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발전 이야기

과거에 이따금씩 발전 시설이나 원자력에 대한 글을 몇 번 썼지만,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만 전문적으로 글을 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수력이야 그 정의상 지형을 많이 타고 아무 곳에나 못 만들겠지만, 화력은 연료와 엔진만 있으면 어디서나 발전기를 돌릴 수 있으니 장소와 지형 제약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물론 화력이라도 엄청 거대한 놈은 연료와 냉각수 조달이 원활한 곳, 보안 걱정 없는 곳, 빵빵하게 돌려도 주민들 항의 민원이 안 들어올 외곽에 건설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화력은 규모를 줄여서 도시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곳에 열병합 난방 시설과 연계한 형태로도 만들 수 있다. 메탄 가스를 활용할 목적으로 쓰레기장 주변에 이런 발전소가 돌아가기도 한다.

또한 울릉도· 백령도 같은 오지 도서 지역에도 그런 소형 화력 발전소가 있다. 전깃줄을 본토에서 바다 건너 거기까지 연결하는 건 어려우니 말이다.
이런 영세한 발전소들은 메이저급 대형 발전소에 비해 배기가스· 매연을 정화하는 시설이 부실해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어디 언론에서 고발한 적이 있다.

원자력 발전도 물을 끓여서 증기 터빈을 돌리고 그걸로 교류 발전기를 돌린다. 이 원리는 화력과 본질적으로 완전히 동일하다. 다만, 원자력은 열을 생성하는 방식이 화력과는 넘사벽급으로 더 고차원적이고 에너지가 풍부한 대신, 훨씬 더 위험하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니 원자력은 화력처럼 여느 공장 짓듯이 아무렇게나 여기 저기 많이 만들 수 없다. 한번 만들고 나면 수십 년 뒤에 원자로를 해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평생 철통같이 잘 관리하겠다는 심정으로, 정말 엄격한 입지 조건을 따져서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핵분열 방식보다 더 고차원적인 핵융합 방식의 발전은.. 마치 바퀴식 고속철 vs 자기부상 고속철만큼이나 아직까지 떡밥이다. 기술적 어려움 때문에 실용화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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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소가 원래 다 민간 지도에서 표시하지 않는 보안 시설이지만, 원전은 위로 비행기의 비행조차 금지할 정도로 보안이 더 삼엄하다. 원자로의 겉벽은 어지간한 댐 급으로 콘크리트를 왕창 쏟아부어서.. 비행기가 쳐박고 어지간한 폭탄이 떨어져도 끄떡없게 만들어진다고 들었다.

원전은 미래의 해체 비용까지 생각하면 마냥 싼 게 아니겠지만.. 어쨌든 당장 핵분열이 시작되어 제대로 돌아갈 때는 화력보다 훨씬 더 많은 열량이 저렴하게 뿜어져 나온다. 한번 시작된 반응을 마음대로 멈췄다가 재개할 수도 있지 않으니 전기는 밤낮 구분 없이 24시간 쭈욱 생산된다.

철도만 해도 비싼 돈 들여 고속철이 개통하고 나면 노선이 전부 KTX 위주로 개편되고, 나머지 느린 열차들은 KTX 연계 지선 위주로 운영된다.
그것처럼 국가에서 전력을 관리할 때도 평소에 저렴한 원전을 상시 가동하고, 이것만으로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전력 소모가 늘면 용량과 생산 원가가 모두 열세인 화력을 추가로 가동하게 된다. 즉, 전력 부하가 커질수록 더 비싼 전기를 생산하게 된다는 것이다.

에휴.. 나도 공돌이 공부 더 열심히 해서 우주로 나간다거나, 아니면 이런 신비로운 업종의 종사자가 됐으면 하는 아쉬움도 든다만..
대한민국에는 원자력 발전소의 군집 내지 본부가 총 네 군데 있다. 아래의 그림은 한 2년 반쯤 전 기준의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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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리(1978)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이다. 그 시기가 1978년 봄이니 박통 집권의 말기이며, 호남선 대전-이리간 복선 개통과도 시기적으로 비슷하다. 착공은 1971년부터 했으니 만드는 데 7년이나 걸렸다.

얘가 있는 곳은 부산 기장군의 최북단과 울산 울주군의 최남단 사이에 있는.. 행정구역상 기장군 '고리'(古) 전체이다.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답게 북괴와 최대한 멀리 떨어진 후방인 동시에 나름 부산이라는 대도시와 가장 가까운 곳에 지어진 셈이다. 여기가 원전 부지로 지정되면서, 이 동네에 원래 살던 주민들은 모두 당연히 딴 데로 이주하게 됐다.
이렇듯, 이 발전소의 명칭의 근거는 그냥 지명이다. ring 같은 다른 이상한 근거가 절대 아니다.

