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에 썼던 글에 내용을 보충하고, 본인의 실제 답사기를 추가했다.)

오늘날 중앙선과 동해선(구 동해남부선)의 환승역인 경주 역은 무려 3· 1 운동 직전인 1918년 가을에 생겼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과는 약 20년의 격차가 있지만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역사가 굉장히 길다고 할 수 있다. 철도 덕후라면, 모름지기 1920년대, 30년대, 40년대 이렇게 연도만 입력하면 그 당시에 개통해 있던 철도 노선도가 머리에 쫙 떠올라야 한다.

그때 경주 역은 동해남부선 경주-포항 구간과 함께 개통한 역이었다. 중앙선은 1939년 전구간 개통이니까 그로부터 또 20년 뒤의 일이다. 다만, 동해남부선과 비슷한 시기에 경주-영천 구간도 중앙선이 아니라 경동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주로 가는 다른 철도가 있긴 했다. 지금 대구선의 전신뻘 된다.

중앙선이 완전 개통하기 얼마 전이던 1935년 12월, 동해남부선은 남쪽 구간이 마저 개통하여 포항-경주-울산-부산이 한데 연결되었다. 일제는 포항 이북으로도 쭉 철도를 놓으려고 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해 이 계획은 무산되었고, 그 상태 그대로 패망하게 되었다. 동해선이 그냥 동해 '남부'선으로 남게 된 게 이 때문이며, 이 철도가 일제가 한반도에 부설하던 마지막 철도였다.

본인이 전에도 글로 썼지만, 일제 강점기가 장기화됐다면 한반도의 교통 인프라도 일본의 그것과 굉장히 비슷해졌을 것이다. 자동차 도로는 좌측통행을 할 것이고 일제 강점기 때 그랬던 것처럼 한반도에도 지역별로 개성 넘치는 여러 사철이 등장했을 것이다. 동해남부선도, 경춘선도 시작은 다 사철이었다.

대륙 진출(진출이라고 적고 침략이라고 읽는다)을 염두에 두고 애초부터 표준궤로 건설되었던 경부선과는 달리, 동해남부선은 무려 762mm 협궤였다. 바로 과거의 수인선과 동일한 협궤였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 총독부가 이를 인수한 후 이내 표준궤로 개궤했다.
이렇게 완성된 경주 역 주변의 동해남부선과 중앙선의 선형은 아래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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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쪽의 충효동 방면을 호남선 목포 방면이라고 보고,
경주 역이 있는 동남쪽 울산 방면을 경부선 대구 방면이라고 보고,
나원 역이 있는 북쪽의 포항 방면을 경부선 서울 방면이라고 보면
이는 대전 역의 위상과 정확히 같다.

이들 철도가 처음 생긴 시절에는 초록색 선이 없었다.
그리고 경부선과 호남선이 만나는 지점도 사정이 정확하게 이와 같았다. 호남선에서 경부선 상행 방면으로 바로 가는 선로가 없었다. (곡물을 일본으로 반출하려면 부산으로만 가면 됐으니..)

그래서 목포에서 부산이 아닌 서울로 가려면 대전 역에서 기관차의 방향을 바꿔야 했으며,
영천에서 울산이 아닌 포항으로 가려면 경주 역에서 기관차의 방향을 바꿔야 했다.

이 때문에 서울을 오가는 호남· 전라선 열차들이 대전에서는 기관차의 방향을 전환하느라 정차 시간이 길었으며 대전 역이 대기 시간 동안 짬을 내어 사먹는 우동으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이런 불편을 덜기 위해 호남선은 1978년 복선화 과정에서 서울 방면으로 직통하는 삼각선이 추가되었다.

한편, 다시 중앙선 얘기로 돌아오면, 중앙선의 건설로 인해 경주에는 시내를 정면 관통하여 경주 역을 잇는 분홍색 선로가 생겼다.
그렇잖아도 중앙선 역시 남쪽에서 올라오는데, 기왕이면 금관총· 대릉원이 있는 좀더 남쪽으로 선로를 만들지 왜 저렇게 부자연스러운 급커브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원래 경주 역은 중앙선이 아니라 동해남부선의 선형에 맞춰진 형태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저것도 나름 서울-신촌 사이와 비슷한 급커브라는 생각이 든다.

