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중호우와 태풍

집중호우는 비만 죽어라고 많이 내리는 것이고, 태풍은 비뿐만 아니라 강풍을 동반해서 해일까지 일으키는 놈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후자는 따로 이름도 붙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강뿐만 아니라 바다까지 동시에 범람시킨다.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일대는 단순 침수가 아니라 월파 피해를 많이 겪는 편이다.
아무리 파도가 높고 강하기로서니 설마 물 자체가 도로 아스팔트를 박살내는 건 아니고... 파도에 같이 실린 다른 단단하고 무겁고 딱딱한 물체들 때문에 그 난리가 난 것이다. 근처에 폭탄이 터졌을 때 폭압보다는 파편에 더 큰 대미지를 입는 것과 같으며, 운동 에너지만이 아니라 그게 수반한 충격량이 커진 셈이다.

그러니 겨울에 눈싸움을 할 때, 던지는 눈덩이 안에다 돌멩이를 집어넣어서도 안 될 것이다.

2. 화재와 비슷한 점

물난리 침수도 물의 반대편인 화재와 아주 대등한 피해를 끼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불은 새까만 재를 남긴다. 재는 인간에게 아무 소용 없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물도 불타지만 않았을 뿐, 흙탕물 먹어서 어차피 못 쓰고 못 먹고 다 버려야 하는 쓰레기만 남긴다. 기계류든, 농작물이든 가재도구든 음식이건 무엇이든.
침수 쓰레기들은 시꺼멓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썩고 악취가 나고 위생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재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흉측하다.

화재 현장도 소화기 한 대로 혼자 초동진압에 실패했을 정도라면 포기하고 현장을 바로 탈출하고 신고나 빨랑 해야 된다.
그것처럼 지하에서 무릎만치라도 물이 차면 이제 뭘 건질 생각 말고 바로 빠져나와야 목숨이라도 건질 수 있다.
불이 번지는 거, 물이 불어나고 차오르는 거.. 둘은 정말 대등하게 경계해야 할 듯하다.

불에 대비해서 방화벽이 있다면, 물에 대비해서 차수판이라는 것도 있다.;;
비슷한 위치에서 비슷한 물난리를 겪었는데 저수지가 돼 버린 지하주차장과 그렇지 않은 지하주차장은..
형태는 좀 다르지만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의 현대판을 보는 것 같다.

물난리 때는 사람 폐에 유독가스가 들어가서 질식해 죽는 건 없다. 폐에 물이 들어가서 익사할 뿐.
물난리는 연기나 열기, 유독가스 같은 건 확실하게 없지만..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바람에 시체가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서야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3. 타 매체에서의 묘사

(1) 일본의 국가 "기미가요"는 가사가 "임의 대는 천 년 만 년, 작은 조약돌이 큰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이다.
그런데 좀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는가? 육지 지형과 관련해서 장구한 시간을 말할 때는 보통은 퇴적보다 풍화를 언급하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느냐 말이다. 조약돌이 바위가 되는 게 아니라 반대로 바위가 다 쪼개져서 모래알이 되는 거.. "바윗돌 깨뜨려 돌덩이" 동요처럼 말이다. 글쎄, 이것도 내 편견일 뿐일 수도 있지. ㄲㄲㄲ

(2) 성경에도 뭔가 물이 불어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겔 47:3-5에 따르면 발목, 무릎, 허리, 사람 키보다 더.. 이렇게 단계적으로 더 깊어진다.
깊이에다가 유속, 물에 섞인 이물질의 농도라는 변수를 추가로 고려하면 이 물을 건너는 난이도를 얼추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걷기만 하면 되는지, 아니면 작정하고 헤엄을 쳐야 하겠는지 등..

4. 기조력

지구는 공전과 자전을 하면서 자기 주변의 물질이나 심지어 위성 달과 여러 힘을 주고 받고 있다. 그리고 여러 자잘한 물질들이 지구로 들어오기도 하고, 여러 물질들이 우주 밖으로 빠져나간다.
가령, 운석 같은 건 지구의 중력에 이끌려 들어온다. 그러나 지구에 있는 수소와 헬륨 같은 아주 가벼운 물질들은 반대로 아주 천천히.. 수십~수백 년에 걸쳐서 지구를 탈출해 우주 밖으로 나간다고 한다.

얘들은 아무리 가볍기로서니, 로켓을 쏘면서 온갖 애를 써서 우주로 힘겹게 나가는 인간에 비해 지구의 중력 가속도를 너무 잘 극복하는 것 같다. 지구의 자전 속도가 좀 느려서 원심력이 덜하면 이렇게 빠져나가는 속도도 좀 느려질지?

그리고 달의 인력이 바닷물을 끌어당긴다는 건 뭘 의미할까? 이것 때문에 전세계의 그 육중한 바닷물이 통째로 요동 치면서 밀물 썰물이 발생할 정도이며, 이건 정말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이다.
그런데 그 에너지에 비해서 바닷물 말고 우리 인간이나 다른 가벼운 물체들이 딱히 달의 인력 때문에 어디 끌려간다거나 무게가 달라지는 걸 느끼는 건 없다시피하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난 여전히 직감적으로 본질적으로 이해를 못 하고 있다.

지구는 이례적으로 크고 묵직한 위성이 주변에 있기 때문에 일단 자신도 자전하는 축과 형태가 극도로 안정되는 효과가 난다. 먼 옛날에 뭔가 우주적인 격변이 벌어졌을 때, 금성은 이런 게 없었기 때문에 혼자 자전축이 180도에 가깝게 뒤집혀 버리고 자전 속도도 극도로 느려진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지구는 기조력을 따라 수시로 드나드는 바닷물이 마찰을 일으키기 때문에 자전 속도가 아주 미세하게나마 느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여파 때문에 달은 지구로부터 1년에 수 cm 남짓 더 멀어지고 있다. 이런 건 도대체 어떻게 알아 냈는지 신기하기 그지없다. 나는 지구 자전 속도가 느려지는 건 이해가 되는데, 달이 지구로부터 멀어지는 건 왜 그런 인과관계가 성립하는지 이것도 잘 납득이 안 된다.

5. 물의 나머지 특성

(1) 냇물이 모여서 강이 되고, 강물들은 하류 끝까지 가서 모두 바다로 흘러든다. 하지만 강과 바다는 특성이 많이 다르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제일 간단하게는.. 전에도 한번 얘기했었지만, 강이 하류로 점진적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짜워지는 게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강은 그냥 민물이고 바다는 처음부터 그냥 짠물이다. 처음부터 상태가 다르다. 이것도 뭔가 창조냐 진화냐 같은 소리처럼 들린다.
강이 바다의 염분에 기여를 하고 있었다면, 짠 바닷물이 강으로 역류하는 걸 막는 하구둑 같은 걸 인간이 만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2) 그리고 음향 효과도.. 바다는 24시간 내내 파도 소리 때문에 시끄럽고 작은 계곡이나 개울은 졸졸 소리가 나서 시끄러운 편이다.
적당한 크기의 강은 물이 아무 소리 없이 흐르니 제일 조용하다.

