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중호우와 태풍

집중호우는 비만 죽어라고 많이 내리는 것이고, 태풍은 비뿐만 아니라 강풍을 동반해서 해일까지 일으키는 놈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후자는 따로 이름도 붙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강뿐만 아니라 바다까지 동시에 범람시킨다.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일대는 단순 침수가 아니라 월파 피해를 많이 겪는 편이다.
아무리 파도가 높고 강하기로서니 설마 물 자체가 도로 아스팔트를 박살내는 건 아니고... 파도에 같이 실린 다른 단단하고 무겁고 딱딱한 물체들 때문에 그 난리가 난 것이다. 근처에 폭탄이 터졌을 때 폭압보다는 파편에 더 큰 대미지를 입는 것과 같으며, 운동 에너지만이 아니라 그게 수반한 충격량이 커진 셈이다.

그러니 겨울에 눈싸움을 할 때, 던지는 눈덩이 안에다 돌멩이를 집어넣어서도 안 될 것이다.

2. 화재와 비슷한 점

물난리 침수도 물의 반대편인 화재와 아주 대등한 피해를 끼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불은 새까만 재를 남긴다. 재는 인간에게 아무 소용 없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물도 불타지만 않았을 뿐, 흙탕물 먹어서 어차피 못 쓰고 못 먹고 다 버려야 하는 쓰레기만 남긴다. 기계류든, 농작물이든 가재도구든 음식이건 무엇이든.
침수 쓰레기들은 시꺼멓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썩고 악취가 나고 위생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재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흉측하다.

화재 현장도 소화기 한 대로 혼자 초동진압에 실패했을 정도라면 포기하고 현장을 바로 탈출하고 신고나 빨랑 해야 된다.
그것처럼 지하에서 무릎만치라도 물이 차면 이제 뭘 건질 생각 말고 바로 빠져나와야 목숨이라도 건질 수 있다.
불이 번지는 거, 물이 불어나고 차오르는 거.. 둘은 정말 대등하게 경계해야 할 듯하다.

불에 대비해서 방화벽이 있다면, 물에 대비해서 차수판이라는 것도 있다.;;
비슷한 위치에서 비슷한 물난리를 겪었는데 저수지가 돼 버린 지하주차장과 그렇지 않은 지하주차장은..
형태는 좀 다르지만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의 현대판을 보는 것 같다.

물난리 때는 사람 폐에 유독가스가 들어가서 질식해 죽는 건 없다. 폐에 물이 들어가서 익사할 뿐.
물난리는 연기나 열기, 유독가스 같은 건 확실하게 없지만..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바람에 시체가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서야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3. 타 매체에서의 묘사

(1) 일본의 국가 "기미가요"는 가사가 "임의 대는 천 년 만 년, 작은 조약돌이 큰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이다.
그런데 좀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는가? 육지 지형과 관련해서 장구한 시간을 말할 때는 보통은 퇴적보다 풍화를 언급하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느냐 말이다. 조약돌이 바위가 되는 게 아니라 반대로 바위가 다 쪼개져서 모래알이 되는 거.. "바윗돌 깨뜨려 돌덩이" 동요처럼 말이다. 글쎄, 이것도 내 편견일 뿐일 수도 있지. ㄲㄲㄲ

(2) 성경에도 뭔가 물이 불어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겔 47:3-5에 따르면 발목, 무릎, 허리, 사람 키보다 더.. 이렇게 단계적으로 더 깊어진다.
깊이에다가 유속, 물에 섞인 이물질의 농도라는 변수를 추가로 고려하면 이 물을 건너는 난이도를 얼추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걷기만 하면 되는지, 아니면 작정하고 헤엄을 쳐야 하겠는지 등..