본인은 초딩 시절에 흥무 초등학교를 다닌 적이 있는데,
빨강-파랑 초기 도색을 한 새마을호가 수시로 드나들던 걸 본 기억이 선하다. 벌써 20년 가까이 전의 이야기이다.
철도는 확실히 지역을 분단시키는 효과가 있긴 했다.

이 선로는 경주 시내를 정면으로, 그것도 여러 건널목을 만들면서(평면 교차) 관통한지라 문제가 많았다. 딱 큰길만 따라간 것도 아니고, 이쪽 일대의 위성 사진 지도를 보면 정확하게 수평· 수직선이 아니라 분홍색 비스듬한 선을 따라 건물들의 배치가 왜곡돼 있는 걸 알 수 있다. 그게 옛 철길의 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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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경주 인근에서 (1) 동해선 상행으로 분기의 어려움과 (2) 경주 시내 관통으로 인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1980~90년대에 일련의 조치가 취해졌다.
먼저, (1) 1985년엔 중앙선과 동해선 상행을 연결하는 초록색 선이 새로 생겼다. 그리고 초록색 선과 분홍색 선이 분기되는 충효 제2터널 지점에 '서경주'라는 이름의 작은 신호소가 생겼다.

그 뒤.. (2) 기존의 분홍색 선로를 철거해 버리고 영천에서 경주 시내에서는 초록색과 보라색 선만으로, 즉 황성동 쪽까지 엄청난 우회를 해서 다니게 선로를 바꿨다. 분홍색 선 대신, 북쪽의 '금장터널'이 있는 곳에 아주 작은 삼각선을 만들어서 중앙선 영천 방면과 동해선 울산 방면을 왕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아래 그림에서 before과 after의 차이를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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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워낙 문화 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도시이다. 그러니 이런 시내 관통 선로 철거의 배후에는 유네스코의 권고가 있기도 했다고 한다. 철도와는 다른 분야로 최근엔 태릉 선수촌이 지방으로 완전히 이전했는데, 이 역시 인근에 있는 태릉과 강릉을 보존하고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정식 등재하기 위해서 취해진 조치였다. (뭐, 선수촌의 부지 크기와 확장 문제도 작용했지만 말이다.)
시대가 바뀌니 일제가 졸속으로 동해남부선 철길을 막 놓으면서 경주 시내를 땅따먹기 하던 시절과는 정반대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 셈이다.

선로가 이렇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경주 쪽의 수요가 많기 때문에 포항-대구를 왕래하는 열차들은 어차피 경주는 들렀다 가는 관행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 때문에 이 노선에는 전진과 후진이 비교적 자유로운 전후 대칭 동차형 열차가 다니곤 했다.

그래서 1992년 11월 1일, 북쪽에 새로 생긴 선로 분기 지점의 근처에 '금장'이라는 이름의 역이 생겼다. 개업 당시에는 일개 듣보잡 신호장에 불과하였으나, 메이저인 경주 역이 위치가 저렇게 어정쩡하던 것에 대한 반사 이익을 제대로 받아서 급성장했다.

인근에 아파트촌과 동국대 경주 캠퍼스가 있어서 위치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새마을호가 정차하는 역으로까지 발전했다. 2005년부터는 코레일이 포항 승객의 편의와 열차 속도 향상을 위해 경주 역을 무정차 통과시키고 대신 이 역에 열차를 꾸준히 늘렸다.
참고로 2005년에는 대구선이 외곽으로 이설되면서 금장과 이름도 비슷한 금강 역이 생겼으나, 이 역은 이렇다 할 인기를 얻지 못하고 이내 여객 취급 중지 처분을 받았다. 이와도 아주 대조적이지 않은지?