(3) 강은 너무 빨리 많이 흐르면 흙탕물과 온갖 잡탕 이물질 천지가 된다. 그러나 너무 천천히 적게 흐르면 그것대로 고인물 썩은물이 된다. 그러니 적당한 유속으로 흘러아 가장 깨끗한 상태가 된다.
전반적으로는 상류에서 계곡· 개울 상태일 때가 제일 차갑고 깨끗하다. 하류로 갈수록 물이 마시는 건 물론이고 담그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더러워지는 편이다.

(4) 바닷물의 수질은 동해와 서해가 정말 유의미하게 차이가 많이 난다. 그리고 한여름에 바닷물은 계곡· 개울에 비하면 훨씬 더 따뜻하다.
그렇잖아도 지구 온난화 때문에 기온이 올라가서 난리인데, 수온까지 올라갈 정도이면 열이 좀 받고 있는 게 아니다.;;

(5) 강은 비가 너무 많이 내리고 댐에서 물을 방류하기 시작하면 수위가 확 올라가고 범람한다.
그러나 바다는 지진이나 태풍 때문에 해일이 발생했을 때, 그리고 달에 의한 기조력이 커졌을 때 일시적으로 수위가 확 올라가서 주변 땅이 물폭탄을 맞을 뿐이다. 서로 근본 원인이 완전히 다르다.
특히 기조력으로 인한 수위 상승은 지표면에서 발생하는 악천후 징후가 전혀 없이 슬그머니 발생하는 이벤트이기 때문에 더욱 신기하게 느껴진다.

(6) 물은 그냥 무색 투명한 물질인데 대외적으로는 물의 상징색이 파랑으로 굳어져 있다. 태양의 상징색이 빨강이나 노랑으로 굳어진 것처럼 말이다.
물은 하늘 색깔을 투영해서 자신도 파랗게 보이는 것인데, 어지간히 규모 있는 물이 파란 하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흐르는 일은 극히 드물긴 하겠다.

(7) 일상생활에서 늘 드는 의문인데.. 물 같은 유체는 한 곳에서 다른 곳에다 옮겨 부어도 왜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몽땅 다 깔끔하게 흘러가지 않고 잔당이 남아 있는 걸까? 분자 구조 차원에서 표면장력인지 뭔지가 작용해서 지구의 중력까지 거스르는 걸까? 이건 곤충이 천장이나 벽에 착 앉을 수 있는 이유와 비슷하게 생각보다 굉장히 신기한 현상이다.
하긴, 물이 절대로 스며들지 않고 물방울이 동글동글하게 맺히는 특수한 재질을 쓴다든가.. 액체 자체가 물이 아니라 수은 같은 것이면 남김 없이 마치 모래알 붓듯이 옮겨 붓는 게 가능하다고 한다.

(8) 물과 땅의 엄청난 비열 차이 때문에 바닷가 내지 바다에서는 바람이 장난 아니게 많이 분다. 이렇게 공기가 많이 흐르고 바닷물이 증발도 많이 하기 때문에 바다 한복판에서는 비구름이 형성되고 태풍이 힘을 얻기도 한다.
바다에서 이안류가 사람 안전을 위협한다면, 항공에서는 급변풍이라고 불리는 윈드시어가 비행기의 이· 착륙 때 안전을 위협한다.
이걸 생각하면 그러고 보니 물뿐만 아니라 상승기류와 하강기류, 빌딩풍처럼 공기의 흐름에도 신기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유체역학의 위대함을 느낀다.

Posted by 사무엘

2023/12/28 08:35 2023/12/2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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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증기와 물방울

물이라는 건 일상적으로는 액체이지만 섭씨 0도 이하에서부터 고체 얼음으로 바뀌고, 섭씨 100도 이상에서부터 기체 수증기로 바뀌는 물질임이 주지의 사실이다(지표면 1기압 기준). 하지만 현실의 물은 상태가 이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복잡하게 자유자재로 바뀌는 물질이기도 하다.

  • 물은 공기와 접촉하다 보면 굳이 100도 이상이 아닌 온도에서도 느리게나마 슬슬 증발해서 수증기가 된다. 일반적으로 물이 공기 중의 다른 기체를 녹여서 품지만, 반대로 자기가 공기 중에 끼여 들어가서 둥실둥실 떠 다니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습기라고 부른다.
  • 수증기가 아니라 아예 미세한 물방울이 그대로 중력을 쌈싸먹고 공기 중에 뿌옇게 섞여 있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구름 내지 안개이며, 둘은 생긴 곳의 고도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존재이다. 수증기는 깔끔하게 시야에서 사라져서 눈에 보이지 않는 반면.. 저런 뿌연 물 입자는 주변 시야를 좁히고 가시거리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낸다.

수증기나 물방울이나 완전 별개의 존재는 아니다. 상대 습도가 100%에 근접할 정도로 매우 높아지면 안개도 잘 끼게 된다는 인과관계가 있다.
이런 공기 중의 습기나 수분이 주변의 차가운 물질과 부딪혀서 액화하면 이슬이나 성에가 된다. 액화로 모자라서 얼어붙으면 서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물론 어떤 건 물만의 특징이 아니라 액체라면 대체로 다 갖는 특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상변화 원리를 화학적으로 저수준에서 완전히 규명하는 건 상당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이다.

2. 가습과 제습

세상에는 모터와 발전기, 터빈과 프로펠러라는 상반된 기계가 있는 것처럼, 가습기와 제습기라는 물건도 동시에 존재한다.
물이 공기 중에 섞이는 방법과 조건이 저렇게 다양하다 보니, 가습기도 분무기마냥 아주 미세하게 쪼개진 물 입자를 분사하는 놈이 있는가 하면, 가열 증발이나 자연 증발을 유발하는 놈도 있다.

(1) 물 자체를 쏘는 놈은 가습 성능이 좋지만 물에 섞여 있는 세균· 불순물까지 같이 공개 중에 분사될 위험이 있다.
(2) 증발식은 불순물 걱정은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비싸고 가동 비용이 많이 들거나(물을 끓이려면..) 가습 성능이 떨어진다(세월아 네월아 자연 증발 유도)는 흠이 있다.

다음으로 제습은 가습과 반대로 공기 중의 눅눅한 물기를 온전한 액체 물의 형태로 도로 한데 수집하는 과정인데, 가습보다는 아무래도 더 어려워 보인다.

(1) 증발의 역순으로 아주 차가운 부위를 만들어서 습기를 액화· 응결시키는 제습기가 있는데, 얘는 개념적으로 에어컨의 완벽한 하위 호환이다. 에어컨이 사이다라면 제습기는 그냥 탄산수 정도라 하겠다. (송풍기는 맹물.. -_-)
얘는 다른 방식보다 제습 성능이 뛰어나지만, 에어컨의 공기 압축기가 그대로 들어간 형태이기 때문에 무겁고 전기를 많이 먹는다. 가동 중에 웅웅 소음도 감수해야 한다.

(2) 이런 기계 장치 말고 화학 반응으로 습기를 제거하는 물건도 있다. 넓은 실내보다는 옷장 안의 '물 먹는 하마', 김 봉지 안의 실리카 겔, 심지어 화학 실험 때 쓰이는 진한 황산 같은 부류 말이다. 습기를 한계치까지 머금어서 제습 능력이 고갈된 매체는 버리거나 아니면 따로 건조시켜서 재활용할 수 있다.