원자력 발전소는 안전상의 이유와 원자로를 식힐 냉각수를 조달하는 문제로 인해, 바닷가에 만들어지는 것이 관례이다. 한반도에서는 바람이 서에서 동으로 분다는 특성상, 서해안 대신 동해안의 바닷가가 선택되었다. 근처의 임랑 해수욕장에서 고리 원전을 멀리서나마 구경할 수 있다.

원전이 대도시와 너무 가까운 것은 좀 찝찝하고 문제의 여지가 있지만, 그 덕분에 여기는 직원들의 근무 선호도가 가장 높다. 그리고 근처에 '신고리'라는 이름으로 원전이 더 지어져서 발전 용량이 압도적으로 증가했으며, 한수원의 직원 연수 시설과 심지어 원자력 대학원대학교까지 다 여기 일대에 건립되었다. 여기는 그야말로 우리나라 원전 허브처럼 돼 가는 느낌이다.

대전에 있는 원자력 연구원이 핵물리학을 전반적으로 연구한다면, 저기는 원자력 발전에 더 특화돼 있다.
신고리 원전이 너무 거대해진 관계로, 앞으로 더 만들어지는 신고리 원자로 3호기부터는 '고리'가 아닌 '새울'이라는 새로운 원자력 본부의 명의로 관리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만, 우리나라 최초의 상용 가동 원자로인 고리 1호기는 잘 알다시피 설계 수명을 넘겨서 가동을 중단했으며, 앞으로 수십 년에 걸쳐 해체될 예정이다. 뭔가 몇십 년을 뛰었던 전동차나 여객기가 퇴역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화력 발전에는 이런 거창한 프로세스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용광로만 해도 한번 쇳물이 흐르기 시작했으면 그야말로 무조건 365일 가동해야 한다던데(쇳물이 중간에 굳어 버리면 용광로 전체가 망가지고 못 쓰게 됨)... 원자로는 더 위험하고 까다로운 물건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2. 월성(1983)

고리 다음으로 5공 시절에 가동을 시작한 제2의 원자력 발전소는 '월성'이다. 물론 얘도 건설은 이전 정권 때부터 몇 년째 하다가 저때에야 결실을 거뒀다.
있는 곳은 고리보다 더 북쪽으로.. 경주의 남동쪽 끝의 나아리와 봉길리 사이이다. 지명을 딴 해수욕장도 있으며, 우리나라 역사상 보기 드문 해중왕릉인 신라 문무대왕릉도 여기 근처에 있다.

발전소의 이름이 월성인 이유는 여기의 옛 지명이 월성이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신라의 도읍에 속하는 좁디좁은 시내만이 경주시이고, 나머지 외곽의 넓은 시골 마을들은 다 경주군(1995 이전)이었다. 그게 더 옛날에는 이름도 경주군이 아니라 월성군(1989 이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경주/월성'은.. 이름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행정구역 영역이 바뀐 '김포/서울'과는 관계가 좀 다르다. 김포 공항조차도 굳이 이름을 바꾸지 않고 있는데(뭐 국제적인 인지도와 관성 문제 때문이지만), 원전의 이름을 뭔 남사스럽게 최신 지명에 맞춰 업데이트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도 경주는 시내와 바다 근처는 거리가 상당히 멀고 산으로 가로막혀 있기도 한지라, 생활권이 서로 굉장히 다르다. 경주도 포항처럼 바다와 접하고 있고 해수욕장과 항구도 있는 시라고 하면 누가 선뜻 실감하겠는가? 행정구역이 다르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리고 그것만치 월성 원자력 발전소도 서류상의 행정구역으로만 경주 소재일 뿐, 흔히 생각하는 그런 경주 생활권에 있는 건 아니다.

여기도 2010년대에 와서 신형 원자로를 추가로 만들었으며, 1983년부터 가동했던 원조 1호기는 이미 퇴역했다.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라고 다 같은 발전소는 아닌지라, 월성의 원자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가압중수로 방식이라고 한다. (나머지는 가압경수로) 잘은 모르겠지만, 얘는 핵무기 개발과 연계하기 더 쉬운 구조여서 국제적으로 더 민감하다고 그런다. 우주 탐사 로켓이 장거리 미사일로 형태가 고스란히 바뀔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3. 영광-한빛(1986)

얘는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소들 중 이례적으로, 유일하게 서해안에 있는 물건이다.
황해라고도 불리는 서해는 물이 얕고 탁해서 해수욕장으로서의 입지가 동해 및 남해보다 못하다. 그런데 그 단점은 다량의 냉각수를 필요로 하는 원전의 입지 조건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하는 듯하다.