또한, 금장 역의 개통으로 인해 기존의 서경주 신호소는 존재의 목적을 완전히 상실하고 폐쇄됐다. 건물 자체는 철거되지 않고 경주시 부엉길 9-34라고 도로명 주소까지 할당받아 있지만, 전혀 쓰이지 않고 방치되어 있다.
이에 본인은 이번 설에 고향을 방문한 기념으로 옛 중앙선 선로의 분기 지점 주변을 답사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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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의 경주 시내 관통 구선로 중에는 형산강을 건너는 교량이 있었다. 선로가 철거된 뒤에는 교각만 10년 가까이 덩그러니 방치돼 있다가 2002년경에 '장군교'라는 이름의 인도교로 리모델링 됐다. 김 유신 장군 묘가 근처에 있다고 다리 이름도 저렇게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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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중앙선의 흔적은 교량뿐만 아니라 송화산 언덕 아래를 지나는 터널로도 남아 있다. 한때 열차가 다니던 이 터널은 이제 끝이 막힌 채 누군가의 창고로 쓰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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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면, 오늘날 새로 만들어서 쓰이고 있는 철길과 터널의 모습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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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굴다리는 아주 짧고 작지만, 굴다리를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다리 아래에서는 목소리가 마치 마이크를 튼 것처럼 굉장히 잘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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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있는 송화산 등산로를 약간 올랐다. 그래서 현재 쓰이는 금장 방면 중앙선 우회 선로(왼쪽)와 장군교(오른쪽)를 모두 볼 수 있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마 본인이 지금 서 있는 곳의 아래에 아까 그 폐터널이 지나지 싶다.

송화산은 동국대 경주 캠퍼스를 감싸는 그냥 듣보잡 동네 뒷산처럼 생겼지만, 나름 국립공원이더라. 그래서 서울 북한산에서나 보던 방문객 집계 게이트도 있었다. 이 산은 경치나 문화재 같은 무슨 메리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교량과 폐터널을 둘러보고 언덕도 올라 봤는데, 그럼 서경주 신호장은 어디에 있을까?
폐터널도, 언덕도 아닌 다른 민가의 뒤쪽으로 가서 철길 근처에 접근해야 했다.
주변은 시골 마을이다 보니 개를 키우는 집이 많았는데, 이 개들이 온통 시끄럽게 짖어 대면서 외부인인 본인을 반겼다.

무슨 강력 미제 사건을 보면 "범행이 벌어지던 당시에 현장에 있던 사나운 개가 웬일로 짖지 않았다. 개를 미리 어떻게 처리했거나, 아니면 범인은 면식범이다." 이런 식으로 설명된 게 있다. (예: 2008년 대구 초등생 납치 살해 사건)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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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잡초로 뒤덮힌 이 폐건물을 보라. 이것이 민가나 다른 건물이 아니라 구 서경주 신호장이다. 창문이나 출입문 같은 건 일부러 다 틀어막은 듯하다. 문자로 된 그 어떤 간판이나 표지판도 존재하지 않는다.

수풀 덤불을 헤치고 현장에 도달하니, 마치 서부 전선 DMZ 안에 내팽겨쳐져 있다는 파주 장단면 사무소 폐건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비슷하게 DMZ 근처에 나뒹굴고 있던 녹슨 증기 기관차 정도야 인양해서 복원 후 임진각에다 전시도 해 놨다. 하지만 건물은.. 철원 노동당사처럼 해당 지역 자체를 수복하지 않은 이상, 딴 데로 옮기기가 곤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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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건물은 애초에 이 구간을 지나는 열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도 잠깐이나마 어렵지 않게 구경할 수 있다.
하지만 금장 역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시설을 자가용을 몰고 찾아가서 이런 시간이 정지한 듯한 오지에서 대면하게 되니 참 뿌듯함이 느껴졌다. 옛 서경주 신호소를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나라 철도 역사에 대한 내공이 꽤 갖춰진 철덕이라고 불리기에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 추가 설명

1. 신호소와 신호장

신호소와 신호장은 모두 뭔가 철도 정거장처럼 생겼고 철도라는 그래프에서 vertex 역할을 한다. 하지만 승강장이 없고 여객 취급을 하지는 않는다.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신호장은 단선에서 열차의 교행을 대비한다는 용도가 더 강하고, 신호소는 선로의 분기와 합류를 취급한다는 성격이 더 강하다.