제습기 기계와 제습제의 차이는 마치 발전기와 전지/배터리의 차이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에어컨을 돌리면 제습도 자동으로 같이 되는데 굳이 제습기만 왜 필요한지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에어컨은 열기를 밖으로 빼내는 설비를 갖춰야 하는 반면, 제습기는 그런 게 없으니 설비가 에어컨보다는 조금이나마 더 단순하다.
또한, 도시에서는 빨래를 간편하게 밖에다 널어서 말릴 환경(미세먼지..)이나 여건(옥상???)도 갖추기 열악한 만큼, 제습기가 건조기 역할도 분담· 보조할 수 있을 것이다.

습도가 너무 낮으면 호흡기와 피부 건강에 안 좋고(그놈의 트고 갈라짐) 정전기가 잘 생긴다. 날씨는 일교차가 커진다.
습도가 너무 높으면 곰팡이· 세균이 번식하기 쉬워서 위생 여건이 안 좋아진다. 빨래가 잘 안 마르고 불쾌지수가 커진다.

그러고 보니 바이러스는 습도가 낮은 곳이 유리하고, 세균은 습도가 높은 곳이 유리하다는 게 참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똑같이 인체에 병을 일으켜도 둘은 그만치 서로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이러스와 세균이 다른 것처럼.. 세균하고 곰팡이· 버섯을 가리키는 균류는 또 서로 다른 존재이다.
폐렴은 곰팡이, 세균, 바이러스.. 세 병원체들로부터 모두 발생할 수 있으며, 치료법이 제각기 모두 다르다.

또한, 정전기는 건조해야 찌릿찌릿 잘 생기는 반면, 본격적인 전기 감전은 물이 흥건하게 젖은 환경에서 더 잘 발생하니 이것도 참 아이러니한 면모이다.

3. 물에 녹은 유기물과 무기물

우리가 일상적으로 물의 맑고 더러움을 판별하는 기준은 마실 수 있느냐, 씻는 물이나 농업 용수로 쓸 수 있느냐 같은 생리적 관점이다. 그래서 n급수라든가 화학적/생물학적 산소 요구량 같은 잣대를 만들어서 수질을 측정하곤 한다. 이런 건 물에 녹아 있는 유기물, 즉 부패하고 분해되는 물질의 양이 관심사이다.

그런데 음용 가능할 정도로 깨끗한 물이라고 해도, 그 물이 순도 100% H2O 순물질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잘한 무기물 불순물..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각종 ‘미네랄’ 성분이 여전히 극미량 녹아 있다.

이건 인체에 해롭지 않고 평소에는 더욱 문제될 게 없다. 그런데 뜨거운 물을 상시 취급하는 보일러나 온수 매트, 자동차 엔진(냉각수..), 증발식 가습기 같은 기계를 오래 가동하고 나면.. 물만 흐르거나 증발한 뒤에 이런 불순물이 앙금 형태로 조금씩 쌓이고 굳을 수 있다.
이건 당연히 기계 내부의 물의 흐름을 방해하고 탈을 일으키게 된다. 한번 부은 물이 계속 순환만 하는 게 아니라 새 물이 지속적으로 들어온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마치 신체 내부에 결석/담석이 쌓이는 것처럼,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쌓이는 것처럼, 치아 사이에 치석이 끼는 것처럼.. 이런 앙금을 일컫는 말이 '관석'이라고 따로 있다. 이건 물통 안에 끼는 평범한 물때 같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물질이다.

열 증발식 가습기는 초음파 진동식 가습기처럼 물 내부의 세균이 같이 분무되는 문제가 없는 대신, 물통의 관석을 주기적으로 청소해 줘야 한다. 일장일단이 있는 셈이다.
또한, 이런 이유로 인해 자동차 냉각수도 평범한 수돗물 맹물을 덥석 넣어서 오래 굴리는 건 엔진에 좋지 않다. 겨울에 꽁꽁 얼어서 터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물에 원래 녹아 있던 무기물 불순물이 엔진에 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엔진은 사람이 당장 화상을 입는 90도대의 뜨거운 물이 냉각수로 아주 유용히 쓰이는 곳이라는 걸 생각해 보자. 그리고 요즘 엔진은 연료와 엔진 내부 상태에 대한 민감도가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는 점도 말이다. (불순물을 조금도 용납하지 못함)
그러니 이런 기계들은 1급수니, 생물학적 산소 요구량이니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 다른 의미에서 깨끗한 물을 필요로 하는 셈이다.

자동차는 냉각 계통에 문제가 생기면 겨울에도 엔진이 과열되어 퍼질 수 있다. 그게 이상이 없으면 한여름 기온이 40~50도에 달하더라도 굴러가는 데 지장이 없다. 시동 걸린 엔진은 애초에 거기보다 훨씬 더 뜨거운 곳이니까.. 그리고 이 열이 바로 히터의 원천이다.
한여름에는 엔진 냉각에 덧붙여 타이어 공기압만 더 신경 쓰면 된다.

4. 물의 기묘한 특성

(1) 물은 사람의 온도만 낮춰 주지, 자외선은 전혀 차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물놀이를 하면 발도 슬리퍼로 가려지지 않은 발가락 부위는 검게 탈 정도이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해가 구름에 가려져서 하늘이 흐릴 때는 피부가 타지 않는다.
구름도 한낱 물방울 알갱이일 뿐인데 걔는 무슨 원리로 자외선을 차폐하는 거지? 게다가 구름은 무슨 수로 전기 에너지까지 품고서 천둥 번개를 일으킬 수 있을까..? 이건 내 과학 지식으로는 잘 모르겠다.

(2) 공기가 너무 건조하면 찌릿찌릿 정전기가 잘 생긴다. 하지만 아예 감전 사고는 신체가 젖었을 때 잘 난다.
세균이나 곰팡이는 공기가 습할 때 잘 번식한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건조한 환경에서 더 잘 퍼진다.
이런 것처럼 물기라는 것도 미세하게 있을 때와 흠뻑 넘쳐날 때의 특성이 좀 달라지는 듯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2/06/22 08:35 2022/06/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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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박물관 입구에서 본관까지 쫙 펼쳐진 풍경이다. 본관으로 가는 중간 길목에서 "물과 환경 전시관"에 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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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에 전시된 것은 애들 눈높이에 맞춰서 그냥 물의 소중함, 숲과 자연과 환경의 소중함 같은 것들이어서 따로 사진을 소개하지 않겠다. 상수도 시설보다는 더 포괄적인 주제이다. 그렇다고 "물은 답을 알고 있다" 급의 황당한 낭설이 버젓이 소개된 건 아니었다. ㅎㅎ

"비가 오랫동안 오지 않을 때도 계곡에 어떻게 물이 흐를 수 있을까?"는 성인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만한 의문인 것 같다. 짐작하다시피 숲에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식물이 광합성을 해서 산소를 만들어 내는데, 이 산소의 출처조차도 물 분자를 구성하던 산소 원자라는 것을 이과 출신이라면 익히 잘 알 것이다.

