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수 철덕후가 알기 쉽게 해설해 놓은 본격 21세기 한국 철도 동향. ㄲㄲㄲㄲㄲ

1. 대구

경부 고속 철도 2차 구간이 개통함으로써, 동대구 역을 출발한 부산 방면 KTX는 경부선 기존선을 타고 밀양 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이제 별도의 선로를 계속 이용해서 경주 쪽으로 가게 된다.

마치 대전이 호남· 경부고속· 경부기존선이 만나는 요지이듯, 대구는 대구· 경부고속· 경부기존선이 만나는 요지가 된다. 아래의 사진을 참고하라. 왼쪽에 보라색 선으로 표시된 도로는 고속국도 55호선의 일부인 부산-대구 민자 고속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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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는 21세기가 돼서야 경주와 울산을 경유하지 않는 직통 고속도로가 뚫린 반면, 철도는 21세기가 돼서야 경주와 울산을 경유하는 고속선이 건설됐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 경주

KTX가 다니는 신경주 역은 천안아산 역과 비슷한 디자인을 한 방향별 복복선 쌍섬식 승강장으로 건설되었다. 동대구-경주 소요 시간은 20분이 채 걸리지 않으며, 이는 대전-천안아산보다도 짧다. 물론 경주-울산은 더 짧지만 말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동대구 역이 생겼다고 해서 대구 역이 없어지지는 않았으며, 경부선 천안 역도 KTX 천안아산 역과는 별개로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역이다. 그러나 1910년대에 건설된 지금 경주 역의 운명은 이와는 다르며, 앞으로 없어진다. 그리고 지금 있는 경주-울산 동해남부선 구간 자체가 고속철 연계 위주로 대거 이설된다.
신경주 역이 경주의 관문 역할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신경주 역은 KTX와 여타 지선 열차와의 ‘바로타 환승’이 가능하게 설계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신경주 역의 위치이다. 건천읍 화천리에 있는데(화천 초등학교 근처) 경주 시내에서 멀어도 너무 멀다. 경부 고속도로 경주 IC보다도, 경주 대학교보다도 더 외곽이다. 국도 4호선에서 삐져나간 904번 지방도를 따라 한참을 가야 나온다. 경주는 수도권 같은 대중교통 인프라를 기대할 수도 없는 중소도시인데 철도역 연계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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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정차 KTX는 현재 편도 기준 1시간에 거의 1대꼴로 편성되었으며 울산과 비슷하다. 경주-서울 고속버스가 40분에 1대꼴임을 감안하면 아주 넉넉한 편이다.

3. 울산

경주를 통과한 경부고속선은 한동안 경부 고속도로와 함께 나란히 남하한다. 터널도 별로 없고 평지가 이어지는데, 그러다 긴 터널을 하나 지나고 나오면 밑으로 보이는 고속도로가 바로 16번 울산 고속도로이다. 여기는 울산 광역시 울주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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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고속도로를 타넘는 저 지점(지도에서 분홍색 동그라미)이 꽤 특수한 공법으로 공사되어, 기반을 닦는 첫 몇 시간만 제외하고는 고속도로를 폐쇄하지 않고 차량 통행을 허용한 채로 공사를 마친 것으로 유명한 구간이다. 거기서 좀더 내려가면 신울산 역(지도에서 파란색 동그라미)이 나온다.

울산은 굉장히 넓다. 그리고 중앙이 산으로 가로막혔고 서쪽이 울주군, 동쪽이 울산 시내로 양분된 것과 얼추 비슷한 구도이다. 오죽했으면 그래서 울산 고속도로를 따로 건설했을 정도이다.
그런데 KTX 울산 역은 경부 고속도로 언양 분기점 근처에 건설되니, 울산 시내에서 멀기로는 가히 경주를 능가하는 수준. -_-;;

그 반면, 동해남부선 울산 역은 바다 근처 완전 동쪽 끝에 있다. 이 울산 역은 울산이 너무 넓고, KTX 울산 역이 너무 극과 극으로 멀리 떨어진 덕분에 역시 없어지지 않는다. ‘새 동해남부선’은 신경주 역을 지난 후 904번 지방도와 비슷한 선형을 따라, 지금의 입실 역 인근(경주 외동읍)에서부터 기존 동해남부선과 비슷한 노선을 가게 된다.