철도 시설의 기술 발달과(특히 CTC화) 자동화로 인해 신호소는 더 만들지 않는 게 추세이지만, 전국에 신호소는 다섯 군데 정도 더 있다고 한다(미전, 북송정, 북영주, 용강, 신대).

2. 경주 역과 인근 역들의 미래 운명

한때는 경주 역에서 합체· 분리를 하는 포항· 울산 행 새마을호 복합 열차가 다녔고 서울-부전 새마을호까지 경주 역을 경유하였으나, 2010년에 KTX 신경주 역이 개통한 뒤엔 다 이제 옛날 추억이 됐다. 지금은 경주에서 서울로 바로 가는 열차는 레어템인 중앙선 열차(밤차 또는 낮의 완행)뿐이다. 그러니 서울로 가려면 동대구 역에서 열차를 갈아타든가 아니면 신경주 역으로 가야 된다.
신경주 역에서 서울로 가는 KTX가 평균 4~50분 간격으로 신경주 역에 정차해 주고 있으니, 이 구닥다리 역에 장거리 열차를 남겨 둘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포항은 한때는 KTX 비수혜 지역으로 여겨져서 서울-포항 새마을호가 하루 2차례 다니긴 했다(경주 대신 서경주에 정차). 그러나 이 역시 2015년에 동해선 KTX가 개통하면서 폐지됐다.
앞으로 몇 년 안 가 지금 경주 시내의 재래선 철길들은 다 없어질 예정이다. 기존 중앙선과 동해남부선조차도 신경주 중심으로 복선 전철화· 선형 개량을 거듭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 신경주 뿐만 아니라 현곡 초등학교 근처에도 지금의 서경주와 나원 역을 대체하는 역이 생길 예정이니 이는 반가운 일이다. 다만, 난립하고 있는 여러 역명들의 교통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경주 역은 역사적 상징성을 인정받아, 철길이 없어지는 것과는 별개로 건물 자체는 영구 보존하기로 지난 2013년경에 결정되었다. 그럼 이웃의 다른 지역은 상황이 어떨까?

  • 영천: 역시 경주와 비슷한 시기에 생겼고 중앙선과 대구선의 환승역이지만, 고속철의 영향을 받은 것이 전혀 없고 주변의 지역이 바뀌는 것도 없다 보니.. 지금의 위상이 계속 유지된다. 그냥 근처의 동대구 역에 빌붙는 게 더 편하니까.
  • 포항: 원래 있던 역은 보다시피 싹 없어지고 사라졌다.
  • 울산: 고속선과 기존 동해남부선이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덕분에 고속철 울산 역과 기존 태화강 역이 공존하게 된 경우라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8/03/16 08:30 2018/03/1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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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수 철덕후가 알기 쉽게 해설해 놓은 본격 21세기 한국 철도 동향. ㄲㄲㄲㄲㄲ

1. 대구

경부 고속 철도 2차 구간이 개통함으로써, 동대구 역을 출발한 부산 방면 KTX는 경부선 기존선을 타고 밀양 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이제 별도의 선로를 계속 이용해서 경주 쪽으로 가게 된다.

마치 대전이 호남· 경부고속· 경부기존선이 만나는 요지이듯, 대구는 대구· 경부고속· 경부기존선이 만나는 요지가 된다. 아래의 사진을 참고하라. 왼쪽에 보라색 선으로 표시된 도로는 고속국도 55호선의 일부인 부산-대구 민자 고속도로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속도로는 21세기가 돼서야 경주와 울산을 경유하지 않는 직통 고속도로가 뚫린 반면, 철도는 21세기가 돼서야 경주와 울산을 경유하는 고속선이 건설됐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 경주

