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중에서 KTX나 새마을· 무궁화 같은 일반열차 말고.. '통근형(입석형) 전동차' 기반인 일명 '지하철, 전철'들 말이다.
얘들은 좌석이 길쭉한 형태이고 좌석 번호 같은 것도 없다. 운임 체계가 일반열차와는 다르며, 버스와 환승 연계가 되고 모든 열차가 사실상 모든 역에 정차하는 완행만 있는 게 당연시되는 편이다.
하지만 어떤 노선에서는 이런 열차에도 급행이란 게 있다. 전철에서 급행이 제공되는 형태를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경부선 (1호선)
급행 전철의 원조라 할 만하다. 1981년 말에 경부선에서 전철이 다니는 서울-수원 구간이 특별히 2복선으로 연장된 뒤, 전동차의 선로용량이 늘어난 걸 기념해서 무려 1982년 초부터 하루 3차례 서울-수원 급행 전철이 운행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하철 1호선 서울 역이 아니라, 지상 일반열차 서울 역의 동쪽 끝 플랫폼에서 탑승하고 내린다.
즉, 경부선은 급행에 관한 한 압도적으로 유구한 짬을 자랑한다. 그러다가 전철이 천안까지 연장되고 경인선도 2복선화가 완료된 2005년 즈음에는 매일 1시간에 1대꼴로 용산-천안 급행이라는 것도 추가로 생겼다.
이렇듯, 경부선은 복복선 덕분에 일반열차과 전철의 선로가 완전히 분리되긴 했다. 그러나 급행 전동차가 완행 전동차를 추월하려면 역시 전철이 일반열차 선로로 위험하게 들어가야 했다.
이런 문제로 인해 경부선 급행은 안양에서 수원까지 굉장한 장거리를 일반열차 선로(내선)에서 무정차로 달렸다. 중간의 환승역인 금정 역에는 급행이 정차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2010년대를 보내고 2020년부터는 여기에 변화가 생겼다. 안양, 의왕 같은 넓은 역에 전철용 대피선을 추가로 설치하고, 급행 전동차도 평소에는 언제나 외선으로만 다니게 했다. 급행의 정차역을 좀 더 늘린 대신 종점을 용산이 아니라 청량리로 늘려서 지하철 1호선과 더 가까운 운행 계통으로 바꿨다.
이제 이전의 동인천-천안 급행이 다니던 승강장에는 동인천 급행만 다니게 됐다. 경부선에 전철 운행과 관련된 변화를 한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주행 선로가 일반열차와 완전히 분리됨: 경부선 서울-수원 2복선화 (1981~82)
- 종점 회차 공간이 일반열차 선로와 완전히 분리됨: 병점 기지, 그리고 수원-천안 2복선화 (2003, 2005)
- 급행의 추월 공간이 일반열차 선로와 완전히 분리됨 대피선: 구로-수원간 대피선 설치, 운행 계통 변경 (2020)
한편, 40여 년의 유구한 짬을 자랑하는 서울-수원(천안) 급행을 대체하기 위해 한때(since 2009??) 누리로 열차가 경부선에 도입됐었다. 그러나 무궁화호 급인 누리로가 저렴한 전철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었으며, 현재 누리로는 현재 중앙· 영동선 쪽으로 보직이 바뀌었다.
2. 경인선 (1호선)
경인선은 한반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철도이면서 전국에서 유일하게 일반열차 없이 전동차만이 2복선으로 다니는 전동차 천국이다.
급행이 완행과 1:1급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정 간격으로 하루 종일 상시 운행된다. 게다가 완행과 급행이 서로 자기만의 전용 선로에서 따로 다니니 지저분하게 대피/대기 따위 없다. (급행열차를 먼저 보내 주느라 기다립니다) 그냥 자기 시각표대로 가기만 하면 된다. 게다가 경인선은 전국의 전철들 중 유일하게 급행보다도 정차를 덜 하는 '쾌특'이란 게 시도된 적이 있기도 하다.