4. 기조력

지구는 공전과 자전을 하면서 자기 주변의 물질이나 심지어 위성 달과 여러 힘을 주고 받고 있다. 그리고 여러 자잘한 물질들이 지구로 들어오기도 하고, 여러 물질들이 우주 밖으로 빠져나간다.
가령, 운석 같은 건 지구의 중력에 이끌려 들어온다. 그러나 지구에 있는 수소와 헬륨 같은 아주 가벼운 물질들은 반대로 아주 천천히.. 수십~수백 년에 걸쳐서 지구를 탈출해 우주 밖으로 나간다고 한다.

얘들은 아무리 가볍기로서니, 로켓을 쏘면서 온갖 애를 써서 우주로 힘겹게 나가는 인간에 비해 지구의 중력 가속도를 너무 잘 극복하는 것 같다. 지구의 자전 속도가 좀 느려서 원심력이 덜하면 이렇게 빠져나가는 속도도 좀 느려질지?

그리고 달의 인력이 바닷물을 끌어당긴다는 건 뭘 의미할까? 이것 때문에 전세계의 그 육중한 바닷물이 통째로 요동 치면서 밀물 썰물이 발생할 정도이며, 이건 정말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이다.
그런데 그 에너지에 비해서 바닷물 말고 우리 인간이나 다른 가벼운 물체들이 딱히 달의 인력 때문에 어디 끌려간다거나 무게가 달라지는 걸 느끼는 건 없다시피하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난 여전히 직감적으로 본질적으로 이해를 못 하고 있다.

지구는 이례적으로 크고 묵직한 위성이 주변에 있기 때문에 일단 자신도 자전하는 축과 형태가 극도로 안정되는 효과가 난다. 먼 옛날에 뭔가 우주적인 격변이 벌어졌을 때, 금성은 이런 게 없었기 때문에 혼자 자전축이 180도에 가깝게 뒤집혀 버리고 자전 속도도 극도로 느려진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지구는 기조력을 따라 수시로 드나드는 바닷물이 마찰을 일으키기 때문에 자전 속도가 아주 미세하게나마 느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여파 때문에 달은 지구로부터 1년에 수 cm 남짓 더 멀어지고 있다. 이런 건 도대체 어떻게 알아 냈는지 신기하기 그지없다. 나는 지구 자전 속도가 느려지는 건 이해가 되는데, 달이 지구로부터 멀어지는 건 왜 그런 인과관계가 성립하는지 이것도 잘 납득이 안 된다.

5. 물의 나머지 특성

(1) 냇물이 모여서 강이 되고, 강물들은 하류 끝까지 가서 모두 바다로 흘러든다. 하지만 강과 바다는 특성이 많이 다르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제일 간단하게는.. 전에도 한번 얘기했었지만, 강이 하류로 점진적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짜워지는 게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강은 그냥 민물이고 바다는 처음부터 그냥 짠물이다. 처음부터 상태가 다르다. 이것도 뭔가 창조냐 진화냐 같은 소리처럼 들린다.
강이 바다의 염분에 기여를 하고 있었다면, 짠 바닷물이 강으로 역류하는 걸 막는 하구둑 같은 걸 인간이 만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2) 그리고 음향 효과도.. 바다는 24시간 내내 파도 소리 때문에 시끄럽고 작은 계곡이나 개울은 졸졸 소리가 나서 시끄러운 편이다.
적당한 크기의 강은 물이 아무 소리 없이 흐르니 제일 조용하다.

(3) 강은 너무 빨리 많이 흐르면 흙탕물과 온갖 잡탕 이물질 천지가 된다. 그러나 너무 천천히 적게 흐르면 그것대로 고인물 썩은물이 된다. 그러니 적당한 유속으로 흘러아 가장 깨끗한 상태가 된다.
전반적으로는 상류에서 계곡· 개울 상태일 때가 제일 차갑고 깨끗하다. 하류로 갈수록 물이 마시는 건 물론이고 담그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더러워지는 편이다.