4. 부산

경부 고속선은 울산 역까지는 경부 고속도로와 선형이 아주 비슷하다. 그러나 거기서부터는 길이 갈린다. 고속도로는 산을 피해서 서쪽의 양산시를 경유한 후 다시 방향을 틀어 부산의 동북쪽으로 가지만, 울산을 지난 경부 고속선은 산을 뚫고 직선으로 정면돌파를 시도한다.

그래서 만나는 곳은 부산 북부의 노포동. 고속도로 노포 IC와 부산 지하철 1호선의 노포 차량 기지를 볼 수 있다.
자, 여기서 경부 고속철의 마지막 하이라이트가 나온다. 고속철은 부산 북부에서 부산 남부의 부산 역까지 20km에 달하는 시내 구간을 전부 산 뚫고 지하 터널로 통과해 버린다! 부산 동서를 가로막고 있는 산 따라 수직으로 길을 내면 된다. 그 이름도 유명한 금정 터널이다.

경부 고속철의 중간 경유 도시인 대전과 대구는 시내를 지상 고가로 통과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대전의 경우, 고속철의 지하 통과를 염두에 두고 지하철 대전 역의 승강장도 의도적으로 굉장히 깊게 지어졌으나, 결국 비용 문제 때문에 거기는 지하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그런 반면 부산은 통째로 지하 통과이다. 흠좀;; 밖으로 나오면 이미 좌천동이고 부산 역의 바로 옆인 부산진 역이다. 즉, KTX는 부산에서 지상으로는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밖에 안 지난다는 뜻이다.

서울 역을 출발한 KTX는 광명 역까지 20km에 가까운 거리를 그냥 경부선 기존선으로 천천히 다닌다. 아니, 초창기에는 아예 광명 역을 고속철 시종착역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서울 시내 구간 지하화가 이제 와서 과연 가능할까? -_-;; 이것에 비하면 부산은 가히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게 아닐 수 없다. 사실 부산은 고속선뿐만이 아니라 기존 경부선도 시내 구간이 전부 고가로 올라가 있는데, 이것도 언제 그렇게 이설된 건지 궁금하다. 100년도 더 전에 일제가 처음에 그렇게 만들었을 리는 없잖아!

이미 경부 고속철 대전-대구 구간에도 굉장히 긴 터널이 있고, 전라선도 복선 전철화와 직선화를 하면서 5km가 넘는 꽤 긴 터널이 지어졌으며, 영동선도 스위치백 구간이 똬리굴로 바뀌면서 굉장히 긴 터널이 만들어졌지 싶다. 하지만 금정 터널만치 길지는 못하다. 이 터널은 천성산을 뚫는 과정에서 모 스님의 ‘도롱뇽 단식 투쟁’ 때문에 한동안 공사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 적이 있다.

기왕 선로가 이렇게 만들어진 김에 부산 북부의 노포동 역 일대에도 고속철 정차역을 만들면, 서쪽의 화명 역(경부 기존선), 동쪽의 기장(동해남부선) 역과 더불어 중앙에 부산 북부 3대역이 생기고 노포동 일대는 마치 동대구 역처럼 지하철과 버스와 철도가 한데 만나는 교통 허브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별로..;; -_-

이것으로 분석을 마친다. 이 주제로만 떠벌려도 입이 근질거려 미칠 지경이다.
다음은 덧붙이는 말.

1. 시발역 기준으로 오전 11~12시 사이는 경부고속선의 선로 점검 시간인 관계로 KTX가 안 다닌다. 심야에만 점검하는 게 아닌 듯. 그러고 보니 2차 개통 후에 남아있는 서울-부산 새마을호 딱 두 편이 하나는 심야(1003)이고, 다른 하나는 KTX가 안 다니는 11시대에 서울을 출발하는 열차이다. KTX가 안 다니는 시간대에만 새마을호를 남겨 놓은 센스.