1990년대, 경인선은 딱히 급행화보다는 그냥 절대적인 수송 능력의 증대를 위해 2복선화됐다. 급행화만이 목적이라면 그냥 주요역에다가 대피선만 설치하면 됐을 테니까..
2복선화 공사가 진행 중이던 시절엔 개통된 구간만 슬그머니 다니는 잉여 보조 열차가 다녔다. 기존 선로의 양 옆 바깥에 외선이 추가되는 형태였다.
그러다가 주안 정도까지 개통되면서 완행과 급행의 구분이 생겼고, 내선과 외선의 용도가 바뀌었다. 처음에는 '직통열차'라는 부정확한 명칭이 쓰이다가 2복선화 공사가 완료된 2005년 즈음에 '급행'이라고 공식 용어가 개정됐다.
3. 서울 9호선
얘는 처음에 만들어질 때부터 급행이 계획됐고, 그 덕분에 진정한 완급 결합 운행이 이뤄지고 있는 국내 유일의 모범 사례이다.
"n분 뒤에 급행이 오며, 얘는 n개역 이후부터 앞의 완행을 추월할 예정. 그러니 XXX 역 이전까지만 가면 지금 완행을 타는 게 낫고, 더 멀리 갈 거면 더 기다렸다가 급행을 타는 게 낫다" 이런 안내까지 적극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경인선 같은 빵빵한 2복선이 아니라, 그냥 복선에서 주요역 대피선만 동원해서 말이다. 경부· 경인 같은 광역전철이 아니라 인서울 도시철도 지하철에 이렇게 급행이 존재하는 건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다.
무시무시한 10량 편성이 서울 지하철 1~4호선에만 존재한다면, 상시 완급 결합 지하철은 우리나라 전체를 통틀어 9호선이 아마 전무후무한 사례가 될지도 모른다. 경전철이 완급 결합 운행이 필요할 정도로 장거리를 달릴 리는 없을 테니..
경인선 급행이 종점인 인천 바로 직전인 동인천 역까지만 가는 것처럼.. 9호선 급행은 종점인 개화의 바로 직전인 김포공항까지만 간다. 사실, 인천과 개화 모두 방향이 틀어진다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이 노선이 서쪽으로 계속 연장된다면 이 역들은 지선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현재는 둘 다 지형적인 이유 때문에 서쪽으로 연장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지만 말이다.
- 여담이지만, 서울 지하철 9호선은 중전철 형태로 건설된 서울의 마지막 지하철이다.
- 대전 지하철은 전국에서 경전철이 아닌 중형 중전철 형태로 건설된 사실상 마지막 지하철이다.
- 울산은 우리나라의 마지막 광역시이다. (이후의 수원, 성남 따위는 그냥 특례시로..) 지하철이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광역시이기도 하다.
- 한편, 대전은 공항이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광역시이고, 인천은 아직까지는 KTX를 탈 수 없는 유일한 광역시이다.
그리고 광주야말로 무엇무엇이 없는 유일한 광역시.. 이런 타이틀이 여럿 있을 텐데.. 꼭 교통 분야가 아니어도.. 당장 기억이 안 난다.
4. 신분당선
신분당선은 별도의 급행이 다니는 건 아니지만, 그냥 서울과 성남 시계 구간이 역간거리가 엄청나게 긴 덕분에 빠른 급행 같은 효과가 나는 전철이다. 여기 말고 서울이나 용인-성남 시내 구간은 그냥 평범한 도시철도 수준이다.
앞으로 노선이 왕창 길어지고 시계 구간에도 역이 막 생긴다면 여기도 먼 미래엔 급행이 필요해질지도 모르겠지만.. 처음에 대피선 같은 게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현실은 시궁창이다.
무인 자동 운전으로 완급 결합과 열차간 대피, 추월까지 구현한다면 이건 정말 최첨단 기술일 듯하다. =_=;;
5. 경춘선, 공항철도
얘들은 급행이 통상적인 새마을/무궁화가 아닌 별도의 좌석형 열차로 존재하는 노선이다.