(4) 바닷물의 수질은 동해와 서해가 정말 유의미하게 차이가 많이 난다. 그리고 한여름에 바닷물은 계곡· 개울에 비하면 훨씬 더 따뜻하다.
그렇잖아도 지구 온난화 때문에 기온이 올라가서 난리인데, 수온까지 올라갈 정도이면 열이 좀 받고 있는 게 아니다.;;

(5) 강은 비가 너무 많이 내리고 댐에서 물을 방류하기 시작하면 수위가 확 올라가고 범람한다.
그러나 바다는 지진이나 태풍 때문에 해일이 발생했을 때, 그리고 달에 의한 기조력이 커졌을 때 일시적으로 수위가 확 올라가서 주변 땅이 물폭탄을 맞을 뿐이다. 서로 근본 원인이 완전히 다르다.
특히 기조력으로 인한 수위 상승은 지표면에서 발생하는 악천후 징후가 전혀 없이 슬그머니 발생하는 이벤트이기 때문에 더욱 신기하게 느껴진다.

(6) 물은 그냥 무색 투명한 물질인데 대외적으로는 물의 상징색이 파랑으로 굳어져 있다. 태양의 상징색이 빨강이나 노랑으로 굳어진 것처럼 말이다.
물은 하늘 색깔을 투영해서 자신도 파랗게 보이는 것인데, 어지간히 규모 있는 물이 파란 하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흐르는 일은 극히 드물긴 하겠다.

(7) 일상생활에서 늘 드는 의문인데.. 물 같은 유체는 한 곳에서 다른 곳에다 옮겨 부어도 왜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몽땅 다 깔끔하게 흘러가지 않고 잔당이 남아 있는 걸까? 분자 구조 차원에서 표면장력인지 뭔지가 작용해서 지구의 중력까지 거스르는 걸까? 이건 곤충이 천장이나 벽에 착 앉을 수 있는 이유와 비슷하게 생각보다 굉장히 신기한 현상이다.
하긴, 물이 절대로 스며들지 않고 물방울이 동글동글하게 맺히는 특수한 재질을 쓴다든가.. 액체 자체가 물이 아니라 수은 같은 것이면 남김 없이 마치 모래알 붓듯이 옮겨 붓는 게 가능하다고 한다.

(8) 물과 땅의 엄청난 비열 차이 때문에 바닷가 내지 바다에서는 바람이 장난 아니게 많이 분다. 이렇게 공기가 많이 흐르고 바닷물이 증발도 많이 하기 때문에 바다 한복판에서는 비구름이 형성되고 태풍이 힘을 얻기도 한다.
바다에서 이안류가 사람 안전을 위협한다면, 항공에서는 급변풍이라고 불리는 윈드시어가 비행기의 이· 착륙 때 안전을 위협한다.
이걸 생각하면 그러고 보니 물뿐만 아니라 상승기류와 하강기류, 빌딩풍처럼 공기의 흐름에도 신기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유체역학의 위대함을 느낀다.

Posted by 사무엘

2023/12/28 08:35 2023/12/2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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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수의 필요성

올해 8월의 상반기엔 비가 정말 유난히 자주 많이 내렸다. 개인적으로 호박을 비롯해 텃밭을 가꾸는 게 있는데 물을 따로 한 번도 줄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8월 8일엔 역사적인 이벤트가 발생했다. 서울에 '시간당 100mm가 넘는 80년 만의 대폭우'가 쏟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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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난 6월 30일에도 굉장한 물폭탄이 쏟아져서 한강과 중랑천 등의 공원들이 몽땅 침수되고 동부 간선 도로가 통제되곤 했다. 하지만 8월 홍수는 그보다 수위가 더 높았다.

작년에는 적어도 서울 기준으로는 이렇다 할 폭우 없이 여름이 지난 것 같다. 침수 피해가 없었기 때문에 그때는 본인이 아무 기대 안 하고 우연히 시작했던 '강둑 호박 농사'가 대박이 났었다. 내가 그걸 보고는 눈이 뒤집혀서 호박에 재미를 봤는데.. 올해는 호박이 침수 피해를 두 번이나 입기도 해서 작년과 같은 정도의 대박을 내는 건 불가능해졌다.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재작년 2020년에도 8월 중순쯤에 서울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정말 지독한 물폭탄이 쏟아진 적이 있었다.
2011년쯤에는 그냥 폭우 정도가 아니라 우면산에 산사태가 나서 인명 피해가 발생했던 것도 본인의 기억에 남아 있다.