다만, 한국이 물 부족 국가라는 얘기는 1990년대에 어디선가 UN 통계를 인용하면서 언론에서 한창 떠들어댔었던 이슈인데, 지금은 그게 상당수 근거 없는 루머일 뿐이라는 반박도 나와 있다.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난리였었는데 말이다. 특히 폭염과 가뭄을 몇 번 겪고 나서는 도시에서도 제한급수 운운했었으며, 공중 목욕탕에서는 물이 훨씬 더 빨리 끊기고 매번 수동 재조작을 해야 물이 나오는 불편한 "절수기"가 장착된 샤워기를 의무적으로 운용해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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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도 정수장 내부에 위치한 수도 박물관답게.. 서울 아리수를 직접 시음해 보라고 음수대가 실외에 비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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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이 수도 박물관 본관이다.
하수도 과학관은 시설들을 지하화해서 확보한 지상 부지에다가 최신 스타일로 지은 새 건물인 반면, 수도 박물관 본관은 문화재급의 옛날 건물이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저건 구한말에 우리나라 서울? 한양에 처음으로 상수도 시설이 구축될 때 지어졌던 바로 그 건물 원판이며, 실제로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중 하나이기도 하다.

1899년 9월이 한국의 철도 원년이라면 1908년 9월은 한국의 상수도 원년이다. 그리고 여기가 한반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상수도 정수장이었으며, 박물관이 개관한 2008년은 상수도 개통 100주년이었던 셈이다.
'송수실'이라는 단어 자체가 친근하고 자주 쓰이는 게 아니다 보니, 구글에서는 이 단어로만 검색해도 곧장 수도 박물관 본관이 바로 검색되고 사진이 쭈루룩 걸려 나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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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본관에서는 드디어 우리나라 수도 시설의 역사에 대한 자료를 많이 열람할 수 있었다. 수도꼭지를 돌리면 언제 어디서나 맑은 물이 콸콸 흘러 나오는 게 그냥 된 일이 절대 아니다.

옛날에는 '물장수'라고 신문이나 우유, 연탄을 배달하듯이 마시는 물과 씻는 물을 배달하는 사람이 있었다. 한가한 시골 마을이 아니라 서울처럼 인구가 많은 곳은 겨우 우물 몇 곳만으로는 물 수요가 감당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 시절엔 가뭄이나 환경 오염이 없어도 맹물조차도 얼마나 단가가 높고 귀했을지 상상이 된다. 지금은 그나마 저런 물장수와 제일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은 정수기 위쪽에다 꽂는 그 물탱크에 담긴 생수를 나르는 인부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지금처럼 합성 세제나 공장 폐수에 의한 물 오염만이 없을 뿐이지, 당장 인간의 배설물이나 기생충에 의한 오염과 수인성 전염병(콜레라 같은..)은 오히려 더 만연해 있었다. 무식하게 친환경 친자연만 추구한다고 인체 건강에 좋은 게 절대 아니다.

개인적으로 학창 시절에 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수업을 겸사겸사 들어 놓은 게 평생 교양(?)의 밑천으로 쓰이는 것 같다. 서울 지리 쥐뿔도 모르던 시절에 접했던 <성북동 비둘기>만큼이나.. <북청 물장수>라는 시도 있다.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 머리맡에 찬물을 솨 퍼붓고는 그만 가슴을 드디면서 멀리 사라지는 북청 물장수." 굉장히 고된 직업 내지 알바를 굉장히 시원하고 낭만적인 느낌으로 묘사했지만.. 물장수에게서 물을 사야 하는 세상이라면 정말 갑갑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등 양쪽으로 물동이를 이고 낑낑대는 게.. 영화에서는 <킬 빌>에서 키도 누님이 파이 메이 밑에서 수련 받을 때...
그리고 아예 엄 복동에서도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기 전에 물장수 일을 하는 장면 정도가 기억에 남아 있다. ㄲ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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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그림을 시작으로 수도 박물관 본관 내부는 구획 구분 없이 커다란 방 하나에 이런 게 전시되어 있는 게 전부였다.
자동차가 발명되면서 기존 마차 사업자들이 반발했듯이, 상수도가 개통하면서 물장수들도 많이 반발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1908년부터 전국 방방곡곡에서 동시에 수돗물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아니고, 물장수라는 직업 자체가 신속하게 없어진 것 역시 아니다. 그러니 <북청 물장수> 같은 시가 무려 1924년에 발표될 수 있었던 것이지 싶다.

지금은 한강에서 수돗물 공급을 위한 취수는 저 멀리 팔당댐부터 시작해서 잠실대교(정확히는 잠실 수중보) 이북까지의 상류 구간 몇 군데에서 한다. 하지만 정수장은 이런 뚝도를 포함해 하류에도 존재하며, 지금의 선유도 공원도 과거에는 수돗물 정수장이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아래의 그림은 2000년대 중반의 옛날 보도 자료이긴 하지만, 취수장과 정수장의 관계를 보여준다. 수도 박물관이 있는 곳이 바로 '뚝도 정수장'이다.
취수장이건 정수장이건 상수도와 관련된 시설은 군부대 내지 발전소에 준하는 보안 시설로 간주되어 민간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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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한강에 상수도가 처음으로 건설됐던 시절에는 취수 시설도 지금만치 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박물관 내부의 설명을 보면 "취수정은 송수실로부터 166m(고작!!) 떨어진 한강 중류 2.4m 수심 강바닥을 3m 정도 판 후 ..... 이런 크기의 콘크리트 정수정을 설치하고, 바닥에서 높이 30cm 되는 곳에 개구부를 설치하였다"라고 돼 있다.
쉽게 말해, 지금처럼 저 멀리 상류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그냥 정수장 근처에서 적당히 물을 끌어다 썼던 것이다.

수돗물은 "취수 → 침전 → 여과(필터링..) → 정수"의 순으로 세균과 불순물을 걸러낸 뒤, 수도관을 타고 최종 수요지에 도달했다. 후대 절차로 갈수록 걸러내는 불순물의 규모가 더 작아진다. 흔히 알려져 있는 염소 소독은 정수 단계에 속한다.
상수도 정수장에서는 그럭저럭 깨끗하거나 약간 더러운 물을 음용 가능할 정도의 깨끗한 물로 바꾸는 반면(90점을 97점 정도?), 하수 처리 시설에서는 최악의 더러운 물을 그래도 적당히 더럽고 자연 회복 가능할 정도의 수질로 바꾼다는 차이가 있다(0~10점을 4, 50점대로?).

아무튼, 물이 이렇게 만들어지고 나면 옛날에는 펌프를 돌려서 여기서 3km 남짓 떨어진 중랑천 건너편의 '대현산'이라는 언덕 꼭대기의 배수지로 끌어올렸다고 한다. 지금은 꼭대기까지 온통 건물이 지어져서 별 존재감이 없는.. 신금호-행당 일대의 그 해발 80m짜리 언덕 말이다. 거기까지 올라간 물은 아래로 내려가면서 사대문 안과 용산까지 공급됐다. 오오...

지금도 거기에 송수· 배수 관련 시설이 있긴 하다. 하지만 다 지하화됐기 때문에 기존 시설과 부지는 '응봉 공원'이라는 공원으로 바뀌어 있다.
서울 지하철 5호선 신금호 역 2번 출구와도 아주 가깝기 때문에 찾아가기 쉽다. 여담이지만, 아차산-광나루 사이에도 '아차산 배수지'가 있다.