하지만 전남 영광군의 북부에는 바닷가가 내륙의 산으로 가로막히기도 하고 서해안의 지리· 지형적인 단점이 그나마 적게 작용하는 곳도 있는가 보다. 그래서 거기에 원전이 하나 더 지어졌다.
영광은 광주와 가까우며, 이 발전소가 있는 곳은 위도가 부산 고리와 비슷하다. 얘 혼자 다른 원전들과 달리 낙동강 오리알처럼 따로 떨어져 있다.

본인은 타지 사람으로서 '영광'이라 하면 정말.. (1) 영광 굴비랑, (2) 옛날에 야망이 너무 충만했던 그 조직폭력배 집단, 그리고 (3) 원자력 발전소밖에 떠오르는 게 없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는 자신이 원자력 발전소와 엮이는 것이 싫었는지.. 2013년부로 발전소의 이름을 '한빛'으로 바꿔 버렸다. 지명과 무관한 원전 명칭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됐다. 하지만 '광/빛'을 생각하면 개연성이 전혀 없는 명칭은 아니어 보인다.

4. 울진-한울(1988)

우리나라에서 가동 중인 원전 군집 중에서는 제일 나중에 생겼으며, 위도가 제일 높은 북쪽에 있기도 하다. 강원도에 근접한 경북 동북부 끝.. 말만 들어도 전라남도 섬 만만찮은 오지 같지 않은가?
여기는 직원들로서는 기피 1순위인 근무지이다. 오죽했으면 "울진에서 10년간 근무"를 조건으로 거는 특채도 있다고 들었다. 무슨 사관 생도의 군 의무 복무도 아니고 말이다.

여기도 영광과 같은 시기(2013)에 '한울'이라고 이름을 바꿨다. 울진은 이 발전소 덕분에 오지치고는 세수입 많고 재정이 넉넉하고 학교나 공공기관들의 시설이 좋다고 들었는데 왜 굳이 발전소 이름에서 자기 지명을 빼려 하는지 모르겠다.

이상이다.

이런 식이면 강원도에도 원전이 있을 법한데 그렇지 않다. 지형적인 입지는 나쁘지 않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북괴와 가까워져서 안보 측면에서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동쪽으로 갈수록 고위도 영토를 많이 수복했기 때문에 강원도 남부의 삼척 정도에는 장기적으로 원전의 건설이 계획돼 있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강원도가 아니라 울진보다 남쪽의 오지인 영덕에 새 원전이 이미 건설 중이긴 하다. 동해도 서해도 아닌 남해안 쪽은 만들 만한 곳이 없나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1950년대 이 승만 할배 때부터 원자력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비록 할배는 문과 출신이고 군 경력도 없는 사람이지만,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던 일본을 닥버 시키고 우리나라를 해방시켜 준 무서운 폭탄이 원자력 기반이라는 것에 큰 감명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6·25 전쟁 이후, 1956년에 미국과 원자력 협정을 맺고 서울대와 한양대 등의 공대에 원자력 공학과를 신설했으며, 58년에는 원자력 연구소를 설립했다. 이렇게 차근차근 씨를 뿌린 것이 결실을 맺은 덕분에 20여 년 뒤에 한반도엔 원자력 발전소가 돌아가게 됐다. 원자력 발전소가 없이 화력만으로는 지금 같은 전철, 서버, 에어컨, 휴대폰 충전 같은 폭발적인 전기 소모 수요를 지금 같은 생산 원가로 결코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본인은 이런 이유로 인해 예나 지금이나 원자력 발전의 적극 찬성론자이며, 되도 않은 탈원전 구도가 어떻고 하는 소리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당장 현실에서 이것만 한 대안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고가 났을 때의 여파가 너무 크고 평소에도 방사성 폐기물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등 문제는 있지만.. 그것까지 일일이 다 따지려면 자동차나 비행기도 무서워서 타지 말아야 할 것이고, 그냥 현대 문명의 이기를 다 포기해야 할 지경이다. 어디 한번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에서 냉장고· 에어컨조차 없이 잘만 살아 봤으면 싶다.

원자력을 없애고 그 대신 더 더티한(미세먼지!!) 화력을 늘리는 것은 바보 병신짓이 따로 없고, 또 이 좁은 땅에서 무슨 태양광? 풍력? 이건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다.
환경 운동한다는 놈들이 정말 환경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99%가 그냥 진영 논리 정치꾼일 뿐이라는 것은 이미 다 밝혀진 사실이다. 이런 인간들이 원자력 발전을 꼭 '핵 발전'이라고 부르면서 원전을 반대하는 것에 본인은 더욱 공감해 줄 수 없다.