KTX가 다니는 신경주 역은 천안아산 역과 비슷한 디자인을 한 방향별 복복선 쌍섬식 승강장으로 건설되었다. 동대구-경주 소요 시간은 20분이 채 걸리지 않으며, 이는 대전-천안아산보다도 짧다. 물론 경주-울산은 더 짧지만 말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동대구 역이 생겼다고 해서 대구 역이 없어지지는 않았으며, 경부선 천안 역도 KTX 천안아산 역과는 별개로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역이다. 그러나 1910년대에 건설된 지금 경주 역의 운명은 이와는 다르며, 앞으로 없어진다. 그리고 지금 있는 경주-울산 동해남부선 구간 자체가 고속철 연계 위주로 대거 이설된다.
신경주 역이 경주의 관문 역할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신경주 역은 KTX와 여타 지선 열차와의 ‘바로타 환승’이 가능하게 설계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신경주 역의 위치이다. 건천읍 화천리에 있는데(화천 초등학교 근처) 경주 시내에서 멀어도 너무 멀다. 경부 고속도로 경주 IC보다도, 경주 대학교보다도 더 외곽이다. 국도 4호선에서 삐져나간 904번 지방도를 따라 한참을 가야 나온다. 경주는 수도권 같은 대중교통 인프라를 기대할 수도 없는 중소도시인데 철도역 연계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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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정차 KTX는 현재 편도 기준 1시간에 거의 1대꼴로 편성되었으며 울산과 비슷하다. 경주-서울 고속버스가 40분에 1대꼴임을 감안하면 아주 넉넉한 편이다.

3. 울산

경주를 통과한 경부고속선은 한동안 경부 고속도로와 함께 나란히 남하한다. 터널도 별로 없고 평지가 이어지는데, 그러다 긴 터널을 하나 지나고 나오면 밑으로 보이는 고속도로가 바로 16번 울산 고속도로이다. 여기는 울산 광역시 울주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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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고속도로를 타넘는 저 지점(지도에서 분홍색 동그라미)이 꽤 특수한 공법으로 공사되어, 기반을 닦는 첫 몇 시간만 제외하고는 고속도로를 폐쇄하지 않고 차량 통행을 허용한 채로 공사를 마친 것으로 유명한 구간이다. 거기서 좀더 내려가면 신울산 역(지도에서 파란색 동그라미)이 나온다.

울산은 굉장히 넓다. 그리고 중앙이 산으로 가로막혔고 서쪽이 울주군, 동쪽이 울산 시내로 양분된 것과 얼추 비슷한 구도이다. 오죽했으면 그래서 울산 고속도로를 따로 건설했을 정도이다.
그런데 KTX 울산 역은 경부 고속도로 언양 분기점 근처에 건설되니, 울산 시내에서 멀기로는 가히 경주를 능가하는 수준. -_-;;

그 반면, 동해남부선 울산 역은 바다 근처 완전 동쪽 끝에 있다. 이 울산 역은 울산이 너무 넓고, KTX 울산 역이 너무 극과 극으로 멀리 떨어진 덕분에 역시 없어지지 않는다. ‘새 동해남부선’은 신경주 역을 지난 후 904번 지방도와 비슷한 선형을 따라, 지금의 입실 역 인근(경주 외동읍)에서부터 기존 동해남부선과 비슷한 노선을 가게 된다.

4. 부산

경부 고속선은 울산 역까지는 경부 고속도로와 선형이 아주 비슷하다. 그러나 거기서부터는 길이 갈린다. 고속도로는 산을 피해서 서쪽의 양산시를 경유한 후 다시 방향을 틀어 부산의 동북쪽으로 가지만, 울산을 지난 경부 고속선은 산을 뚫고 직선으로 정면돌파를 시도한다.

그래서 만나는 곳은 부산 북부의 노포동. 고속도로 노포 IC와 부산 지하철 1호선의 노포 차량 기지를 볼 수 있다.
자, 여기서 경부 고속철의 마지막 하이라이트가 나온다. 고속철은 부산 북부에서 부산 남부의 부산 역까지 20km에 달하는 시내 구간을 전부 산 뚫고 지하 터널로 통과해 버린다! 부산 동서를 가로막고 있는 산 따라 수직으로 길을 내면 된다. 그 이름도 유명한 금정 터널이다.