이렇듯, 서울 상수도의 원리와 역사를 소개해 놓은 본관이 제일 흥미로웠다. 옆의 별관은 기획 전시용인 모양이었으나, 본인이 방문하던 당시에는 컨텐츠가 없었다.
근처에는 과거에 수돗물을 지금에 비해서 느리고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여과하던 거대한 지하실(?)이 개방되어 있었다. 일명 '완속여과지'이다. 여기서 지는 池, basi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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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완속 여과'라고 해서 물을 깨끗한 모래에다 투과시켜서 불순물을 걸러냈다고 한다. 모래 자체도 주기적으로 청소하거나(주 1회) 교체(연 1회 이상)하고 말이다.
여과 진행 속도는 하루에 4m에 불과할 정도로 느리기 때문에 '완속'이다. 다만, 지금은 그렇게 여과하기에는 공급해야 할 물이 너무 많고, 또 취수한 원수의 수질도 예전보다 좋지 않기 때문에 화학 약품을 동원한 급속 여과 방식이 쓰인다. 급속 여과가 완속 여과보다 30배 이상 속도가 빠르다고 한다. (진행 속도가 120~150m/일)

완속 여과지가 현역이던 시절에는 이 모래 위로 물이 출렁출렁 넘쳐 흘렀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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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뒷쪽은 휴식 공간 위주였다. 현대식 상수도가 등장하기 전에 쓰였던 물레방아, 공동 수도, 우물, 펌프가 전시되어 있었고, 테이블과 평상도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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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인공 폭포도 구경하면서.. 여기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

Posted by 사무엘

2019/10/01 08:33 2019/10/0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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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지난 봄에 중랑 물 재생 센터와 서울 하수도 과학관에 다녀 온 것에서 착안하여, 올가을엔 말로만 듣던 수도 박물관을 다녀왔다.
수도 박물관은 서울숲의 근처에 있는 '뚝도 아리수 정수 센터', 쉽게 말해 상수도 정수장이라는 보안 시설의 내부에 있다. 즉, 서울숲의 내부에 있는 시설이 아니며, 강변북로 근처에 있는 고유한 출입구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 이건 당연히.. 정수장 자체와도 별도로 개설된 출입구이다.

여기를 어떤 교통편으로 찾아갈까 망설였는데..
이곳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성수대교 참사 희생자 위령비도 이 기회에 한번 찾아가 보기로 작정했다.
이 위령비는 자동차 전용 도로의 진출입로 옆이라는 좀 엄한 곳에 있는 관계로.. 차가 없이는 접근할 수가 없다. 그러니 전체 교통편은 자연스럽게 자가용으로 결정됐다. =_=;;;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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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간선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옆의 중랑천은 한강으로 합류하고 이 길 역시 자연스럽게 강변북로로 합류하게 된다. 다만, 합류 직전에 성수대교 방면으로 빠져나가는 나들목이 나온다.
이 나들목의 접속 도로는 '뚝섬로'이다. 뚝섬로와 고산자로가 만나는 '성수대교 북단 교차로'에서 계속 직진하면 서울숲 쪽으로 가게 되며, 오른쪽으로 꺾으면 그제서야 성수대교로 가게 된다.

단, 이때 예각으로 더 깊게 오른쪽으로 꺾으면 여기서도 지하도를 거쳐서 강변북로 동쪽 구리 방면으로 진입할 수 있다.
위령비는 설마 그 광활한 강변북로 본선에 있는 건 아니고, 강변북로와 뚝섬로를 잇는 진출입로, 철도로 치면 연결선에 속하는 좁은 도로 사이에 있다. 그나마 여기는 차들이 본선 구간만치 빠르게 달리지는 않으니 드나드는 게 덜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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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진출입로의 상행과 하행 사이의 공간에.. 위령비 참배객을 위한 주차장이 있다. 상· 하행 모두 어느 방향으로나 진출입 가능하다.
이 위령비 때문에 자동차 전용 도로 구간 내부에.. 무슨 휴게소도 아니면서 사고· 고장이 아닌 일반적인 명분으로 차를 세우고 사람이 머무를 수 있는 공터가 생겼다는 것이 무척 이색적이다.
위령비는 저 전방의 도로를 횡단하면 바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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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성수대교는 1979년 10월 16일에 완공됐다. 별 관련은 없지만, 이건 당시 대통령이던 원조가카가 암살 당하기 열흘 전의 일이었으며, 원조가카 역시 준공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거의 정확히 15년 만인 1994년 10월 21일, 경찰의 날 기념일 아침에 구 성수대교는 상판이 하나 무너져 떨어지는 대형 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32명이나 목숨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사망자가 부상자보다 훨씬 더 많았다. 사상자가 이런 형태로 발생한 이유는 시내버스 한 대가 거꾸로 뒤집혀서 천장을 아래로 향한 채로 바닥에 수직 낙하했기 때문이다. 사망자의 대부분이 그 버스의 승객이었다.

사고의 원인은 물론 부실공사였지만, 얘는 그래도 훗날 무너진 삼풍 백화점만치 악질적인 부실공사와 막장 운영의 산물은 아니었다. 또한, 성수대교도 외관상 아무 문제 없이 멀쩡하다가 무슨 지뢰 터지듯이 무너진 게 아니며, 당일에 차가 원활하게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이음매 사이의 균열이 심하게 벌어져 있기도 했다. (백화점은 아예 당일 5층의 영업과 출입이 금지되고 에어컨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을 정도였으니 원..)

이 위령비는 보다시피 사고 3주기인 1997년 10월에 만들어졌는데, 이때는 이미 성수대교가 다시 만들어져서 개통된 뒤였다(1997년 7월). 단지, 그 당시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열차가 다니던 구 당산철교가 상태가 매우 안 좋다는 진단을 받아 헐렸으며, 다시 건설되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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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비 주변은 이렇게 생겼다.
경부 고속도로 관련 기념탑과 위령비는 다 고속도로 나들목을 형상화한 모양이던데.. 저 비석은 뭘 형상화한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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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비석 뒤에는 희생자 32명의 명단이 새겨져 있었다. 경부 고속도로 순직자 위령비도 저렇게 뒷면에 명단이 적혀 있더라만..
이 중 무학여고 학생이 9명이고, 나머지 인원 중에는 필리핀 사람 1인, 그리고 서울교대 학생 1인도 포함돼 있었다.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 희생자 위령비는 양재 시민의 숲에 있고, 거기엔 대한 항공 858편 폭파 사고 희생자 위령비도 근처에 같이 있다.
그것처럼 성수대교 위령비 역시 아예 근처의 서울숲 내부로 옮기면 사람들이 찾아가기는 훨씬 더 편해질 것이다. 하지만 유족들이 한강과 더 가깝고 성수대교가 같이 보이는 여기가 더 낫다는 의견을 피력했기 때문에.. 그냥 지금 위치로 정해졌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20년 전인 1999년 8월 18일 밤엔 딸을 사고로 잃은 어느 아버지가 위령비 옆에서 음독 자살하여 주변을 한없이 안타깝게 했다.
다른 언론 보도를 검색해 보면 그분은 희생자 유족 대표 명목으로 위령비의 건립도 주도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극도의 슬픔과 정신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직장도 그만뒀으며.. 나중에는 딸 생각만 하며 거의 매일 위령비 곁을 떠나질 않는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자식 하나만 잃어도 보통 사람은 저렇게 멘탈이 견디질 못할 텐데,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 때는 더 극단적인 예도 있었다.
정 광진이라는 변호사는 딸만 넷이었는데 세 명을 저 사고로 잃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욥 실사판이 따로 없다. "집이 무너져서"(욥 1:19) 대신에 "백화점이 무너져서"로 치환하면 된다.