또한, 핵무기 개발을 그렇게도 오랫동안 열심히 해 온 북괴가 정작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었다는 얘기는 지금까지 아무도 못 들어 봤을 것이다.
쟤들도 60년대부터 소련의 지원을 받으며 원자력 연구를 하긴 했다. 다만, 그 유명한 '영변 원자력 연구소'는 바닷가가 아닌 평안북도 소재이고, 그 자체는 원자력 발전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남한의 원자력 연구원과 비슷한 시설이다. 함경북도에 있는 핵실험장 역시 원자력 발전과는 아무 관계 없는 시설이다.

저 짓을 하고 있으니 북한은 평양 말고는 밤에 불빛 하나 안 비치는 암흑천지이고 주민들은 도탄에 빠져 있다. 어디 누가 누구 탓을 하나 모르겠다(미국 탓? 경제 제재? 트럼프가 한반도에 긴장과 전쟁 조장?? -_-;; X랄..).
그러면서 그 부족한 전기는 김씨 일가 우상화 시설에다 최우선으로 공급하고, 대외적으로 전기가 부족하다며 남한 삥이나 뜯는 것이 21세기까지 이어지는 북괴의 추악한 민낯이다. 이래도 도대체 언제까지 민족뽕 평화뽕 통일뽕이라는 저주받을 마약에 취해 있을 텐가?

참고로 국내의 경우, 개인이 '원자력 안전 위원회'의 허가와 승인 없이 싸제 원자로를 구축하고 방사성 원소를 건드리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도대체 그런 짓을 누가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mad scientist 성향이 있어서 위험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 금지다.
저건 개인이 싸제 총기나 폭발물을 만든다거나 무단으로 북한과 내통을 시도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위험한 짓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은 이런 짓을 다 관련법을 통해 규제하고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01/22 08:34 2019/01/22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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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 방식 이야기

오늘날은 정말 전기 없이는 잠시도 돌아갈 수 없는 시대이다. 21세기엔 24시간 상시 켜져 있는 컴퓨터인 스마트폰을 사람마다 들고 돌아다니기 시작하면서 전기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져 있다.
교통수단들을 살펴봐도 그렇다. 전철에 목숨을 걸고 있는 철도 쪽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동차도 기름값이 워낙 오르니 하이브리드 내지 순수 전기 동력원이 주목을 받는 중이다.

굳이 동력원 자체가 아니더라도 엔진 내부 역시 종래엔 기계 제어이던 것이 다 전자 제어로 바뀌어서 어떤 형태로든 컴퓨터가 탑재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교통수단들은 연료 소비 효율이 더 좋아지고 예전보다 사람이 신경을 덜 쓰고도 운행이 가능해졌지만, 한편으로 자동차의 경우 급발진 문제가 의심되고 있으며, 침수에 예전보다 더욱 취약해지기도 했다.

뭐 어쨌든..
교통수단이야 전차선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엔진의 힘으로 자가발전을 해야겠지만
붙박이 건물들이 사용하는 전기는 잘 알다시피 발전소라는 거대한 국가 기간 시설에서 생산된다. 예전에 심시티 게임을 할 때도 도시를 만들 때 가장 먼저 지어야 하는 시설은 바로 발전소였다. 스타크래프트 프로토스 종족으로 치면 파일런 같은 건물이다.
전기는 생산되는 직후 광속으로 흘러가 없어져 버린다는 특성상, 생산과 동시에 소비되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수력, 화력, 원자력, 풍력, 조력 등 우리가 생각하는 거의 모든 발전 방식은 결국 동력을 얻어서 발전기를 돌려서 전기를 생산한다.
그리고 동력 발전은 열을 만들어서 물을 끓이고 터빈을 돌리는 놈, 쉽게 말해 열기관이 주류이며, 화력이나 원자력, 심지어 열병합이 여기에 속한다.

화력 발전은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만, 자동차 엔진에 달린 발전기 같은 내연기관 형태가 아니라 보통은 증기 터빈이라는 외연기관이 쓰인다. 아마 이게 출력과 효율이 더 좋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 반면, 무공해를 표방하는 일명 대체 에너지 발전 방식은 대부분 열 없이 자연의 힘으로 동력을 얻는 발전 방식 위주이다. 공해는 없지만 발전 용량이 메이저들보다 턱없이 부족한 게 흠이다.