2. 경부선은 아마 새벽 2~5시 같은 심야 시간대에 전차선을 단전한다. 그렇기 때문에 심야 열차는 전통적으로 디젤 기관차가 운행되고 있으며, 본격적으로 경부선 새마을호의 퇴출 분위기가 드리워진 이번 KTX 2차 개통 후에도 심야 새마을호는 앞서 말했듯이 건재하다. 새마을호 PP는 잘 알다시피 디젤 동차.
24시간 전차선이 돌아가는 노선은 중앙선이나 영동· 태백선 같은 곳밖에 없을 것이다.

3. 부산 일대에는 경인이나 외곽 순환 고속도로처럼 개방식 톨게이트를 쓰는 구간이 없는지 궁금하다. 서울에 이어 제2의 대도시라는 부산이 수도권형 고속도로도 없고 광역전철도 없다는 건, 아무리 이 나라가 서울 몰입 위주라고 해도 너무했다.

4. 영화 <라이터를 켜라>에서 설정상 천안과 대전 역 씬이 실제로 촬영된 곳은 경부선도 아니고 아예 울산 역이다. -_-;;
영화 첫 부분에서 허 봉구가 조폭들과 마주치는 장소인 서울 역 대합실은 실제 촬영 장소가 아예 서울 지하철 논현 역이었으니 더 말이 필요 없을 듯. ㅋ

Posted by 사무엘

2010/10/26 09:04 2010/10/2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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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하 2010/10/26 20:24 # M/D Reply Permalink

    어쩐지 부산 시내로 들어가는 경부고속선을 아무리 찾아봐도 부산지하철1호선 종점부근 부터는 출구는 도대체 어딜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는데
    (경부선구포역근처에서 지상으로 나오나 싶어 그 부근을 항공지도로 눈이 빠지게 찾아봤죠 ㅠ 당연히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죠 ㅎ)

    그냥 바로 땅속에서 부산역으로 가는 거였네요^^

    그나저나 대구 지하철을 볼 땐 몰랐는데 다른 지방에는 지하철이나 터널이 일반 가정집 아래로(단독주택이나 연립주택, 심지어 (지도에 나온 지하철경로가 정확하다면) 아파트 아래로도) 지나가는 경우가 꽤 있더라구요.
    대구는 그런 경우가 제가 알기로는 없는데...

    (도심 중앙에 높은 산이 없는 것도 한 이유겠지만.. 제가 서울이나 부산에 가면 심히 이질감을 느꼈던 게 뭐때문일까 고민해보니 바로 산 중턱을 따라서 계단처럼 지어진 아파트였습니다.
    대구는 아무리 높은 언덕?(산이라고 해야 하나?)이라고 해봐야 평지에서 (해발?)100미터도 안되기에...(침산공원이나 대불공원 등등..)



    자기 집 아래로 터널이 지나가면 어떤 느낌일까요? ^^


    그나저나 대구시내구간을 지상화한다니 도대체 "어떤" 구조로 "어떻게" 직선으로 만든다는 건지... 대구 사는 사람으로서 심히 걱정됩니다.

    1. 사무엘 2010/10/27 01:15 # M/D Permalink

      철도에 관심이 많으신 분 같군요. 반갑습니다. ^^;;;
      서울 지하철에는 건물, 특히 아파트 밑으로 지나는 구간이 존재하며, 유명한 예 중 하나가 7호선 남성-숭실대입구입니다. 관악 현대 아파트 아래를 지나지요. 그 때문에 역간 거리가 서울 시내에서 이례적으로 2km가 넘지만 중간에 역을 만들 곳도 어차피 없습니다. 또한 숭실대입구 역은 여의나루나 신금호 역에 맞먹는 굉장한 심도를 자랑합니다.
      건설 당시엔 불안해하는 주민들의 반발이 당연히 굉장히 심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지하철은 보통 번화가 대로를 따라서부터 먼저 만들고 나서 다음에 좀더 어려운 곳, 길이 없는 곳을 찾아 만듭니다. 대구는 아직 그렇게 험난한 선형을 지닌 지하철이 지어질 수준은 아니죠.
      또한, 분지 형태인 대구의 지형과 여타 도시의 지형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을 테고요.
      대전과 대구의 시내 구간도 지상이든 지하든 어서 고속 신선을 건설해야 기존 경부선의 선로 용량도 늘 수 있고 고속철의 주행 속도도 더 빨라질 수 있을 겁니다. 그 구체적인 윤곽은 몇 년 뒷면 드러나겠죠. ^^