이런 폭우를 목격하면서 본인이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 일산이나 안산 같은 간척지 부근뿐만 아니라 강남 역 일대도 고도가 꽤 낮다.
  • 차라리 펄펄 끓는 수증기도 아니고.. 상온의 물 압력만으로도 몇백 kg짜리 맨홀 뚜껑이 열리고 터질 수 있다. ㄷㄷㄷㄷ
  • 고속터미널-강남 사이에 반포천이라는 개천이 있다. 다들 복개돼서 지상에서 티가 안 날 뿐.
  • 대도시의 지하에는 생각보다 정교한 배수 전용 터널이라는 것도 있다. 몽땅 그냥 다 하수도로 가는가 싶었는데 아니구나.. 자연이 퍼붓는 물의 양을 한낱 인간이 쓰고 버리는 물의 양과 동급으로 취급할 수는 없나 보다.
  • 건물에 불이 났을 때 내리는 방화벽/방화 셔터만 있는 줄 알았는데, 방수 차벽이라는 게 있는가 보다. 지하 기계실의 침수를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집값 싼 곳을 찾아서 처음부터 열악한 곳에서 살기 시작한 사람들이 이런 자연재해에 취약한 편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반지하 빌라에서 일가족이 3명이 빠져나오지 못해서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근데 그렇다고 무식하게 주거용 반지하 방을 몽땅 없애겠다.. 이건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닌 것 같다. 군대에서 고참의 똥군기와 갈굼을 없애기 위해서 "동기만으로 구성된 소대"를 만들겠다.. 이런 부류와 비슷한 병맛스러움이 느껴진다.

비를 뚫고 밖에서 작업을 하다가 감전사한 인부, 또는 갑자기 쏟아진 토사에 맞거나 깔려서 목숨을 잃은 사람이야 안타까움과 애석함에 할 말이 없을 지경인데..
그런 것 말고.. 건물을 빠져나온 뒤에 얼마 되지도 않아 맨홀에 푹 빠지고 급류에 휩쓸려서 숨진 중년 남매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사람은 계곡이나 강가에서 캠핑을 하다가 변을 당한 게 아니다. 세상에 빌딩이 즐비한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사람이 급류에 휩쓸려서 익사하리라고는 누가 꿈엔들 생각하겠는가..???
덕분에 못사는 사람들만 가재도구와 장사 밑천을 잃은 게 아니라 고급 외제차들도 줄줄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일본에서는 먼 미래에 언젠가 닥칠 쓰나미를 예상하고 해안에 제방을 굉장히 높고 튼튼하게 쌓아 놨던 어느 마을 이장 이야기가 전해진다. 1980년대 그 당시에는 이게 뭔 짓이냐고, 뭔 돈지랄이라고 왕창 욕을 먹었지만.. 2011년 대지진과 쓰나미 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자 이 마을만 그 제방 덕분에 아무 피해 없이 멀쩡했다.
그 이장은 2011년엔 이미 죽고 없었지만, 그제서야 재평가를 받고 칭송을 받게 됐다. 기념비도 세워지고 말이다. (☞ 관련 링크)