수력 발전은 비록 원시적이지만, 정말 말 그대로 물의 위치 에너지, 즉 잠재적인(포텐셜) 에너지를 사용하여 발전한다는 특성상, 순발력이 좋고 전력 생산량의 제어가 용이한 게 매우 큰 장점이라고 한다.
날씨의 영향을 받는 여타 자연 동력 발전은 논의할 가치도 없거니와 화력도 기계적인 메커니즘이 간단하지 않기 때문에 풀가동 모드로 진입하는 데만 몇 시간씩 걸린다. 예열을 하고 증기를 만들기 위해서인지? 사실 거대한 디젤 엔진 선박만 해도 시동을 켜는 데만 수십 분 걸리는 건 기본이라고 한다.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는 이보다 더해서 초기화하는 데 거의 하루씩 걸리고 가동된 놈을 세우기란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발전이 시작되면 전력 소비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밤에도 잉여 전기는 낮과 별 차이 없이 계속 생산되어야 한다. 이걸 좀 쓰라고 우리나라는 진작부터 심야 전기 할인이 존재해 온 것이다.

여담이지만, 수력은 멈춰 있던 발전 설비의 첫 가동을 위해서 전기가 필요하지 않다는 특징도 있다. 자동차만 해도 배터리가 방전돼 버리면 시동을 못 거니 말이다.

원자력은 많고 많은 에너지원들 중에 어떤 형태로든 태양으로부터 전혀 유래되지 않은 유일한 에너지원이라 여겨진다. 굳이 태양광 발전 같은 게 아니어도 날씨나 물의 움직임에 의존하는 발전 방식은 전부 태양과 관계가 있으며, 심지어 화석 연료의 원천도 결국 태양 없이는 생길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태양계 밖으로 나가는 우주 탐사선에는 원자력 전지가 탑재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지구 주변만 도는 인공위성 정도야 태양광 발전을 위한 집광판이 달려 있지만, 보이저/파이어니어 같은 탐사선에는 그런 게 없다. 걔네들은 공기 유체역학 원리로 비행하는 게 아니니 비행기 같은 날개도 없고 말이다.

원자력 발전은 20세기에 인간이 이룩한 위대하고 엄청난 과학 업적임이 분명하다. 물론 관리를 제대로 안 했을 경우 큰 위험에 빠지는 건 사실이나, 지금까지 찬란한 전기 문명 혜택은 실컷 입어 놓고는 대안도 없이 반대만 줄곧 늘어놓는 주장에는 선뜻 공감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한편,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태양광 발전은 화학적 원리로 전기를 만들지 동력으로 전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큰 차이가 있다. 태양열을 초대형 돋보기로 한데 모아서 물을 끓여서 터빈을 돌리는 게 아니니, 전통적인 발전 방식과는 발상이 다르다. 신기하지 않은가? 마치, 많고 많은 정렬 알고리즘 중에 '비교 연산'을 쓰지 않는 알고리즘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빛으로 자가발전 내지 충전이 되는 손목시계나 계산기 같은 물건을 다시 보게 된다.

제한적으로는 사람의 힘으로 발전기를 돌리는 인력 발전도 생각할 수 있다.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제일 간단한 예는 자전거의 헤드라이트를 켜는 발전기인데, 어렸을 때부터 이게 무척 신기하긴 했다.
잘 알다시피 자전거의 바퀴와 발전기 바퀴를 연결만 시켜도... 자전거를 굴리는 데 드는 힘이 미세하게나마 더 증가한다. 전기 생산은 물리적으로 공짜가 아닌 것이다.

무슨 엔진 브레이크도 아니고, 전동차의 회생제동은 바로 이런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기왕 속도를 줄이는데 전기나 더 생산하자는 발상.

교도소 수감자에게 징역형으로 다른 노동을 시킬 게 없으면, 몸으로 전력이라도 약하게나마 생산해서 할당량을 채우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운동도 되고. -_-;
물론, 겨우 사람이 만드는 전기는 동력 기관이 만드는 전기에 비해 양이 턱없이 부족하며, 전압도 불안정하기 때문에 전구 같이 밝기만 변하는 간단한 기기 말고 다른 정교한 기기에 바로 공급해 줘서는 곤란하다.

* 그나저나 영광과 울진 원자력 발전소가 이름을 바꾼 줄은 최근에야 알았다. 각각 한빛과 한울로. '광'이 '빛'으로, '울'은 공통으로 들어가는 글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외우기 쉽다. 해당 지역의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이유로 2013년 5월부터 바꾼 거라고 하니 안타깝네. 고리와 월성은 지역명이 직접적으로 들어가 있지 않긴 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4/01/12 08:17 2014/01/12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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