결석/담석이 쌓이는 것처럼,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쌓이는 것처럼, 치아 사이에 치석이 끼는 것처럼.. 이런 앙금을 일컫는 말이 '관석'이라고 따로 있다. 이건 물통 안에 끼는 평범한 물때 같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물질이다.
열 증발식 가습기는 초음파 진동식 가습기처럼 물 내부의 세균이 같이 분무되는 문제가 없는 대신, 물통의 관석을 주기적으로 청소해 줘야 한다. 일장일단이 있는 셈이다.
또한, 이런 이유로 인해 자동차 냉각수도 평범한 수돗물 맹물을 덥석 넣어서 오래 굴리는 건 엔진에 좋지 않다. 겨울에 꽁꽁 얼어서 터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물에 원래 녹아 있던 무기물 불순물이 엔진에 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엔진은 사람이 당장 화상을 입는 90도대의 뜨거운 물이 냉각수로 아주 유용히 쓰이는 곳이라는 걸 생각해 보자. 그리고 요즘 엔진은 연료와 엔진 내부 상태에 대한 민감도가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는 점도 말이다. (불순물을 조금도 용납하지 못함)
그러니 이런 기계들은 1급수니, 생물학적 산소 요구량이니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 다른 의미에서 깨끗한 물을 필요로 하는 셈이다.
자동차는 냉각 계통에 문제가 생기면 겨울에도 엔진이 과열되어 퍼질 수 있다. 그게 이상이 없으면 한여름 기온이 40~50도에 달하더라도 굴러가는 데 지장이 없다. 시동 걸린 엔진은 애초에 거기보다 훨씬 더 뜨거운 곳이니까.. 그리고 이 열이 바로 히터의 원천이다.
한여름에는 엔진 냉각에 덧붙여 타이어 공기압만 더 신경 쓰면 된다.
4. 물의 기묘한 특성
(1) 물은 사람의 온도만 낮춰 주지, 자외선은 전혀 차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물놀이를 하면 발도 슬리퍼로 가려지지 않은 발가락 부위는 검게 탈 정도이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해가 구름에 가려져서 하늘이 흐릴 때는 피부가 타지 않는다.
구름도 한낱 물방울 알갱이일 뿐인데 걔는 무슨 원리로 자외선을 차폐하는 거지? 게다가 구름은 무슨 수로 전기 에너지까지 품고서 천둥 번개를 일으킬 수 있을까..? 이건 내 과학 지식으로는 잘 모르겠다.
(2) 공기가 너무 건조하면 찌릿찌릿 정전기가 잘 생긴다. 하지만 아예 감전 사고는 신체가 젖었을 때 잘 난다.
세균이나 곰팡이는 공기가 습할 때 잘 번식한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건조한 환경에서 더 잘 퍼진다.
이런 것처럼 물기라는 것도 미세하게 있을 때와 흠뻑 넘쳐날 때의 특성이 좀 달라지는 듯하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