  2. 맑아릿다 2010/10/26 23:49 # M/D Reply Permalink

    지리에 꽝이라서 다른 동네 이야기는 두 번 읽어도 잘 모르겠네요ㅋㅋㅋ
    철도에 일자무식이라도 서울/수도권 얘기는 두 번 읽으면 알겠던데ㅋㅋ

    저는 언젠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에 가고 싶어요. 근데 그 기차표 값만도 비행기표 값보다 비싸니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는 교통비도 생각하면 값이 ㅎㄷㄷ이고 나흘째부터 화장실이 한 칸씩 차례로 막힌다든가, 국산 전자제품이 제일 먼저 소매치기 당한다든가 하는 나쁜 이야기만 잔뜩 들려오는 거 있죠.

    그럼 내가 돈을 많이 번 다음 거지꼴을 하고 타겠어(<-) 난 포기하지 않아

    1. 사무엘 2010/10/27 01:17 # M/D Permalink

      오홋, 철도의 진정한 로망이 유럽 철도라고들 하죠.
      철도 운임이 항공 운임보다 더 비싼 곳을 외국에서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요.
      - 워낙 땅이 넓고 수요도 많은 덕분에 저가 항공을 위주로 비행기 교통이 발달해서 (미국, 유럽)
      - 철도는 어차피 단가 높고 클래식하고 매니악한 관광 수단으로나 전락해 있어서 (특히 미국)
      - 혹은 철도의 서비스 품질이 워낙 우수한 덕분에 비행기보다 비싸도 수지가 맞아서 (일본 신칸센!)

      그 반면 우리나라는 항공이 발달하기엔 땅이 너무 좁고, 반면에 저렴한 고속버스 노선이 너무 잘 발달해 있어서 철도 운임을 팍 올릴 수가 없죠.
      저도 학창 시절에는 지리 하면 손사래를 치던 녀석이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바뀐 것은.. 그저 모든 영광을 철도님에게 돌릴 뿐.. 우리나라 역사와 지리를 보는 안목이 확 바뀌었더랬죠. ㅋㅋㅋㅋㅋ
      아직 나이가 괜찮을 것 같은데, 오는 방학 때는 내일로 티켓 여행 한번 가 보세요.

  3. 정 용태 2010/10/27 08:20 # M/D Reply Permalink

    안녕하세요 ^^ 간만에글올리는군요 저번주 토요일에 동대구부산 고속구간 시승때 탑승해봤습니다 이제일주일도 안남았네요 부산 울산 동대구 꼭 지하철 타고 세정거장 달린 느낌이었습니다 부산진서 지하구간으로 쏙 빠져서 한참 주행하니까 언양쪽이 보이더니 순식간에 울산 또 주로 터널과 잠시잠시 터널 사이에 바깥 보고나니까 신경주 지나더군요^^;;그리고 유사한 패턴을 거쳐서 동대구 접근할때는 거의 철도계의 인터체인지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심지어 다시 부산갈때는 고가를 달리는 새마을호와 무궁화호 때문에 묘한 느낌을 느끼기도 했구요... 지하구간도 다 시멘트도상이라 도철 지하구간 고속으로 달리는 느낌이랄까 소음스타일이 그렇더군요 역들도 공사중이던데 무사히 상업운행에 돌입했으면합니다 항상 건승하시고 은혜충만한 생활되시길 ^^

    1. 사무엘 2010/10/27 15:01 # M/D Permalink

      으하하~ 반갑습니다. 공통 관심사를 다루는 글에는 어김없이 강림해 주셨군요.
      고속철이 도시와 도시를 마치 지하철 역처럼 촘촘하게 연결해 주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정차가 너무 잦아지는 게 또 섭섭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고속철 차량은 다들 동력 집중식이어서 가감속도 무척 더딘데 말이에요.
      KTX 1차 개통 당시는 광명과 천안아산조차도 듣보잡 역으로 여기고 정차가 훨씬 뜸했죠.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상전벽해 수준으로 늘어난 겁니다.
      이제 고속철은 호남 고속철, 대전-대구의 시내 구간(여기도 빨리 완공돼야 고속철의 운행이 더 빨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속철과 연계하는 동해남부선 신선 같은 게 과제로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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