경춘선 전철의 경우, 개통 직후에는 일반 통근형 전동차 기반의 급행이 잠시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ITX-청춘 2층 열차가 도입되면서 곧 폐지되어 없어졌다.
공항철도는 급행 정도가 아니라 철도역에서 미리 수속을 마친 승객을 태우고 공항으로 논스톱으로 끊는 진짜 직통열차라는 걸 굴리고 있는데.. 얘는 수요가 너무 적은 것 같다. 중간에 몇 역이라도 정차하는 통상적인 좌석형 급행으로 전환하는 게 어떨까 싶다.
사실, 경춘선과 공항철도 모두 신분당선 만만찮게 역간거리가 길어서 완행도 표정속도가 꽤 높긴 하다.
하지만 공항철도는 역세권이 개발되면서 10년 전에 비해 역이 굉장히 많이 생겼다. 그러니 얘들도 급행이 좀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공항 고속도로와 올림픽대로를 달리는 광역버스와의 경쟁력도 더 확보될 것이다.
경강선도 현재는 수요로나 역 수로나 완행만으로 충분한 정도이지만, 여기는 장차 일반열차가 투입될 계획도 잡혀 있는 엄연한 간선이다. 급행은 ITX-청춘처럼 일반열차에 준하는 별도의 열차가 담당하게 될 것 같다.
6. 나머지 광역전철들
수인분당선, 안산선, 경의중앙선, 1호선 경원선 구간 등에도 살짝 급행이 다니는 게 있다. 그러나 이건 평일 출퇴근 시간 한정이고 아주 일부 구간밖에 무정차 통과를 하지 않는다. 완행에다 붙는 추가 서비스 액세서리에 가까운 위상이기 때문에 시간 절약 효과는 미미하다. 허나, 그래도 이것도 아예 시도를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아 보인다.
즉, 얘들은 앞서 소개했던 경부· 경인선이나 9호선 등에 비해서는 급행의 상황이 열악하다.
사실, 경부선도 40년 전에 처음 전철이 들어섰을 때는 역간거리가 지금의 경춘선이나 경강선 같은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역세권이 개발되고 역이 엄청 많아지면서 급행이 등장한 것이다. 나머지 전철 노선들도 차차 비슷한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통근형 입석 전철을 급행화하는 것만으로는 이동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에 한계가 있으니 지금은 결국 '대심도 좌석형 급행 전철 GTX'라는 걸 완전히 새로 만드는 지경이 됐다. 버스에 한계를 느껴서 지하철을 파고, 일본에서 기존 철도에 한계를 느껴서 신칸센을 새로 만든 것과 비슷한 격이라 하겠다.
자동차 쪽이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의 구분을 없애고 재래식 톨게이트를 없애는 게 장기 과제라면, 철도 쪽은.. 여객열차들을 사실상 다 동차형으로 바꿔서 기관차-객차는 화물에만 남기는 것, 그리고 승강장을 모두 계단 없는 고상홈으로 바꾸는 것이 장기 과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승객이 적은 곳에서 버스 같은 1량 동차가 다니든, 1000명씩 태우면서 동력분산식으로 빠르게 가속하든, 어느 경우든 여객 철도에는 동차가 더 유리하다. 지금은 차량은 동차가 갈수록 늘어 가고, 승강장은 저상홈과 고상홈이 뒤섞여 쓰이는 과도기에 속한다. 이 와중에 전철 시스템과 일반열차 시스템의 구분이 많이 문란해지고, 둘의 중간에 속하는 운임 체계가 등장할 수도 있다.
이런 한국 철도의 하드웨어 백 엔드를 주관하는 기관은 '한국 철도 공단' 이럴 것이지 웬 '국가'라고 이름을 붙였냐? 전국구 단체나 기관 이름이 대한/한국 대신에 '국가'라고 시작하는 건 미국에서 NBA, NASA, NRA(전미 총기..) 같은 이니셜의 N에서나 확인할 수 있는 관행이다.
갑자기 '국가 철도 공단'이라고 하니까 옛날 철도청 시절 같은 사회주의 냄새가 난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