경부 고속철의 중간 경유 도시인 대전과 대구는 시내를 지상 고가로 통과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대전의 경우, 고속철의 지하 통과를 염두에 두고 지하철 대전 역의 승강장도 의도적으로 굉장히 깊게 지어졌으나, 결국 비용 문제 때문에 거기는 지하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그런 반면 부산은 통째로 지하 통과이다. 흠좀;; 밖으로 나오면 이미 좌천동이고 부산 역의 바로 옆인 부산진 역이다. 즉, KTX는 부산에서 지상으로는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밖에 안 지난다는 뜻이다.

서울 역을 출발한 KTX는 광명 역까지 20km에 가까운 거리를 그냥 경부선 기존선으로 천천히 다닌다. 아니, 초창기에는 아예 광명 역을 고속철 시종착역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서울 시내 구간 지하화가 이제 와서 과연 가능할까? -_-;; 이것에 비하면 부산은 가히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게 아닐 수 없다. 사실 부산은 고속선뿐만이 아니라 기존 경부선도 시내 구간이 전부 고가로 올라가 있는데, 이것도 언제 그렇게 이설된 건지 궁금하다. 100년도 더 전에 일제가 처음에 그렇게 만들었을 리는 없잖아!

이미 경부 고속철 대전-대구 구간에도 굉장히 긴 터널이 있고, 전라선도 복선 전철화와 직선화를 하면서 5km가 넘는 꽤 긴 터널이 지어졌으며, 영동선도 스위치백 구간이 똬리굴로 바뀌면서 굉장히 긴 터널이 만들어졌지 싶다. 하지만 금정 터널만치 길지는 못하다. 이 터널은 천성산을 뚫는 과정에서 모 스님의 ‘도롱뇽 단식 투쟁’ 때문에 한동안 공사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 적이 있다.

기왕 선로가 이렇게 만들어진 김에 부산 북부의 노포동 역 일대에도 고속철 정차역을 만들면, 서쪽의 화명 역(경부 기존선), 동쪽의 기장(동해남부선) 역과 더불어 중앙에 부산 북부 3대역이 생기고 노포동 일대는 마치 동대구 역처럼 지하철과 버스와 철도가 한데 만나는 교통 허브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별로..;; -_-

이것으로 분석을 마친다. 이 주제로만 떠벌려도 입이 근질거려 미칠 지경이다.
다음은 덧붙이는 말.

1. 시발역 기준으로 오전 11~12시 사이는 경부고속선의 선로 점검 시간인 관계로 KTX가 안 다닌다. 심야에만 점검하는 게 아닌 듯. 그러고 보니 2차 개통 후에 남아있는 서울-부산 새마을호 딱 두 편이 하나는 심야(1003)이고, 다른 하나는 KTX가 안 다니는 11시대에 서울을 출발하는 열차이다. KTX가 안 다니는 시간대에만 새마을호를 남겨 놓은 센스.

2. 경부선은 아마 새벽 2~5시 같은 심야 시간대에 전차선을 단전한다. 그렇기 때문에 심야 열차는 전통적으로 디젤 기관차가 운행되고 있으며, 본격적으로 경부선 새마을호의 퇴출 분위기가 드리워진 이번 KTX 2차 개통 후에도 심야 새마을호는 앞서 말했듯이 건재하다. 새마을호 PP는 잘 알다시피 디젤 동차.
24시간 전차선이 돌아가는 노선은 중앙선이나 영동· 태백선 같은 곳밖에 없을 것이다.

3. 부산 일대에는 경인이나 외곽 순환 고속도로처럼 개방식 톨게이트를 쓰는 구간이 없는지 궁금하다. 서울에 이어 제2의 대도시라는 부산이 수도권형 고속도로도 없고 광역전철도 없다는 건, 아무리 이 나라가 서울 몰입 위주라고 해도 너무했다.

4. 영화 <라이터를 켜라>에서 설정상 천안과 대전 역 씬이 실제로 촬영된 곳은 경부선도 아니고 아예 울산 역이다. -_-;;
영화 첫 부분에서 허 봉구가 조폭들과 마주치는 장소인 서울 역 대합실은 실제 촬영 장소가 아예 서울 지하철 논현 역이었으니 더 말이 필요 없을 듯. ㅋ

Posted by 사무엘

2010/10/26 09:04 2010/10/2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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