다들 아시다시피 이 한반도는 사계절 기복이 굉장히 심하고 치수의 필요성이 큰 동네이다. 자연으로부터 공급받는 물이 너무 많거나 너무 없을 때를 적절히 중재해 줄 '버퍼'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필요하다.
"강남이 물에 잠긴 게 다 오 세훈 시장 때문이네" / "ㄴㄴ 오히려 정반대. 오 세훈은 강남구에도 거대한 배수 터널을 만들려고 했는데 반대가 너무 심해서 못 했고, 오히려 박 원순이 그걸 취소해 버렸네" 이런 식으로 또 정치인 탓 선동질을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은 정말 필요했다는 거, 우리가 현재까지 이거 덕을 많이 보고 있으며, 당시엔 이에 대해서 허위 비방과 험담이 너무 많이 나돌았다는 건 정말 인정해야 할 것이다.
갈수록 날씨가 험악해지고 있는지, 이게 다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그런 건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이 기상이변과 자연재해 징후가 과거와 비슷하거나, 아니면 더하면 더하지 최소한 못해지고 유순해진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쌍팔년도 시절과 달리 맨날 수재의연금 모금을 하거나 제한급수 따위를 하지 않는다. 이런 게 그냥 이뤄진 일이 아니다. 나라가 더 살기 좋아지고 치수 시설이 더 좋아진 덕분이다. 자본과 과학기술의 힘이다.

오늘날도 그러한데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옛날에 무려 3년 동안 비가 안 왔다거나(북왕국 이스라엘), 아니면 노아의 홍수 때처럼 비와 침수 상태가 무려 150일이나 지속됐으면.. 그러면 그건 정말 지구 종말 급의 이벤트였고 사람이 아무도 살 수 없게 됐을 것이다.;;;

끝으로 여담 하나 더..
농업용수나 수돗물 공급을 위해서는 저수지를 만들며, 배를 육지까지 지나가게 만들려면 운하를 뚫는다. 그리고 대도시에 홍수 침수를 막으려면 저렇게 지하 배수로를 판다.
그런데 서울 서부 일대엔 자연적인 강이 아니고 그렇다고 경인 아라뱃길 같은 운하도 아니면서 무슨 개천 같은 자그마한 수로를 길게 파 놓은 게 있더라.

바로 동부 간선 수로와 서부 간선 수로. 동/서부 간선 '도로'만 있는 게 아니라 '수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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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개천이라면 내륙의 어디 엄한 고지대에서 물이 발원해서 흐르다가 한강으로 합류를 할 텐데, 이 수로는 그렇지 않고 정반대이다.
얘들은 백마도 인근의 '신곡 양수장'에서 저 한강물을 펌프로 퍼다가 내륙으로 보내 준다. 그래서 이 수로는 내륙 방면으로 아주 아주 약하게나마 하구배라고 한다. (0.1퍼밀.. 수평 이동 10km당 1m꼴로 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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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수로는 무려 1923년에서 1925년 사이, 현대사 시간에 배웠을 일제 시대 '산미 증식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그것도 한 양수장으로부터 노선을 2개를 만들었다. 위의 지도에서 분홍색이 동부, 파란색이 서부이다.
김포 공항의 서북쪽 외곽을 마치 성의 해자(moat)처럼 흐르고 있는 수로는 동부 간선이다.

이렇게 물길을 개척해서 농업 용수를 공급한 덕분에 지금의 김포 공항과 부천시 북부 일대의 평야에서 농사를 짓는 게 가능해졌다고 한다.
저 동네엔 아라뱃길도 있고 굴포천도 있고 수로도 있고.. 물길이 굉장히 다양한 것 같다.

도시에서는 개발을 위해서 이미 있는 개천도 다 복개해서 덮어 버리는데, 농경지를 늘리기 위해 수로를 새로 파기도 했다는 게 흥미롭다. 여기 말고 서울 근교에 다른 수로가 만들어진 게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이야 온통 개발되고 땅의 용도가 바뀌어 버렸으니, 이런 수로가 차차 필요 없어지고 내륙의 말단 구간은 도로 엎어 버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일제 시대의 역대급 물 재앙이었던 을축년 대홍수도 비슷한 시기인 1925년에 있었다. 이때도 서울 시내와 근교가 왕창 물에 잠겼었다.
치수는 대한민국이건 일제건 어렵고 골치 아픈 문제임을 알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2/08/15 19:35 2022/08/1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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