그래도 유가족이 이 엄청난 비극과 상처를 신앙의 힘으로라도 극복했다면.. 피해 보상금으로 장학 재단을 만들고 자기보다 더 어려운 후학들을 후원하는 초인적인 대인배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재단의 이름에다가는 물론 죽은 자녀의 이름을 붙이고 말이다.

성수대교 희생자 중에는 서울교대 재학생이던 이 승영 씨의 유가족이 그렇게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거기는 아주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다고 한다. 세 딸을 잃은 정 변호사도 재단을 만들었으며, 관련 보도 자료를 보면 "딸들이 살아 생전에 다니던 교회" 얘기가 나온다.

종교의 순기능이란 게 이런 데서 나오는 것이지 싶다. 굳이 기독교가 아니라 다른 종교라도 말이다. 이건 성경이 배타적으로 규정하는 죄와 심판, 복음, 구원, 성령의 열매 같은 '영적인 영역'과는 별개인 '정신적인 영역' 얘기이다.
그에 비해 세월호 사고 유족 중에서는 정치 선동꾼 말고 저렇게 뜻있는 결단을 한 사람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특히 일반인 유족 말고 단원고 유족 중에서 말이다. 난 딱히 못 들어 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성수대교나 삼풍 백화점 같은 처참한 대형 참사들을 겪고도 "아직까지도 달라진 게 없네" 운운하면서 한탄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소를 잃은 뒤에라도 외양간을 많이 고쳤으며, 그때에 비해서는 시스템이 보이지 않게 많이 개선되고 나아졌고 투명· 청렴해지고 안전해졌다.
비록 지금도 완벽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옛날엔 지금보다 얼마나 더 막장 헬이었는지, 법과 FM 대신 미개한 편법과 꼼수, 무식한 "까라면 까" 똥군기와 의지드립이 얼마나 더 만연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된다. 그때와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이다.

옛날에 그 여건에서는 그런 방법론이 불가피했던 점도 있긴 했다. 마치 지금 한국과 일본이 명목상 동맹이라고 해서 과거에 일제에 대항했던 독립 운동가들이 무의미한 뻘짓을 한 게 아니며.. 지금 마소가 오픈소스 진영과 친해졌다고 해서 과거 빌 게이츠와 발머 시절의 독점 정책이 삽질이 전혀 아니었던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6· 25 개전 초기에 야만적인 즉결처분이 괜히 있었던 게 아니다.
오히려 과거에 그렇게 독하게 나가면서 기업의 힘을 키우고 나라를 구한 덕분에 후대 사람들은 지금 이렇게 편하게 지내고 과거의 적(?)과도 열등감 없이 우호 관계를 맺고 있고, 과거의 관행과 방법론의 한계를 비판할 여유조차도 생긴 셈이다. 관계가 그렇게 정리된다.

이 복잡한 현대 문명에서 대형 사고가 아예 없을 수는 없다. 그리고 외국 선진국도 먼 옛날엔 건물이나 다리가 무너지는 급은 아니지만, 멀쩡히 날던 비행기가 공중분해 되거나 출입문이 확 뜯어져서 승객들이 밖으로 튕겨 나가서 죽는 황당한 사고도 난 적이 있다. 그런 사고를 겪고서야 안전 시스템이 보강되었으며 동일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이고, 무거운 얘기가 너무 길어지고 옆길로 너무 많이 샜다. 이제 본론으로 되돌아가 수도 박물관 얘기를 하도록 하겠다. 성수대교 위령비 구경을 마친 뒤, 본인은 차를 몰고 수도 박물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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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로 된 길다란 간판이 방문객을 반겨 주었다.
주차는 근처에 있는 서울숲 주차장에다 하면 됐다. 요금은 저렴한 편이지만 수요 대비 주차 공간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다. 여기는 주말에는 차를 가져오지 않는 게 상책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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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지도는 온통 흐리게 처리돼 있어서 본인도 직접 방문하기 전까지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수도 박물관은 달랑 건물 한 채(저 지도에서 4번 본관)가 전부인 형태가 아니고, 생각보다 넓었다.
옛날에 현역이다가 지금은(대략 1990년대부터) 더 쓰이지 않게 된 낡은 정수 시설들이 다 박물관으로 개조되었으며, 최신 보안 시설은 옆에 따로 만들어져서 철조망으로 둘러싸였다. 옛 서울 역과 지금 서울 역 건물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된다. 그 뒤, 수도 박물관 자체는 2008년에 만들어졌다.

인근의 서울숲 내부엔 강변북로를 횡단해서 한강 쪽으로 가는 육교가 하나 뻗어 있는데.. 이와 비슷하게 수도 박물관 내부에도 한강으로 가는 육교가 이어져 있다. 즉, 이 부근에 육교가 총 2개 있는 셈이다.
뭐, 그렇게 가도 강변의 자전거 도로나 산책로에 도달하지, 무슨 한강 공원이 나오지는 않는다. 인근의 뚝섬 한강 공원 쪽으로 1km가 넘게 한참을 가야 된다.

(下에서 계속)

Posted by 사무엘

2019/09/28 08:33 2019/09/2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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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대로에서 중랑천 서쪽 구간은 남북으로 동대문구와 성동구의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성동구에서 중랑천과 청계천으로 둘러싸인 삼각형 비슷한 지대는 뭐랄까.. 서울 시내이면서 서울 같지 않은 냄새를 물씬 풍긴다.

평범한 주택이나 업무 시설이 아니라 군자 차량기지부터 시작해서 빗물 및 하수 처리장,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스 탱크, 남쪽 끝에는 성동 자동차 검사소.. 민간인이 범접하기 어려우며 교외 변두리에나 있을 법한 인프라 시설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또한 장한평은 중고차 시장과 자동차 부품 상가가 유명하기도 하다.
그러니 여기 일대에 지하철 차량기지까지 들어선 것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성수에서 용답까지 없는 길을 일부러 만들어 가면서 괜히 애쓴 게 아니었다.

그런데 2010년대 이래로 이 동네가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하수 처리 시설의 일부가 복개되어 지하로 들어가고, 그 위의 부지가 공원으로 꾸며지는 듯하다.
근래에는(2017) '서울 새활용 플라자'라고 이름만 들어도 용도와 성격이 짐작되는 시장 겸 공공시설이 들어섰으며, 바로 옆엔 '서울 하수도 과학관'이라는 것도 나란히 생겼다.

결정적으로 하수 처리장의 이름마저 '물 재생 센터'라고 바뀌었으니, 이 동네는 친환경, 재활용 산업이라는 컨셉을 표방하면서 꼬질꼬질한 과거 이미지를 벗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다.
안 그래도 천호대로 일대의 군소 하천들을 답사하던 와중에 거기 정도면 방문하기 아주 좋은 곳이다. 그래서 본인은 거기를 찾아갔다.

새활용 플라자는 천호대로에 가까이 위치한 서울 청년 회의소에서 500m쯤 남쪽에 있다. 걸어서 못 갈 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약간 외진 곳에 있기도 하니.. 장한평 역 8번 출구 인근에서 대략 20분 간격으로 25인승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된다고 한다. 뭐, 본인은 자전거가 있으니 이 정도는 이동하기 딱 좋은 거리와 위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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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는 이렇게 생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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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여기가 정녕 서울 한복판이란 말이냐...;; 주변의 넓은 풀밭 벌판에 압도되어 버렸다. 옛날에 서울 마곡 미개발 지대를 보는 것 같았다.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에 여기부터 한 바퀴 돌면서 경치 감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는 주차료가 징수되는 구역 내부이기 때문에 자동차는 아무나 못 들어온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울타리나 출입 금지 표지판도 없고 사람 몸은 아무나 쉽게 들어올 수 있다.

여기에 각종 공원 시설들이 본격적으로 지어지고,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덜 유명하고 황량한 지금 모습을 기록으로 많이 남겨 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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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 년 동안 공사를 많이도 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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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관? 박물관 내부에는 시설의 명칭에 걸맞게 우리나라의 하수 처리 시설의 변천사에 대한 자료가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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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물 지도이다. 나름 하천이 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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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이런 물 재생 센터는 총 네 곳 있다. 난지도 같은 쓰레기 처리장의 액체 버전이라 할 수 있는데..
난지와 서남은 각각 고양과 김포에 근접한 너무 서쪽 끝에 있고, 동남쪽의 탄천에도 하나 더 있다. 그나마 중랑은 청계천과 중랑천이 만나는 지점이면서 서울 시내와도 그리 멀지 않으니 위치가 가장 좋다.

또한 중랑은 인서울 하수 처리장 중에 제일 먼저 생긴 곳이라고 한다. (나머지 세 곳은 80년대의 한강 종합 개발 사업 때 만들어졌지만 얘만은 박통 때 만들어짐)
근처의 군자 차량기지는 공교롭게도 최초의 인서울 지하철 차량기지인데.. 기막힌 인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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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도 과학관을 포함해 물 재생 센터까지 시설 전체의 축소판 미니어처가 눈에 띄었다.
처음에 봤던 그 황량한 벌판에는 앞으로 꽃밭과 연못이 조성되려는가 보다. 난지도 하늘 공원 같은 공원이 여기에도 생길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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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매립지에서 메탄 가스를 수집해서 열병합 발전을 하듯이, 하수 처리장에서도 메탄 수집이 가능한가 보다. 게다가 소규모로나마 수력 발전도 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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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이 저 정도로 중요한 자원인지 몰랐다. 질소처럼 생명체를 구성하는 원소 중 하나이며, 비료 내지 화약의 제조에도 쓰인다.
'나우루'라고 석유도 아닌 인광석 하나만으로 벼락부자가 됐다가.. 그게 고갈되면서 쫄딱 망한 나라가 있긴 했다.

이런 전시관 자체는 그냥 한 층이 전부이고 볼거리가 아주 많은 건 아니었다. 동영상까지 일일이 다 시청하더라도 2~30분이면 다 관람할 수 있었다.
그래도 서울 한복판에 이런 테마의 박물관과 넓은 공터가 있다니, 흥미로운 체험을 했다.

맨홀 아래의 길은 어떻게 나 있는지, 화장실에서 변기 물을 내리면 더러워진 물과 대소변은 어떻게 처리되는지 뭔가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옛날에는 동네 곳곳마다 일명 똥차라고 불리는 분뇨 수거차가 번거롭게 다녀야 했다. 재래식 화장실 기반인 곳에서는 끔찍한 악취가 진동하는 오물들을 퍼야 했고, 수세식에 정화조까지 갖춰진 건물이라도 침전물 찌꺼기(슬러지)는 몇 달 간격으로 직접 긁어 가야 했다. 슬러지는 한번 분해를 거쳤기 때문에 최초의 그 X만치 흉악한 외형과 악취를 지니지는 않지만.. 그래도 미관상 절대로 보기 좋게 생기지는 않은 건 마찬가지이다.

그랬는데 요즘 어지간한 도시에서는 그런 풍경이 사라졌다.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오물을 건물 정화조에서 썩히는 게 아니라 그대로 중앙 하수 처리장으로 보내기 때문이다. 하수도와는 별개로 부설된 통로로 말이다.

생각해 보니 우린 상수도 요금만 내지, 하수 처리 비용을 따로 지불하지는 않는다. 쓰레기는 유료 봉투에다 넣어서 버린다지만 버려지는 물은 정확하게 집계하는 게 가능하지 않으며, 의미도 없어서 그렇지 싶다. 상수도 요금에다가 하수 처리 비용까지 포함해서 징수하는 게 더 낫다.

중랑 물 재생 센터가 있는 곳은 청계천이 중랑천으로 합류하는 지점이다.
그런데 더 서남쪽으로 중랑천이 한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는 서울숲이라는 녹지 공원과 함께 인서울 거의 최후의 공장으로 여겨지는 삼표 시멘트가 있으며, 지도에서 가려지기까지 한 '서울 한강 사업 본부'와 함께 '수도 박물관'이 있다. 둘이 서로 좋은 대조군을 형성하는 듯하다.

아울러, 아차산-광나루 사이의 언덕에는 '서울 물 연구원'이라는 게 있어서 거기도 온통 지도에서 가려져 있다.
한강의 서울 시내 구간 정도면 이미 상수원으로 취수하지도 않는 하류일 텐데.. 물 관련 보안 시설이 비단 상수도 취수 시설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9/07/26 19:38 2019/07/26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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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는 한강이라는 거대한 강이 있다. 서울은 수도답게 고층 빌딩이 즐비하며,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한 뒤에 한참을 더 가야 시내가 나오고.. 자연물인 강조차도 폭이 저렇게 왕창 크다는 생각을 본인은 어린 시절부터 했었다.
한강이 임진강과 합류한 막바지 하구는 폭이 여기보다도 더 크며, 이름부터가 '조강'이라고 달리 불린다고 한다. 하지만 거기는 소금물이 수시로 드나드는 반쯤 바다이며, 사실은 북한이 코앞에 있어서 일반인이 접근할 수도 없으니 논외로 하자.

서울 전역을 통틀어 강이 한강만 있는 건 아니다.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산들의 계곡에서 개천이 발원하여 흘러내린다. 이것들은 지형이 낮아지고 다른 물줄기와 합쳐지면서 굵어진 뒤, 최종적으로는 한강으로 흘러든다. 모양이 트리 구조와 얼추 비슷하다. 사이클이 존재한다면 그건 하중도를 뜻할 것이다.

본인은 서울과 여기 변두리에 존재하는 하천으로 청계, 중랑, 도림, 안양, 탄.. 딱 5개 정도만 금방 떠오른다.
청계천은 딱 서울 도심을 지날 뿐만 아니라 이 명박 서울 시장 시절부터 복원 사업 때문에 너무 유명해서 모를 수가 없고.. 중랑천은 동부 간선 도로 때문에 금세 알게 됐다.

도림천은 서울 지하철 2호선이 일부 구간을 덮어 버렸기 때문에 알고, 안양천은 전철 구일 역의 교량과 서울-광명 경계 때문에, 탄천은 분당-판교의 경계 때문에 알았다.
좀 더 생각해 보니 탄천으로 흘러드는 양재천이 있으며, 은평구에서 국도 1호선 증산로와 나란히 흐르는 불광천, 그리고 근처의 서대문구에는 홍제천이 있다. 동쪽으로는 성내천이라는 것도 들어 봤다.

본인은 서울에 한강과 청계천 말고도 하천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흥미로운 사실을 추가로 알게 됐다. 복개되어서 지표면에서 존재감이 싹 사라지고 사실상 지하수처럼 바뀐 하천 구간도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복개라는 게 단순히 그 위로 고가 형태로 도로나 철도가 지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작고 만만한 하천의 경우, 주변의 땅과 구분이 전혀 안 되게 싹 복개되어서 시가지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바다는 간척하고 하천은 복개해서 땅을 확보하는가 보다.

가령, 청계천의 경우 복원 구간이 잘 알다시피 서울 시청 광장에서 시작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청계천이 원래부터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청계천의 제일 먼 발원지는 청운동의 인왕산 모 계곡 정도로 추정된다. 거기서부터 서울 시청 정도는 여전히 복개되어 있다.

본인은 이런 사실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고 서울 시내의 모든 하천을 돌아다닐 필요까지는 없고.. 가성비가 높은 천호대로의 동대문구· 성동구 구간을 중심으로 자전거를 타고 답사를 했다. 여기는 짧은 거리에 비해 꽤 다양한 하천들을 볼 수 있으며, 최근에 근사한 공원으로 조성된 중랑구 하수 처리 시설과 하수도 박물관도 있다. 그래서 예상했던 것보다 굉장히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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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설동 역 교차로를 지나서 천호대로가 시작되는 구간을 달려 보면.. 신설동-용두 역 사이에만 하천을 두 개나 건너게 된다. 바로 성북천과 정릉천이다. 하지만 다들 워낙 작기 때문에 다리를 건넌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들고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이들 모두 청계천으로 합류한다.

성북천은 북악산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지만 계곡을 제외한 상류 구간은 복개되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부터 한성대입구 지하철역에서부터 여기까지가 그나마 조금씩 복개를 걷어내고 복원되어서 위의 사진과 같은 산책로가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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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좀 더 지나면 나오는 이 하천은 정릉천이다. 정릉천도 상류는 복개되어 파묻혔고, 그나마 숨통을 튼 구간은 온통 내부순환로 고가가 위로 지나기 때문에 지상에서 제 모습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하긴, 본인은 작년에 고려대에 다녀올 때 이 산책로를 유용하게 이용했다.
내부순환로는 홍제천, 청계천 등 여러 하천의 선형을 따라 만들어졌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청계천 대신 정릉천으로 갈아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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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정릉천이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지점이다. 내부순환로도 마장 IC 이후로 청계천에서 정릉천 쪽으로 선형이 바뀌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청계천 박물관과 판잣집 체험관이라는 통나무집도 바로 여기 근처에 있다.
청계천이야 지금 같은 깔끔한 산책로가 조성되기 전에는 그 위로 고가도로가 지나고 있었고, 더 옛날에는 판잣집들이 즐비했고 물은 똥물 수준으로 더러웠다는 것을 국내 역덕 지리덕이라면 다들 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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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본인은 청계 고가 차도를 실물로 본 기억은 없다. 아직 서울 지리도 잘 모르고, 어쩌다 서울에 갈 일이 있으면 버스보다 지하철을 훨씬 더 즐겨 타던 대학교 초창기 시절이니 그런 걸 볼 일이 더욱 없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청계 고가 차도의 폐쇄· 철거와 서울 역 민자 역사 개관이 2003년 하반기로 꽤 비슷한 시기에 시행됐다는 것이 전부이다.

그 반면, 그로부터 10여 년 뒤에 서대문 고가 차도와 서울 역 고가 차도가 철거된 것은 확실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이것들은 내가 운전을 해서 직접 지나가 본 적도 있는 시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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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본인은 답십리까지 갔다. 여기서 주목한 곳은 바로.. 군자 차량기지의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전농천이라는 존재감 없는 개천이다.
얘도 원래는 북쪽의 배봉산에서 발원한다고 전해지지만.. 배봉산부터가 별로 크고 높은 산이 아니고 물줄기가 워낙 보잘것없는 수준이니 도시 개발을 위해 얄짤없이 복개되었다.

성동구 공영 주차장과 견인 차량 보관소가 바로 그 복개된 부지 위에 조성되었다. 시기적으로는 1970년대 후반.. 천호대로라는 길 자체가 닦인 때와 비슷하다. 어쩐지~! 여기는 교량 분위기가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도로에 교량 같은 이음매가 있더라.
그리고 남쪽의 복개 부지는 응당 차량기지가 사용하며, 전농천은 차량기지의 아래를 지나서 근처의 청계천으로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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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농천은 주차장과 차량기지 사이의 400미터 남짓한 직선 구간만이 복개되지 않았으며, 산책로도 한쪽에 짤막하게나마 마련돼 있다. 하지만 퀄리티가 그리 좋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위쪽에 차도와 나란히 지나는 인도가 더 낫다.
이 길은 청계천 같은 다른 하천으로 연결되는 게 없이 여기에서만 얼쩡거려야 하며, 중간에 앉아서 쉴 곳도 없다. 물의 양과 질이라든가 경치 역시 썩 좋지 않다.

그래도 하천을 따라 서울이라는 도시의 지리와 개발 내력을 공부하는 게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금화, 시민, 충정, 삼일 등.. 서울의 역사를 풍미하는 옛날 아파트들에 대해서도 자료를 한데 찾아서 글을 한번 썼으면 싶다.

하천의 생태에 대해서 궁금증이 하나 떠오른다.
가뭄이 계속되면 거기를 흐르던 물은 어쩔 수 없이 말라 버릴 것이다. 그래도 비가 그치자마자 물줄기가 즉시 칼같이 끊기는 건 아니다. 최상류의 계곡이라도 말이다.
이 물이 어떻게 유지되는 걸까? 강의 발원지에 가면 무엇이 있고 주변 지형이 어떤 형태일까?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모르겠지만 산 속 식물이 물을 자체적으로 저장해 놓고 증산 작용을 통해 그걸 수증기 형태로 위로 끌어올려 주는 것이 기여하는 게 크다고 한다. 그 많은 물이 위치 에너지를 얻어서 올라가는 것도 그냥 되는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에 나무를 비롯해 각종 식물들을 많이 심어 놓으면 뿌리가 흙을 붙잡아 줘서 홍수 때 산사태를 예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비가 안 오는 동안에도 계곡에 물이 공급되는 선순환이 계속된다. 산이 벌거숭이 민둥산이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여기까지 구경한 뒤 본인은 여기 근처에 있는 하수도 과학관을 찾아갔다. 글이 길어지니 여기 얘기는 다음 시간에 하도록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9/07/24 08:31 2019/07/24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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